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Lucianne
- 작성일
- 2009.11.24
브레이브하트
- 감독
- 멜 깁슨
- 제작 / 장르
- 미국
- 개봉일
- 1995년 6월 17일

↗"Braveheart" The Movie
영화 ‘브레이브하트(Braveheart)’는 에드워드 1세 재위 시절 스코틀랜드에서 일어났던 반란을 소재로 하고 있다. 줄거리는 매우 간단하다. 주인공인 윌리엄 월레스(William Wallace)는 가족을 잉글랜드인의 손에 잃고, 아내마저 잔인하게 살해당한 이후 잉글랜드에 저항한다. 스코틀랜드의 반군의 수장으로 수많은 전투를 승리로 이끈 그는 끝내는 스코틀랜드 귀족들의 변절로 붙잡혀 처형당하지만, 그의 의지를 잇는 이들이 저항을 계속해 결국 독립을 얻어낸다는 이야기이다.
내용이 이렇다보니 영화의 절반 이상은 피 튀기는 전투장면이었다. 처음에는 그 잔혹함에 거부감부터 느꼈지만, 영화를 보며 나는 점차 스코틀랜드 전사들에게 동화되었다. 스코틀랜드 귀족들의 비겁함에 분노하고 아들 로버트 브루스(Robert the Bruce, 후의 스코틀랜드 왕 로버트 1세 브루스)의 자책에 안타까워했으며, 고문당한 월레스가 자유(Freedom)를 외치는 마지막 장면에서는 거의 눈물까지 흘렸다. 이들의 이야기는 많은 부분에서 우리나라의 역사를 생각나게 했고, 생생한 영상으로 보는 만큼 영화의 메시지는 강렬하게 와닿았다.
그러나 며칠 뒤, 영화 감상을 쓰기 위해 모니터 앞에 앉았을 때 갑자기 의문이 들었다. 과연 ‘브레이브하트’에 나오는 이야기는 모두 진실일까? 지나치게 과장하거나 왜곡된 면이 없을까?
스코틀랜드인의 의지와 용기에 대한 찬사 일색인 글을 쓰는 내내 이런 생각이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결국 리뷰를 완성하기 전 스코틀랜드 독립 전쟁에 대해 정확히 조사하기로 했고, 그 결과 영화에 교훈만큼이나 많은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에드워드 1세와 스코틀랜드
↗Edward Ⅰ of England("Longshanks")
가장 왜곡이 심각한 부분은 잉글랜드의 왕 에드워드 1세에 대한 묘사다. 에드워드 1세는 헨리 3세의 아들로, 유난히 큰 키 때문에 ‘롱생크(Longshanks; 긴 다리의 에드워드)’라 불렸다. 봉건적 질서 하에서 왕권을 강화했던 그는 행정과 법제도를 개혁하고 소작농의 권리를 인정하는 웨스트민스터 조례를 지지한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부왕 때부터 이어진 수차례의 반란과 역모를 진압하며 호전적인 면모를 보였지만, 에드워드 1세는 기본적으로 정치, 경제, 사회 다방면으로 뛰어난 통치력을 갖춘 왕이었다.
영화에서 유추하는 것처럼 에드워드 1세가 스코틀랜드와의 관계에서 처음부터 무력을 동원한 것은 아니다. 그는 스코틀랜드의 마거릿 공주와 아들을 혼인시켜 평화로운 결혼동맹을 맺으려 했지만, 불행히 마거릿 공주가 의문의 죽음을 당해 스코틀랜드의 왕위가 끊기게 된다. 유력자들에게 중재를 요청받은 에드워드 1세는 스코틀랜드의 종주 베일리얼(Balliol)을 스코틀랜드 왕으로 판정했다. 베일리얼은 잉글랜드에 충성을 맹세했으나 곧 프랑스와 동맹을 맺고 반란을 일으켰고, 에드워드 1세는 이를 진압하고 스코틀랜드의 상징석을 잉글랜드로 옮기게 했다. 이것이 스코틀랜드 통치의 시작이다.
