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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gosoda
- 작성일
- 2020.11.28
예술가의 손끝에서 과학자의 손길로
- 글쓴이
- 김은진 저
생각의힘
몇 년 전 스페인의 지역 교회의 벽화를 그 지역의 화가가 복원했다가 엉망으로 만들어서 화제가 되었던 사건이 있었다. 19세기의 예수 벽화인데 복원을 하는 과정에서 원작과는 전혀 다른 원숭이 그림이 그려졌던 사건이다. 처음에는 82살의 여성화가에게 역사상 최악의 복원이란 비난이 쏟아졌지만 오히려 그 그림을 보기 위해 관광객이 몰리면서 교회는 돈방석에 앉았고, 그 여성화가도 돈방석에 앉게 되었다는 해피엔딩 스토리. 그런데 정말 이것이 해피앤딩일까? 교회 입장에서는 관광객을 유치해서 큰 수익을 얻게 되었겠지만 19세기의 예술작품은 완전히 훼손되어버렸다. 심지어 그 사건 이후로 같은 목적으로 예술 작품을 훼손시키는 안타까운 일이 계속해서 발생하고 있다. 돈 때문에 예술적 가치가 있는 작품들이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어처구니 없는 미술품 복원(혹은 훼손)은 논외로 하면 일반적으로 미술품은 굉장히 과학적으로 관리된다고 한다. 미술품은 제작된 그 순간부터 작품에 변화가 일어난다. 우리는 시간에 따른 작품의 변화조차 작품의 일부분으로 생각하고 그것을 감상한다. 시간의 흐름에 따른 자연스러운 퇴색이 작품의 가치를 더하고 생기를 불어넣는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능한 작품이 처음 만들어진 상태를 유지할 수 있게 노력을 기울일 필요도 분명히 있다. 이런 보관과 복원의 과정들은 보존가와 보존과학자라는 조금은 생소한 전문가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다. 그리고 이들의 작업은 철저히 과학적으로 진행된다고 한다. 미술작품은 화가의 손에서 탄생해서 과학자의 손으로 보존되고 있는 셈이다.
이 책은 생소한 직업인 보존가와 보존과학자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보존과학은 미술품을 연구하는 학문의 한 분야로 미술 작품의 미학적 관점보다는 그 물성에 더 관심을 가지고 작품의 생명을 연장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한다고 한다. 국내에는 10여명의 보존과학자들이 있다고 하는데 이들의 일은 그다지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인사동 스캔들'이란 드라마에 이 직업이 나온 모양인데 여느 드라마와 같이 비쥬얼적이고 세련만 모습으로만 그려져서 실제와는 다르게 이해하는 사람이 많은 모양이다. 이 책에서는 실제 현장에서 보존과학자들이 미술작품을 지키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는지 그리고 보존과학을 둘러싼 여러 궁금증에 대해 알아본다.
보존과학은 크게 두 가지 영역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직접 작품을 다루고 상처를 치료하는 보존가와 보존가의 활동에 필요한 과학적 정보를 연구하는 보존과학자가 그것이다. 즉 보존가는 직접 훼손된 작품의 복원작업을 담당하고, 보존과학자는 작업의 밑바탕이 되는 과학적 데이터를 수집하고 분석하는 업무를 담당하는 것이다. 미술품의 보존을 위한 과학적 실험과 분석은 중요하지만 보존가가 과학의 모든 것을 이해하고 해석할 필요는 없다. 그래서 보존가는 작품의 보존 처리에 필요한 기본적인 과학적 지식을 교육받고, 보존과학자는 과학자로서의 전문 지식을 미술 보존이라는 분야에 적용하고 활용하는 것이다. 보존 처리는 보존가의 영역에서, 분석은 과학자의 영역에서 이루어지며 같은 목적으로 서로 융합하고 있는 것이다.
렘브란트의 '야간순찰'은 바로크를 대표하는 걸작이자 서양미술의 4대 걸작으로 꼽히는 작품이다. 그런데 빛의 화가란 별명이 붙은 렘브란트가 '야간'을 배경으로 그림을 그렸다는 것이 조금은 의아해진다. 여기에는 과학적 사정이 있다. 렘브란트는 애초에 이 그림을 밝은 낮을 배경으로 그렸다고 한다. 그럼에도 야간순찰이라는 타이틀이 붙게 된 것이다. 그림을 그리고나면 그림을 보호하기 위해 가장 마지막 단계에서 '바니시'(한국에서는 니스라고 불리는 바로 그것)를 바르게 되는데 이 바니시는 시간이 지나면 열, 산소와 반응해서 누렇고 검게 변하게 된다. 렘브란트의 그림 역시 그림을 보호하고 화면에 균일함을 주기 위해 바른 바니시가 자체산화하면서 검게 변한 것이었다. 그것이 낮을 밤으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1940년 렘브란트의 그림을 복원하는 과정에서 보존가들이 심하게 색이 변한 바니시를 제거하고 새로 칠해주는 과정에서 숨어있던 렘브란트의 빛을 찾아낸 것이다. 그리고 그림은 렘브란트가 의도했을 진정한 의미와 가치를 찾게 되었다.
