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평

골골이
- 작성일
- 2020.3.19
당신에게 베토벤을 선물합니다
- 글쓴이
- 임현정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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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이라고 하면 우리들은 흔히 지루하고 고루하며 지식인층(?)이 들은것만 같은 선입견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대중음악에 비해 보편적이지 않아 일부터 찾아 듣지 않는 이상 일상생활에서 쉽게 들을 일은 없다. 하지만 클래식 악장이나 제목은 잘 모를지라도 베토벤과 그가 만든 음악은 한번 들으면 친근하고 익술한 느낌이 들 것이다. 1770년대 독일에서 태어난 루트비히 판 베토벤은 성인이 된 이후에는 오스트리아에서 살았다고 한다. 그는 감기와 폐렴으로 인한 합병증으로 투병을 하는 와중에도 최고의 클래식 음악을 만들며 오늘날까지도 수많은 사람들에게 영혼의 울림을 안겨주고 있다.
천재소리를 들으며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며 살았던 모짜르트와 달리 베토벤은 아버지의 학대속에서 불행한 유년기를 보냈다고 한다. 어린시절 할아버지와 형제를 4명이나 잃었고, 17세때에는 엄마가 일곱번째 아이를 출산한 후 이듬해 결핵으로 사망했다고 한다. 열악하고 불행한 환경속에서 자란 베토벤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불리함을 음악이라는 예술로 승화시켰다.
베토벤이 죽고 사후에 자필 메모를 팔아 그돈을 벌었다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베토벤은 엄청난 메모광이었다고 한다. 자주 가는 식당 벽이나 문짝에도 악상이 떠오르면 무조건 펜을 들고 끄적일 정도로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기록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었다. 합병증으로 귀까지 들리지 않았기 때문에 아마 뭔가를 기록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을까 싶다. 하지만 그에게도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으니 바로 글씨를 너무 못썼다고 한다. 그가 쓴 메모를 해석하지 못해 수많은 연구가들이 당황한 악필가였다고 한다. 특히 한국사람들에게 가장 친숙하게 알려진 멜로디 "따다다단~"으로 시작하는 교향곡 <운명> 역시 그의 수많은 메모 중에서 그의 고뇌와 번뇌가 고스란히 나타났다고 한다.
19세기에는 리스트, 베르디, 로시니 등 유명한 음악가들이 활동했지만 그 중 당연 으뜸을 보이는 사람은 베토벤이었다. 가난한 음악가들이 그러하듯히 특권층의 후원으로 먹고 살았지만, 귀족이 눈앞에 지나가도 모자를 벗지 않고 고개를 뻣뻣히 들고 서 있었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로 귀족들의 특권의식에 큰 반발심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베토벤은 나폴레옹이 전쟁에서 용맹을 떨칠 당시 그가 프랑스의 자유,평등,박애 정신을 구현해 줄 인물이라 생각하고 교향곡인 에로이카 즉 <영웅>을 헌정하려고 했지만, 나폴레옹이 스스로 황제즉위에 오르자 불같이 화내며 헌정을 철회했다고 한다.
기존의 틀을 과감히 깨고 그는 음악계의 새로운 혁신을 불러일으켰다. 당시 거의 모든 음악은 완전한 화음(으뜸을)으로 시작하네 반하여 베토벤은 긴장감을 주는 화음(딸림화음) 등의 특정화음을 사용하며 그 시대에 가지고 있던 고정관념을 과감히 깨버렸다. 물론, 그의 이런 시도는 당시 평론가들에게 환영받지 못했다. 모든 천재들이 그러하듯 후대에 더 많은 존경과 찬사를 받은 오늘날 음악의 성인_악성이라 불리우는 베토벤은 <월광>,<운명>, <영웅>, <전원>, <엘리제를 위하여>, <프로메테우스의 창조물> 등 소나타, 교향곡, 협주곡 등 수많은 작품을 남겨놓으며 오늘날까지의 수많은 전세계인들에게 가슴따뜻한 울림과 영혼을 전달해 주고 있다. 음악이라는 건 꼭 많은 지식을 습득하고 들어야 그 음악을 이해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베토벤 그 어떤 상황 속에서 곡작업을 했는지, 베토벤이라는 인물에 대한 정보를 조금더 알고 클래식에 접한다면 음악이 가슴속에 전달해주는 의미는 이전보다 폭넓게 다가올 것이다.
책안에 QR코드가 들어있고 텍스트와 알맞은 베토벤의 음악을 좀더 쉽게 접할수 있다고 하니, 출퇴근길에 가요나 팝음악만 듣지 말고 베토벤과 함께 클랙식의 깊이를 좀더 알아나가보면 어떨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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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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