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블10기 리뷰

해맑음이
- 작성일
- 2016.8.19
가끔은 격하게 외로워야 한다
- 글쓴이
- 김정운 저
21세기북스
제목만 들으면 야릇?하며 존재감 쩌는 그 유명한 책『남자의 물건』을 읽어보지 못했다.
독일에서 문화심리학 박사 학위를 받은 교수 김정운이 남자들의 소장 '물건' 을 소재로 한 이야기를 쓴
책이라고 한다. 사회적으로 꽤 유명한 남자들이 아끼는 물건이 무엇인지를 찾고 그에 얽힌 비하인드
스토리를 엮어가는 책이라고 하니 사뭇 궁금하다. 그 궁금한 책 대신 '김정운'이란 저자를 잘 드러내는
'문화심리학'이란 용어가 머릿속에 각인된다.
개인을 에워싼 문화 환경이나 언어, 예술, 종교 등의 문화 영역과 개인 심리의 관계를 연구하는 심리학의
한 분야라고 말하는데 21세기 지금 사회에 딱 들어맞는 심리학이 아닐까싶다.
생소했지만 저자가 쓴 <가끔은 격하게 외로워야 한다>를 통해 문화심리학이 우리네 삶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음을 느꼈다. 저자의 말본새가 시크하고 도도하면서도 밉지 않다.
책 읽으면서 ㅋㅋㅋ 참 오랫만에 웃어본다. 예사롭지 않은 참 독특한 분이다.
남과 다르게 좀 멋지게 사는 분 같다는 느낌도 들었다.
정년이 보장된 교수직을 버리고 돌연 일본으로 건너가 오랜 꿈이었던 그림을 배우고 그리고, 글 쓰기
활동에 몰입한다고 선언했다. 그 시간들이 여기 이 책 <가끔은 격하게 외로워야 한다>에 담겨있다.
바쁘게 살아왔던 틀 속에서 자아는 점점 잃어버리고, 잊어버리고 놓치는 시간들은 더 많았다.
자발적인 외로움을 선택해서 관계란 틀 속에서 조금 멀찍이 물러났다. 그렇다고 '도피'는 더욱 아니다.
결국 인간은 어딜 가든, 무엇을 하든 외롭기는 마찬가지다.
그 외로움을 자신만의 방법으로 즐길 수 있다면 바쁘고 팍팍한 삶이 좀 유연하지 않을까 싶다.
저자가 그린 그림들은 낯설다. 하지만 어렵지 않다. 그가 말하는 '문화심리학'에 고스란히 들어가있다.
이해하기 쉽게 용어들도 잘 정리되어져있다. 머릿속에 쏙쏙 들어온다.
재밌고 자극적인 것들을 잘 받아들이는 뇌인데, 상식과 지식을 공짜로 얻어가는 느낌이 든다.
그렇다고 마냥 학구적인 스타일의 깊이가 느껴지는 책도 아니다.
저자와 친밀한 사이인 사람들과의 음담패설?과 센스가 돋보이는 말들은 오히려 정신건강에 더 도움되는 듯 하다^^ (킥킥킥)~~~웃음 유발자들이다. 시크한 도시 남자의 속 깊은 배려가 느껴진다.
격하게 외롭지만 자신이 쓴 책을 통해 독자와 소통하려는 마음이 엿보여 더 재밌게 흥미롭게 읽었다.
지난 추석에도 우리 엄마는 진지하게 또 그랬다.
'너 진짜 겸손해야 하다'
이유는 매번 분명하다.
'넌 생긴 것 자체가 남들에게 열등감을 느끼게 해서 그래!'
아내는 웃음을 참지 못해
결국 돌아앉는다.
.........
그래서
세상의 모든 자식에게는
엄마가 있는거다.
적어도 자식의 마구 끓어오르는? 열정을 잠 재울 사람은 역시 엄마다.
엄마가 한 수 위였다. 끼와 에너지, 당돌한 솔직함을 저자는 엄마에게서 물려받았나보다.
