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사진
manza
  1. 기본 카테고리

이미지

도서명 표기
예민함이라는 무기
글쓴이
롤프 젤린 저
나무생각
평균
별점8.9 (43)
manza
1.
아이를 낳고 기르며 아이의 모습에 투영되는 어린 내 모습에 꽤나 괴로웠었다. 나의 예민함을 그대로 빼다박아 세상의 자극이 고통스러운 작은 아이의 삶이 벌써부터 걱정되었고 나처럼 살게될까 전전긍긍했다. 
내 뱃속에서 나온 아이는 잠을 자지 않았고 밥을 먹지 않았다. 소리를 들어도, 빛을 보아도, 냄새를 맡아도 울었다. 바람이 불어도 울었고 손과 발에 무언가 스칠 때마다 울었다. 아이를 사랑하는 것은 그 무엇보다 쉬운 본능이지만 아이러니하게 그 무엇보다 어려운 일이었다. 삶에 처음 겪는 황금빛 행복과 칠흑 속을 천 번씩 만 번씩 오가며 이러다 내가 미치겠구나 싶었다. 세상의 모든 자극에 이토록 부정적으로 반응하는 너는 대체 누구니? 너도 나처럼 염세적이고 소심하고 우울하게 살게되는 걸까?

평생 예민하다는 소리를 듣고 자라면서도 예민함에 대해 진지하게 고찰해 본 적은 없었는데 나를 닮은 아이를 낳고나서는 잠시 멈추어 설 수밖에 없었다. 예민한 아이에 관한 책을 닥치는대로 읽고 비슷한 아이를 키우는 엄마를 만나 소통했다. 덕분에 육아가 수월해진 건 '예민함'이 '특별함'으로 바뀐 후부터이다. 그리고 인지한 더 중요한 사실은 나 역시 특별한 아이였다는 것. 그럼 단어가 바꿔준 이 특별한 엄마와 아이는 어떻게 살아가야할까?


2.
제목부터 말하길 저자는 예민함을 무기라고 했다. (작가의 원제가 궁금한데 독일어라서 알 수 없는 점이 아쉽다) 그러니까 어릴 때부터 귀에 박히게 들어온 '너는 애가 왜 그렇니?'라는 가시 박힌 질문에 '어, 나는 예민해서 그래.'라고 당당히 말해도 된다는 거 아닌가. 하지만 예민함을 강점으로 만들려면 예민함을 다루는 방법을 알아야 한다는데 처음에는 이 부분이 어렵게 다가왔다. 예민한 사람들은 공감능력과 행간을 읽는 능력이 탁월해 그 직감을 잘 활용하기도 하지만, 타인의 감정이나 인정에 쉽게 휘둘려 종국에는 내것이 사라지고 혼란 상태가 온다고도 한다. 예민한 사람은 이기적이고 까칠하며 소심한 사람이라는 사회적 통념에 시달리다가 그것과 다른 쭈구리같은 내 성격을 대변해주는 것 같아서 읽는 내내 무척 위안이 되었다. 이러한 상황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자신의 한계를 제대로 설정해야한다고 하는데 이 '한계설정'이 내 삶과 달라 어렵기도 했고 반면에 흥미로워서 몇 번이나 곱씹어 읽었는지 모르겠다. 결국 이 한계라는 것은 나에 대해 제대로 알고 인정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쉽게 말해 내 그릇의 크기를 아는 것. 나는 요만한데 내 그릇이 너무 크다고 착각해 허덕이거나, 실제보다 작다고 여겨 머물러있는 것이다. 나를 온전히 인정하고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을 아는 것이 나를 존중하는 첫 번째 발걸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타인과의 관계에 있어서는 나와 너의 경계를 지각하여 그 다름을 인정하는 것이라고 이해했다. 너의 다름을 보는 것이 아니라 '나'의 다름을 인정하고 나의 한계를 제대로 알 때에 휘둘리지 않고 건강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책에서 가장 흥미롭게 던져진 부분은 온전히 나에게 집중하라는 것이었는데, 그 중에서도 '신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라는 이야기가 무척 새로웠다. 예민함은 기질이니 내적인 부분만 다룬 책일거라 생각했었는데 신체의 반응에 귀 기울이라니. 머리나 마음은 당위성을 이야기하면서 자신의 경계확장을 강요하기 십상이지만 몸은 가장 솔직하고 직접적인 반응을 나타내기 때문에 몸의 주인이 몸의 이야기를 제대로 들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생각해보니 나의 마음 뿐 아니라 타인의 마음, 타인의 생각에 집중하느라 가장 소홀히 한 것이 내 몸이었던 것 같다. 나는 과연 내 몸의 소리에 얼마나 집중하고 있었는가. 그러고보면 지나친 예민함으로 발현된 둔감함이 눈을 가려 상황 파악을 못할 때 위경련이나 불면 등으로 몸이 먼저 신호를 보내줄 때가 많았다.

