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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한 열정
글쓴이
아니 에르노 저
문학동네
평균
별점8.6 (152)
하우애

세월은 사람을 점점 무디게 만든다. 새로움은 점차 사라지고, 호기심도 줄어든다. 모험심이 발동할만큼 다른 일에 도전할 의욕이 남아 있지 않아 그런 것 같다. 나이가 들어 어른의 삶이라 여겼던 일상의 틀에 자리를 잡으면 익숙한 일들이 반복되고 무심한 삶을 이어가는 순간이 온다. 편안하다기 보다는 힘들어도 버티는 일상이다. 의미있는 삶을 살고 있는지 여부를 따질 여유도 없다. 그저 살아지는 대로 살게 된다. 몸이 익숙해진 일상에, 생각까지 붙들린다. 이렇게 살아도 되나?란 질문은 가끔 자극이 있을 때만 떠올릴 뿐.



 



책을 읽거나 글을 쓸 때 아니면 일상을 뒤흔들 위기를 맞았을 때 가끔은 제 정신으로 돌아온다. 그때서야 일상을 살핀다. 그것도 아주 잠시일 때가 많고, 세밀하게 일상을 더듬는 일도 드물다. 사는 게 아니라 살아내고 있는 것이다. 그걸 느낄 때마다 결심한다. 내게 주어진 시간을 소중하게 여기자고, 순간을 살아내자고. 무심히 흘려보내는 시간과 순간들에 의미를 더해보자는 절박함을 가져보려 노력한다. 지금 당장 체감하기 힘들지만 우리 인간은 이 세상에 잠시 살다가는 존재란 사실을 반복해 떠올리면서 말이다.



 



그들은 말했다.



"넌 네가 사랑하는 그 사람 때문에 미친 거야."



나는 대답했다.



"미친 사람들만이 생의 맛을 알 수 있어."



 



에밀 아자르의 장편소설 <자기 앞의 생>을 펼쳤다가 바로 만난 말이다. '생의 맛'이란 말에 꽂혔다. 삶을 감각한다는 말이다. 제대로 느끼며 살아야 한다는 말로 새겼다. 살아있다는 느낌, 살고 있다는 느낌. 그게 없는 삶이 죽음과 어떤 차이가 있을까? 생의 맛이란 말을 떠올릴 때마다 살아있다는 느낌을 갖고 싶어진다. 다르게 살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생긴다. 정상이라 믿었던 틀에서 벗어나 삶의 다른 면을 경험해 보고 싶어진다. 미친 것 아니냐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강렬한 열정을 가지고 삶에 뛰어들고 싶어진다.



 



열정이란 단어는 쉽게 입에 오르내린다. 하지만 열정은 말이나 생각으로 끌어낼 수 있는 게 아니다. 삶을 깊숙하게 경험하고 싶은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특권 같은 것이다. 잠든 것처럼 무심하게 사는 사람이 아닌 깨어서 뭔가를 하고 싶은 사람의 것이다. 살아있는 것처럼 사는 방법, 그리고 삶을 더욱 성숙하게 하는 방법 중 하나가 '사랑'이란 사실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을 것 같다. <사랑할 시간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에서 장영희 교수는 충만한 삶에는 뚜렷한 참여의식이 필요하며, 삶에 대한 강렬한 참여의 하나로 짝사랑을 꼽았다. (155쪽)



 



저 여자들도 나처럼 머릿속에 한 남자를 끊임없이 생각하며 살고 있는지 아니면 예전에 내가 그랬던 것처럼 주말 약속이나 레스토랑에서의 식사, 헬스클럽의 미용체조 강습, 아이들의 성적표 따위나 기다리며 무의미하게 살아가고 있는지 궁금했다. 지금의 내겐 그런 종류의 모든 일들이 하찮고 무덤덤하게 느껴질 뿐이었다.(21쪽)



 



<단순한 열정>은 한때 한 남자를 끊임없이 생각하고 살았던 작가 자신의 일상을 기록한 책이다. 일방적인 사랑이 사람을 얼마나 지치고 힘들게 하는지, 얼마나 많은 생각을 떠올리게 하는지, 그로 인해 느끼는 아픔과 시련이 평범한 일상을 어떻게 바꾸어놓는지 간접적으로 경험하게 해준다. 집착에 가까운 사랑을 경험해본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을 것 같은 이야기들. 그리고 내게 무심한 사람을 향해 무한 애정을 느끼는 순간 삶이 어떻게 변할 수 있는지 엿보게 해준다.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에서 히스클리프가 경험했던 것.



