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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도싸움, 이제부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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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깎고야 만 내 아들의 묶은 머리털


 ‘땀’의 대가만이 값지다?


 조급함에 관한 우리 속담, 참으로 재미있군요


 재미있는 논리 문제


 광고는 우리에게 무엇을 광고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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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 각지 기상 이변 속출은 지구 온난화 영향인가


 똥이 자원이다.


 논리와 논증


 표리부동에 관한 우리 속담


 재미있는 논리 문제


 성역할주의(性役割主義)란 무엇인가


 미래를 행해 열린 어린이의 삶 - 양성성


 여성, 평등한 세상 열어갈 ‘변혁의 모태’


 여성 관련 신문 기사 모음


 남녀공학고 성적 산출 “통합하자” “분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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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끼전에 나타난 민중의 모습


 판치는 일본 만화, 한국 시장 50%잠식


 과학 기술의 발전, 유죄인가 무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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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환경 문제의 본질


 환경 - 기술 중심적 시각과 생태 중심적 시각


 ‘춘호’처의 매춘 행위는 정당화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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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군신화 - 서사 문학 바탕 이룬 웅녀의 극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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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에서의 안락사 논쟁


 일본에서의 안락사 논쟁


 카톨릭의료원 의학 윤리 선언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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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반 및 비디오에 대한 사전심의제 반대 의견


 문화 산업의 첨병, 할리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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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재 관련 신문 기사 모음


 백년 철도 천년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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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학적 인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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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프랑스의 ‘바칼로레아’




프랑스의 바칼로레아는 논술시험의 원조격이다. 오랜 역사와 수준 높은 문제의 출제로 특히 이름높은 바칼로레아(프랑스에서는 줄여서 박 ‘BAC’이라 부른다)는 유럽에서도 이미 하나의 모범적인 입시 모델로 자리잡았다. 9월에 새 학기가 시작되는 유럽학제의 특수성 때문에 6월께 치러지는 바칼로레아는 지원하려는 대학의 전공분야에 맞춰 계열별로 시행된다. 인문학을 전공하려면 바칼로레아 L(문학)을, 사회과학은 바칼로레아 ES(경제 - 사회), 순수자연과학은 바칼로레아 S(과학), 산업기술분야는 바칼로레아 T(테크닉)를 통과해야 한다. 어떤 계열이건 상관없이 불어, 외국어 한 과목, 역사 및 지리, 수학, 철학은 공통필수 과목에 속한다. 영어의 경우 외국어 선택과목 가운데 한 가지 선택과목에 불과하며 필수는 아니다. 입시생은 공통필수과목에 지원하는 계열별로 한 과목씩 추가해 보게 된다. 바칼로레아 문학계열일 경우는 외국어 두 과목을 더 봐야 하고, 바칼로레아 경제-사회계열의 경우는 경제사회과학 과목을 추가하는 식이다.


채점기준표․교사 자질로 공정성 확보


외국어 시험은 필기와 회화 시험을 동시에 보고 수학은 주관식 풀이문제로 출제되지만 나머지 과목들은 대부분 완전히 논술하거나 논평하라는 식의 문제로 일관된다. 보통은 논술문제 하나와 텍스트 논평문제 등 두 문제 가운데 택일하도록 돼 있다. 텍스트 논평이란 하나의 유명한 텍스트를 주고 얼마나 잘 이해했는지를 보는 문제인데, 이 텍스트에 대한 개괄적 설명, 자신의 평가 등이 요구된다. 여기에서 채점의 기준이 되는 것은 아무래도 논리성과 이해력이다.


독일, 영국 등 이웃나라에는 없는 프랑스 입시만의 고유한 과목인 철학의 경우는 출제문제의 높은 수준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다. 특히 그 해 출제된 철학문제는 국민적 관심사가 되며 국민 전체가 각자 한번씩 생각해 보는 문제로 인식되기도 한다. 작년의 철학문제가 더더욱 그러했는데 출제된 문제는 <참을 수 없는 것은 참아야 하는가?>라는 문제였다. 바로 바칼로레아 ‘철학’과목의 존재는 근본적으로 따지기 좋아하고 토론․ 논쟁이 습관화된 프랑스인들의 속성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논술식 문제에서 채점의 객관성의 보장은 이곳 프랑스에서도 중요한 문제중 하나다. 우선 바칼로레아 시험문제는 각 도별로 다르게 출제된다. 도교육위원회에서 과목당 약 10여명의 일선교사를 선발, 소집해 과목당 장학감독관의 주관 아래 출제방향에 관한 몇 차례의 회의를 가진다. 참가한 교사는 최종적으로 각 하나씩의 문제를 제안하는데 이 때 개략적인 모범답안을 제출한다. 제안된 문제 중 하나의 문제를 선택하는 것은 장학감독관의 고유한 권한이다. 채점의 경우는 거의 모든 일선 교사들이 참여한다. 일단 채점자로 소집되면 그들은 채점의 원칙에 대한 설명을 듣고 모범답안 예와 채점기준표를 지급받고 철저히 여기에 의거하여 채점한다고 한다. 채점은 과목당 20점 만점에 몇 점씩으로 채점되는데 16점 이상이면 트레 비엥(매우 우수), 14점-16점이 비엥(우수함), 12점-14점은 아세 비엥(제법 잘함), 10점-12점은 파사블(합격가능)이라는 평점을 받게 된다. 10점 이하는 물론 불합격이다. 1회 채점 원칙이어서 우리로서는 공정성 문제를 의심할 수도 있겠으나 프랑스에서 채점의 주관성 문제는 전혀 논란거리가 되지 않고 있다. 채점의 공정성을 보장하는 것은 과학적으로 작성된 채점기준표와 이미 질적 수준이 보장된 교사자격시험을 거친 교사들의 자질이다. 채점기준표는 가령 어떤 대목이 나오면 몇 점을, 어떠한 요지이면 몇 점을 주라는 식의 지침이다.


제도의 전통․교육 과정 완성도가 관건


앞서 언급했다시피 1회 채점 원칙이지만, 당락이 결정되는 선인 10점 이하일 경우에 한해서 다른 채점자가 한번 더 채점해 공정성을 보완한다. 또한 이 경우는 고등학교 전학년 과정의 성적도 참조하므로 일종의 보완적 내신제도라고 할 수 있다.


출제한 교사의 경우 만일 발생할지도 모를 문제유출에 대해서는 엄중한 책임이 주어지는데 불미스러운 사태가 발생해 해당 바칼로레아가 전면 무효화되는 사고가 한두 번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와 같이 대입시험이 절대적 비중을 갖지 않는 데다 오랜 역사를 통해 제도적으로 정착돼 입시부정이란 위험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도 문제가 되는 것은 채점의 공정성이겠지만 뚜렷한 주관성과 논리의 중요성이 이미 국민적으로 수용된 상황에서 채점교사가 나름대로의 자율성을 가지고 채점하는 데 대해서는 어떠한 반발도 없다. 더군다나 교육의 철저한 국가관리가 실현되고 있고, 교육에서의 부정이 거의 전무한 프랑스에서 교사가 의도적으로 주관식 채점을 하는 것은 교사 자신으로서도 아무런 이득 없는 행위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또한 국민 교육 교과과정 자체가 이미 토론과 논리주장 중심으로 이루어져온 상태에서 바칼로레아란 고등학교 때의 시험과 계속성을 가지는 하나의 공식적인 국가시험 정도로 인식된다. 요는 논술고사의 공정성이나 제도적 보완장치가 우선인 것이 아니라 논술식의 시험제도가 교과과정에 얼마나 뿌리를 내리고 있는가의 문제가 우선이라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바칼로레아 제도의 공정성을 보장하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니라 1백년 이상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바칼로레아 제도의 전통과 프랑스 교육과정의 질적 완성도다. 성문법이냐 불문법이냐가 민주주의 완성도의 기준이 될 수 없듯이 바칼로레아 논술시험의 성숙도의 기준이 제도적 장치에 있지는 않다는 것이다. <한겨레21 96.1.24>


토론식 수업 도입 “할 말은 해라”


김정근(19․서울ㄷ고3년)군은 1학년 때부터 최근까지 약 50여권의 책을 읽었다. 현대 한국소설 등 문학작품을 비롯해 철학 역사 사회 예술 등 다양한 분야를 섭렵했다. 시사잡지나 신문 등에 좋은 칼럼이나 사설이 나면 노트에 스크랩해 밑줄을 쳐가며 읽기도 하고, 짬짬이 시중에 나온 논리시리즈 등 논술에 도움이 되는 책도 뒤적였다. 지난 여름 방학에는 친구 3명과 함께 설악산과 속초 등을 여행한 뒤 여행기를 써 친구들과 함께 서로의 글을 읽고 토론하기도 했다.


내신 3등급인 김군은 “평소에 책읽기와 여행을 좋아하지만 성적은 썩 좋은 편이 아니어서 고민스러울 때도 있다”면서 “그러나 다양한 직․간접적 체험이 대입 준비에도 도입이 된다는 생각에 큰 부담을 갖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임정(19․여․서울 ㄷ여고3)양은 “교과서 외에도 소설이나 신문사설, 문학 등 다양한 주제의 글을 읽으니 재미있고, 글쓰기도 처음에는 막막했으나 점차 자신감이 생겼다”면서 “특히 많은 책을 읽고 다양한 경험을 쌓은 아이들이 논술에 강한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해 초 많은 고교들은 입학을 앞둔 신입생들에게 논술시험 대비 입학 과제물을 내주었다. 고교학습과정을 예습하게 한다는 목적에서 국어 영어 수학 중심의 문제풀이 과제물을 내주던 과거의 경우와 달리 필독서 읽어 오기, 독후감 쓰기 등 논술시험에 대비한 과제물이 주어져 신입생들을 당황케 하기도 했다. 올해는 더욱 많은 학교들이 더욱 다양한 논술 과제물을 내줄 계획을 세우고 있다. 그러나 학생의 사고력과 체험의 폭을 넓히고 자신의 의견을 논리적으로 전개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기 위한 논술교육이 그 취지에 걸맞게 제대로 이뤄지고 있다고 하기는 아직 이르다. 많은 학생 수에 비해 논술을 지도할 수 있는 교사가 절대적으로 부족하고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는 통합적 교육도 쉽지 않다. 각 대학의 논술문제가 갈수록 다양화하는 데 반해 이렇다 할 가이드라인이 마련되지 않아 혼란스럽기도 하다.


김아무개군(18․서울 ㅅ고3년)은 “1, 2학년 때는 방학기간중 학교에서 추천하는 책을 읽었으나, 3학년이 되면서 대입을 눈앞에 두고는 기존 참고서에서 문제를 뽑아 글쓰는 형식과 방법 등을 집중 훈련하는 등 논술 육이 대입 준비로 변질되는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수능시험 인문계 여자 수석을 차지한 구효정(18․이화여자외국어고3)양은 “현재와 같이 한 반에 50명 가까이 되면 효과적인 토론수업을 진행하기 불가능하다”며 “주로 시중에 나온 책읽기 자료와 신문사설 등을 주요 교재로 사용하기 때문에 평소 접해보지 않은 문제가 출제될 때는 당황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교사들도 어려움을 토로하기는 마찬가지다. ㅅ고 최아무개(42․국어)교사는 “논술 전담교사 2명이 4개 반을 맡아 첨삭지도를 하다보니 1달에 2편 정도 밖에 쓰지 못한다”며 “주당 수업시간이 20시간 이상이고 담임까지 맡으면 국어교과서 진도 나가기도 어려운 형편”이라고 말한다. 이처럼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만족할 만한 논술교육을 실시하지 못하다 보니 고액 논술과외도 성행하고 있다. 입시학원 논술반이 성업중이며 일부 학생들은 일선 학원 국어강사와 현직 국어교사는 물론 국문과 대학원생들에게 시간당 10~30만원씩을 주고 논술과외를 받고 있다.


고3 학생을 개인지도하는 이아무개(30․ㅅ대 국문과 박사과정)씨는 “학생들이 대부분 학교에서 실시하는 논술교육에 불신감을 느끼고 있는 것 같다”며 “학생들도 글쓰는 훈련이나 논리적, 철학적 사고 기반이 없이 단기간에 글 쓰는 요령만을 배우려는 경향이 많다”고 말했다.


논술 교사 태부족, 고액 과외 부작용도


논술 열풍은 고교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다. 강남이나 목동 등 아파트 밀집 지역에서는 이웃 학부모들끼리 강사를 데려와 국교생 자녀들에게 `글짓기 과외를 실시하는 게 붐을 이루고 있다. 이런 수요에 따라 논술시장도 급격히 팽창해 논술 관련 참고서만 70~80종에 이른다. 그러나 이런 책들도 대부분 논리적 철학적 사고력을 키우기보다는 논술에 출제 가능성이 높은 글을 캡슐식으로 모은 것이거나 글쓰는 요령 등을 가르치는 것으로 진정한 논술 서적과는 거리가 먼 교재가 대부분이다. 전문가들은 결국 고교의 논술교육이 제대로 자리잡기 위해서는 대입논술의 형태가 학생의 대학수학능력을 상식적인 차원에서 평가하는 방식으로 개선돼야 하며, 고교에서도 입시교육이 아닌 인성교육적 측면에서 논술교육을 실시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한겨레21, 96.1.26>




  


2. 독도싸움, 이제부터다


“독도는 일본 땅”이라는 일본 총리의 망언으로 촉발된 독도파동이 조금 씩 수그러들고 있다. 일본이 독도영유권 문제에 대해서는 더이상 언급하지 않고, 배타적 경제수역(EEZ․Exclusive Economic Zone) 설정문제와 어업협정문제로 관심을 옮기고 있는 것이다.


일본은 평화선(이승만 라인) 설정 이후 늘 그래왔듯이 이번에도 불쑥 도발적 망언을 해놓고는 한발 빼는 듯한 태도다. 그리고 한국은 기름에 불 붓듯이 순간적으로 확 타오르다 이내 잊어버리고 만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얘기가 좀 다르다. 경제수역 문제를 둘러싸고 협상을 벌이게 될 지금부터가 독도싸움의 본격적인 시작이다. 일본정부는 경제수역 문제를 영토문제(독도 영유권문제)와 분리해 논의하자고 한다. 그러나 이는 교묘한 외교적 수사일 뿐이다. 이 두 가지는 현실적으로 떼 놓을 수 가 없다. 경제수역문제는 기점을 어디로 할 것인가가 초점이다. 일본 외상은 독도에 대한 영유권을 직접적으로 주장하지는 않으면서도 “경제수역의 기점을 설정함에서 우리 영토 어디를 제외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지 않다”고 말해 독도를 기점으로 삼을 수도 있음을 강력히 시사하고 있다.


이번만은 확실히 짚고 넘어가자


일본이 독도문제를 도발적 형태로 다시 꺼낸 것 자체가 바로 경제수역 설정과 어업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해보자는 속셈에서다. 자국 영토의 기점에서 2백 해리까지 배타적 권리를 행사하는 배타적 경제수역을 설정할 때 자국 영토의 끝을 어디로 삼을 것인가는 대단히 중요한 문제일 수밖에 없다. 동해상에서 일본영토의 끝은 오키도섬이다. 이 섬에서 독도는 한국 쪽으로 92해리나 떨어져 있다. 만일 독도를 일본의 야욕대로 자신들의 영 토로 편입시킨다면 그만큼 그들의 바다영토가 넓어지는 셈이다. 그래서 5월께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될 것으로 보이는 한국과의 경제수역 설정문제 와 어업협상이 시작되면 독도문제는 필연적으로 다시 불거져 나올 수밖에 없다. 일본은 그 때 또 “독도는 역사적으로, 국제법상으로 일본의 고유영토다”라고 주장할 것이다.


도대체 일본은 뭘 근거로 이런 터무니없는 주장을 주기적으로 반복하는 것일까. 일본이 내세우는 비장의 카드는 “다케시마(독도)를 시마네현의 부속으로 한다”는 메이지 38년(1905년) 시마네현의 고시 40호다. 일본은 그 이듬해인 1906년 조선왕조에 이 사실을 통보했다. 일본은 당시 조선왕조의 항의가 없어 이를 받아들인 것으로 본다는 터무니없는 주장을 한다. 당시 조선왕조는 을사조약 이후 외교권을 강탈당한 상태였기 때문에 항의할 만한 상황이 전혀 아니었다.


한국은 일본보다 5년이나 앞서 관보를 통해 영토임을 명확히 했다. 광무4년(1900년) 10월27일 대한제국 의정부 총무국 관보과 명의로 발간된 관보 1716호는 “울릉도를 울도로 개칭하여 강원도에 부속하고, 도감을 군수로 개정해 관제중에 편입한다”면서 “군청위치는 태하동으로 정하고 구역은 울릉전도와 죽도, 석도(독도는 동․서 2개의 돌섬으로 이루어져 있다)를 관할한다”고 명기했다. 이미 일본이 근대적 법규정을 들먹이며 독도를 행정구역에 편입하기 이전에 조선의 행정구역에 편입돼 있었던 것이다.


시마네현의 고시라는 것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독도가 일본 군국주의 팽창 시기에 강제로 점거한 것임을 잘 보여주고 있다. 당시 러시아와 전쟁 상태였던 일본은 군사적 목적에서 독도를 강제로 편입했다. 시마네현의 고시는 애초 일본인 어부가 독도에 대해 어로권을 인정해달라는 청원에서 비롯됐다. 그 청원에 대한 처리를 둘러싸고 일본의 내무성과 외무성은 심각한 이견을 드러냈다. 내무성은 독도가 조선영토임을 간접 확인하고 이로 인해 생길지도 모를 외교상의 문제를 들어 청원묵살을 건의한 반면, 외무성은 군사전략상의 이점을 들어 독도편입을 적극 추진하자는 의견을 내놓았다. 당시 내무성은 “이런 시국(러시아와 일본이 전쟁을 벌인 시점)에서 한국 영토일지도 모르는 한낱 불모의 암초를 영토 편입했다가 우리나라(일본)를 주목하고 있는 외국으로부터 한국 병탄의 야심이 있는 것 같이 큰 의심을 받는 것은 이롭지 못하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니 이를 거절해야 한 다”고 했다.


그러나 외무성은 “시국을 두고 말하면 영토 편입이 더욱 급요하다. (독도에)망루를 세우고 무선 혹은 해저 전신을 설치하면 적함(러시아) 감시상 최선이 아니겠는가”며 독도 편입을 적극 추진했다.


1693년부터 끊임없이 ‘도발’


일본은 실제로 러시아의 발틱함대 대부분을 수장시킨 독도 근해 해전 직후 “본도(독도)의 일본영토 편입으로부터 불과 수개월 지나서 세계 전사 에 일대 광채를 더한 일본해(동해) 대해전이 이 섬(독도) 부근에서 있었고”(은기도지 261쪽)라고 기록함으로써, 독도의 일본 편입이 제국주의 팽창전략의 일환이었음을 스스로 명백히 밝히고 있다. 그리고 이런 기록은 거꾸로 1905년 이전에는 독도가 일본영토가 아니었음을 시인한 것이기 도 하다.


독도에 대한 일본의 도발은 이보다 훨씬 거슬러 올라간다. 기록에 남아 있는 최초의 사례는 1693년 조선조 숙종 시대에 우리 어민과 일본 어민이 독도에서 충돌을 일으킨 사건이 발생하면서부터다. 일본은 당시 대마도주를 통해 이른바 다케시마에 조선어민의 출어를 금지 해 달라고 조선왕조에 요구했다. 그러나 조선왕조는 거꾸로 일본어민의 출어 금지를 요구, 외교교섭 끝에 일본 어민의 출어를 금지하겠다는 약속을 대마도주에게서 받아냈다. 그리고 이후 일본 어민은 독도 부근의 출어가 철저히 금지됐다. 실제로 1750~60년대에 저술된 일본의 ‘죽도도설’에서 “송도(독도)와 죽도(울릉도)에 지금은 조선인이 내왕한다”고 기록돼 있다. 비슷한 시기인 1809년에 편찬된 한국쪽 사료인 ‘만기요람’은 “울릉도와 우산도는 모두 우산국의 땅이며, 우산도는 왜인들이 말하는 송도”라고 기록, 우산국 안에 울릉도와 독도가 포함돼 있으며 이들이 조선 영토임을 명확히 밝히고 있다. 독도에 대한 인지 및 기록도 한국이 일본보다 훨씬 앞선다. 독도가 우리 영토에 편입된 것은 신라 지증왕 13년 서기 512년이다. 삼국사기 신라본기에 기록돼 있다. 조선왕조의 국가문서가 울릉도와 따로 독도의 존재를 처음 기록한 것은 1454년에 편찬된 ‘세종실록지리지’다.


이에 비해 일본이 울릉도(일본명 죽도)와 함께 독도를 처음 인지한 기록으로 남아있는 것은 세종실록지리지보다 2백13년이나 뒤지는 1667년에 편찬된 ‘은주시청합기’다.


일본의 사료들에 따르면 17세기 무렵 일본어민이 일시적으로 독도와 울릉도 일대에서 고기잡이를 한 것은 사실인 것으로 보인다. 일본의 무라카와 가문이 다케시마(이 때 일본은 울릉도를 다케시마라고 지칭했다)를 경영했다는 기록이 있다. 1617년 일본의 상선이 우연히 조난을 당해 울릉도에 표착했는데, 물산이 풍부해 도쿠가와 막부에 도항허가를 신청한 것이 발단이다. 때마침 조선왕조의 공도정책(섬에서 철수하는 정책) 덕분에 약 80년 간 일본은 도항을 계속할 수 있었다. 이런 기록을 근거로 일본은 3백여년 이전부터 독도가 일본 영토였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일본의 사학자 가지무라 히데키는 지난 78년 ‘다케시마-독도란 무엇인가’라는 논문에서 “그같이 일시적으로 울릉도를 드나든 것을 계기로 (일본)선조가 피와 땀을 흘리며 다케시마를 경영했다고 말하는 것은 잘못된 이미지를 심는 것으로 범죄적이라고까지 말할 수 있다. 만약 일본이 이같은 주장을 한다면 한국이 대마도를 경영한 사실이 있으니까 대마도는 한국령이라고 반론해도 할 말이 없다”고 밝히고 있다.


독도가 울릉도의 부속 도서로 조선의 영토라는 사실을 확인해주는 일본정 부의 공식문건도 최근 여러 건이 잇따라 발견되고 있다.


지금까지 발견된 것 가운데 최초의 공식문건은 <일본 외무성 문서> 제3권 137쪽에 실린 메이지 2년 (1869년)의 ‘조선국교제시말내탐서’다.


일본 공식 문건도 대부분 인정


메이지 유신 이듬해 일본 외무성의 지시로 조선의 내정과 수교 가능성을 정탐하고 돌아간 외무성 관리 3명이 작성해 제출한 이 문건에는 “죽도(울릉도의 당시 일본 이름)와 송도(독도의 당시 일본이름)가 조선의 부속이 되는 사유-송도(독도)는 죽도(울릉도)의 인도(가까이 있는 섬)로서 송도의 건에 관해서는 지금까지 게재할 만한 기술이 없다”고 써 독도가 조선의 영토임을 최초로 확인했다. 이보다 8년 뒤 메이지 10년(1877)에 벌어진 국토 지적조사 사업 때 일본 정부의 태정관(지금의 총리실)이 내린 지령도 독도가 조선영토임을 확인하고 있다.


당시 시마네현 참사인 사가이 지로가 울릉도와 독도의 일본영토 포함 여부를 물어온 데 대해 일본정부는 태정관 명의의 지령에서 “죽도(울릉도) 와 그 외의 1도(독도)는 원록(조선조 숙종) 5년 조선인이 들어온 이래 조선과 왕래해 일본과 관계가 없으므로 일본 지적에 포함하지 말라”고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일본인이 제작한 지도들도 독도가 조선영토임을 밝히고 있다. 18세기 일본의 지리학자였던 하야시 시헤이(임자평)가 천명 5년(1785년)에 쓴 ‘삼국통보도설’이란 책의 부록으로 그린 지도 5장 가운데 하나인 ‘삼국통보여지노정전도’는 독도를 조선영토로 표시하고 있다.


일본의 고지도는 대체로 조선을 황색으로, 일본을 빨간색으로 칠하고 있는데, 이 지도도 다케시마를 조선영토인 황색으로 표시하고, 그 옆에 “조선이 가지고 있는 것, 이 섬에서 은주(일본 지명을 지칭)도 보이고 조선도 보인다”고 써 놓았다.


특히 지도해설서인 삼국통보도설에서 “조선지도는 일본 지식인 가문인 나라바야시가 소장하고 있는 지도를 근거로 했다”고 밝혀, 일본정권이 독도를 조선 땅으로 인정한 지도가 18세기 일본 내에 상당수 있었음을 시사하고 있다.


이 지도 외에도 ‘총회도’, ‘조선국세견전도’라는 지도 2점도 독도가 한국 땅임을 보여준다. 일본을 빨간색으로, 한국을 노란색으로 채색하면서 울릉도와 독도는 한국과 같은 노란색으로 칠해 이들 섬이 한국 영토임을 묘사하고 있고, 두 섬 옆에 ‘조선의 소유’라고 명기해 놓았다.


물론 한국쪽 사료들은 당연히 독도를 조선의 영토로 표시해 놓고 있다.


지난 93년 미국 의회도서관에서 발견된, 1760년께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선역도라는 지도는 강원도편에 독도를 옛 명칭인 우산도란 표기와 함께 울릉도 바깥쪽에 정확히 그려 넣고 있다. 지도 오른쪽 상단에는 이 섬이 우리 땅임을 입증하는 내용을 한문으로 상세히 적고 있다.


물론 일본의 문헌에는 독도가 일본에 속한다고 볼 수 있는 것도 여럿 있다. 그러나 이런 기록보다는 오히려 독도가 한국에 속한다고 볼 수 있는 문헌이 더 많다. 물론 한국의 문헌에는 독도가 일본에 속한다는 기록은 전혀 없다.


이런 역사적 배경에도 불구하고 일본이 독도를 현실적으로 점거한 것은 앞서 밝힌 대로 1905년 시마네현의 고시 이후다. 일본의 독도 강점은 그러나 45년 일본의 패전으로 자연 해소됐다. 우리 정부는 1953년 1월18일 독도를 우리영토로 포함한 평화선(이승만 라인)을 선포했는데 일본은 곧바로 시마네현 고시를 근거로 독도 영유권을 주장, 독도분쟁의 단초가 됐다.


일본인들은 한국전쟁이 끝나갈 무렵인 53년 5월 독도에 무단 상륙해 조난 어부 위령비를 파괴하고 일본영유 표지를 하는 망동을 부리기도 했는데, 당시 울릉도 주민들로 구성된 독도의용수비대가 이들을 힘으로 몰아냈다.


일본은 그 뒤에도 무장 순시선을 동원해 독도 영해를 넘나들며 사진을 찍기 도 하고, 비행기의 공중 시위를 끊임없이 벌이고 있다. 심지어 지난 88년 소련 전투기가 독도상공을 비행했을 때 ‘영토 침범’이라고 항의하기도 했다. 지난 92년 4월에는 일본 극우단체인 ‘대일본정의국수회’ 행동대원 2명이 한국영사관에 난입해 “독도는 우리 땅”이라며 난동을 부리기도 했다. 지금도 일본은 소학교 지리부도에 독도를 일본 영토로 표시하고 있음은 물론이고, 일본 여행사들이 발간하는 지도에도 어김없이 독도를 일본영토로 표시하고 있다.


일본 소학교의 엉터리 지리 부도


하지만 노래가사에도 있듯이 “그 누가 아무리 자기네 땅이라고 우겨도” 독도는 한국 땅이다. 역사적 기록을 통해서 뿐 아니라 현실적으로 우리가 점유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 경비대가 주둔하고 있을 뿐 아니라 발전시설과 식수개발, 전화, 텔레비전 설치, 나무심기 등을 통해 국제법상 섬과 영토로 인정받을 수 있는 실효성 있는 조처를 이미 착착 진행하고 있다. 그리고 부두접안시설공사도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군국주의 향수에 젖은 일본의 우익계 인사들은 독도를 좀처럼 포기하지 않는다. 일본 우익의 견해를 곧잘 대변하는 <산케이신문>은 93년 10월14일자에서 한 면 전체를 털어, 독도문제를 들고 나왔었다. 이 신문은 ‘일본의 섬이 점령당해 있다는 현실을 얼마나 많은 일본인이 알고 있을까’라는 제목을 뽑아 한국이 일본의 영토를 무력으로 점령하고 있다는 식으로 보도했다.


역설적이게도 바로 그 신문은 독도의 영유권에 대해 대단히 의미심장한 제목을 달았다. 그 신문의 지적대로 일본의 많은 시민들은 독도가 일본의 영토라는 인식조차 못하고 있지만, 한국은 코흘리개 어린이들까지도 독도가 한국 땅이라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것이다. <96. 2. 28>


 


3. 나의 묶은 “머리털”


전 해 원1)


내가 처음으로 머리를 길렀을 때의 일이다. 그때에는 머리를 풀고 있었으므로 사람들이 여자인지 남자인지 구별을 못해 자주 물어 보기도 하였다. 나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그것이 그렇게 중요하냐고 되묻곤 했었다. 물론 그때에는 어떤 특별한 생각이 있어서 그렇게 한 것이 아니라 그저 그래 보고 싶어서였다.


그 뒤로 초등학교에서 교사 회의의 결과에 따라 나는 “꽁지” 두 개만을 남기고 머리를 잘랐다. 요새 생각하면 실망이 되지만 그때에는 내가 너무 남녀 차별 사회에 적응이 되어 있었다. 내가 그때 쓴 글을 보면 한 걸음 양보한 것일 뿐이라고 써 있지만 요새는 양보가 아니라 “굴복”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어찌 되었거나 나는 잠시 이 땅을 떠나 있는 동안(부모를 따라 한해 동안 미국에서 거주했다.) 이 사회 적응을 두고 다시 한번 생각을 해 볼 기회를 가졌다.


미국에서 지낸 처음 한달 동안은 영어에 익숙하지 못해서 고생이 심했다. 가장 억울한 것은 어머니의 실수로 머리가 바싹 깎인 일이었다. 그 날 너무 머리가 어중간해서 조금 “다듬으러” 갔다. “다듬은” 뒤에 어머니가 머리가 조금 길다면서 영점오 센티미터만 더 자르자고 했다. 나는 승낙했고, 머리를 자르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머리 자르는 사람이 내 머리를 영점오 센티미터는커녕 한 삼 센티미터쯤을 자르는 것이었다. 어머니는 잡지를 열심히 보고 있었고 영어를 못하는 나는 속만 태우고 있었다. “엄마”를 부르려 애를 썼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집에 와서 나는 펑펑 울었고 어머니는 자기 책임이라는 생각은 안하고 내 머리가 최신 유행 스타일이라느니 곧 자랄 것이라느니 하는 소리만 늘어놓았다. 누나가 돌아와서 내 머리를 보고 웃었고, 우리 셋은 고민을 시작했다. 마침내 누나의 아이디어로 머리 스타일을 바꾸었다. 그러나 내 마음에 썩 들지는 않았다.


내 머리는 생각처럼 빨리 자라지 않았다. 학교에서 일년에 한 번 찍는 독사진에도 내 머리는 짧게 나와 있다. 몇 달 뒤에 내 머리는 길어졌으나 여전히 엉성했다. 학교에도 머리 긴 학생이 몇몇 있었는데, 그 학생들은 모두 나보다 머리가 훨씬 길었다.


머리가 길어지자 나는 곧 중대한 결심을 했다. 머리를 묶기로 한 것이다. 학생들은 그것을 두고 특별히 비난하거나 남녀 차별의 말들을 늘어놓지는 않았다. 보수적인 사내애 몇이 내 머리가 정상적이 아니라는 둥, 내가 게이(동성 연애자)라는 둥, 하긴 했지만 나는 그때마다 재치 있는 대답으로 간단히 넘겼다.


환경 운동 집회에 갔을 때의 일이다. 많은 사람이 머리를 기르고 있었고 긴 머리를 멋지게 묶은 이들이 자주 눈에 띄었다. 나는 그 사람들과 동질감을 느껴서도 머리를 기르겠다고 결심했다. 그 사람들은 자연으로 돌아가려는 마음을 머리 스타일로도 자연스럽게 표현하고 있었다. (참고로 나는 환경 운동가이며 앞으로 환경 과학자가 되어 전문적으로 그 운동을 할 참이다.)


일년이 후딱 가고 나는 한국에 왔다.


공항에서였다. 어머니의 노트북 세관 통과 때문에 지체되어서 가장 늦게까지 남아 있었다. 할머니께서 걱정이 되셨는지 경비원에게 여쭤보셨다 한다. 그러자 경비원은 두 여자가 남아 있다고 전했다고 한다. 말할 나위도 없이 그 두 “여자”는 어머니와 나였다. 이처럼 한국 사람들은 거의 다 다음과 같은 귀납법을 적용한다.




머리를 묶은 사람은 모두 여자다.


저 사람(나)은 머리를 묶었다.


(고로) 저 사람(나)은 여자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그러는 것은 아니다. 최근에는 많은 한국인 남자들이 머리를 기른다 그 예로 가수 신성우와 얼마 전에 브라질 친선 경기 때에 선전을 해 준 골키퍼(이름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가 있다. 연예인들 덕분에 많은 사람의 의식이 바뀌어 머리를 기른 남자도 정상인으로 인정을 하는 수가 많다.


그런데 최근에 고교 입시 때문에 학원을 다니는데 학원에서 내가 겪은 각계(?)의 반응은 흥미롭다.




학생: 선생님, 얘 머리 자르게 안 해요? 학생들 풍기에 문란한 영향을 주는데….


부원장: 어때, 요즘 개성 시대인데,




여기에서도 보듯이 가끔 보수적이지 않은 어른도 있다. 그러나 많은 선생님들은 보수적인 발언을 한다. 수업에 들어오지 않겠다는 선생님도 있었고, 며칠 동안 나를 여자로 알고 수업했다가 나중에서야 알아차리는 선생님도 있었다. 내가 학원에 간 첫날의 우리 학원 주요 화제는 나였다. 내가 교실에 들어가자 모두 말을 멈추고 나를 응시했다. 내가 아는 학생도 몇 명 있기에 나를 일년 새에 잊었느냐고 물었더니, 그렇다고 했다. 내가 이름을 밝히니 그제야 나를 알아보았다.


어쩌다가 서울에서 지하철을 타게 되었다. 여자 전용칸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고도 싶었지만 별로 내키지 않아 관두었다. 나는 지하철 안에서 성희롱이 어떻게 이루어지나 알고 싶었지만 내가 매력이 없는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걸리면 손목을 잘라버리고 싶었을 것인데….




조선 시대 말부터 남자들의 머리는 억압받아 왔다. 그런데 그 억압이 우리나라의 전통인 양 현대 사회에서 행세하고 있는 것이다.


조선 왕조 말, 천팔백구십오년의 을미개혁 때에 시행된 단발령에 따라 많은 남자들이 강제로 상투를 잘렸다. 그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몸에 상처를 낸 죄책감에 사로잡히고 외래 문화와 일본에 반발하는 마음도 심해졌다. 그 사건이 의병 전쟁의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고 한다. 일제 시대에는 은둔자 소수를 제외한 모든 사람의(남자) 상투가 잘리고 짧은 머리가 보편화되었다. 중, 고등학교들도 일제의 법규에 따라 일본의 학교와 같은 교칙을 갖게 되었다. 거기에 따른 의무 하나가 단발(사실은 “빡빡”)이다.


광복 후도 사정은 별로 다르지 않았으니 특히 박정희가 정권을 잡고 있을 때에는 남자 머리의 수난 시대가 있었다. 장발 단속으로 많은 사람의 인권이 무시되며 무자비한 머리 “학살”이 시작되었다.(내 친구의 아버지는 그때에 명동에서 단속에 걸려 머리를 잘렸는데 요새 생각해 보니 그때 왜 자기가 헌법 소원을 할 생각을 못했는지 모르겠다며 억울해 하셨다.) 박정희 군사 독재가 끝나고 나서 새 군인 대통령들은 민주주의 하는 시늉하느라고 장발 단속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문민 시대라는 오늘도 장발 단속은 학교에서 존재한다. (나중에 따로 말하겠지만, 그 교칙들은 거의 다가 헌법에 위배되며 얼마나 법적 효력이 있는지가 미지수다.) 일본으로부터 물려받은 머리에 관련된 교칙은 다음과 같다.




남자이면: 눈썹을 가리지 않음, 귀를 덮지 않음. 옷깃에 닿지 않음(관대형), 일 센티미터(통일형), 손에 잡히지 않음(신체형).


여자이면: 귀밑 일 센티미터, 머리를 길러도 단정히 하겠다는 각서를 씀.




이제부터 몇 가지 사항을 들어 그 교칙에 반대하고자 한다.


첫째로, 그 교칙은 인간을 차별한다.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 그러므로 평등한 권리를 갖고 있다. 이것은 교과서에 나와 있는 진리이다. 헌법에는 성별, 나이, 종교, 사회 신분 등에 따라 차별을 받지 아니 한다고 씌어 있다. 그런데 어째서 남자는 일 센티미터이고 여자는 귀밑 일 센티미터이고 여자는 귀밑 일 센티미터일까? 이것은 분명한 인간 차별이다. 나는 불필요하고 불합리한 이런 남녀 차별 관행이 하루빨리 사라지기를 바란다.


최근(구십사년)에 민족 대표 삼십삼인에게 많은 기업체가 고용 평등법 위반으로 고소되었다. 한 생명보험 회사의 추천 의뢰서를 보면, “신장 백육십 센티미터 이상, 몸무게 오십 킬로그램 이하, 용모방정.” “용모에 중점을 두어 면접할 예정이니 유의 바람”이라고 씌어 있었다. 그 소송 뒤로 일부 기업은 법적 처벌을 받았다.


머리가 긴 학생을 차별하거나 받지 않는(또는 쫓아내는)것도 위법 행위다. 물론 머리야 자르기 쉬우니 타고난 용모와는 비교 대상이 안 된다고 할 수 있겠지만, 머리를 자르는 것이 큰 정신적 고통이 되는 사람도 있다.


생각해 보면 학교는 인간 차별의 온상이다. 최근에야 여자는 가장 과목을, 남자는 기술 과목을 배우는 제도를 폐지하고 하나로 합치기로 했다고 한다. 여태껏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나의 모교가 될 학교는 남녀 공학을 시킨다면서도 남녀 반이 서로 나뉘어져 있고 사용하는 복도도 다르다.(남녀 공학 학교가 거의 모두 그러하다.) 그런 교육을 받은 학생들은 커서도 마음 속에 그러한 생각이 자리잡고 있어, 남녀 차별의 악습 추방을 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한 쪽에서는 남자와 여자는 동등한 인격체라 하고, 다른 쪽에서는 서로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가르치니 그들을 함께 수용하기란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둘째로, 머리를 기르는 것은 우리의 전통을 지키는 것이며 일제 잔재를 청산하는 것이다.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신체발부는 수지부모”라고 하여 부모님께 물려받은 신체를 소중히 여겼다. 머리를 깎거나 몸에 상처를 나면 부모에게 큰 죄를 지은 것이 되었다. 그래서 남자, 여자 할 것 없이 죄다 머리를 길렀다. 오로지 속세를 등지고 떠난 스님들만 가족에 미련을 두지 않으려고 삭발을 했다. 한말에, 일정 때에 상투를 잘리게 된 사람들은 부모를 잃었다하여 펑펑 울었다. 자, 이래도 짧은 머리가 우리의 전통이라 할까?


그때 일본 사람들은 일본식대로 우리나라에 학교를 만들어 세웠다. 앞서도 말했듯이 짧은 머리는 그 학교들의 교칙이 요구하는 것 하나였다. 중학교에서 아무리 더워도 긴 바지만을 입는 것도 일정 시대의 유습인 듯하다. 상급생에게는 무조건 인사를 하고 경어를 써야 하며, 교사에게 턱없이 억울한 매를 맞아도 고발하면 안 되는 것도 그런 것일 것이다.


그러나 요즘에 그런 교칙의 억압에서 벗어나 머리도 기르고 싶고 여러 금지된 것들을 하고 싶어서 학교에서 중퇴를 하려는 학생도 생기고 있다. 그 규칙이 그 학생들의 교육보다 더 중요할까? 한 번쯤 생각해 봐야 하겠다. 광복 오십 주년을 맞아 중앙청 석탑을 제거하고 일제 잔재의 청산을 외치면서도 정작 사라져야 할 것들은 내버려두고 있다.


셋째, 머리를 강제로 자르는 것은 인권을 무시하는 행위이다.


우리나라 헌법에 따르면 국민이 신체상 제한을 받지 않을 자유가 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영장 없이는 압수, 수색, 구속 등을 당하지 않을 자유가 있다. 그런데 학교에서는 그것이 버젓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른바 학생부라는 곳은 학생을 도와 주는 곳이 아니라 학생의 태도가 자기들 마음에 들지 않으면 패는 곳이다.(이곳이 바로 반장에게 인간 사냥을 시키는 곳이고 그러기를 거절하면 반장을 패는 곳이다.) 학생들은 인권이 무시되고 반항할 자유조차 없다. 학생의 머리에 가위를 들이대고, 학생의 신체의 일부를 무자비하게 자르는, 그런 일이 전인 교육을 한다는, 민주 정신을 키운다는 학교에서 할 일일까? 학교에서(학생들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그 머리를 자르고, 때려 패는 것이 법에 저촉되고 있지 않은 것이 기이할 따름이다. 그런 사건들을 신고했을 때에 쫓겨나는 것은 교사가 아니라 학생이 되기가 십상이다. 적응을 못한다는 이유로….


학교는 학생들을 가르치는 특별한 곳이므로 권리보다는 의무가 많아야 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그러나 실제로 학교는 의무가 이란 사회(단체)보다 적고 권리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생각해 봐라, 사원이 머리가 길다고 가위를 들고 강제로 자를 수 있는 회사가 몇이나 되는지를. 미국 학교에서는 학교에서 학생이 다치면 학교가 그 일부의 책임을 진다. 학교에서 폭행을 당했거나 하면 가해자뿐만 아니라 학교도 책임을 진다. 그런 가해자를 “양성”했다는 죄로…. 하기야 그 학교들도 그 의무만큼 통제권을 갖고 있다.


실제로 교칙을 우리는 제대로 배운 적도 없다. 우리가 학교에 들어와서 처음으로 받은 유인물에는 모발과 복장에 대한 규정이 적혀 있을 뿐이지, 교칙이 있다거나 그 규정의 출처가 무엇이라거나 하는 말은 분명히 명시되어 있지 않았다. 그 뒤에도 우리에게 교칙은 접할 수 없는 것이다. 학교 생활 하는 동안에 “몇 학년 몇 반의 아무개가 교칙 몇 조 몇 항을 어겨 정학을 받았다.”는 말을 들을 때까지 학생이면 누구도 그러한 교칙이 있음을 알지 못했다.


교칙의 내용이 잘 알려진 것이라고 치더라도, 거기에서 불만을 느끼고 있으면 학급회의 때에 건의를 해야 하는데, 입시에 도움이 안 되는 학급 회의는 제대로 열리지도 않을 뿐더러 건의를 해도 담임이 묵살하기 일쑤이다. 겨우 전체 학생 회의에 올라가도 반장이 잊어버리거나 발표할 기회도 가질 수 없고 설혹 반장이 발표를 하고 전체 회의에서 통과가 되더라도 교사 회의에 올라가기는 불가능하기가 예사다.


교칙을 학생의 의사대로 고칠 수 있다면 더 많은 학생들이 교칙을 지킬 것이다. 도덕 교과서에 나와 있다. “학생들은 학급 회의에서 참정권의 의미와 민주 시민의 자세를 터득한다”고. 그러나 건의 사항이 한 번도 제대로 실현된 적이 없는 학교에서 학생들은 어떤 민주 시민의 자세를 배우겠나? 나는 개인적으로 학교에 들어와서 교칙을 나누어준 뒤로 지킬 사람은 서명을 하게 하고, 지키지 않을 사람은 타당한 이유를 제기하게 하고 선생들의 평가로 타당하다 여겨지면 그것을 인정하는 제도가 있었으면 한다.


우리 학생들은 죄수처럼 규제 당해야 할 대상이 아니다. 감옥에 갇힌 죄수는 머리를 깎는다. 그래서 탈옥하더라도 대가로 인권을 무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도 그이들은 할 말이 없다. 그러나 학생들은 죄를 지어 그 대가로 인권을 무시당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교외 생활 지도를 쉽게 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학교는 편의 때문에 인권을 무시한다. 그러나 창의로운 인간을 기르고 싶다면 최소한의 자유는 주어야 하지 않을까? 이른바 “교외 생활 지도”란 청소년을 어른들의 사회와 분리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청소년의 정의 중에 하나는 “어른과 아이 사이의 과도기에 있는 사람”이다. 그런데 왜, 청소년이 사회로부터 격리되어야 하나? 아이들과 어울리지는 못하고 사회와도 격리된 청소년은 갈 곳이 없다. 심각한 청소년 문제는 여기에서도 비롯된다. (군대에서의 규제와 폭력도 이와 함께 사라졌으면 한다. 물론 군대는 위계 질서가 중요하지만 인권보다 중요하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여기까지에서 단순한 머리 규제만을 가지고 학생의 처지에 관련된 여러 분야를 살펴보았다. 그까짓 머리털이 얼마나 중요하냐고 묻겠지만, 머리털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실은 자잘한 것처럼 보이는 그런 여러 가지 것들로 짓밟히는 학생들의 인권이 중요한 것이다. 하기야 머리가 그렇게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머리 문제로 여러 가지 고정 관념을 깨며 선생들에게 새로운 의식을 심어 줄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내 생각에 초등학교에서는 “모발 일 센티미터 이하”라는 교칙이 있고 그것을 어긴다 해도 그것을 억지로 자르게 할 수 없을 것이다. 초등학교 교육은 의무 교육이라 쫓아 낼 수가 없겠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학교는 의무 교육이 아니어서 교칙을 어기면 “생활 태도가 나쁨”이라는 이유를 들어 퇴학을 시킬 수 있다. 또 교사가 학생을 때려 팬 경우에도 학생의 의사(학생의 의사라 하지만 들어오기 전에 교칙을 조사할 수도 없고 조사한다 해도 학교를 선택할 권리가 우리에게는 없다)로 학교에 들어왔으므로 교사는 (정도가 심하지 않다면) 무죄가 되거나 심한 경우에도 정상 참작으로 형이 감량될 수 있다. 꼭 중, 고등학교가 의무 교육 기관이 아니기 때문은 아니겠지만, 그런 식의 결과가 나올 수 있는 것은 내게 불리한 조건이다.


사람들은 나에게 해결해야 할 중요한 문제들이 많이 있는데, 왜 머리에만 집착하느냐고 묻는다. 그러나 그 해결해야 할 중요 문제들은 아직 내 힘으로는 해결할 수 없고, 나의 삶과도 동떨어진 것이 많다. 이 교육 풍토에서 근본적으로 고쳐야 할 것으로 교육 제도와 교사들의 의식 문제가 있지만, 그것들을 내가 지금 섣불리 건드려 봐야 상태만 더 악화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라는 말이 있듯이 나는 내 주변의 작은 일부터 고쳐 나가며 선생님들의 의식이 변화되는 것을 보고 싶다. 교사들의 의식이 바뀔 때에 근본적인 문제들의 해결이 더욱 쉬워질 것이다.


사실 학교에서 내 머리털을 지키려는 싸움을 시작하면 교사들보다 더 큰 적은 학생들이 될지도 모른다. 학생들 중에는 다른 학생이 튀는 것을 싫어하고, 그것이 실은 자기들을 위한 것이며 자기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잘 못하는 학생들이 적지 않다. 아마도 그런 태도를 교육받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모쪼록 이번 싸움에서만은 다른 학생의 방해보다는 도움을 받기를 원한다. 나혼자로서도 벅찰 텐데 방해가 있으면 쉽지 않은 싸움이 될 것이다. 나의 주장을 이해하고 생각이 깊은 선생님들이 몇 분이라도 계시면 큰 도움이 되겠다. “남자와 여자는 엄격히 다르다.” “학생들은 인권이 없다”하는 가부장적인 인간 계급 사회를 추구하는 교사와 부딪히면 많이 힘들어질 것이다.


만약 이 싸움이 법정까지 간다면 더 힘들어질 것이다. 그러나 나의 근본 정신은 변함이 없다. 현재 목표는 남녀 교칙의 통일이고, 근본 목표는 학생들의 인권 되찾기와 모발의 자유이다. 그리고 학교를 설정한 목표는 학교의 권리 최소화와 의무 최대화이다. 그래서 이 싸움에서는 학교 안의 폭행 문제도 함께 다루려 한다. 그 둘은 다른 것 같지만 학생들의 인권을 확보하려는 점에서는 같다고 볼 수 있다. 고교 입시도 몇 달 남지 않았는데 이 싸움이 쉽게 끝나고 다른 학교로 전파되면 좋겠다. 후배들에게 입학 선물로 “인권”을 찾아 주고 싶다.


                                (������샘이 깊은 물������ 1995년 9월호에서)




4. 깎고야 만 내 아들의 묶은 머리털


조 혜 정


(1집에 실린 글 ‘나의 묶은 머리털’을 쓴 전해원의 어머니. 연세대학교 사회학과에서 문화인류학을 가르치고 있고, “또 하나의 문화” 편집동인. 저서로 ������탈 식민지 시대 지식인의 글읽기와 삶 읽기������가 있으며, 요즘은 학업 중단 청소년을 연구하고 있다.)




전학 수속을 하면서 서울에 돌아온 것을 실감한다. 많은 서류와 일주일 동안의 기다림.


“지난 번 다니던 학교로 해 주세요. 집 앞에 있으니까요.”


“협의를 해 봐야 합니다.”


무슨 협의를 해야 할까? 관료제의 가장 큰 기능은 개인들로 하여금 수시로 무력감을 경험케 함으로써 공권력을 감히 넘보지 못하게 하는 걸 거다.


해원이 머리 때문에 방학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생각해 보면 머리를 길러 묶는 것처럼 편하고 자연스러운 머리 스타일도 없을 것이다. 내 단발머리가 자라듯이 해원이 머리도 꽤나 빨리 자라서 우리는 닮은꼴처럼 머리를 묶고 다녔다. 머리가 제법 자리를 잡아가는데 서울로 돌아갈 때가 되었고, 공들여 기른 머리를 잘라야 하다니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환송회 자리에서 해원이 머리 문제가 토론거리로 올랐는데, 칠십 년대 서울 명동 거리에서 머리칼을 잘린 경험이 있는 한 엔지니어는 자신이 그런 “야만적인” 두발 단속에 전혀 대항할 생각도 없이 도망만 다닌 과거를 기억해내고는 분해했다. 교환 교수로 와 있던 한 법대 교수는 강제로 교사가 머리칼을 자를 경우, 신체 침해권 조항으로 충분히 법적 사건화할 수 있지만, 자기 같으면 먼저 학급 회의를 통해 두발 자율화를 건의해 보겠다고 했다. 해원이는 “서울의 중학교 사정을 잘 모르시는군요. 학급 회의가 거의 열리지 않고요, 어쩌다 열려서 건의를 한다 해도 전체 반장 회의에서 제대로 토의가 되지 않고요. 또 토의가 되어 결정을 했다 해도 학교에서 무시하면 그만이에요”라면서 오히려 그 “순진한”교수를 가르치려 들었다.


아이는 순진하게도 학교에 자신의 논리를 이야기하면 통할 것이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었고, 통하지 않을 경우에는 당연히 법적 투쟁을 통해서 자신의 권리를 찾아내겠다는 계산이었다. 어릴 때부터 인권을 침해하는 것과 불필요하게 남녀를 구분하는 것에 강하게 저항을 해왔고, 중학교에 들어가서부터 “학생 인권”을 찾는 것에 신경을 쏟아 온 해원이에게 이번 일은 참으로 의미 있고 신나는 프로젝트일 수 있었다.


나 자신, 현재 한국 사회에서 중학생이 머리를 기르겠다는 주장은 매우 중요한 상징성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한다. 한마디로, 이십일 세기를 살아갈 아이들에게 자기 연출의 기회를 주지 않는다는 것이 말이 되나? 문화적 창조는 개인의 자기 형성에 기초하고, 자기 형성에 중요한 것은 자기 표현과 자기 연출이다. 강제에 의해 움직이는 신체에 어떻게 자유로움이 깃들 수 있나? 자유의 자유로움은 신체의 자유로움을 기초로 하고, 실제로 신체의 자기 결정권을 확보하는 것은 근대 정신의 핵심이 아닌가? 몸과 마음의 이분법을 극복하고 신체에 부당하게 가해지는 억압은 최소한 줄여나가는 것이 이십일 세기를 살아갈 아이들을 기르는 원칙이 되어야 할 것은 자명한 일이다.


한국 사회가 단순 노동력을 제공하는 주변부 자본주의 국가로 남아 있겠다면 할 말은 없다. 회색 제복에 넥타이를 매고 공공칠 가방을 든 하급 세일즈맨들을 양성시켜서 경제 성장을 지속시키겠다면 현재와 같은 입시 위주의 교육과 중세적 통제방식을 고수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미 초국적 자본은 인건비가 싼 곳으로 이동하고 있고, 대기업들은 “유연하고 독창적인 생각을 해내는 인력을 잡아라”라며 창의적인 인력을 눈을 비비며 찾고 있지 않나? 기업은 질적인 인력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대학을 탓하지만, 아무리 능력 있는 대학 교수라 해도 중세적 통제 속에 길들여진 고득점자들을 창의적 인간으로 만들어낼 요술을 알고 있지는 못하다.


여전히 남녀 분반에 암기식 교육을 시키는 학교 문화의 시대착오성은 절망적이다. 여러 가지 방식으로 물꼬를 터 가야 하지 않을까? 머리를 기르겠다는 사회적 발언이 현재 교육 제도에 대한 새로운 점검의 계기가 될 수 있다면 일으켜 볼 만한 사건일 것이다.


이런 이상적인 생각을 막연히 하고 있던 나는 막상 서울로 돌아갈 날이 가까워지자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서울로 돌아갔을 때 해원이의 행동이 어떤 식으로 받아들여질지 상상을 하면 슬퍼졌고, 그 투사적 기질에 머리가 아파지기 시작했다. 나는 현실로 돌아와 따져 보기 시작했다. 지금이 머리 문제를 제기할 적절한 때일까? “대중적” 공감을 얻어낼 수 있을까? 내 결론은 그런 문제를 띄우기에 좋지 않은 때라는 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우선 많은 사람들은 “미국 갔다 와서 까분다”라고 생각할 것이고, 매우 감정적 차원에서 이 문제를 처리해 버릴 것이다 내 판단에, 지금 우리 사회는 상대적 박탈감과 자격지심에 시달리던 상태에서 벗어나 자만심을 한껏 부풀리고 있다. 그 동안 우리 사회의 분위기를 주도했던 문화 식민주의는 급격하게 문화 우월주의와 한민족 제국주의적으로 기울고 있고, 대중매체와 국가는 그 면을 한껏 부추기고 있다. 한국인은 특히 미국에 기죽어 온 과거를 억울해 한다. 그래서 “미국 놈은 미국식으로 하라지. 유서 깊은 우리는 더 나은 우리식이 있어”라면서 자존심을 회복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사회 운동에 대한 거부감이 높아지고 있는 점 역시 고려해야 하지 않을까? 사람들은 거의 모두 팔십년대식 사회 운동에 질리고, 끝없이 터져 나오는 엄청난 위기들에 놀라서 조용히 살고 싶어한다. 사적 영역에서 감각적 만족을 느끼며 살고 싶어한다. 얼굴에 화장을 하고 외양으로 “튀는 것”, 듣고 싶은 음악을 듣고 분위기 있는 곳에서 애인과 차를 마시고 애인을 보내고는 옛 감정을 되씹어 보는 것, 이런 일들에 시간을 보내고 싶어한다. 떠든다고 사회가 변하나? 논리 없는 시대에 논리를 만들어 시끄럽게 굴지 말아 주었으면 좋겠다고들 말한다. 무기력감을 더 강화하는 짓은 하지 말아 달라고 말한다. 정의와 당위를 이야기하는 계몽주의가 버겁고, 다른 이들의 억압을 대변하겠다는 엘리트들도 볼썽사납다.


