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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르미
- 작성일
- 2015.11.8
비극의 탄생·반시대적 고찰
- 글쓴이
- 프리드리히 니체 저
책세상
"그리스 정신과 염세주의"
니체는 <이 사람을 보라>에서 이 책의 제목을
'음악에서의 비극의 탄생'으로 보지 말고
'그리스 정신과 염세주의'로 볼 것을 주문한다.
그의 주된 관점은 '음악'이 아니라 '그리스 정신'인 것이다.
니체는 다시 이런 질문을 한다.
그리스인이 무엇을 가지고 염세주의를 극복했는가?
이 책은 두 가지 새로운 이해를 담는다.
첫 번째는 디오니소스적 현상에 대한 이해이며,
두 번째는 소크라테스주의에 대한 이해이다.
그리고 세 번째로 덧붙이자면
디오니소스와 함께 그리스 정신을 이끌어온
아폴론 주의에 대한 이해이다.
"삶의 가장 낯설고 가장 가혹한 문제들에 직면해서도
삶 자체를 긍정한다."
이것을 니체는 '디오니소스적'이라고 부른다.
이는 '파괴시의 기쁨'도 포함하는 '생성에 대한 영원한 기쁨'이다.
먼저 디오니소스와 아폴론이 이 책에서 어떤 의미로 사용되었는지 알아보자.
그리스 예술의 발전은 아폴론적인 것과 디오니소스적인 것인 이중성으로 결합되어 있다.
아폴론 = 조각, 필연성, 개별화의 원리, 꿈의 예술가, 객관적 예술가. 서사시인
디오니소스 = 음악, 우연성, 인간과 인간 사이의 연합, 도취의 예술가, 주관적 예술가, 서정시인
으로 대략적으로 나눌 수 있다.
디오니소스적인 것과 아폴론적인 것은
항상 서로 뒤이어 새롭게 태어나면서,
그리고 상호 강화시켜나가면서 그리스의 본질을 지배해왔다.
이 둘의 짝짓기를 통해 마침내
디오니소스적이기도 하고 아폴론적이기도 한
아티케 비극과 연극적 디오니소스 주신 찬가를 산출한다.
디오니소스적 인간은 햄릿과 유사하다.
양자는 우선 사물의 본질을 올바로 들여다보았다.
행위한다는 것은 그들에게 구토를 불러일으켰다.
왜냐하면 그들의 행위는 사물의 영원한 본질을
조금도 변화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인식은 행위를 죽인다.
이제 인간은 어디에서나 존재의 공포와 불합리를 보게 된다.
여기, 이러한 위험 속에서 예술이
구원과 치료의 마술사로 다가온다.
오직 예술만이 실존의 공포와 불합리에 관한
저 구역질 나는 생각들을 더불어 살 수 있는 표상들로 변화시킬 수 있다.
즉, 예술의 디오니소스적 구원만이
우리를 이 세계에서 진정으로 구원할 수 있는 것이다.
한편 그리스 비극은 풀 수 없는 갈등으로 인해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이는 다른 예술 장르들과는 달리
비극적 죽음을 맞이한 것이다.
비극의 종말과 함께 그리스인은 자신의 불명성에 대한 믿음도 포기했다.
이 때 '소크라테스'라는 마신이 등장한다.
이윽고 디오니소스적인 것과
소크라테스 적인 것의 새로운 대립이 시작된다.
그리스 비극은 이 대립으로 인해 멸망했다
이제 여기서 디오니소스적과 소크라테스적인 것에 대해 니체는 좀 더 깊이 설명한다.
디오니소스는 '비극적 합창'으로 설명된다.
관객은 합창단에게서 자신을 재발견하고,
근본적으로 청중과 합창단 사이에 대립이 없었다.
이는 몰입을 통한 개체의 포기다.
음악가와 시인, 무용가와 예언자가 합쳐 한 사람이 된 것이다.
