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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문 강에 삽을 씻고
글쓴이
정희성 저
창비
평균
별점9 (4)
작은사자
이희승의 『저문 강에 삽을 씻고』를 처음 접하게 된때는 고등학교 2학년때였다. 평소 시에 대한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었지만 국어수업 중 시 부분에서는 선생님의 수업을 듣지 않았다. 너무나 멋진 시를 단어 하나하나, 구절구절 파헤치는 선생님이 미웠다. 여기엔 밑줄긋고 저기엔 형관펜으로 칠하고 주제엔 큰 별표 하나 그려놓고는 '시험에나옴' 이라고 써야만 했다. 시를 먹지 못하고 씹고만 있는 기분. 그 안타까움. 그러던 어느날 현대문학 부분을 배우고 있는데 선생님께서 숙제하나를 내주셨다.

이희승의 「저문 강에 삽을 씻고」라는 시 한편을 읽고 감상문을 써오라는. 분명 감상문이라고 하셨다. 시를 갈기갈기 찢어져 분석하라는 것도, 수업내용을 달달달 외워오라는 것도 아닌 분명 감상문. 그 길로 당장 그 시집을 사버렸다. 그리고 읽은 정희승님의 시. 사전지식 없이 읽었던지라 그 시를 읽고 가장먼저 생각난 것은 우리 아버지였다. 시속에서 등장하는 한명의 노동자. 쭈그려 한 모금 빠는 담배 연기처럼 허무하고 보잘 것 없는 삶. 시구 그대로 '삽자루에 맡긴 한 생애가 이렇게 저물고' 현실에 정면 대결할 용기가 없는 무력감과 실의에 빠진 그. 흐르는 물에 삽에 묻는 찌꺼기를 씻어내도 내일이면 다시 일터로 삽에 흙을 묻히며 살아가는. 우리 아버지를 위한 시 같았다.

아니, 아버지의 일과를 그려놓은 것 같았다. 결국에 '먹을 것 없는 사람들의 마을로' 다시 그렇게 돌아가야 하는 시속 노동자의 발걸음이 유난이 무거워 보였던 것도 단지 그 시를 제대로 이해해서가 아닌 바로 내 주변의 상황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IMF시대. 다들 힘들고 어려운 생활을 하는 사람들. 물론 70년대 만큼은 아니겠지만 암울한 시대였음은 분명할 것이다. 이 시에는 바로 지금의 시대역시 표현되어 있었다.

70년대는 한마디로 쟈유가 없는 노동자 착취의 시대였다. 이 시는 그런 고단한 삶을 살아가는 노동자들의 삶과 그 사회적 배경을 아주 잘 보여주고 있다. 가장 대표인 시로써 「저문 강에 삽을 씻고」는 구체적 삶의 경험이 바탕이 되어 있다. 노동의 현장에서 오는 삶의 경험을 강이라는 자연물의 심상과 결합시켜 깊은 시적 의미를 얻고 있다. 노동은 인간이 세상에 참여하는 건실한 방식중 하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값지고 진실한 노동의 가치는 그에 합당한 대우를 받기 보다는 부당하게 취급하기 일쑤이다. 노동에 바치는 땅에 대한 부당한 취급은 시인이 분노하고 개탄해마지 않는 직접적인 원인이다.

현실에서 느끼는 분노와 고통을 시인은 흐르는 물을 보며 씻어 버리며 삶을 반추하는 계기로 삼는다. 흐르는 것이 물뿐이랴는 표현에는 탄식과 반성이 깃들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시에서 쉬임없이 '흐르는 물'의 심상은 시간의 흐름과 동등한 의미 연관을 지닌다. 저문 강에 선 하루의 저녁은 인생의 저묾과 중첩되고 있다. 따라 흐르는 물이 가지는 풍부한 내포는 시간의 흐름에 국한되어 있지 않다. 흐르는 물이 가지는 풍부한 내포에 기댐으로써 하루의 고단한 노동을 되돌아 보는 성찰의 순간과 연장을 씻듯이 노동의 삶에 깃들인 슬픔도 씻어내는 정화의 순간을 가질 수 있다.