거나마 여전히 사회 운동을 부여잡고 있는 이들에게도 이 머리 문제는 황당하게 다가갈 것이다. 중학생이 머리를 기르겠다고 고집한다? 그것도 미국이나 왔다 갔다 했다는 배부른 아이가?


나는 두발의 자율권을 마땅히 따냈어야 할 칠십 년대 장발족의 무기력과 팔십 년대 민주화 운동을 주도해온 이들의 봉건성에 화가 났다. 온갖 금지를 통해 사람을 옭아매는 우리나라 제도 교육의 구태의연함도 놀랍지만, 너무나 당연히 자신이 머리를 기를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는 아이를 보는 것도 심란했다. 너무 어릴 때부터 규칙은 지키기 위해서 있기도 하지만 또 고쳐지기 위해서 있다는 것을 가르친 것은 아닌지, 교보 문고에 너무 자주 데리고 다닌 것은 아닌지, 아이를 너무나 과보호한 것이 아닌지 갖가지 생각들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이 기르기란 이렇게 힘든 일인가?


나는 해원이에게 이런 긴 말을 하지 않았다. “네가 절실하게 머리를 기르고 싶다면 문제를 일으켜도 좋다. 그러나 남을 위해 하겠다면 그만둬라. 머리를 기르고 싶은 학생들이 많다면 해도 좋지만 네가 앞장을 서서는 안 될 것이다. 너는 곁에서 참모와 같은 역할을 해야 할거다. 네가 하려는 식의 운동의 시대는 이제 지났다.” 이런 말이 해원이에게 먹혀들 턱이 없었다.


서울로 돌아와서 내가 걱정하는 것과는 달리 해원이는 너무나 아무렇지도 않게 돌아 다녔다. 요즘 여학생 중에는 소년 같은 아이들이 많아서 해원이는 그런 여학생으로 “통과”되고 있었던 것이다. 개학이 가까워지자 할머니가 “너 이제 미장원 가야 하지 않니?”라고 은근히 압력을 넣으니까 “할머니도 참. 내부에 적이 있으면 어떻게 해요?”라면서 더욱 단호하게 “투쟁의지”를 굳혀 가고 있었다. 내가 제일 걱정한 것은 해원이가 머리 사건으로 크게 상처를 입고 사회를 적대적으로 바라보게 될지 모른다는 점이었다. 개학 전전날 나는 꽤 망설이다가 학교로 교장 선생님을 뵈러 갔다. 워낙 더워서 그런지 일년만에 뵙는 교장 선생님께서는 좀 수척해지신 듯했다. 학부모들이 교복을 입히라고 성화를 해도 끄덕 없이 교복 자율화를 고수하고 학생들에게 책을 읽히려고 사방으로 애를 쓰시는 분이다. 나는 해원이가 미국에서 유익하고 즐거운 한해를 보냈으며, 다시 이 학교로 전학을 올 것이라는 것과 그 동안 머리가 길었는데 자르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말로 운을 떼었다. 교장 선생님은 난처한 표정을 지으셨다.


“그런 일은 부모님이 알아서 못하십니까? 혼자 머리 기르게 해 줄 수는 없지요. 실은 아이가 괴롭습니다. 별다르게 하고 다니면 따돌리고 자신이 괴로워서 못 다닙니다.”


나는 별다른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요새 아이들이 “튀는 것”을 좋아하고, 또 개중에는 해원이처럼 따돌려도 별 신경을 쓰지 않는 아이가 적지 않음을 말씀드릴까 하다가 가만히 있었다. 아이가 단순히 머리를 기르고 싶어서라기보다 다른 의도가 그 속에 담겨 있으며, 이것을 기화로 규칙을 바꾸자는 제안을 하고 싶은 것이지 예외 조항을 두어 달라는 것은 아니라는 말도 안 했다.


“요새는 여자애 머리도 묶지 못하게 합니다. 아이들이 외모에 워낙 신경을 써서 더 엄하게 다루지요.”


충분히 이해가 되는 말씀이다. 요즘 대다수의 젊은 아이들은 온통 외모 꾸미기와 전화 호출기와 이성 친구 생각에 매달려 있는 것 같다. 외국에서 온 이들도 이구동성으로 한국 젊은이들이 왜 그리 외모에 집착하느냐고 물어온다. 사회학적 분석을 해 보아야 할 부분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교장 선생님의 고충을 내가 왜 모르랴? 특히 중학교 삼학년들의 가출은 급격히 늘고 있으며, 가리봉동의 가출촌 소녀들은 손님 접대가 적성에 맞는다면서 찾으러 온 담임 선생님을 오히려 위로하여 돌려보내기도 한다는 세상이니, 이런 면에서 관리 불가능한 상황에 들어선 것이 아닐까?


요즘 주유소에서 “즐겁게” 일하는 집나온 중학생들을 보아도, “서태지와 아이들”이 부르는 ‘교실 이데아’를 들어도, 청소년들은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다. 나는 며칠 전에 딸아이 친구들이 부르던 “디 제이 덕”이 부른 노래가 생각났다. 제목이 ‘성수대교’이던가?


“우리들은 이제 더 이상 용서할 수 없다. 그 어떤 변명, 핑계, 용납할 수 없다. 무너진 다리에 끊어져 버린 꿈, 무너져 버린 사랑, 무너져 버린 믿음, 어른들의 치졸함에 누명을 쓰고 가버린 친구들을 우리들은 기억해야 한다…. 아 천구백구십사년 부실 공사 추방 원년 천구백구십사년”


머릿속은 성수대교를 그리면서 내 입에서 나온 말은 이 정도였다.


“집에서 다시 한 번 말을 해보겠습니다. 그래도 안 되면 그냥 보낼 수밖에 없을 텐데 선생님께서 잘 말씀해 주세요.”


아이들 학교만 목소리가 부드러워지고 몸짓도 공손해진다. 자식이 웬수라던가? 학생 지도는 교장 선생님 혼자 하시는 것이 아니라 교감과 학생 주임 선생님도 계시니 함께 의논해서 해 보겠다는 말씀을 들으며 교장실을 나왔다. 학교라는 거대한 통제 관리 체제는 너무나 안정되어 있다는 느낌이 가슴을 짓눌렀다.


방학이라 학교에는 당직 선생님 한 분만 계셨다. 미술을 가르치는 여선생님이신데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들이 곁에서 책을 보고 있었다. 친근한 감도 들고 답답한 김에 아이 머리 이야기를 꺼냈더니 매우 안타까워했다. 작년에 미국서 오래 살다온 여학생이 있었는데 귀걸이를 하고 와서 겨우 설득했다고 한다. 처음에는 부모도 왜 못하게 하느냐고 학교 규칙에 문제를 제기해 왔지만 나중에는 아이도 잘 적응해 가고 있다고 했다.


“이곳에 오면 이곳 규칙을 따라야 한다. 한 사람이 하면 다른 아이들도 다 하고 싶어해서 안 된다. 대학 가면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식으로 설득을 했지요. 남자 아이 머리 기르는 것은 아직은 안돼요. 세상이 많이 변했지만 아직은 아니에요. 천천히 변하고 있지요. 그냥 미국에 두고 오시지…. 그곳에서 공부를 잘 하고 있었다면 왜 데리고 오셨어요? 그곳에서 자유롭게 지내다 오면 이곳 생활은 힘들 거예요.”


자식이 있는 어머니로서, 그리고 세계화를 외치는 이 땅에서, 또 많은 아이들이 중학교 삼학년에 스스로 해외 유학을 떠나는 마당에 매우 지당한 제안이기도 했다. 자유를 원하는 아이. 개성을 존중받고 싶어하는 아이는 이 땅을 떠나라!


실제로 해원이는 그곳에서 일년을 지내면서 무척 행복해 했다. 방학이 없으면 좋겠다는 정도로 엉뚱한 질문을 하는 엉뚱한 질문을 하는 학생이 사랑 받고, 체벌이 없는 학교, 자신이 묻는 모든 질문이 자기만이 하는 질문이 아닌 학교, 양성적인 아이들이 많고, 남자와 여자가 옷 바꿔 입고 오는 날이 있는 학교가 무척 마음에 들었던 것이다. 해원이는 그런 재미있는 학교를 가기 싫어하는 그곳 아이들을 이해할 수 없어 했다. 두 학교 모두 성격은 다르지만 문제가 있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아챈 해원이는 궁리 끝에 한국의 아이들과 미국의 아이들을 이년씩만 바꾸어 보면 모든 교육 문제가 해결될 것인데 그것이 현실로는 불가능한 것이 안타깝다고 했다.


미국은 유월에 졸업이라 아이는 그곳에서 졸업식을 했다. 중학교를 졸업하던 날 아이는 더는 학교에 가지 못하는 것을 두고 슬퍼했다. 멍청하게 소파에 누워 있다가 “나는 왜 한국서 태어났을까?”라고 혼자 중얼거리고 있었다. 그리고는 “또하나의 문화” 친구들 때문에, 그리고 자기가 태어난 땅에서 자기가 해야 할 일이 있기 때문에 간다고 덧붙였다. 그래, 땅과의 인연, 자신을 길러주고 사랑해준 사람들과의 인연을 잘 맺고 좋게 이어 가야지.


해원이는 긴 머리 스타일을 유지하려 하는 이유를 두고 자기 나름대로 논리를 정리한 것 같았고, 머리를 묶으면 “눈썹을 덮으면 안되고 귀를 덮지 말며 어깨에 닿지 않는 단정한 머리”를 요구하는 교칙에 위반되지 않기 때문에 재판을 걸면 교칙이 위헌이라는 판결이 나올 수 있다는 것도 알아냈다. 마침 “샘이 깊은 물”에서 원고 청탁을 하자 글을 쓰면 “투쟁”에 도움이 될 것 같다면서 하루 꼬박 앉아서 글을 써냈다. 학원 아이들과 의논도 하며 부딪치면 쉽게 될 것 같은지 점점 더 의기양양해 갔다. 어쩌면 그 아이는 완전히 “돈키호테”처럼 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나는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학교 가기 전날 아이는 아빠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이 아버지는 전날에 “샘이 깊은 물”에 보낼 해원이의 글을 읽었으므로 그 이야기부터 시작했다. 그 글에서 투쟁을 위한 투쟁을 하는 느낌을 받아서 기분이 좋지 않다고 했다. 머리 문제를 계기로 해 자기의 생각을 풀어내고 글로 정리해 본 것은 좋은 경험이 되겠지만 “투쟁을 하는 것에서 존재를 실감한다”는 식의 “태도”는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했다. 그리고 입시를 눈앞에 둔 중학교 삼학년으로서 일년을 놀다 와서 머리 문제가 그렇게 중요한 것인지 차분히 따져 보라고 했다.


아이 아버지는 덧붙여 해원이가 중학교 입학 때부터 신경을 써온 체벌이나 교내 폭력, 아니면 학습 방식을 바꾸는 방안들에 문제 제기를 한다면 더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 거라고 했다. 그리고 투쟁을 하려면 투쟁 이전에 많은 준비가 필요하다는 말을 했다.


“오래 전에 일본에서 있었던 일인데 어떤 사람이 까만 옷으로 온 몸을 싸고 눈만 내놓고 학교에 다니면서 네가 하려는 식의 발언을 한 적이 있었어. 싸우려면 그 전에 기획을 잘 해서 멋있게 해야해. 결론적으로 지금 자신이 투쟁할 시기인지 생각할 시기인지 한 번 더 생각해봐. 또 한 가지, 지금 이유가 있어서 투쟁을 하고 싶어하는 부분도 있지만 해원이가 막 반항기에 들어가고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반항을 하고 싶으면 해야 하지만 자신이 그런 나이에 그런 성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하는 것과 모르고 하는 것은 다르니까 그 점도 충분히 고려해서….”


곁에 있던 내게 남편의 말은 매우 보수적으로 들렸지만 한편으로 안도가 되었다. 그 말을 받아서 나는 아이에게 하고 싶은 말을 했다.


“세상에는 고쳐야 할 것이 너무나 많아서 우선 순위를 정해야 하거든. 그러고도 효과를 낼 수 있는 방법으로. 또 가장 적절할 때에 행동을 해야 해. 며칠 전에 중앙청 첨탑을 제거했지? 그런데 그랬다고 일제 잔재가 어디로 사라지니? 중요한 것은 중앙청을 허문다든가 옮긴다든가 첨탑을 제거한다는 논의의 과정에서 우리가 우리 자신을 새롭게 보게 되고 만들어 가는 부분이야. 과정이 중요하다는 말이야. 나는 네가 이번 일을 계기로 하여 네가 살고 있는 공간을 잘 관찰하고 알아가게 되었으면 좋겠다.”


우리는 아이에게 여러 가지로 쐐기를 박고 있었다. 아이는 배반감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지금 “위헌”이 될 일이 사방팔방에 깔려 있는 세상에 살고 있는 데다가 끔찍하게 바쁘다. 삼풍백화점이 무너지고 경기 실업학교 방화 사건으로 사람들이 죽어가는 것에도 흔들리지 않고 의연하게 아이 뒤에서 법정 투쟁을 밀어 줄 정도로 철저한 자유주의자를 못된다. 나는 이튿날 학교에서 있을 일에 대비해서 또 한마디를 덧붙였다.


“해원아, 따지고 싶어도 너무 전제가 다를 때는 포기를 하는 것이 나아. 아무리 네가 옳다고 생각해도 서로 의사 소통이 안되면 소용이 없잖아. 독단적이라는 소리를 들을 뿐이지.”


이야기를 끝내고 해원이와 나는 학교에 갔다. 학생 주임 교사실에 들어서니 몇몇 선생님들이 아이에게 이야기를 건넸다. 한참 동안 여자인 줄만 알다가 나중에 남자인 것을 알고 놀랐다. 제일 먼저 외국에 몇 년 있었는지를 물었다.


“미국에 몇 년 있었어요? 일년요? 일년이면 금방 적응을 할겁니다. 너무 걱정 마십시오.”


미국에 일년밖에 안 있었으면서 너무 물이 들었다고 생각하는 분위기였다. 사실 외국에 간다고 그렇게 사람이 달라지나?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은데.


보수적인 아이는 미국에 가면 더 보수적이 되고, 집중 못하는 아이는 더욱 집중을 못하고, 진보적인 사람은 더욱 진보적이 될 뿐, 사람은 환경을 바꾼다고 해서 그렇게 쉽게 바뀌지 않는다. 우리의 “순수한” 정신이 서양물로 물들면 안되다는 생각이 박혀 있어서, 아니며 서양 것이면 사족을 못쓰던 현대사를 기억하기에 그런 의심들을 하게 되나 보다.


학생 주임 선생님이 아이와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나이 지긋하고 선해 보이는 분이었다. “이제 까만 운동화는 신을 수 있게 되었어. 그러나 반바지는 안되고… 그런 머리는 물론 안 되지.” 나는 멀찍이 앉아 다른 교사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일부러 그 쪽에 신경을 쓰지 않으려 했다. 교칙을 두고 여러 가지로 이야기를 나누더니 주임 선생님이 좀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남자와 여자가 왜 다르냐고? 너 원피스 입고 하이힐 신고 다닐 수 있냐? (예 다닐 수 있어요.) 그렇다면 너와 말이 안 된다. 미국에서는 미국 사회 규칙이 있고 한국에 오면 여기 규칙이 있어. 집에 가면 집안 가풍이 있고 학교에 오면 학교 규칙이 있듯이… 그렇게 마음대로 하고 싶으면 검정고시를 보거나, 조금만 있으면 중학교를 졸업하니까 머리를 길러도 되는 예술 고등학교에 가든지 미국에 가서 학교를 다니든지 해야지.”


예의범절을 중시하고 학생들을 이뻐하는 모습이 역력한 교감 선생님도 비슷한 이야기로 해원이를 타일렀다.


“학교에는 학교의 규칙이 있고 가정에는 가정의 규칙이 있지 않니? 미국은 미국 법이 있고 소련은 소련 법이 있고, 우리에게는 우리 것이 있잖아. 연예인들은 인기를 먹고사니까 특이하게 보여야 하고, 그래서 머리를 기르지, 머리 기르고 싶으면 열심히 공부해서 대학교 가서 길러라. 대학가면 다 할 수 있다. 열심히 해서 서울대도 가고 노벨상도 타고 훌륭한 사람이 되라.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남들과 잘 어울려 적응을 해야지. 너만 다르게 하면 되겠니?”


나는 솔직히 선생님들의 논리에 귀를 기울이기보다 그분들의 친절함과 참을성에 좀 놀라고 있었다. 중학교 교사는 아직도 할 만하다더니 사제간의 정이랄까 신뢰가 아직 남아 있는 것 같아서 한편으로는 반갑고 한편으로는 걱정이 되었다.


밖에서 보는 교육계의 위기가 안에 들어가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그렇게 많은 모순을 안고 있는 제도 교육 현장이 이렇게도 평온하다니! 중세의 성곽처럼 묘하게 굳어진 진공의 공간이 아닌가.


사실 이해를 하려 들면 못 할 것도 없다. 체제 유지비용이 부족해서 근근히 지탱해 가는 학교가 어떻게 구조 변화의 비용을 마련해 낼 수 있을까? 물질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여전히 몹시 가난한 상태에 있는 교육자들에게서 변화를 감당해 낼 힘이 나올 리 없다. “아직은 아닙니다. 천천히, 천천히”라고 말하는 것말고는.


어쨌든 머리에 관한 학교의 논리는 명료했다. 예외를 허용할 수 없다는 것, 미국 물이 든 것을 곧 빼고 여기에 맞추라는 것, 원하는 일은 대학가서 하라는 것, 집단주의와 민족주의와 “대학에 가면 모든 것이 달라질 것이다.”라는 대학 종착역주의가 그 기본에 깔려 있다. 인습으로의 회귀와 비순응자에 대한 처벌이 강화되고 있는 건가? 학교의 규칙과 가정의 규칙과 사회의 규칙 해서 개별 집단에 따라 규칙은 다르다는 논리는 편리하지만 얼마나 위험한가. 그 개별 공간 사이에 생기는 괴리를 없애고 더 보편적인 원리로 행동해 가는 것이 근대적 인간의 행동 원리라고 알고 있는 내가 상식이 없는 사람인가? 우리 사회가 분열을 정상 상태로 여기는 사회임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해원이는 상당히 당황한 표정이었고 교장 선생님에게 한가닥 기대를 거는 것 같았다. 그러나 교장 선생님 역시 비슷한 내용의 이유로 그런 머리로는 교실에 들여보낼 수가 없다고 하셨다. 해원이는 표정이 완전히 굳어서 집으로 왔고, 내가 “이보 전진을 위한 일보 후퇴” 어쩌고 하면서 위로를 하려 들자 그것은 “타협하는 사람들이 하는 말”이라며 이번 사건은 “후퇴”와 “굴복”일 뿐이라고 했다.


오후에 학교에 갔다가 집에 전화를 해보니 누나 오기를 기다려 미장원에 갔는데, 할머니 말씀이 “아들이 오는 줄 알았더니 또 딸이 왔다. 그런데 기분은 좋은 것 같으니 다행이다”고 했다. 집에 와 보니 단발머리를 하고 있었고 다음날 학교 가서 교실에 들어가지 못하고 왔다. 교감 선생님께서는 한 학생을 데리고 와서 머리를 그 학생처럼 자르라고 일러주었다 한다. 머리를 밀어버릴 생각을 했는지 학원 아이들과 의논을 했는데 삭발을 하면 정학이라고 하더라고 했다. 그래도 밀어버리겠다고 미장원에 가더니 밀다가 생각이 바뀌어서 모히칸 컷이라는 갈 하고 왔다. 양옆을 파랗게 면도로 밀고 중간 부분만 남겨둔 머리인데 긴 머리를 세우면 펑크처럼 되는 스타일이다. 긴 머리는 묶으면 사무라이처럼 되고 매우 사나워 보인다. 그런데 앞가르마를 타면 얌전한 도토리 머리가 된다.


다음 날 또 쫓겨올 것 같아서 가슴을 졸이며 집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의외로 저녁에 기분 좋게 돌아왔다. 교감 선생님께서 면도로 민 머리 스타일을 모르셔서 그런지 “시원하게 잘 잘랐다.”고 칭찬하셨다고 한다. 막상 교실에 가보니 아이들 중에는 머리 염색한 아이가 꽤 있더라고 한다. 일년 동안 많이 변한 것이다. 학생들에게도 자기가 한 머리 스타일을 권해본 모양인데 그 머리를 했다가는 학교에서 야단 맞기 전에 집에서 쫓겨난다고 하더라고 씁쓸하게 웃었다. “가정의 변수라는 걸 미처 계산을 못했지.”


피시 통신 대화방에 들어가 보면서 해원이는 좀 더 사회를 알아가고 있다. 서울대 성희롱 사건의 고등법원 판결문에 전적인 지지를 보내는 사람들의 편지를 읽고 일일이 반박 편지를 쓰다 포기를 하고는, 피시 통신하는 사람들 중에 성차별주의자들이 더 많은 지 물었다. “글세, 비슷하겠지.” 그 대답밖에 못했다.


그러나 피시 통신 교육 관련 토론 광장에 오르는 글을 보면 해원이 같은 아이들이 적지 않다. 춘천 고등학교 최 우주 군이 오린 “학생들의 기본권을 짓밟는 학교”라는 제목의 글이나 문필상 군의 “중고생은 인간도 아니다.”라는 글을 읽으면 해원이를 보는 것 같았다.


파르스름한 부분이 까매지자 해원이는 전기 면도기를 사와서 누나에게 밀어 달라고 부탁을 했다. 그 체제에 길들여지지 않겠다는 표시로 그는 파르스름한 빛깔을 유지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래, 해원아, 누가 네 마음을 모르니? 그리고 바로 그런 기억이 우리를 깨어있게 하는 것 아니니? 나 역시 내리지 말라는 애교머리를 열심히 내리고 다녔다. “귀 밑 일 센티미터”보다 길면 절대 안 된다는 성화에, “귀 위 일 센티미터”로 잘라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학교를 다녔다는 정선이도, 학교에 가면 교복이 불편해서 수없이 꾸중을 들으면서도 늘 체육복으로 갈아입고 있었다는 혜란이도, 실은 개성을 죽이려는 학교에 대한 저항으로 고집을 부린 것이었고, 그 작은 저항은 실은 작은 것이 아니었다. 그 기억이 우리를 계속해서 살아 있게 하기에 그런 기억이 없는 부모를, 교사를 가가 참으로 좋아하고 존경할 수 있겠니? 억압이 더욱 교묘해져가는 후기 자본주의 시대에 인간다운 사회를 만들어가기 위해 노력을 계속할 사람은 그런 기억을 가진 사람들일 게다.


며칠 전에 인기 있는 락 그룹의 드럼 주자와 인터뷰를 하였는데, 그는 고등학교 시절을 거의 맞으면서 보냈다고 하더라. 머리 기르는 거 때문에. 음악 하는 사람이든 누구든 무차별하게 학교 방침이라면서 학생부 선생님이 가위 갖고 다니면서 막 잘랐다고 하더라. 그런데 이 친구는 일학년 때는 잘렸는데 이학년 때는 머리를 손으로 꽉 잡고 결사적으로 저항했다더라. 자르려면 손가락이 잘릴까봐 못 건드렸다는구먼. 그 대신 손을 놓을 때까지 패는데 네 시간 내내 맞은 적도 있었단다. 몽둥이로. 그리고 나서는 선생님이 지쳐서 포기했단다. 학교를 중간에 그만두고 싶었는데 맞은 세월이 아까워서 졸업을 했다는구나. 처절한 이야기이다.


해원이 너는 네 논리와 전략 덕분인지. 누구의 말대로 교수의 자녀라는 신분이 주는 보호막 때문인지, 세상이 좋아졌기 때문인지, 아마 그 모든 것 덕분이겠지만 그 형과 비교하면 정말 좋은 세상에 살고 있는 셈이다.


초등학교 오학년 때였던가? “엄마는 겁도 없어. 어떻게 이런 세상에 아이를 낳을 생각을 했지?” 라던 네 말을 기억한다. 네가 꾸민 법정 투쟁을 적극 지원하지 않은 것을 두고 언젠가 나는 후회하지 않을까? 이번에 기성세대의 역할을 톡톡히 한 것 같아 찝찝한 마음이 없지 않다. 나는 기성 세대이고 너희 세대와 공존한다. 중요한 것은 두 세대간의 연결이며 신뢰일 것이다. 너의 독자적인 여정이 시작되고 있구나. 힘들어도 즐거운 여정이 되기를 바란다.


(������샘이깊은물������ 11월호에서)




5. ‘땀’의 대가만이 값지다?


변정수


나우누리 ID ddonggae


우리나라의 고용구조가 왜곡되어 있다는 사실쯤은 경제학자가 아니 라도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는 일이다. 고학력 실업자는 나날이 늘어가는 한편에서는 외국인 노동자의 고용을 양성화해 달라는 아우성이 일어 날만큼 극심한 인력난을 호소하고 있다. 한창 일할 나이의 젊은이들이 오로지 대학 졸업장 하나만을 위해서 재수, 삼수로 몇 년씩 노동력 을 사장시키고도 고급 인력의 확보는 고사하고 고학력 실업자만 양산되는 참혹한 결과로 나타날 뿐이다. 이미 고졸 4년차의 임금 수준이 대졸 초임을 압도한지가 꽤 오래 전인데도 이런 기현상이 좀체 해결의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면 ‘학력간 임금격차’라는 경제적 이유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다른 요인이 작용하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이른바 ‘더럽고, 힘들고, 위험한’ 일을 기피하려는 경향을 두고 말도 많고 탈도 많다.


사람이 직접 땀을 흘려야만 되는 일이 아직도 도처에 널려 있는 현실에서 누구도 선뜻 땀을 흘리는 일을 하고 싶어하지 않는다면 방법은 세 가지밖에 없다. 그 모든 일들에 그다지 땀이 필요하지 않도록 작업 조건을 개선하는 것이 두말할 나위 없이 최선책이겠지만, 그것이 어렵다면 누구나 땀 흘리는 일을 기꺼워할 수 있도록 사회적 환경을 조성해야 할 것이고, 아무래도 개개인의 욕망까지 변화시키겠다는 의도가 참으로 위험한 발상이라면 결국 누구도 땀흘리는 일로부터 면제될 수 없도록 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방법일 것이다. 그러나 말이야 그럴 듯하지만 이쯤 되면 ‘강제 노동’의 혐의를 피할 수 없게 된다. 문제는 분명히 있는데 도무지 해결할 길이 없다면 그 다음으로 고려해 볼 수 있는 선택은 상징조작을 통해 허위의식을 유포하는 것이다.


그래서 아무에게도 곧이 들리지 않을 ‘땀 한 방울의 소중함’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떠들어대면서 땀 흘리는 일을 기피하는 태도가 마치 대단한 부도덕한 욕망인 듯이 매도하는 한편으로, ‘땀 흘리는 일과는 좀체로 거리가 멀다’고 인식되고 있는 사람들의 ‘땀 흘리는 모습’을 억지로 꾸며서라도 연출함으로써 ‘땀 흘릴 필요가 없는 사람’들에게는 도덕적 자기만족을 제공하는 동시에 ‘실제로 땀을 흘리면서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의 사회적 소외감 또는 열패감을 적절하게 상쇄하고자 의도하게 된다. <체험! 삶의 현장>은 겉으로 봐서 화려해 보이기만 하는 연예인들이나, 땀보다는 밑천 안 들어 보이는 ‘말’로 호구를 삼는 학자 문필가 예술가 등을 포함한 소위 ‘저명 인사’, 또는 고위 공직자나 정치인들이 ‘삶의 현장’에서 비록 하루나마 직접 땀 흘리며 일하는 모습 을 보여준다.


이 프로그램은 처음부터 엇갈린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이미 하루하루를 ‘삶의 현장’에서 더럽고, 힘들고, 위험한 일에 땀을 흘리고 있는 사람들에게 출연자들의 하루치 땀은 전혀 상반된 의미로 동시에 다가올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서툴기만 한 몸놀림들을 보며 혀를 차는 동안 은연중에 묘한 ‘냉소적 우월감’을 경험함으로써 현실에서의 열패감에 대한 심리적 보상을 얻는 동시에 단 하루에 지나지 않을망정 ‘땀의 소중함’을 느끼리라는 기대를 어느 만큼은 충족 시켜 주는 출연자들의 반응들을 접하면서 서로 딴 세상에라도 사는 듯 할 정도로 한없이 멀었던 심리적 거리가 새삼스럽게 가까워짐으로써 소외감이 완화된다. 이러한 만족감 속에서 긍정적인 평가가 나타난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바로 이러한 만족감이 실제 현실의 변화와는 무관한 단지 심리적 보상에 불과한 한낱 허위의식이라는 점이비판의 근거로 작용한다. 그들의 ‘체험’이 출연자들에게는 얼마나 감동적일지 알 수 없는 일이지만 그 감동이 시청자들에게까지 전달되기는커녕 속된 말로 “쇼하고 있네!”라는 빈정거림이 저절로 튀어나올 만큼이나 여러모로 어설프기 짝이 없는 것이다. 방송을 전제로 그것도 진짜 ‘삶의 현장’이었다면 당장에라도 쫓겨날 법한 엉성한 일매무새나 심지어 동료 작업자들을 더 힘들게 할뿐 아니라 업주에게는 물질적 손실까지 초래하는 실수까지도 적당히 배려 받고도 게다가 고작 그만큼을 마치 대단한 고생이라도 되는 듯 의기양양하게 ‘땀의 소중함’과 ‘땀흘리는 사람들의 노고’를 역설하는 모습이 그보다 훨씬 더 각박한 ‘삶의 현장’을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에게 달가울 리가 없다. ‘보여주기 위한 체험’은 설령 아무리 진지해도 처음부터 거짓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더구나 이 프로그램은 어쩌면 ‘노동’의 가치를 정당하게 평가하는 데 매우 위험할 수도 있는 편견 어린 통념을 전제하고 있다. 이를테면 연예인들의 생활이 과연 일반인들이 흔히 생각하는 만큼 화려한지 또는 나아가 지식인들의 정신노동이 과연 단지 ‘땀을 흘리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육체노동보다 손쉽다고 단정할 수 있는지는 참으로 의문이 아닐 수 없다. 육체노동의 가치와 중요성을 강조한다는 이유로 비록 더럽고, 힘들고, 위험한 일은 아닐지라도 나름대로의 ‘삶의 현장’에서 다른 의미에서나마 어쩌면 훨씬 더 열악할 수도 있는 작업조건을 무릅쓰고 성실하게 분투하는 또 다른 ‘체험’을 폄하한다는 것은 일종의 폭력일 수도 있다. 물론 이 프로그램에 출연할 법한 스타급 연예인이나 저명한 지식인들쯤이라면 개인적으로는 적어도 육체노동과 비교할 때 큰 고생하지 않는 편에 속할 것이다. 그러나 이들의 하루 체험이 과장되고 심지어 희화화되는 과정에서, 육체노동과 비육체노동이라는 전혀 현실적이지 않은 이분법적 논리가 다시금 고착된다면 문제는 자못 심각해진다.


각박한 ‘삶의 현장’에서 땀흘리는 사람들이 일주일에 단 40분이라도 심리적 위안이나마 경험할 수 있다면 단지 ‘쇼’에 지나지 않는 허위의식일지라도 무가치한 것만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일하는 사람’과’일하지 않는 사람’ 사이의 구분을 엉뚱하게도 적어도 그보다는 중요하지 않은 ‘땀흘리는 사람’과 ‘땀 흘리지 않는 사람’의 구분으로 대치해 버리는 것은 어떠한 변명으로도 정당화할 수 없는 ‘의도된 착각’이다. 과연 격무에 시달리는 사무직 노동자들의 힘겨운 일상을 ‘육체적 노동’이 아니라고 볼 수 있는 근거가 있을까. 또는 전문직 노동자들의 상대적 고소득이 일한 만큼의 정당한 대가 이상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하물며 극심한 인력난을 반영하듯 ‘육체 노동’의 임금 수준이 이미 하늘 높은 줄 모르는 현실은 또 어떻게 설명할까. 서두에 전제한 대로 사실상 경제적인 문제가 아닌 3D기피를 ‘힘들게 번’ 하루치의 일당을 통해 ‘땀의 가치’ 문제라고 오도함으로써 정작 문제의 본질은 아무런 비판적 검토 없이 은폐되는 것이다. <96. 1. 9.>




6. 조급함에 관한 우리 속담, 참으로 재미있군요


서정수


한양대 국문과 교수, 국어정보학회 회장


조급함에 관한 속담을 살펴보기로 한다. 바쁜 현대인들은 대부분 조급한 마음 때문에 정말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잊고 살기 쉽다. 눈앞의 이익만을 챙기는 데에 급급하고, 결과가 눈에 보이는 일에만 몰두한다.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라는 속담처럼 차근차근 일을 해 나가려는 생각보다는 일시에 막대한 성과를 얻으려는 마음뿐이다. 이런 조급함의 결과로 한탕주의, 편의주의가 성행하게 되었다. 많은 사회적인 현상들에서 깊이가 느껴지지 않는다. 교육 정책도 백년을 내다보기는커녕 내년을 바라보기도 어렵고, 건물 하나를 지어도 날림 공사이기 일쑤다. 환경 오염의 문제가 심각한 데에도 눈앞의 이익을 추구하는 데에만 급급하고 공장 폐수를 강물로 흘러보내는 일이 다반사다. 이것들은 모두 우리들의 조급함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조급함을 재미있게 표현한 속담들이 있다. 매사에 유유자적한 마음가짐으로 생활해 온 조상들의 지혜가 담겨 있는 속담을 음미하며 우리들 자신의 조급함을 반성해 보자.




(14) 가랑잎에 불붙이기


(15) 급하기는 우물에 가서 숭늉 달라겠다.


(16) 급하면 콩마당에 서슬치겠다.


(17) 콩밭에 가서 두부 찾는다.


(18) 싸전에 가서 밥 달라고 하겠다.


(19) 밀밭만 지나가도 주정한다.


(20) 오동나무 보고 춤춘다.


(21) 첫날밤에 속곳 벗어 메고 신방에 들어가겠다.


(22) 시집도 가기 전에 기저귀 마련한다.


(23) 급하면 바늘 허리에 실 매어 쓸까?


(24) 나는 새도 깃을 쳐야 날아간다.


(25) 개구리도 움쳐야 뛴다.


(26) 솥에 넣은 팥이라도 익혀야 먹지.


(27) 급히 더운 방이 쉬 식는다.


(28) 급히 먹은 밥이 목이 멘다.


(14)-(22)의 속담은 “조급함”을 다른 일에 비유하여 재미있게 표현하고 있다. (16)에서 “서슬”은 두부를 만드는 데에 쓰는 물이다. 두부를 만드는 데에 필요한 서슬을 콩마당에 치려고 하니 이 정도로 조급함도 없을 것이다. (18)도 거의 비슷한 비유이다. 쌀집에 가서 밥을 달라고 할 정도로 조급하다는 것이다. (20)에서 “오동나무”는 거문고를 만드는 재료이다. “거문고를 만들기도 전에 오동나무를 보고 춤을 출 정도로 급함”을 비유한 것이다. (23)-(26)의 속담들은 아무리 조급해도 일에는 순서가 있으므로 차근차근 해 나가야함 을 표현한 것이다. 아무리 급하다고 바늘 허리에 실을 매어서 쓸 수는 없는 것이다. 솥에 넣은 팥이라도 익기 전에는 먹을 수가 없는 것이다. (27)-(28)에서는 조급하게 한 일은 허술한 데가 많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멀리 내다보고 차근차근 일을 처리해 나가는 여유가 필요하다. 우리는 위의 속담들에서 조급함이 오히려 일을 망친다는 진리를 꿰뚫고 있는 조상들의 지혜를 깨달을 수 있다. 혹시 우리들 자신의 삶이 날림 공사처럼 조급함으로 망가지고 있지나 않은지 반성해보자.






7. 재미있는 논리 문제


어느 나라에서는 항상 거짓말만 하는 정치인을 ‘보수파’, 항상 참말만 하는 정치인을 ‘진보파’, 때로 거짓말도 하고 때로 참말도 하는 정치인을 ‘중도파’라 한다. 이 정치인들이 모인 곳에서 있었던 다음 대화를 보고 물음에 답하시오.


가) <甲, 乙, 丙이 모인 경우: 단, 이 경우 보수, 중도, 진보가 각 하나씩 있다.>


甲: 난 중도파야. 乙: 자네 말이 맞네. 丙: 난 중도파가 아니지.


문제 : 이들은 각각 어느 파인가? 甲(   ) 乙(   ) 丙(   )




나) <甲, 乙만의 대화>


甲: 자넨 진보파네. 乙: 자넨 진보파가 아니구 말구.


문제: 위의 대화로 알 수 있는 내용은 다음 중 (  )번이다.


① 둘 중 적어도 한 명은 진보파다.


② 둘 중 적어도 한 명은 중도파다.


③ 둘 중 적어도 한 명은 보수파다.


④ 아무 것도 알 수 없다.


8. 광고는 우리에게 무엇을 광고하는가


박 성 원


(나우누리 ID Bank93. 94.07.20)


광고는 얼핏 다양한 상품들을 선전함으로써 소비자에게 선택의 기회를 넓혀주는 것 같다. 하지만 조금만 살펴보면, 광고는 특정상품에 대한 구매를 강요함으로써 결국에는 소비자들로부터 모든 선택의 여지를 박탈해 간다. 그러므로 광고의 성공은 곧 소비자의 실패라는 패러독스가 성립된다.




1.


‘콧수염과 중절모, 지팡이와 헐렁바지, 그리고 팬터마임.’


‘인류의 문화재’라 감히 말할 수 있는 채플린이 토키 영화(사람이 말을 하는 영화)를 거부하고 무성영화에 집착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영어라는 ‘언어’(혹은 ‘말’)를 사용함으로써 영어권 이외의 사람들에게 현대 문명의 비인간성을 고발하는 내용이 올바르게 전달되지 않을 수도 있는 가능성을 없애려는 의도인 것 같다. 이와 동시에 채플린의 팬터마임은 곧 ‘언어 이상의 언어’로 전화된다. 물론 팬터마임으로써 채플린이 전달하는 내용을 그 언어적 형태보다 훨씬 더 올곧게 받아들일 수 있는 지의 의문은 남는다. 그래도 채플린의 무성영화를 언어의 오용 등의 한계를 뛰어넘으려는 시도로 일면 해석이 가능할 수 있다.


아침에 일어나면 신문을 보고, 지하철이나 버스를(혹은 승용차나 택시를)타고, 저녁에 귀가해서는 텔레비전을 보고, 다시 또 내일이면 똑같은 과정이 반복된다. 그러한 반복 속에서 우리는 신문, 라디오, 텔레비전 등 각종 매체들을 통해서 우리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엄청난 수의 광고를 접하고 있다. 달리는 광고게시판이라고도 할 수 있는 지하철 역시 광고를 위한 훌륭한 ‘매체’ 역할을 한다. 그밖에도 잡지들, 신문에 끼워서 배달되는 DM으로 발송되는 백화점 등의 광고지, 각종 옥외 광고물, 점보트론 등등. 이제 광고를 접하지 않는다는 것은 곧 반문명이자 야만의 표식에 다름 아닌 그러한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이렇듯 도시의 불가피한 부분이 된 광고는 일상성이라는 틀 속에서 끝없이 반복되는 우리의 생활리듬에 맞추어 온갖 환상을 동원하여 반복에 반복을 거듭하며 우리를 공격하고 있다. 순수함, 기쁨, 행복, 고귀함, 강함, 젊음, 변신, 성적 매력, 사랑, 인간애, 사회적 성취 또는 성공 등 우리가 염원해 마지않는, 그러나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모든 만족과 환상의 이미지들이 광고에서 마술적으로 ‘실현된 현재의’ 상황으로 등장한다.


썬키스트 패밀리 주스를 마시는 것은 곧 가족의 행복을 맛보는 것이며, 일주일에 한 번 백화점에서 쇼핑을 하고 남편과 함께 퇴근하는 주부여야 행복하고, 퍼지줌 카메라를 구매하는 것이 곧 사랑을 얻는 것이며(“사랑하는 사람만 세 배로 당기세요”), 또 세피아 자동차를 타며 우리는 발전하는 신세대-젊은 엘리트가 된다. 바로 이것이 광고가 우리에게 제시하는 약속이자 보증이다. 그래서 우리의 욕망을 뒤흔들고 끝내는 우리를 소비자로 만들고 만다.


우리의 일상성에 깊숙이 파고 들어와 있는 광고. 이제 우리는 이러한 광고에 대해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져 본다. 도대체 광고라는 것이 인간에게 어떠한 작용을 미치는가, 좀더 구체화시킨다면 ‘광고가 전달하고자 하는 기호들은 사회 속에서 인간에게 어떠한 영향을 발휘하는가’라는 물음이 그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관심은 광고가 전달하는 기호와 그 기호의 가장 유력한 형태인 광고 속의 언어에 좀더 집중될 수 있다.


 2


산업혁명 이후, 초기의 광고는 단순히 상품 정보의 소개와 구매자의 소비욕구를 충족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기술력이 고도화된 현대 산업사회에서는 제품력의 평준화로 고만고만한 경쟁제품들이 자신만의 Sellingpoint 없이 싸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제는 자연히 광고에서 ‘무엇을 말할 것인가(What to say)’보다 ‘어떻게 말할 것인가(How to say)’에 대해 더욱 관심이 집중된다. 다른 제품과의 차별성을 최대한 부각시키기 위해 ‘무엇’이 아닌 ‘어떻게’의 문제가 중요하게 등장한 것이다. 채플린이 주제전달의 가장 좋은 도구로써 팬터마임을 선택했던 것도 이러한 이유가 내재해 있을 것이다. 또한 중요한 것은, 광고는 우리를 구매자, 즉 직접소비자로 만들지 않을 때에도 고유한 이데올로기적 효과를 가진다는 점이다. 이 두 가지는 광고카피를 분석하고자 하는 직접적인 이유이다. 여기서는 후자에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 첫 번째 예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순간의 선택이 10년을 좌우합니다”, “고향 가는 길 큰 기쁨이 달린다, 작은 차 큰 기쁨 티코”, “이것저것 첨가물로 만든 주스가 아닙니다”, “프리랜서는 프리랜서를 입는다” 등등).


“세상은 생각보다 따뜻하다. 훈훈한 맛 맥심.” 이처럼 현재의 세상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따뜻한, 살 만한 세상이다. 훈훈한 맛의 맥심커피 한 잔에 현재의 모든 문제와 갈등은 스르르 녹아버릴테니 말이다. 또 풍요로움과 이웃사랑이 있고 사랑과 기쁨을 드리는 백화점이 있고, 행복이 넘치며, 자연과 인간을 생각하는 아파트가 있고, 뜨겁게 뛰는 남자, 지킬 것은 지켜 가는 남자, 가슴이 넓은 남자들이 있고, 화려한 변신을 할 줄 알며 알고 보면 부드러운 여자, 흔들리고 있는 여자가 있는 ‘현재’의 세상. 우리는 가만히 있어도 시대를 먼저 읽고 시대의 변화를 이끌어주는 힘있는 신문이 있고, 자유와 개성, 성공과 성취, 아름다움과 고귀함 순수함이 있는 ‘현재’의 세상. 인간을 위한   테크놀로지로 우리의 미래를 밝은 전망으로 이끌어가고 있는 ‘현재’의 세상. 광고의 논리에 따르면, 이렇게 의미 부여된 광고 속의 세계는 단지 가상, 환상이 아니라 광고 속에서 ‘현재화 된’ 우리 사회의 모습이다.


이 가상적 이미지들은 상품의 구매와 소비에서 비롯된 소비이데올로기에 불과하다. 그러나 소비에만 정확히 초점이 맞춰져 있지는 않다. 오로지 어떤 상품을 구매할 것인가의 갈등 외에는 갈등도 문제도 없는 사회, 자유와 행복이 있고 많은 미래에 대한 전망이 있는 사회, 이러한 사회상을 암암리에 독자, 시청자에게 전파함으로써 광고카피는 소비의 조건인 현 상태를 존속시키는 의외의 효과를 발휘한다.


또한 광고가 현 체제에 필요한 인간을 재구성해 낸다는 것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이는 바로 광고가 이성에 호소하는 초기의 방식에서 미적, 문화적 외관을 취하고 감성에 호소하는 전략으로 전환되어온 추이와 맥락을 함께 한다. 세련된 심리적 수법을 이용하여, 독자와 시청자의 정서적 불안을 조성함으로써 소비를 자극하는 현재는 매우 일반화된 광고카피들이 있는 것이다. 가상의 중산층을 미리 마련해 두고 그 중산층의 사람들이 전망하고 지향하는 상류층의 호사스럽고 풍요로움이 넘치는 혹은 고급스럽게 느껴지는 소비이미지를 제시하여 정서적 불안감을 제시하고 잠재된 욕망을 일깨워 당신도 이러저러한 상품을 구매하면 결국 선망 받는 상류층 못지 않게, 혹은 중산층이 될 수 있다고 부추긴다. “잡음 없이 삽시다”, “이런 아파트에서 살고 싶어요”, “8학군으로 갈 것인가? 완전학습을 볼 것인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소수의 선택된 분들만이 썸씽스페셜을 마실 수 있었습니다”, “칼스버그, 그 이름을 명예롭게 하라”, “니노세루치가 어울리는 사람이 있다” 등의 예에서 확인할 수 있다.


중산층이라는 환상을 이용한 것과 달리, 최근에는 도시 서민들이 일상적으로 겪는 생활감정의 심리적 불안으로 고착시키는 광고도 보이고 있다. 지하철에서 볼 수 있는 한 출판사 광고에서는 독자들이 광고를 보게 되는 장소인 지하철을 무대로 하여 바로 지금 이 자리에서 벌어지고 있는 ‘실제의 상황’을 언어로 재구성해내고 있다.


“짜증스러운 출퇴근-1시간의 휴가와 맞바꾸십시오. 덜컹, 아야! 좀 내립시다. 이 복잡한 곳에서 신문을 펼쳐들고 보다니. 출퇴근 시간이면 어김없이 일어나는 사건 사건들, 짜증나시죠! 내일부터는 책 한 권을 들고 집을 나서 보세요. 출퇴근 시간에 읽는 책 한 권으로 마음에 넉넉한 여유가 생깁니다. 당신의 가슴에 느낌표 하나를 새기십시오!”


자기네 상품을 사라는 촌스러운 주문은 하지 않는다. 단지 어떤 책이든 한 권을 들고 나와 ‘지옥철’의 1시간을 휴가로 바꾸어 보라는 여유 있는 권고만이 있을 뿐이다. 그러나 이 권고 이면에는 ‘피할 수 없이’ 매일 겪게 되는 짜증스러움을 불안의 감정으로 고정시키고 불안감의 해소책으로 책을 등장시킴으로써 이왕이면 좋은 아이디어를 제공해준 자기네 출판사의 책을 사라는 함의가 담겨 있다. 또한 출근길의 지하철이 마음의 여유를 주고 가슴에 느낌표를 새겨줄 독서실로 둔갑해서 나타난다. 짜증스러운 현실은 당신이 어떻게 해 본다고 해서 현실적으로 바뀔 수 있는 것도 아니라는 메시지가 함축된 것이다. 그 현실은 오로지 상품의 소비자가 됨으로써 가상적, 상상적으로만 해결될 뿐이다. 이렇게 상상적 해결만을 제공함으로써 결국 현 상태를 존속시키는 작용을 하는 것이 바로 이데올로기적 효과인 것이다. 이런 면에서 광고란 곧 진실, 혹은 사실의 차원이 아니라 ‘예언적’ 차원에 속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일전의 휴거사태에서도 볼 수 있듯이 실현되지 않은 예언인 것이다.


“주부는 역시 좋은 정보에 빨라야죠.” 시린 치아를 위한 치약 광고카피다. 그런데 주부가 ‘역시’ 좋은 ‘정보’에 빨라야 할 필요는 없었다. 밥 짓고 빨래하고 아이들 돌보고 남편 뒷바라지 잘 하는 것을 천직으로 삼은 전통적인 주부상에 비춰본다면 그렇다는 말이다. 그러나 시린 치아를 미리미리 예방해서 치과에 갈 필요도 없이 만드는 현명한 주부라면, 가족의 건강을 세심하고 광범위하게 돌보는 능력이 있는, 또 이러한 소양으로 하여 시대에 걸맞은 현대적인 주부라는 명칭이 어울릴 만한 주부라면 “역시 좋은 정보에 빨라야죠”다. 이제 이 말은 당연한 것처럼 들리기도 한다. 그러나 정말 그런가. 이 카피의 ‘역시’라는 표현은 누구나 그리고 당연히 이런 정보에 빨라야 한다는 것을 강제한다. 물론 이 강제성은 아주 세밀하게 은폐되어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기 때문에 주부들은 이제는 좋은 정보에 정말 빨라야겠다고 스스로 자진해서 이런 생각을 가지게 된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빨라야죠’의 종결어미 ‘.야죠’ 역시 마찬가지다. 정보에 빨라야 한다는 것이 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결정짓는 이 어미는 실제로 그 의미를 자세히 뜯어보면 분명히 이런 정보에 빠르지 않은 주부를 무능력한 주부로 현모양처의 세계에서 배제시켜 버리는 효과마저 발휘한다. 말하자면 이런 표현은 이런 광고카피가 설정한 세계 안에 예외 없이 모든 주부를 몰아넣는 효과를 가진다는 말이다. 그런 효과로 인해 이제는 주부라면 당연히 이렇게 좋은 정보에 빨라서 가족들의 건강을 구석구석까지 살펴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그 광고를 보고 듣는 사람들에게 아무런 장애 없이 받아들여진다. 이제 이 현대판 주부이데올로기가 유포되어 이런 생각을 당연시 여기는 사람들이 존재하게끔 된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주부’는 가족의 건강을 세심하게 돌보는데 필요한 ‘정보’를 빨리 수집할 수 있을 만큼 우선 시간이 넉넉해야 한다. 그리고 그런 정보를 듣고 그 정보에 따라 움직일만한 재화 역시 풍부해야 한다. 이렇게 보면 그 정보는 시간이나 돈 또는 그밖에 자본주의에서 좋은 것이라 칭할 만한 여러 가지를 가진 사람에게만 ‘정보’이다. 이런 것을 두고 볼 때, 이 담론은 결국 생산계급의 입장을 배제한 우익의 담론이다. 우리가 느끼고 있지 못한 사이에 이미 그 담론 안에서 일어났던 계급투쟁의 결과로 생산자의 입장은 전면 배제되고 결국 어느 한 쪽의 입장만을 나타냈던 것으로 귀결되었다. 자본주의 담론 중 특히 광고담론은 이처럼 계급사회의 생활과 경험을 무계급적인 것으로서 꾸며냄으로써 실제로 현실에서 일어나고 있는 계급투쟁을 이미 끝난 것으로 치부하는 효과를 생산해 낸다. 이제 다음과 같은 말을 명제화 해도 될 것 같다. ‘모순된 지배구조의 재생산은 이데올로기에 의해 생산된 주체에 의해 항상 지속적으로 일어난다.’


하나 더 살펴보자. 이미 작년, 재작년 이야기인데, 연극배우 윤석화가 감각적인 육성으로 커피광고 파키를 내보냈다. “여자와 커피는 부드러울수록 좋은 거 아니에요”라고. 현대 무용의 전형적 복장으로 보이는 검은 타이즈와 역시 타이트하게 몸에 달라붙는 타이즈와 같은 질감의 동색 상의 차림으로, 마치 방금 가벼운 무용 동작을 끝낸 것 같은 부드러운 몸짓으로 “알고 보면 저도 부드러운 여자예요”를 덧붙인다. 독신으로 살아가는 이 연극배우의 마지막 카피는 마치 구혼의 말처럼 들리기도 해서 그 광고를 보는 뭇 여성 내지는 그 여배우 또래의 기혼의 중년여성들에게 알지 못할 우월감 내지 안도감을 가져다 주었다. 나는 부드럽기 때문에 여자답다든지, 독신 여성으로서 나름대로의 독자적 세계를 가졌던 것처럼 보였던 저 연극배우도 이제 와서 저런 소리를 하는 것을 보니 “역시 여자란 부드러워야 해!”라는 일종의 평소의 생각, 믿음이 다시 굳건하게 확인된 까닭이다. 이 이데올로기는 부드러운 여성 주체, 순응하는 현모양처들을 안심시키면서 그네들이 이제까지 지켜왔던--여기에는 자주적으로 현모양처 입장을 고수한 경우도 있겠고 그 반대의 경우도 있을 수 있는데--현모양처 이데올로기에서 의구심을 일시에 제거해 주면서 그것을 더욱 굳건하게 하여 서슴없이 그런 여성 주체를 양산하는 효과를 가진다. 이런 이데올로기를 통해 자기 스스로 나는 그런 존재지, 나는 원래 여자지, 내가 여자구나 라고 생각하는 주체가 형성된다. 뿐만 아니라 자신이 가지고 있던 여자라는 존재에 대한 생각을 지원해 주는 존재로서 주체가 형성된다.


좀더 심화시켜 보자. 위에서 예로 든 커피광고의 후속 편으로 “여자는 늘 변화를 원하잖아요, 맥심 모카 골드 커피처럼. 커피와 여자는 새로워질수록 끌리지 않아요”라는 카피가 나왔다. 이제 커피광고는 ‘부드러운 여자’에만 머무는 것을 거부해야 함을 가르친다. 사람들이 매력적이라고 생각하는 여자는 과감하게 변화를 추구하는 혁신적인 여자기 때문이다. 이건 물론 광고카피가 지시하는 세계에서는 그렇다는 말이다. “여자는 늘.”이라고 말할 때, 이미 그 “여자는 늘 변화를 원하잖아요”는 기정사실인 것처럼 되어 있고, 그 광고를 보고 듣는 사람들에게 다시 한번 다짐을 받는 정도의 의미만을 가진다. 광고카피가 이런 식으로 구조화되어 있어, 이제 새로운 여자일수록 끌리지 않아요 라고 되묻는 광고카피 앞에서 그 의미를 거역하기란 참 어렵다. 이런 결과로 이제는 여성들 스스로가 사람들이 매력적이라고 생각하는 여자는 늘 변화를 추구해서 새로워진 여자라고 생각하게 되지 않을까. 그리고 그 생각은 늘 새로워져야지 라는 각오도 갖게 해 줄 것이다. 이렇게 하여 광고 내에서 하나의 카피로 통용되던 생각들이 광고담론의 효과가 생산해 낸 여성 주체로 인해 광고 밖에서도 통용된다. 즉 광고담론의 효과로 이데올로기가 가동되면서 새로운 주체가 생산되고 또 그 생산된 주체에 의해 그런 내용의 이데올로기가 유지된다는 것이다.


광고담론은 가장 자본주의적 담론, 그러면서 그것을 고도로 은폐해야 한다는 점에서 이데올로기를 더욱 자연화 시켜야 할 필요가 있는 담론이다. 따라서 그 어떤 담론에서보다도 광고에서는 명제적 표현이 많이 나온다. 가령 “남자는 향기에 약해요”, “가구는 여자예요”, “주부는 행복해요”, “생활을 가꾸는 여자가 아름답다”, “시간을 아끼는 여자가 아름답다”, “주부는 가정의 연출자예요”, “그녀는 프로다, 프로는 아름답다”, “표현에 강한 여자가 아름답다”, “미인은 잠꾸러기?, 여성들이여 잠꾸러기가 되자”, “아내는 여자보다 아름답다”, “아내의 이름을 부르면 편안합니다” 등등. 이런 명제적 담론 형식이 구성하는 효과는 ‘시간은 금이다’,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 등의 속담이나 격언들이 가진 것과 같은 일종의 자명성을 생산해 내는 데 있다. 이런 점에서 사실 속담이나 격언과 같은 것은 현대신화의 일종이며, 애매모호함과 여타의 가능성을 일소해 버린 영역인 이데올로기와 비슷한 구석이 있다. ‘시간을 아끼는 여자’가 꼭 아름다울 까닭도 없는 것이고, ‘프로’가 아름다울 필연성이 있는 것도 아니며, 잠을 많이 자야 미인이 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그 담론들이 이렇게 속담이나 격언 식으로 명제화 되었을 때 우리는 그것에 대해 별다른 의문도 갖지 않는 것이 예사다. 그런 형식을 취함으로써 이데올로기와 같이 자연화(혹은 의식 내에서의 자동화)되었기 때문이다.




