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사진
슈퍼작살
  1. 파워문화블로그
주간우수

이미지

도서명 표기
나의 한국현대사
글쓴이
유시민 저
돌베개
평균
별점9.2 (175)
슈퍼작살

#1

내가 태어나고 한 달이 지나 박정희 대통령이 김재규의 총에 죽었다. 나중에 어머니께 당시에 대해 여쭤본 일이 있었다. 어머니의 대답은 간단했다.

“너 키우느라 정신없었다.”

누군가에게는 박정희 대통령의 죽음이 하늘이 무너지는 일이었을 것이고, 누군가에게는 마침내 찾아온 해방이자 자유의 서막이었을 것이다. 태어난 지 정확하게 한 달이 된 내게 박정희 대통령의 죽음은 어떤 의미였을까? 뭐, 아무런 이유가 없었겠지. 태어난 지 한 달 된 갓난아기가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잖아.

 

#2

어머니가 나와 내 남동생을 기르던 그 시절에는 필름 카메라밖에 없었다. 컬러 사진을 출력해 두껍고 큰 앨범에 하나하나 끼워 넣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우리 집은 물론 친구 집 어디를 가도 장롱 위나 서랍장에 큰 앨범 몇 개쯤은 꼭 있던 시절이었다.

내가 5살 정도? 내 동생이 3살 정도 되는 시절 사진이 있는데, 당시 세 들어 살던 주택 옥상에서 찍은 사진이다. 까무잡잡한 피부에 뽀글뽀글 파마를 한 청년의 무릎에 내 동생이 앉아 있고 나는 그 청년 어깨를 타고 머리를 잡아당기며 사진을 찍었다. 그 청년은 둘째 외삼촌이다. 충북 단양에서 고등학교를 나와 경북 포항에 소재한 공장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내 부모님의 고향은 충북 단양이다. 경북 포항에 철강공단이 대규모로 들어서던 때, 철강공단의 모 기업에서 일하시던 아버지의 사촌매형의 소개로 물설고, 사람 선 포항에 정착하게 되었다. 당시만 해도 괜찮은 보수에 안정적인 일자리였기에 친가쪽 삼촌과 외가쪽 삼촌 두 분이 우리 집에서 함께 살며 공장에 다녔다. 본격적인 산업화가 시작되고 해안지역 도시에 대규모 공단이 들어서게 되면서, 저 멀리 충청북도의 청년들이 일자리를 찾아 경상북도 포항까지 오게 된 것이다. 휴가를 받아 고향에라도 가려면 포항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경주역까지 가는 버스를 타고 경주역에서 부산발 청량리행 비둘기호를 타고 단양역에 내려야 했다. 단양역에 도착하는 시간은 밤9시. 완행버스도 거의 없던 시기에 비싼 택시를 불러 타고 신작로와 비포장이 섞인 고향 앞마당까지 갔다고 한다.

 

#3

1988년 9월 17일, 당시 초등학교 3학년이던 나의 생일이었다. 생일이 다가오면 친한 친구나 초대하고 싶은 친구, 혹 좋아하는 이성친구가 있으면 초대장을 쓰기도 하고 직접 초대하기도 했다. 어머니가 정성껏 준비해주신 생일상을 받아 친구들을 맞이하면 손에 하나씩 선물을 사들고 와 생일파티를 하던 것이 당시 유행이었다. 1988년 9월 17일 내 생일을 평생 잊을 수 없는 것은, 내가 좋아하던 여자 아이가 내 생일파티에 와 준 것도 있지만, 88서울올림픽 개막식이 열렸기 때문이다. 한참 생일파티가 진행되고 있는데 TV에서는 자전거 바퀴 같은 것을 굴리고 있는 아이의 모습으로 가득 찼다. 올림픽이 열린다는 것이었다.

 

#4

1997년 겨울, 수능을 망친 나는 아연실색했다. 평소 성적보다 10점정도 올랐는데, 다른 아이들이 적게는 30점에서 100점이나 올랐다. 평소 모의고사보다 훨씬 쉽게 나온 수능시험 탓이었다. 나는 당연히 재수를 마음먹었다. 서울 고시원도 알아봤다. 그런데, 마침 그 해가 IMF가 터진 해였다. 나라 전체가 망한 것이다. 잘 나가던 기업이 줄줄이 망했다. 멀쩡하게 회사에 다니던 친구 아버지들이 하루아침에 실업자가 되었다. 친한 친구 집이 하던 치킨집도 갑자기 망했다. 20년 가까이 근속하며 열심히 일하신 아버지가 주식으로 엄청난 돈을 날렸다. 나라 전체가 망하니 주식은 종잇조각에 불과했다. 나는 재수를 할 수 없었다. 성적에 맞추어 대학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고, 생전 들어보지도 못했던 대학에 들어가게 되었다.

