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일
  1. 도서

이미지

도서명 표기
언어의 우주에서 유쾌하게 항해하는 법
글쓴이
신견식 저
사이드웨이
평균
별점8.8 (8)
테일


 모국어가 아닌 언어를 배우는 일은 습관처럼 되어야 한다는 말처럼 '얼굴을 씻듯 밥을 먹듯' 새 언어를 공부한다는 저자의 노력이 예사로운 것처럼 표현되어 있어도 곱씹을수록 비범했다. 그 꾸준함이 언어 공부에 있어 가장 큰 비결이자 어려움일 것이다. 앞부분만 닳은 교재 몇 권씩은 다들 가지고 있을테니. 책을 읽기에 앞서 15개 언어를 한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궁금했다. 한국어를 하는 입장에서 영어를 파다가 다른 언어 하나만 더 배우려고 해도 그 세 개를 모두 잃게되는 피해자 모임에 가입된 회원으로써 순수한 의문과 걱정이 들었다. 그렇게 많은 언어를 공부하고도 머리속이 괜찮은건지. 그동안 내가 어렵고 힘들었던건 기분 탓이었던걸까.  

 

 외국인을 만나거나, 해외로 여행을 갔을 때 영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해지면서 세계가 자연스럽게 확장되는 경험을 해본 적 있을 것이다. 그 작은 성취와 경험만으로도 느끼고 경험할 수 있는 것들이 확 달라진다. 어린시절부터 또 학창시절 교과과정에서 대부분 배웠을 영어지만, 보통 실전에서는 기초적인 회화 정도가 가능할 한 가지 외국어를 통해서도 이렇게 다른 경험을 해볼 수 있는데, 저자처럼 많은 언어를 알게된다면 물리적인 거리나 생활에서의 이점을 얻게될 뿐 아니라 사고와 지식의 근본적인 구조가 달라지는 경험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아니나다를까 언어의 뿌리를 연결시키는데서 재미를 찾고 워낙 많은 언어를 다루다보니 저자의 눈에 들어오는 세세한 부분(집이 더러운데206)들이 있었다.

 

 6학년 때 땅콩과자 포장지의 외국인 이름의 인종을 살펴보고(115) 중학생 시절 " 1962년판 '엣센스 독한사전'을 보면서 서게르만어군 안에서 여러 언어의 공통점과 차이점에 흥미를(99) " 가진 이력이 있는 저자를 보면서 심리적 거리두기를 떠올렸다. 책을 읽는 일은 저자와 멀어지는 일이었다.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저자에 대해서 그 전보다 더 알게 되는 일이지만, 거리는 어쩐지 더욱 벌어지고 있는 아득함을 지울수가 없었다. 솔직히 젊은 독자들은 '엣센스사전'이란 말에서도 거리감을 느낄 것 같다. '언어천재'라는 수식을 민망하여 피한다고 하지만 그만한 자신감이 뒷구르기를 하면서 봐도 보일 정도로 확고한 어조가 있었다. 게다가 '유쾌하게' 라는 표현에 대해서도 나름의 개그코드가 반영되었던 것은 아닐까.

 

 15개 언어에 통달한 사람이라고 하니 나와는 다를 거라는 걸 충분히 예상하고 읽었음에도 '유쾌'한 부분도 다를 줄은 미처 몰랐다. " 누가 알아주지는 않는 유머의 차원이더라라도, 어찌 됐든 내게는 재미있으면 그만이다.(22) " 는 말은 진심이다. 글쓰기 근육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글을 '머 쓸'까 고민해야 된다는(79) 표현은 여러모로 인상적이었다. " 과거에서 벗어나우!(162) " 같은 깨알 유희들도 그렇다. 마치 교수님이 전공 수업 때 하는 농담을 외계어같은 전공 지식 속에 유일하게 들리는 반가운 모국어 같은 느낌으로 주워듣는 기분이랄까. 재미는 없는데 암튼 정성에 가산점을 주게 되는, 그런게 있다. 내 수준은 이름과 관련된 구글과의 불화(144) 정도가 재밌는데.

 

 원서로 뭔가를 읽어낼 능력이 없으니 능력자들이 전달해주는 결과물을 고맙게 받아 그런가보다 하고 읽어왔다. 그런데 요즘은 저자의 표현대로 집을 지을 능력까지는 아니더라도 볼 줄은 아는 사람들이 많고, 어떤 이들은 지을 능력이 안되는데도 짓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종종 번역에 대한 논란이 일어나기도 한다. 출판물은 논란까지는 아니더라도 출판사별로 번역 스타일을 비교해놓은 콘텐츠들도 많다. 일부 오역의 문제는 차치하고서라도 번역에 따라 달라지는 문체로 보고 취향대로 선택하기도 한다. 다만 문제가 두드러지는 분야는 영상 자막인데 특정한 영화에 대해서는 심각한 오역을 반복한 번역가를 보이콧하는 움직임도 있었다. 어머니...!

