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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ndoni
- 작성일
- 2019.5.15
육아 말고 뭐라도
- 글쓴이
- 김혜송,이다랑,원혜성,김미애,김성,양효진 공저
세종서적

육아와 살림을 하며 집에만 있을 수 없다는,
나를 찾고 싶다는 엄마들의 외침이 들리는 듯 했다.
그래서 얼마 안되는 경력이나마,
별 것 아닌 재능이나마 챙겨서
집 밖으로, 세상으로 나아가는
엄마들의 좌충우돌 이야기겠거니 생각했다.
(표지 아래의
'이제는 엄마가 주도하는 창업이 트렌드다!
구글 스타트업 캠퍼스 강력 추천' 이라는
작은 문구를 미처 보지 못했던 것)
하지만 표지를 열어,
목차를 보니,
내가 생각했던 내용이 아니었다.
육아만 하던 엄마들 맞나 싶게,
책 속의 엄마들 이름 뒤에는
스타일앳홈 대표, 율립 대표,
아트상회 대표, 코코아그룹, 뻬통 대표,
베베템 대표 등
대표 직함이 붙어 있었고,
내가 익히 잘 알고 있는,
그로잉맘 대표의 이야기도 실려 있었다.
그제서야 표지를 다시 한 번 보고는,
내가 처음에 놓쳤던 작은 문구 두 줄을 읽고야 말았다.
사업자 등록만 하면,
1인회사일지라도 '대표'라는 직함을 붙일 수 있음은 잘 알고 있지만,
목차를 통해 본 그녀들의 이야기는
단순히 그런 수준을 훨씬 뛰어넘은 것 같아서,
처음부터 기가 팍 - 죽은 채로,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다.

10년 넘게 인테리어 회사에서 근무하며,
공간기획자를 꿈꾸던 엄마는,
경력과 적성을 살려 홈스타일링 사이트를 오픈했고,
곧 오프라인 스튜디오도 오픈,
창업 1년만에 월매출 1500만원을 찍은 스타일앳홈 대표가 되었다.
딸과 뽀뽀를 맘껏 할 수 있는 천연립스틱을 꿈꾸던 엄마는
직접 립스틱을 만들어 텀블벅에 올린 크라우드펀딩을 통해
율립을 탄생시켰다.
그리고 번역가, 강연 매니지먼트 대표,
유아용품 수입쇼핑몰 대표로,
N잡러로 살아가고 있는 엄마 등등.
결과들만 보면,
화려한 경력들만 가지고 있을 것 같은 사람들이었는데,
사실은 다른 사람들이 그러하듯,
시행착오를 겪고, 실패를 겪었고,
그러한 과정들의 결과가 지금 나타나고 있는 것임을,
책을 통해 알 수 있었다.
다만 한 가지,
이 책 속의 엄마들은
일을 통해 자아실현을 하도록
태어난 사람들 같았다.
출산 후,
아이가 채 크기도 전에
경력단절을 두려워하며,
어떻게든 집 밖으로,
세상으로 나가기 위해
모든 역량을 집중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이 틀렸다는 얘기는 아니다.)
1년 전 쯤이었을까.
대학교 친구의 결혼식장에서,
오랜만에 만난 동기들과 얘기를 나누던 중,
나더러, "너는 아이 보고 살림하는게 너랑 맞는 것 같아?"
라고 물어봤던 친구가 있었다.
자기는 고등학생일 때는
대학생이 되면 전공 공부가 내게 맞겠지 생각했고,
대학생이 되었을 땐
직장인이 되면 일이 나랑 맞겠지 생각했는데,
직장인이 된 지금은,
집에서 살림을 하면 나랑 맞을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다고.
그 때, 나는,
"응. 나는 살림하고 육아하는게
나랑 맞는 것 같아." 하고 대답했다.
퇴근이 없는 육아에 매달리다보면,
문득, "나는 뭐하고 있나." 싶을 때가
없는건 아니지만,
한 아이를 한 사람의 인격체로 키워내는 과정이
마치 내게 주어진 과업인 것 같아서,
힘들지만 숭고한 마음으로
그 역할을 감당하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다.