3


도널드 맥케이드에 의하면, “예전에는 사람들이 살아남기 위해 상품을 찾아 헤맸으나, 지금은 상품들이 살아남기 위해 사람들을 찾아 헤매는 시대가 되었고, 따라서 우리는 날마다 광고의 홍수와 압력 속에서 살고 있으며, 미국의 기업들은 한 해에 약 일 천억 달러를 광고에 소비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의 경우에는 그 정도까지 심하지는 않겠지만, 그러나 광고에 의해 세뇌되고 조종되는 정도의 강렬을 생각해 볼 수 있다.


광고는 얼핏 다양한 상품들을 선전함으로써 소비자에게 선택의 기회를 넓혀주는 것 같다. 하지만 조금만 살펴보면, 광고는 특정상품에 대한 구매를 강요함으로써 결국에는 소비자들로부터 모든 선택의 여지를 박탈해 간다. 그러므로 광고의 성공은 곧 소비자의 실패라는 패러독스가 성립된다. 한 예를 들어 보자. “대한민국은 자유 국가입니다”로 시작하는 브랑누아 구두 광고를 기억할 것이다. 여기서 자유는 브랑누아 구두를 신을 자유이다. 이것은 많은 자유들 중의 하나이거나 혹은 자유가 있기 때문에 그것은 신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단지 그것을 신을 수 있기 때문에 대한민국은 자유국가이다. 곧 이 자유의 성격은 소비의 자유이다. 후에 나타난 브랑누아 광고에서는 브랑누아-자유특별시민으로 제시된다. “이 도시에는 특별한 자유가 있다. 브랑누아 패션 자유.” 이제 자유특별시가 대신 등장하지만 그 도식의 우연성과 자의성은 고스란히 남아 있다. ‘서태지와 아이들’이 등장하는 자유시간 광고 역시 여기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는다. “정말 원하는”, “자유가 뭐 따로 있나요”--출출할 때 ‘자유로운’ 자세로 자유시간을 먹는 것!


여하간 광고에서는 언어와 문자, 영상이미지의 의미작용이 투명할 정도로 의도적인데, 이는 어떤 상징적 메시지나 함축적 이미지를 사용하더라도 결국 평균적인 독자, 시청자의 최상의 독해를 위해 선명하게 전달되도록 하기 위해 고도로 고안된 것이다. 즉 섬세한 배치를 통해 그들을 사전에 선택된 의미로 원격 조정하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최상의 광고는 곧 ‘의미를 고정화시킨’ 것이다.


광고 카피는 들여다볼수록 자신의 폭과 깊이를 헤아릴 수 없게 만든다. 뒤집어 말하자면 그 강력한 흡인력, 편재성, 저변의 복잡성과 뒤얽힘 등에 의해 한없이 무기력해진다. 지금에 와서 이런 생각이 든다. 이 순간에도 우리는 저 가상의 외계인이 지도하는 황홀하고 아름다운 삶의 지침에 따라 비상구 없는 내일의 꿈을 꾸고 있지는 않은가. 여기서 꿈을 깨라는 자기최면적인 말이 과연 ‘타당’한가. 그러나 결국 우리의 진정한 꿈은 광고를 ‘향해’ 있는 것이 아니라 광고에 ‘맞서’ 있다. 그래서 더이상 우리가 광고카피를 매개로 하여 자본과 결부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들 자신을 매개로 하여 자본과 광고카피를 재구성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이러한 광고카피 분석은 사라질 것이며, 또 마음놓고 광고 속의 세계를 즐길 수 있을 것이다. <끝>


9. 광고의 이해


김 광 수


(광운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


직장 생활을 하는 여성이 광고에 등장하는 경우에는 슈퍼우먼의 역할을 해낼 것을 강요하고 있다. 예를 들면 화장품 광고에서 묘사한 변신하는 여자는 직장에서 열심히 일을 하지만 남자를 만날 때는 다시 여성다운 여성으로 돌아가 매력적인 여성으로 변하는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다. 즉 가정에서 깨끗이 세탁을 하고 열심히 방 청소를 하며 정성 들여 요리를 할뿐만 아니라 남편을 위해서 매혹적인 화장을 해야한다.




광고와 의식


의식이란 한 문화권 내에서 사회적으로 필요하다고 여기는 집합적 행동을 일컫는다. 광고는 바로 이러한 의식을 형성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 남편과 아내가 행복한 생활을 영위하는 방법을 자식이 부모에게 효도하는 방법을 연인들이 사랑을 표현하는 행동을 광고는 일일이 알려주고 있는 것이다. 물론 광고하는 상품을 연출의 한 품목으로 사용해서 이루어진다. 하다 못해 비행기에 타서 여승무원을 대하는 태도나 식당에서 우아하게 행동하는 방법도 알려준다. 소비자는 남성다워지기 위한, 혹은 여성다워지기 위한 스타일을 늘 광고로부터 배우고 있다. 특히 일상 생활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광고기법은 소비자가 자신의 준거 집단으로 삼는 표준형 혹은 이상형의 생활 양식을 따르도록 한다.




1. 광고의 가치 전달 기능


문화를 잘게 썰면?


광고는 문화를 생성하고 유지하는 데 커다란 역할을 한다. 왜냐하면 문화란 심벌, 영웅, 의식, 가치 등으로 이루어지고 있는데 광고는 이러한 문화 요소들에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특히 광고는 가치를 창출한다. 가치는 무형적이므로 광고에서 어떤 가치를 전파라고 유지하는지를 쉽게 관찰하기에는 어려움이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광고의 내용 분석 등을 통해서 광고가 지향하는 가치를 조사할 수 있다.


크게는 자본주의라는 가치를 전파하고 있다 자본주의는 합리적 인간을 상정하고 어떠한 물리적 강제를 배제한 자유를 가정한다. 이러한 체제 아래 광고는 생산자의 이윤 창출을 위해 소비자의 개인 욕망에 호소한다. 여기에서 우리는 광고가 생산자와 소비자의 합리성을 기초로 하여 정보를 전달하고 소비자가 자유롭게 선택하는 과정을 지향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광고는 합리성과 자유라는 가치를 옹호하고 있다 그래서 광고를 자본주의의 꽃이라 하지 않는가.




부가 가치를 창출하는 광고


또한 광고는 상품에 가치를 부여하는 기능을 지니고 있다. 대우 세탁기를 사용하는 가정 주부와 삼성 세탁기를 사용하는 가정주부의 이미지에 차이가 있는가? 에스페로를 타고 있는 사람과 엘란트라를 타고 있는 사람의 이미지는 어떤가. 상표에 따라 소비자가 어떨 것이라는 연상을 하면 대체로 서로 다른 이미지가 떠오른다. 광고는 이러한 차별적인 이미지의 생성에 기여하고 있다 즉 광고는 각각의 상품에 부가적인 의미를 전달하는 측면이 있다. 유명한 향수를 쓰면서 어떤 위세나 매력을 느낀다면 이러한 심리적 느낌은 다른 향수와 비교하여 소비자에게 가치를 부가해 주는 것이다 광고는 이처럼 상품에 의미를 부가하고 있으며 그런 차원에서 광고는 심벌을 만들고 있다.


광고는 또한 우리가 특별히 사회 생활을 영위하는데 불필요한 가치를 촉진하고 있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아름다워지려는 욕구, 보다 하얀 이를 가져야한다는 강박관념, 입안의 나쁜 냄새는 식후에 빨리 없애야 한다는 등을 일부 조장하는 것은 사실이나 결국 필요한 사람만, 그리고 살 수 있는 사람만 살 것이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이 밖에도 광고가 전하는 가치의 종류는 수없이 많다 광고를 통한 기업문화의 제고에는 기업의 가치가 담겨 있다 그리고 공공 캠페인에는 사회 도덕이란 가치가 함유되어 있다 광고를 통한 성 차별문제는 또 다른 가치인 셈이다. 이처럼 가치의 종류는 관심의 영역에 따라 상이할 수 있다 여기서는 고정관념을 중심으로 살펴보겠다.




2. 광고와 고정관념


대머리 하면 떠오르는 것은 우리가 흔히 어떤 집단에 대한 평가를 할 때 모든 구성원들에게 자신이 갖고 있는 기존의 이미지를 적용시킨다. 이를 고정관념 stereotype이라고 한다. 대학생, 신세대, 오렌지족, 기성세대, 일본인, 운동권 학생 등등, 이러한 집단을 생각하면 우리는 어떤 고정관념을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인종 차별에 대한 생각도 고정관념에 들어간다. 또는 대머리 곱슬머리 금발머리를 이야기 할 때 여러분 머릿속에는 정력, 고집, 성적매력과 같은 고정관념이 떠오르지 않는가? 이러한 고정관념이 항상 나쁜 것은 아니다. 정보의 홍수시대에 살고 있으면서 개개의 사례를 개별적으로 처리하는 것이 아니라 집단화시켜서 정보 처리하는 효율성을 보장해 주기 때문이다. 사물을 분류시키는 기능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흔히들 고정관념에는 부정적인 측면이 따라다닌다. 개별 사례를 잘 고려하지 않고 특정인이나 특정 사안에 대한 관념을 관련 대상 모두에게 적용시키는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기 쉽기 때문이다.




광고는 사회의 거울인가.


고정관념을 광고에 적용할 때는 광고의 역할에 대한 논의가 함께 따라오게 마련이다. 즉 광고가 사회의 가치를 단순히 반영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사회의 가치를 형성시키느냐? 대답부터 이야기하면 양쪽 다 맞다 이다. 광고는 사회 문화적 현상을 단순히 반영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자의적으로 가치관을 형성시키는 것도 아니다. 다시 말하면 광고는 현실 세계를 반영하는 측면도 있고 그와 동시에 우리의 경험과 지식을 구축해 주기도 한다. 만에 하나 여러분이 반영과 형성 중의 어느 하나를 믿는다 해도 광고가 고정 관념에 대한 책임을 면제받을 수 없다. 광고가 우리 사회의 가치를 생성하는 힘이 있다고 믿는다면 각 사회 집단을 어떻게 묘사하는지 그리고 어떤 아이디어를 전파하는지에 대해 각별한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반대로 광고가 사회현상을 단순히 반영한다면 묘사되는 내용이 정확하고 대표성을 띠도록 해야 할 것인가. 따라서 여러분이 광고의 힘이 어느 쪽이라고 믿든지 간에 광고가 묘사하는 내용에 대한 책임과 논란이 항상 붙어 다니게 마련이다. 특히 현실을 제대로 관찰할 통찰력을 약화시킬 수 있기 때문에 옳지 못한 고정관념은 지양되어야한다. 그럼에도 불고하고 우리의 현실을 구성하고 있는 광고의 내용을 살펴보면 왜곡된 고정관념이 존재한다. 광고에서 가장 심각하게 문제삼고 있는 집단은 여성이다.




광고에 나타난 여성의 고정 관념


노인 집단의 묘사에도 문제가 많은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그런데 일반 대중매체에서는 노인들을 물리적 정신적으로 약하고 매력적이지 않은 사람으로 묘사하는데 비하여 광고에서는 반대로 묘사하고 있어 흥미롭다. 광고에서 묘사되는 노인은 대체로 나이가 들었음에도 젊게 보인다. 그리고 건강 때문에 고민하는 모습도 아니며 왕성한 정력을 자랑하기 일쑤다. 게다가 노인이 광고에 등장할 때는 병약한 노인의 모습이 아니라 원숙하고 세련된 이미지를 준다.




3. 광고와 여성에 대한 고정 관념


광고에서 여성은 어떻게 그려지고 있는가?


고정관념에 대한 쟁점 분야중의 하나가 여성의 묘사였다. 일반적으로 논의되고 있는 현안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여성은 젊고 예쁜 사람으로만 묘사되고 여성의 역할은 남성을 즐겁게 해 주기 위한 것으로 그려지고 있다. 그리하여 여성이 나이가 들게 되면 더이상 관심의 대상이 아니라 조롱의 대상이 된다는 데 초점을 모은다. 대체로 광고에 등장하는 여성들에게서 주름살 흰머리 등은 찾아볼 수 없다. 우리나라의 잡지 광고를 분석한 결과 여성 모델이 20대에 집중하고 있으며 그 다음이 30대로 밝혀져 여성의 젊음이 강조되고 있다. 미국의 텔레비전 광고를 조사한 결과 35세 이하의 남성들은 40%이었는데 비하여 여성들은 70%나 차지하고 있어 젊은 여성들이 광고에 대거 등장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둘째, 많은 여성들이 가정주부나 어머니의 역할로 묘사되고 있으며 직장인이나 전문인 또는 지역 사회에 봉사하는 역할은 지극히 적거나 없는 실정이다.(SEX ROLE) 최근에는 여성의 사회활동이 그려지고 있으나 그러한 역할은 미비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직장생활을 하는 여성이 광고에 등장하는 경우에는 슈퍼우먼의 역할을 해낼 것을 강요하고 있다. 즉 예전에는 슈퍼맘의 역할을 강요받았으나 이제는 슈퍼우먼의 역할을 떠맡게 되었다. 예를 들면 화장품 광고에서 묘사한 변신하는 여자는 직장에서 열심히 일을 하지만 남자를 만날 때는 다시 여성다운 여성으로 돌아가 매력적인 여성으로 변하는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다. 즉 가정에서 깨끗이 세탁을 하고 열심히 방 청소를 하며 정성 들여 요리를 할뿐만 아니라 남편을 위해서 매혹적인 화장을 해야한다.


넷째, 여성의 부정적 성격이나 태도가 전파되고 있다. 예를 들면 여성들이 남성에 의존하여 남성의 보호를 필요로 하는 존재로 그려지고 있다. 가장을 즐겁게 해야 집안에 행복이 있다거나 주부는 가장이 맛있게 먹어야 보람을 느끼는 존재로 묘사된다. 그리고 여성이란 집안의 가구가 번쩍거려야 마음이 놓이고 집안에 먼지가 있으면 마음을 졸이는 식으로 묘사된다. 여잔 겉 다르고 속 다르다니까. 여자 속을 모르겠어. 등과 같이 여성에 대한 고정관념을 형성하는 광고 표현이 이에 해당된다.


넷째, 여성은 열등하다는 남녀 차별의 메시지나 여성의 파워란 성적인 데서 나온다는 메시지가 비판을 받고 있다.




박갑수가 조사한 사례 중 다음과 같은 광고 문구가 있다. 전 세계에서 인기리에 판매되고 있는 최신형 컬러 사진 자동 현상기 광고로서 “여성/초보자라도 3일 정도의 교육으로 운영할 수 있다”(중앙일보 1993.10.27.) 도대체 여성에게 이 물건을 팔 생각이 있는지 의심스러운 광고문구라 아니할 수 없다.




역전되는 여성상


그러나 요새는 여성 상위시대. 광고에서도 여성의 적극적이고 진취적인 모습이 그려지고 있다. 전문인으로서는 물론이고 남성과의 관계에서도 대담한 자세와 행동이 연출되고 있다 여성이 남성의 엉덩이를 두드리는 광고(여성으로부터 귀여움을 받고 있는 남성). 이제 남성들이 불만을 터뜨려야 할 시기가 온 것인가?




여성들이여 분기하라


미국의 전국 여성 연맹은 여성에게 가장 모욕적인 광고의 목록을 만든다 그리하여 회원들에게 광고주와 광고 대행사에 그처럼 모욕적인 광고를 만든 데 대해 항의를 하도록 촉구하고 있다. 포르노에 반대하는 여성 단체는 음란성이 강하고 여성을 가장 비천하게 만든 광고를 선정하여 플라스틱 돼지상을 수여한다. 그리하여 여성을 비롯한 소비자에게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10. 공익 광고는 과연 공익적인가


강 준 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재벌들의 기업광고 공세가 대단히 기만적이라는 것은 최근에 환경문제가 중요한 사회적 이슈로 대두됨에 따라 재벌들이 이른바 「그린마케팅전략」을 앞세워 급조해낸 환경광고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국정감사자료에 의하면 91, 92년 2년 동안 자연보호 광고를 내보낸 38개 대기업 중 18개 기업의 58개 계열사가 수질 및 대기 등의 분야에서 허용기준치 이상의 공해물질 을 배출하다 조업정지 등의 처분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공익」을 빙자한 기업 이미지 광고가 각종 매체에 흘러 넘치고 있다. 물론 겉으로 보아선 재벌들의 기업광고는 전혀 흠잡을 데 없이 공익 지향적이다. 그러나 그런 공익성 메시지가 재벌 기업들의 현실과는 거리가 멀며 또 재벌들이 그런 광고를 순전히 이미지 조작의 용도로만 사용한다는 데에 문제가 있다.


기업 이미지 광고는 단지 상품 하나 더 팔자고 하는 게 아니다. 그건 「재벌 공화국」의 영구화를 겨냥한 일종의 「문화 공학cultural engineering」이다. 金泳三정권의 출범을 전후로 하여 한때나마 「재벌 해체설」이 나돌았던 만큼, 재벌들은 집단적으로 재벌에 대한 국민적 인식을 바꾸어 재벌의 헤게모니를 공고하게 해야 할 필요를 절감했는지도 모른다.


대부분의 재벌들은 기업 광고비를 올해에 20~30%씩이나 늘려 잡았다. 제품광고비와는 별도로 「홍보비」로 분류되는 기업 광고비는 현대 1백50억원, 선경 90억원, 대우 77억원, 삼성 60 억원, 럭키금성 50억원 등에 이른다. 게다가 제품 광고마저도 직설법을 피하고 공익적인 메시지를 강조하는 「세련됨」을 보이고 있다.


기업 이미지 광고가 급증하는 이면에는 광고시장을 확대하고자 하는 언론기업들의 계산이 가세하고 있다. 언론기업은 공익성 광고를 상당 기간 지속적인 「캠페인」으로 유도해 광고수입의 안정을 꾀하면서, 그 반대 급부로 광고료를 낮게 해주거나 그런 「캠페인」에 동참해 광고의 신뢰도를 높여주는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기사 형식의 간접 광고가 급증하고 있는 것도 언론매체의 그런 상술과 무관하지 않다.


또한 기업 이미지 광고는 재벌들이 「밀월관계」를 염원하는 대상이라 할 정권의 「이미지 정치」를 정당화하고 미화하는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국제경쟁력」이니, 「환경보호」등의 당면이슈들을 「실질」이 아닌 「이미지」로 대체하여 국민에게 문제 해결의 환상을 심어주고자 한다는 것이다.




기업이미지 광고의 왜곡, 은폐성


재벌들의 기업 광고는 테크놀로지 지향적 광고, 세계 지향적 광고, 미래 지향적 광고, 전통 지향적 광고 등으로 분류할 수 있다. 물론 이런 광고들 중 상당량이 직접적으로 「공익」을 표방하는 건 아니지만, 그것들도 상품의 차원을 뛰어넘어 특정 가치의 필요와 확산을 역설하면서 그것을 공익과 연결시킨다고 하는 점에서 넓은 의미의 공익광고에 해당한다.


럭키금성의 테크노피아와 삼성의 휴먼테크 광고로 대변되는 테크놀로지 지향적 광고는 테크놀로지 결정론에 근거한 정보사회 이데올로기를 충실히 반영하고 있다. 맹목적으로 예찬되는 테크놀로지의 세계는 현실 세계의 모든 갈등을 흡수해 가치 중립적인 것으로 전화시키고자 한다. 물론 특정 테크놀로지 뒤에 숨어 있는 경제적 실체는 은폐된다.


그런가 하면 거의 모든 재벌들이 「지구촌의 개척자」니 「세계로 꿈을 펴는 젊음」이니 하는 구호를 내걸며 국내에서의 모든 갈등 요소를 은폐시키고자 하는 세계 지향적 광고에 몰두하고 있다. 이는 金宇中씨의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 라는 책에서 극명하게 표현된 바 있다.


미래 지향적 광고는 주로 「21세기」라는 단어를 남용하면서 현재를 인정하고 수용하는 기반에서 미래만을 바라볼 것을 요구한다. 이는 테크놀로지 지향적 광고 및 세계 지향적 광고와 더불어 삼위일체를 형성하는 보수적 이데올로기의 선전 공세에 다름 아니다.


전통 지향적 광고는 전통적 가치에 근거한 일체의 문화 투쟁적 요소를 선전해 재벌의 기득권에 반하는 세력의 주의 주장을 무력화시키고자 하는 용도로 이루어지고 있다. 우리의 전통적 가치를 강조하거나 민족주의적 색채를 부각시킴으로써 마치 재벌들이 그런 가치와 이념의 구현에 앞장서는 듯한 효과를 내고자 한다.


재벌들의 기업광고 공세가 대단히 기만적이라는 것은 최근에 환경문제가 중요한 사회적 이슈로 대두됨에 따라 재벌들이 이른바 「그린마케팅전략」을 앞세워 급조해낸 환경광고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국정감사자료에 의하면 91, 92년 2년 동안 자연보호 광고를 내보낸 38개 대기업 중 18개 기업의 58개 계열사가 수질 및 대기 등의 분야에서 허용기준치 이상의 공해물질 을 배출하다 조업정지 등의 처분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자연을 생각합시다. 인간을 생각합시다』(삼성종합건설), 『수질오염을 줄이는 저공해 세제를 만들고 있다』(제일제당), 『자연과 인류가 공생하는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만들어 나가자 』(현대그룹의 인천제철)는 등의 구호는 보기에 얼마나 아름답고 흐뭇한가. 그러나 이런 구호를 외쳐댄 기업들 모두가 국정 감사에서 적발된 바와 같이, 「말 따로 행동 따로」라는 것이 입증된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최근 문화부의 강력한 지원을 받으며 추진돼 온 재벌들의 「기업문화」 바람에도 우려의 눈길을 보내지 않을 수 없다. 재벌 총수들의 자서전과 기업문화 서적들이 대량 출간돼 베스트셀러가 되었거나 되고 있는 것도 그것들이 현실에 대한 충분한 반성을 근거로 하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결코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이 「기업문화」는 사실 「노동문화」의 「맞불 놓기」전략의 일환으로 실시되고 있다. 지난 92년 현대건설 노조의 송년회가 열리는 날 회사 쪽이 중국영화 「홍등」을 상영해 조합 행사에 50명이 온 반면 영화 쪽에는 1천명이 넘는 노동자들이 몰려 성황을 이루었다는 것이 그 좋은 예이다.(『한겨레신문』, 93 년 2월 26일자)


최근 언론매체를 통해 널리 홍보된 「메세나 운동」도 공공영역의 차원에서 다루어져야 할 문화진흥이 재벌들의 자선에 맡겨졌다고 하는 점에서 우려할만한 것이 아닐 수 없다. 사실 「메세나 운동」이야말로 재벌들의 거대한 「공익광고」에 다름 아니다.




공익성 기업광고, 비판과 감시 필요


재벌은 문화 부문에 지원을 하더라도 간접적 지원에만 그쳐야지 직접 문화에 뛰어들어 그 내용을 결정하겠다는 과욕은 버려야 할 것이다. 그리고 문화계 종사자들도 문화 행위의 소비주의적 시장경쟁력에만 눈이 어두워 무턱대고 재벌들에게 손을 벌리는 그간의 관행에 대해 반성하는 것이 마땅하다.


재벌들의 공익성 기업광고는 앞으로도 「문화공학」의 차원에서 계속 왕성하게 추진될 것이 틀림없다. 그러나 그걸 무조건 부정적으로만 보는 건 결코 현명한 방법이 아니다. 적어도 현실적으로 그렇다. 비판의 차별화가 필요하다. 재벌들의 기업광고가 그들의 정치경제적 실상과 적합성을 갖는지의 여부를 감시하고 경우에 따라 격려하거나 비판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런 운동의 실천을 위해 광고를 문화투쟁의 전략적 요충으로 격상시키는 발상의 전환이 있어야 할 것이다.


11. ‘영원한 제국’ 인터넷


완벽한 공간성․영구한 시간성 갖춘 전천후 제국…“적극 참여, 우리 문화 영토 건설해야”




전자 매체의 사회적․경제적․정치적 의미에 대해 폭 넓고도 철학적인 성찰을 하는 인물로 잘 알려진 마셜 맥루한의 주장은 ‘매체가 곧 메시지이다’라는 한마디로 요약할 수 있다. 그런데 최근 <뉴욕타임스>는 인터네트를 다룬 특집 기사에서 ‘만약 매체가 곧 메시지라면, 이제 그 메시지는 웹(World Wide Web)이다’라는 명제를 헤드라인으로 뽑았다. 월드 와이드 웹으로 우리에게 성큼 다가온 디지털 시대에 담겨 있는 깊은 의미는 과연 무엇일까?


맥루한의 사상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 학자는 해럴드 이니스다. 그는 인류 역사에 등장한 제국들을, 매체의 종류에 따라 크게 두 가지로 나누었다. 하나는 ‘시간 중심적 매체’이다. 이는 돌판․비석․ 점토판처럼 시간이 지나도 쉽게 변하지 않는 매체이다. 이집트 같은 고대 제국은 이처럼 시간에 잘 견디는 매체를 기반으로 하여 건설되었다. 이러한 사회는 그것의 기반이 되는 매체의 속성상 전통 중심적이고 또 변화에 저항하는 보수적인 성격을 갖게 마련이다. 따라서 고대 이집트 왕국은 수천 년이라는 시간을 두고 거의 같은 문화를 지속적으로 유지하였을 뿐, 넓게 퍼뜨리는 공간적인 확장은 결코 이룩하지 못하였다.


이와 대비되는 것은 ‘공간 중심적 매체’이다. 시간에 잘 견디는 매체가 대체로 무겁고 운반하기 어려운, 예컨대 돌덩이 같은 것인 데 반해, 공간 중심적인 매체는 양피지나 종이처럼 가볍고 운반하기 편하다. 로마 제국이 거대 영토를 지배한 것은 양피지라는 매체에 기반을 두어 이루어졌다. 또 근대 유럽 사회는 좀더 공간 중심적 매체인 종이 인쇄물이 발달한데 힘입어 이루어졌다는 것이 이니스 논의의 핵심이다.


나는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바로 몇 시간 전에 전두환씨가 구속되는 장면을 월드 와이드 웹 서비스로 제공하는 국내 일간지와 전자 신문을 통해 생생하게 보았다. 서울에 있는 사람과 지구 반대편에 있는 내가 서울에서 일어난 일을 거의 같은 시간에 같은 비용으로 접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인터네트는 완벽한 공간 중심적 매체라 할 수 있다(<전자 신문>은 아직 무료이다. 인터네트로 연결되므로 국제 전화비도 들지 않는다). 이니스가 살아 있었다면 그는 분명 전지구적인 새로운 제국이 탄생했다고 주장했을 것이다.


그런데 디지털 정보망인 인터네트는 이니스의 이론으로 설명할 수 없는 면이 있다. 그의 이론대로라면 공간 중심적인 매체는 대체로 시간에 오래 견디지 못한다. 예컨대 종이는 쉽게 운반할 수 있는 대신 약하고 비바람에 쉽게 손상될 우려가 있다. 따라서 공간 중심적인 매체에 기반을 둔 제국은 언제나 역동적이면서도 한편으로는 불안한 상태에 있다.




천만년 유구한 완전 복제성


그러나 디지털 정보는 공간 중심적일 뿐만 아니라 시간에 대해서도 완벽하게 내구적인 희한한 존재다. 수 천 년 된 비석에 씌어진 글은 아무리 정성껏 보존해도 엔트로피 법칙에 따라 언젠가는 삭아 없어지고 말겠지만, 디지털 정보는 완벽하게 복제할 수 있기 때문에 엔트로피 법칙으로부터도 자유로우며, 따라서 시간의 영향으로부터도 자유롭다. 원본과 복제본을 구별할 수 없는 디지털 정보는 천년 만년 지나도 똑같은 상태를 유지할 수 있게 된다.


이니스의 이론을 확대 적용하자면, 인터네트에 기반을 두는 제국은 완벽한 공간성과 영구한 시간성을 동시에 지니는, 그야말로 ‘영원한 제국’이 될 것이다. 모든 제국이 언젠가는 망한다는 역사의 법칙은 역사 시대에나 통했던 과거의 법칙이 되어버릴는지도 모른다. 지금 막 형성되고 있는 이 영원한 제국에 적극 참여하여 우리의 문화 영토를 건설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영영 주변인으로 남게 될는지 모른다.


사이버 스페이스라고 불리는 이 제국에서 우리의 문화와 언어를 어떻게 유지하고 발전시킬 것인지는 우리 세대에게 커다란 숙제이다.


<시사저널 / 95. 12. 27>


12. 컴퓨터 세상의 연필과 손 글씨


조 환 규


(지은이 조환규는 지금 부산대학교 전산과 부교수로 재직중이다. 과학사, 과학 철학에 관심이 많으며, 과학 대중화에 힘쓰는 출판모임 “과학 세대”에 몸담고 있다. 샘이 깊은 물 / 96년 3월호에서)




끊임없이 끔뻑이는 “커서”는 쉬지 않고 그 앞에서 뭔가를 반드시 하라고 지시한다. 또한 워드 프로세서에서 글은 언제나 쉽게 고칠 수 있으므로 그 글이 주체적이지 못하다. 여기 문단을 잘라서 저리 붙이고 말을 글 중간에 새로 집어넣거나 쉽게 고칠 수 있는 것은 지난 기구의 능력에 비해서 장점이긴 하지만 그 덕택에 글은 힘이 없다.




이제도 그 연필을 구할 수 있을까? 낙타표 문화 연필, 그 향기로운 냄새가 나는 연필, 진노랑색 칠 위로 낙타 한 마리가 우두커니 서 있는 그 연필은 나에게 세상을 열어 준 맨 처음 창문이다 초등학교 이학년 때이던가, 삼학년 때이던가는 정확하게 기억되지 않지만 어머님이 손수 깎아서 필통에 채워 넣어 주시던 낙타표 문화 연필은 그대의 최고 문방용품이었다.


그 향나무 연필이 나오기 전에 투박스런 나무로 만든 백두산 연필이라는 것을 쓴 기억이 난다. 하여간 그 시절에 없는 살림에 향나무 연필을 한 다스씩 사기란 보통 쉽지 않았을 것이다.


낙타표 연필이 한 다스 새로 생기는 날의 기분은 다른 일에 비할 수도 없이 좋았지만 그 한 다스에는 또한 “공부”라는 일을 열심히 해야 한다는 부모님의 엄중한 기대도 함께 묻어 있었다. 연필을 고이 안아 들고서 동네 골목길을 걸어올 때에는 즐거움과 엄숙함이 겹쳤다. 연필 깎는 칼이 흔치 않은 시절이어서 아버지께서 사용하시고 남겨 둔, 그 이름을 알지 못하는 면도날이 사용되었다. 어머님은 그 중앙에 구멍이 세 개 뚫린 날을 반으로 접어서 꺾은 뒤에 조심스럽게 그 반 쪽 날로서 연필을 조심스럽게 다듬으셨다. 사각사각 소리를 내면서 조금씩 잘려나가 향나무는 방바닥에 떨어지고 어느덧 검은 연필심이 나타났다.


나는 이 광경을 지켜보면서 연신 침을 삼켰다. 한 번 깎아 보고도 싶었지만 부러진 면도날은 늘 범접하기 어려운 권위이기도 했으며 또한 그것으로 어머님만큼이나 고르고 예쁘게 다듬을 자신이 없었다.




낙타표 문화 연필의 매력


마지막 작업으로 연필심을 뾰족하게 고르는 일은 어땠나? 먼저 허드레 종이를 펴고 연필을 세운 다음에 조심스러이 흑연심을 쓸어냈다. 조심할 것은 나무의 기울기와 심이 깎여진 기울기가 고르게 되도록 한다는 것과 깎는 도중에 연필심이 부러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또한 그 뾰족함이 너무 지나쳐서 살갗을 찌르게 해서도 안 되며, 이와는 반대로 너무 무디게 다듬어서 처음에 쓸 때부터 너무 무덤덤한 기분이 들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잘 갈려진 연필로 첫 글자를 쓸 때의 그 맑은 소리와, 연필심을 종이를 부드럽게 긁는 기분은 조심스런 연필 작업의 고생을 충분히 보충해 주었다. 그리고 입으로 불어가면서 마지막 다듬기를 할 때에는 그 깎여진 흑연 가루가 방바닥에 퍼지지 않도록 세심한 조심을 해야 했다. 더구나 앞뒤가 막힌 구석에서 불면 흑연이 콧등에 내려앉기 십상이었다.


가지런히 다듬어져서 도열한 연필은 다시금 우리에게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그들이 마지막으로 투박스런 나무필갑 속으로 들어가서 그 위 뚜껑이 “딱!”하고 닫히면 모든 의식은 끝이 난다.


이 전체 작업이 매우 순조롭다면 다음 날은 필시 좋은 일이 있을 듯했으나, 작업 도중에 조금이라도 헛된 망상이나 경망스러움이 스며든다면 연필에는 대개 그 경망스러움의 정도가 고스란히 반영되었다. 만일 도중에 길다란 심을 두 번, 세 번 부러뜨릴 때에는 필시 밖에서 무르팍 깨어질 일일 도사리고 있으므로 언행을 조심스레 해야 할 것이었다. 초등학교 육학년이 될 무렵에는 연필 깎는 일에도 기계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아마 일제 자동 연필깎이라고 기억이 되는데, 한 번씩 있는 집 아이들이 그 어른 주먹만한 기계를 학교에 가지고 와서 묘기를 보일 때면 아이들은 부러움으로 마른 입술을 다셨다. 그러나 나에게만은 그 기계가 연필을 참혹하게 도살하는 잔인한 도구로 보였다. 사람들은 먼저 연필을 구멍으로 밀어 넣었다. 그리고는 깎는 도중에 연필이 버둥대며 움직이지 못하도록 보조 조임새로 단단히 조였다. 연필은 완전히 기계에 꽁꽁 묶여 있으므로 손잡이만 돌리면 삑삑거리는 기계 소리와 함께 조금씩 안쪽으로 밀려들어가면서 껍질이 벗겨졌다.


칼로 다듬는 일은 연필을 위한다는 느낌을 주지만 기계를 사용할 때에는 전혀 그렇게 느껴지지 않았다. 이런 연유로 나는 여태까지 자동 연필깎이를 사본 적이 없다. 단정하게 손으로 다듬어진 연필이 기계로 깎여져 미끈둥한 모습보다 언제나 아름답고 인간적이다. 이렇듯이 잘 다듬어진 연필은 나에게 단순한 필기구가 주는 것보다 더한 심리적 안정감을 전해 준다.




휴식을 빼앗긴 글 쓰기


평생의 삼분의 일을 잠으로 보냄은 우리의 삶에서 휴식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려 주고 있다. 일하는 것과 쉬는 것은 한 가지 사실의 서로 다른 표현이다. 잘 쉬어야만 일을 잘 할 수 있으며, 그 반대로 잘 쉬려면 열심히 일해야 한다. 아름다운 모차르트 교향곡도 몇 악장으로 잘 나누어져 우리의 귀를 쉬게 한다. 학교 수업에는 반드시 십분 동안의 휴식이 있다.


연필의 미덕은 글 쓰기에서 우리를 적당한 간격으로 쉬게 하는 데에 있다. 굳이 연필이 아니더라도 전통 필기 도구를 사용하는 글 쓰기가 워드 프로세서와 다른 것은 그 쉼의 단계가 기구 내부에 있다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연필을 사용하면 반드시 그 중간, 중간에 한 악장의 글이 끝날 때마다 연필심을 고르려고 글에서 한발 물러날 수 있어 좋다. 또는 생각이 잘 나지 않을 때면 고르는 일을 핑계로 삼아 생각을 정리할 수 있다. 종이를 앞에 두고 손가락으로 연필을 돌리는 일도 마땅히 다른 생각이 떠오르지 않을 때의 휴식이 된다. 그리고 연필로는 그림과 글을 마음대로 어느 곳에라도 그려 넣을 수 있다. 이 때문에 연필로 속절없이 종이에 낙서하는 일은 글 쓰기의 최고 휴식이다.


이에 비해서 워드는 낙서가 불가능하며 그림과 글이 확연히 구별되어 있으며 우리를 심리적으로 압박한다. 워드에서는 종이를 넘길 필요가 없으며 팔꿈치나 어깨를 움직일 필요도 거의 없다. 쉼없이 오로지 손가락만을 이용하여 자판을 두드린다. 생각이 잘 나지 않는다고 해서 이런, 저런 글쇠를 툭툭 칠 수도 없으며 심심하다고 해서 마우스를 휘돌릴 수도 없다. 오로지 화면만을 응시하며 생각이 날 때까지 “동작 그만”이다. 그리고 언제나 맞춤법에 올바른 글을 쳐 넣어야 하는데 이런 것은 나에게도 늘 강박적으로 작용한다.


 예를 들어 컴퓨터에서 물러 나와 밖으로 간다고 해도 이것은 연필을 종이 위에 내려 두고 복도로 나가는 것과는 사뭇 다른 느낌을 준다. 내 방에선 살아 있는 워드 프로세서가 입맛을 쩍쩍 다시면서 나의 글을 계속해서 기다린다. 가령 잊어버리고 컴퓨터를 끄지 않고 집에 갔을 때에, 집안에서 느끼는 그 원인 모를 불안감은 글 쓰기의 주체가 누구인지 헷갈리게 한다. 컴퓨터를 켜두고 그 앞에서 상념에 잠겨 있기는 쉽지 않다. 끊임없이 끔뻑이는 “커서”는 쉬지 않고 그 앞에서 뭔가를 반드시 하라고 지시한다. 또한 워드 프로세서에서 글은 언제나 쉽게 고칠 수 있으므로 그 글이 주체적이지 못하다. 여기 문단을 잘라서 저리 붙이고 말을 글 중간에 새로 집어넣거나 쉽게 고칠 수 있는 것은 지난 기구의 능력에 비해서 장점이긴 하지만 그 덕택에 글은 힘이 없다.




뾰족할 때와 뭉툭할 때


창호지에 일필휘지를 하던 시절에는, 글이란 한 번 종이 위에 그려지면 그만이었다. 그것을 지우기란 거의 불가능하고, 그러한 일에 글은 반항을 한다. 또는 지난 행동에는 책임이 따른다. 그 시절의 사람들에게 글 쓰기란 단순히 기호를 프린팅 하는 작업이 되는 것만은 아니었다. 글 쓰기 한 번만 에도 사려 깊은 준비가 필요하다. 붓으로라면 먹을 천천히 갈면서 호흡을 고르며 마음을 안정시켜야 한다. 그리고 그 글의 내용뿐만이 아니라 그 글씨 자체가 다른 것을 보여 주므로 늘 조심해야 한다.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면 결코 글을 다스릴 수가 없는 시대에 글 쓰기는 좋은 훈련장이 되었다. 이미 원시 동굴 벽화에도 나타나 있듯이 사람이 손으로 무언가를 그리는 것은 커다란 즐거움이다.


그러나 아이들이 컴퓨터에서 마우스를 이용하여 굵은 선과 가는 선을 그려내는 것은 우리의 원시 조상에게서 대대로 내려온 그리기의 즐거움을 빼앗기는 것이다. 굵은 크레파스로 그릴 때의 손가락에 와 닿는 느낌과 뾰족한 것으로 그릴 때의 느낌은 확연히 다른 것이고, 거친 표면에서 전해지는 손맛과 매끈한 표면으로부터 느껴지는 연필과 손의 진동은 다른 것인데, 오늘의 워드 프로세서는 이러한 차이를 모두 마우스의 수평적인 움직임 하나로 규격화시켜 버렸다. 따라서 아이들에게 편리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워드로 그림을 그리게 하고 그것을 칼라 프린터로 찍게 하는 것은 손동작으로부터 두뇌의 반사 과정이 형성되는 시기에 치명적인 악영향을 미친다. 그렇게 훈련받은 아이들은 결코 세밀한 손동작이 요구되는 외과 의사나 디자이너는 결코 되지 못할 것이며 무딘 손의 외과 의사가 만들어져도 안 될 것이다.


이것은 나의 개인적인 생각이 아니고 이미 미국과 같은 선진국에서 실시한 연구의 결과에서 속속 발표되고 있는 사항들이다. 아이들에게는 뭐라고 해도 커다란 벽에 마음대로 떠들면서 크레용으로 “칠갑”을 하도록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오락이 된다.


이제는 워도 프로세서 덕택에 모두 같은, 그야말로 똑 같은 글씨체를 가지게 되었다. 물론 이러한 덕택에 필자와 같은 악필이 구원을 받은 것도 사실이지만 사람들은 아직도 나의 악필을 간혹 그리워하여 그 이전의 철없는 편지를 꺼내 읽고, 나 또한 그 사람들이 갈겨 쓴 글에서 위로를 얻으니 이 또한 사람이 기계와 다른 점이다.


연필로 쓴 글은 모두 서로 다르며 이 세상에서 늘 유일한 진본이 된다. 비록 종이 복사를 한다 해도 그 진본과 카피의 차이를 분별치 못할 바보는 없다. 그러나 컴퓨터 파일에는 진본이 존재할 수 없다. 공공일일공일일과 공공일일공일일을 어떻게 구별할 수 있을까?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는 이야기는 글씨에도 통하는 좋은 법칙이기 때문에 자필 이력서의 효용이 계속된다. 좋은 손 글씨체를 가진 사람은 좋은 목소리나 맑은 얼굴을 가진 것만큼이나 매력 있는 일이다. “사랑하는 순옥 씨”라는 편지 글씨에는 그 의미와 더불어 그 글씨가 보여 주는 힘참, 삐침과 그리고 단호하게 내려찍은 마침표가 있어 “순옥”씨는 자기를 향한 “동수”씨에게서 진실에 대한 감동을 받는다. 이 때문에 그 많은 선비들이 올곧은 자신만의 글씨체를 만들려고 평생을 연마하기도 하였다. 우리에게도 글 쓰기는 부단한 인내와 자기 단련이 필요한 중요한 문화의 형태로 남겨져야 할 것이다.




컴퓨터가 영구적이라는 착각


연필을 이용한 글 쓰기 문화가 잘 남겨져야 하는 또 다른 이유는 훨씬 더 현실적인 데에 있다. 우리가 영구적이라고 믿는 컴퓨터 기록 매체는 사실 그렇지 않다. 예를 들어 오늘의 물리적 수명(물리적 성질이 조금도 손상되지 않고 지속되는 기간)이 자기 테이프는 삼년쯤, 비디오 테이프는 이년쯤, 디스켓은 이보다 길어 오년쯤, 시디는 삼십 년쯤이다. 그러니까 아주 중요한 내용은 그 수명이 다하기 전에 미리미리 다른 매체로 한 번씩 옮겨 주어야 한다. 그러나 그보다 더한 문제는 이러한 물리적 수명이 아니라 논리적인 수명에 있다.


미국의 한 국가 부서에서는 구십 년에 아주 골치 아픈 일에 봉착했다. 그것은 육십 년대에 준비해 둔 방대한 인구 조사 컴퓨터 자료를 제대로 읽을 프로그램이 사라져 버렸다는 것이다. 이렇게 그전의 자료를 새롭게 사용하는 소프트웨어용으로 바꾸는 데에 드는 비용은 상당히 크다. 실감나게 이야기한다면 오십 년이 지난 뒤에 다락 한 구석에서 발견된 글 파일이나 마이크로 소프트웨어 워드용 파일을 어떻게 읽겠는가가 문제가 되는 것이다. 이런 문제는 다큐멘터리 자료를 대량 보관해야 할 방송국이나 공공도서관에서는 반드시 고려해야 할 사항이다.


이천 삼십 년쯤이 되면 아마 지난 자료를 읽을 수 있는 구식의 펜티엄 컴퓨터와 윈도 95 프로그램이 매우 고가로 거래될지도 모른다. 전자 매체는 기호가 다시 기호로 바뀐 것이다. 우리가 종이에 쓴 손 글씨의 “어머니”는 눈만 제대로 뜨고 있다면 읽을 수 있지만, 영과 일의 비트로 “어머니”를 표시한 영일영일 어쩌고 하는 것은 해석하기에 따라서 글자도 되고 그림도 되고 의미 없는 단순한 비트의 나열도 될 수 있다. 따라서 컴퓨터 파일은 거의 모두 기호와 그 해석법을 함께 보관하고 있는데 기호의 몇 비트가 깨어지면 약간의 손상이 가겠지만 해석을 기록해 둔 부분은 조금이라고 깨어지면 전체가 못쓰게 되므로 취급을 매우 신중히 해야 하고, 늘 파일은 그것을 읽게 할 수 있는 소프트, 하드웨어와 같이 보관해야 하므로 간단한 일이 아니다. 만일 이 순신 장군께서 난중일기를 워드로 작성하셨다면 장담컨대 그것을 우리가 해독하지 못하였을 것이다. 나폴레옹이 발견한 로제타스톤에 새긴 글씨는 이천 년이 지난 오늘도 생생히 읽을 수 있음을 볼 때에 그 단단한 돌에 힘들게 글을 새긴 공은 여태까지도 보상을 받는다.


손 글씨의 문화가 장려되어야 하는 것은 오늘의 워드로 글을 치는 문화는 대단히 독점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상식적으로 볼 때에도 가장 보편적인 수단이 장려되어야 한다. 기존 필기구로 쓴 글씨는 제대로 쓰기만 하면 누구나 읽을 수 있지만 워드를 사용하면 글로 작성한 글을 마이크로 소프트워드나, 훈민정음 같은 다른 시스템으로는 읽을 수 없다. 이 덕택에 우리들은 글 쓰기와 함께 그것이 어떤 프로그램으로 처리되는가 까지 염두에 두어야 한다. 이것은 기존 필기구의 전통에는 매우 배반된 행동이다. 따라서 사람들은 상당한 돈을 들여 소프트웨어를 구입해야 하며, 한 업체가 필기구를 독점하는 사태로까지 나아가게 된다. 이를테면 기역 대학의 모든 대학생에게 니은이라는 워드를 사용하게 한다면 그것은 표준과 형식의 통일이라는 경제적 관점으로만 볼 수 없는 복잡한 정치적인 문제를 동반한다. 독점은 늘 가격 상승을 가져오며 또한 모조품을 탄생시키는데 이러한 현상은 파피루스의 생산을 독점한 삼천 년 전의 이집트에서도 이미 나타난 바 있다.




아이들에게 특히 위험천만한 선물


사람의 방식과 기계의 방식은 분명히 다르다. 최근에 인지 과학에서는 기계 기술을 사람의 관점에서 재구성하려는 시도가 일어나고 있다. 옛날 방패연을 뚝딱 만들고, 고장난 자전거를 거뜬히 고치시던 아버지의 신통한 손재주와 그 권위는 사라졌다. 이제는 고장난 VTR 고치려고 대리점에 전화하는 것쯤이 아버지가 발휘할 수 있는 최고 기술이다. 오늘날은 어떤 오퍼레이터도 자기가 사용하는 기계의 전반 상황을 알지 못한다. 오로지 고장이 나면 그것을 기록할 뿐이다. 곧, 전체 작업에서 사람들은 극히 한정된 부분을 담당할 뿐이며 완성된 한 가지 노동의 즐거움은 사라졌다. 이 덕택에 대형의 사고가 오퍼레이터의 미숙함으로 발생하지만 사람들은 오퍼레이터를 “비난”하고 “재교육”시키는 것쯤밖에 생각하지 못한다.


이제 모든 기술은 더 인간의 관점에서 새로 설계되어야 한다는 것이 인지 과학자들의 생각이다. 보통 사람이 생각하고 살아가는 방식대로 기계를 그에 합치되도록 만들어 보자는 것이다. 소프트웨어도 우리가 사전 지식 없이 보통 잡지책을 쉽게 펼쳐가며 읽을 수 있듯이 우리들의 습성에 맞게 쉽게 만들어져야 할 것이다.


최근에는 우리나라에도 인터넷과 사이버 스페이스의 열풍이 불고 있다. 인터넷의 장점은 충분하며 그것이 우리의 생활을 크게 바꿀 것임은 분명하지만 우리는 늘 인간의 기본 구조를 인식하여 균형을 잃지 않도록 해야 한다. 너무 찬양에만 치우친 선전은 그 작은 편리함마저 잃게 한다. 외국에서는 이미 이러한 지나친 기술 문화를 반성하는 일이 일어나고 있다. 예를 들어 “나쁜”해커를 잡아서 일약 스타덤에 오른 “착한 해커”리차드 스톨만은 사람들에게 얼굴도 모르는 사람을 가상 공간에서 만나지 말고 이웃들과 직접 얼굴을 마주하여 만나고 직접 토마토를 뜰에서 키어 보라고 권하고 있다.


그리고 전자 우편을 통한 편리한 정신과적 치료를 비판하는 일이 이것이 보편화되기 전에 이미 나타나고 있다. 그 요지는 전자 우편으로 주고받는 기호에는 매우 중요한 정보가 빠져 있다는 것이다. 곧 몸짓들과 같이 비언어적인 통신이 없는 상태에서 오로지 화면에 나타난 기호만 가지고 치료에 임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네트워크를 통한 심리 치료는 빠르고 편하고 경제적으로도 이득을 주지만 이는 결국 좋은 치료, 곧 의사를 일대 일로 대면하고 받는 치료의 보조 수단으로 사용되어야 한다고 전문인들은 권고하고 있다.


또한 가상 현실을 경험하려고 사용하는 기구를 두고도 아직 많은 비판들을 하고 있다. 구십 삼 년의 한 영국 육군 연구소의 연구 보고에 의하면 십 분이 넘게 가상 현실기를 이용한 사람들은 팔십 퍼센트가 넘게 오심과 어지럼증을 호소했다고 한다. 그것은 두뇌의 시각 정보와 실제적인 육체 평형 기관과의 정보 차이에서 오는 것인데, 예를 들면 화면에서는 자기 위치가 기울어졌는데 의자는 평형을 유지할 때에 두뇌는 이 다른 두 정보를 일치시키려 하고 이 때에 오심이 발생한다. 요즈음은 이를 방지하려고 의자와 기구도 같이 움직이게 하지만 그 시간 차이가 인간이 느끼는 차이와 달라서 역시 오심이 발생한다.


그 사람들의 결론은 이렇다. “보이는 것은 가짜지만 아픈 것은 진짜다.” 특히 신체의 평형 기관이 제대로 자라기 전의 어린 아이들에게 이러한 오락기를 선물하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다.




인터넷보다 더 급한 일들


새로운 기술은 새로운 문명을 만들고 새로운 계층을 만들고, 새로운 그림자를 만든다. 특히 자본주의가 가속화되면 그에 따라 그 그림자는 더욱 커지고 깊어지게 될 것이다. 그 그림자는 우리가 미래를 조금만 사려 깊게 생각한다면 충분히 피할 수도 있는 것이다.


역사는 되풀이한다. 이제 컴퓨터 때문에 가까운 미래에 일어날 재난을 준비하는 마음이 필요하다. 오늘 전철 안에서 살펴보니 인터넷이나 사이버포르노를 걱정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듯했다. 모든 일에는 순서가 있는데 우리에게는 인터넷보다 급한 일이 너무 많다. 아이들이 뛰놀 수 있는 운동장을 만들어야 한다. 도심 한가운데에 이십 오층씩이나 올라가는 아파트와, 도로를 주차장으로 쓰는 백화점은 시외로 당장 옮겨야 한다. 그리고 제발 교통 신호를 지키자. 사기꾼 같은 사람을 국회의원으로 뽑지 말고, 수돗물을 마실 수 있도록 하고, 대학에서는 인문 교육을 강화시켜 진짜 대학생을 만들어야 하고, 그리고 아이들에게 평생 지니고 다닐 좋은 손 글씨 가지도록 잘 훈련시켜야 할 것이다. 균형과 조화 - 우리가 사람일 바에는 이보다 더 좋은 덕목은 없다.


13. 신세대 그들은 누구인가




집단보다 개인의 행복, 권위보다 자율을


미국의 대통령 당선자 빌 클린턴은 히피 세대다.


반전과 인간 해방을 기치로 내걸고 60년대를 풍미하면서 미국사회의 그 이전과 이후를 뚜렷이 선 그어놓은 히피즘의 주역들은 20년이 지난 현재 한때 그들이 그토록 격렬히 저항했던 ‘미국 체제의 오늘’을 담당하는 주역으로 성장했다. 적어도 세대론의 측면에서 볼 때 클린턴의 등장은 한 세대의 결산이자 출발이라 할 수 있다.


그 90년대의 초반을 함께 살고 있는 한국사회에도 ‘새로운 세대’가 등장하고 있다. 히피즘처럼 격렬한 양상을 드러내지는 않지만 냉전질서의 해체와 후기산업사회로의 이행, 그리고 사회 내적인 온갖 가치관 과 이념의 혼재와 충돌, 갈등 속에서 사회 주변부의 일각을 형성한 한 무리의 젊은이들이 점차 중심부로의 이동을 준비하는 움직임이 곳곳에 서 발견되고 있는 것이다.


전쟁과 개발독재, 산업화과정의 고통을 껴안아야 했던 기성세대들과 확연히 구분되고, 동시에 격동의 80년대를 통해 비슷한 정치,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했던 30대들과도 다른 세대들. 이들 20대 이하를 기성세대 와 구분해 ‘신세대’로 일반화시킨다면 이들의 특징은 과연 무엇인가.


동서독의 통일로 상징되는 냉전질서의 해체와 [CNN텔레비전]으로 대 표되는 매체의 범세계화 등의 영향으로 80년대 후반부터 포착되기 시작한 이른바’신세대현상’은 90년대의 새로운 현상은 아니다. “탈권위주위적이며 자유주의적인 세대” “개방적인 사고로 다양함을 추구하는 젊은이들” “공동의 가치관이나 이념의 실현보다는 개인주의적인 자아 실현을 궁극의 목표로 삼는 세대.” 이들은 이미 우리 사회 도처에 존재하면서 자신들의 ‘라이프 스타일’을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60년대 후반에서 70년대 초반사이에 태어난 20대들은 이전의 세대들 이 산업화의 고통과 이익을 나누어 가진 반면 산업화의 수혜를 누리는 첫세대로 볼 수 있다. 또 80년대 정치, 사회적 격동에 대한 공동의 경험이 적거나 없으면서도 그 연장선에 서 있는 90년대에 들어서서는 정치적 결정권(투표권)을 행사하는 계층이기도 하다. 이들은 이미 92년 대선에서 유권자의 30%를 점유했다.


이들 신세대의 얼굴을 들여다보기에 앞서 우리와 비슷한 산업화의 궤적을 밟은 일본의 예를 살펴보면 신세대군의 등장이 반드시 한국적인 돌출현상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86년 일본열도는 ‘신인류’ 의 출현으로 떠들썩했다. 이 해에 사회에 첫발을 디딘 젊은 신입사원들은 아무데서나 담배를 꺼내 물었고 선배를 보고 인사도 제대로 하지 않았으며 심지어 상사가 보는 앞에서 책상에 다리를 올려놓았다. 서열과 질서를 중시하는 일본의 기성세대는 경악했다. 기성세대들은 이 들 ‘신세대’를 살펴보고 나서 그들이 60년대 일본경제부흥기의 산물이며 그전 세대와는 식성은 물론 생김새까지도 다른 존재임을 발견하고는 이들에게 ‘신인류’라는 칭호를 붙였다. 이들 신인류는 성장기에’심야 오토바이 폭주족’이었으며, 하라주쿠공원에 모여 괴상한 춤과 노래로 밤을 지샌 ‘다케노코족’이었다.


또 [안안(ANAN)]이나 [논노(NONNO)]같은 여성지를 보고 거기에 소개된 해외유행의 옷만을 골라 사 입던 ‘안논족’이기도 했다. 이들은 이런 성장배경으로 이전의 ‘전공투사건’과 같은 이념세대와 구분됐으며, 생산활동에 가담하는 20대가 되서도 출세보다 편안함을, 많은 봉급보다는 많은 휴가를, 저축이나 내 집 마련보다는 할부승용차를 더 생각하는 계층으로 지목됐다.