이 부분을 읽고 어제 늦은 그 고요한 밤에 혼자 얼마나 미친듯이 웃었는지..... 헉.....^^
그러고보니 저자의 이유있는 외도?가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평범한 우리네에겐 이리 재고 저리 재어도 절대 답이 나오지 않는 일이다.
그래 용기도 베짱도 없다. 우린 하루 하루 살아가는 소시민들이니깐.
늦게나마 시작하게 된 '그림'이 저자의 삶에 터닝포인트였나보다.
그림을 통해 사유를 하게 되었고, 일상과 마주했다.
바쁜 일상이 아닌 오롯이 몰입의 시간.
자신이 배우고 그린 그림을 통해 시대의 문화 코드를 읽고, 그 문화 속에 잠재된 개개인의 내면을
들여다본다.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이었다. 공허함을 외로움으로 견뎌낸것이다.
타인의 외로운 삶을 들여다보는 것은 유쾌하지만은 않다. 격하게 공감하니깐.....
'전자책이 나오면서 종이책의 미래를 걱정한다. 그러나 종이책은 사라지지 않는다.
사람들은 중요한 것에는 '침'을 바르기 때문이다. 돈, 사랑하는 사람 등등.
종이책이 전자책보다 좋은 이유는 침을 바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식의 아재개그는 쌍수 들고 격하게 환영할 수 있다.
돈, 사랑하는 사람, 종이책... 침을 바를 수 있기 때문에 좋아하지 않을 수 없다.
참 명쾌한 결론이다. 많이 웃었다. 나란 사람, 본래 웃음이 헤픈 사람은 아닌데.......
세로로 쓰인 일어 책을 읽으면
참 착해진다.
고개를 쉴새없이
끄덕여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이제까지 끊임없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살아왔다.
그래서 참 많이 힘들었다.
엄마 말씀처럼 철 든, 겸손한 아재의 모습이다.
뻣뻣하고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올 것 같지 않은 아재 같았는데,
외로움도, 홀로 견뎌내야하는 힘겨움도 이래저래 삶을 알아가는 연습인가보다.
가장 아름다운 단어를 꼽으라면 세계 어느 나라에서나 두 단어는 꼭 포함된다.
'어머니'와 '그리움'이다.
특히 그리움은 예술적 영감의 원천이 된다. 그래서 그리움을 주제로 한 문학이나 음악이 그렇게
많은거다. 독일 가곡에서 직간접적으로 그리움과 관련된 노래를 빼면 부를 노래가 그리 많지 않다. 우리말에서 '그리움'은 세계 그 어떤 단어보다 아름다운 말이다.
'그리움'은 그림(畵), 글(書)과 어원이 같다. 모두 '긁다'라는 동사에서 유래된 말이다.
긁는다는 것이 뾰족한 도구로 대상에 그 흔적을 새기는 행위라고 할 때, 활자의 형태로 긁는 것은 '글'로, 선이나 색을 화폭 위에 긁는 것은 '그림'이라는 말로 변형되었다고 볼 수 있다.
어떤 생각이나 이미지를 마음 속에 긁는 것은 '그리움'이 된다.
참으로 기막히게 아름다운 단어다.
파생된 언어들의 절묘한 조합이 좋아서 이 구절이 자꾸 내 마음속에 남는다.
글, 그림, 그리움 ..... 그리고 이 말들을 아우르는 '외로움'
외로우니깐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그 행위들은 모두 삶의 그리움이란 소재를 사용한다.
이 책을 읽으니 진정 자기만의 골방이 필요함을 느낀다.
그 골방에는 타인과 공유할 수 없는 자기만의 보물이 있다.
숨어 들어가기도 쉽고, 홀로 이겨내기도 쉬운 방이다.
'외로움'과 늘 동행할 수 있는 이유가 된다.
참 마음에 드는 책이다. 이 아재, 괜찮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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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