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y Story

夏目漱石
- 공개여부
- 작성일
- 2011.9.15

16세기에 활동한 스페인 화가인 엘 그레코는 본명이 도메니코스 테오토코폴로스입니다.
태어난 곳이 그리스였는데, 스페인으로 와서 활동하려니까 사람들이 "너 그리스인처럼 생겼다" 해서 별명이 그레코(그리스인이라는 의미)가 되었다고 하네요.
어쨌든, 이 화가는 톨레로의 풍경화를 그렸는데, 사실 이 풍경화는 실제 풍경과는 다른 모습으로 그려졌습니다.
그리고 "왜 실제와 다른 풍경을 그렸느냐?" 라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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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돈후안타베라병원의 크기를 줄일 수 밖에 없다고 느꼈다.
그 병원이 비사그라의 정문을 가릴 뿐 아니라 그 병원의 돔이 도시의 스카이라인 위로 너무 높이 솟아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 병원의 크기를 줄이고 방향을 바꾸고 장소도 옮겼다.
나는 그 병원의 앞면을 보는 것이 다른 면들을 보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했다.
그 건물의 실제 위치는 지도에서 확인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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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우리는 올바른 저널리즘은 "대상을 가능한 객관적으로 전달함으로써 진실을 대중에게 널리 알리는 것" 이라고 생각하고, 주관이 들어간 기사는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실, 전달하는 사람의 주관이 들어가지 않는 것이 존재할까요?
무엇을 인지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갖고 있는 인지의 수단, 즉 시각, 촉각, 후각, 청각, 미각을 통해서 인지할 수 밖에 없고, 그 인지된 정보를 해석하고 판단하기 위해서는 개개인이 갖고 있는 기존의 지식을 통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모두가 똑같은 경험과 지식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닌 이상, 동일한 인지 정보로 부터 동일한 인식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지요.
그렇다면, 그레코의 이 자기 멋대로의 풍경은 정당한 것일까요?
그레코가 본 풍경이 내가 본 풍경과 다르다고 해서, 그를 탓할 수 있을까요?
아니면, 모든 사람이 각자의 주관을 갖고 있으니, 교감과 공감은 처음부터 불가능한 것이라고, 모든 사람을 관통하는 진리는 없다고 포기해야 할까요?
아니면, 황희 정승처럼, "그럴수도 있고, 아닐수도 있고 그렇지 뭐~" 라고 쿨하게 신경 쓰지 않아야 하는 것일까요?
이처럼, 모순된 상황에서 절대적인 공리가 없는 상황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선택은 그 모순된 선택지 중에서 하나를 고르고, 그 선택을 믿는 것이지요.
그렇지 않다면, 불확실이라는 미로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영원토록 헤매야 하니까요.
저에게는, 하나를 선택하고, 그것이 틀렸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맹목적인 믿음으로 외면하며 사는 것보다는 아무곳에도 도착하지 못한다고 해도, 그 자리를 맴돌뿐이라고 해도, 불확실성을 인정하고 미로를 평생 헤매는 삶이 더 좋아보입니다.
그러나, 그런 헤메이는 삶을 선택할 용기가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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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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