일본에 신인류현상이 대두된 지 6년 만에 한국에도 새로운 세대의 등장이 부각됐다. 심야 폭주족이나 ‘안논족’은 이미 등장해 있고 압구정동 일대의 ‘오렌지족’이 사회의 조명을 받기도 했다. ‘서태지와 아이들’로 상징되는 신세대의 감각은 ‘다케노코족’을 방불케 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이들은 투표권을 갖거나 곧 갖게 될 세대로서 정치적 무소신파에서 극단적 좌파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성향과 행동양식을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월간 [직장인]이 지난해 20대 직장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는 ‘신세대 현상’의 한 특징을 잘 반영하고 있다. 그것은 일본의 ‘신인류’현상과 비슷한 맥락에 위치하고 있다.


20대 신세대 직장인들은 직장을 우선 생업의 현장이나 자아실현의 장이라기보다는 ‘즐거운 인간 관계와 사회활동을 위한 매개체’로 보는데 무려 83%가 동의했다. 또 71.6%가 ‘월급이 적더라도 자기 시간이 많은 직장’을 ‘월급 많고 일 많은 직장’보다 더 좋은 회사로 꼽았다


20대의 가치관은 “부당한 상사에 대해서는 집단 퇴진요구 등 하극상도 불사한다”는 데서 전세대와 극명하게 대비되고 있다. 이들 신세대 직장인들은 개인적 삶의 목표에 대해서는 첫째가 “경제적 윤택함과 사회적 성취”를 둘째로는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사는 것”을 꼽은 반면 “사회봉사”는 꼴찌였다. 권위보다는 자율을, 집단의 목표보다는 개인의 행복에 더 깊은 관심을 나타내는 것은 신세대의 전형적인 특성으로 꼽힌다. 한편 ‘신세대 현상의’ 범주에 속하면서도 20대의 그것과는 또 다시 구분되는 것이 ‘서태지 신드롬’으로 대변되는 10대 문화다.


대부분의 20대들조차 공공연히 ‘도대체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하는 ‘서태지 현상’은 우리 사회의 신세대적 가치관과 감각을 대표하고 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강한 비트에 실린 격렬한 춤과 감각적 리듬의 랩 음악, 파격적이고 자유분방한 의상과 몸짓의 이미지 연출.” 기성세대의 심한 거부감에도 불구하고 ‘서태지와 아이들’이 표출하는 이런 이미지는 우리 대중문화의 흐름을 일시에 바꿔 놓을 만한 것이었고 그 주요 소비계층인 10대들을 당장에 대중문화생산, 소비의 중심부대로 끌어 올렸다.




“웬! 서태지! 왕! 서태지!” 이 뜻을 알 수 없는 말은 그러나 이들 신세대가 공유하는 자기들만의 언어이다. 지난해 11월 교육전문지 <우리 교육>이 실시한 청소년대상 설문조사 결과 ‘서태지와 아이들’은 기업가, 정치가, 문학가들을 제치고 현존하는 가장 좋아하는 인물로 꼽혔다. 서태지 팬클럽회원인 이순영(ㅅ여상)양은 “오빠들은 우리와 뭐가 통한다구요. 어른들이 알지 못하는 우리만의 고민이랄까 아픔 같은 것이 있는데 오빠들은 그것을 정확하게 알고 있고 우리들을 신나게 해요.”라 고 말한다


이 새로운 세대들은 기성 세대들이 그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만큼 기성세대의 경험과 의식에서 ‘단절’되기를 바란다.


치킨이나 햄버거도 맛에 따라 골라먹는 세대로서 부모들의 ‘헐벗고 배고픈 시절’은 낯설기만한 세계일 뿐이며, 모든 욕망이 단지 입시라는 하나의 비상구를 통해서만 해소가 가능한 현실에 환멸을 느낀다. 그래서 그들은 탈출구가 아닌 그들만의 해방구 설정을 간절히 희망하고 있다. 그리고 그 해방구의 설정은 ‘불행하다’는 자의식에서 출발하고 있으며 자신의 불행을 이해하고 동시에 하나로 동일시할 수 있는 우상의 출현 에 열광하는 것이다.


”난 알아요. 이 밤이 흐르고 흐르고 나면 누군가가 내곁을 떠나야 한다 는 사실을.” 서태지의 노랫말은 이들 세대의 일회적인 사고 행태와 소외의식을 반영한다. ‘서태지 현상’은 한편 신세대문화가 외래문화의 모방과 혼성의 산물임을 보여주기도 한다. 신세대들이 보여주는 문화적 특징은 미국문화의 베끼기와 그것의 상품화라는 전 세계적 문화산업의 전략이 관철되고 있다는데 있다.


고도로 발전된 기술이 ‘선진적인 문화상품’을 이 나라에서 저 나라로 빠르게 전달하고 있으며 전 세계적으로 문화상품의 생산. 소비가 텔레비전, 비디오 등 ‘비주얼 세대’를 겨냥해 이뤄지고 있다는 점도 10대 문화의 특성을 반영하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즉 음악을 단순히 듣는 것이 아닌 보는 음악으로 체험할 수 있는 세대의 등장이 서태지의 출현을 가능케 했으며 그 역으로 서태지 현상은 바로 비주얼세대의 산물이기도 한 것이다. 이는 한극 사회에 나타나고 있는 10대들의 감각적인 신세대문화가 전 세계적인 문화의 동질화과정 에 놓여 있다는 분석을 가능하게 하고 있다. 코카콜라의 맛이 세계적으로 똑같듯이 말이다.




“서태지 현상은 기성 세대의 권위에 짓눌리고 입시공부라는 압박 속에 갇힌 10대들이 기성세대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그들만의 언어로 표출한 잠재의식이자 욕망의 표현입니다.” 평론가 이재현 씨는 또 “10대들의 이러한 내적 욕구에 대해 기성세대가 백안시할 것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에 엄연히 존재하는 하나의 문화로서 인정하는 데서부터 이해의 출발점을 두어야 한다”고 말한다.


신세대들이 보여주는 가치관이나 행동양식이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그것이 단순한 돌연변이가 아니라 우리 사회. 문화가 오랫동안 배태시켜온 결과이며, 파행적인 정치. 사회사와 교육제도가 빚은 산물임을 인정하고 그들이 가진 개성과 잠재력을 북돋워줄 때 우리 사회는 세대의 단절이 아니라 계승을 통해 성숙할 수 있으리란 지적이다.   <이인우 기자>




무조건 ‘떠야 하는’ 강박 관념, 우울증


음악적인 면에서 이들의 죽음에 대한 혐의를 댄스음악에 지운다면 너무 지나친 것일까. 한국 대중음악의 주 수요층은 음악에 관한 한심한 편식증을 갖고 있는 10대들이다. 왜곡된 수요층이 있는 한 음악 공급층도 왜곡되기 마련이다. 다양한 장르의 음악이 존재할 공간은 사라진다. 지난해 댄스음악의 전제 속에 록과 재즈가 간간이 비명을 내지르던 것을 상기해 보라. 이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감각적인 음악을 공급해 ‘떠야만 하는 ‘ 가수의 상황이 있는가 하면, 주 수요층의 눈과 귀를 독점한 이 음악에 영토를 잠식당한 채 뒤로만 물러서는 장르의 한 가운데 선 가수의 상황도 있다. ‘포크음악의 대들보’도 차츰 그 영토를 잠식당하는 슬픔을 겪었으리라는 점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비록 그가 일정한 고정팬을 확보한 라이브의 귀재였을지라도 말이다. 댄스음악은 그 빠른 템포만큼이나 유행 주기도 짧다. 이것도 가수(창작자)에겐 우울한 그림자를 던진다. 한 개의 앨범을 만들어 그 노래를 자신 있게 부르기도 전에 그는 수요층의 눈과 귀를 잡아매기 위한 또 다른 창작을 해야 한다. 붓끝이 마르기도 전에 다시 먹물을 튀겨야 하는 상황이다. 그건 음악팬들의 절대적인 권한이기도 하다. 가속도가 붙은 채 빨라져가는 유행 주기에 그가 저항할 방법은 없다.


 그들이 죽기 전에 함께 술을 마셨다는 후배나 가족의 증언이 있다. 한국 대중음악의 우울한 풍토와 개인적인 문제, 그리고 술(우울증), 이렇게 해서 죽음의 조합은 완성된다. 그렇다 하더라도 <나의 노래>를 부르던 김광석의 죽음은 너무나 아깝다. 하기야 아깝지 않은 죽음이 세상 어디에 있으랴만.


<한겨레신문 / 93. 1. 1, 송현순 기자>




14. 세계 각지 기상 이변 속출은 지구 온난화 영향인가


홍욱희


전력기술연구원 책임연구원․환경학 박사


이런 현상은 서울시의 교통사정에 비유될 수 있다. 서울의 도로에서 어느 한곳이 갑자기 막히면 그 영향은 순식간에 도심의 거의 모든 도로로 확산된다. 이와 마찬가지로 절묘하게 조절되고 있는 복잡한 자연의 기후시스템에 인공적인 수정이 조금 가해질 때에 그 영향이 크게 증폭돼 나타날 수 있는 것이다. 과학자들은 최근 들어서 전 세계적으로 겨울 한파가 부쩍 심해지는 현상이 바로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후시스템 교란에서 비롯되는 것이라고 해석한다.




올 겨울의 동장군은 세계적인 현상이다. 지난 2월 초순 미국 중북부를 휩쓴 한파는 가히 기록적인 것이어서 미네소타 일부 지역에서는 기온이 이번 세기 최저치를 기록했다. 또 동부 대서양 연안 도시들에서는 최고의 눈사태를 경험해야만 했다. 러시아의 카자흐스탄 북부지방에서도 연초에 눈보라가 덮쳐 수백 명이 사망했으며 유럽과 일본에서는 엄청난 폭설과 폭 우로 수억 달러의 재산피해를 보았다.


그런데 최근 기상학자들이 이런 기상이변을 지구온난화와 관련시켜 관심을 끌고 있다. 사람들은 한여름 특히 무더운 열파가 닥쳤을 때에야 비로소 지구온난화 현상에 대해서 관심을 갖는다. 그리고 열파가 물러감과 동시에 까맣게 잊어버리는 것이 보통이다. 그렇지만 기상학자들은 다르다.


그들은 한여름의 기온상승을 우려하는 것이 아니라 요즘처럼 한겨울 추위 가 심각할 때 지구온난화를 실감한다.




미국 중북부의 한파 - 유럽․일본 폭설, 폭우


대기의 온도와 습도는 지표면과 바닷물의 온도에서 영향을 받는다. 숲에서는 많은 수증기가 공기 중으로 발산돼 구름의 형성을 돕고 도시의 존재는 태양열의 복사를 부추겨서 기온을 상승시킨다. 한편 바닷물의 온도는 기온에 크게 영향을 받으며, 바다와 육지의 기온 차이는 해륙풍을 발달시켜서 해안지방 기후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다.


지구의 기후를 결정짓는 메커니즘이 이렇듯 매우 복잡하기 때문에 이런 기후시스템에 약간의 교란만 일어나도 그 파급효과는 매우 클 수 있다.


이런 현상은 서울시의 교통사정에 비유될 수 있다. 서울의 도로에서 어느 한곳이 갑자기 막히면 그 영향은 순식간에 도심의 거의 모든 도로로 확산된다. 이와 마찬가지로 절묘하게 조절되고 있는 복잡한 자연의 기후시스템에 인공적인 수정이 조금 가해질 때에 그 영향이 크게 증폭돼 나타날 수 있는 것이다. 과학자들은 최근 들어서 전 세계적으로 겨울 한파가 부쩍 심해지는 현상이 바로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후시스템 교란에서 비롯되는 것이라고 해석한다.


그러한 교란은 먼저 편서풍 흐름의 이상에서 발견된다. 편서풍이란 북위 30도에서 60도까지 일년 내내 서풍으로 부는 강한 바람이다. 그런데 무슨 까닭인지 이 바람의 방향이 바뀌어서 남쪽으로 비켜 내려오면 북반구의 중위도 지방 일대가 여름에는 이상저온 현상을, 겨울에는 강추위를 맞게 된다. 특히 동서로 가로지르는 산맥이 별로 발달하지 못한 유럽이나 시베리아․북아메리카 지역에서는 이러한 편서풍이 남하하면 그 영향이 스페인이나 플로리다주까지를 순식간에 휩쓸어버린다.


기상학자들이 기상이변의 주요 원인으로 편서풍의 영향을 주장할 때 해양 학자를 포함하는 일반 지구과학자들은 엘니뇨에 그 원인을 돌린다. 1980 년대 후반부터 엘니뇨의 발생빈도가 부쩍 높아진 것에 착안한 이 제안은 해양의 흐름이 대기권에 영향을 준다는 점을 고려할 때 편서풍 원인론보다는 조금 더 근원적인 데서 그 원인을 찾는 듯하다.


태평양의 적도 지방에서는 중위도의 편서풍과 마찬가지로 무역풍이라는 동풍이 항상 불고 있다. 이 바람을 따라 바다 표면의 따뜻한 물은 늘 서 쪽으로 이동하기 때문에 서태평양 부근의 바닷물 온도는 주위의 다른 지역들보다 높아진다. 수온이 높아지면 습기를 풍부히 머금은 적란운이 많이 발생하는데 이 구름이 때마침 불어오는 무역풍에 실려 대륙 동안으로 이동하면 엄청난 호우나 강설을 동반하게 된다.




편서풍 이상․엘니뇨 현상은 왜 발생하나


과학계의 일각에서 이렇게 편서풍 이상과 엘니뇨의 빈번한 발생을 기상이변의 주요 원인으로 손꼽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최근 들어서 이런 현상이 급증하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그 어떤 과학자도 속시원한 해답을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이런 상황에서 과학자들이 기상이변의 더 근본적인 원인으로 환경오명, 특히 대기권의 이산화탄소 농도 증대를 강조하는 것은 결코 잘못된 논리라고 말할 수 없다. 다만 슈퍼컴퓨터를 동원해서 전 세계적으로 얻어진 기상자료들을 면밀히 분석하면서도 과학자들이 아직 기상이변과 지구온난화의 인과관계를 명쾌하게 규명하지 못하는 것은 아직 그들이 지구 대기권 시스템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리라.


<한겨레21 / 96. 2. 15>




15. 똥이 자원이다.


전 경 수


(서울대 인류학과 교수)


「똥이 자원이다」는 서울대 인류학과에 계시는 전경수 선생님이 지으신 책이다. 나는 이 책과 관련하여 평소에 느낀 똥에 대한 생각들을 우선 이야기하려 한다. ‘똥’을 영어로는 ‘dung’이라 하고 학문적인 용어로는 ‘분뇨’ 즉 ‘night soil’이라 한다. 그리고 변소를 옛날에는 뒷간, 칫간, 똥통, 똥시, 똥간 등의 단어를 사용했다. 요즈음 쓰는 한자어나 영어는 우리의 정서에 맞지 않으며 순환 자정의 의미가 없다. 지금은 ‘똥문화’가 잘못되어 가고 있다고 생각된다.


우리말을 살펴보면 ‘똥’. ‘땅’. ‘땀’. ‘딸’과 같은 단어들이 비슷한 어원을 가지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즉 이것들을 연관지어 생각하면 한편으로는 인간이 흙으로부터 만들어졌기 때문에 인간이라는 단어가 ‘human’이고 흙이라는 단어는 ‘humus’이고 ‘humility’라는 단어는 겸손 겸허를 나타낸다. 다시 말해서 흙으로부터 만들어진 인간은 어머니인 대지에 겸손, 겸허해야 한다는 것으로 뜻이 연결된다. 그리고 ‘땀’은 노동을 상징하고 ‘땅’은 노동의 터전이다. 따라서 오늘날의 인류가 직면하고 있는 여러 가지 문제점들은 우리 인간들이 ‘어머니인 대지, 땅’에 대해서 어떠한 형태이든 겸손한 마음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그리고 사람들이 태어난 ‘ 땅’에서 ‘땀’을 흘리며 노동을 하지 않기 때문에 생긴 일들이다. 요즈음 ‘땅’이란 존재는 노동의 대상이 아니라 경제적 가치의 대상 즉 부동산 투기의 대상으로 이용되고 있다. 정말로 사람들이 ‘땅’에 발을 붙이고 ‘땀’을 흘리면서 생산을 할 때만이 현대문명으로 파생된 여러 가지 문제들이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마찬가지 논리로 사람이 ‘땅’에서부터 ‘땀’을 흘리는 과정을 벗어나면서 환경문제 등 여러 가지 문제가 생기지 않았나 생각된다. ‘땅’과 ‘딸’도 서로 밀접한 관계에 있다. ‘땅의 여신’. ‘대지의 여신’. ‘지구의 여신’이라 하지 결코 ‘지구의 남신’ 이라 하지 않는다. 자연 ‘땅’은 곧 여성이었다. 왜 환경 자연이 여성이었나? 이것은 우리말의 ‘딸’을 보면 알 수 있다. ‘딸’하고 ‘땅’의 공통점은 무엇인가? 생산력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즉 여성인 ‘딸’이 생산력을 가지고 있듯 이 ‘땅’도 생산력을 가지고 있다. 그러한 차원에서 ‘땅의 여신’이라는 표현을 한 것이다.


그러면 ‘똥’이 ‘땅’과는 어떻게 연관되어 있는가? 땅은 곡식을 생산하고 생산된 곡식은 먹어서 똥이 되고 똥은 다시 땅으로 돌아가서 새 생명의 밑거름이 된다. 그래서 김지하씨도 ‘똥은 밥이고 밥은 똥이다’라고 이야기한 것으로 보이며 위와 같은 이유로 혐오의 대상인 똥의 개념은 다시 정의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똥’을 과학적으로 살펴보면 비중이 1을 조금 넘는다. 그리고 오줌과 똥은 9/1의 비율로 오줌의 양이 훨씬 많다. 그리고 또 똥은 인종과 국가에 따라 성분에 많은 차이를 보인다. 한국인의 경우 분뇨를 처리한 후 바닥에 분해되지 않은 고춧가루가 남는데 따라서 인종 국가에 따라 그 처리 방법도 달라져야 한다. 한국사람의 똥은 불순물이 많아서 가장 처리하기가 어렵다. 또한 똥의 가장 중요한 성분은 유기물이다. 수질검사를 할 때에 보통 BOD가 3.5ppm 이라 하면 3급수인데 분뇨의 경우는 3만 ppm에 달한다. 따라서 유기물 덩어리로서 수질오염의 주범이라고 할 정도로 똥의 유기물 농도는 높다. 즉 가정 하수의 경우는 BOD가 200-300ppm유기물 성분이 많은 술(소주 25%의 경우-술은 도수가 높을 수록 BOD가 높다.)이 30만 ppm이고 분뇨는 2-3만ppm이다.


우리나라 옛말에 ‘기회자 장팔십. 기분자 장백’이라는 말이 있는데 똥을 함부로 버리는 것을 금지하였다는 것을 말해준다. 땅에서의 3대 비료가 질소, 인, 칼리이고 바다의 3대 비료는 질소, 인, 규소이므로 우리 선조들은 똥에 다량 함유되어 있는 질소와 인을 비료로 사용하였다. 그러나 현재에는 비료로 사용되지 않고 버려지고 있으며 그것이 바다와 강으로 흘러 들어가 부영양화와 적조현상을 일으키는 원인이 되고 있다. 부영양화는 ‘영양분을 풍부하게 한다’는 뜻이다. 대청호나 팔당호의 경우 수면이 녹색 카페트를 깐 듯 식물성플랑크톤으로 덮여 있음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은 똥오줌이 제대로 처리되지 않아서 일러나는 현상이다. 바다의 적조현상이 발생하여 물이 새빨갛게 되어 양식장 어패류가 모두 죽었다면 그 원인의 대부분이 똥, 오줌의 처리가 안되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똥은 30%밖에 처리되지 않고 있다.


따라서 생똥이 강과 바다로 흘러 들어간다. 똥을 이용하여 농사를 지을 때에 는 이런 일이 없었다. 똥을 비료로 이용하였기 때문에 오히려 돈을 주고 똥을 샀다. 똥이 밑거름이 되고 또한 똥이 생명의 위치에 있었기에 똥이 밥이 되고 밥이 똥이 될 수 있었다. 그런데 요즘 들어 똥은 한마디로 수질오염의 주법으로 그 지위가 하락했다.


‘똥이 자원이다’라는 제목에서도 나와 있듯이 똥을 자원으로 생명의 밑거름으로 다시 사용하지 않으면 환경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생명의 밑거름이란 순환의 아주 중요한 의미이다. 똥을 버리는 것은 순환이 아니다. 하지만 똥을 밭으로 다시 가져가 다시 밥이 되게 하면 순환이 되는 것이다. 공해문제가 생기는 데에는 여러 가지 메커니즘이 있지만, 한마디로 생태계 순환의 고리가 끊어져서 생기는 것이 바로 공해인 것이다. 생태계는 생산자, 소비자, 분해자가 있는데 이 순환구조가 계속해서 돌아가면 공해가 생길 틈이 없다. 그런데 비닐이 공해인 이유는 인간이 생산하고 소비하고 버림으로써 생태계의 순환고리인 생산, 소비, 분해에 들어가지 못하여 분해가 되지 않기 때문에 공해 물질로 바뀌는 것이다. 만약 들어간다고 하더라도 집중, 적체되어서 미처 다 분해시키지 못하는 것 역시 공해이다. 그래서 인위적인 합성물질이 어느 한족에 집중되면 자연계가 가지고 있는 분해능력을 초과시킴으로 인하여 오염이 되는 것이다. 그러한 차원에서 김지하씨가 ‘똥은 밥이고 밥은 똥이다.’ 라고 한 이야기는 당연한 이야기인 것이다.


이 책의 서문에서 김용옥 씨는 ‘20세기를 밥의 시대라고 한다면 21세기는 똥의 시대라고 갈파할 수 있다.’고 했으며 ‘똥만이 인류를 구원 할 수 있다.’ 고 극단적인 표현을 사용했다. 그 이야기는 옳다. 순환이라는 차원에서 학문도 생태계와 마찬가지이다. 생산(예컨대 화공학, 건축학), 소비(예컨대 경영학, 경제학, 마케팅), 분해(예컨대 환경학)의 역할을 하는 학문이 있는데, 특히 환경학은 세상의 모든 것을 분해시키는 학문이다. 즉 똥, 비닐을 분해시키고, 재생산되게 하는 것이 바로 환경학이다. 따라서 환경학은 흩어져 있는 생산과 소비의 관계 질서를 제 상태대로 돌려주려고 하는 것이다. 생산과 소비에 관한 학문이 99%정도로 압도적이었던 20세기에 비해 21세기에 들어서면 과학을 비롯한 모든 학문이 생산, 소비에 치중하는 것이 아니라 분해를 하는 쪽으로 치우치게 될 것이다. 21세기는 환경문제의 대두에 따라 환경문제 관련 학문이 발전 될 것으로 전망된다. 요즈음 환경경제학, 환경생태학, 환경사회학 등이 학문 영역으로 자리잡고 있으며 특히 환경 경제학은 ‘산성비에 의한 건물의 폐해는 어느 정도인가?’ 아니면 ‘환경분쟁 시 호프만 식으로 할 것인가?’하는 정도 이었으나 이제는 그런 식의 학문에서 탈피할 것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오늘날 공해 문제는 경제학과 생태학의 갈등 때문에 생겼다고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한다. 경제학(economics) 생태학(ecology)에서 보듯 이 ‘eco’라는 단어를 같이 사용하면서도 경제학과 생태학은 그 논리가 완전히 다르다. 생태계는 공생하기 위해서 최소한의 에너지를 쓰려고 하는데 반하여 경제학은 최대한의 에너지를 쓰려고 하는 학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서로간의 모순이나 갈등 때문에 생기는 것이 공해 발생 문제이다. 그러므로 환경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경제학과 생태학이 대화를 해야하며 경제학이 생태학을 닮아야 한다. eco-economics는 그러한 뜻에서 좀 더 학문적으로 깊이 있게 서술되어야 한다. 그럴 때 비로소 오늘날의 경제문제 더 나아가 환경문제가 해결될 것으로 안다. 지난 리우 회의의 한계점은 환경문제를 현대경제학으로 풀려고 했다는 것인데 즉 부과금 제도, 예치금 제도와 같은 ‘incentive제도’-선진국들이 돈을 내는 제도-로 환경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대 경제학은 절대 근본적인 환경문제의 해결 바탕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생태계의 원리는 최소의 에너지를 쓰는 것으로 생산, 소비, 분해로 이어지는 사이클 같은 것이다. 공생의 조건, 종의 다양성 등 생태계의 중요 원리를 따오지 않은 경제학으로는 환경문제를 경제학적으로 접근한다고 하더라도 궁극적인 환경문제의 해결은 하지 못하고 지엽적인 해결밖에 할 수 없을 것이다. ‘똥만이 인류를 구원할 수 있다’ 고 한 이야기는 똥 그 자체가 인류를 구한다기보다는 똥이 가진 생명적 의미를 인류가 깨달았을 때에 모든 사회가 소비 지향적이 아닌 분해 지향적인 사회로 갈 수 있으리라는 점을 시사한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현재의 산업구조는 소비형 산업구조로서 이러한 소모형 산업구조가 순환형 산업구조가 되어야만 환경문제는 해결된다. 중공업보다는 경공업이, 경공업보다는 농업이 훨씬 순환형의 산업인 것이다.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바대로 현대의 파괴된 환경이라든지 경제체제, 자원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농업과 임업을 섞은 혼농임업체제 같은 것이 대표적인 산업을 순환시킬 수 있는 순환형 산업 구조라고 생각된다. 모든 생물체에 있어 가장 위험한 독은 자독이다. 즉 스스로에게서 나오는 독이 가장 위험하다. 그러면 인류가 가진 자독은 무엇인가? 그것은 똥이나 쓰레기일 것이다. 똥이나 쓰레기를 사람들이 문명의 분비물이라고 이야기하는데 우리가 가진 자독을 잘 해결하면 인류에게 도움이 될 것이나 지금과 같이 쓰레기라고 마구 버리면 그야말로 독이 될 것이다. 똥도 함부로 버리면 적조, 부영양화를 일으키고 세상을 썩게 만든다. 이 문명의 분비물을 슬기롭게 잘 이용하면 인류의 생명의 원천이 되게 할 수 있다. 환경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똥이 자원이다’라는 생각을 가져야 하고 똥과 친해져야 한다.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똥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지는 않다. 6, 7가지 주제(인구증가와 자연 보호/기술도입과 문화변동/생태적 불균형과 공동체 문화의 위기/숲 속에 사 는 사람, 숲 밖에 사는 사람/똥이 자원이다: 제주도 송당리의 생물가스 이용/ 서남해 간척지역의 풍토병/씨를 말리는 화학무기-미군이 사용한 월남전의 황색 고엽제 등)중 한가지가 ‘똥이 자원이다’라는 주제이다. 제주도 송당리에서 똥을 이용해서 생물가스인 메탄가스를 만들어서 에너지로 이용하고 있는 사례를 중심으로 한 내용이다. 그야말로 똥이 자원인 경우이다. 이 책의 4절 ‘숲 속에 사는 사람 숲 밖에 사는 사람’과 5절 ‘똥이 자원이다’ 는 쓰레기 문제와 그것의 재활용을 생각하는 이들에게 많은 도움을 줄 것이다. 이 책을 꼭 한번 읽어보기를 권한다.




-이 글은 지난 1992년 10월부터 ‘새로운 세계관의 모색을 위하여 : 환경전문가와 함께 환경 고전을 읽는다.’ 라는 제하로 7회에 걸쳐 개최되었던 <제16 회 서울 YMCA청년 아카데미>의 92년 11월 12일자 장원 교수의 강의를 정리 한 내용입니다.-




저자 : 전경수 교수 (서울대 인류학과)


강사 : 장 원 교수 (대전대 환경 공학과)


출판사 : 통나무




위 글은 <환경 리포트> 1993년 3, 4월호에 실린 서평입니다.


16. 논리와 논증


민 찬 홍


(한남대 교수)


논리(論理)라는 말은 <말의 이치>를 의미하는 한자어로 되어 있다. 예컨대 ‘물리(物理)’ 는 물질들이 변화하고 작용하는 이치를 다루는 것이요, 논리는 말로써 따질 때 따라야 할 이치를 다루는 것이다. 또 ‘논리’에 해당되는 영어 ‘logic’도 역시 ‘말’을 뜻하는 희랍어 ‘logos’에서 유래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어원적으로 보면 논리란 ‘말’에 관한 것이며 ‘말의 이치’를 따지는 것이다.


<논리적>이라는 것은 생각하고 말하고 따져보고 탐구하고 논쟁하고 등등의 다양한 상황 하에서 요구되는 어떤 이치 내지 규칙을 지키고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논리가 요구하는 이러한 이치 내지 규칙이란 무엇인가? 만일 누군가 ‘플라톤은 총각이다’는 말에 동의했다면 그는 ‘플라톤은 남자다’는 말에 대해서도 동의해야 한다.


‘플라톤은 총각이다’는 명제는 참일 수도 있고 거짓일 수도 있다. 그 명제가 참이 되기 위해서 지켜져야 하는 이치도 있을 것이다. 또 플라톤이 총각이라는 명제는 상황에 따라서 매우 적합하지 않은 진술이 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상황에 적합한 진술이 되기 위해서 지켜져야만 하는 이치라는 것도 생각할 수 있다. 논리가 요구하는 이치는 이런 많은 이치들 중의 한가지이다.


그러나 어쨌든 만일 내가 ‘플라톤은 총각이다’는 말에 동의한다면 나는 ‘플라톤은 남자다’는 말에 대해서도 동의해야 한다. 또 ‘칼 루이스가 빨리 달리고 있다’고 인정한 사람은 ‘칼 루이스가 달리고 있다’는 것도 인정해야 하고 ‘지구는 둥글다’고 믿는 사람은 ‘지구는 네모지다’를 인정해서는 안 된다. 이것이 바로 논리가 요구하는 <말의 이치>이다. 너무 뻔한 얘기 아닌가? 아닌게 아니라 논리란 아무리 높은 수준의 논리학에서도 이러한 시시한 얘기에서 드러나는 뻔한 이치를 다룬다. 이것이 바로 논리적 사고의 요점인 것이다.


게다가 이러한 뻔한 이치를 잘 지킨다고 해서 올바르게 말하고 사고하리라는 보장은 없다. “플라톤의 키가 2미터보다 크다면 플라톤의 키는 199 센티미터보다 크다; 만일 플라톤의 키가 199 센티미터보다 크다면 플라톤의 키는 198.5 센티미터보다 크다” 등등. 늘 이런 계산만 하고 앉아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논리적 이치에 맞는 사고를 하면서도 평생 쓸데없는 생각이나 하고 있는 셈이고, 따라서 그는 합리적인 사람이라기보다는 정신병 환자일 것이다. 논리적 이치를 다 지킨다고 해서 곧바로 올바른 말, 제대로 된 사고를 한다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내가 <플라톤의 키가 180 센티미터보다 크다>와 <플라톤의 키가 160 센티미터보다 작다>를 동시에 인정한다면 그것은 어떤 경우에도 올바른 사고일 수가 없다. 논리적 이치를 어기고서는 결코 올바르게 생각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렇게 말할 수 있다: 논리가 요구하는 이치는 올바른 사고를 하기 위한 필요조건이다.


우리는 흔히 ‘논리적 사고’라는 말을 들으면 어떤 심오하고 통찰력 있는 사상적 업적을 이룩했던 위대한 사상가나 과학자를 떠올리거나, 실낱같은 단서를 포착해서 범인을 찾아내는 셔얼록 호움즈 같은 명탐정을 연상한다. 그런 재주로 말하면 아무나 가질 수 없는 것 아닌가? 그래서 우리는 논리적 사고라는 것이 뭔지는 몰라도 매우 어려운 것이리라고 단정한다. 그러나 논리적 사고란 보통 사람에 비해서 뛰어난 사고력이나 지능을 가진 사람들, 또는 많은 공부를 한 사람들이나 할 수 있는 어려운 것이 아니다. 논리적 사고는 조금만 노력하면 누구나 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도 정확하지 않다.


실제로 누구나 늘 논리적 사고를 하고 있는 것이다. 집에서 학교까지 30분이 걸리는데 1교시 시작 20분전에 집에서 출발하는 경우에 우리들 대부분은 불안과 초조감에 휩싸인다. 의식적으로 노력하지 않고도 <학교에 지각하게 되리라>고 이미 추리해냈기 때문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런 추리는 우리가 전혀 하고 싶어하지 않는데도 자동적으로 이루어진다. 물론 전혀 불안해하지 않는 친구들도 가끔 있다. 하지만 그런 친구들이 다른 점은 그 정도의 추리를 못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선생님께 꾸지람 듣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정도의 용기(?)를 가졌다는 데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사람은 누구나 논리적 사고에 있어서 놀라운 능력을 가지고 있다. ‘놀라운 능력’이라는 표현은 과장도 아니고 공치사도 아니다.


실제로 최근 인공지능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지루하고 복잡한 계산을 그렇게 쉽게 해내는 컴퓨터가 사람들이 쉽게 처리해내는 일상적인 일들에 있어서 얼마나 바보인가 절실히 경험하고 있다. 인간은 매우 논리적인 동물인 것이다.




논리가 말의 이치를 다루기는 하지만 모든 말의 모든 이치를 다루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아주 다양한 상황에서 다양한 목적을 가지고 말을 한다. 다양한 상황과 목적들의 차이를 우리는 너무나 잘 알아채기 때문에 보통은 의식하지도 않는다. 몇 주만에 만난 그다지 친하지 않는 친구가 “그동안 잘 지냈니?”하고 묻는데 자기가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미주알 고주알 풀어놓는 사람이라면 사람 상대하는 직업은 포기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주룩주룩 비가 내린다”고 말하는 연극배우에게 맑은 날씨에 거짓말한다고 비난하지도 않으며 “통곡하는 바위”를 노래하는 시인에게 엉터리라고 말의 이치를 들이대지도 않는다.




논리적인 원칙이 요구되는 상황이란 언제나 진리주장(truth-claim)이 제시되는 상황이다. 누가 무엇이 어떻다고 주장할 때에 비로소 논리적인 이치를 따질 여지가 생긴다는 말이다. 그러나 아직도 논리가 적용될 여지는 많지 않다. 아인쉬타인이 <태양 근처에서 빛이 휠 것>이라고 주장했을 때 바빠진 것은 천문학자요 물리학자들이었지 논리학자들이 아니었다. 논리적인 원칙이 적용되려면 진리주장이 있되 그 주장을 뒷받침하는 이유 내지 근거들도 함께 제시되어 있어야 한다.




논증 = 주장 + 근거들




이라는 점을 기억해두자. 예를 들어서 낡은 모자를 발견한 셔얼록 호움즈와 왓슨 박사의 경우를 생각해 보자. 한 낡은 모자를 잠시 들여다보던 셔얼록 호움즈는 왓슨에게 <이 모자의 주인은 매우 지적(intellectual)인 사람일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고개를 갸우뚱하는 왓슨에게 호움즈가 붙인 이유는 <머리가 크면 그만큼 든 것도 많은 법>이라는 것이었다. 이런 장면쯤 되면 논리적인 이치를 따질만한 재료가 제공되어 있다. 호움즈는 왓슨에게 어떤 진리주장(=이 모자의 주인은 매우 지적인 사람이다)을 내놓으면서 동시에 그러한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머리가 크면 든 것도 많다)도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진리주장이 근거들과 함께 제시될 때 우리는 그것을 논증(argument)이라고 부른다. 논리란 좋은 논증이 갖추어야 하는 이치를 말하는 것이요. 논리학이란 바로 이러한 이치를 따지는 학문이다. 그러므로 논리가 말하는 이치를 따지려면 반드시 논증적인 말이나 글, 즉 이유 내지 근거를 들어서 무언가를 주장하는 말이나 글이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하지만 논증적인 글이란 진리주장과 근거를 둘 다 가지고 있는 글이다. 어떤 글이 내세우는 진리 주장을 <논지>, <결론>, <주장> 등의 말로 부르기도 하며 근거를 <논거>, <전제>라고 부르기도 한다.


논증적인 글이 주어지면 우리가 가장 먼저 할 일은 그 글의 주장, 즉 결론이 무엇인가를 찾아야 한다. 이거야 국어시간에 많이 해 본 일 아닌가? 두괄식이니 미괄식이니 또 무슨 괄식이니 하는 게 바로 이런 얘기였다. 글 자체가 난해한 경우가 아니라면 이런 문제는 쉽다. 이것을 어려워하는 사람은 능력이 없는 것이 아니라 글을 읽는 태도가 잘못되어 있는 것이다. 만일 이 문제에 대하여 완벽하게 자신을 가질 수 없는 사람이 있다면 지금부터 읽는 모든 글을 연습문제로 삼을 수 있다. 글들을 문단마다 나누어서 생각하라. 그리고 각 문단에 대해서 “이 사람은 지금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하고 물어보라..


일반적으로 ‘왜냐하면’, ‘···라는 점을 생각하면’, ‘이유인 즉슨’, ‘···과 같은 점을 생각하건대’, ‘첫째···, 둘째···’, ‘예컨대’ 등의 말들은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들에 붙는다. 논증적인 글의 주장은 일반적으로 ‘그러므로’, ‘고로’, ‘따라서’, ‘요컨대’, ‘간단히 말해서’, ‘결과적으로’, ‘내 생각으로는’, ‘사실’, 등등의 말로 시작하거나 ‘···로부터 다음을 알 수 있다’, ‘···는 ― 를 보여준다’, ‘···는 점은 명백하다’ 등의 구절로 장식되어 있다. 이런 표현들에 주의하면 주장을 분별해내는 데 도움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것은 예의 일부에 불과할 뿐 아니라 이런 말들이 주어진 글의 최종적 결론을 언제나 잘 가려내 주는 것도 아니다. 역시 중요한 것은 글의 줄거리를 파악하는 일이다.


대부분의 글은 어떤 문제(issue)에 대한 대답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예컨대 독서의 여러 종류들에 대하여 설명하는 글이라면 “독서에는 어떤 종류가 있는가?”하는 문제에 대한 대답이며 이러한 글이 경우에 따라서 택해야 할 독서방법을 보여주는데 치중하고 있다면 이 글은 “어떤 방법으로 독서할 것인가?”하는 문제에 대한 대답이 될 것이다. 신문의 기사문이나 전자제품의 매뉴얼조차도 어떤 문제에 대한 대답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물론 설명문이나 묘사문, 또는 기록문 등에 대해서는 문제는 찾을 수 있다고 해도 주장을 찾을 수는요약되어  없다. 주장을 담고 있는 글이라면 그것은 이미 논증적인 글이 될 것이다. 논증적인 글의 경우에 주장이란 그 논증이 다루고 있는 문제에 대한 대답이다. 그러니 논증적인 글을 대할 때 글의 문제와 주장을 함께 찾아보려는 습관을 갖는 것이 좋다. 글의 문제는 제목에 들어있는 경우가 많고 글의 서두에 질문의 형태로 나타나 있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글은 문제를 명확하게 문장으로 표현하고 있지 않으므로 글의 시작 부분을 중심으로 삼아서 독자가 스스로 찾아내야 한다.


때에 따라서 논증이랍시고 제시된 글의 주장이 무엇인지가 불분명한 경우가 있다. 이런 경우에는 대부분 그 글이 다루고 있는 문제가 무엇인지도 분명치 않다. 문제와 주장이 불분명한 글은 물론 좋은 글이 아니다. 그러나 이러한 글의 경우에도 아무런 문제도 다루고 있지 않다기보다는 여러 개의 문제와 주장들이 섞여 있기가 십상이다.


상식적으로 말하자면 이런 애매한 글의 문제와 주장들도 정리해 낼 줄 알아야 한다. 그러나 이쯤 되면 치밀하게 읽는 훈련을 꽤 거치지 않고서는 해낼 수 없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문제와 주장이 선명한 글들에서 시작하는 게 좋겠다.


지금까지의 얘기를 정리하자면 논리적 사고란 화자 내지 필자가 어떤 문제에 대해서 어떤 주장을 하고 있는지 파악하는 일에서 시작된다. 문제와 주장을 파악하는 것은 어려운 일은 아니다. 물론 매우 추상적이고 난해한 말이나 글의 경우에는 문제와 주장을 가려내는 일조차도 매우 어려울 수 있다. 요컨대 독서력 내지 독해력이 중요한 관건이 된다. 글을 대할 때는 늘 문제와 주장을 잡아내려는 태도를 가지고 읽어야 한다. 그러므로 항상 다음과 같은 질문을 염두에 두면서 글을 읽자.




질문1: 이 글이 문제삼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질문2: 이 글이 주장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경우에 따라서 글의 문제와 주장은 글 안에 그대로 담겨 있어서 밑줄 긋는 것으로 문제파악, 주장파악이 해결될 수도 있지만 때에 따라서는 글을 읽고 자신의 문장으로 요약해내지 않으면 안 되는 경우도 있다. 이 경우에 글의 문제는 물론 의문문으로 표현될 것이다. 글을 읽으면서 글의 요점을 정리해내는 훈련이야말로 논리적 사고를 위해서 가장 중요하다. 그러면 몇 가지 예를 가지고 생각해 보자.




다음은 감옥에 갇혀 있는 소크라테스에게 크리톤이라는 친구가 한 말이다. 이 글에서 크리톤이 문제로 삼고 있는 것은 무엇이며 크리톤이 주장하는 바는 무엇인가 한 문장으로 요약해 보자.




크리톤: ···그러나 이보게 소크라테스, 자네가 내 충고를 듣고 탈출하기에 아직도 너무 늦은 것은 아닐세. 자네의 죽음은 나에게는 이중의 재난이 될 걸세. 자네가 죽는다면 나는 다른 어느 곳에서도 찾아낼 수 없을 친구를 잃게 될 뿐만 아니라, 자네와 나를 잘 알지 못하는 수많은 사람들은 내가 자네를 위해서 돈을 쓰려고 마음만 먹었다면 자넬 틀림없이 구할 수 있었을 테니 내가 자넬 죽인 셈이라고 생각할게 틀림없지 않은가? 친구보다 돈을 더 귀하게 여긴다는 평판을 듣기보다 더 경멸 당할 일이 어디에 있겠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우리가 자넬 설득하려고 온갖 노력을 다했는데도 이곳을 떠나기를 거절한 것은 바로 자네 자신이었다는 것을 결코 믿으려고 하지 않을 것이네.




이 글에서 크리톤이 문제삼는 것은 무엇이며 주장하는 것은 무엇인가? 여기서 크리톤은 소크라테스에게 앉아서 죽음을 기다리지 말고 탈출할 것을 매우 간절하게 권하고 있다. 그러니 이 글의 문제는 <소크라테스는 탈옥해야 하는가?>하는 것이요, 이 글에서 크리톤의 주장은 <소크라테스는 탈옥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개의 논증적인 글에서 주장이란 문제에 대한 답이 된다는 점을 다시 확인해 두자.




17. 표리부동에 관한 우리 속담


서 정 수


한양대 국문과 교수, 국어정보학회 회장




표리 부동에 관한 속담을 살펴보기로 한다. 겉과 속이 다른 사람들을 보게 된다. 겉으로는 친절하게 굴면서도 속으로는 앙심을 품고 있는 사람, 겉으로는 도덕 군자인 양 행동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있다. 민족과 국가를 위한다고 떠들던 정치인들이 개인 재산 모으기에 급급하다가 사회적인 물의를 불러일으킨 적이 있었다. 학생들에게 올바르게 살아야 한다고 가르치는 교직자들이 학부모들로부터 부당한 돈을 받아서 법의 처벌을 받았던 일도 있었다. 이 모두가 겉과 속이 다른 인간들의 모습이다.


이런 사람들을 사악한 인간의 전형이라고 성토했었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우리들 자신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 우리도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겉과 속이 다른 면을 지니고 있는지도 모른다. 입으로는 시민 정신을 외치면서 선량한 우리의 이웃이 폭력배들에게 얻어맞는 모습을 그냥 지나친 적은 없는지, 우리들의 자식들에게는 질서를 지키라고 가르치면서 무단 횡단을 하거나 거리에 담배꽁초를 버린 적 은 없는지 반성해 볼 일이다. 표리 부동에 관한 아래의 속담들을 통해 나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갖자.




(14) 간에 가 붙고 염통에 가 붙다.


(15) 간에 붙었다 쓸개에 붙었다 한다.


(16) 물에 뜬 해파리 같다.


(17) 절에 가면 중인 체 촌에 가면 속인인 체 한다.


(18) 고양이 쥐 생각한다.


(19) 명태 한 마리 놓고 딴전 본다.


(20) 봇짐 내여 주며 앉으라 한다.


(21) 지팡이 내다 주며 묵어 가란다.


(22) 양 대가리 걸어놓고 말고기 판다.


(23) 속으로 호박씨 깐다.


(24) 포선 뒤에서 엿 먹는 것 같다.


(25) 비둘기는 하늘을 날아도 콩밭을 못 잊는다.


(26) 앞에서 꼬리치는 개가 뒤에서 발뒤꿈치 문다.


(27) 자비가 짚벙거지


(28) 사과가 되지 말고 토마토가 되라.




(14)-(17)의 속담은 자기에게 조금이라도 이익이 되면 체 면을 돌보지 애고 이편에 붙었다 저편에 붙었다 하는 간사한 행위를 나타내고 있다. (16)은 요리 피하고 조리 피하 는 몹시 간사스럽고 매끄러운 사람을 비웃어 이르는 말이 다. (18)-(21)의 예들은 겉으로는 남을 위하는 척하나 속마음과 행동은 그렇지 못함을 비꼬아 표현한 것들이다. 속으로는 떠나기를 바라면서 겉으로는 말리는 체 하는 경우나 속으로는 해치려는 앙큼한 생각을 하면서도 겉으로는 동정하는 척하는 경우 따위를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22)-(25)의 예는 마음이 음흉하여 앞에서는 아닌 체 하면 서도 뒤에 돌아가서는 제 하고 싶은 노릇이나 딴 짓을 한 다는 뜻이다. (27)은 겉으로는 자비를 베푸는 척하나 속은 없는 짚벙거지에 불과하다는 뜻으로 겉으로는 상냥하고 인정이 있는 척하지만 속은 전혀 딴 판인 경우를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28)은 사과처럼 안팎이 다르지 말고 토마토와 같이 겉과 속이 같아야 한다는 뜻으로 사람은 안팎이 같아야 한다는 것을 교훈으로 제시하고 있다. 지금의 우리들 자신이 사과와 같은 모습인지 토마토와 같은 모습인지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 보자.






18. 재미있는 논리 문제




▶ 주민이라곤 항상 참말만 하는 ‘기사’들과 항상 거짓말만 하는 ‘건달’들뿐인 섬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 섬의 어떤 주민도 자기가 건달이라는 주장을 할 수 없습니다. 기사는 참말만 하니까 자기가 기사라고 할 것이고 건달은 거짓말만 하니까 자기가 건달임을 솔직히 말하려 하지 않기 때문이지요. 인구조사원 존스가 기사-건달 섬에 조사하러 갔습니다. 이 섬에서는 여자들도 기사나 건달 중 한 가지로 불립니다.




 1. 존스가 어느 집 대문을 두드렸습니다. 남편 되는 이가 용건을 물었습니다. “인구조사원입니다. 당신네 부부에 관해 여쭤볼 것이 있는데요. 기사이신지, 건달이신지?” “우린 둘 다 건달이오!” 남편이 퉁명스런 대답과 함께 문을 쾅 닫아버렸습니다. 이들 부부는 각각 어떤 유형일까요?




 2. 다음 집에서 존스가 그 집 남편에게 물었습니다. “두 분 모두 건달이십니까?”


    남편이 말했습니다. “적어도 한 명은 그렇소.” 이들 부부의 유형은요?




 3. 다음 집에서는 수줍음을 많이 타는 남자가 조심스레 문을 열었습니다. 존스는 그 남자에게 그들 부부에 관하여 이것저것 물어보았지만, 그는 오로지 “제가 기사라면 제 아내도 기사지요.”라는 대답만 할뿐이었습니다. 존스는 “단정적으로 대답하지 않고서 그렇게 가정적으로 대답하면 어쩌란 말야!”라고 투덜거리며 “부부 유형 미상(未詳)”이라고 기재하려던 참이었는데, 문득 대학 시절에 배운 논리학이 떠올랐습니다. “아하! 그렇군.” 이들 부부의 유형은 어떻습니까?


19. 성역할주의(性役割主義)란 무엇인가


브리태니커 백과 사전 12권 147쪽에서 148쪽




생물학적인 성을 바탕으로 인간이 사회화의 결과로 형성된 성역할. 인간은 염색체와 생식 기관, 호르몬 등의 차이에 의해 남성 또는 여성으로 구분되는데 이를 생물학적 성(性)이라고 한다. 이러한 차이 때문에 사람들은 흔히 남자와 여자는 본래가 서로 다른 존재이므로, 심성이나 행동 그리고 사는 모습도 다른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인간의 심리나 행동은 생물학적 성과 어느 정도 관련은 있지만, 단지 생물학적인 성에 의해 완전히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사회에서는 문화적으로 성별에 따라 바람직하다고 규정된 일련의 성격 태도 선호 경향 행동 등을 규정하는데 이를 성역할이라고 한다. 대표적인 성역할로는 ‘남성다움’과 ‘여성다움’이 있다. 남성다움이란 정상적인 남성이라면 당연히 가져야 하는 태도나 행동 특성으로 기대되는 역할을 말한다. 예를 들면 독립적이고 탐구심이 강하며 합리적이고 성취 지향적이어야 한다는 것 등이다. 반면 여성에게 기대되는 여성다움은 얌전하고 순종적이며 남을 잘 배려하고 의존적이며 감상적인 특성 등을 내포한다.


인간은 태어나면서 자신의 성에 적합하다고 부여된 성역할을 배워가는데 이러한 과정을 ‘성역할 사회화’라 한다. 이러한 성역할 사회화는 가장 친밀한 부모나 양육자의 태도에서부터 넓게는 사회의 가치 체계에 이르기까지 주변 환경과 상호작용하면서 진행된다. 우선 가정에서 부모는 자녀의 성별에 따라 적합한 행동과 적합하지 못한 행동을 규정하여 가르치려 한다. 갓난아기 때부터 여자는 분홍색, 남자는 파랑색을 주로 입히고, 놀이를 하는 경우에도 남자아이에게는 신체적으로 더 과격한 운동을 시키는 등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부모가 하는 많은 행동들이 아기의 성별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커가면서 구별은 더욱 엄격해져서 어린이는 성별에 따라 해도 되는 것과 해서는 안 되는 것이 있음을 알게 된다. 또한 남자아이는 장래 성인이 되면 사회적인 성취를 얻어야 하는 것으로 당연히 기대되는 반면, 여자아이는 외모를 치장하고 소꿉장난이나 인형놀이 등을 하면서 얌전하고 귀여운 딸로 자라난다. 장래 직업을 갖는 것이 기대되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부모는 여자는 행복한 가정을 갖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마련이다.


학교 교육에서 역시 남성과 여성은 다른 내용의 사회화 과정을 경험한다. 교과 내용에서 남성이 여성보다 자주 등장하고 또한 남성은 직인으로 혹은 사회인으로서 역할이 강조되는 반면, 여성은 주로 주부의 역할로 나타남으로써 남성이 여성보다 더 중요하고 사회를 이끌어 가는 주체라는 인식을 심어준다. 공공연하지는 않지만 교사가 갖고 있는 가치관이나 태도도 학생의 행동이나 성취 동기, 진로 등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다. 아직도 중등 교육이 남녀를 분리하는 경우가 대부분인 경우가 대부분인 현실에서 남성과 여성에 각기 다른 덕목과 가치가 강조되고 있는 점 또한 성역할 사회화의 한 측면이다. 예를 들어 학교의 교육 이념을 대표하는 교훈에서 남학교의 경우 성실 근면 창조 강건 등 진취적이고 능동적이며 소위 ‘남성다움’과 관련이 있는 덕목을 강조하는 데 반해 여학교의 경우 아름다움 착함 사랑 다정함 관용 정숙 등과 같은 전통적인 ‘아름다움’이 부덕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밖에 동료 집단이나 군대 직장 등의 조직은 물론 신문 소설 텔레비전 광고 잡지 등의 대중매체도 성역할 사회화를 담당하는 주요 기제들이다. 실제로 종교 윤리 도덕 등과 정치 경제 법적인 모든 측면에서 남성과 여성의 역할 분리는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으며 이것이 다시 개인을 사회화시키고 있다.


남성다움과 여성다움을 강조하는 성역할은 전통 사회에서는 별로 문제가 되지 않았다. 오히려 남자는 남자답게 여자는 여자답게 키워야 한다는 가치관은 바람직하고 당연히 받아들여야 하는 문화적 규범이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에 들어와 사회과학자들은 전통적 성역할에 대해 회의를 갖고 비판하기 시작했다. 동성간에도 여러 가지 차이가 있고 남녀간에도 비슷한 점이 있는데 이를 무시하고 생물학적인 성에 따라 인간의 정서와 행동을 미리 규정하는 것은 인간의 삶을 제약하고 질을 떨어뜨리는 것이라고 보았다. 특히 여성의 역할로 규정된 특성은 여성으로 하여금 일생을 남성에게 의존하고 수동적인 존재로 머물도록 만든다는 점에서 더욱 문제가 된다. 엄격한 의미에서 전통적 성역할에 대한 규범은 결과적으로 인간이 완성된 주체로서 개발될 가능성을 배제하고 있다. 이러한 논의나 비판들은 성역할이 생물학적 성에 내재된 고유한 속성이 아님을 분명하게 드러내 주면서 인간의 자율성과 주체성을 보다 확대할 수 있는 대안 모색의 필요성을 제기한다.




20. 미래를 향해 열린 어린이의 삶 - 양성성


정 진 경


서강대학교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한 후 미국 일리노이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충북대 심리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심리학 및 여성학 관계 논문이 다수 있다. <또하나의 문화 1호(평민사)에서>




양성적인 기질을 가진 어린이들은 그렇지 않은 어린이들에 비해 지능과 창의력이 높고 적응도도 높다는 연구 결과가 이미 나와 있다. 이들이 자라면 다양한 상황에 유연하게 대처하고 적응할 수 있으며, 자신감이 있고, 사회적 압력에 복종하는 경향이 덜하며, 다른 사람들에게 섬세하게 마음을 써줄 줄 아는 양성적 어른이 될 것이다. 그리고 이들이 열어 갈 미래는 좀더 인간적인 것이리라.




머리말


‘바람직한 인간상이란 과연 어떤 것인가?’ 라는 문제는 역사를 통해 수많은 사람들이 물어 왔고 학문, 예술, 종교 등 모든 분야에 걸쳐 명쾌한 답을 제공하려고 많은 사람들이 애써 왔다. 인간주의 심리학 발달의 기수인 매슬로우는 현대의 바람지간 인간상의 근간을 자신의 잠재력을 실현하고 자기 충족감을 느끼는 단계에 이른 것, 즉 자아 실현을 이루는 것으로 보고 있다. 자아 실현을 위해서는 기본적인 욕구들, 즉 생리적 욕구, 사랑을 주고받으려는 욕구, 남으로부터 존중받으려는 욕구, 현상을 탐구하고 이해하려는 욕구 등이 최소한 충족되어야 하는데, 이것은 개인이 처한 사회 문화적 환경 안에서 이루어진다. 즉 한 개인에게 자아 실현이 얼마나 가능하냐 하는 문제는 그가 살고 있는 환경이 얼마나 이러한 기본적 욕구를 충족시켜 줄 수 있는 방식으로 이루어져 있는가에 달려 있다.


어떤 사회 문화적인 환경 안에도 자아 실현에 장벽이 되는 요인들은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도 수많은 문제 요인들을 안고 있으며, 그 중에서도 모든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면서 그 막대한 영향에 비해 너무도 그 양상의 전모가 드러나지 않고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남성과 여성에 대한 편견 그리고 그에 근거한 차별 대우라고 할 수 있다. 이 오래되고 만연된 편견은 사람들의 생각 속에 고정관념이 되어 자리잡고 있으면서 수많은 남성과 여성의 삶을 제악하고 자아 실현을 가로막고 있는 것이다.


최근에 이르러 이 장벽을 무너뜨리고 모든 사람들이 좀더 자유롭게 살 수 있게 하기 위한 노력이 여러 방면에서 이루어지고 있는데, 이러한 노력의 하나로 심리학에서 창출해 낸 것이 양성성(兩性性)이라는 새로운 개념이다.




