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청전의 등장인물 중의 한 명인 뺑덕어멈은 '심술궂고 수다스러운 못생긴 여자를 낮잡아 이르는 말'로 통용되고 있다. 헌데 그 심술궂은 뺑덕어멈이 하필 눈이 먼 심봉사를 남편으로 맞게 되었나하는 의문이 생기고, 그렇게 애틋한 것 같지도 않은데, 한양까지 먼길을 맹인잔치에 가고 싶어하는 심봉사와 동행을 해준다. 깊이 생각하면 이상하지만, 옛이야기가 그렇듯 뺑덕어멈은 심술궂은 계모이자 새마누라 역을 하면 할 일을 다하는 것이고, 독자는 주인공 심봉사와 심청이에 몰입하고 그들의 행복한 결말을 기뻐하였다.

  그런데 여기 뺑덕어멈이 왜 뺑덕어멈인가에서 부터 의문을 제기하면서 심청전을 다시 쓴 이야기가 나왔다. 심대인이란 노인이 소리꾼의 '사랑가'를 듣고 옛일을 회상하는 것에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역관의 아들이었던 조병덕은 아버지와 형이 역모죄의 누명을 쓰고 처형당하기에 이르자 목숨을 부지하고자 어머니와 둘이서 도망친다.

  이 모자가 다다른 것이 도화골인데 그곳에 바로 심청전의 주인공인 심청이 아버지를 지극 정성으로 모시며 효녀소리를 들으며 살고 있다. 목숨을 부지하고자 벙어리노릇을 하게 된 병덕은 심청을 보자마자 그 맑은 눈에 반해 마음이 흔들리고 만다. 두 모자는 이렇게 해서 심청전이라는 원래의 이야기 속으로 자연스럽게 빨려들어 간다.

  두 모자를 이야기 속으로 끌어들인 채 심청전은 가장 중요한 대목인 공양미 삼백석과 인당수에 몸을 던지는 심청의 이야기를 천역덕스레 되풀이한다. 그런데 이 원래의 이야기 속으로 빨려들어온 뺑덕과 뺑덕어멈에 의해서 이야기는 조금씩 울렁거리며 원래의 이야기에 변칙적인 파도를 일으킨다.

  심청과 한 배에 타고서 목숨을 던져가며 심청을 구해낸 다음에는 이제 심청전이 아니라 병덕전으로 이야기가 바뀐다. 병덕은 낯선 청나라에서 오직 심청의 건강회복을 위해 애쓰는 한편 심청이 걱정하는 아버지에게 다시 돌아가기 위해 인정받는 상인으로 거듭나며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두 사람의 행복한 사랑의 완성을 기대하는 독자를 저버리고, 작가는 이야기를 뒤집고 또 뒤집으며 병덕과 심청이 만나야 할 인생의 큰 파도를 던져준다. 사랑을 택하기보다는 인륜을 택한 두 사람은 서로의 행복을 기원하며 멀리에서 살아가게 된다.

  심대인으로 불리며 넉넉한 삶을 살아가던 노인은 사랑가를 부르던 소리꾼에게 자신의 기구한 사랑이야기를 들려준다. 그 이야기가 심청전이 되어 그에게 돌아왔을 때, 노인은 심청의 최후가 그리 행복하지 않았음을 알고 회한의 눈물을 흘린다.

  이야기는 두개의 줄이 만나 한 줄의 새끼줄이 되듯 어색하지 않게 심청의 이야기와 병덕의 이야기를 조합해냈으며, 심청과 뺑덕어멈이 그렇게 극단적 선택을 해야만 했던 필연적인 이유를 수긍이 가도록 현대의 독자들에게 일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