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매나무
  1. 老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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Ⅵ. 도(道)의 정치경제학


 


도에는 영원히 이름이 없다. 도가 소박해서 비록 작아 보인다고 할지라도 이 세상의 그 누구도 감히 신하로 삼을 수 없는 것이다. 통치자가 만약 이것을 지킬 수만 있다면 만물은 스스로 와서 복종할 것이고, 하늘과 땅은 서로 부합되어 단비를 내릴 것이다. 이렇게 되면 백성들은 명령을 내리지 않아도 스스로 고르게 될 것이다. 처음부터 통치체계에는 이름이 존재한다. 이름들이 이미 있다면 멈출 줄을 알게 된다. 멈출 줄을 아는 것이 위태롭지 않게 되는 이유다. 도가 천하에 있는 것은 마치 작은 계곡들이 강과 바다에 대해 맺는 관계와 같다. (백서본 76장, 왕필본 32장, 곽점본 갑10장)


 


 노자의 도가 간결한 철학적 체계와 풍부한 사례를 들더라도 수탈과 재분배라는 교환의 논리를 벋어나지 못한다. 낮추기 때문에 높아지고 비우기 때문에 찬다는 역설에도 ‘남음이 있는 것[有餘]’을 전제되어 있기 때문이다. 원초적 수탈과 폭력이 만든 원초적 불평등 관계가 이미 존재한다는 의미이다. “처음부터 통치체계에는 이름이 존재한다[始制有名]”고 말하면서, 자신의 철학체계에서 핵심적인 것 중 하나인 ‘이름[名]’을 명확하게 한다. 이름은 구분과 분별을 가리키는 말인데 정치적으로는 통치자와 피통치자라는 근원적인 위계를 가리킨다. 여기서 노자는 ‘도는 무명(無名)이다’고 하여 노자철학에는 위계성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무명’으로서의 도는 ‘유명(有名)’으로서의 위계성에서 유래된다. 도의 논리는 ‘명’의 세계를 ‘무명’의 세계로 만드는 논리가 아니라, ‘명의 논리’를 파시즘적 열광 속에서 확대 재생산 하려는 논리다. “이름이 이미 있다면 멈출 줄을 알게 된다”는 것은 통치자는 자신이 이미 폭력과 수탈의 상태에 있는 통치자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의미다.


 노자철학을 연구하는 대부분의 연구자들은 ‘명’을 망각하고 ‘도’에만 빠져 지속적인 수탈과 재분배의 논리를 망각한 채 노자철학을 신비화했다.


 노자는 기본적으로 국가와 통치자의 입장에 서 있는 철학자라고 할 수 있다. 노자는 다음 세 가지 주장을 펼친 철학이다. 첫째, 통치자와 피통치자라는 근원적인 부등가관계, 즉 원초적인 폭력과 수탈의 단계가 존재한다. 둘째, 통치자가 부등가관계를 영속적으로 유지하려면 피통치자로 하여금 재분배라는 등가교환적 논리를 통해서 자발적 복종의 상태에 들도록 유도해야 한다. 셋째, 등가교환의 목적은 부등가교환을 영구히 확대 재생산하는데 있는 것이지 부등가교환을 폐기하려는 데 있지 않다. 『노자』81개 장 전체는 두 번째 주장에 주목해서 전개되고 있다. 통치자가 반드시 지켜야 할 점은 이러한 은밀한 수탈을 피통치자가 알아채지 못하게 해야 한다는 점이다.


 봉건사회에서 자본주의 사회로 이동한 것은 국가가 수탈의 대상을 농민에서 상업자본과 산업자본으로 이동시켰다는 것을 의미한다. 상업자본과 산업자본은 공간과 시간의 차이를 이용해서 잉여가치를 남긴다. 농민은 이제 국가로부터 재분배의 혜택에서 일차적 지위를 잃게 되었다. 자본의 논리 또한 국가의 수탈논리와 같이 부등가교환을 등가교환으로 위장한다. 산업자본주의 체제에서 노동자는 생산자이면서 소비자의 위치에 있기 때문에 자본은 재분배와 수탈의 논리를 통해 지배자로서의 위치를 영속시킨다.


 루소에 따르면 주종관계는 기본적으로 폭력과 이에 근거한 결핍의 발생을 통해서 작동한다. 통치자는 수탈을 통해서 피통치자를 결핍에 상태에 놓이게 하고난 후에 수탈한 것을 재분배함으로써 피통치자에게 은혜와 보호를 받는 것처럼 느끼게 만든다. 수탈과 재분배라는 국가의 교환논리에 포획된 우리는 주체라기보다는 매체에 지나지 않는다. 통치자나 자본가도 국가와 자본의 매체라는 데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루소는 ‘자연상태’로 복귀하면 매체가 아닌 주체가 될 수 있다고 보았다. 자연상태로 복귀하지 않고 우리가 주체성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역사적인 안목으로 타인을 내재화하지 않고 마주치고 스스로 변형시켜야 한다. 스피노자, 루소, 니체, 마르크스, 장자 등 많은 철학자들은 사회의 원자들[=개체들], 외재적인 타자들, 그리고 개체들의 마주침과 응결에 의거한 연대를 강조했다.


 지금은 지배의 의지에서 기원한 동질성을 해체하는 시기다. 이를 통해 차이를 발견하며, 이때 마주친 외재적인 타자와 새로운 연대를 형성해야 한다. 진정한 타자는 조화로운 관계가 아니라 환원불가능한 단독성이다. 국가 논리에 포획된 매체에서 벗어나 새로운 주체로 변형하려면 타자와 마주쳐 연대해야 한다.(164~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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