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다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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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의 검열과 사랑이야기
글쓴이
샤리아르 만다니푸르 저/김이선 역
민음사
평균
별점7.3 (9)
일상다반사





 


우리가 보는 수많은 드라마, 영화, 사랑 이야기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의 사랑에는 언제나 훼방꾼이 등장하기 마련이다. 훼방꾼은 때로는 주인공의 연인을 질투하는 다른 누군가이기도 하고, 주인공들의 부모님과 가족이 되기도 한다. 혹은 주인공들 각자의 오해 때문에도 그들의 사랑에는 언제나 장애물이 등장한다. 그리고 이중 대부분의 이야기들은 주인공들이 이를 극복하고, 해피엔딩으로 막을 내린다.


 


 여기 장애물로 인해 사랑을 방해 받는 또 하나의 이야기가 있다. 그러나 여기에 등장하는 장애물은 사람이 아니다. 아니, 물론 ‘페트로비치’라는 인물이 등장하지만, 사실상 페트로비치라는 인물이 의미하는 ‘검열’과 이러한 ‘검열’이 존재하는 이란의 사회적 제도가 바로 주인공들의 사랑을 방해하는 장애물이다. 곧, <이란의 검열과 사랑 이야기>는 비단 주인공 다라와 사라의 이야기가 아닌, 이런 검열이 존재하는 사회적 제도 하의 이란에서 살아가는 남, 녀의 이야기이다.  


 


 


 


이란의 모든 사랑 이야기는 연인의 이별, 죽음의 웃음, 사탄의 조롱으로 끝이 났다.


(책 표지 중中)

 




 


 


이란에서는 남녀는 사랑하는 사이라 하더라도 손을 잡을 수 없고, 한 공간에 단 둘이 있을 수 없으며, 심지어 나란히 걸을 수도 없다. 여자는 히잡과 차도르를 써야하고, 남자는 긴 소매의 옷을 입어야만 한다.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 책 속의 사랑 이야기들은 불건전한 것으로 간주되어 대부분 검열되어 잘려나가기 일쑤고, 너무 많이 잘려나가 아예 새로운 이야기가 되어버리는 경우도 허다하다.  


 페트로비치의 검열로 인해 대부분의 사랑 이야기는 새드엔딩으로 끝을 맺게 되고, 이러한 상황 속에서 많은 작가들은 사랑 이야기를 쓰는 것을 포기하게 된다. 그러나 여기, 행복한 사랑 이야기를 쓰고 싶어 하는 한 작가가 있다. 그는 페트로비치의 눈을 피해 은유와 상징 등을 사용하며 다라와 사라의 사랑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써내려간다.


 


 


 


 


 


그리고 이 우주 속에서 처음으로, 그들의 눈이 만난다.



 작가인 나는 바로 이 지점에서 몇 가지 난관에 부닥친다. 십중팔구 이 지점에서 페트로비치의 엄정함이 강화될 것이고, 그는 즉시로 ‘그들의 눈이 만난다.’라는 부분에 줄을 그을 것이다. 나의 두 번째 문제는, 설혹 정치 시위 현장에서 몇 블록 떨어지지 않은 곳에 위치한, 더 이상 애정 영화를 상영하지 않는 영화관 폐허 앞이라 해도, 이란의 젊은 남녀가 인도 위에 아무 일도 아닌 듯이 서서 서로의 눈을 마주 볼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랬다간 사회 부패 방지 운동 순찰대가 출동하여 단박에 그들을 체포해 갈 것이다.


(p. 76)


 


 


나는 이렇게 쓸 것이다.


 말을 잃은 채, 두 쌍의 눈동자는 긴 침묵을 검게 물들였다.


(p. 78)





 


그러나 수많은 소설들을 난도질해 온 페트로비치의 눈을 쉽게 피해가기는 어렵다. 페트로비치는 여러 가지 의견을 제시하며 소설의 방향과 주인공들의 사랑 이야기를 바꾸어 놓으려 한다. 심지어 작가가 쓴 주인공들조차 작가의 손을 벗어나려 하고, 작가를 원망하는 지경에 까지 이른다. 책 속의 주인공들 역시 작가가 의도치 않은 행동들을 하며, 생각하지 못했던 방향으로 사랑 이야기를 전개시킨다.


