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본 카테고리

manza
- 작성일
- 2019.4.3
예민함이라는 무기
- 글쓴이
- 롤프 젤린 저
나무생각
1.
아이를 낳고 기르며 아이의 모습에 투영되는 어린 내 모습에 꽤나 괴로웠었다. 나의 예민함을 그대로 빼다박아 세상의 자극이 고통스러운 작은 아이의 삶이 벌써부터 걱정되었고 나처럼 살게될까 전전긍긍했다.
내 뱃속에서 나온 아이는 잠을 자지 않았고 밥을 먹지 않았다. 소리를 들어도, 빛을 보아도, 냄새를 맡아도 울었다. 바람이 불어도 울었고 손과 발에 무언가 스칠 때마다 울었다. 아이를 사랑하는 것은 그 무엇보다 쉬운 본능이지만 아이러니하게 그 무엇보다 어려운 일이었다. 삶에 처음 겪는 황금빛 행복과 칠흑 속을 천 번씩 만 번씩 오가며 이러다 내가 미치겠구나 싶었다. 세상의 모든 자극에 이토록 부정적으로 반응하는 너는 대체 누구니? 너도 나처럼 염세적이고 소심하고 우울하게 살게되는 걸까?
평생 예민하다는 소리를 듣고 자라면서도 예민함에 대해 진지하게 고찰해 본 적은 없었는데 나를 닮은 아이를 낳고나서는 잠시 멈추어 설 수밖에 없었다. 예민한 아이에 관한 책을 닥치는대로 읽고 비슷한 아이를 키우는 엄마를 만나 소통했다. 덕분에 육아가 수월해진 건 '예민함'이 '특별함'으로 바뀐 후부터이다. 그리고 인지한 더 중요한 사실은 나 역시 특별한 아이였다는 것. 그럼 단어가 바꿔준 이 특별한 엄마와 아이는 어떻게 살아가야할까?
2.
제목부터 말하길 저자는 예민함을 무기라고 했다. (작가의 원제가 궁금한데 독일어라서 알 수 없는 점이 아쉽다) 그러니까 어릴 때부터 귀에 박히게 들어온 '너는 애가 왜 그렇니?'라는 가시 박힌 질문에 '어, 나는 예민해서 그래.'라고 당당히 말해도 된다는 거 아닌가. 하지만 예민함을 강점으로 만들려면 예민함을 다루는 방법을 알아야 한다는데 처음에는 이 부분이 어렵게 다가왔다. 예민한 사람들은 공감능력과 행간을 읽는 능력이 탁월해 그 직감을 잘 활용하기도 하지만, 타인의 감정이나 인정에 쉽게 휘둘려 종국에는 내것이 사라지고 혼란 상태가 온다고도 한다. 예민한 사람은 이기적이고 까칠하며 소심한 사람이라는 사회적 통념에 시달리다가 그것과 다른 쭈구리같은 내 성격을 대변해주는 것 같아서 읽는 내내 무척 위안이 되었다. 이러한 상황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자신의 한계를 제대로 설정해야한다고 하는데 이 '한계설정'이 내 삶과 달라 어렵기도 했고 반면에 흥미로워서 몇 번이나 곱씹어 읽었는지 모르겠다. 결국 이 한계라는 것은 나에 대해 제대로 알고 인정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쉽게 말해 내 그릇의 크기를 아는 것. 나는 요만한데 내 그릇이 너무 크다고 착각해 허덕이거나, 실제보다 작다고 여겨 머물러있는 것이다. 나를 온전히 인정하고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을 아는 것이 나를 존중하는 첫 번째 발걸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타인과의 관계에 있어서는 나와 너의 경계를 지각하여 그 다름을 인정하는 것이라고 이해했다. 너의 다름을 보는 것이 아니라 '나'의 다름을 인정하고 나의 한계를 제대로 알 때에 휘둘리지 않고 건강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책에서 가장 흥미롭게 던져진 부분은 온전히 나에게 집중하라는 것이었는데, 그 중에서도 '신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라는 이야기가 무척 새로웠다. 예민함은 기질이니 내적인 부분만 다룬 책일거라 생각했었는데 신체의 반응에 귀 기울이라니. 머리나 마음은 당위성을 이야기하면서 자신의 경계확장을 강요하기 십상이지만 몸은 가장 솔직하고 직접적인 반응을 나타내기 때문에 몸의 주인이 몸의 이야기를 제대로 들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생각해보니 나의 마음 뿐 아니라 타인의 마음, 타인의 생각에 집중하느라 가장 소홀히 한 것이 내 몸이었던 것 같다. 나는 과연 내 몸의 소리에 얼마나 집중하고 있었는가. 그러고보면 지나친 예민함으로 발현된 둔감함이 눈을 가려 상황 파악을 못할 때 위경련이나 불면 등으로 몸이 먼저 신호를 보내줄 때가 많았다.