에드워드 1세의 입장에서 스코틀랜드는 여러 가지로 골칫거리였을 것이다. 프랑스나 잉글랜드 귀족들과 대립할 때 스코틀랜드 문제 때문에 좋은 기회를 놓친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게다가 크고 작은 봉기가 잦았기에 이에 소모되는 군사력과 경제적 비용도 무시할 수 없었다. 에드워드 1세는 정복지에 너그러운 성품이 아니었으니, 이 반항적인 땅의 사람들이 훌륭한 대우를 받았을 리 없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이 모든 자료를 찾아보는 동안 한 가지 흥미로웠던 점은 스코틀랜드의 독립 전쟁에서 그들에 맞섰던 에드워드 1세가 잉글랜드를 통합하고 프랑스에 저항해 영국의 자주성을 확립해낸 왕이라는 사실이었다. 그 이전의 영국왕은 노르망디 대공 윌리엄 왕과 같이 형식적으로 프랑스 왕의 신하였다. 그러나 에드워드 1세는 무력다툼과 여러 차례의 외교를 통해 프랑스를 견제했고, 오늘날의 역사가들에게는 영국의 진정한 왕으로 평가받고 있다. 스코틀랜드를 탄압했던 그가 영국에 있어서는 투쟁가였던 것이다.
역사와 영화; 거짓과 과장 위의 진실
위의 사항들을 고려할 때, 영화 ‘브레이브하트’는 명백히 스코틀랜드의 손을 들어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역사는 정복자인 에드워드 1세 중심의 기록이며 영화는 스코틀랜드의 영웅 윌리엄 월레스의 시점에서 전개되기에 부각되는 부분이 상대적으로 다를 수도 있다. 그러나 영화의 부정확한 장면들을 단순히 시점의 차이로 볼 순 없다. 어떤 목적에서든 역사와 일치하지 않는 여러 가지 요소가 의도적으로 첨가되었기 때문이다.
우선, 영화는 에드워드 1세를 거칠고 잔혹한 폭군으로 그리고 있다. 스코틀랜드 귀족들을 회의에 초대한 뒤 목매달아 죽였다는 이야기나 봉기진압을 명령하는 장면에서 보이는 무자비한 면모는 거부감까지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에드워드 1세가 이성도 인간성도 없는 미친 폭군이었다는 묘사는 전적으로 거짓이다. 위에서 이야기했듯 그는 유능한 군주였고 무력을 앞세우기 전 충분한 대화와 협상을 기꺼이 허용하는 지성인이기도 했다. 에드워드 1세는 스코틀랜드의 귀족들을 속여 죽이거나 무리한 요구로 전쟁을 유도하지 않았다.
여성을 무시하고 도구로 취급하는 모습 역시 거짓이다. 첫 왕비인 카스티야의 엘레너(Eleanor of Castile)는 에드워드 1세에게 최고의 조언자이자 유력한 지원자였다. 왕은 왕비를 진심으로 아꼈고, 그녀의 조언을 항상 중요하게 생각했다. 프랑스 공주 이사벨라가 에드워드 부자에게 질린 나머지 월레스와 사랑에 빠졌다는 것 역시 흥미를 돋우기 위한 설정에 불과하다. 이사벨라가 에드워드 2세와 혼인한 것은 월레스가 처형당한 때로부터 약 2년이 지난 뒤의 일이기 때문이다.
덧붙여, 영화에서 잉글랜드왕의 잔혹함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소재인 ‘초야권(初夜權, Primae Noctis)’은 존재하지도 않았다. 설령 존재했다 해도 그것은 에드워드 1세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 시대의 일이다.
주인공 윌리엄 월레스 일행을 선(善)으로, 그에 맞서는 에드워드 1세와 잉글랜드를 악(惡)으로 묘사하는 대립 구도는 할리우드 영화의 전형적인 그것이다. 이를 통해 영화는 극단적인 앵글로포비아(Anglophobia)까지 드러낸다.
원작이 서사 소설이며 극적인 연출을 위해 2차적으로 수정이 가해졌다는 점을 감안하면 영화에서 역사적 정확성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일지도 모른다. 영국의 타임즈(The Times)는 2009년 ‘브레이브하트’를 ‘역사적으로 가장 부정확한 영화(most historically inaccurate movies)’ 2위에 선정하기도 했다. 그러나 흥미로운 전개와 월레스의 영웅성을 강조하기 위해서였다 해도 이 정도의 역사 왜곡은 또 다른 폭력이다. 히틀러가 그러했고 미국 서부 개척자들이 그러했기에, ‘브레이브하트’가 앵글로색슨에 대해 적개심을 불러일으킬 목적으로 제작되었을 때의 결과물을 충분히 상상할 수 있다. 영화 한 편, 드라마 한 편을 볼 때에도 충분한 역사적 지식을 갖고 진실과 거짓을 구분해야 모순에 빠지지 않을 수 있다.
