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혜의 샘 ▶2020-101

해맑음이
- 작성일
- 2020.3.2
진짜 페미니스트는 없다
- 글쓴이
- 이라영 저
동녘
가짜 휘발유를 만들려면 물을 섞는다고 했다. 그런데 물을 많이 섞으면 차에 시동이 안 걸리니
진짜 휘발유를 물보다 더 많이 넣어야 된다고 우스갯 소리?로 말하는 것을 들었다.
진짜 같은 가짜, 진짜에 가깝게 그럴듯하게 만들어야 되겠지. 진짜에 버금가는 아류들로.
진짜에 가까운 가짜, 얼마나 많을까? 구별하기가 쉽지 않을 듯 하다.
그래서 '본가/명가/원조' 이런 말들이 접두사처럼 붙는다. 진짜 임을 각인시키기 위해서.
아무리 이런 단어들을 붙인다고해서 진짜일까?
하물며 페미니스트 책 읽기를 달마다 해왔는데, 2월은 <진짜 페미니스트는 없다>이다.
진짜를 표방하지만 이 진짜도 시간이 흘러 깊숙이 사회 속으로 들어가면 편견과 수없이 부딪히고
타협하게 되고 결국은 정치화되고 도구화의 이슈로 전락하게 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지속적인 연대와 목소리를 내어왔지만 페미니즘은 여전히 부정적인 인식의 토대 위에 있음을 느낀다.
가부장제 틀 속에서 오랫동안 지탱해왔던 억압과 편견들은 얼마나 공고한데.
처음보다 읽기는 수월해졌다. 하지만 글로 적는데 애를 먹는다. 읽고 이틀이 지났다.
<진짜 페미니스트는 없다> 책에서는 1장 '진짜'는 없다 편에서 책 제목과 자연스레 연결이 되는구나
하며 읽었다. 그러나, 2/3/4장에서는 생각과 다르게 여자의 몸에 대한 우리사회 시선이 이분법적으로
적나라하게 나눠져있음을 이야기한다. 차별과 폭력의 수단과 결과가 될 수 밖에 없는 이유,....
그래서 읽는 내내 답답했구나 싶다. 장소를 향한 폭력은 더 노골적으로 나타내고 있었다. 여자라서.
거기에 있으면 안 되었다는 이유같지 않은 이유. 남자였으면 달라졌을까? 그럴지도.
같은 공간인데, 다른 자리에 있는 아내와 여자들, 미친년도 있다.
상황에 따라 다른 이름으로 불리지만, 그렇게 보는 시선은 다르지 않다.
"페미니스트라고 불리는 순간은 당연한 권리를 요구했거나, 그저 내 생각을 말했을 때
페미니스트라 불렸다. 낙인의 의미로 페미니스트가 되기는 너무도 쉽지만
'진짜' 페미니스트는 너무도 숭고하여 셀 수 없이 많은 판관들의 인증을 거쳐야 한다."
페미니스트라 말한 적 없다. 그냥 예전에는 말하지 못했던 당연한 권리를 이제서야 요구했고,
예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잘못된 부분을 잘못됐다고 말했을 뿐인데, 사람들은 색안경을 끼고 쳐다본다.
'전에는 이런 사람 아니었는데'... 달라졌다고. 그들의 생각과는 다르게.
그리고 심중에 낙인을 찍고 부정적으로 생각한다. (곁눈질로) 페미니스트인가 보다.
왜 사람들은 바른 말, 옳은 말 하는데 불편해할까?
페미니스트의 의미를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오해를 하고 있는지 알게 된다.
바로 알면 페미니스트에 대해 낙인찍는 것 없이 그냥 자연스레 받아들일텐데..... 이런 점이 아쉽다.
그래서 진짜 페미니스트는 사람들의 인식의 변화없이는 당연히 없겠구나 생각이 든다.
'불편하지 않은 페미니스트라서 좋아요'
뭔가 평가를 받는 듯한 이 말 속에 우리 일상 속 페미니스트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잘 알 수 있다.
여성 문제에 있어서는 같은 여자들이라도 관대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저자는 '도대체 불편하지 않은 페미니스트는 뭘 하는 인간인가? 자문한다.
내가 아는 페미니즘에 대해 조곤조곤 이야기해주면 그들은 기꺼이 내 말에 귀를 기울인다.
그러나 이야기를 마칠 즈음 곧장 이런 반응을 보인다.
당신은 남성을 혐오하고 늘 화가 나 있는 '진짜' 페미니스트 같지 않다고. 당신은 다른 것 같다고 말이다.
이에 나는 나야말로 누구보다 진짜고 급진적인 페미니스트이며,
페미니즘을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덮어놓고 짐작했던 모습과는 다를 것이라고 힘주어 말한다.
불편하지 않은 페미니스트를 선호하는 이들은 사회 개혁보다는 페미니스트 재교육에 관심이 많다.
페미니스트 감별사가 되어 페미니스트를 얌전하게 길들이려 한다.
진정한 페미니스트 또는 선량한 시민임을 증명하도록 강요받지만, 증명한다고 이해받느냐 하면
그렇지도 않다. 이해는 불공정하게 돌아간다.
이유야 어떻든 '진짜와 가짜' 페미니스트 논쟁은 소모적이라 생각한다.
늘 강요받고, 이해받지도 않는 불안정한 위치이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지금은 제 위치에서
페미니즘에 대해 다양한 목소리를 내야한다. 진짜는 없더라도 페미니스트가 불편하지 않다면....
그건 정체성의 문제라고 생각된다. 다시 페미니즘에 대해 숙고의 시간을 가져야 될 듯 하다.
페미니스트는 탄생할 때마다 밟히기 때문에 매번 새로 태어난다.
언제나 진정한 페미니스트는 죽은 페미니스트다.
그래서 <진짜 페미니스트는 없다> 인가보다.
언제 어디서나 누구나가 새로운 목소리를 내야 하기 때문에.
그 목소리가 밟혀지지만 묻혀지고 사라지지 않을 때까지 계속.........
용기있는 사람이 세상을 조금씩 천천히 변화시킬 수 있음을 느끼는 요즘이다.
전통적인 페미니즘도 여러 부침의 시간들이 있었지만 그렇게해서 지금까지 이어져왔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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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