양성성에 대하여


지금까지 모든 여성은 ‘여성답고’, 모든 남성은 ‘남성다운’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해 왔던 고정관념과는 달리, ‘양성성’에서 제시하고자 하는 의미는 모든 인간이 각자의 고유한 특성에 따라 지금까지 사회에서 여성적이라고 규정지어 왔던 바람직한 특성과 남성적이라고 규정지어 왔던 바람직한 특성을 동시에 지닐 수 있다는 것에 있다.


생리적으로 보면, 남녀는 모두 남성 호르몬과 여성 호르몬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남녀에 따라 그리고 개인에 따라 이 두 호르몬 사이의 균형이 달리 이루어지고 있을 뿐이다.


심리적으로도 이러한 남성성과 여성성이 한 개인 내부에 공존해 있다. 한편 문명론에서도 이 양자간의 병행이 강조되어 왔는데, 플라톤은 그의 「향연」에서 반은 여자고 반은 남자인 존재를 묘사하였고, 콜리지도 위대한 정신은 남성적 특징과 여성적 특징을 혼합한 양성적 정신이라고 하였다. 이 이외에도 양성적인 인간 정신에 대한 찬양은 고대로부터 시작하여 현대로 이어지면서, 영국의 버지니아 울프, 우리의 박경리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문학 작품에서도 보여지고 있다.


심리학에서는 1970년대에 산드라 벰이 양성성에 대한 연구를 획기적으로 발전시켜 많은 연구자들의 주의를 집중시켰다. 전통적 심리학에서는 남성적인 남성, 여성적인 여성, 성격과 성별이 뒤바뀐 이상심리자(즉 남성적 여성과 여성적 남성)로 사람을 나누어 왔는데, 이러한 구별법의 문제점을 많은 사람들이 느끼고 지적하여 오다가, 벰을 비롯한 진보적 심리학자들이 양성성이라는 개념으로 이 문제를 풀어 낸 것이다. 이 새로운 이론을 밝혀 내고 있는 심리학자들은 한 개인이 남성으로 태어났든, 여성으로 태어났든, 현재 우리 사회에서 여성적이라고 보는 성격과 남성적이라고 보는 성격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고 보고 있다.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은 자기 주장을 잘함과 동시에 양보심이 많고, 논리적임과 동시에 감정이 풍부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벰의 주요한 연구 업적 가운데 하나는 남성성과 여성성을 서로 상반되거나 모순되는 것으로 보는 일반적 관점에 대한 비판이다. 전통적으로 남성적 특성을 많이 가진 사람은 당연히 여성적 특성을 거의 가지고 있지 않고, 여성적 특성을 많이 가진 사람은 역시 당연히 남성적 특성을 거의 가지고 있지 않을 것이라고 전제하여 연구가 전개되어 왔다. 이에 반하여 벰은 이 두 가지 특성들이 한 사람 안에서 얼마든지 공존할 수 있으며, 그 둘 사이의 균형의 정도는 각 개인의 고유한 성격이 다양한 것과 마찬가지로 다양한 형태로 이루어지며 또 이루어질 수 있음을 밝혀 내었다.


양성성에 대한 심리학적 연구가 쏟아져 나오고 토론이 활발히 진행됨에 다라, 양성성에 대한 개념 규정이 더욱 명확해지고 있다. 초기에는 양성성이 우리가 일반적으로 바람직하다고 보는 남성적 특성(예를 들어, 용감하고 논리적이고 추진력이 있다는 등)과, 여성적 특성(예를 들어, 남을 잘 돌보아 주며, 감수성이 풍부하고 자애롭다는 등)이 혼합된 상태라고 생각하였으나, 이러한 이상형을 설정하는 것 자체가 새로운 고정 관념을 창출해 낸다는 지적과 함께 양성성의 속성은 달리 규정되고 있다. 즉 양성성을 양성적인 사람이 지니는 몇 가지 중요한 특징에 의해 규정하고 있는데, 그 특징이란 첫째, 다양한 반응 레퍼토리를 가지고 있는 것, 둘째, 상황의 요구에 따라 유연하게 반응하는 것, 셋째, 환경에 효과적으로 대처하는 것을 들고 있다.


구체적으로 보면, 남성적 특성 혹은 여성적 특성만 지니고 있는 사람에 비하여 남성적 특성과 여성적 특성을 모두 가지고 있는 사람은 훨씬 더 다양한 자극에 대하여 다양한 반응을 보일 수 있다. 이렇게 다양한 반응 레퍼토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다시 말하면, 그때 그때의 상황의 요구에 따라 적합한 반응을 보일 수 있다는 것이며, 이는 곧 사회적 환경에 더 유연하고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로 이러한 양성성은 정도 나름이지만 우리가 실제로 주위에서 흔히 접하고 있는 현상이다. 사람들은 어느 정도 여성적 특성과 남성적 특성을 함께 지니고 있으며, 어느 누구도 남성성, 혹은 여성성만을 지니고 있지는 않음을 우리는 약간만 주의 깊게 관찰해 보면 곧 알게 된다.




고정 관념이 형성되는 과정


사람을 구분하는 방법에는 나이에 따라 구분하는 방법, 사회 경제적 지위에 따라 구분하는 방법, 인종에 따라 구분하는 방법 등 수많은 방법이 있으나, 아마도 가장 보편적으로 흥미를 유발하는 방법이 성별에 다른 분류일 것이다.


양성성에 관한 연구는 성별에 따른 분류에 관한 그 사회의 인식 또는 해석 양식을 파악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여성과 남성의 차이에 대해서는 상식 수준에서 누구나 의견을 가지고 있다. 남녀는 각기 어떤 특성을 지녀야 하고, 어떤 역할을 해내야 한다는 규범적인 생각으로부터 기존 모델에 맞지 않는 행위에 따르는 비난에 이르기까지 남녀를 구분해서 언급하는 것을 보거나 듣지 않고 넘어가는 날이 거의 하루도 없을 정도로 우리는 성이라는 사실을 의식하고 살고 있다.


이렇게 지극히 성차별적인 사회 안에서 태어나는 순간부터 사람은 성별에 따라 다른 대우를 받게 된다. 갓난아기 때 여자면 분홍색, 남자면 파란색을 주로 입히는 것으로부터 시작하여, 갓난아기를 안고 소곤대고 어르는 것이 여자 아기인 경우 더 빈번하고, 데리고 놀 때에는 남자 아기인 경우 신체적으로 더 과격한 운동을 시킨다는 것 등, 생각 없이 그냥 하는 부모의 무수한 행동이 실제로 아기의 성별에 따라 해도 되는 행동과 하면 안 되는 행동이 있음을 알게 된다. 남자 어린이의 경우, 부모는 로봇이나 트럭을 사다 주고 그것을 가지고 놀면 만족해한다. 그러나 그 어린이에게 인형을 사다 주는 부모는 거의 없다. 혹시나 누나의 인형을 가지고 놀려고 하면, 부모는 “사내아이가 무슨 인형놀이냐, 계집애같이.”하고 꾸짖거나, 내버려두더라도 최소한 이를 장려하는 경우는 드물다. 반면에 여자 어린이는 인형을 가지고 놀면 칭찬을 받지만, 혹시 골목에 나가 동네 꼬마애들하고 어울려 공이라도 차다가 넘어져서 집에 오면 위로 대신 “계집애가 사내애들하고 어울려 공이나 차고 다니니까 그렇지.”하고 꾸중듣는 경우까지도 있는 것이 일반적 현실이다. 어머니가 딸보다는 아들에게 공격적인 행동을 더 너그럽게 장려 또는 허용한다는 연구 결과가 사회 일반의 이러한 경향을 잘 드러내 주고 있다.


이렇게 어린이는 타고난 자연스러운 호기심으로 성별에 무관하게 다양한 새로운 행동을 탐색해 나가는 과정에서, 자신의 성별에 적절한 행동을 할 때 칭찬, 상, 또는 은근한 미소로 격려를 받는 반면, 부적절한 행동은 꾸중, 벌, 무관심 등으로 제지를 당함으로써, 자신의 풍성한 잠재력의 한 부분을 일찍이 잠재워 버리게 된다.


한편 어린이는 더욱 무의식적 차원에서 성역할 구분을 배우는데 이는 주로 모델의 선택과 관련되어 있다. 어린이는 사회적인 많은 행동을 자기를 돌보아 주고 가까이 있는 사람, 그리고 힘이 있다고 생각되는 사람을 모방함으로써 배우게 되는데, 여자 어린이는 주로 어머니를, 남자 어린이는 주로 아버지를 모방함으로써 그들의 고정화된 행동을 은연중 배우게 된다.


부모 이외에도 동기간, 친척, 이웃, 친구, 교사 등 주위의 역할 모델은 매우 많다. 거의 모든 어린이는 주변의 사람들로부터 성역할을 습득하게 되고, 그 외에 그림책, 동화, 교과서를 비롯하여 TV의 프로그램과 각종 광고를 통해서도 사회의 고정관념을 암암리에 주입 받게 된다.


어린이가 이러한 성역할과 성적인 고정관념을 사회화 과정 안에서, 특히 보상과 처벌, 그리고 일정한 역할 모델을 통하여 습득하면, 이는 곧 어린이의 자아 개념의 중요한 일부분을 형성하게 된다. 이 전제를 발전시킨 인지 이론에 따르면 일단 자아 개념이 형성되면 그 이후에는 외부로부터의 보상과 처벌에 관계 없이도 자아 개념에 부합하도록 행동함으로써 스스로 심리적 보상을 받게 되고 이것이 곧 초기에 형성된 고정관념을 유지 존속시키는 기제로 작용하게 된다.


이렇게 해서 우리 사회 안에서 대부분의 경우에, 어린이는 그가 가진 무한한 잠재력을 다 발휘할 기회를 갖지 못하고, 그의 성별에 따라 제한된 영역 안에서만 활동하고 그에 만족을 느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성역할과 성적 고정 관념을 받아들이는 정도에는 개인에 따라 차이가 있기는 하나 어느 누구도 이러한 사회의 전체적 경향성에서 크게 자유로울 수는 없다. 아래에서는 남녀 노소를 불문한 우리 모두의 삶에 차별적 고정 관념이 미치는 영향을 살펴보고, 인간이 잠재력을 얼마나 실현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성역할에 관한 어린 시절의 사회화 과정이 어떻게 변화되어야 하는가에 관한 대안을 제시해 보고자 한다.




성차이에 대한 연구


사람은 남자, 또는 여자로 태어나서 자신을 자기의 성별에 비추어 파악함으로써 성적 정체감을 갖게 된다. 자기에게 주어진 신체적 구조와 생물학적 현상을 인정하는 것은 중요하다. 남자가 만일 임신하기를 간절히 원한다거나, 여자가 자기의 몸매를 싫어하고 남자의 신체처럼 되기를 기를 쓰고 원한다면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여기서 성적 정체감과 성적 고정 관념을 혼돈하여서는 안 될 것이다. 양자의 차이점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여성만이 아기를 낳고 젖을 먹일 수 있다는 사실을 제외하고는 필연적으로 한 성만이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다. 또한 남자는 항상 용감해야 하고, 여자는 항상 얌전해야 한다는 것은 오랜 세월에 걸쳐 당연한 것처럼 인정되어 온 사실이었지만, 이 역시 합리성에 근거한 영원 불멸의 진리가 아니다.


남녀간에 차이가 크리라고 일반적으로 간주해 왔던 것들이 실제로 별 차이가 없음이 연구에 의하여 이미 분명히 밝혀지고 있다. 여성과 남성의 차이에 대한 심리학적 연구를 총정리한 매코비와 재클린은 여성이 언어 능력의 면에서 우세한 반면 남성은 시각, 공간 지각, 수리 능력 분야에서 우세하고 여성보다 좀더 공격적이라는 것에서만 남녀의 차이를 발견했을 뿐이다. 그러나 여기서의 차이도 통계적으로 본 남녀의 평균 사이의 차이를 말하는 것으로서, 모든 여성이 모든 남성보다 언어 능력이 우수하다는 식으로 해석하는 오류를 범해서는 안될 것이다.


또한 이 연구는 주로 미국에서 발견된 결과들을 모아 해석한 것으로서, 다른 모든 문화권에서도 같은 차이가 역시 발견되리라고 기대하는 것도 무리이다. 비교 문화 연구에서는 더욱이나 모성적 남성, 공격적 여성의 집단이 발견되고 있고, 공간 지각 면에서도 남녀가 같은 능력을 보이는 사회가 있음이 최근 연구에서 밝혀지고 있다.




고정 관념이 우리의 삶에 미치는 영향


이와 같이 성역할과 성적 고정 관념이 인위적이며 필연성에 근거하고 있지 않다는 점을 인식함과 동시에, 우리는 이러한 것들이 우리의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이 자아를 실현해 나가는 데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에 관해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앞서 언급한 대로 양성의 행동을 뚜렷이 구별짓는 성역할 규범은 일찍부터 남녀 어린이 모두의 발달과 가능성을 제한하고, 나아가서 성인으로서 누릴 수 있는 삶의 영역을 제한한다. 변화하는 환경에 건강하게 적응하고 자유로운 삶을 누리려면 각자가 자신의 성별에 매임이 없이 스스로의 특성에 따라 자연스럽게 자신이 원하는 바를 추구할 수 있어야 한다.


성별에 따른 구분이 삶의 영역을 제한하고 그 본질까지도 왜곡시킨 양상을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남자아이는 누구를 막론하고 어려서부터 활발하고 경쟁적이며 앞장서서 지도력을 보이고 운다든지 하는 일이 없이 강해서, 나중에 커서 사회적으로 성공할 가능성을 보여야만 부모는 안심한다. 그러나 모든 남자아이가 다 이런 성격을 타고나는 것이 아니며 또 그렇게 길러질 수도 없음은 자명한 사실이다. 여기서 ‘그렇지만 내 아이만은’이라는 생각으로 아이를 닦달한다면 그것은 그가 가진 자연스러운 자질마저 억압하는 결과를 낳을 뿐이다.


슬프거나 속상한 일이 있어서 울음이 터져 나오려는 것을 억지로 참고, 눈물을 막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 작은 아이가 있다면, 그것이 과연 바람직하고 건강한 모습일지도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자신의 감정을 자연스럽게 인정하고 표현하는 방식을 익히지 못한 채 어느덧 장성하여 성공에 대한 압박감에 항상 가위눌리고 책임과 의무로부터 오는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우리 사회의 많은 성인 남자의 모습은 우는 것이 허용되지 않는 억울한 이 아이의 모습과 무관하지 않다.




미래 사회와 양성적 인간


사회의 변화는 점점 가속화되고 있다. 우리의 할머니 할아버지께서 그분들의 일생을 통하여 겪은 급격한 변화는 그분들의 할머니 할아버지께서 수십 년 전에 겪은 변화와는 비교도 안 되게 큰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일생을 통하여 겪을 변화에 비교하면 그분들이 겪은 변화가 미미한 것이 되고 말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후대에서는 얼마만큼의 변화를 겪게 될 것인가는 이미 우리의 제한된 상상력을 초월한 것일지도 모른다. 요즘엔 3초마다 세대가 다르다는 우스갯소리가 의미심장하게 들리는 현실이다.


그러면 어린이들이 커서 살아가게 될 사회는 어떤 것이 될 것인가? 우선 생산 체계가 거의 완전히 자동화도어서 신체적 힘에 의한 노동이 필요 없게 될 것이고, 또한 여가 시간이 늘어나서 창의적 생활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이 늘어날 것이라고 밀 연구가 토플러는 낙관적 논의를 펴고 있다. 그의 낙관론에는 쉽사리 동의할 수 없더라도 생활 양식과 가족 구조에 급격한 변화가 올 것은 분명하고, 문화가 지향하는 가치관에도 변화가 올 것이다. 이런 모든 변화가 우리의 노력 없이 오리라고 기대할 수는 없고, 우리의 바로 다음 세대에서 모두 일어나리라고 장담할 수도 없다 그러나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급격한 변동이 성큼성큼 일어나리라는 것이 많은 전문가들의 예측이다.


이런 사회가 도래했을 때, 지금도 유지되고 있는 전통적 성역할 규범은 골동품이 되고 말 것이다. 남녀 모두가 직장의 컴퓨터를 집에 연결해서 집에서 일하게 되고, 시장의 컴퓨터를 집에 연결해서 집에서 주문을 하며, 어린이를 같이 돌보고 키우게 됨으로써 ‘남자는 일터에, 여자는 가정에’라는 오랜 공식은 더 이상 성립되지 않게 될 것이다. 성차별 의식, 권위주의, 형식주의 등은 점차 자취를 감추고, 고정 관념이 없이 열린 마음으로 다양한 상황에 고루 적응할 수 있는 사람이 바람직한 모습으로 부각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방향으로의 변화를 가능하게 할 일꾼들은 누구일까?


지난 봄, 전국 컴퓨터 경진 대회의 국민 학교 부에서 최우수상을 받은 어린이에 대한 기사가 신문에 났던 적이 있다. 5학년에 다니고 있는 이 남자 어린이는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좋아하고, 축구도 좋아하고, 자기가 빵을 만들어서 누나와 동생과 같이 나누어 먹는 것도 좋아하고, 수를 놓으면 정신 집중이 잘 되기 때문에 시장에서 수틀과 수실을 사다가 수를 놓는 것도 좋아한다는 내용이었다. 열린 마음으로 가능성을 열어 갈 때, 좋아하는 것도 다양해지고, 잘하는 것도 많아지고, 친구와도 잘 어울리고, 생활이 즐거워지는 것이다.


이 어린이는 바로 우리가 그 그렇게 기대하는 최고의 적응 수준과 자아 실현 수준을 그대로 나타내 주고 있는, 참으로 흐뭇하고 믿음직스런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는 양성적 어린이며 미래의 주인공이다.


양성적인 기질을 가진 어린이들은 그렇지 않은 어린이들에 비해 지능과 창의력이 높고 적응력도 높다는 연구 결과가 이미 나와 있다. 이들이 자라면 다양한 상황에 유연하게 대처하고 적응할 수 있으며, 자신감이 있고, 사회적 압력에 복종하는 경향이 덜하며, 다른 사람들에게 섬세하게 마음을 써줄 줄 아는 양성적 어른이 될 것이다. 그리고 이들이 열어 갈 미래는 좀더 인간적인 것이리라.


21. 여성, 평등한 세상 열어갈 ‘변혁의 모태’




21세기의 여성 운동은 약육강식, 착취, 폭력, 차별 등을 악화시키는 자유 시장 경제 체제를 대신하는 다민족 공생과 남녀의 공정한 관계에 기초한 대안적인 사회를 어떻게 창조할 것이냐는 과제를 안고 있다. 그런 목표를 향한 일상의 과정이 중요하며 남녀 모두 일상 생활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 21세기는 새로운 천년기의 시작 ◁


앞으로 5년이 지나면 새로운 천년기가 시작된다. 그 막이 올라가는 21세기는 아시아의 세기라고도 일컬어진다. 일본이 먼저 경제대국을 구축했고 이어 한국, 대만 등 신흥 공업국들이 경제 성장을 이뤘으며 나아가 타이,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시아 여러 나라가 경제발전을 가속화하고 있다.


또한 인도 등 남아시아가 그 뒤를 쫓고 있으며 사회주의경제의 붕괴 결과 중국, 몽골, 인도차이나 3국이 개방경제로 이행해 급속한 경제발전을 시작했다. 세계가 아시아의 고도성장에 주목하고 이를 5백년간 세계를 지배해온 서구문명에 대한 도전이라고까지 받아들이고 있다.


그러나 아시아의 거대한 인구에 힘입은 경제발전의 도전만으로는, 달리 말하면 사상적으로 서구의 근대를 초월하고 새로운 가치관에 기초해 지구문명을 쌓아올리지 않는 한 인류의 위기를 극복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지금의 경제발전이 약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의 인권을 희생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서구에 대한 저항의 또 다른 한 줄기는 이슬람권의 전통회귀, 근본주의다. 그러나 전통이나 종교가 여성차별을 정당화하는 것이어서는 곤란하며 문화라는 이름 아래 자행되는 폭력을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여성들은 절규하고 있다.


결국 경제개발 우선주의에도, 근본주의에도 저항하면서 전혀 새로운 사회를 모색하고 있는 쪽은 여성들이며 새로운 사상, 운동으로서의 페미니즘이다.




▷ ‘빈곤의 여성화’와 남북문제◁


95년 아시아에서 처음 열린 베이징 제4회 세계여성회의에 모인 4만 명이 넘는 정부 및 비정부기구(NGO)의 여성들이 가장 큰 문제로 삼은 것은 지구화한 세계경제가 가져오는 ‘빈곤의 여성화’였다.


정부회의가 채택한 행동강령은 12개의 중대관심분야를 열거하고 그 해결을 위해 각국 정부와 국제기관이 2000년까지 취해야 할 전략을 기술하고 있는데 빈곤이 맨 첫 순위다.


이는 57억의 지구인구 가운데 10억 이상이 절대빈곤­식료, 식수, 주거, 초등교육, 보건 등 인간의 기본적인 생존조건이 갖춰지지 않은 상황­에 시달리고 있으며 유엔개발계획에 따르면 절대빈곤층의 7할 이상이 여성이기 때문이다.


여성이 차별 받고 있기 때문에 여성이 받는 빈곤의 중압은 더욱 무겁다. 빈곤의 구조적 원인은 사회주의 계획경제가 파탄하고 지구화한 자유시장경제 아래서 북쪽 공업선진국의 남쪽 개도국에 대한 착취와 수탈이 한층 더 강화돼 ‘신식민주의’라고 불릴 정도로 남북격차가 확대되고 있는 데 있다.


여성들이 고발하고 있는 북쪽의 경제적 지배틀은 개도국의 늘어난 채무를 변제시키기 위해 세계은행 등이 강제하고 있는 구조조정정책(SAP), 빈곤층의 강제퇴거를 강요하는 정부개발원조(ODA), 여성노동자의 인권침해와 환경파괴를 초래하는 다국적기업의 해외진출, 개도국의 농민을 더욱 궁핍화시키는 무역자유화 등이다.


사실 개도국의 빈곤은 선진공업국의 대량생산․대량소비 생활방식에 의해 야기되고 있다. 따라서 남쪽의 여성들이 빈곤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도록 여성의 자립과 위상강화를 지원할 필요가 있지만 우선은 선진공업국의 여성들이 자신들의 생활방식을 고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빈곤의 여성화는 이런 남북문제와 남녀평등, 말하자면 젠더의 문제 (사회적으로 만들어진 성차별로 가부장제 아래 남성우위․여성열위의 관계)가 겹쳐져 있으므로 여성운동은 이 양면에서 대결하지 않으면 안 된다.




▷여성의 인권, 여성에 대한 폭력◁


베이징대회의 또 한가지 초점은 여성의 인권, 특히 여성에 대한 폭력, 젠더 폭력의 문제였다. 이것도 여성해방에서 경제나 정치의 문제에 뒤지지 않는 결정적으로 중요한 문제이지만, 유엔 ‘여성의 10년’(76~85년) 설정이래 여성들이 스스로 목소리를 낼 때까지 경시돼왔다.


국제적인 여성 운동의 결과 93년의 빈 세계인권대회에서 여성의 인권이 처음으로 명기되고 여성에 대한 폭력이 여성 인권침해의 핵으로 간주됐다. 인권에 젠더의 시점을 도입한 국제문서가 처음으로 채택된 것이다. 베이징회의의 행동강령도 중대분야의 4번째가 여성에 대한 폭력이며 그 방지를 위한 전략으로서 3개 핵심을 들고 있다.


하나는 인신 매매 대책인데 아시아의 경우 여성과 아동의 인신매매가 경제성장의 진전에 따라 축소되기는커녕 오히려 확대되고 있다. 경제 발전이 눈부신 타이는 인신매매가 가장 심각한 나라의 하나로 북부 국경지대 산악민족의 소녀들과 빚에 시달리는 농민의 딸이 매춘업소에 팔려 연간 70%가 에이즈 바이러스에 감염된다고 한다. 더구나 주변의 미얀마에서 4, 5만 명이 넘는 소녀들이, 또한 라오스, 캄보디아, 중국 윈난성에서 다수의 소녀들이 타이로 인신매매돼 성착취를 당하고 있다.


인신매매는 피해자가 연소화하고, 타이에서 다시 일본이나 대만 또는 서유럽으로까지 송출되는 등 국제화하고 있다. 남아시아에서는 네팔 소녀들 수만 명 이상이 인도의 매춘업소에 팔리고 방글라데시 여성들은 파키스탄으로 내쫓기고 있다. 지구화한 자유시장경제는 모든 것을 이윤추구를 위해 상품화하고 다국적 성산업은 여성의 성을 탐욕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 또한 국제관광산업의 확대도 섹스 관광을 동반하고 있다.


‘이민의 여성화’라고 일컬어지듯 여성의 국제이동이 급증하고 있다. 아시아에서 유수의 노동력수출국인 필리핀의 여성들은 중국 등과 홍콩, 싱가포르, 한국 등에 가사노동자로, 일본과 서유럽 등에는 연예인으로서 수십 만 명 이상이 고국을 떠나 돈벌이를 하고 있다. 인도네시아의 여성들은 같은 이슬람인 중근동, 말레이시아 등지에 일하러 간다. 여성들은 이곳에서 성폭력과 경제적인 착취를 당하고 있다. 일본의 농촌에는 필리핀과 타이, 중국으로부터 신부가 와 농업후계자를 낳아 기르며 노인들을 돌보고 농업과 공장노동에서도 땀을 흘리고 있다.


‘생산은 남성, 재생산은 여성’이라는 근대사회가 낳은 젠더분업의 타파가 유엔 ‘여성의 10년’ 이래의 과제이다. 인간의 생존에 불가결한 재생산노동이 무보수로 이뤄져온 데 대해 행동강령은 무상노동을 평가하고 있다. 그같이 낮게 평가된 재생산노동을 남쪽의 여성들 은 해외에서까지 부담하고 있으므로 여성들은 모든 면에서 지구화한 체제 안에 편성돼 있는 것이다.




▷무력 분쟁과 평화◁


여성에 대한 폭력의 사례로서 무력분쟁도 부각되고 있다. 동서냉전의 종결로 초강대국의 핵전쟁 위협은 줄었지만 그 대신 옛 유고슬라비아 등 세계 각지의 지역분쟁이나 내전이 여성들의 생활을 위협하고 성폭력을 야기하고 있다.


행동 강령은 무력 분쟁 때의 강간이 전쟁 범죄라고 엄격한 관점을 취했다. 그리고 위안부 문제에 대해 군대 성노예 제도의 사실 규명, 가해자 처벌, 피해자에 대한 보상을 명기하고 있다. 일본군의 위안부에 대한 보상을 일본 정부는 거부하고 있지만 아시아 각국의 피해 여성들에 대한 보상문제는 예컨대 21세기로 미뤄진다고 해도 결코 책임회피가 용납될 수 없다.


<한겨레신문, 96. 1. 9>


22. 여성 관련 신문 기사 모음


외국 군사 기지의 여성에 대한 폭력의 문제도 잊어서는 안 된다. 베이징회의가 한창일 때 오키나와에서 여자 국교생이 3명의 미군에게 성폭행 당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전쟁에서 20만 명, 네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이 죽었던 오키나와 사람들의 평화에 대한 염원은 강하며 베이징회의에 참가했던 오키나와 여성들은 군대의 폭력을 폭로하고 미군 기지를 없애자고 호소했다. ‘기지가 없는 평화로운 섬을 돌려 달라’는 오키나와의 절규는 똑같이 외국 군대의 장기 주둔으로 피해를 입고 있는 각국 여성들의 기지철거 국제 연대 운동에 대한 호소이기도 하다.


학살 정권에 의해 수백 만 명이 희생당하고 여성과 아동만의 나라가 된 캄보디아에서 선거감시를 위해 들어간 유엔 평화유지활동 다국적군이 매춘을 확대해 에이즈를 만연시키고 성폭력을 범했다. 유린당한 캄보디아 여성들의 인권을 회복시키기 위한 연대활동도 아시아 여성운동의 과제다.




▷환경 파괴와의 투쟁◁


자유시장경제의 지구화는 지구환경의 파괴로 돌진하고 있다. 경쟁과 효율의 원리에 따라 다국적기업의 전지구적 활동이 열대 우림 파괴, 대기와 물의 오염 등 갖가지 환경파괴를 가져오고 자원을 수탈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60년대부터 고도경제성장의 그늘에서 심각한 산업공해가 일어났고 유기수은에 의한 미나마타병 등 공해병, 약해, 식품공해는 현 세대의 생명뿐만 아니라 다음 세대인 태아의 건강마저 파괴했다. 그런 공포에 남성보다도 민감한 여성들이 일본 전국에서 환경을 지키는 운동을 시작했다.


세계적으로 보아도 보팔이나 체르노빌 등의 재해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행동한 것은 여성이었다. 92년의 리오 환경정상회담이 채택한 의제21에서도, 베이징의 행동강령에서도 환경보호 담당자로서 여성의 역할이 중시되고 있다.


선진국의 과잉 개발과 개도국의 저개발이라는 남북의 불평등과 환경파괴를 가속화하는 잘못된 현대의 개발은 남성중심으로 추진돼온 개발이며 여성의 힘으로 그런 개발의 도식을 변혁시켜 지속 가능한 개발을 지향하지 않으면 안 된다. 바꿔 말하면 생태나 젠더는 서로 연결돼 있고 여성주의의 다양화 속에서 환경 여성주의의 사상이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인도의 활동적인 생태학자 반다나 시바와 함께 〈에코페미니즘〉이라는 책을 쓴 독일사회학자 마리아 미즈는 5백년 전부터 시작된 서구 지배, 근대산업문명은 식민지(남쪽)와 자연(숲)과 여성(무상노동) 의 착취수탈로 성립됐다고 지적했는데 서구문명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남북문제, 환경문제와 함께 젠더문제의 해결이 불가결하다.




▷대안적인 사회를◁


20세기를 되돌아보면 민족해방운동으로 남쪽의 나라들이60년대까지 정치적 독립을 획득했고 70년대에 환경보호운동이 세계적으로 확산됐으며 여성해방운동은 80년대에 아시아에서 큰 소용돌이를 일으켰다.


21세기의 여성 운동은 약육강식, 착취, 폭력, 차별 등을 악화시키는 자유시장경제체제를 대신하는 다민족 공생과 남녀의 공정한 관계에 기초한 대안적인 사회를 어떻게 창조할 것이냐는 과제를 안고 있다. 그런 목표를 향한 일상의 과정이 중요하며 남녀 모두 일상 생활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가정 속에서의 남녀 관계 재정립 및 직장의 여성차별 문제 해소, 노조와 각종 비정부기관에서의 여성지위 향상, 성폭력과 성의 상품화에 대한 투쟁, 교육․학문․매체의 젠더적 시각 교정, 정치의 민주화 등 남녀 모두 한사람 한사람이 그때 그때마다 할 수 있는 행동을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여성운동이 더욱 더 힘을 강화해 변혁을 위한 주도권을 잡아야 한다.


전쟁과 혁명과 좌절의 20세기 말을 남겨놓고 좀더 나은 미래를 창조하고자 싸우다가 넘어지고 희생한 무수한 남녀들을 생각하고 그 혼의 격려를 받으면서 여성운동을 강화해 개발의 아시아가 아닌 해방의 아시아, 그리하여 북과 남, 인간과 자연, 여와 남이 함께 살 수 있는 공정한 21세기를 만들어가야 한다.




마쓰이 야요리


◇ 언론인. 아시아여성자료센터대표.


◇ 1934년 생.


◇ 도쿄외국어대학 영미과 졸업. 미국 미네소타대, 프랑스 파리대 수학


◇ 아사히신문 싱가포르 특파원, 사회부 편집위원


◇ 요코하마국립대 객원교수


◇ 저서


〈현대를 다시 묻는 여행­해외의 시민운동〉


〈여성해방이란 무엇인가〉


〈여자들의 아시아〉


〈시민과 원조­지금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남자는 봉인가?


동아일보, 96. 2. 13




계산댄 남녀 평등 실종… 「빈대 기질」 버려야




미팅을 하건 친구를 만나건 왜 계산서는 으레 남자 차지가 되는가. 아직도 젊은 여성들 대부분은 데이트 비용을 남성에게 부담시키는 걸 당연하다고 여긴다. 데이트하며 사회문제를 논할 때는 페미니즘이 어떻고 남녀평등이 어떻고 하면서 논리를 내세우다가도 막상 자리가 끝나 계산서가 나올 때면 언제 그랬더냐는듯 『계산은 당연히 남자가…』 『여자가 어떻게 계산을…』 하면서 태도가 싹 달라진다.


자리에 앉아서는 열변을 토하던 남녀평등이 일어서면서는 금방 여성 특권으로 바뀌고 만 것인지 묻고 싶다. 이같은 「빈대 기질」은 결국 여성이 스스로를 남성보다 열등한 존재로 자인하는 꼴이 되지 않을는지.


물론 경제적으로 남성이 더 여유 있을 경우가 많다. 또 과거부터 이어져온 우리 사회의 뿌리깊은 남녀차별 의식이 아직 그 「위력」을 지니고 있기도 하다. 남성들 특유의 「기사도 콤플렉스」 또는 「사나이 콤플렉스」가 『여자에게 어찌 계산서를…』 하는 심리를 부추기는 면도 있다. 더불어 좋은 왕자를 만남으로써 신분상승을 꾀하려는 여성들의 「신데렐라 콤플렉스」까지 곁들여져 만들어낸 잘못된 관행이 아닌가 한다.


남녀의 차이는 역할의 차이다. 지위의 차이가 아니다. 진정한 남녀평등은 책임을 나눠지는 데서도 찾아야 한다. 생활 속에 밴 이같은 성구별 의식을 고쳐나가자.   〈나우누리ID․만영사모․서울왕자〉


여성 분담 막는 남성 우월 의식이 더 문제


여성들 가운데는 남성이 데이트 비용 모두를 부담해주길 바라는 부류가 있다고 인정한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개인의 인격과 세계관 문제로 봐야 한다. 실제로 동등한 비용부담을 당당하게 주장하고 또 실천하는 여성들도 많기 때문이다. 따라서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 사안을 마치 모든 여성들의 관행인양 일반화하며 『남자는 봉인가』고 불만 섞인 주장을 펴는 건 편견에 불과하다.


오히려 여성들이 비용을 부담하겠다면 이를 무시하는 남성들도 상당수다. 이같은 몸에 밴 남성우월의식이 되레 문제다. 실제로 여성이 계산이라도 할라치면 남성들은 『남자인 나를 무시하고…』 『여성에게 어떻게 계산서를, 남자가 쫀쫀하게』 등 마치 무안이라도 당한 듯 발끈한다. 그러고서 뒷전에서 불만을 토로한다면 당당하지 못하다. 여성들은 비용을 분담하고 싶어도 자칫 상대의 체면을 다치게 할까봐 이를 강하게 주장하지 못하는 셈이다.


수많은 세상사 가운데서도 잘못될 경우 가장 치사해지는 게 흔히들 돈 문제라고 한다. 따라서 돈 문제를 남녀 사이에 끌어들인다는 것 자체가 자칫 치사한 느낌을 주기 쉽다. 더구나 데이트 비용 부담은 두 사람 사이의 개인 문제지 남녀평등을 거론할 정도의 거창한 사회 문제는 아니다. 나눠 부담하는 게 남녀평등이라면 가장만이 버는 가정에는 남녀평등이 없단 말인가.


〈나우누리 ID․시종장․zce119〉




새생활 풍속 - 여자 같은 남자들


중앙일보, 94. 7. 7




첨단패션에 피부미용 신경/강함보다 부드러움 추구… 정신까지 여성화




지난달 중순께 서울 강남구 신사동 거리. 한 청년의 모습이 유난히 행인의 눈길을 끌었다. 티셔츠와 알록달록한 조끼, 반바지차림에 샌들을 신은 데다 목걸이․팔찌까지 두른 이 청년의 차림새는 패션의 첨병 같았다.


그러나 여기까지는 이 일대 다른 청년들과 그다지 다르지 않은 것.


그가 눈길을 끈 것은 머리에 두른 큰 두건 때문이었다. 최근 레게음악 의 열풍과 때를 맞춰 젊은이들 사이에 작은 두건을 두르고 다니는 것이 인기이나 이 청년은「아라비안 나이트」식의 큰 두건을 머리에 둘러 완전히 차별화된 패션을 연출했던 것. 여성들이 넥타이를 매고 남성양복과 같은 옷을 입고, 남자들이 목걸이․귀고리․팔찌 등 액세서리를 걸치고 화장을 하는 것은 새삼스런 이야기가 아니다. 유니섹스라는 말이 패션계를 휩쓸기 시작한 것은 이미 10년도 더 넘은 구시대 이야기. 그러나 10여 년 전의 유니섹스와 요즘의 유니섹스는 차이가 있다.


10여 년 전의 유니섹스는 여성이 바지 입기․넥타이 매기․술 마시기 등 남성 영역으로 인식되던 분야에 도전, 소위「여성의 남성화」가 주도한 것이었다. 당시에는 『저 여자가 남자냐 여자냐』가 논란거리였다. 이에 비해 최근에는 여성영역으로 치부되는 분야로의 남성 진출(? )이 두드러진다. 이에 따라 요즘에는 『저 남자가 여자냐 남자냐』가 논란거리.


『요즘은 남자 손님이 옆에서 파마를 해도 여자 손님들이 쳐다보지도 않아요.』서울신촌 J미용실 미용사 이미화 씨(27)는 미용실은 이제 여성 전용 장소가 아니라고 말한다.


지난해 서울 압구정동에 남성 전용 피부 미용실 「허즈뷰티」를 만든 윤영전 씨(40)는 『여성 피부 미용실에 애인이나 아내를 따라와 피부 관리를 요청하는 남자들이 크게 늘어나 남성 전용 피부 관리실의 필요성을 느끼게 됐다』고 말한다. 가끔 이곳에서 피부 관리를 받고 있다는 오 모씨(37․S상사부장)는 『여성들 틈에서 반쯤 벗고 얼굴 마사지를 하던 불편함을 벗어나 좋다』고 말한다.




유니섹스 바람은 보수적 남성들에게는 「강한 여성․약한 남성」과 비슷한 말쯤으로 인식되기도 한다.


실제「강한 여성․약한 남성」징후는 도처에서 보인다. 특히 나이가 어릴수록 여자어린이들이 극성(?)이라 많은 보수파들에게 앞날을 걱정스럽게 하고 있다.


송영희 교사(31․경기도 산본시 양정초등학교)는 『요즘 여자아이가 남자아이들을 무릎 꿇리고 벌을 주는가 하면, 때리거나 놀리는 일이 많아 남자 아이 보호에 비상』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남성들의 여성화(?)또는 외모 지향은 이제 돌이킬 수 없는 대세.


㈜태평양이 지난해 3백31명의 젊은 남성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 조사에 따르면 자신의 패션이미지로 젊음과 현대적인 면을 추구한다는 대답이 각각 33%, 32%로 남성다움(22%)을 앞섰다.


이러한 현상은 구미지역에서는 더욱 두드러진다. 최근 미국의 한 연구 조사 단체가 1천명의 남성을 대상으로 실시한 「이상적 남성상」에 대한 조사결과 3분의2이상이 정감 있고 부드러운 남성이라고 답했다는 것. 이는 오랫동안 미국의 이상형으로 꼽혔던 억세고 공격적이고 모험심 많은 남성상이 무너지고 있는 사례로 꼽힌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 연세대 윤진 교수(심리학과)는 『남성․여성의 인간화과정으로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설명한다.


본래 남성성․여성성이라는 것은 선천적인 특징이 아니고 사회화과정을 통해 만들어지는 것이므로 종래의 성적 역할과 특징이라는 것은 하나의 이데올로기라는 것이다. 또 앞으로의 사회는 육체적인 힘보다 지적인 힘이 지배하고, 지도자도 권위적이고 감정을 절제하는 사람이 아니라 정서적인 형으로 바뀌므로 남성의 소프트화는 걱정할 일이 아니라고 말한다.


<양선희 기자〉




달라지는 지구촌 - 변화하는 여성/미국편


중앙일보, 96. 2. 5




”성차별 악이다” 공감대 대세/여성 평균수입 20년 사이 5배나 늘어/제도적 뒷받침… 진출영역 점차 확대/위기 느낀 백인남성 저항도 만만찮아




미국에서 요즘 매스컴 등을 통해 흔히 듣는 말로 「슈퍼우먼 신드롬」이란 말이 있다. 가정과 직장을 병행하는 많은 여성들이 양쪽을 모두 완벽하게 해내려는 데서 오는 심리적 부담을 드러낸 말이다. 어느 날 갑자기 백마 탄 기사가 나타나기만을 기다린다는 「신데렐라 콤플렉스」는 여기에선 시대착오적이다.


『우리 여성중 상당수는 우리가 결혼하기를 원했던 「남자」가 될 것이다.』


60년대 여권운동의 기수중 한사람인 글로리아 스타이넘은 이렇게 외쳤다. 여기서 「남자」란 그간 남자들이 누려온 사회․경제적 지위를 말한다.




두 명 중 하나는 직장인


미국 여성들이 사회 각 분야에 얼마나 많이 진출해 있는가는 몇 가지 통계로도 잘 드러난다. 미국 노동부 통계에 따르면 미국여성 두 명 중 적어도 한 명(58%)은 직장에 다니고 있다. 활동영역도 다양하다. 변호사나 의사 다섯 명 중 한사람이 여성이고 건축가․목사의 경우도 열 명 중 한두 명은 여성이다. 소방수․건설인부 등 남성영역으로만 여겨지던 직종에도 여성들이 일한다.


고소득직종으로의 진출은 특히 두드러진다. 현재 미국 법대대학원생의 절반, 의대와 경영대학원생의 3분의1 이상이 여성이다.


『미국의 비교우위 중 하나는 여성인력을 활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92년 선거유세에서 당시 클린턴 대통령후보가 여성유권자들을 겨냥해 던진 이 말은 감언이설이 아니라 상당한 진실을 담고 있다.


기업이라고 이러한 변화에 예외가 아니다. 다양화 정책이라 해 많은 기업들이 여성들을 적극 고용하고 있는 만큼 남자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여성들을 사무실 곳곳에서 본다는 게 전혀 신기한 일이 아니다. 여성상사나 부하들과 관계가 원만치 못하면 간부자격 미달로 승진에 서 문제가 되는 풍토다.


컨설팅회사 매캔지의 샌프란시스코지사 경영컨설턴트인 30대의 제임스 매카시는 『여성들이 기업인력의 상당부분을 차지하는 데다 여성프로페셔널모임․취업여성옹호그룹 등으로 조직화해 있어 자칫 성차별이다 싶은 일이 생기면 기업들이 소송 등 사회적으로 많은 문제에 당면하게 된다』며 『때문에 많은 기업들이 성차별방지교육 등을 통해 이러한 현실에 앞장서 대응해 가고 있다』고 전한다.


워풀재단이 지난해 발간한 「여성, 새로운 양식조달자(Woman :The New Providers)」라는 조사보고서는 미국사회의 이같은 변화를 요약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오늘날 미국여성들은 가정을 돌보는 일에서 더 나아가 전통적으로 남성들의 일이 돼온 경제적 기둥으로서의 역할도 하고 있다. 응답여성의 45%가 정규직원으로,15%가 파트타임으로 일하고 있고 정규취업여성의 55%가 가계수입의 절반이상을 벌어들인다. 살림만 하는 전업주부는 17%에 불과하다.


『꼭 돈을 벌어야 해서가 아니어요. 직장에 나간다는 것이 생활이 됐기 때문이지요.』


팔로알토학교의 영어교사로, 대학생 자녀를 둔 40대 후반의 캐서린 파커는 주변 주부들이 다들 직장에 나가고 있어 그냥 집에 있으면 뭔가 결격사유가 있는 것으로 여기는 분위기라고 말한다.




“일 안 하면 오히려 이상”


매스미디어에서 그리는 여성상도 달라졌다. 자동차․컴퓨터․사무기기․ 전화 등의 광고가 모두 여성프로페셔널들의 활동적 삶을 모델로 하고 있다.


『70년대까지도 차 광고에 하늘거리는 가운을 입은 여성들을 등장시켰지요. 요새 그런 광고를 했다가는 완전 실패합니다.』


제너럴모터스의 고급차종 캐딜락의 마케팅담당 임원인 40대 여성 재닛 에코프는 이런 변화가 여성들의 경제력 향상에서 비롯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미국여성들의 경제력향상은 괄목할 만하다. 한 통계에 따르면 75년 이후 20년 간 미국여성들의 수입은 평균 5배 늘었다. 전체수입액으로는 한해 1조 달러(94년)가 넘는 규모다.


오늘날 판매되는 자동차의 80%가 여성고객들의 선택에 좌우되고 특히 고급차종의 40%를 여성고객들이 산다.


그러나 정치․경제․사회적으로 큰 세력을 형성하고 있는 미국 여성들의 오늘날 위상은 그냥 얻어진 것이 아니다. 지난 30년 간 활발히 전개돼온 여성들과 지식인층의 여권회복운동이 바탕이 됐다. 전후경제 부흥에 따른 여성 취업 붐과 60년대 시민운동의 일환으로 불붙은 여권운동은 72년 차별금지법을 제정하는 결실을 거둔다.


이어 실시된 여성 및 유색인 등 사회적 소수들에 대한 교육 및 취업 등에서의 기회확대조치(affirmative action)는 특히 여성들의 사회진출에 기폭제가 됐다.「역사적으로 부당한 대우를 받아온 소수계층에 기회를 넓혀준다」는 취지에서 존슨 대통령 시절 입안된 이 조치는 같은 자격이라면 여성을 우선 채용한다는 원칙을 공공부문 뿐 아니라 교육․기업현장에까지 일반화했다. 정부공사발주도 일정 비율 이상을 여성사업자에게 주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그러나 급격한 여성들의 사회진출에 대한 저항세력도 만만치 않다. 최근 확산되고 있는 미국의 보수화 기류는 「성난 백인남자들」로 상징되는 저항세력의 목소리를 대변한다.「여성평등은 그만하면 됐으니 여성들을 우대해온 기회확대조치를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커지는 보수화 목소리


이에 대한 여권옹호세력들의 대응도 팽팽하다. 스탠퍼드대의 여성학박사 과정 학생인 마리아 헤일(26)은 『여성의 교육․취업 등에서 상당 한 진전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나 사회구조적으로 여성의 지위는 아직 열악하다』며 『역사적으로 누적돼온 차별문제가 단 25년 사이에 해결됐다는 식의 시각은 문제를 진지하게 안 보기 때문』이라고 잘라 말한다.


이른바 「투명한 장벽」으로 불리는, 여성의 승진을 가로막는 구조적 문제들은 여성의 평등권을 위해 아직도 갈 길이 멀다는 옹호단체들의 주장을 뒷받침해왔다. 연방정부 산하 관련개선위원회 보고에 따르면 포천지 선정 미국 내 2천대기업 톱 매니저들의 97%가 여전히 백인남성들이다.


여권에 대한 인식의 차이가 이런저런 논란을 낳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성들의 사회적 자리매김이라는 대세는 미국에서 이미 굳어진 것 같다. 보수파든, 여권옹호세력이든 미국사회 일반에 확산된 「성차별은 악」이라는 공감대가 그것을 말해준다. 특히 지식인층의 의식적 노력은 귀감이 될만하다.


스탠퍼드대에는 「나이트 펠로십」이라는 언론인 연수프로그램이 있다. 미국 각지에서 일하는 기자들 중 매년 12명을 선발, 1년 간 재충전할 기회를 주는데 한번은 적격자들을 가리고 보니 여기자가 9명이나 됐다. 선발위원회에서 이것이 문제로 거론됐다. 여성이 너무 많다는 것이었다.


『남자들이 다수였을 때는 문제삼지 않았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것을 문제삼는다는 것이 성차별이다.』


선발위원들간에 이렇게 의견이 모아져 원래의 안이 그대로 통과되었다고 프로그램디렉터인 제임스 리서 교수는 전했다.




여성 차별 없는 경영 확산


한국일보, 96. 2. 12




증권시장 대리인․항해사․기관사까지 “성 파괴”/모양 갖추기 차원 아닌 잠재능력 적극적 활용




재계와 금융계에 「성 파괴 경영」이 확산되고 있다. 올 초 증권거래소에서는 40년 만에 처음으로 2명의 여성 시장대리인이 등장했다.


주인공은 삼성증권의 최옥정 씨(24)와 ING베어링증권의 서연준 씨(25). 거래소에 상주하면서 소속 증권사의 매수 매도 주문을 전달하고 시황 정보를 본사에 보고하는 시장 대리인이 여성에게 특별히 힘든 일은 아니지만 관행상 자격을 부여하지 않았다. 이웃 일본 역시 불허하고 있다.


현대 상선은 한국 해양대를 졸업한 여성 3명을 항해사와 기관사로 채용했다. 회사측은 선박에 여성을 승선시키지 않은 것이 관례였으나 최근 선원 가족을 선박에 동승시키면서 벽이 허물어졌다고 설명했다.


뿐만 아니다. 쌍용투자증권은 작년 12월 일선 지점에서 10여년 영업 경험이 있는 김광순 차장(36)을 업계 최초로 지점장에 임명했고, 동서증권도 이주리 씨(25)를 업계 첫 채권 브로커로 등용시켰다. 이 씨의 한달 거래 실적은 2,000억원으로 동료 직원에 비해 뒤지지 않았다. 국민은행은 이진호 씨(43)를 사내 첫 출장소장에 발탁했다. 펀드 매니저와 증시 분석가로 보이지 않게 활동하는 여성의 수도 늘고 있다.


이처럼 재계와 금융권이 벽을 허물고 있는 것은 「모양 갖추기」 차원이 아니라 능력 있는 여성을 활용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여성들이 경제활동의 주체로 급부상, 나 몰라라 할 수는 없는 실정에서 이들을 무한경쟁시대의 돌파구로 삼아 보자는 것이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작년 『상품의 구매권을 여성들이 갖고 있는데 우리의 기업활동은 지나치게 남성위주로 돼 있다』고 지적했었다.


여성의 잠재 능력에 눈을 돌리기 시작한 것은 93년부터. 가전 자동차 건설 광고업종에서 여성 고객들이 요구하는 제품을 개발하고 시장조사 마케팅전개 등을 위한 여성기획팀이 등장한 것이다. 삼성전자의 뉴터치팀, LG전자의 특A팀 삼성건설의 인테리어설계팀 제일기획의 최인아 팀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의 섬세함은 고객을 사로잡는 각종 히트작을 쏟아냈고, 판매량도 늘렸다. 서울은행은 93년 11월 서울 개포동출장소를 청원경찰을 제외하고는 여성직원들로만 운영, 좋은 반응을 얻었다.


이같은 성과에 힘입어 과감한 성차별철폐와 신인사제도가 도입됐다. 여기에는 정부가 남녀고용평등법에 따라 기업들에 남녀차별조항의 철폐를 강력히 요구한 것도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


현재 삼성 현대 LG 금호 기아 두산 미원 아남그룹 등은 여성전문직제 도입을 통한 여성공채사원의 확대, 영업직이나 해외장기근무 등 남성과 차별 없는 현장배치, 능력중심의 채용과 여성승진기회의 확대 등 남자들을 기죽게 하는 정책을 펴고 있다. 특히 여성의 잠재 능력을 개발, 경영에 활용하는 단계에서 채용 승진 급여 직종 등 제도상의 각종 차별을 없애는 방향으로 한 단계 진전되고 있는 것은 주목할만하다. 여성임원들이 늘었고 장기 해외주재원을 여성으로 파견한 곳도 생겼다.


『최초보다는 최고이고 싶다』는 여성들의 당당한 목소리가 이제는 경영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 「성 파괴 경영」이 우리 경제전반에 깊숙이 자리잡은 것이다.   <정희경 기자>


23. 남녀공학고 성적 산출 “통합하자” “분리하자”


조선일보, 96. 2. 26




남녀 분리 산출 땐 이과 여학생들 불리­통합 주장/올부터 과목별로 산정




… 이해 갈려/통합 방침 학교 남학생 부모들 “반대”­분리 주장/”학교장 재량”… 각 학교 운영위가 결정해야




「남녀 공학은 내신 성적을 남녀 따로 내야 하는가, 함께 내야 하는가.」 고입 선발 고사 합격선 성차별에 이어, 내신 성적 성차별 논쟁이 재연되고 있다.


이 문제가 불거져 나온 것은 올해부터 종합생활기록부 도입으로 전체석차 및 내신등급이 없어지고 대신 과목별로 석차백분율을 내도록 돼 있는데, 대부분의 남녀공학이 관행대로 남녀를 구분해 석차백분율을 내려고 하기 때문.


특히 97학년도 대학입시부터 본고사가 폐지되고 내신성적 반영 비율이 높아짐에 따라 학생과 학부모들이 이에 대해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다.


전과목 성적을 합한 전체석차뿐 아니라 과목별 석차 역시 남녀를 분리해 내느냐 아니냐에 따라 계열별로 큰 차이가 난다.


일반적으로 여학생 이과계열 지원자는 남자에 비해 적다. 여학생 이과반은 보통 1개 반, 많아야 2개 반이다. 또 여학생은 성적 우수자가 이과를 지원하는 경향이 있다. 반면 남학생의 경우 이과반은 4~5개 반 이상씩 되며, 성적 하위자도 상당수 포함돼 있다.


이에 따라 이과 여학생은 남학생보다 성적이 좋아도 전체석차 및 내신등급이 낮게 산정돼 왔다. 실제로 남녀공학인 서울 I고 박모양의 경우 이과계열 전교 6등을 했는데도 내신은 4등급을 받았다.


여학생 1반­남학생 6반인 이 학교에서 남학생과 같이 내신을 매겼다면 박양은 2등급을 받을 수 있었다.


인문계는 사정이 다르다. 문과계열 여학생들은 전반적으로 남학생에 비해 성적이 좋지 않기 때문에, 성적이 좋은 남학생들과 섞이면 여학생들의 석차는 자연히 떨어진다. 남녀를 분리해 성적을 매기는 것이 문과 여학생들에게는 오히려 유리한 셈이다.


따라서 계열에 따라 내신성적에 대한 남녀 학생 및 학부모들의 이해관계는 첨예하게 대립된다. 지난 16일 벌어진 서울 구정고 학부모의 교장실 농성도 이러한 입장차이에서 비롯됐다. 당초 구정고는 종합생활기록부가 도입되는 올해부터 남녀를 통합해 과목별 석차백분율을 낸다는 방침을 통고했다. 이에 이과반 남학생 학부모들이 강력히 항의했고, 학교는 이를 철회했다. 그러자 이번엔 이과반 여학생 학부모들이 교장실을 점거하고 농성을 벌인 것이다.


남녀공학이 이렇게 할 수 있는 근거는 「교과성적에 의한 석차산출은 학교장의 재량에 의해 남학생과 여학생을 별개의 계열로 인정할 수 있다」는 교육부 지침에 따른 것으로, 각 학교는 학칙에 이를 명시해 놓고 있다.


이는 반드시 남녀를 구분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지만, 내신성적제가 도입된 지난 80년부터 남녀공학은 남녀가 배우는 교과목이 다르다는 이유로 남녀별로 내신을 산정해 왔다. 남학생은 기술­공업, 여학생은 가정­가사를 배우며, 체육과 교련도 수업내용이 다르다는 것이다. 심지어 제2외국어도 남자는 독어, 여자는 불어가 일반적이라 남녀를 묶어 성적을 내기 어렵다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이과반 여학생들은 전과목에 대한 석차가 없어졌기 때문에 이러한 변명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반면 이과반 남학생들은 2학년까지 남녀별로 내신을 구했으며, 남녀별 내신산정 또한 학교와 학생간의 약속이므로 끝까지 지켜야 한다는 입장이다. 문과반의 경우는 이와 정반대의 주장이 남녀 학부모들에게서 나오고 있다.