 

#5

2002년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되었다. 월드컵 4강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감격과 기쁨이었다. 내 손으로 뽑은 사람이 대통령이 되고, 그전 대통령과는 다른 사람이라 생각되었다. 사회와 국가가 완전히 바뀔 줄 알았다.

2009년 5월 노무현 대통령이 서거했다. 그와 같은 정치인, 대통령을 내 인생에서 다시 만날 수 없을 것이라는 자각을 하는 것이 마음 아프다.

 

#6

2011년 11월 아내와 결혼했다.

2014년 4월 새봄이를 낳았다.

 



“한국현대사는 이 두 세력의 분투와 경쟁의 기록이다.” (p.26)

“오늘 우리가 누리는 어느 것 하나도 하늘에서 거저 떨어지지 않았다. 청년들에게는 그 모든 것이 원래 거기 있었던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한국 경제의 50년 궤적을 몸으로 밀어왔던 사람들은 이런 것을 보면서 꿈을 꾸는 느낌을 받기도 한다.” (p.119)

 

나의 한국현대사를 돌아보았다. 재미있다. 유시민은 참 글을 잘 쓰는 양반이다. 쉽게 쓴다. 논리는 치밀하지만 명료하고 군더더기가 없다. 한국현대사를 특징짓는 그의 논리에 설득 당했다. 민주화세력과 산업화세력의 분투와 경쟁은 사실 지금도 진행형이다. 민주화세력이 정치권에 입문하면서 분투와 경쟁의 치열함이 무뎌지고 변절과 철새짓으로 피아식별이 모호해지기는 했지만 명확한 구분법이다. 집안에 대학 나온 어른이 거의 없는 내게 민주화세력은 낯설다. 아버지도, 친가와 외가의 삼촌들도 모두 산업화세력이었다. 몸 하나로 가족을 부양하고 평생 근속하며 기계처럼 일했다. 아버지와 삼촌들 모두 당시 민주화세력의 삶의 궤적과는 판이하게 다른 궤적을 만들며 살아오셨다. 나는 그분들을 비판할 수 없다. 매번 1번을 찍고 이명박과 박근혜 후보에게 투표를 했다는 것을 비난할 수 없다. 그것은 잘못된 것이 아니다. 유시민의 표현대로 급속도로 산업화하며 경제발전을 이룬 가장 밑바닥에 내 아버지와 삼촌들이 있었다. 내 고모들이 있었다.

 


“노동자들은 잠을 쫓기 위해 ‘타이밍’이라는 이름의 알약을 먹으면서 철야 작업을 했고 공장 관리자들은 옷핀으로 팔을 찔러 피로에 지쳐 조는 여성 노동자를 깨웠다.” (p.139)

 

지금 이런 얘기하면 꼰대 소리듣기 딱 좋다. 무슨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 이야기 하냐고 할지도 모르겠다. 나도 들어보지 못한 이야기다. 책에서 읽고 알게 된 사실이다. 나도 직장생활을 하는 생활인이 되고 나서야 옷핀으로 찔려가며, ‘타이밍’이라는 알약을 먹으며 비인간적인 노동을 해온 여성 노동자들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되었다. 그리고 3교대라는 지옥 같은 근무형태로 집채만 한 기계들 틈바구니에서 일해오신 아버지를 아주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되었다.