한편, 소크라테스적 경향을 살펴보자.
'연극화된 서사시'와 '오페라'다.
이러한 형식에서는 비극적 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
이는 자신이 떠올리는 영상에 완전히 몰입할 수 없다.
그는 자기 앞에 놓인 형상을 언제나 움직이지 않고,
먼 눈길로 관조하며 바라본다.
그는 계획을 세우고, 열정적 배우로서 그것을 연기한다.
음악은 비극에서 추방된다
이제 '소크라테스주의'에 더 접근해보자.
그 최고의 법칙은 다음과 같다.
"아름답기 위해서는 모든 것이 이상적이어야 한다."
"아는 자만이 덕성을 가지고 있다"
이성을 강조한 소크라테스.
니체는 소크라테스를 고대 비극을 죽인 살인자로 선포한다.
그리스의 비극에서 소크라테스는 무엇을 보았던 것일까?
그는 결과 없는 원인, 원인 없는 결과처럼
철저하게 비합리적인 것을 보았던 것이다.
따라서 소크라테스에게는 이것이 결코
"진리를 말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이는 "분별력을 갖추지 못한" 것으로 보였던 것이다.
소크라테스의 제자, 플라톤은 예술에 비판을 가했다.
즉 예술은 가상의 모방이라는 것,
경험세계보다 더 낮은 영역에 속한다는 비난을 했다.
그는 예술에 철학의 '시녀' 지위를 부여한다.
여기서 아폴론적 경향은 논리적 도식주의로 변질되었다.
그리고 디오니소스적인 것은 자연주의적 격정으로 변했다.
"미덕은 지식이다.
죄는 무지에서 저질러진다.
미덕을 갖춘 자는 행복한 자다."
.
여기서 니체는 그리스인들의 정신을 잘 표현한
'비극적 신화'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의 마지막 물음.
그리스인들에게 비극적 신화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신화는 우리를 음악으로부터 보호해준다.
다른 한편으로 신화는 음악에게 최고의 자유를 부여한다.
음악은 그 답례로서 비극적 신화에
감동적이고 설득력있는 형이상학적 의미를 선사한다.
음악을 통해 비극적 청중은 최고의 환희를 예감한다.
이 환희에 이르는 길은 몰락과 부정을 통과한다.
비극적 신화는 오로지 디오니소스적 지혜가 아폴론적 예술 수단을 통해 형상화된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니체는 마지막에 이렇게 말한다.
내 친구들이여.
나와 함께 디오니소스적 삶과 비극의 부활을 믿자.
소크라테스적 인간의 시대는 지나갔다.
"지금 나를 따라와 비극을 보세.
그리고 나와 함께 두 신의 신전에 제물을 바치세!"
이 책은 음악에 대한 니체의 찬사다.
이는 서문에 있는
학문은 예술가의 광학으로 바라보지만
예술은 삶을 광학으로 바라본다.
는 말로도 충분히 설명될 수 있다.
지식을 탐구하는 학문은
삶을 탐구하는 예술에 비할바가 못된다는 것이다.
사실, 학문이 지향해야 하는 목표점은 '예술'이다.
하지만 소크라테스 주의-라고 니체가 말하는
이제까지의 철학은,
지식과 인식에 만병통치약의 힘을 부여하며
오류를 악덕 그 자체로 생각했다.
음악을 좋아해서 작곡까지 했었다는 니체.
(실력은 형편없었다고 한다. ㅎㅎ)
그는 음악에서 디오니소스적인 것을 찾았고,
이제까지의 철학과 기독교 사상을 부정했다.
이 책은 니체의 기본 사상을 이해하는 데 좋은 책이나
일단 그리스 비극과 여러 사상가를 알아야 하기 때문에
-프로메테우스나 사티로스, 에우리피데스 등
그런 면에서는 이해하기 좀 어렵다.
그리스 비극과 함께 같이 읽으면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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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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