서울시교육청 담당자는 사견임을 전제, 『교육과정에 남녀차별이 없어야 한다는 원칙상, 남녀가 같은 내용을 배우는 교과목은 남녀를 통합하고, 남녀가 달리 배우는 교과목은 남녀를 분리해 성적을 내는 것이 바람직하다』면서도, 『성적산출 방식은 학교장이 결정할 사항으로 시교육청이 왈가왈부할 수 없다』고 말했다. 결국 이 문제는 새 학기부터 구성되는 학교운영위원회가 학부모들의 의견을 수렴, 남녀성비­지역실정 등 학교사정에 맞게 결정해야 할 숙제다.〈박기연 기자〉




통합 주장/같은 과목 남녀 구분 “성차별”


남녀공학의 이과 여학생은 남녀를 분리한 내신성적 산출로 대학 입시에서 많은 불이익을 당해왔다. 성적이 아무리 좋아도 이과 여학생의 수가 적어 같은 학교 남학생에 비해 내신성적이 나쁠 수밖에 없었다.


과목별 석차백분율도 지금과 같이 남녀별로 매기면 여학생의 불이익은 답습된다. 수학시험에서 90점을 받은 여학생이 50명 정원의 이과반에서 3등이라면 석차백분율은 6%지만, 정원이 2백50명인 남학생 이과반에서는 같은 점수, 같은 등수라면 석차백분율이 1.2%가 된다. 설령 90점을 맞은 여학생이 남녀를 통합해 10등이 됐다고 하자. 그래도 석차백분율은 3%다. 남녀를 분리할 때와 엄청난 차이다.


또한 남녀공학 이과반 여학생은 여학교 이과반 여학생에 대해서도 절대적으로 불리하다.


남녀공학 이과반은 대개 1반이나, 여학교의 이과반은 적어도 2~ 3반 이상이기 때문이다. 여학교를 다니다 남녀공학에 전학을 와 내신성적이 떨어지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따라서 똑같은 교과를 배우면서 성별로 성적을 내는 것은 남녀평등에 어긋나는 일이며, 엄연한 성차별이다.


더구나 대학 입시에서 전공에 따라 과목별로 가중치를 두는 추세이기 때문에 과목별 석차백분율은 더욱 공정히 평가돼야 한다.


앞으로 여성과학자나 여성기술자가 더 많이 배출돼야 하는데, 이와 같은 조건 때문에 자연계 지원을 피하고 꿈을 포기하는 여학생이 많다면 이는 국가적 손실이며 불행이 아닐 수 없다.




분리주장/통합 땐 일부여학생만 “유리”


내신 성적을 남녀별로 내는 것이 성차별이란 주장은 동전의 한쪽 측면만 본 것이다. 내신성적을 남녀를 통합해 산출한다면 이과 여학생 민원은 해소되나 상대적으로 불이익이 초래되는 남학생의 불만이 강력히 제기된다. 문과계열은 그 반대의 현상이 빚어진다.


때문에 남녀공학들은 문­이과를 선택하기 전 학생과 학부모들에게 이를 고려해 신중히 계열을 선택하라고 권고하고 있다. 이과반 여학생은 결국 그러한 차이를 감수하고 이과를 택한 것이 아닌가. 이제 와서 이를 바꿔달라는 것은 이과반 남학생을 희생양으로 삼아 여학생들만의 내신성적을 높이려는 이기심의 발로이다. 이과반 여학생들과 학부모들은 또 순수 여학교에 비해 남녀공학이 여자 이과반 학생수가 적어 내신성적 산출에 불리하다고 주장하나 이는 사실과 다르다.


서울시 교육청의 92년 조사에 따르면 여학생의 이과반 점유율은 순수 여학교가 24.5%, 남녀공학이 21.5%다. 즉, 이과 여학생 인원수는 남녀공학이 여학교에 비해 적지만 전체 여학생 중 이과 여학생이 차지하는 비율은 크게 다르지 않다.


더구나 내년도 대학입시부터는 석차에 의해 점수화되는 내신등급이 없어지므로, 남녀를 구분한 내신성적 산정이 더 이상 문제되지 않는다. 시골학교의 1등과 도시학교의 1등이 어떻게 다른지를 각 대학이 알아서 판단해야 하듯이, 남녀를 통합할 때와 남녀별로 할 때의 석차백분율 차이는 대학이 알아서 조정해 반영하면 된다.


24. 위암 장지연의 날카로운 붓


김중배


전남대 법대를 졸업하고 「동아 일보」사회부장, 논설위원, 「한겨레신문」 사장을 역임하였다. 저서로는 「민초여 새벽이 열린다.」등이 있다.




“언론은 반드시 정직하여야 하며, 그 기사 또한 반드시 공명하여야 할 것이다. 아첨하는 말을 하거나 숨기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그래야 후세의 이목 있는 사람이 신문을 믿고 또한 그것을 공기(公器)로 삼을 것이다. 한데 그 사설을 읽어본 즉, 아첨하는 말이 많고, 또 그 기사를 보면 은폐하고 숨기는 것이 허다하다.”




휘청거리는 활자의 행렬을 볼 때마다 나는 지울 수 없는 큰 이름을 불러 본다. 지울 수 없는 그의 문장도 함께 외워 본다.


 그 이름은 위암(韋庵) 장지연. 그의 문장은 시일야 방성대곡(是日也放聲大哭, 이날 목을 놓고 통곡하노라)이다.




아! 저 개, 돼지만도 못한 이른바 정부 대신이란 자는 자기네의 영달과 이익을 바라고 위험에 겁을 먹어 머뭇거리고 벌벌 떨면서 나라를 팔아먹는 도적이 되어 사천 년을 이어 온 강토와 오백 년의 사직을 남에게 바치고, 이천만 생령(生靈)을 모두 남의 노예 노릇을 하게 하였다. …… 아! 원통하고 분하도다. 우리 이천만 동포여! 살았느냐, 죽었느냐, 단군 기자 이래 사천 년의 국민 정신이 하룻밤 사이에 망하고 말 것인가. 원통하고 원통하다. 동포여, 동포여 !




1905년 11월 20일자 「황성신문」에 실렸던 그의 논설은 우리 언론사에 빛나는 큰 문장의 하나다.


그의 증손녀 장남수의 증언에 따르면, 그 논설을 찍어 낸 장지연은 수난을 각오하고 체포의 시간을 기다렸다. 오직 사환 하나만을 데리고 신문사를 지켰다.


마침내 일본 순사가 찾아왔다. 장지연은 인력거를 불렀다. 이른바 피의자가 연행되면서 인력거를 탄다는 것은 용인될 수 없었다. 순사가 가로막자, 장지연은 호통을 쳤다.


“내 돈 주고 내가 타고 가는데 웬 잔말인가?”


그는 통감부 현관 앞에 이르러서야 인력거에서 내렸다. 이또오와의 필담에서도 그는 기개를 잃지 않았다.


그의 기개에 이또오는


“아직도 이 나라의 국운은 다하지 않은 것 같다.”


고 한숨지었다는 전설도 전해 온다.


문초를 제작 배포해서 치안을 방해했느냐고 묻자, 그는 의연히 대답했다.


“무릇 나라가 있은 연후에야 치안 여부가 있을진대, 이젠 이미 나라가 없어졌으니 치안을 무엇이라고 말할 것인가. 내가 붓대를 잡은 지 7,8년, 세상에 올바른 공론을 주장하다가 오늘 나라가 없어지게 된 사실을 어찌 있는 그대로 말하여 우리 국민에게 알리지 않을 것인가 볼지어다. 내가 쓴 글이란 오히려 부족함이 있는 것이다. 소위 치안 방해란 일본 치안의 방해가 있다는 것인가…….”


그는 자신의 논설이 모자랐음을 스스로 인정했다.


한가한 후세의 학자들은 그의 논설이 비분강개에 흘렀으며, 일본의 침략주의를 지탄하지 못했다고 헐뜯는다.


그러나 당시의 정황은 장지연으로서도 넘기 어려운 벽이 있었다는 것을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된다. 또한 남을 탓하기보다 먼저 우리의 잘못을 지탄하는 것이 온당한 순서가 아니었던가.


장지연은 경세(經世)의 학문이었던 유학과 춘추(春秋)의 필법을 오늘의 저널리즘에 접목시켰던 선각의 인물이었다.


그는 언론에 첫발을 디뎠던 「시사총보(時事叢報)」의 발간 취지에서 이렇게 말한다.


“신문에는 그 체가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논설이요, 둘은 잡보다. 논설이란 사가(史家)의 평론하는 체요, 잡보란 사건의 기사(記事)하는 체라…….”


신문에 대한 그의 견해는 오늘 내놓아도 결코 진부하지만은 않다. 신문을 하나의 사초(史草)로 보는 견해는 선진의 신문학에서도 유력하다.


우리가 살아온 유학의 전통을 새로운 세계의 조류에 이어 붙인 그의 눈은 밝았다. 서양의 저널리즘도 곡필(曲筆)을 권하지는 않는다. 직필(直筆)은 동서 고금을 넘어선 언론의 철학이다.


그의 직필의 철칙을 몸으로 실천한 인물이 장지연이었다. 그는 1914년 10월, 일제의 기관지였던 「매일 신보」의 초빙을 받았으나 한 마디로 거절하고 말았다.


그 거절의 말에서도 장지연의 굽힘 없는 신념은 그대로 드러난다. 그의 기신보사(奇申報社)라는 초빙 거절의 글은 이렇게 진술된다.




언론은 반드시 정직하여야 하며, 그 기사 또한 반드시 공명하여야 할 것이다. 아첨하는 말을 하거나 숨기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그래야 후세의 이목 있는 사람이 신문을 믿고 또한 그것을 공기(公器)로 삼을 것이다. 한데 그 사설을 읽어본 즉, 아첨하는 말이 많고, 또 그 기사를 보면 은폐하고 숨기는 것이 허다하다.




그의 진술은 오늘의 언론 종사자에게도 따가운 일침이 된다. 전혀 70년의 상거를 실감하기 어렵다.


장지연은 나라 안팎을 헤매는 유랑의 세월을 살면서도 끝내 곡필의 대령에 섞여들지 않았다. 그 유랑의 세월 속에6서도 그는 ‘신문 없는 언론인’의 붓을 거두지 않았다. 나날의 일들을 그 나름대로 기록했다.


그 기록들은 부인의 속곳 안에 감추어졌다. 속곳에 꿰매 넣었다고도 전한다. 그것이 <條錄時事>였다. 시사를 조목조목 기록해 둔다는 것이었다.


안타깝게도 그 <조록시사>의 행방은 묘연하다. 아예 없어져 버렸는지 또는 어디에 숨어 있는지조차 알 길이 없다.


참으로 언론인의 길이 무엇인가를 몸으로 보여 준 위암의 행적 앞에서 그 후예들은 저절로 옷깃을 여미게 된다. 그 ‘시범의 선구자’라는 점만으로도 장지연은 이미 역사의 인물이다.


물론 장지연은 언론의 선각자만을 아니었다. 그는 「조선 유고 연원」을 써 낸 유학자였다. 「증보 대한 강역고」를 엮어 낸 지리학자이기도 했다.


그는 「동국 역사」를 써낸 역사학자였으며, 또한 ‘자강회 운동’을 주도했던 개화의 선구자였다. 실학을 존중했던 그는 경제에도 남다른 선견력을 지녔던 것 같다.




일용하는 기물로 말하여도, 각종 기구품을 전부 외국 제조품에만 의존하면 수입품이 더할수록 우리나라 금전이 외국에 흘러감이 많을 것이다. 이러하므로 대개 한 나라의 경제는 수입‧수출의 균형 여하로써 짐작될 수 있다.




그의 경제론 역시 소박하나마 오늘에도 진부하지만은 않다. 장지연은 한글 전용론에도 열을 올렸으며, 민주적 가장의 면모가 뚜렷했다.


그는 행랑어멈을 종처럼 부리지 못하도록 집안 사람들에게 타일렀다. 부인에게 보낸 편지들은 가부장적 권위를 넘어선 부부애에 넘친다. 그는 며느리들과도 어울려 윷판을 벌였다. 한마디로 그는 선구적 거인이었던 것이다. 나는 장지연을, 역사를 앞서 달린 언론의 거목으로 추앙하고 싶다. 그것은 아전 인수의 편견만은 아니다.


유학의 전통과 춘추의 필법을 현대의 저널리즘에 접목시킨 그의 공헌은 그 어떤 분야에서의 업적들보다도 두드러진다. 더구나 직필의 천명을 끝내 어기지 않았던 위암의 전철은 연면하게 이어질 우리 언론사의 거울이 되어야 한다.


그는 스스로 지여 낸 <자찬시(自讚詩)>에서 자신의 모습을 이렇게 그렸다.




네 뼈는 울근불근


네 모습 훤출하다.


눈은 어찌 반짝반짝


귀밑 털은 희끗희끗


석굴 속 석가모니가 아니라면


글 천치 술 미치광이가 분명하리라.




생전에 장지연을 만나 보았다는 노산 이은상은 그의 모습이 <자찬시>와 일치했다고 적었다. 그의 동시대인들의 진술도 동일하다.


그는 겉으로 보기에 여자와 같았고, 말을 하고자 해도 여간해서 입밖에 잘 내지를 못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불의를 보면 참지 못했다. 심지어 소리내어 우는 일마저 드물지 않았다.


그는 표현 그대로 외유 내강의 언론인이었다. 입으로만 떠벌리고 붓을 감추는 언론인이 아니라, 입술은 무디어도 붓은 날카로운 언론인이었다. 그는 붓대의 인물이었지 혓바닥의 인물은 아니었다.


장지연은 옥중에서도 직언과 직필을 가로막는 세태의 압력을 시로 남겼다.




험악한 시국 형편 갈수록 더해 가니


이 세상 살아갈 길 가엾기 짝이 없네.


입 있어도 말하기란 새 날기처럼 어렵고


무심히 지내자니 물고기만도 못하구나.


오늘을 사는 우리의 가슴속에도 와 닿아, 오늘도 방성 대곡케 하는 절구다.




나는 이 시를 외울 때마다 빛나는 선구자와 대조되는 초라한 후예의 몰골에 소스라친다. 장지연의 빛을 잇는 언론의 후예는 끝내 자라날 수 없는 토양인가를 되묻는다.


해평(海平) 윤희구가 쓴 장지연의 묘비명은 더더구나 오늘을 사는 나의 가슴을 울린다.




의지가 사라지지 않음이여


빛과 기운이 하늘을 비치도다.


오히려 그의 글이 남아 있음이여


의기와 함께 길이 가리로다.


25. 진실 보도의 어려움


송건호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주요 일간 신문에서 논설 위원과 편집국장을 지냈다. 한때 언론 민주화 운동으로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한겨레신문」 대표이사를 역임했으며 저서로는 「분단과 민족」, 「한나라 한겨레를 향하여」 등이 있다.




나쁜 것을 나쁘다고, 시정할 것을 시정해야 한다고 보도하고 논평하는 것이 진실한 언론임을 의미한다면 진실한 언론은 부조리를 개혁하려는 다분히 현실 부정적, 현실 지양적 언론이 될 수밖에 없다. 이와 반대로 만약 곡필이 부조리한 현실을 추종하는 것을 의미한다면, 표면상 온건하고 긍정적이며 따라서 건설적으로까지 보이는 것은 ‘진실의 언론’이라기보다 ‘곡필의 언론’이며, 그것은 더욱 그럴싸하게 보이기 마련이다.




길가에서 택시 운전사들이 다투고 있다. 차가 서로 스쳐 자체가 우그러졌는데 누구에게 잘못이 있느냐로 시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두 사람 말이 서로 일리가 있는 것 같아 어느 쪽 말이 옳은지 분간하기가 어렵다. 우리들이 일상 생활에서 얼마든지 볼 수 있는 조그만 광경이다.


신문에는 거의 날마다 몇 건의 교통 사고가 보도되고 우리들은 아무런 의심 없이 그 기사 내용을 사실로 받아들이고 있으나 지금 예에서 본 바와 같이 하찮게 보이는 교통사고 보도에서조차 엄격히 따질 때 진실 보도가 어렵다는 것을 발견한다.


무엇이 진실이냐는 참으로 어려운 문제이다. 단순한 교통 사고조차 진실 보도가 이처럼 어렵다면 진실 보도가 무엇보다도 필요한 정치적‧경제적‧사회적으로 큰 사건이나 큰 문제일수록 진실 보도가 더욱 어렵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사람들은 아무런 의심 없이, 또 신문 기사 자신들조차 진실 보도를 자명한 것처럼 생각하고 또 말하고 있으나 문제를 좀더 파고들어 가 생각해 보면 생각할수록 독자들에게 진실 보도를 하기가 극히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통감하지 않을 수 없다.




진실을 파악하는 방법


‘진실’이란 어느 사건 또는 어느 문제에 대해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말한다. 그러나 있는 그대로란 무엇인가. 어떤 사실을 막론하고 존재하는 모든 사실은 그 존재가 다원적이다. 꼭 진실을 알아야 할 중요한 사실일수록 그 존재는 더욱 복잡하게 얽혀 이어 한 면만 보고서는 그 사실의 진실을 이해하지 못한다. 위에서 인용한 교통사고의 경우도 시비하는 두 운전사의 말을 이쪽저쪽 다 듣지 않고서는 공정하고 옳은 판단을 할 수 없다. 따라서 언론에 있어 ‘진실’이라, 첫째 사물을 부분만 보지말고 전체를 보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뜻한다. ‘진실’이 알려지는 것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은 따라서 신문이 사건이나 문제를 전체적으로 또는 그 전모를 밝히는 것을 저지하기 위해 자기들에게 유리한 부분만을 확대시켜 과장 선전하기도 하고 불리한 면은 이를 은폐하여 알리지 않거나 보도되는 것을 저지하려고 한다. 이와 같이 부정확한 보도는 우선 일방적이며 편파적인 보도임을 말한다.


논평에서도 진실한 논평을 하려면 이런저런 측면을 다 같이 검토하고 거기에서 공정한 판단과 결론을 내려야 한다. 공정한 논평에 있어 가장 중요한 점은 사고의 자유로운 활동이다. 자기에게 불리하다고 해서 ‘문제를 그런 식으로 생각하면 못 쓴다’거나 또는 ‘이 문제는 이런 방향, 이런 각도로만 생각해야 하며 그 밖의 각도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면 이것이 곧 진실과 반대되는 곡필 논평임은 말할 것도 없다.


곡필을 하기 위해서는 따라서 사고를 포기하지 않으면 안 된다. 곡필은 어느 선 이상은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데 그 특징이 있다. 자유롭게 다각도의 사고를 하면 진실이 밝혀지기 때문이다.


둘째, 언론에 있어 ‘진실한 보도와 논평’을 하기 위해서는 사물을 역사적으로 관찰할 줄 아는 안목이 있어야 한다. 어떠한 사물을 옳게 보도하거나 논평할 수 있으려면 그 사물의 의미 또는 가치를 올바르게 평가할 수 있어야 한다. 사물의 가치는 역사의 발전에 따라 달라진다. 오늘 가치를 인정받았던 것도 내일에는 부정되고 오늘 부정된 가치라도 내일에는 평가를 받는다. 따라서 항상 어떠한 가치에 서서 사물을 보느냐에 따라 사람의 안목은 결정된다. 안목이 있는 사람이란 발전하는 새로운 가치의 입장에서 사물을 볼 줄 아는 사람을 말한다. 이렇게 말하면 사람 치고 누가 발전하는 입장의 가치를 거부하겠느냐고 말할 사람이 있겠지만 사회적 가치란 사회적 이해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자기의 이해 관계에 따라 사물을 보는 입장이 서로 달라진다. 어떤 사람에게는 긍정적 가치도 어떤 사람에게는 부정적 가치가 된다. 이것은 이해 관계가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자기의 입장, 자기의 이해 관계의 입장에 서서 사물을 보기 때문에 같은 사물, 같은 문제인데도 보는 관점이 서로 달라 견해차가 생긴다. 따라서 사물을 볼 때에는 소수의 이익이 아니라 다수의 이익, 퇴보의 가치가 아니라 발전하는 가치의 입장에 서서 판단하고 평가해야 한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셋째, 사물을 볼 때에는 어느 면이 더 중요하고 어느 면이 덜 중요하다는 점을 똑똑히 식별할 줄 알아야 한다. 사실은 그 존재가 다원적이라고 했다. 교통 사고가 발생했을 때 가장 중요한 점은 사고의 원인이 무엇인가이다. 버스가 전복했는데 차체가 어느 만큼 파손됐느냐는 그리 큰 문제가 아니다. 사건이 발생했을 때 가장 중요한 면이 그 사건의 근거가 되고 그렇지 않은 면이 그 사건의 조건이 된다. 따라서 사물을 옳게 이해하려면 그 사물의 어느 측면이 근거가 되고 또 조건이 되는가를 예리하게 식별할 줄 알아야 한다. 근거와 조건을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 한 문제 또는 사건의 이해가 크게 달라지고 이미지가 전혀 달라진다. 보도 기사에는 ‘리드’라는 것이 있다. 보도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리드’로 하여 기사를 작성한다. 그런데 기사의 어느 부분을 리드로 잡느냐에 따라 가사가 독자에 미치는 영향이 크게 달라진다. 사물의 어느 면이 중요한가는 관심도에 따라 다르며 관심도는 이해 관계에 따라 달라진다. 특히 외신을 다루어 보면 같은 사건인데도 입장에 따라, 즉 기자의 국적에 따라 리드가 제각기 달라 사건을 보는 눈에 묘한 차이점이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월남의 최후를 보도하는 각국의 신문을 보면 이것을 절실히 느낄 수 있다. 반공 진영의 나라와 공산 국가의 신문 사이에 월남 사태를 보는 눈이 다른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같은 반공 진영의 나라라도 역점을 두는 측면이 나라에 따라 다르다.




가장 주관적인 보도가 진실 보도이다.


사실을 가장 정확하게 보도하려면 기사를 객관적으로 써야 한다는 말이 있다. 있는 그대로를 조금도 주관을 섞지 않고 기사를 써야만 정확한 보도가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객관적’이라는 표현은 좀 주의해서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된다. 왜냐 하면, 가장 정확하고 올바른 보도일수록 기사가 이른바 객관적이기보다 오히려 훌륭한 의미에서 주관적이기 때문이다. 사태를 가장 정확하게 알리는 보도일수록 주관적이 되어야 한다는 이론은 얼핏 납득하기 어려운 말 같기도 하다. 그러나 구체적 예를 들면서 설명해 보면 조금도 모순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을 것이다.


윤봉길 의사가 1931년 중국 상해에서 일제 시라까와 대장 등을 폭사시킨 테러 사건을 예로 들어 보자. 만약 정확한 보도라는 것이 주관을 전혀 개입시키지 않은 거울같이 보이는 그대로를 보도하는 것을 의미한다면 윤 의사는 일본군의 엄숙한 대 식전을 피바다로 물들인 엄청난 살인적 ‘테러리스트’라고 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신문은 마땅히 윤 의사를 규탄하는 보도를 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보도가 사건을 정확히 알리는 보도가 될 수 없다는 것은 긴 설명이 필요 없다. 윤 의사의 장거는 우선 역사적으로 이해되지 않으면 안 된다. 일본이 한국을 식민지로 삼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식민지 제도라는 것이 인류 역사상 배격, 규탄되어야 할 역사적 유제(遺制)라는 판단이 앞서야 하고 이러한 역사적 가치 판단뿐 아니라 윤 의사의 장거 당시 국내의 삼천만 동포가 일제의 착취와 탄압 아래 얼마나 신음하고 있었느냐를 윤 의사의 ‘테러’행위와 관련시켜 보지 않으면 안 된다. 즉, 사건을 전체적‧역사적 근거와 조건을 식별하는 입장에서 보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러한 판단 위에 서야만 이 사건의 핵심이 어디에 있는가를 비로소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윤 의사의 테러 행위를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사건이 위와 같이 수많은 다른 사실들과 횡적‧종적(역사적)으로 얽혀 있다는 점을 우선 알지 않으면 안 된다. 한 사건을 정확히 보도하는 데 만약 이와 같이 풍부한 학문적 지식이 필요하다면 이것은 높은 차원에서 주관적 보도라고 보지 않을 수 없다. 정확한 보도 활동에는 고도의 사회 과학적 소양, 이밖에 문학적‧철학적 소양까지도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미국이 낳은 세계적 대기자 올솝 형제가 ‘훌륭하고 정확한 보도는 본래 가장 주관적인 것’이라고 한 것도 이러한 점을 지적해 말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윤 의사의 ‘테러’행위라는 좀 극단적 예를 든 것이 적절치 못하다고 할는지 모르나 가장 정확한 보도가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사실일수록 진실을 전달하려면 오히려 고도의 주관적 보도를 통해 그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깨닫지 않으면 안 된다.




이해 관계가 진실을 좌우한다.


신문이 진실 보도를 해야 한다는 것은 새삼스러운 설명이 필요 없는 당연한 이야기다. 그러나 사람들은 진실 보도를 하고 안하고의 문제가 전적으로 보도 활동에 종사하는 기자들의 양심 문제라고 보는 경향이 있다. 기자가 정의감에 불타 있으면 진실 보도에 과감하고 그렇지 않으면 곡필을 휘두른다는 것이다. 또는 좀 좋게 말해서 취재 기술의 미숙에서 진실 보도를 못한다는 견해가 있다. 어느 편이나 다 같이 진실 보도를 하고 안하고는 보도 활동에 종사하는 기자 쪽에 책임이 있다고 보고 있는 점에서는 다를 바 없다. 그러나 이것은 지극히 피상적인 견해임을 면치 못한다.


물론 진실 보도를 하고 안하고의 책임이 기자 쪽에 있다는 말 자체에 잘못이 있다는 것은 아니라. 다만 진실 보도가 안 되는 이유를 전적으로 기자들의 윤리 문제로 해소시켜 버리는 것은 신문 제작의 현실을 모르는 불충분한 견해라는 것이다. 정확한 보도를 하기 위해서는 문제를 부분적이 아니라 전체적으로 봐야 하고 역사적으로 새로운 가치의 편에서 봐야 하며 무엇이 근거이며 무엇이 조건인가를 명확히 해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이러한 준칙을 강조하는 까닭은, 문제를 전체가 아닌 부분만 보고 새로운 것 대신 낡은 역사적 측면에서 보고, 근거를 조건으로 조건을 근거로, 즉 중요한 점과 그렇지 않은 점을 뒤바꾸어 보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대학의 신문 방송학과에서 배우는 것처럼, 기사 작성의 기술이 미숙하기 때문이 아니라 근본적으로는 특정 문제를 보도하는 데 어떻게 보도하느냐에 따라 이해 관계가 크게 좌우되기 때문이다.


‘진실 보도다 아니다’라고 할 때 그것이 A를 B라고 보도하는 것을 지적하는 것이 아님은 말할 것도 없다. 현대 신문이 이렇게 졸렬한 거짓말 보도를 하는 예는 지극히 드물다. 사실에 입각해 보도하면서도 어느 특정 면을 특히 확대시킨다든지, 발전적이 아니고 낡고 소수를 위한 전시대적 가치의 편에서 보도한다든지, 중요한 점이 아닌 면을 중요한 것처럼 확대시킨다든지 하는 것은 모두 무엇인가 이해 관계가 깊게 얽혀 있기 때문이다. 즉, 세상에서 중요한 문제로 보고 또 정확한 보도가 필요하다고 기대되는 보도일수록 진실을 보도하지 못하도록 필사적인 압력을 가하려는 외부 세력이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나쁜 것을 나쁘다고, 시정할 것을 시정해야 한다고 보도하고 논평하는 것이 진실한 언론임을 의미한다면 진실한 언론은 부조리를 개혁하려는 다분히 현실 부정적, 현실 지양적 언론이 될 수밖에 없다. 이와 반대로 만약 곡필이 부조리한 현실을 추종하는 것을 의미한다면, 표면상 온건하고 긍정적이며 따라서 건설적으로까지 보이는 것은 ‘진실의 언론’이라기보다 ‘곡필의 언론’이며, 그것은 더욱 그럴싸하게 보이기 마련이다.


진실 보도를 하려는 언론은 항상 현실 비판적이며 따로 현실 부정의 모습을 취하기 때문에 진실의 언론일수록 ‘파괴적 언론’으로 당시의 권력에 의해 탄압 받기 일쑤이다. 그러므로 진실 보도는 일반적으로 수난의 길을 걷기 마련이다. 권력에 저항하여 진실을 위해 살기는 어렵다. 양심적이고자 하는 신문 또는 언론인이 때로 형극의 길과 고독의 길을 걸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26. 토끼전에 나타난 민중의 모습


어둠에 밀려 빛을 잃어버린 토끼가 있는가 하면 아득히 동터오는 빛을 찾아 앞으로 뛰어가는 토끼가 있었다. 앞으로 뛰어가는 토끼의 발길 앞에서 결코 순탄한 도로가 뚫려 있던 것은 아니었다. [토끼사전]의 토선생도 용궁에서 탈출한 이후 또 덫에 걸려 죽을 고비를 간신히 넘기기도 한다. 어떤 이본에서는 다시 또 솔개에게 잡혀 먹힐 뻔한 장면도 나온다. 아무리 험난한 역경도 토끼는 좌절하지 않고 꾀를 써서 강인하게 슬기롭게 빠져나간다. 여태까지의 우리 민족이 겪어온 시련을 예견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호랑이와 토끼를 그린 낯익은 민화가 있다. 호랑이의 에헴 하고 길게 빼어 문 담뱃대에다 토끼가 싹싹하게 불을 붙여주는 그림이다. 민화 특유의 회화적인 필치에 익살이 넘쳐흐른다. 그림으로 나타낸 우화, 일종의 만화적인 감각을 느끼게도 한다. 이 민화는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곧 호랑이와 토끼로 어떠한 인간 관계를 비유하고 있는가?


요컨대 호랑이는 강자로, 토끼는 약자로 유추시킬 수 있다. 이 유추에 대해서는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것이다. 호랑이와 토끼로 비유된 강자와 약자의 관계는, 그림의 배경인 이조사회에 있어서는 지배하는 자와 지배받는 자, 곧 관과 민의 사이에 적용될 것임이 물론이다. 특히 그 사회의 기본구조였던 양반지주와 농민의 관계에서 그 전형을 볼 수 있었다. 양반지주의 권위 앞에 농민들은 자기의 노동력을 제물로 바치며 오직 비굴과 아첨으로 관용과 자비를 구걸해야 했던 것이다.


그런데 굉장히 위엄을 갖춘 호랑이에게 담뱃불을 붙여주는 토끼의 몸짓은 비굴해만 보이지 않고, 어딘가 영리함과 쾌활함이 내비치고 있다. 자기의 예속적인 처지를 숙명적으로 자포자기하는 것이 아니라 약빠르게 보위하여 실속을 차리려는 계산적 아첨, 즉 교활성이 엿보이는 것이다. 반면 토끼의 굽실거림에 흡족해하는 호랑이는 어딘가 미욱하게 보인다. 그러나 토끼의 교활성은 호랑이의 권위에 하등 손상을 끼치지 못하고 있다. 한줌도 못되는 토끼에 의해서, 드러낸 이빨과 숨겨진 발톱으로 으르렁거리는 호랑이의 위세는 좀처럼 손상될 것 같지 않다. 지배층과 백성과의 관계는 그러한 생각을 심어주기에 족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19세기 서민문학에 나타난 토끼의 형상은 아주 다르게 부각되어 있다. [토끼전]이 그러한 것이다. 이 작품의 골자는 산중에 사는 토끼가 별주부의 꾐을 받고 용궁에 같다가 끝내 용궁의 왕을 위해서 자기의 간을 제공하지 않고 슬기롭게 빠져나왔다는 이야기다. 봉건권력의 정점인 국왕에 대해서 절대 봉사 복종하는 것이 떳떳한 도리였고, 자기를 희생으로 바치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겼었다. 거기에 충효라는 명분을 부여하여, 그것을 지키는 것이 출세의 지름길이며 부귀를 따내는 비결이었다. 별주부가 토끼를 잡아오겠다고 자청해 나선 것도, 토끼가 용궁에 가면 부귀를 누리게 된다는 별주부의 감언이설에 혹한 것도 대개 이러한 현실적인 배경에서 움직여진 것이다. 우리 속담에 ‘간 빼준다’는 말이 있다. 자신의 생명을 잃게 되는 줄도 모르고 자기 내장의 일부를 빼내서 남에게 주어 버린다는 말이다. 요즈음 말로 자아의 상실, 또는 주체성의 포기를 뜻하는 것이다. 토끼가 용왕에게 ‘간의 헌납’을 거부한 행위는 곧 봉건권력에 자기를 팔지 않은 것을 의미한다. 토끼는 자기 간을 받침으로써 만고의 충신이란 허위의 영광을 길이길이 남길 수 있었다. 실은 또 ‘간의 헌납’은 자유의사를 무시한 농락과 협박으로 강제된 일이었다. 토끼는 교묘한 꾀를 써서 간을 빼앗기지 않고 위기를 벗어나 소중한 자아와 자유를 지키고 찾은 것이다.


용왕은 병들어 죽음을 기다리고, 그의 신하들은 하나같이 기회주의. 출세주의로 처세하여, 무능을 만용으로 떠벌리는 따위의 용렬한 것들이다. 병든 용왕의 신음은 어쩌면 지긋지긋했던 봉건체제의 마지막 무너지는 거창한 소리같이도 들린다. 그리고 용궁의 떨거지들은 무능력하면서도 허세를 부리는 봉건관료층의 꼬락서니같이도 들린다. 이제 토끼는 호랑이 앞에 설설 기던 옛날의 토끼가 아니다. 물론 아직 정면으로 대어들어 거꾸러뜨릴 만한 역량은 못 가졌지만, 마음대로 이용당하고 예속되지 않을 정도의 힘과 꾀를 구사하는 것이다. 즉, 굴종을 도덕적인 당위로 몰각하지 않을 자아의식과, 역사를 거부할 만한 저항적인 힘이 생겼다고 하겠다. 각성하여 저항하는 토끼, 이것이 새롭게 창출된 토끼의 형상이다. 이 점은 매우 흥미로운 현상이다. 어떻게 그런 형상이 만들어질 수 있었던가.


19세기의 우리나라는 활발한 민중의 저항운동이 새 역사를 모색하고 있었다. 1811년 홍경래의 대규모 무장항쟁으로부터 시작하여, 1862년 진주민란을 거쳐, 갑오농민 전쟁으로 발전하였던 역사운동은, 한마디로 반봉건적인 민중의 힘으로 추진된 것이다. 이 역사운동이 토끼의 형상에 투영되어 있다. 바꾸어 말하면, 민중의 주체적 창조적 움직임이 우리의 토끼를 슬기롭고 저항적인 성격으로 변모시킨 것이다.


민중의 성장은 전투적 정치적 행동을 발발시킨 한편, 그들 스스로의 생각과 감정을 해방시켜 발랄하게 만듦으로써 민중미술의 형태에도 활력을 불러일으켰다. 서민적 구비적 양식인 소리와 몸짓으로 약동하게 여실히 엮어내는 판소리와 탈춤이 바로 그 시대에 전성기를 맞았던 사실은 우연이 아니었다. 민중투쟁의 예술적 표현인 것이다. 이와 같은 민중예술의 형태를 통해서 성립된 서민문학이 그 시대 문학사의 주류로 등장하였다. 그 작품 내용의 골자는 권위주의의 부정이다. 예컨대 나도 한 떳떳한 사람이라는 ‘인격’을 주장하는 춘향의 항거와, 양반의 위엄을 여지없이 조롱하고 풍자하는 말뚝이의 항거는 토끼의 형상과 함께 봉건적인 속박을 반대하고 평등을 요구하는 민중의 의지를 대변한 것이다.


[토끼전]은 민족 전래의 우화에서 소재를 취한 점이 또한 특이하다. 동물 세계에 붙임으로써 이야기를 기발하게 엮어가며 주제사상을 대담하게 표현하는 것이 가능했다. 그래서 각 이본에 따라 스토리가 변화다단하고 주제도 유동적이었던 것이다. 필자 소장의 [토처사전]은 수다한 민간본 중의 하나이다. 이런 종류의 필사본 소설들은 판소리의 구비적 적층을 통과하고 소설적인 기록으로 정착된 이후 다시 민간에 전사되는 과정에서 윤색 부연되어 따로 정본이 있을 수 없거니와, 대개 글씨와 내용이 어울려 유치하고 산만한 상태를 벗지 못하고 있다. 이것이 곧 당시의 실상이었다. 민중적인 문화는 저급한 수준에서 꿈틀거리고 있었던 것이다. [토처사전]도 세련된 문학작품은 아니다. 역시 불필요한 부연이 지루하게 느껴지는 대목도 없지 않고, 굳이 들추자면 결점 투성이이지만, 특히 다음 두 가지 면에서 주목되는 바 있다.




첫째, 토끼의 형상이 매우 강조되어 있다. 원체 경박하고 마음이 좁아서 곧잘 깝죽대고 실수도 연발하는 반면, 용궁의 세계에 들어갔을 때 학식 언변, 지모가 군신들을 능가하고, “풍채도 거룩”해서 한 미인(별주부의 부인)의 마음을 사로잡기까지도 하여, 스스로 “나 같은 영웅호걸 수중에 보았느냐”고 호언했던 것이다. 작중에서 그에게 ‘토선생’이란 칭호를 쓴 것부터가 그렇지만, 토끼에게 걸출한 면모를 부여한 것은 하나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둘째, 주제표현이 특히 신랄하다. 이 작품은 민중의 저항과 자각을 우화적인 수법으로 표현한 것이다. 거기에 낡은 체제를 지탱하는 윤리로서의 충이라는 도덕관념에 대한 비판과 풍자가 수반되고 있다. 토끼의 형상을 강하게 만들어 토끼의 비상한 수완에 의해서 주제 내용이 드러나는데, 흔히 다른 본에는 없는 흥미롭고 신랄한 대목이 보인다. 이를테면, 용왕이 토끼의 농간에 넘어가 자기 개인의 목숨을 연장키 위해 명색 충성을 다 바친 별주부를 당장 잡아서 완배탕을 끓여 먹겠다거나, 별주부가 자기 부인의 정조를 팔게 하는 것이나, 토끼에 대한 연모의 감정을 처리하지 못한 나머지 죽어버린 별주부의 부인을 만고의 열녀라고 표창하는 등등의 장면들은 자못 이색적이다. 봉건주의의 허약상과 모순성이 재미나게 효과적으로 폭로된 곳이다.


셋째, 양반들의 등쌀에 찌들린 농민의 형상은 왜소한 것으로 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하필 조그만 토끼에다 그들의 상을 부여했던 것이다. 그런데 토끼란 게 호랑이 앞에 담뱃불을 붙여주면 제격이지만 민중적 토끼로는 언젠가 모순이 생기게 마련이다. 저항적인 역량이 커 가면 커갈수록 그것은 왜소한 토끼의 인상에 빗나갈 것이기 때문이다. 마침내 [토처사전]에서 모순이 두드러지게 되었다. 왜소한 토끼에다가 상당한 무리를 저지르면서까지 강한 성격을 부여한 것이다. 그래서 왜소와 걸출이 상반된 ‘토선생의 아이러니’가 성립된 것이다. 농민전쟁에 의해 주도된 19세기 우리나라 역사운동은 새로운 사회를 창출할 만큼 성숙한 이론과 확고한 실천적인 역량으로 추진되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허다한 우여곡절과 심각한 갈등이 불가피했다. 따라서 민중 자체도 자기의 일관된 논리를 갖추기 어려웠다.


‘토선생의 민중적 형상’이 다소 일관성을 잃게 된 것도 따지자면 결국 그러한 시대 사정과 관련이 있다고 하겠다. 토끼의 형상에 그 시대 민중의 고난이 얼룩져 있다.




[토끼전]이 잡다한 이본을 파생시켰음을 언급하였지만, 이본에 따라서는 민중적 건강성이 퇴색되고 주제사상이 변질된 경우도 있다. 이 경우 토끼는 뒷전으로 밀리고 별주부가 내세워져, 충을 설교한 내용으로 변조되는 것이다. 혁명을 요구하는 민중의 소리가 높아질수록 그것을 제지 역행시키고자 하는 책동도 집요하게 나오는 법이다. 민중예술도 한편에서 반역사적인 움직임에 왜곡 이용되었다. 토끼의 형상은 명암의 양면을 띠었던 것이다.


어둠에 밀려 빛을 잃어버린 토끼가 있는가 하면 아득히 동터오는 빛을 찾아 앞으로 뛰어가는 토끼가 있었다. 앞으로 뛰어가는 토끼의 발길 앞에서 결코 순탄한 도로가 뚫려 있던 것은 아니었다. [토끼사전]의 토선생도 용궁에서 탈출한 이후 또 덫에 걸려 죽을 고비를 간신히 넘기기도 한다. 어떤 이본에서는 다시 또 솔개에게 잡혀 먹힐 뻔한 장면도 나온다. 아무리 험난한 역경도 토끼는 좌절하지 않고 꾀를 써서 강인하게 슬기롭게 빠져나간다. 여태까지의 우리 민족이 겪어온 시련을 예견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토끼의 고난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그가 조상 대대로 살아온, 제 몸뚱이처럼 생긴 이 땅의 남쪽 끝에서 북쪽 끝까지 마음껏 뛰어볼 수도 없다. 그리고 그를 조금 얽매어 두고 슬슬 간을 빼가려는 음모가 안에서 밖에서 종식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강인하고 슬기로운 우리의 토끼는 간을 빼앗기는 일이 없을 것이다.




27. 판치는 일본 만화, 한국 시장 50%잠식


백 정 숙


우리만화협의회 사무국장, 잡지 [태백] 문화진단 94년 4월


일본 만화 해적판은 저작권법에 저촉된다. 하지만 원작자인 일본작가는 고소를 하지 않는다. 엄청난 물량이 팔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강 건너 불구경하듯이 구경만 하고 있는 이유는 혹시 97년 수입개방을 앞두고 일본 만화의 맛을 들이려는 저의가 깔려있는 것은 아닌지.




1. 만화는 우리들의 실생활


환경문제, 녹색운동. 이런 용어들이 이제 우리들 눈과 귀에 익숙해졌다. 불편함 이전의 근본적인 생존의 문제까지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동안 수없이 많은 문제들을 겪어 나오면서 구멍 위에 슬쩍 나뭇가지만 덮어 함정을 만든 건 아닌지 생각해봐야 한다. ‘인간이 썩으니까 환경이 썩는다? 문화가 썩으니까 인간이 썩는다.’는 말은 어떤가? 90년대는 더 이상 이데올로기의 시대가 아니고 문화주의의 시대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문화전쟁이다. 이 전쟁에 만화도 당당히 하나의 무기로 작용한다. 문화적 산물로서 만화가 얼마나 무섭게 파급되는 매체인지 이제 인정해야 한다.


만화란 것은, 그림을 통해 과정의 전환 없이 독자에게 직접 인식되기 때문에 활자 매체보다 훨씬 이해가 신속하고 용이하며 그림과 내용에서 현실에 대한 무한한 과장 왜곡 생략이 가능한 뛰어난 대중매체의 하나인 것이다. 만화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하지 않는 한 왜 일본 만화가 수입되는 것이 엄청난 사건인지, 왜 우리 만화가 있어야 하는 것인지도 모르는 바보 같은 꼴이 되기 때문이다. 자, 이제 어떤 집을 함께 들어가 보자. 두 살배기 어린아이가 있는 집이다. 분명 TV가 있을 것이고 많은 집들엔 VTR도 있을 것이다. 아, 그 옆에 십중팔구는 공테이프에 TV에서 녹화한 만화영화가 있거나 비디오가게에서 빌려온 만화영화테이프가 있을 것이다. 혹은 돈이 좀 있는 집 엄마들은 센스 있게 디즈니사에서 배급하는 만화영화 테이프 세트를 보기 좋게 놓았을 것이다. 또 그 옆집엘 들어가 보자. 이번엔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가 있는 집이다. 십중팔구는 손바닥만한 만화책이나 부피가 두꺼운 만화잡지가 여기저기 굴러다니고, 엄마는 그 만화책들을 주우면서 아이에게 만화책 좀 그만보라고 소리를 치며 잔소리를 할 것이다. 만화는 주로 어른과 아이들의 싸움의 소재이다. 그러면서도 아버지는 지하철 안에서 스포츠신문의 만화나 출장 길엔 성인만화잡지 등을 아주 일상적으로 볼 것이다. 이렇듯 만화는 오늘날 우리들의 실생활이다.




2. 일본 만화 국내서 3백억 시장


”한 달에 1~5권의 만화책을 읽는다(42.5%) ,10권 이상 읽는다(9,7%), 읽고 있는 만화책 중 일본 번역 만화의 비율은 1~5권 정도(52.2%), 6~9권 정도(8.8%), 10권 이상(12.1%)이다. 구입처는 동네서점(32.5%), 문방구(16.9%)” 이상은 지난해 4월 서울 YWCA가 서울시내 초등 학생 231명과 중학생 338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청소년의 일본 번역 만화 구독실태 설문조사의 내용이다. 또한 초등 학생의 90.2%, 중고생 83.5%가 일본 만화를 본 경험이 있고, 그 해 가장 재미있게 읽은 책 1위가 드래곤볼이었다. 1992년 1년 간 간행된 무단복제 일본 만화는 34개 출판사가 3백여 종에 4백만 부 가까이되는 양이다. 이는 시중에 유통되는 만화의 50%를 차지하며 3백억 시장을 이루고 있다. 1987년 출판자유화 조치에 따라 ‘드래곤볼’을 필두로 쏟아지기 시작한 일본 만화는 기하급수적으로 우리의 만화시장을 잠식해 들어가고 있다. 더욱 만화계를 아수라판으로 만들고 있는 것은 우리나라에 들어와 있는 일본 만화의 대부분이 불법 해적판이라는 것이다. 만화는 분명히 상품이고 일본 만화가 모두 다 저질인 것도 아니므로 국가 간의 약소에 따라 수출입을 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국내에서 정식 출판된 일본 만화는 ‘쿵푸 삼국지’, ‘베르사이유의 장미’, ‘닥터슬럼프’ 단 3편뿐이고 이를 제외한 일본 만화는 수출입 절차를 밟지 않은, 간행물윤리위원회의 심의를 맡지 않은 불법 해적판이다. 게다가 일본 만화의 자극적 내용들을 보자.(물론 일본에 가면 우리나라에 들어와 있는 것은 그래도 양질의 만화라는 것을 금방 확인할 수 있다.) 다른 문화권인 한국의 청소년층이 받는 충격은 상당하리라고 생각한다. (간행물윤리위원회의 만화에 대한 사전 심의제는 국내작 가들의 창작의욕을 크게 떨어뜨리는 군사정권시대의 악법인데 일본 만화에 대해선 아무런 힘도 쓰지 못하고 있다. )




3. 다작 작가 8명 70% 시장 점유


그러면 우리나라 만화인 나머지 50%는 과연 어떤가? 92년 한해 만화 발행량은 약 2천 5백만 권(참고로 만화왕국인 일본의 91년 만화발행부수는 21억 권에 이른다.) 한국만화의 모태였던 대본소(만화가게)는 경제성장에 따른 실질구매력의 향상과 90년 12월 개정된 학교보건법에 의해 96년에는 전멸할 처지이다. 상대적으로 만화전문잡지는 크게 늘어 약 20여종에 이른다. 태풍같이 닥치는 일본 만화를 보며 한국의 유명작가들은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대본소의 유통구조를 악용하여 돈벌이에 급급했던 이들 다작작가들의 만화공장 체제는 작품성은 물론 뒷전이었고, 만화가가 될 날만을 기다리며 묵묵히 일하던 문하생들의 꿈마저 짓밟고 있었다. (이현세, 고행석, 박봉성 등 인기만화가들의 경우 적게는 30명, 많게는 1백 명에 달하는 문하생을 고용, 한 달에 20종에서 40종까지 다작출판을 하고 있다. 예를 들어 92년 7월 한 달에만 대표적인 다작작가 8명이 2백 종 이상의 작품을 출간, 전체만화의 출판 부수의 70%를 점유했다.) 이와 달리 만화전문잡지의 경우는 비교적 다양한 작가들의 무대인 듯하다. 그러나 가만히 살펴보면- 아마도 편집권의 강요가 커다란 이유겠지만-일본 만화의 형식과 내용을 흉내내는 경우가 많다. 이는 오락성에 있어 일본 만화의 우위를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국내작가의 만화를 주로 실어온 ‘만화왕국’은 93년 6월, ‘소년중앙’은 93년 8월에 적자로 폐간되고, ‘보물섬’마저 경영난에 허덕인다. 이에 반해 일본 만화를 부록으로 싣거나 일본 만화의 유사품을 만드는 ‘소년챔프’나 ‘아이큐점프’ 등은 대호황을 누리고 있다. (소년챔프에 연재되었다가 단행본으로 출판된 일본 만화 슬램덩크는 각 권당 20만 부 가량 16건이 팔린 것으로 추산된다.) 또한 외국 책을 파는 곳에서 손쉽게 구입할 수 있는 일본 만화 잡지들은 번역되어 있는 해적판들보다 그 내용이 더 노골적이다. (잡지의 대부분에는 성적묘사가 적나라하게 되어있는데 굳이 외설, 저질이라는 표현을 쓰기 전에 설사 예술적인 가치의 작품이라 할지라도 일본어를 모르는 청소년들이 그 에로티시즘의 예술적 가치를 알 수 있을까?) 이러한 일본잡지들은 주로 비행기나 배 등 일본을 왕복하는 교통편에 쉽게 버려진 것들을 모아서 시중에 내다 판다. 그러니 단속을 한다해도 제대로 통제가 안되겠지만, 전혀 그 노력들조차 찾아볼 길 없어 안타까울 뿐이다. 이렇게 볼 때 우리나라 청소년이 보고있는 만화의 대부분은 일본 해적판 만화이거나 일본 만화 유사품이다. 이미 우리나라 신세대 만화가라 할 수 있는 순정만화작가들 가운데에는 의성어나 의태어를 일본식으로 표기하고 있고, 장면연출도 일본 책을 기준으로 하고 있다. (일본 책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넘기기 때문에 사람의 동작연결이나 대사 등이 왼쪽으로 흘러가게 되어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 나오는 일본 만화 해적판은 그 제작과정에서 필름을 뒤집어서 대사를 번역만 하기 때문에 우리나라 식으로 왼쪽으로 책장을 넘기게 책은 만들지만, 그림이나 대사의 배치 등을 바꿀 수가 없기 때문에 내용에 있어서 대답을 먼저하고 질문을 나중에 하는 식으로 나온다. 그런 데 그런 책을 많이 보고자란 우리나라 신세대 만화가들은 그런 연유 도 모르고 그대로 베껴서 연습하다보니 대답 먼저, 질문 나중이 당연한 것인 양 버젓이 각종 만화잡지에 내보낸다. )




4. 국산품으로 둔갑한 일본 만화


어느 연립주택 101호에 30대 아주머니들이 모였다. 아이들이 소란스럽게 떠들며 놀고있는데, TV를 보던 어느 아주머니가 “어머, 요괴인간이다”라고 하자 아이들과 아주머니들이 일제히 TV앞으로 모여든다. ‘요괴 인간’ 만화영화가 출시된다는 광고를 하고 있었다. “옛날에 벤, 베라, 베로가 너무 재미있었어요. “라며 다들 한마디씩 한다. 개구쟁이 아이들은 만화영화가 나오자 넋을 놓고 조용히 앉아있었다. 이렇듯 만화영화에 대한 기억과 만화영화 주제곡 하나쯤은 다들 알고 있을 것이다. 그만큼 성장기 만화영화는 꿈의 세계였다. 그래서 우리나라에도 만화영화가 많이 있다고 믿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들이 기억하고 있는 대부분의 만화영화는 모두 일본작품이라는 걸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지. ‘황금박쥐’ ‘요괴인간’ ‘은하철도 999’ ‘캔디캔디’ ‘코난’ 등등 요즘 방영되는 ‘금발의 제니’, ‘ 빨강머리 앤’ - (이 글이 94년도에 적혀졌다는 걸. 다시 말씀드립니다. 네.) - 도 옛날에 방영했던 것을 다시 방영하는 것이다. 마치 우리나라에서 제작한 것인 양 번역자와 성우들의 이름만이 명시된다. 그러나 제작자와 스텝들의 이름, 국적 등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그렇게 국적 없는 만화영화 대부분이 일본작품이라는 걸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굳이 숫자를 써 가며 양의 많고 적음을 이야기 할 필요도 없이 우리나라에서 제작된 작품들을 열거하는 편이 낫겠다. 우리나라 만화영화작품은 ‘달려라 호돌이’ ‘떠돌이 까치’ ‘달려라 하니’ ‘서기 2020 우주소년 원더키디’ ‘옛날 옛적에’ ‘독고탁의 비둘기 합창’ ‘마루치’ ‘도단이’ ‘머털도사’ 등이 전부이다. 요즘에는 ‘외계 소년 위제트’ ‘보거스는 내 친구’ ‘빛돌이’ 등을 외국과의 합작으로 제작하기도 하는데 말이 공동제작이지 우리는 단순 수작업만 하면서 미리 제작비의 일부를 투자하고 한국과 동남아에서 판권을 갖는다는 정도여서 순수한 의미로 작품을 제작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TV가 이럴진대 비디오 시장은 말해 무엇하리.


이미 불법으로 유통되는 것까지 합치면 비디오 시장에 나도는 일본 만화 영화는 그 수를 헤아릴 수조차 없다. 일본영화의 수입이 법적으로는 아직 허가되지 않고 있으나 문화체육부에서조차 일본 비디오만화영화는 수입이 허용된 품목으로 인정하고 있어 공연윤리위원회의 검열을 거쳐 시중에 쏟아져 나오는 실정이다. 게다가 거의 대부분의 일본 만화영화는 가히 그 내용상 우리나라에서 볼 때, 폭력적 선정적 왜색적이라는 수식어 그대로 불티나게 나가는 대여품목으로 자리잡은 지 이미 오래 되었다.




5. 30분 짜리 제작비 1억 원


시민 단체의 조사에 의하면 어린이용 비디오물 중 90%가 일본 만화 영화라고 한다. 사실 당연한 이치이자 당연한 결과이다. 만들어 놓은 것이 별로 없을뿐더러 새롭게 만들어 보급하려고 애쓰는 비디오 제작업체 또 한 그리 흔치 않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일단 제작비의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TV용 만화영화의 경우 30분 짜리 한편을 제작하는데 최소 1억 원이 들며 국제시장에 내놓으려면 2억 원 이상을 들여야 한다. 그러다 보니 방송사에서는 수입가가 30분 짜리 1편 당 1천 5백~2천 5백 달러(약 1백 20만~2백 만원)인 외국 만화물을 사다 방영하게 된다. 그리고 흥행에 성공하면 다시 돈을 주고 비디오, 캐릭터 라이선스를 수입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캐릭터산업으로 벌어들이는 돈을 생각할 때 제작비에 벌벌 떨며 손쉽게 수입하는 쪽을 택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여기서 또하나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아마도 컴퓨터를 갖고 계신 분은 알겠지만 하이텔이나 천리안의 만화동아리에 들어가 보면 일본 만화, 일본 만화영화에 대한 최신 정보들이 쏟아져 나오는 것에 당혹해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 중에서도 ‘미야자키 하야토 ’라는 이름이 많이 언급되는데 극장용 만화영화를 실사영화보다 뛰어나게 제작해 그 예술적 가치를 충분히 인정받고 있는 사람이라고 하면 놀라는 분도 계시리라. 92년 일본영화관의 실사영화 포함한 흥행률 1위인 ‘붉은 돼지’는 93년 2월 우리나라의 일본문화원에서 상영했을 때 우리 중/고/대학생들로 대만원을 이루었다. 미야자키 감독의 작품만 모으는 젊은이도 상당수가 된다. 이렇듯 극장용 일본 만화 상영을 대기하는 수요는 엄청나다.




6. 발등의 불을 끄자.


”일본 만화 한국시장 점유율 50%, 만화영화시장 점유율 70%” 얼마전 주일대사는 일본 문화 수입서를 발표했다. 도대체 문화가 뭐고, 문화수입이 어떤 의미인지 아실까? 이미 우리와 일본은 대등한 경쟁상대가 아니다. 일본의 만화가 우리나라에 들어오는 것은 문화적 침탈이지만 우리만화가 일본에 가면 수출일 수 있다. 문화의 수준과 경쟁력(? )은 자본력과 긴밀한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일본으로부터 우리가 무엇을 받기로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당장의 이익 때문에 우리의 미래인 문화를 팔아먹는다면 또 한번의 역사적 오류를 저지르는 것이다. 이러한 때에 우리는 이렇게 일본 만화가 좋으니, 나쁘니 만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일본 만화 해적판은 저작권법에 저촉된다. 하지만 원작자인 일본작가는 고소를 하지 않는다. 엄청난 물량이 팔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강 건너 불구경하듯이 구경만 하고 있는 이유는 혹시 97년 수입개방을 앞두고 일본 만화의 맛을 들이려는 저의가 깔려있는 것은 아닌지.