 


“외환위기 이후 현재까지 시장소득 분배는 지속적으로 악화되어왔다. 정부가 조세와 복지지출을 통해 가처분소득 격차를 줄이려고 노력했지만 시장소득 분배의 급격한 악화를 상쇄하기에는 부족했다.” (p.166)

 

IMF이후 2014년 현재의 한국경제를 이렇게 쉽고 간단하게 설명하는 글을 보지 못했다. 정치적 민주화가 설익게나마 발전하면서 사람들의 의식도 성장하고 성숙했다. ‘나라는 발전하는데, 소득규모는 커지는데, 왜 이렇지?’라는 물음이 커졌다. 경제적 민주화는 아직 한국에서는 요원한 일이다. IMF이후 완전히 신자유주의 경제구조로 전환하면서 노동시장의 불균형은 고착화·심화되었다. 중산층은 무너지고 상위와 하위계층의 소득규모는 하늘과 땅차이로 벌어지게 되었다. IMF를 어느 정도 벗어나게 되면서 김대중과 노무현 정부에서는 공적연금과 사회보장제도에 대한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 애를 썼다. 정치권력을 제외한 거의 모든 국가의 권력을 가져오지 못한 탓에(언론마저도) 거의 모든 시도가 수포로 돌아가게 되었지만, 노력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시장소득 분배의 급격한 악화’를 상쇄하기에는 턱없이 모자랐다. 정치권력은 물론 경제·언론권력까지 합심해 노력해도 될까 말까 한 시도였다. 전쟁터에 나가며 단지 10발만 발사할 수 있는 총을 들고 나간 것과 다름없었다.

 


“1980년대 3저 호황과 고도 성장기를 거쳐 재벌이 막대한 자본을 축적하고 정치적으로도 민주화가 이루어지자 정부가 권력으로 기업을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재벌이 돈으로 정치권력을 관리하게 되었다.” (p.147)

“재벌이 새로운 지배계급으로 헌법 위에 군림하는 사태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은 국가권력을 통한 정치적·민주적 개입과 통제뿐이다. 나는 이것이 ‘경제민주화’의 핵심이라고 본다.” (p.151)

 

유시민은 책에서 이러한 시장소득 분배의 급격한 악화를 모두 재벌의 책임으로 돌리지 않지만 나는 재벌의 책임이라고 생각한다. 이미 1980년대 고도 성장기를 거치며 재벌은 대한민국의 초법적 존재가 되었다. 서초동의 기괴하고 아방가르드적인 삼성본사 건물은 보는 이에 따라 다르게 느껴지겠지만, 나는 그 건물을 보면서 지구를 정복하기 위해 착륙한 외계인의 함선 내지는 비행체로 보였다. 삼성을 비롯한 재벌은 거의 모든 경제를 주무르고 있다. 그래서 삼성이 망하면 나라가 망한다는 이상한 논리가 거의 모든 국민들의 의식을 지배하고 있다. 많은 젊은이가 삼성을 비판하지만 갖은 노력 끝에 삼성에 취업하게 되면 집안의 경사가 되는 이상한 사회다. 얼마 전 이슈가 되었던 서울의 싱크홀 중 하나가 삼성물산의 부실시공으로 인해 생긴 것이라는 뉴스를 접했다. 얼마나 부실했으면 도무지 자신의 범실이나 잘못을 인정한 적이 없는 괴물, 삼성이 잘못을 시인했는지 기가 막혔다. 일단 시인은 했지만 그 부실시공의 주체가 밝혀지고 책임자가 제대로 규명되어 처벌되는지는 지켜볼 일이지만 나는 비관적이다. 현장 공사 책임자 정도 선에서 처벌받는 것으로 흐지부지 끝날 것으로 확신한다. 이제껏 한국의 재벌이 그런 형태로 한국의 현대사를 아로 새겨왔기 때문이다. 갖은 불법과 비리, 횡령과 배임, 편법상속과 노동탄압 등이 일어나 9시 뉴스를 도배해도 며칠 뒤 재벌 오너가 휠체어를 타고 나와 검찰에 한두 번 출두하면 그만이다. 한국에서 가장 좋은 병원에서도 가장 좋은 특실에 묵으며 흐지부지 될 때까지 기다리면 그만이었다.

