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블17기 리뷰

해맑음이
- 작성일
- 2020.2.1
하나도 괜찮지 않습니다
- 글쓴이
- 오찬호 저
블랙피쉬
죄책감, 수치심을 느끼지 못하는 사회가 건강하지 않다는 것을 잘 안다.
모두가 'Yes'라고 말하는 상황 속에서 홀로 'No'라고 말하는 것이 튀는 행동이자 왕따 당하기
쉽다는 것을 우리는 너무 잘 알고 있다. 그래서 함부러 나대면 안 된다는 것을 암묵적으로 동의한다.
나름 마음으로 위로를 했는데도 공감능력 결여란 딱지를 붙이기도 한다.
아닌 것, 불편한 것에 대해 불만을 쏟고 불평을 하면 매사 부정적이란 사람이라고 간주한다.
긍정을 낙관해야하며, 잘못된 부분에 대해 한 개인의 실수로 치부해버린다.
겉으로 드러난 성과와 결과만이 데이터화되어 정작 사람은 소모품인 양 무시해버린다.
사회 곳곳에 외모와 학력/학연/지연/혈연 등 줄 세우기는 여전하다.
이익이 되는 것은 나에게로, 해로운 것은 다른데로 갔으면 좋겠다는 이기주의가 횡행하고.
우리 사회와 개인의 민낯과 매일 마주한다.
이런 일들이 당연한 듯 자리잡으니 이것이 부끄러운 일인지조차 알지 못한다.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걸까?
하나도 괜찮지 않은 사회 속에서 괜찮은 척 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 낯설지만 익숙한 정글에 들어온 느낌이다.
제대로 작동해야 될 우리네 감정이 지금 고장나있다.
쑤시고 아픈데 그에 맞는 응급처지를 해서라도 고쳐야하는데 계속 상처만 덧나고 있다.
개인의 문제만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고질적인 사회 병페들이 여기저기서 터지고 있다.
1월의 페미니즘 책 읽기 <하나도 괜찮지 않습니다>
늦지 않으려고 했는데, 생각을 모아모아 정리를 하니 2월이 시작되었다.
이때까지 읽었던 페미니즘 관련 책들과 다른 느낌이다.
이전의 책들이 성 역할에 대한 억압과 차별에 관한 이야기였다면 이 책은 우리 사회 체제와 개인의 행위에 대한
부끄러운 민낯들을 아주 상세하게 마주하게 된다. 우리사회를 뒤흔들었던 민감한 사안들부터 넓리 회자되지
않은 보통의 일들까지 온도 조절 기능을 상실한 사회를 날카롭게 진단을 하며 나름의 해법을 제시한다.
책을 읽으면서 새삼 '좋은게 좋다' 말이 얼마나 나쁜 말인지 깨달았다.
'좋은게 좋다'란 말은 우리 사회가 만들어낸 허상이었고, 그 허상 속에서 사는 사람들의 감정은 곪아서
통증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상태에까지 이르렀음을 알고나니 덜컥 두려운 마음이 생겼다.
좋은게 좋다면서 왜 내 감정은 하나도 좋지 않지? 타인의 생각에 함께 무작정 휩쓸려가는게 문제다.
'괜찮지 않다. 아프다. 불편하다' 말이 내 감정을 지키는 보루였다.
모르면 호갱(구)이/가 되고 말 한마디 못하니깐 은근 무시를 받고, 생각없는 사람이 되고 낙인 찍힌다.
아닌 것에 아니다 라고 말하는 사람이 용기있는 사람이 아니라 상식이 되었으면 좋겠다.
한 걸음만 떨어져서 보면 너무나 부끄러워 얼굴이 화들짝거리겠지만, 문화라는 오래된 습속에 길들여지면 원래의 길에서 한 걸음조차 옆으로 내딛기가 힘들다. 나아가 타인이 다른 방향으로 한 걸음만 옮기려는 것도 쉽사리 용납하지 않는다. 한국인들은 사람이라면 정말로 필요한 부끄러움을 자의적으로 해석하며 누군가를 상시적으로 아프게 한다. (113쪽)
한국인들의 민낯을 제대로 설명한 부분이 아닐까? 자기도 쉽게 변하지 않지만, 타인의 변화도 허락하지 않는
이상한 나라의 낯선 사람들이다. 정죄하는 것이 일상화된 사회, 하나도 괜찮지 않은데 말이다.
부끄러워해야 할 때 부끄러워하지 않는 사회는 비정상이다.
그 비정상이 오랫동안 정상인 양 그 자리에 있으면 문제로 느끼지 못하는데서 오는 씁쓸함이다.