물론 집중해야할 것은 신체 뿐이 아니다.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여야한다. 나의 진짜 감정인지, 진짜 내 생각인지 판단하며 오로지 내 과제에만 집중하라고 한다. 타인과의 경계, 사회와의 경계, 그리고 나 자신과의 경계를 잘 그어 지각하고 존중하면 내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삶의 자리에 설 수 있을 것이다. 나에대한 온전한 지각을 하지 못하면 직감을 잃고 중심이 무너지게 된다. 결국 자존감이다. 내 삶의 중심엔 언제나 내가 있어야겠다.
3.
과도한 인정욕구가 나를 휘감아 고통스러울 때에 한 걸음 멈춰 생각해야지. 나는 어디에 있는가. 나는 무슨 말을 하고 있는가. 나는 나를 얼만큼 사랑하는가.
그리고 나와 내 아이의 관계. 나는 최선을 다해 내어주는 사랑이 아이의 총량에 못 미쳐 아이도 나도 계속 방전되고있는지 모르겠다. 내 배터리 세 칸을 너에게 온전히 내어줘도 너의 두 칸에 못 미칠지 모르지. 하지만 어쩔 수 없다. 빨리 방전되면 자주 충전하면 돼. 내가 너를 사랑하는 사실은 변함이 없으니 이런 엄마를 있는 그대로 보아주길, 나를 닮은 너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길. 엄마인 나와 딸인 나 사이를 오가며 잃어버린 '나로서의 나'에 조금 더 집중할 때가 온 것 같다. 육아 5년차, 이제 어린이가 되어버린 아이에게 한 숨을 돌릴 때가 되니 내가 보이기 시작한다. 어느새 후즐근한 껍데기만 남은 아줌마. 어디로 가야할지 몰라 울먹이던 때에 마침 이 책을 읽게되어 정말 감사하다.
+
사람은 누구나 예민한 구석이 있을 것이다. 이 책이 주는 메시지는 단지 예민한 사람에게 국한된 것은 아니라 생각한다. 다들 한번쯤 읽어보면 좋겠다.
+
표지 디자인이 정말 좋습니다.
아이를 낳고 기르며 아이의 모습에 투영되는 어린 내 모습에 꽤나 괴로웠었다. 나의 예민함을 그대로 빼다박아 세상의 자극이 고통스러운 작은 아이의 삶이 벌써부터 걱정되었고 나처럼 살게될까 전전긍긍했다.
내 뱃속에서 나온 아이는 잠을 자지 않았고 밥을 먹지 않았다. 소리를 들어도, 빛을 보아도, 냄새를 맡아도 울었다. 바람이 불어도 울었고 손과 발에 무언가 스칠 때마다 울었다. 아이를 사랑하는 것은 그 무엇보다 쉬운 본능이지만 아이러니하게 그 무엇보다 어려운 일이었다. 삶에 처음 겪는 황금빛 행복과 칠흑 속을 천 번씩 만 번씩 오가며 이러다 내가 미치겠구나 싶었다. 세상의 모든 자극에 이토록 부정적으로 반응하는 너는 대체 누구니? 너도 나처럼 염세적이고 소심하고 우울하게 살게되는 걸까?
평생 예민하다는 소리를 듣고 자라면서도 예민함에 대해 진지하게 고찰해 본 적은 없었는데 나를 닮은 아이를 낳고나서는 잠시 멈추어 설 수밖에 없었다. 예민한 아이에 관한 책을 닥치는대로 읽고 비슷한 아이를 키우는 엄마를 만나 소통했다. 덕분에 육아가 수월해진 건 '예민함'이 '특별함'으로 바뀐 후부터이다. 그리고 인지한 더 중요한 사실은 나 역시 특별한 아이였다는 것. 그럼 단어가 바꿔준 이 특별한 엄마와 아이는 어떻게 살아가야할까?
2.
