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왜 배움은

무학
- 작성일
- 2022.3.27
가려진 세계를 넘어
- 글쓴이
- 박지현 외 1명
슬로비
<독서 편식>
특정 음식만 가려 먹는 편식. 기호가 지나치게 강한 탓에 섭취 영양소의 균형이 깨질 경우 건강을 해칠 수 있으며, 특히 성장 어린이에게는 발육뿐만 아니라 성격 형성, 미각의 폭, 음식 상황 대처에 문제가 될 수도 있다.
책 읽기에도 편식이란 단어를 붙여 쓴다. 독서 편식. 사회과학과 비평서가 대부분인 나의 독서 생활. 더구나 난 독서계의 어린이지 않은가. 그렇다면, 나는 사유의 성장에 문제가 있을까. 시선의 폭이 좁아졌을까?
<석고대죄>
편식 탓에 매달 읽을거리를 찾고, 검색하고, 기웃거리는 곳이 참 좁다. 실로 다양한 책이 많을 텐데 눈앞에 드러나지 않는 이상 알 수가 없다. 서평단은 이런 편식 길에 잠시 옆길로 빠져 다양한 책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책 제목을 보는 것만으로도 재미가 있기도 하다. 물론 ‘이런저런 신간이 있구나’ 정도로 그치는 수준이고 막상 서평단 신청은 하지 못한다. 이놈에 편식 때문에.
편식 때문에 석고대죄해야 할 일이 있다. 정확히 1년 전, 쉽게 생각하고 서평단에 접근했던 한 권의 소설책. 그야말로 딱딱한 ‘활자’라고 불러 마땅했던 그간의 책들에서 너무나 곱고 순한 우리말로 이뤄진 책을 손에 들게 되었고 그 문장의 부드러움에 도저히 적응을 못 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책은 노려보고만 있다. 고백하자면 난, 독후기 없이 책 먹은 이력을 가진 1인이다. 다시는 사람 착해지는 책은 들지 않으리라.
<사회 고발서?>
편식과 1년을 넘긴 죄인 된 신분임에도 불구하고『가려진 세계를 넘어』는 조심(죄송)스레 내 손에 들렸다. 내 입맛에 맞는 책이라 생각했다. 남과 북, 두 한국, 두 여성, 그리고 연대. 잊고만 있던 한반도의 통일 염원을 재확인하는 책이라 생각했다. 분단된 조국에 살면서 책만 끼고서 뭐를 하고 있단 말인가. 내 편식에 맞는 책이리라.
그러나 짐작한 책은 아니었다. 한 여인의 아픔이 그대로 담겨 있었다. 박지현. 이 여인이 겪은 경험의 무게가 너무나 무겁게 느껴졌다. 그런데도 앉은자리에서 동작을 멈출 만큼 다음 이야기가 궁금한 한 편의 소설처럼 흥미진진했다. 자신의 지난 이야기를 들려주는 북한의 ‘박지현’. 지현의 경험을 자신의 생애에 비춰 기록하고 있는 남한의 ‘채세린’. 그리고 이들의 대화를 듣고 있는 나.
<박지현과 그의 한국>
“엄마, 왜 날 버렸어?” 지난 상처를 묻어두고 지내던 박지현은 2012년 어느날, 맨체스터 공원에서 아들이 던진 물음이 계기가 되어 자신의 이야기를 하게 된다. ‘버리지 않았다’는 간단한 말로는 할 수 없었다고.
청진이 고향인 박지현의 유년시절은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있다면 60년대에 아파트에서 지냈다는 것. 그 시절 북한 사회는 사뭇 보릿고개라는 말로 대표되었던 남한의 모습과 비교해볼 때 풍족해 보인다. 그러나 우리가 익히 아는바 북한 경제는 7~80년대를 거치며 점차 기울다 90년대를 넘어오며 식량 대부분을 의존하던 소비에트 연방 붕괴에 가뭄과 수해가 겹쳐 추락했다. 이는 박지현의 기억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처음 강제노동을 경험해야 했던 이야기. 식량 배급이 충분치 않아 허기진 가족을 위해 몰래 마련한 아버지의 달걀 50개를 간밤에 뱃속에 넣으며 잠시 행복했던 하룻밤의 이야기. 이들 가족이 범죄의 흔적으로 남은 달걀껍데기를 심각히 고민하여 갈아서 가루로 만드는 모습을 보며 웃프면서도 주변의 눈을 의식하는 남과 북의 다른 이유가 교차 되었다. 속은 달라도 겉으로 주변과 같아야 하는 사회와 겉으로 주변보다 더 잘나야 하는 사회다. 이러한 면은 출신 성분이라는 그 유명한 신분제의 출발에도 들어있다. 항일운동에 참여했던 ‘엘리트’ 계층과는 달리 해방 이후 월남한 외할아버지로 인해 ‘적대계층’에 속했던 지현과 그 언니는 뛰어난 학업성적임에도 불구하고 더 나은 사회적 진출에 좌절해야 했다. 겉으론 사회주의 표방하면서도 그 속은 처음부터 계층을 나눠 기회의 한계를 규정한 사회다.