한국 사회는 긍정 마인드를 남발해서 비판과 비난을 동의어로 생각한다고 수차례 말했다.
이런 사회의 특징이 부정적 감정을 금기시하는거다. 나처럼 사회문제를 따져 보는 사람이라면 '왜 그렇게
부정적으로만 생각하냐?'라는 비아냥거림을 듣지 않을 재간이 없다. 물론 스스로를 헐뜯는 자기혐오의 부정이 있다면 개선되어야 함이 마땅하다. 하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외부 상황을 객관적으로 인지하여 부당한 것에 대한 '정당한' 감정을 지니는 사람들이 밑도 끝도 없이 긍정부터 하라는 이들의 분위기에 눌려 부끄러움을 느껴야 하는 건 하나도 괜찮지 않은 사회의 대표적인 모습이다. (159쪽)
개인이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 다 할 수 있는 것처럼 포장된 이 세상, 그리고 개인이 아무리 마음 먹어도
평범한 삶조차 쉽사리 획득할 수 없는 현실이 존재한다는 모순은 수면 위로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말라'는 말이 필요 이상으로 많은 곳에서는.
정호승 시인의 詩 「나는 희망을 거절한다」의 한 구절,
희망만 있는 희망은 희망이 없다.
희망은 희망의 손을 먼저 잡는 것보다 절망의 손을 먼저 잡는 것이 중요하다.
책을 읽고 난 뒤 리뷰를 적는데, '먹먹하다, 공감한다'는 말을 리뷰때마다 적은 것 같다.
이제는 이 말들도 쉽게 못 적을 것 같다. 남의 감정을 내가 오롯이 느끼는건데,
남의 속을 내가 어떻게 다 알 수 있다는 말인가? 하지만 공감할 수 없다고 모른 척 할 수 있는 일도 아니다.
떳떳하고 부끄럽지 않은 삶이란 불가능한 것을 알면서도 조금이나마 공감의 간격을 좁히고자 끊임없이
노력하는 거라고 저자는 말한다.
공감의 시작은 자신이 타인의 상황에 쉽사리 공감할 수 없다는 것을 인지하는 것이다. 공감의 실천은
"나도 네 마음 안다"는 기만적인 사람이 되길 거부하고, 아픈 것도 서러운 사람에게 "어쩌다가 그랬어?"
라고 묻는 황당한 사람이 되지 않는거다. "내가 감히 너의 슬픔을 알순 없겠지만, 노력할게" 라고 말하면서
상대를 조금이라도 이해하려는 성찰적 사람이 되는게 중요하지, 입으로만 '공감'을 말하는 건 아무런 의미가
없다. (248쪽)
지금 우리나라 뿐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중국 우한에서 시작된 '신종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촉각을 곤두세우며
더이상 감염확산되지 않도록 비상체계에 돌입했다. 전세기를 띄워 우한교민을 안전하게 데려오고, 감염확산이
되지않도록 임시격리시설에 머물면서 정밀검사를 받는다. 격리시설 지정에 대해 지역주민의 반대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지금 힘겨운 사람은 우한교민일거란 연민이 마음이 들어서 그들도 닫혀진 마음의 빗장문을 열었을터. 기사 댓글에서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들이다. 이기적이다'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보였다.
그 말을 한 사람도, 임시격리에 반대하는 사람도 이해가 된다. 하지만,
살다보면 누구나 이런 상황에 처해질 수 있기에 포용과 배려, 이해가 필요한 부분이다. 서로가 노력을 하는거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따뜻한 위로로 화답해주었다. 회복되어 보고싶은 가족들 빨리 만나기를^^
한국 사회는 뜨거워야 할 때 뜨겁고, 차가워야 할 때 차가운 자가 온도 조절이 가능한 사회에 살고 있다.
이런 뿌듯함을 느끼는 요즘이다. 아직 미진한 부분들 많지만, 기본적으로 괜찮은 사람들이 더 많은 것 같다.
작가님이 염려하기에 읽기에 무겁지도 않은 책이다. 내가 살고 있는 이 땅에서 우리 사회의 민낯을 알지만
태클거는(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이 적어서, 아니면 듣고 싶은 소리만 들으려고 한 마음 상태가 문제이거나.
하여튼 문제인식을 진지하게 하지 못한 것 같다. 좋은 사회를 만들어야 내가 행복해진다는 것을 알지만,
그럼 나는, 우리는 무엇을 해야하는지부터 생각하게 되는 책이다.
내가 있는 곳에서 불편하고 부당함에 대해 목소리를 내기, <하나도 괜찮지 않습니다>
이런 목소리를 내니깐, 내가 더이상 주눅들지 않고 내 권리를 조금씩 찾게 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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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