단순히 시점의 차이인 줄 알았던 영화 내용이 왜곡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 뒤, 나는 이미 배워 진실이라 알고 있는 역사에도 의구심을 품게 되었다. 영화 ‘브레이브하트’의 사료적 가치는 부정하지만, 영화가 왜곡되는 것과 비슷한 매커니즘이 역사 자체에도 적용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관점에선 교과서에서 정리하는 역사조차도 왜곡되었을 가능성을 부정할 수 없다. 백제 최후의 왕이자 영특한 군주로 이름 높았던 의자왕은 신라인들의 손에서 무능하고 방탕한 의지박약으로 전락했고, 개혁적이고 현실적인 광해군의 일대기는 비겁한 폐왕의 이야기로 다시 쓰이지 않았던가.
특히 영화에서의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의 극단적인 관계는 무엇보다도 일본과 한국의 역사를 연상시킨다. 나는 이제껏 과거사 논란이 일 때마다 한국의 격한 태도를 비난하는 일본인들을 양심의 가책도 없는 종족으로 생각해왔었다. 그러나 일본인들이 배우는 역사는 우리의 것과 다를지 모른다. 또한, 우리역사가 피해의식을 앞세워 사실들을 과장하거나 왜곡했을 수도 있다. ‘브레이브하트’에서 그 가능성을 보았으니, 앞으론 피해자와 가해자가 있는 상황을 접했을 때 한쪽의 입장에서 절대적 판단을 내리기 전에 스스로 알아보고 생각하는 단계를 거쳐야 할 것이다.
월레스와 브루스 : 용기의 두 이름
이렇듯 ‘브레이브하트’는 스토리의 부각을 위해 극단적 관점을 택했기에 역사적으로 매우 부정확하다. 그렇다고 해서 영화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것은 아니다. 상당한 부분에서 왜곡되고 과장되었음에도, 영화는 우리들에게 진정한 용기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그 중 가장 단적으로 드러난 것은 스코틀랜드 사람들이 보여준 용기다.
스코틀랜드 민중들과 윌리엄 월레스의 용기는 불합리한 현실에 저항해 일어서는 의지다. 그것은 ‘아래로부터의 변화’의 원동력이며, 수많은 혁명을 성공으로 이끌고 여러 제도를 개혁해온 힘이기도 하다. 당시 스코틀랜드 민중들은 가진 것 하나 없었다. 잃을 것은 그 자신의 목숨뿐이었기에, 잉글랜드의 밑에서 숨을 죽이고 비참하게 사느니 자유와 명예를 위해 싸우다 죽는 것이 더 인간다운 삶이라 믿었을지도 모른다. 이 때 수많은 동료들과 함께 스코틀랜드의 진정한 자유를 위해 싸운 이가 윌리엄 월레스다. 훌륭한 전사이자 모든 스코틀랜드인의 정신적 지주였던 그를 회유하기 위해 잉글랜드의 왕과 귀족들은 작위와 영지를 주겠다는 달콤한 제안도 서슴지 않았지만, 월레스가 항복하는 일은 없었다. 최후에 받은 잔인한 고문도 그의 굳은 의지를 꺾진 못했다.
윌리엄 월레스를 비롯한 스코틀랜드인의 용기와 강한 의지를 증명하는 것은 잉글랜드에 대항해 일어섰다는 사실만은 아니다. 수많은 고난과 유혹에도 굴하지 않고 투쟁을 계속하는 것은 그 이상의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다. 잉글랜드군과 싸우는 도중 많은 스코틀랜드인이 죽었고, 살아남은 사람들 역시 심한 고통과 절박한 상황 속에서 괴로워해야했다. 그렇기에 그들에게 평화와 부에 대한 약속은 더욱 유혹적이었을 것이다. 현실과 타협해 얻을 수 있는 평온하고 평범한 삶을 생각하면 배신자가 생긴다 해도 이상한 상황은 아니지만, 스코틀랜드 민중들은 계속 싸웠고, 많은 전투에서 그 용기에 걸맞은 승리를 거두었다. 불합리한 현실과 타협하지 않으며 이상(理想)을 믿고 도전하는 힘, 그것이 스코틀랜드 민중들의 용기였다.
그러나 그것만으론 부족했다. 스코틀랜드의 독립은 월레스의 대에서 이뤄지지 못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스코틀랜드의 적은 그들 중에 있었다. 빈손의 민중들이 그렇게 열심히 싸울 때, 스코틀랜드 유력귀족들은 잉글랜드 왕과 밀약을 맺고 스코틀랜드 독립에 반(反)하는 행동을 했다. 누구보다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에 철저해야 할 이들이 눈앞의 이익을 좇아 그릇된 길을 택한 것이다. 스코틀랜드가 연합해 잉글랜드에 대항했다면 스코틀랜드 독립전쟁의 경과는 크게 달라졌을 지도 모른다. 그래서 스코틀랜드 귀족들이 끔찍한 죽음으로 비겁함에 대한 대가를 치르는 장면에서는 일말의 통쾌함까지 느낄 수 있다.