시의 화자가 노동의 피로와 슬픔을 씻어내며 바라보는 흐르는 물은 풍부한 상징적 의미를 지고 있다. 강은 고단한 하루를 씻어줄 뿐 아니라 의연한 깊이를 보여줌으로써 세상살이에 지친 시적 화자에게 위안을 준다. 고작 쭈그려 앉아 담배나 피우다 돌아갈 뿐인 시의 화자에 비해 강으로 대표되는 자연은 우리가 일상 삶에서 간파해 버린 지혜를 담고 있다. 저물고 저물어 어둠이 깊어 가면 비록 썩은 물일지라도 캄캄한 세상을 밝히는 빛을 담아낼 수 있다. 인간에 의해 썩어 가는 강에 비친 달에서 노동의 피로와 우울한 심정을 위로 받을 수 있는 것이다. 달이 저문 강을 비추고 다시 돌아가 듯이 그는 강을 떠나 빈한한 인간의 마을로 되돌아가야 한다. 삶이란 사실상 끊임없는 순환과 반복의 과정 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시대와 비슷한 주제의 작품으로 진정한 자유와 해방에 대한 간절한 소망을 그린 김지하의 「푸른옷」과 같은 시인의 민주주의에 대한 갈망이 담겨져 있는 「타는 몸마름」으로, 소외당한 삶에 대한 분노와 절망이 나타난 신경림의 「농무」와 떠돌이 삶의 애환을 그린 「목계장터」, 삶에 대한 긍정과 죽음을 초월한 천상병의 「귀천」, 공동체에 대한 자기 희생의 정신을 나타낸 이성무의 「벼」, 국토애,새 역사에 대한 갈망을 그린 조태일의 「국토」, 마지막으로 삶과 죽음을 통해 깨닫는 경건함을 볼 수 있는 고은의 「문의 마을에 가서」등이 있다.

이 시들은 모두 산업화, 근대화가 본격화된 1970년대 시들로써 산업화에 따른 현실의 분계점과 소외 계층에 관심을 집중한 참여적 시들이다. 1970년대 초반. 유신의 선포로 정치적, 사회적인 자유가 억압당하게 되자, 문학적 욕구 충족의 도구이자 동시에 억압된 사회적 욕구 표현의 도구로써 문학은 사람들의 억압된 자유를 표현했다. 사람들은 문학 속에서 억압된 자유를 찾고자 했고 이런 이유가 우리 시대적 상황에서 70년대 이야기를 요구하고 소비하게 만든 배경으로 작용했다.

무허가 판자촌의 고달픈 삶이 소설의 주요한 주제로 등장하고 노동의 현장에서 노동조건의 개선과 임금의 인상을 요구하는 투쟁의 삶이 현실로서 제기되기 시작한다. 이것은 현실에 보다 밀착된 문학을 하지 않으면 문학은 산업화의 현실 앞에 무력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현실에 대한 문학의 응전은 구체적이지 않으면 안되었다. 문학은 경험의 모순을 문학적으로 구조할 수 있는 힘을 길러나가야 했다. 어떤 방식으로든 70년대 문학이 리얼리즘 문제와 대면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은 이러한 이유에서이다. 그리고 이때의 리얼리즘은 단순히 이념의 차원이 아니라 타락한 사회 속에서의 개인의 슬픔과 고뇌에 관한 문학적 형상화의 문제로 귀착될 수밖에 없었다.

이희승 역시 이러한 저항문화의 한 중심에 있었고 저문강에 삽을씻고 라는 시집은 그의 저항적이고 민중적인 생각들이 가득 반영되어 암울했던 당시의 시대상황에서의 작가자신의 날카로운 현실의식이 뚜렸히 나타난다. 억압받는 사람들의 슬픔이 어느땐가는 밝은 웃음으로 꽃필 것임을 작가가 믿고 있듯이 나역시 IMF시대에서 벗어나 우리의 민중들이 활짝 웃게 될날이 오리라 믿는다.

[인상깊은구절]
뿌리가 뽑혀 하늘로 뻗었어라
낮말은 쥐가 듣고 밤말은 새가 들으니
입이 열이라서 할 말이 많구나
듣거라 세상에 원
한 달에 한 번은 꼭 조국을 위해
누이는 피 흘려 철야 작업을 하고
날만 새면 눈앞이 캄캄해서
쌍심지 돋우고 공장문을 나섰더라
너무 배불러 음식을 보면 회가 먼저 동하니
남이 입으로 먹는 것을 눈으로 삼켰어라
대낮에 코를 버히니
슬프면 웃고 기뻐 울었더라
얼굴이 없어 잠도 없고
빵만으론 살 수 없어 쌀을 훔쳤더라
물구나무서서 세상을 보고
멀리 고향 바라 울었더라
못 살고 떠나온 논바닥에
새상에 원
아버지는 한평생 허공에 매달려
수염만 허옇게 내렸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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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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