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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yboy
  1. 천천히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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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희
지금 서강대 교수입니다.
아주 어렸을때 소아마비에 걸려 지금도 목발에 의지하여 어렵게 한발 한발 걷는, 육체적으로 무척 힘든 삶을 살아가지만 별명이 장 스마일(늘 웃으니까) 인 입지전적인 분입니다
한때 그의 책을 접한적 있었는데 참 오지게 눈물나게 하더군요.
며칠전 암으로 투병중이란 소식을 접하고 안타까왔습니다.
그의 글을 인터넷에서 발췌하여 올려봅니다.

<엄마의 눈물>
지난 주말에는 자료들을 찾아야 할 일이 있어 2충 다락방에 올라갔다가 우연히 한쪽 구석에 놓여 있는 아주 낡은 와이셔츠 상자 하나를 발견하였다. 무심히 열어보니 놀랍게도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 쓰던 태고적 물건들이 담겨 있었다. 동생들과 싸워가면서 모았던 예쁜 구슬들. 이런저런 상장들. 내가 좋아하던 만화가를 흉내낸 그림들. 그리고 맨 밑바닥에는 '3학년 7반 47번 장영희'라고 씌어진 일기장이 있었다.

호기심 삼아 나는 일기장을 대충 훑어보았다. 초등학교 3학년생이 썼다는게 믿기지 않을 만큼 꽤 세련된 필체로 '동생 태어난 날- 앗, 또 딸이다!' 'M&M 초콜릿 전쟁' '이 세상에서 제일 미운 애' 등 재미있는 제목들과 함께 12월 15일자의 '엄마의 눈물'이라는 글이 눈에 들어왔다.

< 오늘 아침에도 엄마가 연탄재 부수는 소리에 잠이 깼다. 살짝 문을 열고 보니 밤새 눈이 왔고 엄마가 연탄재를 바께쓰에 담고 계셨다. 올해는 눈이 많이 와서 우리 집 연탄재가 남아나지 않겠다. 학교 갈 때 엄마가 학교까지 몇 번이나 왔다갔다 하면서 깔아놓은 연탄재로 흰 눈 위에 갈색 선이 그어져 있었다. 그런데 올 때는 내리막길인데 눈이 얼어서 너무 미끄러워 엄마가 나를 업고 와야 했다. 집에 닿았을 때는 엄마는 내가 너무 무거워 숨을 헐떡거리고 이마에 땀이 송송 나 있었다. 추운 겨울에 땀 흘리는 사람! -바로 우리 엄마다. 그런데 나는 문득 엄마의 이마에 흐르는 그 땀이 눈물같이 보인다고 생각했다. 나를 업고 오면서 너무 힘들어서 우셨을까. 아니면 또 "나 죽으면 넌 어떡하니" 생각하시면서 우셨을까. 엄마, 20년만 기다려요. 소아마비는 누워 떡 먹기로 고치는 훌륭한 의사가 되어 내가 엄마 업어 줄께요. >

일기를 보면서 내 입에는 미소가, 눈에는 눈물이 돌았다. 꿈을 이루는 데 '누워 떡 먹기'라는 표현을 쓰는 열 살짜리 아이의 이 세상에 대한 믿음이 재미나 웃음이 났고, 학교에 가기 위해 모녀가 매일매일 싸워야 했던 그 용맹스러운 투쟁이 새삼 생각나 눈물겨웠다.

학창시절 내게 '학교에 간다'는 말은 문자 그대로 '간다'의 문제였다. 우리 집은 항상 내가 다니는 학교 근처로 이사를 해서 학교에서 고작 200~300m 정도의 거리였지만 그것도 내게는 버거운 거리였고, 비나 눈이 오는 날은 그야말로 필사적인 투쟁이었다. 아침마다 우리 집은 여섯 형제가 제각기 시작하는 하루의 일과로 대전쟁을 치렀지만, 어머니는 항상 내 차지였다. 다리에 혈액 순환이 잘 되지 않기 때문에 두꺼운 솜을 넣어 따뜻하게 덥혀 입히시는 일부터 세수, 아침 식사 그리고 보조기를 신기고, 완전무장을 하고 학교에 데리고 가는 것까지 어머니 몫이었다.

초등학교 3학년 때까지 어머니는 나를 업어서 학교까지 데려다 놓고 화장실에 데려가기 위해 두 시간에 한 번씩 학교에 오셨다. 그런데 나는 일종의 신경성 요뇨증 같은 것이 있었던지, 어머니가 오시면 가고 싶지 않던 화장실이,일단 가시기만 하면 갑자기 급해지는 일이 종종 있어 어머니는 항상 노심초사, 틈만 나면 학교로 뛰어오시곤 했다.