 


 


 


 


 


“당신은 나를 이런 식으로 쓰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나를 이렇게 주눅 들고 한심하게 쓰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당신은 나를 지렁이와 다름없이 써 놓았습니다! 당신이 나를 그렇게 썼기 때문에 나는 그들이 내게 무슨 짓을 해도 꿈틀거리며 고통을 참는 것밖에 할 수 있는 일이 없습니다! 당신은 검열을 통과하기 위해 나를 이렇게 썼지만, 나는 두 동강을 내고 두 개의 지렁이로 변하고 마는 한갓 지렁이처럼 쓰이고 싶지 않습니다! 나를 그토록 비참하게 써냄으로써 당신은 나를 살해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당신은 나에게 그 모든 고통과 고난을 써 주었습니다! 나를 채찍질하여 신이 있다고 수긍하게 만드는 고문자와 다를 바가 없는 것입니다! 이제 나는 나 자신의 살인을 쓰겠습니다!”


(p.364)


 


 


 


이 책의 특이하고 재미있는 것은 진한 필체로 인쇄되어 있는 문장들을 통해 책 속의 작가가 쓰는 다라와 사라의 사랑 이야기를 볼 수 있음과 동시에, 작가가 직접 화자가 되어 두 사람의 이야기를 쓰는 과정을 직접 풀어 나가는 형식을 쓰고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우리는 한 편의 사랑 이야기와, 작가의 속마음과 뒷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것이다. 왜 이런 내용과 문장을 책에 쓸 수밖에 없었는지를 늘어놓는 작가의 변명을 통해 이란의 상황을 파악하고, 검열을 피하기 위해 줄을 그어 놓은 문장과 작가의 은유적, 상징적 표현들을 감상하느라 다라와 사라의 이야기보다 작가의 뒷이야기에 푹 빠질 수밖에 없었다. 사회적 제도에 대한 비판을 아주 특이하고 유머러스하게 풀어낸 책. 그러면서도 자유롭게 사랑을 하고, 사랑 이야기를 보고 읽을 수 있는 곳에 살고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게 했던 책이었다.


 


 


 


 


 


 


 


 


 


*


다라가 사라를 보고 저 아가씨야말로 자신이 사랑에 빠져야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 그날, 시라즈에서는, 내가 나 자신의 외로움을 발견하는 익숙한 발작에 괴로워하고 있었다. 때때로 나는 이와 같은 감정적인 발작에 시달린다. 특히 내가 행복할 때, 무언가를 성공시켰을 때, 그리고 내가 나 자신에게 만족스러운 그런 드문 순간, 그 즉시, 부드럽게 어루만지는 설움이 내 온 존재를 삼켜 버린다.


(p. 143)


 


 


사라는 미소를 짓고 다라의 발을 가리키며 묻는다.


 


“왜 이래요?”


“모르겠습니다. 내 발에게 물어보십시오.”


“목소리는 왜 떨려요?”


“내 심장에게 물어보십시오.”


 


이 문장과 함께 사라의 심장이 쿵쾅대기 시작한다. 다라가 묻는다.


 


“우리는 이제 무엇을 해야 합니까?”


“몰라요. 우리의 운명에게 물어봐요.”


“우리 운명은 어디에 있습니까?”


“몰라요, 우리의 숙명에게 물어봐요.”


 


다라는 생각한다. 나는 우리의 운명이 용기 없고 비참하고 검열 당한 작가의 손에 있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p. 163-164)


 



 


 


 


여기서 나는 한 가지 질문에 직면한다. 페트로비치라는 존재 때문에 우리 이란 작가들이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를 써낼 수 있으리란 기대를 품을 수 없는 것이라면, 사랑 이야기가 검열당하지 않는 나라에서는 왜 지난 몇십 년 동안 훌륭한 이야기들이 쉬이 나오지 않은 것인가. 오늘날의 세계는 작가들에게 더 이상 사랑 이야기를 위한 영감을 허락하지 않는 것일까?


(p. 253)


 


 


말해 보라, 사랑이야기에 연인이 다투는 장면이 나오지 않는 게 가능한가? 혹시 질투도 없고 오해도 없는 사랑을 본 적이 있는가? 그런 사랑을 알고 있다면 내게 알려 주기 바란다. 다서 그 사랑과 사랑에 빠져 그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싶다. 분명히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가 되고도 남을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그 이야기로 인해 한 개의 자살폭탄이 줄어들지도 모를 일이다.


(p.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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