물론 집중해야할 것은 신체 뿐이 아니다.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여야한다. 나의 진짜 감정인지, 진짜 내 생각인지 판단하며 오로지 내 과제에만 집중하라고 한다. 타인과의 경계, 사회와의 경계, 그리고 나 자신과의 경계를 잘 그어 지각하고 존중하면 내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삶의 자리에 설 수 있을 것이다. 나에대한 온전한 지각을 하지 못하면 직감을 잃고 중심이 무너지게 된다. 결국 자존감이다. 내 삶의 중심엔 언제나 내가 있어야겠다.



3.
과도한 인정욕구가 나를 휘감아 고통스러울 때에 한 걸음 멈춰 생각해야지. 나는 어디에 있는가. 나는 무슨 말을 하고 있는가. 나는 나를 얼만큼 사랑하는가. 
그리고 나와 내 아이의 관계. 나는 최선을 다해 내어주는 사랑이 아이의 총량에 못 미쳐 아이도 나도 계속 방전되고있는지 모르겠다. 내 배터리 세 칸을 너에게 온전히 내어줘도 너의 두 칸에 못 미칠지 모르지. 하지만 어쩔 수 없다. 빨리 방전되면 자주 충전하면 돼. 내가 너를 사랑하는 사실은 변함이 없으니 이런 엄마를 있는 그대로 보아주길, 나를 닮은 너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길. 엄마인 나와 딸인 나 사이를 오가며 잃어버린 '나로서의 나'에 조금 더 집중할 때가 온 것 같다. 육아 5년차, 이제 어린이가 되어버린 아이에게 한 숨을 돌릴 때가 되니 내가 보이기 시작한다. 어느새 후즐근한 껍데기만 남은 아줌마. 어디로 가야할지 몰라 울먹이던 때에 마침 이 책을 읽게되어 정말 감사하다.


+
사람은 누구나 예민한 구석이 있을 것이다. 이 책이 주는 메시지는 단지 예민한 사람에게 국한된 것은 아니라 생각한다. 다들 한번쯤 읽어보면 좋겠다.
+
표지 디자인이 정말 좋습니다.



좋아요
댓글
0
작성일
2023.04.26

댓글 0

빈 데이터 이미지

댓글이 없습니다.

첫 번째 댓글을 남겨보세요.

사락 인기글

  1. 별명
    리뷰어클럽공식계정
    작성일
    2025.5.7
    좋아요
    댓글
    101
    작성일
    2025.5.7
    첨부된 사진
    첨부된 사진
    20
  2. 별명
    리뷰어클럽공식계정
    작성일
    2025.5.8
    좋아요
    댓글
    60
    작성일
    2025.5.8
    첨부된 사진
    첨부된 사진
    20
  3. 별명
    리뷰어클럽공식계정
    작성일
    2025.5.7
    좋아요
    댓글
    118
    작성일
    2025.5.7
    첨부된 사진
    첨부된 사진
    20
예스이십사 ㈜
사업자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