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의 독서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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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2.2.20
우리 모두 가끔은 미칠 때가 있지
- 글쓴이
- 정지음 저
빅피시
매일 아침, 일어날 때마다 관심을 두는 건 내 몸의 상태다. 기상 알람을 듣고 영차!하고 가뿐하게 일어나느냐, 1분만 더, 1분만 더! 이러며 몸을 일으키기 힘든 상태냐를 확인한다. 몸이 가벼울 때와 천근만근 무거울 때. 후자일 때 살짝 걱정을 한다. 하루가 피곤하겠구나. 아침 상태가 곧 하루 일과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스트레스 지수가 있다면 이것을 결정하는 척도가 몸이다. 몸이 가볍고 활기가 도는 날은 어지간한 자극에도 스트레스를 받지 않지만, 몸도 마음도 무거운 날은 아주 가벼운 자극에도 힘들어진다. 아침마다 내 몸 느끼기에 힘쓰는 이유다.
몸은 그날 하루를 좌우할 뿐 아니라 삶 자체를 좌지우지한다. 건강한 몸으로 사는 사람, 병약한 몸으로 사는 사람의 일상을 머릿속에 그려보면 알 수 있다. 어떤 몸으로 살고 싶니? 라고 나에게 선택권을 준다면 답은 정해져 있다. 김종국만큼은 아니라도 강한 근육을 가지고 싶고, 황대헌이나 최민정처럼은 아니라도 빠른 스피드로 날아다니는 몸이었으면 좋을 것 같다. 몸만 받쳐준다면 살면서 해낼 수 있는 일들이 무궁무진해진다. 몸이 가진 가능성이 우리가 느끼는 삶의 한계를 뛰어넘는 중요한 원천이 된다.
몸이 곧 삶이다. 몸이 없으면 삶도 없다. 간단한 논리지만 몸을, 입고 있는 옷처럼 여기지도 못하는 우리가 까맣게 잊고 있는 사실이다. 삶은 몸이기 때문에 삶에서 느끼는 고통은 우리 몸이 가진 한계 때문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내 몸 때문에 나는 아프고, 내 몸이 타인과 달라 아프고, 내 몸과 타인의 몸은 하나가 될 수 없어 아프다. 우리는 몸이라는 존재로 살아가야 할 운명이기 때문에 늘 아프고 힘들 수밖에 없고, 단지 정도가 약한 아픔, 이미 익숙한 아픔은 아픔이라 여기지 못하기 때문에 아프면서 살고 있다 감지하지 못할 뿐이다.
사람들은 아마 죽었다 깨어나도 서로를 이해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한다. 알지 못하니 가질 수도 없다. '나'와 '너', '우리'의 경계에서 빈손으로 헤맬 뿐이다. 이것을 영원히 채워지지지 않는 결핍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나는 끝없는 가능성이라 말하고 싶다. (008쪽)
각자의 몸 안에 자리한 영혼이 다른 몸 안에 사는 영혼을 이해할 방법은 없다. 몸은 나와 남을 실제 거리와는 엄청난 거리로 구분하는 경계다. 이런 몸의 한계는 절대로 공유할 수 없는 아픔을 안겨준다. 육체의 한계가 주는 고통이 가장 우리를 힘들게 한다는 사실. 그럼에도 우리는 다른 가능성을 꿈꾼다. 현실이 되기 힘든 가능성. 하나가 될 수 없는 존재가 하나가 되어보려고 발버둥친다. 그 발버둥을 멈출 수가 없다. 그렇게라도 불가능이 주는 허무함을 메우지 않으면 정말 죽을 것 같은 고통을 느낄 때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홀로 남어 버텨내는 그리움은 아름답지도, 심지어 순하지도 않더라. 나는 그리움이 사람을 쥐어 팬다고 생각해. 어떤 날엔 많이 맞고 어떨 땐 덜 맞는다는 차이가 있지만, 어쨌든 내 마음에는 멍이 사라질 날 없는 거야. (204-205쪽)
살아 있는 이를 향한 그리움과 세상을 떠난 이를 향한 그리움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살아 있는 이에게서 느끼는 거리가 몇 만 광년이나 떨어진 별의 거리처럼 느껴진다면 그 그리움에 차이가 있다고 할 수 있을지. 그래서 그대가 곁에 있어도 여전히 그리운 것이다. 심리적 거리는 물리적 거리와는 아무런 상관없다는 것을 그때 깨닫는다. 몸이라는 경계, 분리가 던져주는 풀 수 없는 과제를 안고 산다는 것도. 가슴에 멍이 들도록 아파하면서도 길을 찾을 수 없는 것이 각자의 몸으로 사는 우리의 운명인 셈이다.
'저 사람은 왜 저렇게 살까?' 내가 매일 하는 생각의 중심은 '저 사람', 즉 남이었다. 하지만 '삶이 내게 무엇을 알려주려고 저 사람을 보냈을까?라고 생각하면 다시 내가 주인공이 되었다. (072쪽)
내게 일어난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다. 그런데 그 이유를 내가 찾아야 한다. 이 일 때문에 왜 아픈 걸까? 저 사람 때문에 왜 힘들고 아플까? 중요한 것은 지금 당장 그 이유를 찾지 못할 때가 많다는 것, 시간이 지나고 그때의 상처가 아물고 나니 그게 내 몸의 세포를 강하게 만들고, 면역력을 높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는 것이다. 아픈 만큼 성숙해진다는 노래 가사를 자기 것으로 만드는 순간이다. 정지음 작가처럼 많이 아파본 사람, 아픔을 온몸으로 겪어본 사람의 이야기에 공감하며 읽게 되는 이유는, 우리도 늘 아프며 살기 때문일 것이다.
술과 연애에 대한 탐닉은 의외의 경로로 멎었는데, 나이를 조금 먹고 체력이 떨어지니 하고 싶어도 지속할 수가 없어졌다. 과거의 내가 남달리 날뛴 이유가 남달리 힘이 좋았기 때문이라니 민망하여 약간 웃음이 났다. (140쪽)
<우리 모두 가끔은 미칠 때가 있지>. '너도 아프고 힘들지?'라고 묻는 것 같은 제목이다. 독자가 가진 문제, 힘듦, 고통에 대한 해결책을 찾아주진 않지만 작가의 이야기에서 공감이 가는 부분을 만나면 상처에 연고를 바른 것 같이 통증이 덜어지는 느낌을 받는다. 사람과 관계를 고민하다보면 결국 내 문제로 돌아오게 되고, 내 몸과 마음을 구석구석 성찰하는 기회를 갖게 된다. 그러다 나도 몰랐던 내 몸이 원인이 된 비밀을 발굴하는 행운을 만나기도 한다. 내 결론은 그렇다. 몸이 전부다. 모든 문제는 몸이다. 이 몸으로 잘 살아내는 것이 이 생의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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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