물론 이성적으로 귀족들의 선택을 전혀 이해할 수 없는 건 아니다. ‘지켜야 할 것이 있을 때 사람은 강해진다’는 말도 있지만, 가진 것이 많은 사람은 쉽게 싸움에 나서지 못하기 마련이다. 그렇기에 여기서 또 다른 유형의 용기, 즉 ‘가진 것을 모두 버리는’ 용기가 정의된다. 이것은 부친과 귀족들에게서 등을 돌린 로버트 브루스의 용기다.
로버트 브루스의 용기는 희생을 감수하면서 정당한 것을 추구하는 믿음이다. 가진 것에 대한 책임을 질 때, 혹은 가진 것을 버릴 각오로 자신의 신념을 따를 때 이 유형의 용기가 발휘된다. 영화 내에서 다소 심약한 청년으로 묘사되는 것과 달리, 로버트 브루스는 월레스 사후 분열된 스코틀랜드를 규합해 잉글랜드에 끈질기게 대항한 전사였다. 그는 왕위에 대한 우선권을 가진 귀족으로, 잉글랜드에 충성한다면 아주 편안히 스코틀랜드 왕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잉글랜드와 싸워 스코틀랜드의 독립을 쟁취하는 길을 택했다. 이익관계 이전에, 그것이 스코틀랜드의 귀족 로버트 브루스가 생각한 ‘옳은 일’이었기 때문이다.
↗Robert the Bruce & William Wallace
나는 로버트 브루스를 존경한다. 윌리엄 월레스가 발휘하는 용기는 다소 극단적인 상황을 상정하고 있다. 그의 굳은 의지는 존경스럽지만 한편으론 지극히 비현실적이고 비일상적이다. 실현 가능성이 거의 없는 일에 도전하는 그 배경에는 배수의 진이 있기 때문에 공감도가 상대적으로 떨어진다. 반면 로버트 브루스의 용기는 얼마든지 실제 상황에 대입해 생각할 수 있다. 유명 기업의 고위직이었지만 회사 정책에 의한 치명적 피해를 발견하고 그것을 널리 공표한 중년 남성이 그 예이다. 유리한 상황에서 기득권을 버릴 각오로 신념을 추구할 수 있는 사람은 드물다. 이러한 용기야말로 사회 고위층으로서, 또 지도자로서 꼭 갖춰야 하는 덕목이 아닐까.
윌리엄 월레스가 보여준 용기와 로버트 브루스의 용기. 이 둘은 양립할 수 있으며, 판가름의 대상도 아니다. 언제 어디에 있건 불합리에 저항하는 의지는 중요하지만, 지도자가 되고자 한다면 반드시 브루스의 용기를 겸비해야 한다.
다시 브레이브하트
영화에서 보여주는 모든 것이 진실은 아니다. 아무리 고증을 거친 영화라 해도 놓치는 부분이 생기기 마련이며, 여러 목적에서 내용을 의도적으로 비틀기도 한다. 그것은 ‘브레이브하트’도 예외가 아니다. 스코틀랜드 독립 전쟁의 영웅인 윌리엄 월레스의 투쟁을 감동적으로 그려낸 이 영화는 좀 더 극적인 전개를 위해 월레스의 업적을 과장했고, 한편으론 잉글랜드를 무자비한 악으로 묘사했다. 그러나 현실과 허구를 구분하며 영화를 볼 수 있다면 모든 오류를 메울 만한 진정한 용기와 자유로운 인간의 의지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사진 출처는 google
*참고할 만한 문헌 : http://en.wikipedia.org/wiki/First_Scottish_War_of_Independence
과제로 작성한 영화 감상문. 짐작할 수 있듯, 부제는 '브레이브하트 까기'였다. 논리의 타당성을 떠나서, 이건 정말 아무것도 아니다.
(그러니 미리 경고하는데, 여기에 뉴라이트 운동 운운하는 덧글 달리면 무조건 지울 거다.)
감상문에는 적지 못한 내용을 추가로 덧붙이자면
1. 177분, 약 3시간의 play time을 자랑.
2. 잔인할 정도의 전투씬. 이 영화에 전쟁의 로망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
3. 생각보다 많은 connotation이 있다. anglophobia, anti-gay movement, implicit contempt for Irish 등등.
그리고 사진을 찾다가 재미있는 글을 하나 발견했는데, 영화에 흥미를 느꼈다면 이것도 읽어봄직하다.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으니 조심할 것.
http://trueslant.com/mikeharvkey/2009/10/19/10-things-i-learned-about-history-from-bravehe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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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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