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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새
- 작성일
- 2023.12.5
[eBook] 50대, 다시 시작하는 글쓰기
- 글쓴이
- 여성숙 저
퍼스트클래스
여성숙 작가의 <50대, 다시 시작하는 글쓰기>를 읽었다.
누구든 나이가 들고, 흰 머리와 주름이 생기는 길을 피할 도리는 없다.
젊은 시절 아무리 포부가 대단했다고 해도, 그리고 그 포부의 대부분을 이룬 극소수에 속한다고 해도, 시간의 흐름은 막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2023년 12월 기준 80.5억을 돌파했다는 이 지구상의 인구 거의 대부분은 젊은 시절의 뜻을 다 이루지 못하고 산다. 선량한 대개의 사람들은 어느 순간부터 자신의 뜻을 이루기보다 가족 돌보기 - 아이를 키우고, 점점 노쇠해지시는 부모님을 챙기고, 또 이를 위해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인간으로서의 기본적 책임을 다하기 - 로 30대에서 50대의 시간을 오롯이 바치게 마련이다.
그 시간 속에 '젊은 시절의 포부'는 고사하고, '나 자신'조차 어디로 갔는지 잊어버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여성의 경우는 그 정도가 더 심하다. 아무리 여성의 사회 진출이 늘고, 수십 년 전에 비하면 남녀평등이 진전된 시대라 해도 마찬가지다. 오히려 돈도 벌어야 하고, 육아와 가사 노동까지 병행해야 한다는 점에서 어찌 보면 더욱 온전한 자기 자신과 마주하는 시간은 줄어드는지 모른다.
그토록 가족을 위해서 헌신해도, 다른 직업과 달리 대개는 정당한 보상도 받지 못하며, 한 사람의 희생을 바탕으로 다른 가족 구성원들은 그만한 혜택을 누려도 인정이나 진심에서 우러난 감사의 따스한 말조차 제대로 받지 못한다.
매스컴에서 강조하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았으며, 심지어 젊음과 미모까지 유지하는 슈퍼우먼, 알파우먼의 사례는 빌 게이츠나 주커버그, 일론 머스크 만큼이나 현실에서는 극소수다.
거의 대부분은 저자처럼 어느 날 문득 거울을 보고 전에 보이지 않던 흰 머리와 주름을 발견하며 '아, 내가 어느새 50대가 되었구나' 하는 것을 자각한다.
그나마 그것을 자각할 정도면, 아주 조금이라도 오롯한 무명의 헌신만으로 지내 온 시간에서 그만큼의 빈틈은 허락되었다는 사인이다.
책임져야 할 자식이나 노부모님 봉양이라는 과제가 남아있다면, 50대가 아니라 60대, 심지어 70대가 되어서야 거울을 들여다보고 자신의 나이를, 자신의 이름을 실감하고, 자신의 과거를 돌아볼 여유가 생길 테니 말이다.
그런 면에선 50대에라도 자신을 돌아볼 여력이 생긴 건 축복이다.
하지만 바로 다음 시점엔 대개 '새로운 무엇에 도전하기엔 너무 늦어버린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것이다.
거울 속에 비친 모습에 빛나는 눈망울과 깨끗한 피부, 새카만 머리칼이 더는 안 보이고, 밤을 새도 끄떡 없던 체력도 어디론가 사라지고, 갱년기를 알리는 이런저런 불편한 건강의 적신호마저 울리니 더욱 그럴 것이다.
저자도 썼다시피 오랜만에 만난 동창회의 주제도 대개가 건강에 대한 근황과 염려로 점철되고 말이다.
그렇지만 여성숙 저자는 이런 '외견상' 변해버린 많은 삶의 조건들 앞에 무력하게 한숨 쉬며 무조건 체념하지 않는다.
못 이룬 포부가 있다 해도, 어찌 보면 그것을 이룬 것보다 삶에서 더 중요하고 가치 있는 시간들을 보내온 대부분의 모든 50대가 쌓아 온 일종의 '사소한 모든 것들'에 대한 긍정적 수용을 베이스로, '지금 이 순간 내가 좋아하는 것, 느끼는 것, 하고 싶은 것'에 집중하는 현명한 자세를 선택한다.
그리고 1020 시절 청춘을 불태웠던 사회적 함양을 위한 헌신이란 '거창한 목표'(저자의 표현)나, 혹은 법학도로서의 사회 정의 실현을 꿈꾸던 시간보다 더 근본적인 어린 시절의 자신과 먼저 다시 만나고, 그때 느꼈던 개인의 꿈과 좌절, 추억부터 소중히 되살려낸다.
그런 바탕 위에서 지금 자신이 하고 싶은 것, 좋아하는 것은 거창한 이상의 실현보다는 '음악과 문학과 그림을 더 좋아하는 자신'을 자각하고, 꽃과 풀과 나무와 하늘과 바람 같은 자연에서 마음의 평화를 찾고, 강아지와 고양이를 사랑하며, 스스로 하고 싶은 것은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것'임을 깨닫고, 다시 글쓰기에 도전한다.
어찌 보면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과 선택이다.
하지만 바로 이 '지극히 개인적인 선택'이라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누구의 엄마도, 누구의 부인이나 며느리도, 혹은 직장의 어떤 직급도 아닌 내 이름 석자를 가진 온전한 자신만의 가치와 취향에 집중할 수 있는 것이 진정 자유로운 삶이며, 그런 개인이 많아지는 사회가 궁극적으로 자유롭고 민주적인 사회의 기틀이 되기 때문이다.
이런 자각과 나를 찾는 50대의 몇 년을 보내고 나면, 비로소 '인생은 60부터'라는 말이 허언이 아니라 삶의 빛나는 진실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젊은 시절엔 아득하게만 느껴지고, 엄두도 내지 못하던 흰머리의 시대인 60대, 70대, 80대, 그 이상의 시간이 실은 찬란하고 정결하게 빛나는 아름다운 은빛 시간으로 채워질 테고 말이다.
어차피 황금빛 관을 머리에 쓰는 이들은 역사상 극소수 중에서도 극소수에 불과할 뿐더러, 그런 이들의 외견상 화려해 보이는 삶도 파고들어가면 그 찬란함 이상의 고통과 대가가 숨어 있다는 것을 이제는 알기에 더 편안한 은빛 관들을 머리에 쓸 아름다운 노년의 시간들 말이다.
여전히 엄마로서, 가족으로서의 책임은 남아 있겠지만, 글쓰기를 다시 시작하며 차차 다시 개인의 삶을 회복해 나가며 멋진 은빛 관의 시기를 준비해가는 성숙한 50대를 경과하고 있는 저자에게, 그리고 그러한 잔잔한 삶을 공유해준 저자에게 응원을 보낸다.
- 이 책을 읽으며 하나 덧붙이고 싶은 것은 좋은 수필인 이 이야기를 PDF 파일이 아니라, 보통 전자책처럼 E-pup 형식으로 다시 출판해 주었으면 하는 생각이었다. PDF 파일은 대개 스맛폰으로 전자책을 보는 독자들에게는 글자 크기 조절이 안 되서 가독성이 현저하게 떨어진다.
회화나 사진 등으로 이루어져 PDF 품질을 유지하는 게 더 실익이 있는 컨텐츠가 아니라, 소설이나 수필처럼 텍스트 위주로 이루어진 컨텐츠는 E-PUB 제작을 적극 추천하며, 표지에도 저자의 사진이나 직접 그린 자화상 같은 모습이 자연 풍경과 함께 들어가면 더 많은 50대들에게 관심을 끌어 읽게 하고, 또 그만큼 위안을 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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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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