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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읽는 이에 따라 스포일러로 느끼실 수도 있습니다.


 


<악마를 보았다>의 쟁점이 되는 건, 단연 잔인함이다. 개봉 전부터 수위 높은 잔혹함으로 등급제와 심의 때문에 말이 많았더랬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영화는 잔혹하지 않기도 하고 잔인하기도 하다.


 




 


국정원에서 일하는 수현(이병헌) -전작 <아이리스>에 이어 이병헌은 또다시 국정원 요원으로 나온다. nis. -은 사랑하는 약혼녀를 잃는다. 동료들 눈을 피해 사랑의 세레나데까지 불러주던 연인이 처참히 살해된 것이다. 심지어 그녀는 수현의 아이를 가지고 있던 상황. 은퇴 경찰을 아버지로 두고, 국정원 요원을 약혼자로 둔 장주연 - 이병헌의 약혼녀 장주연 역으로 나오는 배우 오산하는 탤런트 윤정희를 연상케 한다. 새된 목소리와 쌍커풀 진 땡그란 눈. 결국 살해될 운명임에도 처연하지만 당당하게 "살려주시면 안 돼요?"라고 말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어머니는 죽음 앞에서도 그렇게 당당한 것일까?- 을 살해한 간 큰 이는 누구일까. 수현은 장인의 도움을 받아 용의자 4명을 확보한다.


 



 


까놓고 말해 영화의 잔혹성은 애교 수준이었다. 잔혹영화의 지존급이라 볼 수 있는 <마터스>나 <쏘우>에 비하면 그렇다. 특히 <마터스>의 잔혹성에는 한참 못 미친다. 통통 굴러다니는 머리는 데스마스크를 연상하게 하지만, 웃기다. 귀엽다는 얘기다. 차라리 안 보여줬으면 더 무서울 것 같은데 자꾸만 잘린 머리의 표정을 보여주니 그저 귀엽다는 거다. 영화가 나오기 전부터 말이 많았던 장면이 군데군데 보이지만, 그것도 좀 과장됐단 생각이 든다. 거의 어물쩡 보여주고 넘기기 때문.


 



 


이 영화의 잔인함은 이런 비주얼적인 면에선 거의 찾아볼 수 없다는 게 내 생각이다. 진짜 잔인한 건 따로 있으니까. 바로 현실을 보게 하는 눈,이다. 보통 영화 한 편을 보고 나면 3~4일동안 거의 그 영화 생각만 하게 된다.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기억해내보고, 좋았던 점, 이건 좀 별로였다 하는 점을 계속 떠올려본다. 그렇게 영화를 씹어먹는데 이 영화는 씹어먹을수록 무섭다. 왜냐? 영화가 보여주는 비주얼 자체는 전혀 잔인하지 않은 대신, 다만 영화 속 일들이 우리가 모르는 사이, 우리가 살고 있는 어디에선가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넌지시 알려주는 것 같아서다.


 


백미러 양쪽에 천사의 날개를 단 채 샛노란 병아리 같은 학원차를 모는 운전 기사. - 악마도 천사의 보호를 받나? 장경철은 천사의 날개를 단 그 학원차 안에서 수많은 범죄를 저지른다. 이 영화의 도입부는 매우 아이러니해서 더더욱 기억에 남는다. - 살짝 귀엽게 나온 배에 복실복실한 갈색 스웨터. 곰돌이 푸우를 연상시키던 '아저씨'가 어느 날, 나를 끌고 가 꽁꽁 묶더니 눈을 까뒤집고선 묻는 거다. "내가 너 좋아하면 안되냐? 내가 너 좋아하면 안돼? 아 18, 이 *같은 세상."


 


또는 포슬포슬 눈이 내리는 어느 날 밤, 타이어가 펑크났는데 예의 그 사람 좋은 웃음으로 타이어를 봐주겠다고 한다. 경계를 풀지 않고 창문은 아주 조금만 내린 채 "괜찮아요"라고 웃는데, 이 아저씨가 돌변하는 거다. 이런 일들 앞에선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속수무책이 될 수밖에 없단 사실은, 잔인하다. 하는 데까지 경계해봐도 악마는 막을 수 없으니까.