우리는 지금 발등에 불이 붙어 있다. 불을 끄기 위해 별의별 방법을 다 써야 한다. 그 방법은 무엇인가? 우선 불이 붙은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만화를 더 이상 천박한 것으로 머물게 하지말고 만화의 큰 힘을 인식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일은 좋은 작가를 배양해야 한다. 재미있고, 일본 만화와 대항했을 때 뒤지지 않는 작품을 내놔야 한다. 하지만 앞서 이야기한 대로 우리나라 현재의 만화계로서는 당장 그 기대를 만족하기엔 힘들다. 그것은 지금의 작가들에게만 책임이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질곡에 빠진 우리나라 만화계의 구조 속에서 파생된 일이기 때문이다. 무분별하게 난립되어 있는 만화학원, 문하생 구조에만 작가들 재생산을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정규대학과정이나 만화 아카데미 만화 예술학교 등 양질의 교육기관을 통해 배출해야 한다. 진짜 만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소수정예로 4~5년만 집중 교육시킨다면 우리나라 만화는 그 판도가 달라질 것이다. 왜냐하면 지금 아무리 척박한 상황이라 해도 우리나라 작가들 가운데 우리 만화를 되찾기 위해 물심양면으로 애쓰고 있는 분들이 있기 때문이다. 한국만화예술연구회 회원들인 이두호, 김형배, 백성민, 이희재, 박재동, 오세영, 김관성, 탁영호씨 등이 하고 있는 만화아카데미는 그 싹을 보여주고 있다.(허 허.언니도. 참, 여기서 웬 선전이세유.^^;)


7. 만화진흥공사 설립해야


평론가들의 만화평론 또한 이 비상사태를 해결하는 열쇠이기도 하다. 만화를 사랑하는 평론가들이 저질만화와 양질의 만화를 구분해 내고 ’만화재미 ‘의 일체들을 밝혀내고 작품이 제대로 평가된다면 작가들도 출판사나 잡지사 등의 유통구조에 의해 구속받지 않고 작품들을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일들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자본이다. 우리나라의 엄청난 만화시장을 대자본들은 왜 방치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게다가 세계적인 제철소인 P기업의 축구팀 심벌이 일본 만화 주인공인 ‘아톰’이다. 다른 나라에서는 만화주인공의 캐릭터 산업이 이미 유망산업으로 인식되어 많은 투자가 되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기껏 한다는 게 일본 만화 주인공이라니. 만화는 문화산업이다. 자본의 집중이 되지 않으면 산업으로 발전하기 힘든 것이다.


일본 만화와 대항해 살아남으려면 정부의 제도적 뒷받침이 되어야 한다. 매일 작가들의 항의만 무마시키려고 하지말고 정말 만화가와 독자 출판인들과 함께 머리를 맞대고 일본 만화로부터 우리만화를 보호, 육성하려는 정책을 펴지 않으면 동남아와 같은 꼴이 된다. (동남아에서는 자국의 만화는 거의 없고 모두다 일본 만화, 일본 만화 하청 작가들이다.) 자국 문화 말살이 곧 세계화는 아니다. 따라서 이러한 사태 해결을 위해 만화진흥공사를 설립해야 한다. 우리만화를 살리기 위해서 밤잠 못 자며 매진하는 젊은이들도 있다는 사실에 우리는 희망을 갖자.




28. 과학 기술의 발전, 유죄인가 무죄인가?


황 광 우


'2000 논술 교양’에서


우리가 과학 기술의 절대성을 강력하게 신봉하고 있는 한, 우리는 인간 삶의 참된 가치의 문제나 문화와 예술이 갖는 깊은 의의의 문제, 인간과 자연의 관계와 생태계의 올바른 관계 문제 등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할 수 있는 여지가 적어지게 됩니다. 또 과학적인 논리에 의해서는 설명할 수 없는 인간의 제반 가치에 대해서는 무시하는 경향이 있게 됩니다. 그리고 실제 지난 역사에서는 그래 왔던 것이 사실입니다.




다음은 미리 가본 미래의 보습을 그린 어느 글의 일부분입니다. 미래의 교통 수단과 그것의 이용은 어떨 것이라는 것을 우리는 이를 통해 엿볼 수 있습니다.




2020년 어느 날 국내 기업의 로스앤젤레스 지점에서 근무하는 김 씨는 직장에 출근했다가 서울로부터 급한 수출 상담이 있다는 연락을 받고 서둘러 공항으로 향했다. 그를 태운 10시 반 서울행 ‘오리엔트 익스프레스’가 정확히 이륙 10분 뒤 지구 상공 120㎞ 고도에 도달하자 ‘이제 25마하의 속도로 대기권 밖을 날고 있다’는 기장의 안내 방송이 짤막하게 들려 왔다.


창 밖으로는 푸른색 행성인 지구의 아름다운 장관이 펼쳐지고 태평양의 수평선 위로는 희뿌연 대기권이 종잇장처럼 얇게 덮여 있다. 대기권 아래서는 좀처럼 볼 수 없었던 화성과 목성도 뚜렷한 윤곽을 뽐낸다.


로스앤젤레스를 떠난 지 꼭 2시간만에 김씨를 태운 ‘오리엔트 익스프레스’는 서울 서쪽 바다에 있는 영종도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이어 시속 500㎞의 자기부상열차로 갈아 탄 그는 초전도 자석 레일이 깔린 서해대교를 거쳐 10분만에 용산 지하터미널에 도착, 서울 본사로 향했다. 불과 3시간만에 로스앤젤레스에서 서울 본사까지 온 것이다.


월간 「사회평론 · 길」에서




이 이야기에서 마하 25의 속도로 달리는 ‘오리엔트 익스프레스’나 시속 500㎞로 달리는 자기 부상 열차는 꾸며 낸 것이 아닙니다. 이미 미국이나 일본·독일·프랑스 등은 마하 25로 나르는 ‘극초음속 여객기’를 생산하기 위한 개발에 착수했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또 자기 부상 열차는 지난 93년 대전 엑스포에서 국내 업체가 생산한 모형을 선보인 적이 있습니다. 따라서 위의 이야기는 단순한 가상이날 허구가 아니라 실제 실현 가능한 아주 현실적인 이야기입니다.


미래의 교통 수단으로는 극초음속 여객기나 자기 부상열차 이외에도 ‘전기자동차’가 주로 사용될 것입니다. 전기 자동차는 석유로 가는 것이 아니라 전기로 가기 때문에 공해를 유발할 위험이 거의 없습니다.


이와 같은 미래의 교통 수단에 의해 전 세계는 ‘일일 생활권’에 접어들게 될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땅이 좁기 때문에 현재의 교통 수단만으로도 이미 일일 생활권에 접어들었습니다. 서울서 아침에 회사에 출근하여 회의하고, 비행기 타고 제주도에 가서 정해진 용무를 보며, 다시 비행기 타고 서울에 도착하여 퇴근하는 것이 충분히 가능합니다. 그러나 현재의 교통 수단으로는 아직 세계가 일일 생활권에 접어든 것은 아닙니다. 오직 미래의 교통 수단만이 그것을 가능하게 할 것입니다.


전 세계가 일일 생활권에 들게 되면,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인간생활은 편리해질 것입니다. 프랑스 파리의 박물관이나 에펠 탑 등을 2박 3일의 고등학교 수학여행으로 다녀오는 것이 가능하게 될 것입니다. 미국 뉴욕에서 열리는 유명한 교향악단의 연주회를 감상하러 힘 안들이고 잠깐 다녀올 수 있습니다. 이탈리아의 유명한 의류 백화점에서 신상품 설명회를 구경도 하고 쇼핑도 하러 잠깐 다녀올 수도 있습니다.


이처럼 이제는 세계의 모든 문화나 교육·상품·정보 등이 마치 국내의 것처럼 손쉽고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습니다.


과학 기술 분야 중 첨단을 걷는 대표적인 분야 중의 하나가 ‘유전 공학’입니다. 이 분야는 1953년 와트슨과 트릭이 유전자의 구조(DNA)를 규명한 이래 급속도로 발전한 새로운 분야입니다. 최근 들어 유전 공학은 주로 다음과 같은 일을 합니다. 수많은 생물의 유전자 중에서 인간이 원하는 산물을 만들어 내는 유전자를 분리해 냅니다. 그리고 그것을 미생물과 같이 성장 속도가 매우 빠른 생물체에 주입합니다. 그렇게 되면 그 미생물은 빠른 속도로 인간이 필요로 하는 그 유전자 산물을 대량으로 생산해 냅니다.


이런 유전 공학의 대표적인 예가 당뇨병을 치료하는 인슐린의 대량 생산입니다. 인슐린은 원래 사람의 췌장에서 만들어집니다. 그러나 생산 속도나 양이 적습니다. 그래서 췌장에서 인슐린을 만드는 유전자를 분리하거나 인공적으로 합성하여 대장균에 유전자를 넣습니다. 그러면 그 대장균은 인슐린을 대량으로 생산합니다. 이외에도 난쟁이 치료에 쓰이는 성장 호르몬, 신경 계통의 치료제, 뼈 성상 인자들의 생체 활성 물질, 혈전용해제 등의 혈액 제재, 각종 질환에 대한 백신, 암 치료를 위한 인터페론 등이 유전 공학 기술에 의해 만들어져 판매되고 있습니다.


유전 공학에 의해 먼 미래에는 불치병으로 일려진 인류의 질병 에이즈·암 등이 없는 세상이 될 것입니다. 미국에서는 1990년 공식적으로 ‘인체 게놈 프로젝트’(Human Genome Project)라는 거대한 과학 정책을 실행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게놈’이란 한 생물이 지닌 유전자들의 총집합을 말합니다. 이 계획은 15년 간에 걸친 것으로, 수많은 과학자와 수십 억 달러의 연구비가 투자되고 있습니다. 이 계획의 목적은 간단히 말해, 인간 신체에 있는 모든 유전자의 위치와 기능을 정확히 규명해 내는 것입니다. 인간 신체 유전자 중 일부는 그 위치와 기능이 해명되었습니다. 예를 들면 태아의 성별을 구별해 주는 유전자가 그것입니다.


만약 이것이 완성되면 - 완성되는 것은 시간 문제입니다. - 지금까지 불치병이라고 알려진 인간의 질병을 치료할 가능성이 열리는 것입니다. 그 치료 과정과 방법은 이렇습니다. 불치병을 일으키는 유전자가 어디에 있는지를 먼저 알아냅니다. 그리고 나서는 그 유전자를 다른 유전자로부터 분리시키는 것입니다. 비유하자면, 깨진 구슬이 들어 있는 목걸이에서 다른 구슬은 그대로 놓고 그 깨진 구슬만 살짝 떼어 내는 것입니다. 불치병을 일으키는 유전자를 제거했기 때문에 그 사람의 병은 치료가 됩니다.


유전 공학을 통한 인류 질병의 퇴치는 꿈이 아닙니다. 이런 유전자 처리는 통한 질병의 치료는 부분적이지만 이미 실행되어 성공을 거두고 있습니다. 또 아기를 낳지 못하는 부부가 아기를 갖게 되기도 했습니다.


이 외에도 유전 공학을 통해 식량 문제가 해결될 것입니다. 유전 공학을 통해 벼 품종 개발을 계속하면 사과 만한 쌀 한 톨로 식사를 해결하는 때가 올지도 모릅니다. 모든 과일과 채소들이 무공해로 대량 생산되는 때가 올지도 모릅니다. 농약 문제는 이런 식으로 해결합니다. 해충에 독이 되는 유전자를 대량 생산하여 그것을 작물에 주입시킵니다. 그러면 그 작물은 해충의 피해를 보지 않게 됩니다.


또 유전 공학으로 공해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될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물을 오염시키는 오염 인자들을 유전 공학을 통해 만들어 낸 미생물이 깨끗하게 먹어 치워버리는 것입니다. 또 다른 미생물들은 공장에서 나오는 매연을 정화하여 상큼한 공기로 만들어 줍니다.


이와 같이 과학 기술의 발전으로 만들어지는 미래 사회는 편리하고 쾌적한 아름다운 사회가 될 수도 있습니다. 각종 첨단 교통 수단과 지역과 지역, 나라와 나라의 공간적 장애물을 없애 버립니다. 지구 사람들은 하나의 생활권에 살게 되고, 생활은 그만큼 편리하게 될 것입니다.


또 유전 공학은 인간의 질병과 식량 문제를 해결할지도 모릅니다. 공해 문제도 전적으로 없애지는 못해도 상당히 줄어들게 만들 것입니다. 그래서 인류의 환경 문제도 상당히 완화될 수 있습니다. 인간이 살게 되는 생활 공간은 더 한층 쾌적하게 될 것입니다.


만약 인간의 미래 사회가 이렇게 건설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또 현실적으로 이런 인간의 미래 사회 건설은 충분히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때, 과학 기술은 인간에게 없어서는 안 될 아주 고마운 존재, 꼭 필요한 존재로 우리에게 다가올 것입니다. 이것이 과학 기술의 ‘환하게 웃는 얼굴’입니다.




- 두 얼굴의 사나이, 과학 기술


1986년 4월 26일, 옛 소련의 우크라이나에서는 인류 역사상 잊지 못할 대 참사가 발생했습니다. 바로 체르노빌 핵발전소 사고입니다. 4개의 원자로 중 제4호기 원자로 노심이 녹아 내리면서 폭발했던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성서」에 나오는 ‘인류 최후의 날’을 인용하면서 그때의 처참한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피 섞인 우박과 불이 나서 땅에 쏟아지니 땅의 3분의 1이 타서 사위고, 수목의 3분의 1도 타서 사위고 각종 푸른 풀도 타서 사위더라.


― 「요한계시록」




체르노빌 핵발전소의 폭발력은 대단했습니다. 학자들에 다라 조금씩 다르지만, 그 위력은 히로시마에 떨어졌던 원자폭탄 500발에서 1200발 정도라고 합니다. 그것의 피해도 대단합니다. 사고 직후 1990년까지 16만 5천명의 인구가 이주를 했고, 앞으로도 20만이 넘는 사람이 다른 곳으로 가야 합니다. 1991년 2월 한 보고에 의하면, 체르노빌 핵 사고로 고통받는 사람이 400만 명이 넘고, 그 중에서 어린이는 80만 명이라고 합니다. 또 그 범위도 막대하여 소련은 물론 한국과 일본 등의 아시아와 유럽, 미국 등에서도 방사능 낙진이 떨어져 문제가 되었습니다. 경제적 손실은 약 4천억 달러, 우리 돈으로 하면 약 320조에 달하는 액수입니다.


1994년 지금, 체르노빌 핵발전소 사고가 있은 지 8년이 되었습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쯤 체르노빌은 사고 이후 상당히 상태가 좋아졌을까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체르노빌에서 4, 5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도시인 프리페트는 원자력 발전소 관계자들이 거주하던 곳으로, 한때는 활기차고 살기 좋은 도시였습니다. 고층 아파트가 줄지어 서 있고 도로는 시원하게 뚫려 있으며 학교와 스포츠와 센트 등 각종 편의 시설이 갖추어졌습니다.


그러나 사고 이후 이 도시는 방사능에 뒤덮여 앞으로 2만 5천년동안 사람이 살수 없는 ‘죽음의 도시’가 되었습니다. 현재 약 30만 톤의 콘크리트와 철근 등으로 봉쇄된 4호기에서는 지금도 방사능이 새어 나오고 있어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발전소로 남아 있습니다. 아직도 원자로 노심에는 핵연료가 남아 있어 제2의 폭발을 우려하고 있습니다.


체르노빌 사고는 인류 역사상 과학 기술 발전이 초래한 가장 처참한 참사 중의 하나였습니다. 보다 값싸고 안전한 전기를 위해 만들었던 발전소가 일순간의 사고로 엄청난 원자 폭탄으로 변했던 것입니다. 물론 체르노빌 핵발전소 사고는 상당히 예외적인 경우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것을 가지고 다른 핵발전소 문제를 평가해서는 안됩니다. 그러나 체르노빌 핵발전소는 사고 전,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발전소 중의 하나라고 했습니다. 그런데도 사고가 난 것이며, 세계에 있는 모든 핵발전소도 ‘절대적으로’ 안전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1993년 11월 8일자 「타임」지에는 재미있는 사진이 하나 실려 있습니다. 가운데에 젊고 멋지게 생긴 두 부부가 앉아 있습니다. 그 주위에는 깜찍한 사내 아이 8명이 알록달록한 옷을 입고, 또 서로 각기 다른 표정을 짓고 서있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이상한 게 하나 있습니다. 8명의 아이들 얼굴이 모두 똑 같은 것입니다. ‘8명의 일란성 쌍둥이라…….’ 우리에게 네 쌍둥이는 그렇게 낯설지 않습니다. 그러나 8명의 일란성 쌍둥이는 좀 이상합니다. 쌍둥이가 아니라면 도대체 어떻게 해서 8명의 얼굴이 똑 같은 자식을 둘 수 있을까요? 방법은 하나뿐입니다. 인간을 그대로 복제하는 것입니다. 「타임」지의 이 사진은 바로 ‘인간 복제 실험’을 다룬 특집 기사의 내용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기 위해 실은 것입니다. 물론 사진의 내용은 실제 상황이 아니라 조작을 통해 만든 것입니다.


1993년 10월 13일, 미국 워싱턴 대학 메디컬센터의 연구팀은 역사상 처음으로 인간의 배자(胚子, 엠브리오 embryos)를 복제하는데 성공했습니다. 여기서 ‘배자’란 난자와 정자가 수정을 해서 만들어진 수정란으로, 하나의 생명체로서 갖추어야 할 기관들이 아직 형성되기 전 단계까지의 생명체를 뜻합니다. 인간의 경우 수정 이후 8주가 지나면 손과 발 등의 기관이 생기기 시작하는데, 이 8주까지의 단계를 ‘배자’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후의 배자는 ‘태아’라고 합니다.


그 복제 방법은 간단합니다. 하나의 배자를 계속 세포 분열시키는 것입니다. 실제 실험에서는 그렇게 세포 분열한 배자를 6일 후에 폐기해 버렸습니다. 그러나 만약 폐기하지 않고 세포 분열한 무수한 배자를 시험관이나 여자의 자궁에 다시 안착시키면 그대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배자의 복제 성공은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에 엄청난 파문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동물 수정란의 복제는 이미 생산적으로 널리 사용되고 있습니다. 우량종인 젖소나 돼지 등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입니다. 또 인간 수정란의 실험도 전에 있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실험관 아기입니다. 그러나 그때는 어디까지나 임신할 수 없는 여자를 대신해서 시험관에서 수정을 시켜 다시 그 사람에게 안착시킨 것입니다. 실험관 수정 때도 논란은 많았지만 계속 진행되었습니다.


그러나 인간 배자의 복제는 달랐습니다. 인간 배자를 복제하는데 성공했다는 것은, 앞으로 인간을 인공적으로, 또 대량으로 ‘생산’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이제 인간은 ‘신’의 뜻과 상관없이 인간을 ‘창조’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인간 배자의 복제 실험을 보면서 말했습니다. “인간의 과학 기술은 여기가 한계인가?”라고요.


인간 복제는 어디까지나 가능성이기는 하지만 만약 앞으로 계속 된다면 많은 문제를 야기할 수 있습니다. 인간 생명의 존엄성은 이제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인간을 마음대로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은 동시에 인간을 마음대로 죽일 수 있다는 생각으로 쉽게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또 뛰어난 인간만을 ‘대량으로 생산’하고, 그렇지 못한 인간은 강제로 소멸시키는 일이 생길 수 있습니다. 실제 역사에서, 독일 나치가 우수한 게르만 민족을 보전하기 위해 우생 입법을 제정한 적이 있기 때문에, 이것은 단순한 가상이 아닙니다. 또 인간 복제 과정에서 괴물이 탄생할 수도 있습니다. 혹시 유전자 조작이 잘못되어 인간이 제어할 수 없는 상황이 초래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은 물론 지나친 상상일 것입니다. 아직 인간은 이런 정도의 과학 기술 발전을 이룬 것도 아니고, 설사 발전을 이루었다고 해도 그렇게는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실제 인간의 수정란을 대상으로 하는 실험은 아이를 가질 수 없는 사람을 도와 준다는 좋은 목적으로 시작되었고, 또 실제 그랬습니다. 그러나 인간 복제가 다양한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주장이 전혀 가능성이 없는 상상만은 아닙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에 의해 진행된 ‘생체 실험’과 같은 끔찍한 짓을 할 수 있는 것이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인간 사회에는 상상하기도 싫은 일이 정말로 발생할지도 모릅니다.


핵 발전소나 핵 폐기물 등 원자력 문제 외에도 과학 기술이 빚어낸 문제는 많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지금 가장 심각하고, 결국은 인류의 생존을 위협할 수 있는 것이 ‘환경 문제’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환경 문제를 인간의 과학 기술이 만들어 낸 가장 나쁜 결과 중의 하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또 지금 만약 그것에 제대로 대처하지 않으면, 앞으로 인류 전체의 생존을 장담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걱정하고 있습니다.


이런 핵 문제나 환경 문제에 비해, 유전 공학이나 생명 공학의 문제는 아직 사람들의 집중적인 관심사는 아닙니다. 유전 공학의 피해는 지금까지 이룬 유전 공학의 성과에 비해서는 별 것 아니고, 또 그런 문제들이 현실화되기까지에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인간 복제의 문제나 그 밖의 다른 유전 공학과 관련된 문제도 지금 단계에서 전혀 문제가 없는 것이 아닙니다. 또 그 문제의 심각성이 환경 문제에 비해 결코 작은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핵발전소 문제나 환경 문제, 그리고 인간 복제의 문제란 과학 기술의 발전 없이는 도저히 생길 수 없는 문제라는 것에 동의합니다. 그리고 현 단계에서는 과학 기술의 이런 문제 -피해들- 가 그것이 주는 이점 못지 않게 크다는 것에도 동의합니다. 이런 것들이 과학 기술의’찡그리고 고통스러워하는 얼굴’입니다.


이제 우리는 알았습니다. 과학 기술은 ‘환하게 웃는 얼굴’과 ‘찡그리고 고통스러워하는 얼굴’을 갖고 있다는 것을, 그래서 우리는 과학 기술을 ‘두 얼굴의 사나이’라고 부를 수 있다는 것을. 그러나 우리에게는 다음과 같은 문제가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지금 우리에게는, 이 두 얼굴 중에서 어떤 얼굴이 과학 기술의 진짜 얼굴 모습으로 비치고 있을까요? 아니면 두 얼굴 중에서 어떤 얼굴이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을까요?




낙관적인 시각


서양 역사에서 과학 기술을 바라보는 주된 관점은 16세기에서 18세기 사이에 있었던 ‘과학 혁명’을 통해 형성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아는 것이 힘이다’라는 프란시스 베이컨(P. Bacon)의 말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그에 의하면 과학의 목적은 자연에 대한 진리를 발견함으로써 인간 생활에 도움을 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인간은 오직 과학의 힘으로써만 인간 생활의 향상을 달성할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과학관은 한마디로 실용주의적 과학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 과학 기술의 발전을 곧 인간 사회의 진보. 발전으로 간주하는 과학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실제 서양 역사에서 이러한 과학관은 커다란 역할을 했습니다. 중세는 종교가 사람들의 생각을 지배하는 시대였습니다. 사람들의 실천을 좌우하는 것은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생각이 아니라, 교회의 주장이나 성경의 가르침이었습니다. 따라서 당시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에는 비합리적이고 미신적인 요소가 많았습니다. 또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은 자율적이지 못하고, 항상 신과 교회에 얽매어 있는 상태였습니다. 일차적으로 베이컨 식의 과학관은 이런 중세적 세계관을 붕괴시켰습니다. 사람들에게 합리적인 이성에 따라, 과학의 가르침에 따라 생각하고 행동할 것을 권했습니다.


베이컨의 과학관은 데카르트, 뉴턴 등의 과학 연구에 의해 뒷받침되면서 더욱 확고한 지위를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곧 서양에서의 산업혁명을 가능하게 만들었고, 자본주의 발전을 꽃피울 수 있게 했습니다.


 특히 산업혁명과 자본주의의 발전은 과학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 왔습니다. 무엇보다도 과학은 이제 기술과 떨어지려야 떨어질 수가 없었습니다. 과학의 연구 성과는 곧바로 산업 생산의 기술이 되었던 것입니다. 또 반대로 기술의 발달에 따른 산업 생산의 증가는 다시 과학의 발달을 촉진했습니다. 그래서 과학과 기술은 이제 하나의 단어로 ‘과학 기술’이 될 정도가 되었습니다.


또한 산업 혁명과 자본주의의 발전은 ‘과학과 국가를 결합’시키는 효과를 낳았습니다. 자본주의는 국내적으로나 국제적으로 경쟁을 통해 운영되는 경제 체제입니다. 경쟁은 일차적으로 상품의 생산과 판매를 통해 이루어지는데, 과학 기술은 바로 그 경쟁의 승리자와 패배자를 만들어 내게 되었습니다. 뛰어난 과학 기술로 상품의 원가를 낮추고 질을 높인 국가는 경쟁에서 승리하여 강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부와 명예를 안고 강대국으로 발전할 수 있었습니다.


또 과학 기술은 배의 건조나 무기의 생산을 가능하게 했고, 이 때문에 과학 기술이 발전한 나라는 동시에 군사적으로도 강대국이 될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이유는 모든 국가에서는 과학 기술의 발전에 총력을 기울였고, 과학 기술의 발전은 이제 한 나라의 ‘종교’가 되다시피 했습니다.


현대에 들어와 이러한 과학관은 실용주의 철학으로 계승 발전하게 됩니다. 실용주의에서는 모든 학문과 기술의 가치를 평가하는 기준으로 실용성을 제기합니다. 사람들의 생활을 향상시키는데 이바지하는 것은 올바른 것이고 좋은 거이며, 그렇지 못한 것은 잘못된 것이고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현재 우리나라의 과학관도 기본적으로 이러한 것을 계승하고 있습니다. 특히 약육강식의 국제 경제 질서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과학 기술의 발전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주장되고 있습니다. 말뿐만 아니라 행동으로도 국가는 과학 기술의 발전을 위해 무척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런 생각과 행동에는, 과학 기술의 발전이 곧 경제의 발전이고, 국가의 발전이며, 더 나아가서는 국민 생활의 발전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습니다. 그리고 오직 과학 기술의 발전을 통해서만 미래의 국제 사회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비장한 각오도 서려 있습니다. 물론 이는 우리나라만의 생각과 행동은 아닙니다. 다른 나라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과학관은 과학 기술의 미래에 대해서도 상당히 낙관적입니다. 과거에도 과학 기술의 비약적인 -지수 함수 곡선의 형태- 발전을 해 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데에 조금도 의심하지 않습니다. 또 과거에 과학 기술의 발전이 인류 사회의 발전을 이끌어 왔듯이 미래에도 그럴 것이라 봅니다. 인간의 생활은 편리하고 안락하게 향상될 것이고, 그것을 가능하게 만들 수 있는 동력은 과학 기술의 발전에서 나온다고 봅니다.


물론 환경이나 인구 등의 여러 가지 사회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그러나 그런 것의 해결은 오직 과학 기술의 발전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봅니다. 특히 앞으로의 과학 기술은 계속해서 비약적으로 발전할 것이기 때문에 환경 문제 등의 해결은 충분히 가능하리라 봅니다.


따라서 이러한 과학관에 따르게 되면, 과학 기술의 발전은 과거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정당하고 바람직한 일’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관점을 ‘긍정적이고 낙관적인 과학관’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부정적인 관점


인간의 과학 기술 발전을 바로 보는 시각에는 긍정적이고 낙관적인 관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특히 현재에 커다란 문제가 되고있는 환경 문제와 관련해서는 과학 기술의 발전에 대해 상당히 가혹한 시각들이 점차 확산되고 있습니다.


이 관점에 따르면 지금까지의 과학관은 ‘기술 중심’, ‘인간중심’의 과학관으로 환경 문제를 야기한 주범이었습니다. 인간 중심의 과학관에서는 자연이나 생태계는 전혀 고려의 대상이 아닙니다. 오직 인간 생활의 향상과 발전을 위해 자연을 개발하고 이용하는 것만이 남아 있고, 과학 기술은 그것을 가능하게 만들어 주는 유용한 도구입니다. 이 때문에 자연은 파괴됩니다. 숲은 베어지고 강과 호수는 오염됩니다. 공기는 더렵혀지고 하늘의 오존층은 구멍이 나며, 인간을 둘러 싼 환경은 점차로 황폐화됩니다.


기술 중심의 과학관은 동시에 물질 중심의 가치관․세계관이라고 합니다. 과학 기술의 발전은 곧 생산의 향상, 경제의 발전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생산의 향상, 경제의 발전은 곧 인간 물질 생활의 풍요를 가능하게 하고 그것을 더욱 촉진시키게 됩니다. 이젠 웬만한 집에는 냉장고, 텔레비전이 없는 집이 없습니다. 그리고 전반적인 소득 수준과 소비 수준은 높아졌습니다. 이렇게 과학 기술의 발전은 물질 생활의 풍요와 연결되고, 물질 생활의 풍요는 곧 모든 사람의 목표가 됩니다. 이것은 과학 기술이 발전할수록(물질 생활이 풍요로울수록) 더욱 심화되고, 그래서 선진국일수록 개인주의화와 인간 소외의 문제가 심각한 것입니다,


이렇게 지금까지의 과학관에 대해 비판적인 사람들은 다른 과학관을 제시합니다. 무엇보다도 이들은 환경 문제와 관련하여 ‘생태 중심의 관점’을 주장합니다. 인간은 자연의 많은 생물들과 마찬가지로 동등한 존재일 뿐입니다. 인간이 다른 생물보다 우월한 존재이며 이 때문에 다른 생물을 이용할 권리를 가졌다고 보는 것은 인간의 오만일 뿐이라고 주장합니다. 또 지난 역사를 뒤돌아보았을 때, 자연에 대한 인간은 전혀 반갑지 못한 존재였다고 합니다. 특히 과학 기술은 자연과 생태계의 파괴를 일으킨 주된 범인이었다고 비판합니다. 따라서 앞으로 과학 기술은 어떻게 하면 인간의 물질 생활을 향상시킬 것인가를 중심으로 생각되어서는 안되며, 대신 어떻게 하면 자연의 파괴를 초래하지 않을까, 더 나아가서는 어떻게 하면 파괴된 자연을 회복하고 보호할 수 있을까를 중심으로 생각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다음으로 이들은 인간의 가치관과 생활 양식을 바꾸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과학 기술 중심 주의에서 초래된 물질 중심의 가치관을 버려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무조건 많이 생산하고 많이 소비하는 생활 양식은 폐기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러한 가치관과 생활 양식은 결국 환경의 파괴로 귀결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관점의 사람들은 과학 기술의 미래에 대해서도 상당히 비관적입니다. 지금까지 과학 기술이 비약적인 발전을 했다는 것은 인정합니다. 그러나 앞으로도 그것이 계속된다는 보장은 없다고 주장합니다. 과학이 지나치게 세분화되어 서로 무엇을 하는지 모르기 때문에 교류가 차단되고 발전이 저해된다고 합니다. 또 과학 기술이 초래한 환경 파괴와 인간 생명의 위협 등에 대해 사람들이 비판적이므로 과학 기술은 더 이상 전과 같이 발전할 수 없다고 봅니다. 이런 저런 이유로 이들은 과학 기술의 미래에 대해 비관적입니다.


이러한 관점 때문에 이들은 인간 사회의 미래가 ‘화려한 장밋빛’이라는 데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만약 지금과 같은 산업 발전과 자연 파괴, 물질의 소비와 향락 등을 계속한다면 인류 사회의 미래는 암담하다고 봅니다. 또 어떤 면에서 보면 이미 인간의 자연 파괴 활동은 그 한계를 넘어 섰다고 볼 수 있으며, 따라서 지금 당장 자연 파괴를 중단하고 회복시키기 위해 노력해야한다고 주장합니다.


우리는 이와 같은 과학관을 과학 기술에 대해 ‘부정적이고 비관적인 시각’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물론 이러한 시각은 과학 기술에 대해 ‘긍정적이고 낙관적으로 보는 시각’에 비해 아직 소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점차로 많은 사람들의 생각은 바뀌어 가고 있습니다. 이제 더 이상 사람들은 과학 기술의 발전이 무조건 옳다고 보거나, 과학 기술의 발전이 인간 생활의 발전을 가져온다고 보지 않게 되었습니다. 특히 환경 문제가 심각하게 되어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이런 시각은 더욱 확대되고 있습니다.




대안은?


우리는 20세기를 마감하고 대망의 21세기를 준비하는 단계에 와 있습니다. 그리고 21세기는 누가 무어라고 해도 과학 기술의 발전에 의해 주도되는 사회가 될 것임에는 분명합니다. 그것은 거대한 파도와 같은 시대의 물결입니다. 이럴 때 우리에게는 과학 기술을 바라보는 올바른 관점이 요구됩니다.


 과학 기술을 바라보는 우리의 관점은 크게 둘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습니다.


먼저, 과학 기술에 대해 사람들이 갖는 태도라는 관점에서 살펴볼 수 있습니다. 서양의 역사에서는 계몽주의 시대, 과학 혁명의 시대가 있었습니다. 그 시대는 중세에서 근대라는 새로운 시대로 넘어가는 과도기에서, 인간이 가져야하는 정신의 자세를 준비하던 시대였습니다.


사람들은 과학의 발전에 따라 세상을 다르게 보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신이 아니라 인간을 중심으로, 감정이 아니라 이성을 중심으로 세계를 바라보았습니다. 그때까지 내려오던 모든 제도와 문화는 ‘이성의 불’을 거쳐 새롭게 태어나야 했습니다. 더 이상 권위에 의해 강요되는 ‘당연한 제도와 문화’라는 것은 용납되지 않았습니다. 경험적인 실험과 관찰,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추론을 통해 모든 것은 다시 검토되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시대를 ‘이성의 시대’, ‘과학의 시대’라고 불렀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과학은 절대적이라고 여겨졌습니다. 과학은 향상 올바르고 정당하며, 인간 사회의 발전과 행복을 보장해 준다고 믿었습니다. 사람들은 과학과 이성이라는 무기를 앞세워 중세 시대의 사상을 격파해 나갔고, 정치와 경제를 발전시켰습니다. ‘시민 혁명’과 ‘산업 혁명’은 이러한 움직임의 상징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상당한 성과를 거두며 현재까지 이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과학은 진리성, 절대성에 대한 믿음이 지금도 강하게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과학 기술에 대한 이런 관점들이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지난 300년 동안 인간이 이룩한 과학 기술이 어떤 결과를 초래했다는 보았을 때, 우리는 지난 시기의 관점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생각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인간에게는 제1․2차 세계대전이라는 두 차례의 거대한 전쟁이 있었습니다. 두 전쟁을 통해 인류의 생명과 재산은 파괴되었습니다. 또한 과학 기술의 이용은 자연의 파괴, 생태계의 파괴라는 심각한 문제를 야기했습니다. 그리고 이 모두의 과학 기술의 발전은 전제로 하는 것이고, 또한 과학 기술에 대한 그 동안의 관점 속에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지금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과학 기술의 발전은 무조건 올바른 것일까요? 과학 기술의 주장은 항상 정당하고 반드시 진리일까요? 또 과학 기술에는 사람들의 주관이 개입되어 있지 않고, 항상 객관적이었을까요? 과학 기술은 가치의 문제 - 옳고 그름의 문제 - 와는 전혀 상관없는 중립적인 것일까요? 이제 우리는 더 이상 미루지 말고 이런 질문에 답변해야 합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은 이런 질문에 대해 다음과 같이 대답합니다. 과학 기술은 가치의 문제와 전혀 관계가 없는 중립적인 것도 아니다. 과학 기술의 주장은 틀릴 수도 있으며, 인류 역사에서 실제로 틀린 적도 많았다고.


우리는 이런 관점을 과학 기술에 대한 ‘상대적인 관점’이라고 부릅니다.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런 상대적인 관점이라고 생각됩니다. 과학 기술에 대한 상대적인 관점은 그 동안 과학 기술이 이룩한 업적을 전적으로 무시하지는 않습니다. 또 과학 기술이 필요 없다거나 버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과학기술의 절대성을 주장하는 것에 대해 반대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과학 기술의 상대성을 주장하는 것은 우리가 좀더 바람직한 생각을 갖도록 하는 물꼬를 트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가 과학 기술의 절대성을 강력하게 신봉하고 있는 한, 우리는 인간 삶의 참된 가치의 문제나 문화와 예술이 갖는 깊은 의의의 문제, 인간과 자연의 관계와 생태계의 올바른 관계 문제 등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할 수 있는 여지가 적어지게 됩니다. 또 과학적인 논리에 의해서는 설명할 수 없는 인간의 제반 가치에 대해서는 무시하는 경향이 있게 됩니다. 그리고 실제 지난 역사에서는 그래 왔던 것이 사실입니다. 따라서 우리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과학 기술의 상대성’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과학 기술을 인간 사회의 관점에서 살펴볼 수 있습니다. 다른 모든 분야와 마찬가지로 과학 기술도 ‘진공 상태’에서 형성되고 발전된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반드시 인간 사회에서, 인간의 역사 속에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과학 기술을 바라볼 때도 항상 인간의 역사와 사회라는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합니다.


인간의 역사와 사회에서 바라보았을 때, 과학 기술 그 자체를 ‘올바르다, 틀리다’라고 말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현재 과학 기술이 문제가 되는 것은 과학 기술 그 자체가 잘못 되어서가 아니라 사회의 다른 영역과 관계를 맺으면서 문제가 발생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인간 사회가 그것을 잘못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다음과 같은 문제를 예로 살펴봅시다. 앞에서 말했듯이 유전 공학의 발달로 인해 멀지 않은 미래에 인간 유전자의 위치와 각 유전자들의 기능에 대한 규명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인간의 불치병 치료 등에서 커다란 발전을 이루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다른 심각한 문제가 야기될 수 있습니다. 그때가 되면 회사에 취직하거나 생명보험을 들 때, 더 이상 주민등록증이나 다른 서류가 절대적이지 않게 될 것입니다. 왜냐 하면 모든 사람들은 개인별로 자신의 유전자 상태를 기록한 카드를 갖게 될 것이고, 그것만 있으면 그 사람에 대해 완전하게 파악하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회사에서는 그 사람의 유전자 상태를 보고 우수한가 아닌가, 건강한가 아닌가를 판단할 것이고, 보험회사에서는 유전자를 보고 건강 상태를 판단하며, 또 그것에 근거하여 보험료 납입액을 결정하게 될 것입니다. 또 사회에서는 유전자에 따라 ‘뛰어난 인간, 나쁜 인간’이라는 선이 그려지게 되어 인종 차별과 같은 ‘유전자 차별’이 생길지도 모릅니다.


더 나아가 만약 ‘시험관 수정’과 ‘인간 복제’가 이루어진다면, 좋은 유전자를 가진 사람의 난자와 정자가 비싼 돈으로 거래되는 일이 생길지도 모릅니다. 또 그것만 전문으로 다루는 회사가 생기도 돈 버는 사람도 생길 것입니다.


이처럼 인간의 건강한 삶을 위해 개발된 유전 공학이 인간 개인과 사회의 불행을 초래하는 수단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는 전력의 공급과 질병 치료를 위해 사용되는 원자력이 핵 폭탄이라는 무시무시한 살인 무기로 바뀌게 되는 것과 동일한 이치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과학 기술에 대해 평가할 때는 항상 그것이 형성되고 발전하는 인간의 사회와 역사를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정확히 말하면, 우리는 과학 기술의 문제를 인간의 사회와 역사라는 맥락에서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래야만 우리는 과학 기술이 초래한 문제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고, 또 그 문제를 해결하는 해결책을 올바로 제시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았을 때, 결국 과학 기술의 옳고 그름을 결정하는 것은 인간의 역사와 사회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의 다이너마이트가 사람을 죽이는 무기로 사용되느냐 아니면 광산의 중요한 채굴 도구로 사용되느냐를 결정하는 것은 다이너마이트 그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들입니다. 즉 다이너마이트가 만들어지고 사용되는 인간의 역사와 사회가 문제인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그 동안 과학 기술이 잘못 사용된 면이 있는 것도 결국은 인간의 역사와 사회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었습니다. 따라서 과학 기술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동시에 잘못된 인간의 사회를 고쳐서, 과학 기술이 바르게 형성되고 이용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관점은 특히 우리가 환경 문제를 다룰 때 필요한 관점입니다. 환경 문제는 과학 기술의 발전 그 자체 때문에 야기된 것이 아니라, 인간의 잘못된 관점과 이용 때문에 발생한 것입니다. 인간은 자연의 일부분, 생태계의 일원이라는 생각을 갖지 못했습니다. 항상 우월한 존재로서 자연을 이용하고 파괴할 권리를 가졌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관점에 입각해 인간의 이익을 위해 자연을 파괴하는 데 과학 기술을 이용해 왔습니다. 돈을 절약하기 위해 강한 독성이 있는 가스와 액체를 하늘과 강에 버리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그 대가를 치르고 있습니다. 만약 지금이라도 올바른 제도와 정책을 실시하도록 노력하는 등 인간 사회의 변화를 꾀한다면 과학 기술은 환경 보호의 주요한 수단이 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지금까지 말한 것과 관련하여, 우리는 하이제베르크(Heisenberg, 1901-1976)의 다음과 같은 말에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그는 ‘불확정성의 원리’를 제기한 독일 과학자로서, 1932년도에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바 있습니다. 또 제2차 세계대전과 나치의 통치 그리고 원자 폭탄의 투하, 1950-60년대의 냉전시대 등 어려운 시대를 직접 몸으로 겪으면서 과학 연구에 평생을 바쳐 온 사람입니다.




과학은 사람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다. 이와 같은 사실을 사람들이 다시 한 번 새겨 본다면 때때로 한탄하고 있는 정신 과학․예술 분야와 기술․자연 과학 분야라는 부 문화 사이에 가로 놓여 있는 단절을 에울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 본다. 이 책은 저자 자신이 살았던 최근 50년 간에 발전해 온 원자물리학에 관한 이야기들이다.


(중략)


토론과 대화에 있어서 원자물리학이 항상 주역을 연출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인간적이고 철학적이며 정치적 문제들이 빈번하게 등장하는데, 이는 자연 과학이 이와 같은 일반적 문제들과 분리되어서는 성립되기가 매우 어렵다는 사실을 분명히 밝히는 데 큰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 「부분과 전체」에서




29. 과학적 지식은 항상 참인가


나우누리 ID ZSXCY, 94. 10. 30


다음으로 들 수 있는 불확실성의 원인으로는, 앞의 것과 비슷한 점이 있기는 하지만, 관찰자의 배경이다. 즉 관찰은 관찰자가 속한 문화, 과거에 겪은 경험, 가지고 있는 지식, 기대 욕구 따위에 영향을 받는다. 자라보고 놀란 가슴은 솥뚜껑 보고도 놀라게 되어 있다. 예전에 전혀 본 적이 없는 것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관찰할 수도 없다. 걸리버 여행기를 보면, 걸리버가 소인국과 대인국, 말의 나라 등에서 본 것을 기록해 놓은 것이 있다. 재미있다. 조선에 왔던 서양인들이 조선의 생활 모습을 기록해 놓은 글들은 또 얼마나 우스꽝스러운가,




우리는 ‘자연과학’, ‘과학적’이라는 말에서 무엇을 떠올리는가? 일상인의 상식에 따라 답변해보자. “왠지 답답한 느낌”, “수학”, “확실한 지식”, “실험과 관찰”··· 이러한 답변들을 정리하면, ‘엄밀한 실험과 관찰에 근거한 자연현상에 대한 탐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일상적으로 과학적이라고 하면, 대체로 우리는 그것이 객관적이고도 분명한 것임을 의미한다고 결론을 내릴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더나아가 쓸모 있는 것까지도 의미할 수도 있다. 가령 상품의 광고에 ‘과학적’이라는 말이 들어가면, 우리는 그것이 매우 믿을만한 상품이라는 생각을 가지게 된다. 그러므로 어떤 것이 ‘비과학적’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엄격한 기준을 가지고 있지 못하거나, 쓸모 없는 것, 작동 불가능한 것, 미신이나 다를 바 없는 것 등의 의미까지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결국 과학은 확고부동하게 객관적이고도 보편적인 지식의 토대 위에 서있음을 의심하는 일상인은 거의 없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이제 이러한 우리의 ‘일상적 과학관’이 확실한지를 살펴보자. (*이는 우리의 출발점을 분명히 하기 위해서이다. 어떤 탐구를 시작하려 할 때, “과연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무엇이고, 모르는 것은 무엇인지를, 그리고 알고 있는 것은 과연 확고부동한 것인지”를 살펴보는 것은 문제상황을 분명히 해주고, 앞으로의 논의에서 쓰이게 될 개념들의 범위를 정해주며, 더러는 논의의 방향을 규정해주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일상인의 과학관’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과학이 가진 ‘정확함’이라는 성격이다.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과학에 대해서 믿음을 가지게 하는 핵심적인 요소이다. 또 일상인의 과학관에는, 명시적으로 나타나지는 않았지만, 과학은 객관적인 세계를 탐구대상으로 한다는 점을 말할 수 있다. 그리고 과학은 엄밀한 규칙에 따라 움직인다는 믿음도 들어 있다. 그러면 이러한 세 가지 점을 중심으로 ‘일상인의 과학관’을 살펴보자.


질문을 하나 해보자. “과학의 탐구 대상인 객관적 세계에 대해서 우리는 확고한 지식을 가질 수 있는가?” --- 이 질문에 대해서 “그렇다”는 대답이 나와야 우리는 과학의 확실성을 자신할 수 있다. 그렇다고 가정해보자. 즉 우리는 세계를 ‘세계가 있는 그대로(as it is)’ 알 수 있다고 해보자. 그러면 다음 질문은 “그러한 지식은 무엇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어지는가?”이다. 우리는 이 물음에 대해서 주저 없이 “감각기관”이라고 답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객관적 세계에 대해서 확고한 지식을 가질 수 있는지 없는지는 우리의 감각기관이 우리에게 확고한 data를 줄 수 있는지 아닌지에 달려있게 된다. 상황이 이쯤에 이르면 우리는 처음에 가졌던 자신감이 많이 줄어든 느낌을 가지게 된다. 감각을 확장시켜주는 탐지기구, 예를 들면, 망원경이나, 현미경 등을 거론한다해도 상황은 그리 나아지지 않는다. 결국 우리의 감각기관은 그리 믿을만한 것이 되지 못한다는 것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우리가 객관적 세계에 대한 지식이라고 말하는 것들은, 엄밀한 의미에서는 객관적인 것이 아니라, 우리의 주관이 조금이라도 개입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이제 과학법칙의 확실성의 문제로 넘어가 보자. 대개 과학은 관찰된 사실(fact), 즉 관찰사례들을 논리적 규칙에 따라 추론함으로써 법칙을 만들어낸다고 여겨진다. 이러한 방식에 따라 하나의 법칙을 만들어보자.


압구정동 갤러리아 백화점 앞에서 오후 2시부터 4시 사이에 아주 짧은 치마를 입고 지나가는 여자들의 숫자를 일주일에 걸쳐서 세었더니 평균 31명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data에 근거해서 “서울시내 번화가에서 오후 2시부터 4시 사이에는 짧은 치마를 입은 여자가 31명 정도 지나간다.”라는 결론을 내렸다. 이것은 관찰사례를 근거로 해서 일반화를 한 결과이다. 그러면 이 결론에는 어떤 문제점이 있는가? 우선 압구정동이라는 한 지점에서 관찰한 사실을 서울시내 전체로 ‘성급하게 일반화’한 오류가 있다. 그리고 어느 정도까지를 짧은 치마로 할 것인가에 대한 기준도 없다. 또한 일주일동안의 관찰사례는 모든 계절을 대표할 만한 것이 못된다. 여름에는 그 숫자가 폭발적으로 증가할 수도 있을 것이며, 또 겨울이라 해도 짧은 치마가 유행이라면, 숫자가 여름보다도 많을 수가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 결론은 귀납에서 요구하는 몇 가지 규칙을 어긴 것이다.


그러면 귀납에서 요구하는 몇 가지 규칙을 지킨다면, 그것은 엄밀한 성격을 띤 과학법칙이라 할 수 있을까? 어떤 경우에든지 관찰사례가 많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원자폭탄이 터지면 사람이 얼마나 죽을 것인가는 충분히 여러 번 실험해 보지 않아도 된다. 그리고 아무리 많은 수의 사례가 있어서도 그것은 필연적 지식이기보다는 개연적 지식이어서 언젠가는 뒤집어질 여지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모든 과학법칙이 관찰된 사례가 반드시 먼저 있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관찰된 사례라 해도 완벽하게 객관적인 것도 아닐 뿐더러, 더러는 과학자의 선입견이 관찰된 사례를 무시하는 경우도 있다. 코페르니쿠스가 그 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지구가 태양의 주위를 돈다는 것을 말하기는 했지만, 그것이 타원임은 부인했다. 그는 천체가 완전한 것이고, 완전한 것이라면, 반드시 완전한 원을 이루어야 한다는 그리스적인 선입견을 버리지 못했던 것이다.


이상의 검토들을 통해서 우리는 과학이 일상적인 믿음과는 달리 그리 확실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어떻게 보면, Feyerabend의 말처럼, 과학은 미신과 다를 바 없는지도 모른다. 그러면 우리는 세상에서 믿을만한 것을 또하나 잃어버린 것일까? 그것이 싫다면 어떻게 해서든지 과학을 확고한 토대 위에 놓는 일들을 해야 할 것이다.




어떻게 해야 자연과학은 확실한 것이 될 수 있는가? 이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찾아보기 위해서 우리는 먼저 자연과학이 사용하고 있는 방법들을 살펴보기로 하자.


자연과학에서 가장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방법으로는 귀납의 방법이 알려져 있다. 귀납은 단칭적 관찰언명에서 출발한다. 즉 우리의 감각을 사용한 관찰사례에서 출발한다. 이 관찰언명은 어떤 장소, 어떤 시간에 일어난 어떤 사건에 대한 서술이다. 이러한 관찰언명으로부터 귀납은 보편언명을 이끌어 낸다.


이렇게 단칭적 관찰언명으로부터 보편언명을 이끌어 낼 때에는 3가지 정도의 조건이 요구된다.




1) 관찰언명은 수적 많아야 한다.


2) 관찰은 다양한 조건아래서 반복될 수 있어야 한다.


3) 이미 성립되어 있는 보편적 법칙에 어긋나서는 안 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러한 과정을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많은 수의 A가 다양한 조건의 변화 아래서 관찰되었고, 그리고 관찰된 A가 모두 예외 없이 B라는 성질을 가지고 있으면, ‘모든’ A는 B라는 성질을 가진다.” 이처럼, 관찰을 통해서 얻어진 사실을 추상하여 성립한 과학의 법칙과 이론은 다시 구체적인 사례에 적용됨으로써 현상을 설명하고 앞으로 일어날 일을 예측하는 기능을 하게된다.


일반적인 귀납의 방법에 따라 성립된 법칙으로는 멘델의 법칙을 들 수 있다. 그는 완두콩의 ‘이종재배’를 통해서 사례를 얻은 후, 그것을 ‘일반화’하여 ‘법칙’에 도달했다. 그가 실험을 할 때, 주목한 것은 완두콩의 모양(둥근 것, 주름진 것)과 빛깔(초록색, 노란색)이었고, 숫자에서 나타나는 약간의 오차는 무시했다.


첫 번째 실험에서 그는 둥근 것 5,474개, 주름진 것 1,850개 = 2.96:1이라는 사례를, 두 번째 실험에서는 초록색 428개, 노란색 152개 = 2.82:1이라는 사례를 얻었고 그것으로부터 제2세대에서는 우성형질과 열성형질의 비율이 약 3:1이라는 결론을 얻었다.


그런데 이러한 일반적 형식의 귀납보다는 가설 연역적 방법이 자연과학에서 더 널리 쓰인다. 이 방법은 먼저 적절한 가설을 세우고 그것에 관찰사례를 적용시켜 가설을 검증한 뒤, 그 가설을 정설로서 확증하는 방법이다. 이러한 방법을 적용한 예로는 케플러가 화성궤도를 계산한 것을 들 수 있다.


케플러는 화성의 상대적 위치를 관찰하여 화성의 궤도를 알아내려 하였다. 즉 화성의 위치에 대한 확인된 사실로부터 하나의 법칙이나 화성의 운동에 관한 일반명제를 추론하려고 하였다.(*이는 일반적 귀납의 방법을 시도한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해서 얻어낸 것은 화성의 궤도가 달걀모양이라는 막연한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우선 화성의 궤도가 타원이라고 가정하고 이 가설아래서 화성의 위치를 수학적으로 계산한 뒤, 계산결과를 이미 있던 관찰자료에 맞추어 보았다.(*이는 법칙을 증거에 비추어 검증한 것이다) 다행하게도 관찰자료와 수학적으로 계산한 위치는 서로 잘 맞아떨어졌다.(*만일 그렇지 않았다면, 그는 가설을 바꾸어야 했을 것이다. 물론 가설이 아니라 관찰사례가 잘못되었다고 할 수도 있다. 가설을 바꾸어야 하는지, 관찰사례를 다시 구해야 하는지를 나중에 다룬다)


지금까지 우리는 자연과학에서 널리 쓰이고 있는 귀납의 방법을 살펴보았다.


그러면 과연 귀납은 자연과학을 분명한 토대 위에 놓아줄 수 있는 방법일까? 귀납은 아무런 약점이 없을까? 이제 우리는 그 점을 알아보자.


귀납은 논리적으로 타당한 논증이 아니다. 즉 귀납에서는 전제가 아무리 참이라 해도 그 결론이 ‘반드시’ 참이라는 것을 보증할 수가 없다. 다시 말해서 아무리 “다양한 상황”아래서 “충분히 많은” 관찰을 했다해도 그것이 결론의 참됨을 보장해주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귀납이 가진 이러한 약점을 아주 정확하게 지적한 것으로는 Russell의 ‘칠면조’가 있다. 이를 간략하게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영특한 칠면조가 있었다. 이 칠면조의 주인은 새해 1월 1일부터 이 칠면조를 기르기 시작해서, 매일 아침 10시면 어김없이 먹이를 주었다. 칠면조는 먹이를 주는 시간을 여러 가지 상황에서 알아보았다. 그랬더니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월요일이건 일요일이건. 어쨌든 날이면 날마다 이 주인은 10시면 어김없이 먹이를 주는 거였다. 그래서 이 칠면조는 “나의 주인은 아침 10시면 먹이를 준다”는 귀납적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12월 24일 아침에도 이 칠면조는 느긋하게 먹이를 먹으러 나가려고 하였다. 그런데 그 날엔 10시도 되기 전에 주인이 먹이를 주러 오는 것처럼 보였다. 칠면조는 먹이를 먹었을까? 아니다. 주인은 먹이 대신 칼을 가지고 왔던 것이다.


다른 예를 들어보자. 2000억 마리의 까마귀(까마귀가 그렇게 많은지는 모르겠지만)를 관찰해서 “까마귀는 까맣다”는 결론을 얻었다고 해보자. 2000억개 정도의 관찰사례라면 우리는 “충분히 많은”이라는 조건을 만족시키리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가령 다른 모든 점은 까마귀와 똑같은데 다만 빛깔만 하얀 까마귀가 나타났다고 해보자. 2000억 마리의 까마귀는 순식간에 박살날 것이다.


충분히 많은 실험이 정말로 중요한 것일까? 원자폭탄이 터지면 어느 정도의 피해가 있을 것인지를 알아보기 위해서 날이면 날마다 실험을 할 필요가 있을까? 40여 년 전에 이루어진 한 번의 실험이면 충분할 것이다.