물론,
여행을 좋아하고, 사진 찍기를 좋아하고,
글쓰기를 좋아해서
프리랜서 작가로 활동하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아직까지는 뿌리를 내리는 시기다 생각하며,
그저 주어진 일들을 묵묵히 해내며,
짬짬히 기회를 보는 중이다.
또한 캘리그라피 작가, 강사로도 활동중인데,
바쁜 시즌에는
당장 집안일이 뒤로 미뤄지고,
당장 루아 홈스쿨링이 미뤄지기도 하지만,
그래서,
언제나 일과 육아가 평행선을 유지하진 못하지만,
그래도 이정도면 잘하고 있다 토닥이며,
매일매일 조금씩 다리를 움직여
루아를 태운 내 인생이라는 자전거 앞바퀴를 굴리고 있다.
세상에는 단 한 아이도,
다른 아이와 같은 아이는 없다.
이처럼,
엄마도,
다른 엄마와 같은 엄마는
단 한 명도 없다.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가,
또 우리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의 특성상,
육아에 대한 부담과 책임을
아빠보다 엄마가 훠얼씬 많이 -
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엄마가 똑같은 지향점을 바라보고
나아갈 필요는 없다는 사실.
"엄마, 사범대 동창 중에
교단에 서신 분과 그렇지 못한 분의
차이가 뭐였어요?
"간단하지 뭐.
시엄마든 친정엄마든
애기 봐줄 사람이 있으면
교사를 할 수 있었고
아니면 못 했지."
이 책에 나오는 한 대목이다.
물론 그 당시엔,
교사에 대한 평판이
지금만큼 좋지 않았던 터라,
그닥 좋지도 않은 직업으로 돈을 버느니
차라리 집에서 살림하고 육아를 하는게
더 좋아보였을 것 같긴 하지만,
엄마가 일을 하기 위해서는,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사실.
지금이나 그때나 변치 않은 사실이다.
그래서 사실, 도와줄 사람이 없으면
일을 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도,
능력이 있어도 그러지 못할 수도 있다는 사실.
(나만 해도, 루아가 어린이집에 가는 동안에만
캘리그라피 강의 시간을 잡을 수 있고,
루아가 어린이집에 안가던 시절엔,
친정엄마가 우리동네까지 오셔서
루아를 봐주실 때에만 스케쥴을 잡을 수 있었다.
그마저도 여의치 않아,
들어오는 일도 하지 못할 때가 있다는.)
이 책 속 엄마들처럼,
당차게 세상으로 나가,
누가 봐도 대단한 일들을 척척 해내며
멋진 수퍼우먼으로 살고 있는 엄마들도 대단하지만,
날마다 집에서 아이를 보고,
제대로 씻지도 못한 얼굴로,
무릎 나온 바지를 입고
아기띠를 하고, 마트에 가서
이유식꺼리와 반찬거리 장을 보는 엄마들도,
모두 대단하다는 얘기를 하고 싶다.
그리고 이 책에 실린,
김수영 작가의 추천 글에 나와있는 말처럼,
엄마들이 '일시적인 현재 상태'를
마치 자신의 '영구적인 정체성'으로 판단하는
오류를 범하지만 않는다면,
자신의 자리는 언제나 옮겨질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고,
현재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며
다음 스텝을 꿈꾸고 준비한다면,
그 일이 어떤 일이든,
어떤 자리이건,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음을 믿는다.
엄마로서,
일과 육아를 병행할 수 있는
창업을 준비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물론이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이 책 속 엄마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자신의 꿈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보고,
다음 스텝을 상상해볼 수 있도록,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부디,
모든 이 땅의 엄마들이
작은 생명을 하나의 인격체로 키워내는
숭고한 과업을 감당함과 동시에,
버지니아 울프의 말처럼,
자기만의 방을 가지는
또 하나의 멋진 개인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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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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