 

 왜 저자가 '언어의 우주'라는 표현을 썼는지 읽으면서 알 것 같았다. 그가 보여주는 언어의 세계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으면서도 멀리 떨어져있는 거리감을 갖고 있는 것이, 밤하늘을 눈으로 보는 것과 비슷했다. 막상 책 안으로 들어가 그가 보여주는 언어의 단편을 나눠받으면서도 그저 막연하다. 솔직히 아침마다 의관을 정제하고 각 언어의 단어 숙어를 100개씩 암송(97)한다고 했을때 그냥 믿었다. 차라리 그게 더 현실성 있을 것 같은데 '그럴리가 없잖아요 하하'하고 웃어넘기는 게 더 멀게 느껴졌다. 다만 전반에 걸쳐 정말 언어에 파고드는 것을 정말 좋아하고 관심이 있어서 한다는 게 보인다. 노력하는 게 즐기는 것을 이길 수가 없다는 말이 떠오른다.

 

 솔직히 처음 시작하는 '어도락가의 길'은 좀 딱딱하다. 아무래도 주관도 확고히 드러나고 전문적인 영역에 대한 설명이 많다. 저자입장에서는 아주 기본적이고 재밌을만한 부분을 고심해서 썼겠지만, 그래도 '나의 삶 나의 언어'로 넘어오면 분위기가 달라지면서 에피소드들이 좀 더 편하고 재밌게 다가온다. 아이가 성장해가면서 어떻게 말을 하는지 관찰한 부분도 나름의 방식대로 학구적 관찰 예능을 찍는 느낌이랄까. '언어의 풍경을 바라보며'에서는 포괄적인 언어생활에 대한 내용이라 평소에 생각했던 주제들도 나온다. '너무' 나 '닭도리탕'의 사용 같은 내용이 그렇다. 이와 함께 잃어버린 '짜장면'의 귀환을 되찾은 일도 떠올랐다.   

 

 또 하나 반가운 것은 '최근의 글쓰기 열풍(73)'에 대해 저자가 긍정적인 눈으로 보고 있다는 것이다. 갑자기 글쓰기와 관련된 책들이 많이 눈에 띄길래 무슨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걸까 싶었는데 저자의 문제의식(교육 수준에 비해 자국어를 잘 쓰는 사람이 적다/쉬운 글이 언제나 좋은 건 아니다72)과 함께 요즘의 흐름을 보니 그렇구나 싶어졌다. '채식주의자'와 '기생충' 번역에 대해서도 나오지만, 얼마 전에 한 출판사의 신간이 역대 최고 선인세를 받고 계약을 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우리글이 세계로 나가는데에 그동안 우리는 언어와 문화의 장벽에 요인을 두었는데 안방을 어떤 표현으로 바꾸는지에 골몰하기 보다는 안방을 안방으로 알리는 것 자체도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라이스케이크보다 떡이 더 먹히는 것처럼, 중국에서 시*이 가벼운 욕으로 쓰이는 것처럼, 그대로. 

 

 아주 만족스러운 우주는 아니었어도 괜찮은 선장과 함께 항해한 여정이었다. 실제로 낯선 세계로 여행을 떠나는 일이 당분간은 어려워졌으니, 이런 식으로 여행을 떠나봐도 좋을 것 같다.

 

 

*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좋아요
댓글
0
작성일
2023.04.26

댓글 0

빈 데이터 이미지

댓글이 없습니다.

첫 번째 댓글을 남겨보세요.

테일님의 최신글

  1. 작성일
    4분 전

    좋아요
    댓글
    0
    작성일
    4분 전
    첨부된 사진
    20
  2. 작성일
    20시간 전

    좋아요
    댓글
    0
    작성일
    20시간 전
    첨부된 사진
    20
  3. 작성일
    2025.5.7

    좋아요
    댓글
    0
    작성일
    2025.5.7
    첨부된 사진
    20

사락 인기글

  1. 별명
    리뷰어클럽공식계정
    작성일
    2025.5.7
    좋아요
    댓글
    110
    작성일
    2025.5.7
    첨부된 사진
    첨부된 사진
    20
  2. 별명
    리뷰어클럽공식계정
    작성일
    2025.5.8
    좋아요
    댓글
    67
    작성일
    2025.5.8
    첨부된 사진
    첨부된 사진
    20
  3. 별명
    리뷰어클럽공식계정
    작성일
    2025.5.7
    좋아요
    댓글
    129
    작성일
    2025.5.7
    첨부된 사진
    첨부된 사진
    20
예스이십사 ㈜
사업자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