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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내별
- 작성일
- 2011.4.30
달의 궁전
- 글쓴이
- 폴 오스터 저
열린책들
폴 오스터의 작품을 몇 편 접했다. 시작은 자신의 자전적 소설인 <빵 굽는 타자기>였다. 그 다음은 <뉴욕 3부작>, 그리고 세 번째로 접한 작품이 <달의 궁전>이다. 앞 서 읽은 그의 다른 작품에 비해 이야기 중심적이고 비교적 극적인 요소가 강한 책이었다. 이야기 중간쯤에는 에핑의 삶 전반에 걸친 모험 같은 이야기가 가미되어 있어서 더욱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주인공 마르코 포그는 열한 살에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뒤, 클라리넷 연주자인 외삼촌 빅터와 함께 살게 된다. 그는 학생들에게 레슨을 하면서 문라이트 무즈(Moonlight Moods)로 밴드 연주를 하고 있다. 아빠의 존재를 알 수 없는 자신의 조카에게 “아이들은 모두 사생아란다. 하지만 제일 착한 아이들만이 그렇게 불리지.”라고 말하는 빅터. 그는 다른 누구도 의미를 찾아낼 수 없을 것 같은 데서 의미를 찾아내어 그것을 아주 교묘하게 은근히 자존심을 부추겨주는 말로 바꾸었고 마르코는 비록 그의 말이 대단한 허세와 허풍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마음 한구석으로는 그의 말을 모두 믿고 싶었다. 이런 외삼촌 덕분에 어려운 시기를 무사히 넘기고 뉴욕 컬럼비아 대학에 진학하게 된다.
마르코가 가장 사랑하던 인물인 빅터 삼촌이 갑자기 돌아가시고 그가 없는 세상에 혼자 남겨진 마르코는 마치 신에게 버림받은 느낌이 들었다. 그 이후로 마르코의 삶은 바뀌어 또 다른 세계로 사라지기 시작했다. 갈 수 있는 데까지 가본 다음, 거기에 이르렀을 때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보고 싶었다. 결국 굶어 죽을 위기에 인생의 밑바닥까지 간 그는 우연히 알게 된 키티 우라는 여성에 의해 삶을 구원받게 된다. 바닥까지 닿게 되면 다시 그 바닥을 딛고 발로 굴러 올라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되는 걸까. 그는 이후로 휠체어에 의지한 조금은 괴팍한 노인 에핑의 비서로 들어가면서 서서히 삶의 안정을 찾아가게 된다. 에핑의 삶에 대한 일대기를 듣고 기록하고 결국 에핑의 아들에게 이를 전달하는 임무를 맡게 된다. 에핑의 이야기는 황무지 횡단 여행과 그 여행 중에 겪은 생사의 갈림길.. 그리고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는 흥미진진함으로 가득하다.
그의 이야기가 완성되고 얼마 안되어 예견했던 대로 에핑은 죽고 마르코는 에핑의 유언대로 에핑의 자서전을 그의 아들에게 전해준다. 에핑의 아들인 솔로몬 바버는 50년 동안 자기 아버지가 죽은 줄 알았던 만큼 충격을 받지만 결국 자신도 그의 아버지와 같은 일을 저질렀음을 뒤늦게 알게 된다. 그리고 솔로몬은 자신의 아버지 에핑이 그러했듯이 자신의 이야기를 마르코에게 해준다. 결국 그가 들었던 이야기들은 자신의 가족사가 된다. 에핑은 어쩌면 의도적으로 자신의 아들을 찾지 않았고, 솔로몬은 자신의 아들이 있었는지 몰랐으므로 비의도적이라 할 수 있겠지만 여하튼 자신의 아들을 돌보지 못한 건 에핑과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마르코 또한 자신의 아이를 지키지 못하고 이로 인해 사랑을 잃게 된다. 마르코는 에핑의 모험의 장소였던 동굴을 확인하기 위한 여행을 떠나고 거의 빈털터리가 되어 이 여행을 끝마치게 된다.
그 언덕 꼭대기에 이르자 태평양이 한 눈에 들어왔지만 나는 물가에 이를 때까지 내리막길을 따라 계속 걸었다. 내가 신발을 벗고 발바닥에 와 닿는 모래를 느낀 것은 오후 네 시였다. 나는 세상 끝까지 온 것이었고 그 너머로는 바람과 파도, 중국 해안까지 곧장 이어진 공허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여기가 내 출발점이야, 나는 속으로 그렇게 말했다. 여기가 내 삶이 시작되는 곳이야.
나는 마지막 남은 석양이 사라질 때까지 한참이나 그 해변에 서 있었다. 내 뒤쪽으로 라구나 해변 마을이 귀에 익은 세기 말의 미국적 소음을 내며 깨어나기 시작하고 있었다. 내가 해안의 굴곡을 바라보고 있을 동안 한 집 두 집 불이 켜지기 시작했고, 다음에는 언덕 뒤에서 달이 떠올랐다. 달아오른 돌처럼 노란 둥근 보름달이었다. 나는 그 달이 어둠 속에서 자리를 잡을 때까지 눈 한번 떼지 않고 밤하늘로 솟아오르는 모습을 지켜보았다(445쪽).
마르코의 굴곡진 삶의 반은 자신의 의지에 의해서, 그리고 나머지 반은 주위의 인물들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이다. 첫 번째 삶의 위기에서 그는 키티 우라는 여성에 의해서 구원받게 되고, 사랑을 잃었던 두 번째 삶의 위기에서는 솔로몬의 보살핌과 위로에 의해 구원 받았다면, 세 번째 위기로 다시 빈털터리가 되었을 때는 결국 자신의 힘으로 스스로를 구원한다.
<태양은 과거이고, 지구는 현재이고 달은 미래이다.> 태양이 지고 나면 다가오는 어둠과 함께 자신을 밝히는 달, 그 온화한 빛 속에서 그는 달이 상징하는 미래를 위해 새로운 시작을 다짐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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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