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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kheat
- 작성일
- 2001.3.31
여학생의 친구
- 글쓴이
- 유미리 저
열림원
유미리의 소설을 읽을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일단 유미리의 소설은 신선하다. 유미리의 소설을 읽고 있으면 미처 아무도 지나가지 않은 산속의 길을 걷는 기분이 든다. '여학생의 친구'는 원조교제를 다룬 소설이다. 이미 암암리에 원조교제에 대한 온갖 낭설이 번져있으면서도 원조교제가 여전히 공론화되고 있지 않는 우리 사회의 현실을 감안해본다면 유미리의 소설은 신선함을 넘어선 충격의 전율을 선사한다.
유미리는 원조교제라는 다소 껄끄러운 소재를 정공법으로 다루면서도, 센세이셔널리즘에는 빠져들지 않는 놀라운 솜씨를 보여준다. 원조교제를 단순히 물신욕에 사로잡힌 여학생과 이상성욕을 가진 중년남성의 교제로 생각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당장 이 책을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소설은 전형적인 일본의 중산층 가정을 배경으로 하고있다. 겉으로는 평온해보이는 이 가정은 실은 일본사회가 당면한 고도자본주의사회의 모순을 고스란히 안고있다.
급속한 자본주의의 변화속에서 붕괴되는 가족, 소외당하는 노인 계층, 세대간의 단절등이 소설에서는 차분한 어조로 그려진다. 결국 가족과 사회속에서 가치를 상실한 소설속의 인물들은 소비와 섹스에 집착한다. 오랜 기간 체화된 소비주의는 끝없는 욕망의 충족을 요구하고 인물들은 소비하기 위해 섹스하고, 섹스를 하기 위해 소비한다. 겐이치로의 아들은 여고생과의 원조교제에 순순히 응하고, 여고생들에게 소비와 섹스는 일상의 한 부분이 되어버렸다. 여고생들에게 인간적인 시선을 보내는 겐이치로는 이미 퇴직자가 되어 무기력한 존재다.
자본주의와 섹스 사이에 존재하고 있는 팽팽한 긴장감을 여지없이 노출시키는 것이 이 소설의 최대강점이다. 이미 원조교제는 남의 나라 문제가 아니다. 고도자본주의사회로 진입하고 있는 한국사회의 은밀한 치부를 미리 보고있는 것 같아 읽는 동안 오싹해질 수 밖에 없는 소설이 바로 '여학생의 친구'다...
[인상깊은구절]
눈을 감고, 벤치에 등과 머리를 기댔다. 겐이치로는 눈두덩의 엷은 막 너머로 태양을 보고 있었다. 눈을 감고 있어도 빨간 반점이 퍼지면서 올라가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감은 눈 위로 눈물이 흘러 넘치는 것을 느끼고, 목구멍에서 터져 나오는 오열을 들었지만, 슬프지는 않았다. 자신의 감정으로부터도 배제당한 겐이치로는 이 세상과 자기를 잇는 마지막 문의 손잡이가 없어졌음을 느꼈다.
빛은 공원을 줌 아웃하듯, 겐이치로를 남겨두고 거리로 퍼져 나갔다.
유미리는 원조교제라는 다소 껄끄러운 소재를 정공법으로 다루면서도, 센세이셔널리즘에는 빠져들지 않는 놀라운 솜씨를 보여준다. 원조교제를 단순히 물신욕에 사로잡힌 여학생과 이상성욕을 가진 중년남성의 교제로 생각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당장 이 책을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소설은 전형적인 일본의 중산층 가정을 배경으로 하고있다. 겉으로는 평온해보이는 이 가정은 실은 일본사회가 당면한 고도자본주의사회의 모순을 고스란히 안고있다.
급속한 자본주의의 변화속에서 붕괴되는 가족, 소외당하는 노인 계층, 세대간의 단절등이 소설에서는 차분한 어조로 그려진다. 결국 가족과 사회속에서 가치를 상실한 소설속의 인물들은 소비와 섹스에 집착한다. 오랜 기간 체화된 소비주의는 끝없는 욕망의 충족을 요구하고 인물들은 소비하기 위해 섹스하고, 섹스를 하기 위해 소비한다. 겐이치로의 아들은 여고생과의 원조교제에 순순히 응하고, 여고생들에게 소비와 섹스는 일상의 한 부분이 되어버렸다. 여고생들에게 인간적인 시선을 보내는 겐이치로는 이미 퇴직자가 되어 무기력한 존재다.
자본주의와 섹스 사이에 존재하고 있는 팽팽한 긴장감을 여지없이 노출시키는 것이 이 소설의 최대강점이다. 이미 원조교제는 남의 나라 문제가 아니다. 고도자본주의사회로 진입하고 있는 한국사회의 은밀한 치부를 미리 보고있는 것 같아 읽는 동안 오싹해질 수 밖에 없는 소설이 바로 '여학생의 친구'다...
[인상깊은구절]
눈을 감고, 벤치에 등과 머리를 기댔다. 겐이치로는 눈두덩의 엷은 막 너머로 태양을 보고 있었다. 눈을 감고 있어도 빨간 반점이 퍼지면서 올라가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감은 눈 위로 눈물이 흘러 넘치는 것을 느끼고, 목구멍에서 터져 나오는 오열을 들었지만, 슬프지는 않았다. 자신의 감정으로부터도 배제당한 겐이치로는 이 세상과 자기를 잇는 마지막 문의 손잡이가 없어졌음을 느꼈다.
빛은 공원을 줌 아웃하듯, 겐이치로를 남겨두고 거리로 퍼져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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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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