 



나한테 그녀와 관련되지 않은 게 뭐가 있겠어? 무엇 하나 그녀를 떠올리지 않는 게 있어야 말이지. 바닥을 볼 때마다 깔린 돌 하나하나에서 그녀의 얼굴이 떠오르는 걸! 흘러가는 구름송이마다, 나무마다, 밤이면 들이쉬는 공기마다, 낮이면 눈에 보이는 온갖 물체 속에, 나는 그녀의 모습에 둘러싸여 지낸다니까! <폭풍의 언덕>, 492쪽, 더 클래식,

 



정신과 전문의 유은정씨는 <혼자 잘해주고 상처받지 마라>에서 사랑하면서 이루는 성장은, 우리가 일생 동안 이루는 성장과 거의 맞먹는 수준이라고 말한다. 더불어 사랑할 때만큼 자신에 대한 열정이 높아지는 때도 없으며, 사랑만큼 성장에 동기를 부여하는 감정도 없다(209쪽)고 말한다. 이 책 <단순한 열정>이 작가 자신의 고유한 개인사가 아니라 성숙한 삶을 향해 가는 과정으로 읽게 되는 이유다. 우리 삶을 깊숙하게 경험할 수 있는 길을 알려주고 있는 셈이다. 비록 그 길이 힘들고 아프기만 한 여정이라해도 말이다. 



 



그 사람이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인지 아닌지는 아무 의미가 없다. 그리고 지금은 그 모든 일들이 다른 여자가 겪은 일인 것처럼 생소하게 느껴지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 사람 덕분에 나는 남들과 나를 구분시켜주는 어떤 한계 가까이에, 어쩌면 그 한계를 뛰어넘는 곳까지 접근할 수 있었다.(66쪽)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 자기 안에 사랑이 충만한 사람이 진심 어린 사랑을 할 수 있다고 한다. 성숙한 사람이 성숙한 사랑을 할 수 있다는 얘기다. 우리가 성숙해지는 길, 성장하는 길은 온전한 사랑을 경험해 보는 것이 아닐까. 사랑은 아프고 힘든 과정이 함께 하기 때문 일 것이다. 우리는 고민하고 아파하면서 한뼘씩 성장해 간다. 시련이 주는 불편함을 피하면 경험할 수 없는 일이다. 무심하게 살면서 해낼 수 없는 일이다. 바쁘고 힘든 일상 때문에 그런 기회들을 외면한다면 제대로 살았다 말하기 힘들 것이다.



 



만일 지금 당신이 배우고 있지 않다면 당신은 이미 죽어가는 중이다. 모든 사람에게서, 그리고 모든 사물과 상황으로부터 끊임없이 배워야 한다. <에고라는 적>,147쪽 라이언 홀리데이 저.



 



우리는 배우기 위해 이 세상에 와 있다. 늘 떠올리려고 노력하는 말이다. 그래야 내가 만나는 모든 사람, 사물, 상황으로부터 배우겠다는 태도로 바꿀 수 있다. 모든 상황을 긍정적인 시각으로 보게 되고, 세밀하게 일상을 살피는 길이기도 하다. 나태주 시인의 시, <풀꽃>처럼, 자세히 보고, 오래 보면 모든 것이 예쁘고 사랑스러워질지 모른다. 사랑하게 되고 집착할 일도 생긴다. 이 모든 것이 배움의 과정이고 성장의 과정이라 믿는다면 빛이 없는 긴긴 터널 속에 있더라도 출구가 보일 때까지 버티는 힘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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