- ◐ 고전세상 ◑

책먹는엄마
- 작성일
- 2010.1.10
고도를 기다리며
- 글쓴이
- 사무엘 베케트 저
민음사
♣ 책 읽은 후 미니 감상평 ♣
참 허무맹랑한 희곡이다. 책을 펼치는 순간부터 ‘도대체 고도가 누구일까?’를 고민하다 책이 끝나버렸다. 분명 처음에는 사람으로 느껴졌고 점점 반복되는 그들의 일상을 보며 뭔가 함축적인 의미가 있지 않을까 고민했지만 끝내 발견하지 못했다. 아마 저자 베케트는 고도를 통해 독자 나름의 답을 요구했던 것 같다. 그렇지 않고서는 자신도 고도가 누구인지 모른다고 대답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 고도는 없다. 아니 고도는 여러개다. 어떤 면에서는 신이 될 수도 있고, 종교인에게는 구세주가 될수도 있고, 희망이 될수도 있고, 빵이 될수도 있고, 꿈이 될수도 있고, 자유가 될수도 있고, 사람이 될수도 있고, 그 무엇인가가 될수도 있다. 다소 바보처럼 느껴졌던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 역시 내일이 기다려지는 이유는 고도가 가져다줄 희망이었다. 그 희망하나로 반복되는 일상의 지루함과 배고픔도 잊은 채 살아갔던 것이다. 하지만 정말 바보 같았다. 나 같으면 50년 가까이 오지도 않은 사람을 기다리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은 고도를 기다렸다. 책은 바로 그들이 ‘고도를 기다리며’ 일어난 일상을 담은 이야기다. 읽은 사람은 공감하겠지만 다소 어이가 없고 우습기도하고 ‘도대체 고도가 누구일까?’ ‘고도는 언제 나타날까?’를 고민하게만 만든다. 그래서 그런지 이 책을 읽는 동안에는 이 책이 주는 깊이를 느껴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사실 지금도 그들을(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 생각하면 웃음이 나온다.
서두에도 간략하게 설명했지만 이 책은 고도를 기다리는 두 사람의 이야기이다. 고도를 기다리며 일어난 일상과 대화들이 전부이다. 그래서 그런지 등장인물도 간단하다. 블라디미르, 에스트라공, 고도의 소식을 알리는 소년, 포조와 그 하인 럭키가 전부이다. 50년 넘게 한 자리에서 고도를 기다렸으니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대화’뿐이었을 것이다. 그들의 대화를 엿들어 보면 정말 고도에 대해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은 분명 고도에게 약속을 받았다고 했다. 그래서 끝없는 기다림을 참을 수 있다고 고백했고 걱정할 게 없다고 했다. 기다리기만 하면 되니까 말이다. 그런데 그들은 고도가 누구인지조차 모른다. 그런데 어떻게 약속을 받았다고 했을까? 나는 이 부분에서 종교적인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저자는 분명 신교도 가정에서 태어났고 책속에도 종종 성경이야기가 나온다. 성경은 처음부터 구약과 신약으로 나눠져 있지 않고 하나의 성서였다. 하나님은 시대마다 선지자들을 보내어 하나님의 아들을 그들에게(유대인) 보내주겠다고 약속했다. 유대인은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가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하나님은 약속대로 구세주를 보내주셨지만 그들은 믿지 않았다. 예수님은 키도 작고 얼굴도 흠모할만한 곳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예수님의 사진이나, 영화에서 등장하는 멋진 예수님의 얼굴은 그저 사람들이 만들어낸 허구일 뿐이다. 실제로 예수님은 정말 못생겼다고 한다. 그럼에도 우리들 역시 예수님을 멋진 인물로 그려내고 있다. 이런 면에서 본다면 실제로 예수님시대에 살았던 유대인들은 오죽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신약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는 또 다시 재림예수를 기다리고 있다. 그래서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은 고도를 한번도 보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약속을 받았다 했고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고 하지 않았을까? 그들은 고도가 오지 않을까를 걱정한 것이 아닌 오늘은 올까를 걱정하였다. 왜냐하면 그들은 이미 약속을 받았기 때문이다. 가끔 나타나 고도의 소식을 알리는 소년 역시 종교세계에서 ‘곧 예수님이 나타난다’고 소리치는 사람들의 성향과 비슷했다. 그냥 무턱대고 자유, 빵, 희망, 꿈, 그 어떤 기다림을 이야기하기에는 뭔가 앞뒤가 맞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은 나의 주관적인 견해이기 때문에 정답일수는 없다.
그래 그들의 말처럼 인간은 태어나고 어느 날 죽는다. 그러면서 잠깐 사는 동안에도 저마다 작은 십자가를 지며 살아간다. 사람들은 서서히 그렇게 늙어가고 하늘은 그들의 외침으로 가득하다. 하지만 습관은 그들의 귀를 틀어막고 그들처럼 왜 고도를 기다린지도 모른 채 살아가게 된다. 허무한 인생, 어쩌면 우리의 삶일지도 모른다. 기다림..... 인생은 무엇을 기다리는 것일까? 그것은 정말 베케트의 말처럼 각자의 몫인지도 모르겠다. 작품해설에서 보면 저자의 입장에서는 전쟁시대에 살고 있었기 때문에 그에게 있어 고도는 일차적으로 ‘자유에 대한 갈망’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암튼 중요한 것은 베케트 역시 고도가 누구인지조차 모른다는 사실이다. 알랭 슈나이더가 고도가 누구이며 무엇을 의미하느냐는 질문에 ‘내가 그걸 알았더라면 작품 속에 썼을 것이다.’라고 했던 유명한 일화가 있다고 한다. 그리고 소설 역시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은 끝내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고 오늘도 고도를 기다린다. 그리고 어쩌면 인생 자체가 기다림의 연속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 좋아요
- 6
- 댓글
- 0
- 작성일
- 2023.04.26
댓글 0
댓글이 없습니다.
첫 번째 댓글을 남겨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