 


심지어 이건 내 자신이 악마가 된다 해도 마찬가지다. 수현은 연인을 살해한 장경철을 찾아낸다. 그를 고통스럽게 죽이기 위해 잡았다 풀어주고, 잡았다 풀어준다. 응급조치까지 세심하게 해준다. - 장경철을 찾아내기까지 그는 용의선상에 오른 나머지 두 명을 만나는데 이 과정이 또 엄청 위트 있다. 배우 천호진이 눈을 부라리며 "니 자지 누가 그랬어?"라고 외칠 때, 안 웃은 관객은 없었을 터. - 찾아내자마자 단번에 죽이는 게 아니라 조금씩 조금씩 고통스럽게 죽인다,는 설정이 매력적이다. 그러나 애초부터 수현은 경철의 상대가 되지 않는다. 수현은 장경철이라는 악마를 보고, 자신 안의 악마를 보았다. 그러나 뼛속부터 악마인 장경철에게 수현은 질 수밖에 없는 운명. 수현은 그를 고통스럽게 죽이고자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고통스러운 죽음을 안겨줄 것인가? 누가 봐도 육체적 고통보다 정신적 고통이 곱절은 더 고통스러울 것 같다. 하지만 장경철은 사람이 아니다. 짐승이다. 악마다. 내적 고통을 가할, 치명적인 약점이나 아픔이 없다. 억눌린 마음과 아무리 발산해도 풀리지 않는 화만 있을 뿐. 그래서 수현은 장경철에게 육체적 고통만을 가할 수밖에 없는, 고통스런 복수의 약점을 가지고 싸우게 된다. 눈물을 흘리는 수현을 앞에 두고, 장경철은 말한다. "니가 날 데리고 논 것 같지? 아니야. 니가 졌어." 그리하여 결국, 수현은 악마에게 질 수밖에 없는 태생적 한계를 지닌 것이다. 수현은 악마가 될 수 없는 '사람'이기 때문.


 


내가 악마로 분한다 해도 악마는 상대할 수 없다. 악마에겐 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세상에 악마들은 있다. 억눌린 화와 자제를 잃은 마음. 세상을 향한 절절한 분노로 똘똘 뭉친 악마들의 존재. 이 사실이, 나는 너무 잔인하다. 영화를 생각할 때 무서운 건 그래서였다. 홀로 자고 있는 내 방 한 구석에서 악마가 나를 노려본다면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영화 속 여자들 -그런데 왜 영화에선 여자들만 살해당할까? 여자가 사회의 가장 약한 존재인걸까? 아니면 장경철이 강간 및 살해범이기 때문에? - 이 살해당할 처지에 놓일 때마다 나는 '내가 저 상황이면 어떻게 빠져나갈까'를 생각했다. 한국영화가 점점 더 잔인해진다고 말들이 많다. 영화는 현실을 반영한다는 측면에서 볼 때, 어쩌면 그만큼 우리나라의 현실이 시궁창이고, 그 시궁창이 무지막지하게 잔인해서 생긴 결과는 아닐런지. 더불어 김지운 감독의 말이 떠오른다. 이 영화를 본 관객들이 "왜 누군가는 악마가 되고, 왜 누군가는 평범하게 살아가는지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다"고 한 말...... 