어머니와 내가 함께 걸을 때면 뒤로 아이들이 쫓아다니며 놀리거나 내가 걷는 흉내를 내곤 하였다. 그런데 지금 생각하면 신기하게도 초등학교에 들어갈 즈음에는 나는 철이 없어서인지 아니면 운명이라고 체념했는지, 적어도 겉으로는 그것을 무시할 수 있는 능력을 배웠다. 그러나 어머니는 쉽사리 거기에 익숙해지시지 못했다. 아이들이 따라올 때마다 마치 뒤에서 누가 총이라도 겨냥하는 듯, 몸이 온통 얼어 붙은 듯 머리를 꼿꼿이 쳐들고 걸으시다가 어느 순간 홱 뒤돌아 서서 날카롭게 "그만 두지 못해! 얘가 너한테 밥을 달라던, 옷을 달라던!"이라고 외치시곤 하셨다.

언제나 조신하고 말없는 어머니였지만, 기동력 없는 딸이 이 세상에 발붙일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목숨 바쳐 싸워야 한다고 생각한 억척스러운 삶의 전사였다. 눈이 오면 눈 위로 연탄재를 깔고, 비가 오면 한 손으로는 딸을 업고 다른 한 손으로는 우산을 받쳐들며 딸의 길과 방패가 되는 하루하루는 슬프고 힘겨운 싸움의 연속이었다.

그뿐인가, 걸핏하면 두세 달씩 있는 병원 생활, 상급 학교에 갈 때마다 장애를 이유로 입학 시험 보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던 학교들. 나 잘 살 수 있다고, 제발 한 몫 끼어달라고 외쳐대도 자꾸 벼랑 끝으로 밀쳐내는 세상에 그래도 악착같이 매달릴 수 있었던 것은 어머니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머니는 한 번도 내 앞에서 눈물 흘리신 적이 없고, 그것은 이 세상의 슬픔은 눈물로 정복될 수 없다는 말없는 가르침이었지만, 가슴 속으로 흐르던 '엄마의 눈물'은 열 살짜리 딸도 놓치지 않았다.

'신은 모든 곳에 있을 수 없기에 어머니를 만드셨다'는 책 제목이 있듯이 오늘도 어디에선가 걷지 못하거나 보지 못하는 자식을 업고 눈물 같은 땀을 흘리면 끝없이 층계를 올라가는 어머니, "나 죽으면 넌 어떡하지"하며 깊이 한숨 짓는 어머니, '정상'이 아닌 자식의 손을 잡고 다른 사람들의 눈총을 따갑게 느끼며 온통 긴장한 채 머리를 꼿꼿이 쳐들고 걷는 어머니- 이 용감하고, 인내심 깊고, 씩씩하고 그리고 하느님 같은 어머니들의 외로운 투쟁에 사랑과 응원을 보내며 보잘것없는 이 글을 나의 어머니와 그들에게 바친다.

이 글은 서강대 영문과 교수인 장영희 씨가 샘터 (2000년 5월호)에 기고한 것입니다. 이 글 중간에 나오는 "신은 모든 곳에 있을 수 없기에 어머니를 만드셨다"라는 부분은 정말 마음에 와 닿은 구절입니다...

지난해 여름의 일입니다. 한 가정집 4층에서 화재가 발생했는데 마침 두 아들과 어머니가 집에 있었습니다. 불은 아래층에서부터 번져온 것이라 탈출로는 없었고 모자(母子)는 창문 베란다 밖에서 안타깝게 구조를 기다리는 형편이었습니다. 119가 급히 출동했지만 골목길 4층 건물이라 사다리가 닿을 수 없었고 결국 헬기가 구조를 위해 긴급 투입됐습니다. 이미 불길은 창문 밖까지 번졌고 베란다 밖으로 간신히 매달린 모자(母子)에게는 한 번의 구조할 기회밖에 남아있지 않았죠. 이윽고 헬기에서 밧줄이 내려지고... 어머니와 두 아들은 밧줄을 꽉 붙잡았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3명을 지탱해주기에는 밧줄이 너무 약했습니다. 헬기가 다시 한 번 구조하러 오기에는 시간이 없었구요. 순간, 꽉 잡았던 밧줄을 -자신의 유일한 생명줄을- 놓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바로... 두 아들의 어머니였습니다.

어머니는 밧줄을 놓자마자 바로 추락했습니다. (다행히 아래층 상가의 천막을 통과하면서 떨어져 큰 부상은 모면했다고 합니다) 그 때 밧줄을 놓으며 어머니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이- 어머니는 당신을 생각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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