체제의 신념으로 극복하기에 한계를 드러낸, ‘고난의 행군’이라 알려진 그 기근을 겪은 90년대의 북한 사회는 상상 이상이다. 수많은 주민이 집도, 직장도, 목숨도 잃고 북을 탈출했다. 박지현의 가족도 예외가 아니었다. 장사수완이 좋았던 어머니에 기대어 살아남으려 고군분투하는 그의 가족들. 또 수완 좋은 어머니 덕에 수학교사가 된 지현이지만 아이들이 하나둘 사라지고 큰아버지와 아버지마저 굶어서 자리에 눕는 현실 앞에, 그리고 먹을 것을 찾아 산과 들로 땅을 파헤치는 자신을 보며 참을 수 없는 체제의 혼란과 굴욕을 느낀다. 소식이 끊긴 어머니와 동생을 기다리며 홀로 병석에 누운 아버지를 돌보지만, 언니 가족의 설득에 이끌려 아버지를 남겨두고 국경을 넘는다.
<세 여성>
여러 죽을 고비를 넘긴 끝에 난민 자격으로 영국에 정착해 인권운동에 뛰어든 ‘박지현’은 우연한 일로 통역 일을 잠시 맡은 남한의 ‘채세린’을 만난다. 경계 속에 ‘또 다른 한국’을 마주하지만 비슷한 연배의 두 한국, 두 여인에서 하나의 한국, 같은 여인의 마음이 된다. 외교관의 딸로 살아온 채세린은 처음엔 박지현이 겪은 상처와 경험의 무게를 감당하기 힘들다고 고백한다. 하지만 잠시 잠깐 박지현의 무거운 상처를 거부하며 평온한 이전의 일상을 그리워한 자신을 부끄러워하며 연대를 이어나가게 된다. 만약 박지현 자신이 글로 썼다면 드러냄이 덜했으리라. 구술로 전하는 박지현의 이야기에 채세린이 공감하고, 아파하고, 상처를 드러내어, 기록되어 목소리에 힘을 더했다. 그 드러내는 공감에는 (국경을 넘을 때 도와준) 남편에게도 말하지 못한 여자로서의 상처도 있다.
프랑스에서 먼저 출간된 원제는 『두 한국 여성』이다. 그러나 내게 또 다른 한 여자가 보였다. 옮긴 이 장상미다. 감춰진 한국의 박지현, 공감한 한국의 채세린. 두 여자는 한국어로 연대를 이루지만 오랫동안 프랑스어권을 살아온 채세린의 머릿속 언어는 프랑스어였다. 이런 이유로 또 다른 한국 여인 장상미를 거쳐 내 손에 들렸다. 오랫동안 사회운동을 하며 무력감에 지쳐있던 옮긴 이 또한 채세린처럼 박지현의 상처에 두려움을 느꼈지만, 후반 작업에서는 박지현을 응원하며 오히려 힘을 얻었다 한다. 다른 세 곳의 한국 여인들이 만나 가려진 세계가 전하는 목소리를 낸 것이다.
<다시 편식>
내 편식에 맞는 책이라 생각했다. 서로 다른 사회와 그 체제가 들어있어야 했다. 그러나 책은 내 기대를 무너뜨렸다. 그 세계에는 얼마 전까지 우리의 1960년대가 있었다. 또 국경을 넘어 겪은 박지현의 상처는 상상하기도 어려운 무게로 다가왔다. 지현이 딛고, 넘고, 발버둥 쳤던 행위에 응원을 더하며 책이 흥미진진한 소설처럼 읽히는 건 왜일까. 두 여인이 나누는 대화에 공감되어 어느덧 조용히 그 목소리를 경청하는 것일까. 착해지는 책을 거부했지만, 어느덧 나는 착해진 것일까.
좋아하는 것만 취하는 편식. 음식에도 편식이 있고 책 읽기에도 편식이 있다. 또 사회를 보는 시선에도 편식이 있다. 우리 사회의 편식. 가려진 세계를 보는 우리 사회의 편식. 오랫동안 가려진 세계를 보는 우리 사회의 편식증에 약이 있을까. 이 책 『가려진 세계를 넘어』는 박지현의 이야기로, 그녀를 공감한 채세린의 목소리로, 우리 정서로 번역한 장상미를 통해서 우리 사회 오랜 편식증의 처방을 알려준다.
바로 공감이다.
우리는 누군가 듣지 못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고, 하지 못하는 말을 할 수 있다. 누군가 보지 못하는 것을 볼 수 있고, 하지 못하는 노래를 할 수 있다. 누군가 먹지 못하는 음식을 먹을 수 있고, 가질 수 없는 것을 가질 수 있다. 우리는 그 누군가를 위해, 우리를 위해 아파해야 한다. 부제처럼 이들은 계속 말할 것이고 우리는 또 이들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가려진 세계가 전하는 공감의 목소리를.
ㅡ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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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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