 



 


한편, <악마를 보았다>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게 두 배우의 미친 연기력이다. 영화 속 장경철 역의 최민식의 연기력은 연일 논란 없이 호평이다. 나 역시 차를 모는 와중에도 짐승인지 악마인지 모를 형형한 악의 기운을 뿜어내는 그의 눈빛에 소스라치게 놀랐다. - 꼭 한 번 이런 눈빛을 본 적 있었는데, 사람이 개가 되면 그런 눈빛이 되는 것 같다. - 그러나 나는 영화를 보면서 수현 역의 이병헌에 더 주목했다. 이 잘생긴 배우는 나이가 드는 만큼 연기력도 점점 정점에 다다르는 것 같다. 김지운 감독과 함께한 <놈놈놈>에서 악마적인 캐릭터를 연기했을 때 이 배우 이만하면 됐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그때 이병헌의 연기는 나무랄데 없이 최고였으니까. 그러나 <악마를 보았다> 속 수현은 그 이상이다. 수현이 장경철과 식물원에서 처음 만나는 장면. 주체할 수 없는 분노와 가슴 속 원망을 이병헌은 경련으로 표현한다. 꽉 쥔 주먹을 타고 올라 온 그 분노는 눈가에서 경련을 일으킨다. - 왜 나이들면 눈 아래 축 늘어지는 살 있잖은가. 그 부분이 틱장애에 걸린 사람처럼 움직이는데, 보는 이의 마음을 잡고 흔드는 거지. - 이 장면에서 정말 숨이 헉-했다. 어떻게 이런 표현을 할 수 있단 말인가, 하고 너무 놀라서다. 영화를 보고 집에 돌아와서 동생이며 남자친구와 함께 거울 보고 아무리 표현해보려 해도 안 됐다...... 역시 배우는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 난단 말인가......! 특히 많은 사람들이 말하는 그 엔딩 신에선 가타부타 설명도 필요 없다. 웃는 건지 우는 건지 모를 그의 페이소스가 스크린을 뛰어넘어 관객들의 가슴에 아주 그냥 파바박, 꽂혀 버리니까.


 



 


자, 그래서 영화를 보고 난 총평은? 김지운 감독은 천재라는 거^^;


 


 <악마를 보았다>는 장르 영화다. 일찍이 우리나라에 이런 영화는 없었다. 잔인하다고 지레 겁먹거나 쓰레기 영화라고 치부하면 곤란하다. 장르 영화의 매력은 그 장르에 얼마나 충실하냐에 있으니까. 우리나라에 이런 영화가 탄생하리라곤 기대조차 못했는데, 이건 월척이다. 긴장감 조성도 탁월하다.  - 앞으로 우리나라 슬래셔 무비의 장래 또한 기대된다. - 역시 김지운은 달랐다. <조용한 가족>, <달콤한 인생>, <장화홍련>, <놈놈놈>까지 김지운 감독은 우리를 실망시킨 적이 없다. 감독의 네임밸류만으로도 꼭 한 번 봐야 할 영화다, 이 영화는. 게다가 이모개 촬영감독의 성실함이 만들어낸 뛰어난 영상미, - 카메라 워킹, 죽인다. - 김지운 감독의 모든 작품을 관통하는 가슴 저린 사운드 트랙. 이들은 또 얼마나 유려한지.


 


결국 <악마를 보았다>는 감독, 배우, 영화의 절묘한 삼합이다. 떡 벌어진 한 상이다. 삼합은 원래 먹기가 힘들다. 싫어하는 사람도 있고. 그러나 삼합 좋아하는 사람들은 삼합에 환장한다. 그러니 <악마를 보았다>라는 삼합을 어떻게 소화시키느냐는 각자에게 달려 있다.


 



 


- 예전에 김지운 감독님을 뵈었을 때, 감독님이 다음에 또 어떤 영화를 만들지 무지 기대했었다. 트레이드 마크인 캡 모자를 꾹 눌러쓰신 채, 담배마저 카리스마 있게 피우시던 모습. 사인까지 멋있었다....+_+! (감독님 사인, 집에 잘 보관돼 있어요. 박제라도 할까봐요...... ㅋㅋ) 박찬욱, 봉준호 감독님들이 옆 집 아저씨처럼 친근한 인상이라면 김지운 감독님은 온 몸으로 "나 감독이오" 외치는 아우라를 뿜어내신다. 이제 또 다시, 감독님의 다음 작품이 기대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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