유시민은 ‘경제민주화’의 출발은 재벌에 대한 국가권력의 정치적·민주적 개입과 통제라고 진단한다. 나는 회의적이다. 재벌에 대한 국가권력의 힘이 약해도 한참 약한데, 국가권력이 재벌에 개입하고 재벌을 통제할 수 있을까? 나는 절대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이미 어찌할 도리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강한 힘을 가진 괴물이 된 재벌을 이제 와서 통제하고 개입한다는 것이 말이 안 된다. 그 어떤 한국의 재벌 오너와 오너의 가족들이 알아서 자신들의 잘못을 시인하고 제대로 된 조사를 받는다고 할까? 하늘이 두 쪽이 나지 않는 이상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전체주의 국가 또는 병영국가는 집중을 추구하는 권력의 본성을 극단까지 밀고 간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념의 통일성이다. 사상과 이념의 통일을 이루기 위해 ‘불온사상’과 ‘잡사상’을 ‘박멸’하며 확실한 ‘우리 편’이 아니면 모두 ‘적’으로 간주한다.” (p.367)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김영오씨의 단식은 사회적 이슈가 되었다. 병원에 실려 간 뒤, 김영오씨에 대한 악의적 댓글이 넘쳐나고 있다. 정말 치졸하고 비겁하며 악랄한 행위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한국에는 편 가르기가 당연시되고 있다. 나와 의견이 다르면 틀린 것이 되고 ‘적’이 된다. 합리적인 의심이나 궁금증을 할라치면 친노종북, 빨갱이가 된다.

지금의 재벌을 봐도 그렇고, 전체주의·병영국가의 모습을 미쳐 버리지 못한 저급한 상황을 볼 때, 앞으로의 “나의 한국현대사”가 긍정적이라기보다는 부정적이고 회의적일 거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단지 권력의 주체가 바뀐다고 해서 단번에 해결될 문제가 아니기에 그렇다. 여전히 북한과는 휴전 상태이고, 대치 상태이다. 언제든 전쟁은 일어날 수 있다. 내 딸아이의 미래가 지금보다 더 나아지리라는 확신이 없는 상태다. ‘정말 여기서 양육하고 교육해야 하나?’라는 물음이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온다. 비슷한 연령대의 부모들을 만나면 하는 얘기가 거의 이런 것이다. 상황이 되고, 혹시 여건이 안 되더라도 아이를 외국에서 교육시키고 싶다는 이야기. 이민을 가고 싶다는 이야기 등.

 


“민주적 제도가 있다고 해서 민주주의가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에 맞는 생각을 하고 그에 맞는 행동을 해야 성숙한 민주사회로 나아갈 수 있다.” (p.260)

“각자의 욕망과 신념과 이기심이 아니라 타인에 대한 연민, 교감, 공감을 바탕으로 상호이해와 협력을 이루어야만 이 과제를 해낼 수 있다.” (p.416)

 

타인에 대한 연민과 교감과 공감이 바탕이 된 사회가 아니다. 그런 사회라면 이렇게 세월호 유가족을 향해 망발을 일삼고 유언비어를 퍼뜨리는 인간들은 없을 것이다. 곪을 대로 곪고 병들대로 병들어서 어디서부터 어떻게 치료해 나가야 할지조차 가늠할 수 없다. 그저 지금보다 더 나빠지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이제 겨우 전반전을 마친 “나의 한국현대사”의 후반전이 어떻게 기록될지 자못 궁금하지만, 큰 기대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 비극이다.

좋아요
댓글
6
작성일
2023.04.26

댓글 6

  1. 대표사진

    슈퍼작살

    작성일
    2014. 9. 6.

    @활자중독

  2. 대표사진

    waterelf

    작성일
    2014. 9. 2.

  3. 대표사진

    슈퍼작살

    작성일
    2014. 9. 6.

    @waterelf

  4. 대표사진

    짱가

    작성일
    2015. 4. 28.

  5. 대표사진

    tpfeps00

    작성일
    2019. 5. 17.

슈퍼작살님의 최신글

  1. 작성일
    2023.9.21

    좋아요
    댓글
    0
    작성일
    2023.9.21
    첨부된 사진
    20
  2. 작성일
    2023.9.15

    좋아요
    댓글
    0
    작성일
    2023.9.15
    첨부된 사진
    20
  3. 작성일
    2023.9.15

    좋아요
    댓글
    0
    작성일
    2023.9.15
    첨부된 사진
    20

사락 인기글

  1. 별명
    리뷰어클럽공식계정
    작성일
    2025.5.13
    좋아요
    댓글
    198
    작성일
    2025.5.13
    첨부된 사진
    첨부된 사진
    20
  2. 별명
    리뷰어클럽공식계정
    작성일
    2025.5.14
    좋아요
    댓글
    164
    작성일
    2025.5.14
    첨부된 사진
    첨부된 사진
    20
  3. 별명
    리뷰어클럽공식계정
    작성일
    2025.5.15
    좋아요
    댓글
    130
    작성일
    2025.5.15
    첨부된 사진
    첨부된 사진
    20
예스이십사 ㈜
사업자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