제목부터 말하길 저자는 예민함을 무기라고 했다. (작가의 원제가 궁금한데 독일어라서 알 수 없는 점이 아쉽다) 그러니까 어릴 때부터 귀에 박히게 들어온 '너는 애가 왜 그렇니?'라는 가시 박힌 질문에 '어, 나는 예민해서 그래.'라고 당당히 말해도 된다는 거 아닌가. 하지만 예민함을 강점으로 만들려면 예민함을 다루는 방법을 알아야 한다는데 처음에는 이 부분이 어렵게 다가왔다. 예민한 사람들은 공감능력과 행간을 읽는 능력이 탁월해 그 직감을 잘 활용하기도 하지만, 타인의 감정이나 인정에 쉽게 휘둘려 종국에는 내것이 사라지고 혼란 상태가 온다고도 한다. 예민한 사람은 이기적이고 까칠하며 소심한 사람이라는 사회적 통념에 시달리다가 그것과 다른 쭈구리같은 내 성격을 대변해주는 것 같아서 읽는 내내 무척 위안이 되었다. 이러한 상황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자신의 한계를 제대로 설정해야한다고 하는데 이 '한계설정'이 내 삶과 달라 어렵기도 했고 반면에 흥미로워서 몇 번이나 곱씹어 읽었는지 모르겠다. 결국 이 한계라는 것은 나에 대해 제대로 알고 인정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쉽게 말해 내 그릇의 크기를 아는 것. 나는 요만한데 내 그릇이 너무 크다고 착각해 허덕이거나, 실제보다 작다고 여겨 머물러있는 것이다. 나를 온전히 인정하고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을 아는 것이 나를 존중하는 첫 번째 발걸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타인과의 관계에 있어서는 나와 너의 경계를 지각하여 그 다름을 인정하는 것이라고 이해했다. 너의 다름을 보는 것이 아니라 '나'의 다름을 인정하고 나의 한계를 제대로 알 때에 휘둘리지 않고 건강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책에서 가장 흥미롭게 던져진 부분은 온전히 나에게 집중하라는 것이었는데, 그 중에서도 '신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라는 이야기가 무척 새로웠다. 예민함은 기질이니 내적인 부분만 다룬 책일거라 생각했었는데 신체의 반응에 귀 기울이라니. 머리나 마음은 당위성을 이야기하면서 자신의 경계확장을 강요하기 십상이지만 몸은 가장 솔직하고 직접적인 반응을 나타내기 때문에 몸의 주인이 몸의 이야기를 제대로 들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생각해보니 나의 마음 뿐 아니라 타인의 마음, 타인의 생각에 집중하느라 가장 소홀히 한 것이 내 몸이었던 것 같다. 나는 과연 내 몸의 소리에 얼마나 집중하고 있었는가. 그러고보면 지나친 예민함으로 발현된 둔감함이 눈을 가려 상황 파악을 못할 때 위경련이나 불면 등으로 몸이 먼저 신호를 보내줄 때가 많았다.
물론 집중해야할 것은 신체 뿐이 아니다.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여야한다. 나의 진짜 감정인지, 진짜 내 생각인지 판단하며 오로지 내 과제에만 집중하라고 한다. 타인과의 경계, 사회와의 경계, 그리고 나 자신과의 경계를 잘 그어 지각하고 존중하면 내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삶의 자리에 설 수 있을 것이다. 나에대한 온전한 지각을 하지 못하면 직감을 잃고 중심이 무너지게 된다. 결국 자존감이다. 내 삶의 중심엔 언제나 내가 있어야겠다.
3.
과도한 인정욕구가 나를 휘감아 고통스러울 때에 한 걸음 멈춰 생각해야지. 나는 어디에 있는가. 나는 무슨 말을 하고 있는가. 나는 나를 얼만큼 사랑하는가.
그리고 나와 내 아이의 관계. 나는 최선을 다해 내어주는 사랑이 아이의 총량에 못 미쳐 아이도 나도 계속 방전되고있는지 모르겠다. 내 배터리 세 칸을 너에게 온전히 내어줘도 너의 두 칸에 못 미칠지 모르지. 하지만 어쩔 수 없다. 빨리 방전되면 자주 충전하면 돼. 내가 너를 사랑하는 사실은 변함이 없으니 이런 엄마를 있는 그대로 보아주길, 나를 닮은 너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길. 엄마인 나와 딸인 나 사이를 오가며 잃어버린 '나로서의 나'에 조금 더 집중할 때가 온 것 같다. 육아 5년차, 이제 어린이가 되어버린 아이에게 한 숨을 돌릴 때가 되니 내가 보이기 시작한다. 어느새 후즐근한 껍데기만 남은 아줌마. 어디로 가야할지 몰라 울먹이던 때에 마침 이 책을 읽게되어 정말 감사하다.
+
사람은 누구나 예민한 구석이 있을 것이다. 이 책이 주는 메시지는 단지 예민한 사람에게 국한된 것은 아니라 생각한다. 다들 한번쯤 읽어보면 좋겠다.
+
표지 디자인이 정말 좋습니다.
- 좋아요
- 6
- 댓글
- 0
- 작성일
- 2023.04.26
댓글 0
댓글이 없습니다.
첫 번째 댓글을 남겨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