하지만 복원작업이 언제나 이렇게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 것은 아니다. 미켈란젤로의 역작 '시스티나 성당 천장화'가 장장 15년 동안의 보존처리를 끝마치고 대중에게 공개되자 기존보다 밝아진 벽화를 반기는 사람들과 역사의 흔적은 지워버렸다며 부정적으로 말하는 사람으로 양분되었다고 한다. 너무 깨끗해진 그림을 보고 단순히 그림의 때만 닦아낸 것이 아니라고 의심을 하게 되었단다. 그래서 미켈란젤로가 원래 입혔던 색들도 함께 닦여나갔다고 주장을 하고 있다. 미켈란젤로는 습식으로 그림을 그렸는데 검은 음영을 표현할 땐 건식 프레스코 기법을 사용했을 거라는 의견인데 말하자면 그림의 검은 부분이 때가 아니라 건식 프레스코 기법으로 그려진 음영인데 그것까지 다 닦아버려서 원래 그림과는 다르게 입체감을 잃어버렸다는 주장인 것이다.
그리고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은 처음에는 모두 올누드로 그림을 그렸는데 이후 카톨릭이 보수적으로 변화면서 미켈란젤로 사후에 그의 제자가 옷을 덧칠하여 입혀넣었다고 한다. 만약 복원작업으로 미켈란젤로의 의중대로 그림을 처음으로 되돌리려면 그 덧칠된 옷까지 벗겨내어야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교회는 그것을 용납하지 않았고, 옷을 덧칠한 상태까지 복원을 시켰다고 한다. 이는 완벽하게 미켈란젤로가 처음 그린 그림대로 복원했다고 하기는 어려운 것이다. 이처럼 복원이 언제나 환영받는 것은 아닌 것 같다. 그리고 어디까지가 작품의 원본성을 해치지 않는 범위인지 보존과학자에게는 끝없는 숙제 같은 일이라고 하겠다.
미술관에는 스플링쿨러가 없다고 한다. 화재에 가장 신경을 써야 할 미술관에 스플링쿨러가 없다니 의외였는데 미술품은 불에 타는 것보다 물에 젖는 것이 더 치명적이라고 한다. 컨버스에 그려진 그림은 습도에 아주 민감하게 반응한다고 한다. 종이나 나무판에 그려진 그림도 마찬가지인데 습도가 높으면 늘어나고 습도가 낮으면 다시 수축하게 된다. 이런 현상은 켄버스나 종이 속 섬유의 셀룰로스 즉 섬유질 때문인데 셀룰로스는 물과 쉽게 결합하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습도에 따라 화면이 울거나 틀어지게 되지만 완전히 젖어버리면 급격하게 줄어든다고 한다. 그대로 건조되면 줄어든 상태로 유지되어 원래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캔버스가 확 줄어들었다면 그 위의 물감은 거의 망가져버린다. 그야말로 그림 전체가 망가져버리는 것이다. 화재는 그림의 일부를 태우겠지만 물은 그림 전체를 망가트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미술관에는 습도에 굉장히 신경을 쓰고 있는데 그것과 더불어 빛과 벌레의 공격에도 신경을 쓴다고 한다. 이렇게 하나의 예술작품을 잘 보존하기 위해서 과학자들의 노력이 계속 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 문화재 관리에 너무 소극적이 아닌가 생각한다. 날림으로 보수하고 관리가 소홀하여 문화재가 상했다는 뉴스를 자주 듣게 되는데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사람이 나이를 먹고 늙어감에 따라 주름이 많아지는 것이 자연스런 현상인것처럼 미술작품 역시 시간의 변화에 의해 퇴색되고 시간의 때가 묻는 것이 자연스러운 현상일 것이다. 하지만 처음 화가가 그려내었던 상태를 최대한 보존하고 유지하는 것 또한 필요한 것이고 그런 일을 하는 사람들에 대해 알게되니 예술작품에 대한 이해도 높아진 것 같다.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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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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