아주 근본적으로 따져보면, 귀납은 궁극적으로 우리의 감각기관을 통하여 얻어진 관찰사례가 가진 ‘직관적 명증성’에 기초를 두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직관적 명증성이 과연 얼마나 확실한지는 역사적으로도 문제시되어왔음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지구가 평평하다든지, 태양이 지구의 둘레를 돈다든지. 지금도 우리는 지동설을 배우기 전까지는 태양이 지구의 둘레를 돈다고 생각한다.(어린아이에게 “지구가 해의 둘레를 돈다”는 것을 설명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울 것인가, 차라리 내버려두는 게 낫다) 위에서 들어보인 예들은 귀납이 가진 약점을 어느 정도 보여준다. 그러면 이처럼 귀납에 문제가 있다면 그에 대응하는 해결책은 없는가? 우리는 대체로 다음 2가지 정도의 해결책을 들 수 있다.


1) 회의주의적 대안: 이는 문제해결의 시도를 포기하는 것으로 대표적으로는 인과율에 대한 Hume의 논증을 들 수 있다. 그는 법칙(특히 인과율)이나 이론에 대한 믿음은 서로 연관된 것처럼 보이는 관찰을 반복하여 경험함으로써 얻어진 심리적 관습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대안을 취하게 되면, 우리는 자연과학이 필연적 지식을 가져다 준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그리고 자연과학은, 아쉽지만, 미신이나 다를 바 없는 것이 된다.


2) 아예 과학이 귀납에 근거하고 있음을 부인하고 과학의 확실성에 대한 다른 근거를 찾는다: 이는 이른바 ‘반증주의자’들의 시도인데, 이들의 주장은 다음에 다룬다.


지금까지 우리는 자연과학이 일반적으로 사용하고 있다고 알려진 귀납의 법칙의 일반적 원리와 그것이 가진 한계등을 살펴보았다. 그 결과 귀납은 자연과학의 확실성을 보장하기에는 그리 믿을만한 방법이 되지 못함을 알 수 있었다.


다음에는 관찰이 과연 ‘순수한 의미의 관찰’인가하는 문제, 이론과 관찰의 관계를 살펴보기로 한다. 이는 자연과학이 관찰에 궁극적 토대를 두지 않는다는 입장을 검토하기 위한 준비이다.




우리의 감각기관이 가진 ‘직관적 명증성’에 의존하고 있는 것은 귀납만이 아닐 것이다. 사실 우리의 일상 생활은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것 없이는 이루어질 수가 없다. “이 두 눈으로 똑똑히 봤다”라는 말처럼 분명한 말이 어디 있는가? 그러면 이러한 감각경험들, 즉 관찰은 과연 정확한 것일까? 그것이 정확하지 않다면, 자연과학이 실험, 관찰에서 출발한다는 것은 바로 부정확에서 출발한다는 것을 뜻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어떤 사물을 관찰했을 때, 그것을 표현해 놓은 문장은 관찰된 사물의 참 모습과 얼마나 딱 맞아 떨어질까? 만일 그것이 딱 맞아 떨어지지 않는다면, 자연과학책들에 나오는 서술들은 사물들에 대한 객관적인 서술이기는 커녕 어린이 동화와 비슷한 것이 되고 말 것이다.(* 동화책이 차라리 나을지도 모른다. 그것이 진짜라고 믿는 이는 거의 없을 테니까.) 이러한 문제들은 관찰의 확실성, 관찰과 이론의 관계등의 문제틀로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앞의 문제부터 살펴보기로 하자.


관찰의 확실성에 대해서는, 결론부터 말하자면, “절대로 확실하지 않다”는 것에 거의 모든 이들이 동의할 수 있다. 우선 똑같은 사물을 우리가 아무리 여러번 관찰한다해도 그때마다 똑같은 결과를 이끌어 내지는 않는다. 그 이유는 상식적으로도 알 수 있다. 눈이 피로할 때, 마음이 언짢을 때, 주변 환경이 적당하지 않을 때. 이런 모든 경우에 영향을 받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실험실에서 조작된 실험을 하고 정확한 측정기구를 써서 그것을 기록한다. 그렇지만 문제의 밑바닥에 놓인 관찰의 부정확성을 막기에는 힘이 모자란다. 결국 최후의 판단자는 사람의 눈인 것이다.


다음으로 들 수 있는 불확실성의 원인으로는, 앞의 것과 비슷한 점이 있기는 하지만, 관찰자의 배경이다. 즉 관찰은 관찰자가 속한 문화, 과거에 겪은 경험, 가지고 있는 지식, 기대 욕구 따위에 영향을 받는다. 자라보고 놀란 가슴은 솥뚜껑 보고도 놀라게 되어 있다. 예전에 전혀 본 적이 없는 것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관찰할 수도 없다. 걸리버 여행기를 보면, 걸리버가 소인국과 대인국, 말의 나라 등에서 본 것을 기록해 놓은 것이 있다. 재미있다. 조선에 왔던 서양인들이 조선의 생활 모습을 기록해 놓은 글들은 또 얼마나 우스꽝스러운가, 또 얼마나 속물적 우월감을 가지고 그것을 써 놓고 있는가? 하늘의 별을 망원경으로 보아도 천문학 전문가가 본 경우와 별하고는 담쌓고 사는 이가 본 경우는 엄청나게 다르다. 의학도들은 엑스레이 사진이나 슬라이드를 보고 진단을 내리는 훈련을 한다. 척보면 알게 되어 있는게 아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병원에서 의사가 그것을 들여다 보며, 영어로 뭐라고 하면, 주눅이 들기 마련이다. 우리 눈에는 시커먼 것하고 하얀 것밖에 안보이니까. 또 우리는 우리가 보고 싶은 것만 본다. 우리의 눈 앞에 있는 사물전체를 있는 그대로 보는 이는 아무도 없다. 필요한 것만 골라서 보기 마련이다.(* 이 점은 전철을 타보면 금방 알 수 있다)


다음으로 관찰된 사물과 그것을 기록한 서술이 딱 맞아 떨어지는지를 살펴보자. 이것도 결론부터 말해보면, “절대 아닌 것은 아니지만, 딱 맞아 떨어진다고 할 수도 없다”이다. 가장 간단한 예를 들어보자. “내 책상은 네모다”라는 서술이 있을 때, 이 말이 책상에 대한 모든 것을 말해주지는 않아도, 어느 정도는 진실을 말해준다고 생각하는 게 상식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네모라는 것이 과연 어떤 것인지를 정확하게 규정할 수 없다. 그것은 기하학에서 쓰이는 추상적인 개념일 뿐, 우리가 손으로 잡을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1’을 볼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또 “정말로 책상이 네모인가?”하고 물으면 그것에도 그리 시원스런 대답을 할 수 없다. ‘세상에 네모난 책상이 어디있나? 그렇다고 믿고 사는게지.’ 이렇게 따져보면, 알고 있는 모든 단어를 모두 들어 보아도 책상을 정확하게, 있는 그대로 설명한다는 것은 무척이나 어렵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더나아가 관찰과는 무관하게 새로운 개념들을 만들어 내지 않으면 어떤 사물이나 보이지 않는 그 무엇을 설명할 수 없는 경우도 있다. ‘힘’이라는 개념을 생각해 보자. 힘을 눈으로 볼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것을 볼 수 있다고 우기는 사람도 실제로는 힘을 표현한 보조기구를 보고 있는 것일 따름이다.


시계는 볼 수 있어도, 시간은 볼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렇다면 ‘힘’이라는 개념이 없을 때에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었던 것들이 그 개념이 생겨남으로 해서 설명할 수 있게 된 경우를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론적 틀이 정확해야 관찰도 정확하게 할 수 있다’는 결론에 이를 수 있다.




지금까지 우리는 상식적인 과학관, 즉 자연과학이 관찰에 근거한 자료와 그것으로부터 이끌어진 법칙을 밑바탕으로 해서 이루어진다는 주장이 가진 문제점들을 집중적으로 살펴 보았다. 그렇게 살펴보니, 그러한 주장은 별로 대단한 힘을 가지지 못한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자연과학은 도대체 무엇에 근거하고 있는가’


이 문제에 대한 해결은 그리 간단해 보이지가 않는다. 앞으로 우리는 과학철학의 여러 이론들을 살펴보면서 이 문제에 대한 답변을 찾아 보기로 하자.




이번에는 자연과학의 확실성에 대한 지금까지의 논의를 정리하자. 그리고 나서 자연과학에 대한 여러 이론들, 그중에서도 Kuhn의 paradigm이론, Feyerabend의 ‘아나키즘적 인식론’에 대해서 논의하기로 하자. (논의는 쟈클린 뤼스, <지식과 권력> 제 1권 pp. 55 - 71을 중심으로 정리한다.)


귀납의 토대에 대한 검토에서도 알 수 있었듯이, 우리가 알고 있는 자연과학의 가장 근본적인 밑바탕은 바로 인과율이다. 이는 “모든 일이 하나의 원인을 가지고 있으며, 동일한 원인은 동일한 결과를 가져온다”는 ‘믿음’이다. 왜 믿음인가? 자연과학의 법칙에 대해서 믿음이라는 말을 쓸 수 있는가? Hume의 인과율 분석에서 이미 드러났듯이, 인과율은 자연의 사물을 인식하는 우리와는 무관하게 존재하는 대상들 속에 들어 있는 법칙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속에서 생겨난 경향일 뿐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인과율에 근거한 것이 바로 결정론이다. 유명한 결정론자인 라플라스의 말을 들어보자. “지성 앞에서 불확실한 것은 아무 것도 없으며, 과거처럼 미래 또한 지성의 눈앞에 명백히 펼쳐질 수 있다.” 이는 달리 말하면, 자연법칙의 최고질서는 본질적으로 절대적이고 불변한데 우리의 능력이 모자라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있는 그대로 인식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라플라스의 악마’라고도 불리운 이 결정론은 모든 과학의 뿌리에 놓여 있는 것이었고, 어느 누구도 그것에 대해서 반론을 제기할 수 없는 것으로 간주되어 왔다.


그러나 이제는 굳이 철학적인 통찰이 아니어도, 현대 자연과학의 발전이 그러한 결정론에 대해서 그야말로 결정적인 타격을 가하고 있다. 그 실례로 흔히 거론되는 것은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의 원리’이다. 이 원리를 간단히, 비과학적으로 설명해보자. 가령 어떤 못생긴 남자가 여자에게 “나 잘생겼지?”하고 물었다고 해보자. 그 여자는 “못생겼다”고 대답할 것이다. 이 경우에는 질문을 하는 남자의 태도가 여자의 답변에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않아서 비교적 객관적인 대답을 얻을 수 있는 경우이다. 그런데 그 남자가 여자의 목에 칼을 들이대고 위협적인 말투로 “나 잘생겼지? 엉~~”하고 물었다고 해보자. 여자는 “엄청 잘생겼다”고 대답할것이다. 물론 목숨을 걸고 진실을 말하는 여자도 있겠지만, 그까짓 사소한 일에 목숨을 걸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 경우에는 질문자의 태도가 대답하는 자의 답변에 영향을 끼쳐서 객관적인 대답을 얻어내지 못한 경우이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어떤 물체의 위치를 측정하려면, 최소한 그곳에 ‘빛을 비추어야’ 한다. 그리고 빛은 아인슈타인의 이론과 광전효과에 의하면 일정한 운동량과 에너지를 가진다. 따라서 우리가 어떤 물체의 위치를 측정하고 싶어서, 빛을 비추면 이미 그 물체는 빛의 영향을 받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일상에서 접하는 물체들은 빛의 영향을 받기에는 너무 크므로, 별 문제가 되지 않지만, 원자나 전자에게는 빛의 에너지가 너무도 큰 힘이 아닐 수 없다. 예를 들어 황색 빛(광자)이 전자에 비춰지면, 그 에너지가 엄청나서, 전자는 850km/s, 수소에 부딪히면, 수소는 40km/s로 튕겨져 버린다. 인공위성이 지구둘레를 도는 속도가 7.9km/s인데 이 얼마나 빠른 속도인가. 그러니 우리는 극히 미세한 물체의 위치를 정확하게 측정할 수가 없고 대충 짐작만 해야 하는 것이다. 불확정성의 원리를 통해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미세한 물체의 특성을 측정하려는 모든 시도가 예측불가능한 혼란만 가져오고 그럼으로써 물체의 다른 특성에 대한 정확한 측정이 방해받는다는 것이다.


더나아가 우주의 시초에 대한 연구들은 우주가 그리 질서정연한 체계로서 생겨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우주의 주된 법칙은 바로 무질서임을 보여준다. 그러니 “무질서는 모든 것에 선행하며, 무질서야말로 사물의 본질이어서 질서있는 체계란 참으로 드문 섬들이고 예외일 뿐”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도 있다. 세계는 그저 있을 뿐이다. 여기서 법칙을 찾고자 하는 것은 인간의 지나친 욕심일 수 있다. 본래가 무질서인데 어떻게 무질서로부터 질서를 이끌어 낸단 말인가?




30. 외국인 노동자와 인권




꿈에 부풀었던 네팔 근로자 13명이 우리 나라 ‘인권의 피난처’ 명동 성당에서 서툰 한국 말로 “우리를 짐승 취급하지 말라.”고 외치며 농성에 들어갔다. “우리들은 가난한 나라에서 왔지만 우리들의 인간 존재 자체는 가난하지 않습니다. 제발 때리지 마세요. 과거 여러분의 조상도 일본에서 우리 같은 일을 겪지 않았습니까. 그 때를 기억해 주세요.”…




외국인 노동자들이 국내에 첫 유입될 때만 해도 이들은 뜨거운 감자와도 같은 것이었다. 외국인 노동자들을 받아들일 때에 발생할 수 있는 많은 문제점들을 우려하면서도 그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현실 때문에 이렇다 저렇다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얼마 전 외국인 노동자들이 집단적으로 농성을 하면서, 이들은 새로운 각도에서 관심의 대상이 되기 시작했다. 이들이 우리 사회에 끼치는 나쁜 영향들 때문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의 무관심 속에서 이들이 얼마나 지독한 인권 유린을 당하고 있는가가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에 정부는 부랴부랴 대책 마련에 나섰고, 사람들은 비로소 외국인 노동자들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이번 호에서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국내에 유입된 배경과 그 문제점 그리고 해결 방안에 대해 알아보기로 하자.




노동은, 팔고 사는 데 있어 다른 상품과는 다른 두 가지 특성이 있다. 첫째, 노동은 저장했다가 팔고 살 수 없다. 오늘 8시간의 노동을 팔지 못하면 그것은 영원히 없어져 버리는 것으로, 다른 상품처럼 저장해 두었다가 더 비싼 값으로 다음날 팔 수는 없다. 둘째, 노동은 자연인인 근로자의 인격으로부터 완전히 분리해서 매매할 수는 없다. 따라서, 근로자를 생산 과정에 참여시키는 데 있어서는 임금 외에도 근로 조건의 개선, 인간적인 대우 등이 요청된다.


「정치․경제」 교과서 P. 314~315에서




방글라데시 인 하산은 지난해 인천의 자동차 베어링 회사에서 드릴 머신으로 작업을 하던 중 장갑이 빨려 들어가면서 손가락이 절단됐다. 회사측에 보상을 요구했으나 고용주는 “너 같은 놈은 경찰에 고발하면 당장 추방된다.”고 위협, 다른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구타했다.   〈조선일보, 95. 1. 6〉




지난해 7월 입국해 경기도 고양시 밑가구에서 일하던 중 폭행과 임금 체불 등을 견딜 수 없어 지난달 회사를 탈출했다는 프레임 라나(26.네팔)는 “월급 5백 달러에 의료 서비스, 생필품․숙식 무료 제공, 기술 습득 가능이라는 현지 광고를 보고 찾아왔지만 한국에 와서야 월급이 2백 10달러라는 것을 알았다. 더구나 4개월간 일하는 동안 월급은 한 번도 받아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한겨레신문, 95. 1. 12)




꿈에 부풀었던 네팔 근로자 13명이 우리 나라 ‘인권의 피난처’ 명동 성당에서 서툰 한국 말로 “우리를 짐승 취급하지 말라.”고 외치며 농성에 들어갔다. “우리들은 가난한 나라에서 왔지만 우리들의 인간 존재 자체는 가난하지 않습니다. 제발 때리지 마세요. 과거 여러분의 조상도 일본에서 우리 같은 일을 겪지 않았습니까. 그 때를 기억해 주세요.” (동아일보, 95. 1. 11)




이 기사들을 읽으면 어떤 생각이 드는가? ‘외국인 노동자들이 참 안됐다.’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이러는 데에는 뭔가 속사정이 있겠지.’라고 생각하지는 않는가! 혹은 강자에게는 한없이 약하면서 약자에게는 한없이 강한, ‘추한 한국인’ 상을 떠올리지는 않는가! 아니면 어쩔 수 없는 현실을 두고 우리의 언론들이 너무 부산을 떨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가! 어찌하였든 이러한 판단들은 사회 과학적인 지식을 바탕으로 판단할 때 합리적인 것이 된다. 그러므로 무엇이 문제이고, 왜 이러한 문제들이 나타나며, 어떻게 해야 하는지 사회 시간에 배운 지식을 근거로 하여 풀어 보자.


외국인 노동자는 왜 국내로 유입되고 있는 것일까? 그리고 이것은 국내에 어떤 파장을 몰고 오는가?


(독서평설) 96년 3월호에서


31. 전자 게임 분석


조 현 환


나우누리 ID tcak, 95. 11. 22


‘누가 더 살인을 잘 하는가.’ 바로 이것이 관심의 초점이 되는 것이다. “가장 화려하게. 미학적으로 살인하는 자는 누구인가.” 이러한 질문들을 아이들은 속으로 되풀이하며 그들의 기술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혈안이 된다. 바야흐로 살인의 예술가들이 탄생하는 순간이다.




요 근래 들어 젊은 사람들 사이에서 3D(dirty, difficult, dangerous) 업종을 기피하는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이것은 우리의 경제가 성장하여 생활 수준이 향상되면서 국민들의 의식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더구나 객관적으로 놓고 봐도 근로자들의 기술과 학력 수준이 높아져 단순 기능 직종에 종사할 수 있는 인력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단순 기능직이거나 3D 업종에 관련된 부문에 대한 노동 공급이 줄어드니, 이 분야에서의 임금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임금이 높아지면 상품의 가격도 높아지고, 노동 집약적 공업은 쇠퇴하게 된다. 그러므로 국내에서 노동 인력을 구할 수 없으면 해외에서라도 구해 올 수밖에 없다. 그런데 노동의 이동이 자유스러운 나라라면 외국 노동자들의 유입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것이지만, 이를 법을 통해 규제한다면 불법 체류를 통해서라도 유입이 이루어지게 된다.


노동 시장은 일반 상품 시장보다 시장 개방에 있어서 훨씬 문제가 많은 부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외국인 노동자의 유입은 단순한 노동력의 수입이 아니라, 우리와 매우 다른 사회․문화․종교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 살아야 하는 복잡한 과정이다. 인구가 과밀한 지역에서는 과밀 인구로 인한 사회적 긴장을 증가시키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특히 외국인 노동자들이 국내에서 결혼을 하고 2세, 3세를 낳게 되면, 문제는 보다 장기적으로 일어나게 된다. 이와 같이 외국인 노동자의 유입은 당장 노동력을 이용하는 한시적인 이익 이상으로 많은 부담을 준다.


외국인 노동자의 유입은 내국인 사이의 이해 상충으로 갈등을 일으키기도 한다. 외국 노동자들이 유입되면 기업측은 값싼 노동력을 이용할 수 있으므로 이득이 된다. 이 점에서 재벌들의 모임인 ‘전국 경제인 총연합회’나 중소 기업가들의 모임인 ‘중소 기업 연합회’는 외국인 노동자들의 수입에 적극적이다.


그러나 값싼 인력이 들어오면, 국내 노동자들의 임금도 떨어지고 많은 노동자들이 실업자로 전락하게 되는 문제가 발생하기도 한다. 이 때문에 노동 조합은 외국인 노동자들의 수입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우리 정부는 이전에는 외국인 노동자의 수입에는 적극적이지 않다가, 1991년에 노동자의 수입을 공식적으로 허용했다. 첫 수입은 91년 10월 외국 투자 기업들이 현지에서 고용한 인력의 기능 향상을 위해 국내 연수를 시킨다는 명분으로 허용됐다. 이에 따라 1만 3천여 명의 외국인 근로자들이 들어왔다. 하지만 인력 관리에 잇달아 문제가 발생하자, 93년 4월 일단 중단되었다. 그런데 중소 기업의 인력난이 심각해지면서, 다시 연수생들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상공 자원부 장관이 지정하는 산업체에 까지 대상을 확대하였다.


원래 정부는 연수생들을 도입할 때, 한 사람이 들어오면 다른 한 사람이 빠져 나가는 이른바 ‘회전문’ 방식의 고용을 채택했다. 이를 위하여 송출 업체가 이들의 여권을 관리 보관하는 것을 허용했다. 문제는 연수생들이 정부가 원하는 대로 움직여 주지 않았다는 점이다. 연수생들이 임금을 더 많이 주는 곳을 찾아 자신이 있던 작업장을 이탈한 것이다. 이들은 작업장을 이탈하면 불법 체류자가 되지만, 대신 더 많은 임금을 받을 수 있기에 기꺼이 이 길을 택한 것이다. 현재 우리 나라의 외국인 근로자는 약 10만 명으로 추산되는데, 이들 중 6-70%가 불법 체류자이다.


외국인 근로자들의 처우 문제가 사회 문제로 대두된 것은 이들의 법적 지위가 모호하게 규정된 데서 비롯되었다. 산업 기술 연수생으로 들어온 외국인 근로자들은 형식적으로 근로자가 아니기 때문에 노동 관련법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 이 때문에 체불, 폭행 등 인권 탄압에 시달리고, 적지 않은 근로자들이 배정된 업체를 이탈해 대우가 나은 업체에 불법 취업하는 부작용이 일어난다. 그렇지만 불법 체류자는 임금만 조금 높았지, 인권 상황은 오히려 더욱 더 악화된 상태에 놓인다. 불법 체류자는 언제든지 불법 체류 상태를 거부할 수 있는 사용자의 처분에 내맡겨져 있어 쉽게 반노예 상태에 처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의 법은 이들의 인권에 대해 눈을 감을 수밖에 없는가?


우리 나라 헌법 제6조 제2항은 ‘외국인은 국제법과 조약이 정하는 바에 의해 지위가 보장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 근로 기준법 제5조는 ‘사용자는 근로자에 대해 국적․신앙 등을 이유로 근로 조건에 대한 차별적 대우를 하지 못한다.’고 규정, 외국인 노동자의 지위를 보장하는 법적 근거를 두고 있다.


이와 함께 서울 고등 법원은 93년 11월 ‘불법 취업 중 산업 재해를 당한 외국인 근로자에게도 국내법에 따라 보상금을 주어야 한다.’고 판결, 업계와 정부가 자의적으로 외국인 노동자의 지위를 정할 수 없음을 분명히 했다.


이런 규정들이 분명히 있음에도 불구하고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비인간적 대우를 하고 있는 이 현실은 어떤 방법으로든지 반드시 개선되어야 한다. 만약 외국인 노동자들에 대한 처우를 현재대로 계속한다면, 우리 나라는 근로자의 기본권에 관한 국제적 기준을 무시하는 나라로 낙인 찍히게 될 것이고, 국제적으로 ‘추악한 한국인’, ‘인권 탄압국’이라는 오명을 쓰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에겐 어떤 정책들이 필요한가?


먼저, 이들에 대한 사회적 보장이 마련되어야 한다. 외국 노동력의 도입이 지금 상태에선 필수적이라면 이들에게 대가를 지불하는 것은 당연하다. 외국인 노동자들도 사회 보장 수혜 대상이 되어야 하며, 노조 가입 및 노동 3권이 보장되어야 한다. 이는 노동법상 합법적인 근로자로 인정받는 것을 의미한다. 이에 따라 노동법상의 근로 시간 규정이 지켜질 것이며, 산업 재해 보상 보험법 및 산업 안전 보건법 등의 적용을 받아 산재 보험이나 재해 예방 문제가 해결될 것이다.


둘째, 우리 국민에게 적용되는 자유권이 이들에게도 보장되어야 한다. 사업장 이동의 자유를 보장해 강제 노동을 금지해야 한다. 사업장 이동의 자유란, 기업 도산 및 해고, 노동 관계법 위반 등의 경우 일정한 절차를 거쳐 타 사업장으로 옮겨 일할 수 있는 권리다. 현행 외국인 산업 기술 제도는 사실상 강제 노동에 해당되므로 블루 라운드(Blue Round) 등 국제 회의에서 비난의 소지가 될 수 있다. 강제 노동 국가로 판정받으면 국제 사회에서 무역 규제 대상국으로 낙인 찍힐 위험이 크다.


셋째, 산업 연수 제도에 대한 개선이 필요하다. 현재의 방식은 노동력 착취의 방편으로 악용되고 있으므로 근본적인 개선이 이루어지거나 폐지되어야 한다. 그러나 공식적으로 이미 들여온 외국인들을 당장 돌려보낼 수도 없는 처지다. 그러므로 신중한 조처를 취해야 한다.


넷째, 외국인 노동력의 수입에 앞서 우리 나라 유휴 노동력의 활용 방안이 먼저 검토되어야 한다. 현재 우리 나라 노동력은 전체적으로 볼 때 절대적으로 부족한 것은 아니다. 청소년․여성 및 고령자 등 2백여 만명의 유휴 노동력이 있다. 예컨대 생산직 인력으로 취업 가능한 청소년 실업자는 21만명에 이르고 있는데 이들의 90% 정도가 직업 훈련을 받지 못하고 있다. 이런 유휴 노동력을 먼저 활용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외국인들에 대한 우리의 자세를 고쳐야 한다. 일부 선진국의 국민들에 대해서는 저자세로 일관하고 개발 도상국의 국민에 대해서는 야만인 취급하는 우리 나라 사람들의 태도는 분명히 비난받을 소지를 안고 있다. 우리 나라에 거주하는 모든 내외국 시민들이 동등하게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갖고 대우받을 때, 우리 나라의 시민들도 다른 나라에서 동등한 권리를 받고 살아가게 될 것이다.


한 마디로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인권은 보호하되 외국인 취업은 엄격히 규제해야 하고, 인력 수급 체계를 정비해 나가는 것이 가장 최선의 방책일 것이다.


게임 제작을 전망으로 두고 있는 입장에서 지금까지 게임에 대해 가지고 있던 나의 생각들을 정리해보았다.




내가 제일 처음 접한 게임은 인베이더이다. 그 때가 중2때던가. 오락실의 흑백 모니터에 셀로판지를 붙인 게임기에 동전을 넣고 시작하면 아주 우스운 리듬의 음악과 함께 외계의 괴물들이 쳐들어온다. 나는 비행기를 타고 좌우로만 움직이며 그 괴물들을 총을 쏘아 없애는 것이다. 괴물의 움직임(속도가 점점 빨라짐)을 잘 관찰해서 타이밍만 맞추면 간단하게 몇시간씩 놀 수 있는 게임이었다. 그 후에 등장한 것이 그 유명한 겔라그이다. 이미 게임의 전설처럼 되어버린 그 게임은 아마 누구든 게임을 좋아한 사람이면 몇백만 이상의 기록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이것은 인베이더를 기초로 만들어진 롤플레잉 슈팅게임 쟝르에 속한다.


외계의 생물은 벌,나방등으로 표현되고 움직임이 더욱 복잡해졌다. 이 게임이 이후 모든 롤플레잉 슈팅게임의 원조라고 불리게 된 것이다. 롤플레잉은 이후에 단순한 상하롤플레잉에서 좌우롤플레잉도 나타나게 된다.(롤플레잉은 화면이 스크롤 되며 배경이 변화되는 것이다.) 이후에 엑스리온, 제비우스.등등 무수한 게임들이 계속 등장한다. 이 롤플레잉 슈팅은 아주 고전적인 쟝르임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강력한 쟝르이며 수많은 팬들을 확보하고 있다. 오른손으로 버튼을 탄력적으로 두드리고 왼손으로는 레버를 현란하게 움직이는 이 게임을 잘하는 비결은 아무생각 없이 게임의 흐름을 직감적으로 읽어내는 것이다. 오래하다 보면 처음에 느꼈던 파괴를 통한 카타르시스 같은 것은 이미 느끼지 못하고 그저 본능적으로 모니터를 들여다보며 반복적인 손동작을 계속하게 된다.




대부분의 슈팅 게임은 사용자에게 이렇게 말한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파괴하라!”,”한두번은 죽어도 좋다. 과감하게 적의 중심부로 돌진하여. 적이 간파하기 전에 파괴하고 죽여라!”,”먼저 공격하기 않으면 공격당한다!”.


조금만 오래 버티면 사용자의 무기가 강력해지고 보너스를 얻게 되면 (처음접한 게임의 경우) 상당한 모험을 감수하면서도 과감한 플레이를 펼치게 되는 것이다. 화면상의 자신의 비행선에서 무수하게 날아가는 총알들.독불장군이 따로 없다. 자신의 손가락 한동작에 수많은 적의 탱크,비행기,헬기.그리고 민간인의 건물까지 송두리째 파괴되어 버린다. 롤플레잉 슈팅게임중에서 긍정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요즘엔 이러한 게임쟝르보다는 일대일 파이팅 게임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요새 오락실에 가면 게임기의 반이상이 파이팅 게임이다. 이것은 두 사용자가 일대일로 겨룰수 있기 때문에 업자측의 입장에선 수익성이 훨씬 높다. 어차피 둘 중 하나는 지게 되어 있고. 또 다시 이기려고 동전을 넣기 때문이다. 과거의 싸움의 예술(Art of fighting)이나. 거리의 싸움군(street of fighter)같은 경우에서는 격투를 벌일 때 많이 맞는 상대는 얼굴이 멍들고 옷이 찢어지는 등의 그래픽 효과와 가격이 성공할 때의 타격음, 그리고 일격을 맞고 쓰러질 때의 비명 소리등이 고작이었다. 그러나.일본에서 건너온 사무라이(일면 무사의 투혼.?)는 그러한 것들을 아주 볼품없게 만들어버렸다. 등장 캐릭터가 상대의 몸을 벨 때 뿜어져나오는 아주 붉은 피의 거품이 화면 가득 넘치고. 칼로 상대의 몸을 벨 때 나오는 이상야릇한 사운드는 마치 실제의 살인을 방불케한다. 이 게임은 나오자 마자 선풍적인 인기를 타고. 급속도로 퍼져나갔다. 동네마다 없는 곳이 없고. 누가누가 잘하는지 동네 꼬마들이 인명록을 외울 정도로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킨 게임이다.


’누가 더 살인을 잘 하는가.’ 바로 이것이 관심의 초점이 되는 것이다. “가장 화려하게. 미학적으로 살인하는 자는 누구인가.” 이러한 질문들을 아이들은 속으로 되풀이하며 그들의 기술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혈안이 된다. 바야흐로 살인의 예술가들이 탄생하는 순간이다.


게다가 그 게임에 스며있는 일본정신도 나는 무척 맘에 안든다. 단적인 예로 개를 데리고 다니며 싸움을 하는 파란옷의 겔포드라는 놈은 등장할 때 이렇게 말한다.”나는 파란눈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나에게도 사무라이의 정신이 있으며 그것을 알고 있다. 나하고 싸워보자.” 미친 놈이다. 그래도 젤 맘에 드는 것은 펜싱칼을 들고 있는 프랑스출신 여자 검객이다. 이 여자는 마지막까지 최고의 보스를 이기게 되면 프랑스에서 급전이 온다. 프랑스혁명이 발생했다는. 그러면 여자는 이렇게 말한다···


”이제까지 갈고 닦은 검술을 조국의 혁명을 위해 쓰겠다. 프랑스로 간다.”라고··· 어쨌든 이 가공할 살인미학을 조장하는 게임은 2탄이 출시되었고. 아직도 그 팬들의 동전넣기가 그칠줄을 모른다. 게다가 이번엔 3차원적인 파이팅 게임이 등장했다. 가히 게임의 혁명이다. 입체적인 움직임과 상대를 가격할 때의 실제감들은 이미 어느 수준을 넘어선 것이다.




이러한 게임들을 통해 아이들이 배우는 게 뭘까.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자신이 그런 생각을 갖게 된다는 것을 결코 그들은 알지 못한다. 그것이 게임의 엄청난 힘이다··· 그저 의식의 깊은 곳에 자리잡고 있을 뿐이며 상황과 심리상태가 절묘하게 결합되면 그 잠재의식은 순식간에 현실로 드러날 지도 모르는 일이다.


여기서 내가 가장 관심을 갖고 있는 전략시뮬레이션으로 넘어가 보자. 일반적으로 시뮬레이션 쟝르는 현실의 것을 모델링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아파치라는 영화에 등장하는 조종사 훈련 프로그램같은 것이 시뮬레이션이다. F15나 Wing Commmander 같은 종류는 전투기를 실재로 조작하는 것처럼 아주 많은 키보드의 키를 이용하여 사령부의 명령을 수행한다. 이것은 롤플레잉 슈팅게임을 삼차원적으로. 그리고 보다 현실감있게 변형한 것에 다름 아니다.


전략 시뮬레이션은 사용자의 고도의 사고를 요하는 게임이다. 여러가지를 종합적으로 판단하여. 적재적소에 지시를 내리고 운영하여야 이길 수 있는 게임이다. 초반에는 Cyber Empire같은 단순한 게임에서 시작한다. 이후 그 유명한 일본의 koei계열이 이 쟝르를 삼국지 시리즈로 주름잡게 되고. 대항해시대같은 종류의 게임도 등장한다. 미국에서는 Maxis(? 정확한지 모르겠다.)에서 Simcity···


Simant.Simfarm 같은 것들이 출시되지만 일본쪽의 게임에 비해 인기가 별로 없다. koei계열 외에도. 징기스칸이나. 그와 비슷한 게임은 엄청 많다.




우선 삼국지를 살펴보기로 하자.


이 게임은 삼국지라는 소설을 배경으로 중국의 각지의 성을 다스리며 전국을 통일하는 내용이다. 농업(관개, 치수, 경작)을 발전시키고 상업을 발젼시켜서 거기서 거둬들이는 세금으로 병사를 기르고 무기를 준비하여 다른 제후들과 전쟁을 하고 성을 차례로 점령하는 게임이다. 여기엔 갖가지 전략과 전술이 소개되고 바야흐로 종합적인 사고능력을 이용하는 게임이다. 이러한 종류의 전략시뮬레이션에 한번 빠지게 되면. 처음엔 며칠동안 생활이 엉망이 될 정도로 매달리게 된다. 내가 아는 어떤 후배는 처음 삼국지를 접하고 이 게임을 하느라 두달 동안 집밖으로 나오지도 않았다고 한다.이 게임에서 중요한 것은 뭐니뭐니해도 돈이다.




백성들의 충성도가 낮으면 재해(역병,홍수,태풍,흉작)가 자주 발생하지만 돈만 많으면 쌀을 사서 백성들에게 나눠주고 충성도를 100%로 올릴 수 있다. 얼마나 우스운 경우인가. 군주가 백성들을 어떻게 다스리건 말건 돈만 있으면 해결되는 시점이다.(물론 당시의 시대배경에 비추어 볼 때 그것이 사실적이지만.) 만약 자기 부하중에 지력(지능지수.최고가 100-제갈공명)이 높은 부하가 있으면 그 부하의 조언을 통해 상대의 충성도가 낮은 장수를 우리편으로 빼내올 수 있다. 만약 유비의 부하중에서 관평(관우의 아들.)을 빼내온후 관평에게 군사를 줘서 쳐들어가게 하면 관우하고 목숨을 걸고 싸우게 할 수도 있다. 아버지와 아들이 서로 칼을 겨누고 너죽고 나살자 하는 경우가 된다. 박한상이 따로 없다.


그외의 대부분의 전략 시뮬레인션들을 살펴보아도 게임을 가장 잘하는 방법은 무슨 수를 쓰든지 돈을 많이 모아두는 것이다. 자본의 강력함이 여기저기서 발견되게 되는 순간이다. 이 게임들을 오래하다 보면 현실생활에서도 착각을 일으킨다. 어떻게 하면 자본을 축적할 수 있는지 그 비결을 이미 게임에서 터득하는 것이다. 간혹 게임에 대해 너무 걱정할 필요 없다고(이유는 가상체험이므로.) 말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내 경험으로는 전혀 그렇지 않다. 한때 Simcity에 푹 빠져있던 때에 거리를 나섰다. 도로에 차가 엄청 밀려있는 것이다. 그때 무의식적으로 마우스를 이용하여 도로를 2배로 확장하던 기억이 떠오른다. 거리를 보며 주변의 건물들을 순간적으로 내 의식속에서 부수어버리는 것이다.


이런 것들을 생각해보자. 영어 공부를 가장 잘하는 방법이 무엇인가.그것은 단어들을 연습장에 수십번씩 써가며 암기하는 것이 아니다. 일단 처음 접한 단어는 몇번만 되풀이하고 계속 다음 단어로 진행하는 것이다. 그런 식으로 한권을 일단 끝내고 다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 그러면 기억이 빠르게 되살아오는 단어는 건너뛰고 다른 단어를 다시 반복한다. 이것은 무엇인가 하면. 바로 인간의 잠재의식을 기초로하는 방법이다. 자기 자신이 분명히 기억하지 못한다고 하여도 일단 인간의 두뇌에 접수된 것들은 절대 다른 곳으로 사라지지 않는다. 그대로 기억창고에 저장되어 있는 것이다. 머리가 좋고 기억력이 좋은 사람은 그것을 제때에 잘 꺼내는 사람이다. 때문에 천재와 둔재는 종이한장 차이다. 잘못된 게임 내용에 대한 경각심을 위해 하는 말이다.


 특히. 일본에서 나오는 게임은 그 오염성이 더욱 심각하다. 그들은 모든 게임에 자신들의 이데올로기를 집어 넣는다. 이것을 즐기는 아이들은 무의식중에 이미 일본정신에 녹아들어간다. 자본주의의식은 이미 기본이다.


대항해 시대라는 게임을 해본 사람은 생각이 있다면 무척 분노할 것이다. 그것은 중세 유렵을 배경으로 세계 각국을 돌아다니며 무역을 하고 등장 캐릭터 각자의 시나리오를 진행하는 것인데, 내가 어느날 동남아 지역으로 가보니, 일본에는 항구가 2개 있고 중국에도 하난가 두개가 있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는 항구가 하나도 없다. 이럴 수가. 우리 나라 역사를 잘 모르는 사람이 그 게임을 하게 된다면 필히 일본보다 뒤떨어진 나라였던 것으로 기억할 것이다. 인천 쪽에 작은 촌락 하나만 있고 아무것도 없다. 분노가 치미는 순간이다.




잠시 샜는데··· 다시 삼국지로 돌아가보자.


4탄에서는 어느정도 사실적이고 합리적으로 게임 내용이 변화되었다. 그래픽 처리도 뛰어나게 되었고. 무엇보다 내가 맘에 든 것은 이른바 왕도정치의 이데올로기가 많이 반영된 것이다. 성을 백성들이 편안하게 잘 다스리지 못하면 3탄에서보다도 엄청난 데미지를 입게 되는 것이다. 자본의 한계도 더욱 낮춰지고. 그렇지만 여전히 이 게임은 돈이 최고다. 백성들이야 굶어죽든 말든. 돈만 많이 모으고 병사만 많이 기르고 무기를 잘 준비하면 쉽게 이길 수 있다. 바야흐로 민중을 전쟁의 도구로 결정해버리는 게임이다. 주인공은 절대 민중이 아니다. 봉건시대의 군주인 것이다.


이 군주가 무슨 짓을 하게 되던 전국을 통일하면 백성들은 태평성대가 도래했다고 하면서 성으로 몰려와 환호성을 치고 난리다.정권을 잡음과 동시에 모든것이 합리화되는 순간이다. 전모씨와. 노모씨. 그리고 김모씨가 자꾸연상되는 부분이다. 혹자는 시대배경 자체를 봉건시대로 했으므로 당연한 이야기라고 할지도 모른다. 틀린 말은 아니지. 그렇다고 내가 Koei사로 쳐들어가서 게임내용에 대해 왈가왈부할수 있는 처지도 아니고. 그러나 게임 방식 자체에 스며있는 자본의 논리와 비인간적인 정서. 파시즘적인 이데올로기들이 확산되는 것을 더이상 방관할 수는 없는 없는 일이다. 우리 사회의 어느 영역이고 그렇게 오염되어 있지만 앞으로 조국의 미래를 이끌어갈 아이들을 그렇게 방치해두고 싶지 않다.


내가 이 부분을 위해서 계획하고 있는 부분은 온라인으로 밝힐 성질이 아니라 여기에서 이만 줄이려 한다.혹시라도 게임에 대해 관심이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현재 가장 즐겨하는 게임들을 나름대로 분석해보고 변혁적 관점을 지향해봤으면 한다.


그럼 이만······.


32. 시인 송 현의 우리말 사랑법


송  현


시인, 한글 기계화 연구인이며 칼럼니스트이기도 하다 모두가 국어를 아끼고 사랑해야 함에도 최근 김영삼 대통령이 중국과 러시아를 방문해서 한자로 서명과 휘호를 쓰는 것을 보고 안타까운 마음에서 이 글을 썼다고 한다.


시인, 샘이깊은물, 94년 7월호에서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자연인 김 아무개가 중국 놀러 가서라면, 한자로 서명하거나 아라비아 글자로 서명하거나, 토인들의 그림 글자로 서명하거나 우리가 굳이 항의나 흥분을 할 것은 없습니다. 그러나 주권 국가인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중국 방문을 해 멀쩡한 제 나라 한글을 두고 한자로 서명한 것은, 누가 뭐라고 변명을 해도, 이는 나라 망신의 차원을 넘어서 자랑스런 한글과 국민을 모독하는 일입니다!




나는 얼마 전에 뜻밖의 “봉변”을 당한 적이 있다. 무슨 주간지가 창간될 무렵이었다. 그 잡지사에서 내게 주마다 연재할 칼럼을 한 꼭지씩 써 달라는 주문을 해 왔다. 창간호에 실을 첫 번째 글을 써 준 뒤로, 두 번째 글은 어떻게 쓸까 하고 망설이던 때에 마침 김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해서 한문자로 서명을 하는 것을 보고 이를 비판하는 내용의 글을 ‘나라 망신시키는 김대통령’이란 제목으로 써주었다. 뜻밖에도 그 두 번째 호에 내글이 실려 있지 않아, 무슨 영문인지 물었더니, 고추 먹은 소리를 하는 것이었다. 나는 대충 다음과 같은 요지의 글을 팩시밀리로 보냈다.




“…특히, 주권 국가의 원수인 김영삼 대통령이 중국까지 가서 자기 나라 글자(한글)을 두고 남의 글자(한자)로 서명하는 것은, 나라 망신 시키는 것이라는 아주 당연한 내용의 제 글을 실을 수 없는 잡지라면, 그 동안에 자유 분방한 글을 써 왔고, 앞으로도 그러고자 하는 저와 귀 잡지와는 궁합이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 한마디 덧붙인다면 그런 글도 마음대로 쓸 수 없는 지면에 다른 어떤 글을 마음대로 쓸 수 있을지 염려가 됩니다. 그래서 더는 귀 잡지에 글을 쓰지 않겠습니다.….”




“청와대 큰마당”에 올린 글


그러구러 여러날이 흘렀다. 김영삼 대통령이 러시아 방문을 가게 되었다. 이번에 또 김 대통령이 한자로 서명하여 나라 망신시키게 하면 어쩌나 하는 염려가 되었다. 지난 번에 그 잡지에 싣지 못했던 “나라 망신시키는 김대통령”이란 글을 하이텔의 “청와대 큰마당”에 올리는 것이 좋겠구나 싶었다. 그래서 부랴부랴 하이텔에 가입하여, 유월 십심육일에 「송 현 칼럼」 1, 2를 한꺼번에 올렸는데 그 요지는 다음과 같다.




“1. 「송 현 글방」의 문을 열면서


“저는 지난 사월 초에 창간된 한 주간지에 칼럼을 연재로 쓰기로 하고, 첫 번째 칼럼을 써 준 뒤로 두 번째로 ‘나라 망신시키는 김대통령’이란 글을 써 주었는데, 잡지사가 실을 수가 없다면서 싣지를 않더군요. 그때에 거절당한 문제의 글을 ‘송 현 칼럼 2’에서 소개합니다.”




“2. 외국에 가서 나라 망신시키는 김 대통령


“나는 여러 해 전에 ‘국가 원수가 서명을 할 때, 제 나라 글자인 한글롤 서명하지 않고 한자로 서명을 하면 나라 망신 시키는 일이니까 절대로 그래서는 안됩니다.’는 요지의 편지를 전 두환 대통령에게 보낸 적이 있다. 그런데 김영삼 대통령은 서명을 할 때에 어떻게 하는지 궁금해 하던 차에 중국 방문 소식을 전하는 텔리비전 뉴스를 보면서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김 대통령은 상해 임시정부 청사를 방문하여 입구에서 노만구청장과 임시 정부 청사 관리 소장의 영접을 받으며 방명록에 서명을 하는데 ‘대통령 김영삼’을 한자로 쓰는 것이 아니었나!


“나는 너무나 어처구니가 없어 그날 밥맛이 싹 떨어졌다. 김 대통령은 참외 씨앗 소년을 만날 때도 역시 한자로 서명을 하였다! 아니, 그렇다면 김 대통령은 일본 가서도 한자로 서명을 했을 테고, 미국 갔을 때도 한자로 서명을 했을 것이라 짐작된다.


“…김 대통령은 그 바쁜 일정 가운데서도, 지난 해 이월, 김 대통령에게 취임 축하 편지와 참외 씨앗을 보냈던 중국 소년 주 소화 군을 만났다. 고 어린 것 앞에서 서명을 할 때에도 ‘김영삼’을 한자로 썼다. 주군이 이를 보고 뭐라고 읽었을까? ‘김영삼’하고 읽었을까? 아니다! ‘지인 유옹 싸안’하고 읽었을 것이다. 그러나 대한민국 대통령의 이름은 분명히 ‘김영삼’이다! 가령, 장똘벵이가 물건 팔러 중국에 가서 한자로 서명을했다면 그건 ‘콩이야, 팥이야’할 일고의 가치도 없는 일이다. 그러나 주권 국가의 대통령은 일거수일투족이 자국의 자존심과 주체성과 직결되기 때문에 신중하고 당당해야 한다!


“…그러던 중에 올해 포항 공대에 수석으로 합격한 이 승준 군(서울 과학고 졸업)의 인터뷰 기사를 어느 잡지에서 읽고는 기분이 싹 달라졌다. 기자가 다음과 같이 졸렬한 유도 신문성 질문을 했다. ‘이 오덕 선생님은 한자 쓰시는 것을 아주 싫어하시는데, 이군은 우리가 좀 고생스럽더라도 한문을 배워 두는 게 여러 모로 좋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이군이 대답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한문보다 국어를 열심히 공부하는 게 옳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영어 잘 하려면 세상을 바라보는 관찰법이나 거기에 관해 생각하는 방법까지 영어식으로 전환해야 하는데, 한문 공부를하다 보면 역시 한문식으로 생각하게 돼서 우리들의 머리 속 자체가 한문식으로 바뀔 거에요. 저는 우리식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생각하는 태도가 옳다고 생각합니다.”


“이 얼마나 멋지고 자랑스런 젊은이인가! 어쩌다 이 나라가 대통령조차도 과학적인 제 나라 글자를 두고 남의 글자로 서명하는 기막힌 세상이 되었는지 모르지만, 나는 이 승준 군과 같은 젊은이가 있는 동안에는 이 나라 앞날은 희망이 있다고 본다.”(일천구백구십사년 사월)




청와대에서 온 답장


이 글을 올리고 나자 금세 청와대의 답변이 청와대 큰마당에 올라왔다.




“송 병헌(주: 저의 본명)님께


송 병헌 님의 글을 잘 읽어 보았습니다. 저는 청와대 큰마당을 운영하는 담당 과장입니다. 요 며칠 송 병헌님의 견해와 유사한 내용이 청와대 큰 마당에 접수된 바 있습니다. 타당한 내용이라 기회 있을 때에 우리글, 우리말로 서명하시는 것이 나을 것이라고 건의하겠습니다. 한 가지 송병헌님의 글을 읽고 느낀 점 중에(…) 저 같으면, 같은 말이라도 제목을 좀더 긍정적이고 듣기에 좋은 글로 표현할 것입니다. ‘대통령의 공식 서명은 우리글로’ 이렇게요, 송 병헌님의 「송현 칼럼」을 기대하겠습니다.”




나는 위의 답변을 받고 유월 이십삼일에 “청와대 답변에 답변한다”는 제목의 글을 하이텔 안의 청와대 큰마당에 올렸다. 대충 다음과 같았다.




다섯 시간 만의 짧은 반응


“반갑습니다. 저는 구십사년 유월 십육일자에 「송현 칼럼」을 하이텔 안의 ‘청와대 큰마당’에 올려 놓고 별 생각을 다 했습니다. ‘내 글을 청와대에서 보고 어떤 반응을 보일까? 만약 반응을 보이면 뭐라고 할까? 묵살을 할 경우에 내가 어떻게 해야 할까? 또 일반 독자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알고보니, 제글이 일천팔백열번째로 ‘청와대 큰마당’에 올려졌는데, 그 동안에 청와대에서 개인에게 답변을 한 적이 한 번도 없는 것 같더군요. 그래서 저는 ‘청와대에서 개인에게는 답변을 하지 않나보다’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제가 글을 올린 지 겨우 다섯 시간 뒤에 청와대 정책 조사실에서 제게 위와 같은 답변을 해주셨더군요. 정말 감사합니다.


“저는 청와대 답변을 보고 여러 가지 문제가 있어 깜짝 놀랐습니다. 그렇지만 청와대의 답변에 제가 답변을 하면, 혹시 청와대에 대드는 것 같은 인상을 주지 않을까, 싸움꾼 같은 인상을 주지 않을까? 작은 시비가 큰 시비가 되면 어쩌나, 만에 하나 제 의도가 잘못 전달이라도 되어 엉뚱한 봉변이라도 당하면 어쩌나 싶어 한동안 망설였습니다. 그래서 청와대 답변의 내용에 문제가 많이 있는 줄 알면서도 입 다물고 며칠을 보냈습니다. 그렇지만 제가 제기한 문제의 중요함으로 보나, 청와대에서 「송현 칼럼」을 기대하겠다고 하는 것으로 보나, 양쪽의 글을 읽은 일반 독자로 보나, 제가 답변을 하지 않으면, 근본 문제도 제대로 해결이 되지 않을지 모르겠고, 독자의 궁금증도 풀리지 않을 것만 같아, 어쩔 수 없이 이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청와대의 답변이 외형상으로는 비록 짧지만, 그 안에 담겨 있는 문제는 결코 작지도 적지도 않아, 편의상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서 살펴보겠습니다.




뉴욕 필의 형편없는 청중의 경우


“1. 나라 망신시키는 김대통령‘이란 제목에 대하여


“제가 하이텔 ‘청와대 큰마당’에 「송 현 칼럼」이란 제목으로 글 두 편을 한꺼번에 올릴 때에, 첫 번째 글에 ‘송현 글방을 열면서’, 두 번째 글엔 ‘나라 망신시키는 김대통령’이라는 제목을 달았습니다. 청와대 답변에서 제 글의 제목을 두고 이렇게 지적하셨더군요. ‘저 같으면, 같은 말이라도 제목을 좀더 긍정적이고 듣기에 좋은 글로 표현할 것입니다. 「대통령의 공식 서명은 우리글로」 이렇게요.’


“글쎄요? 물론 ‘나라 망신 시키는 김대통령’ 보다 청와대 조언대로 ‘대통령의 공식 서명은 우리글로’가 훨신 더 점잖고 품위있어 보일 줄은 저도 압니다. 그러나 문제의 본질을 잘 살펴 보면 제가 쓴 제목이 훨씬 적절함을 이해하실 것이라 생각합니다.


“청와대 사람들의 이해의 편의를 돕기 위해 마침 오늘 나온 동아일보(1994년 6월 21일) 문화면의 ‘해외 유명악단 내한 공연/ 청중 예절 수준 이하’라는 머릿기사를 소개한 뒤에, 일부 청중들이 외국 유명 악단 단원들에게 망신을 산 짓거리와 김대통령이 외국에 나가서 벌인 한자 서명 놀음과 비교하여 보겠습니다. 우선 동아일보 신문 기사 잎부분을 조금 소개하겠습니다.


“망신이야, 망신…”


“대지휘자 쿠르트 마주르의 뉴욕 필하모니 내한 공연이 있었던 지난 십육, 십칠일 공연을 보고 세종 문화 회관을 나서던 사람들의 입에서 한결같이 터져나온 말이었다. 그랬다. 그날 연주회장에서는 그냥 넘어가기에는 ‘망신스러운’일이 연이어 벌어졌다.


“지휘자 마주르가 청중들의 열렬한 박수를 받으며 무대에 등장했다. 당연히 공연 시작과 함께 꺼졌어야 할 에어컨이 계속해서 돌아가면서 바람 소리를 내자 지휘를 포기하고 무대 뒤로 들어가 버린 것이 그 시작이었다. 곧 에어컨은 꺼졌지만 이번에는 무선호출기(삐삐)와 핸드폰에서 나는 소리가 공연 도중 쉬지 않고 계속됐다. 여기에 손목 시계의 알람소리도 가세되었다….”




중국에서 있은 그것보다 더한 추태


“…세종 문화 회관 음악회에 몇 사람이 삐삐와 휴대 전화기 가지고 가서 주접을 떨었는지, 에어컨을 몇번이나 제 때에 끄지 않았는지, 연주 끝나기 전에 박수친 사람이 몇인지 몰라도, 그런 것은 공연 관람 예절을 잘 모르는 순진한 몇몇 사람의 개인적 자질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김영삼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해 간 것은 주권 국가인 대한민국 대통령의 자격으로 간 것 아닙니까! 특히 요즈음에 김 대통령의 일거수일투족은 세계 여러 나라의 언론에서 주목을 하지 않습니까?


“전에, 무슨 당 국회의원 누군가가 해외 여행 할 때에, 비행기 안에서 양말 벗고 돌아다니고 하는 ‘추태’를 부려 망신살 뻗치는 짓 했다고 해서 언론의 집중 포화를 받은 것 기억 납니까? 제 생각은 김 대통령이 남의 나라 방문해 가서 한글로 서명하지 않고 한문자로 서명한 것은 비행기 안에서 양말 벗고 돌아다닌 것보다 더 망신스럽다고 생각하는데, 청와대에서는 어느 쪽이 더 망신스럽다고 생각하는지요? 아니면, 한자 서명 하는 것은 조금도 망신스럽지 않다고 생각하는지요?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자연인 김 아무개가 중국 놀러 가서라면, 한자로 서명하거나 아라비아 글자로 서명하거나, 토인들의 그림 글자로 서명하거나 우리가 굳이 항의나 흥분을 할 것은 없습니다. 그러나 주권 국가인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중국 방문을 해 멀쩡한 제 나라 한글을 두고 한자로 서명한 것은, 누가 뭐라고 변명을 해도, 이는 나라 망신의 차원을 넘어서 자랑스런 한글과 국민을 모독하는 일입니다! 김대통령의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 김 대통령과 청와대 사람들의 잘못일 뿐 아니라, 주체 의식에 문제가 많음을 웅변으로 증명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김 대통령과 청와대 쪽 사람들의 제 나라 말과 글자에 대한 인식이 어느 정도인지를 가늠할 수 있는 좋은 잣대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제 글의 제목으로 ‘대통령의 공식 서명은 우리글로’ 보다 ‘나라 망신시키는 김대통령’ 쪽이 훨씬 더 적절하다고 봅니다….”




박정희보다 한심한 김영삼?


“2. ‘기회 있을 때 건의하겠다’는 점에 대해서


“저는 전 두환 대통령 시절에 한글 기계화 정책을 자문해 주러 청와대에 몇 번 가본 경험은 있지만, 대통령을 경호해 본 적도 없고 대통령의 뒤치다꺼리 해 본 경험도 없어, 이 대목을 두고 왈가왈부하기가 좀 뭣합니다. 그러나 대통령이 국민들에게 계속해서 욕을 먹고 있고 있는 일이 있다면 한시 바삐 바로 잡도록 건의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도 청와대 쪽에서는 어떻게 ‘기회 있을 때에 건의하겠다’고 하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 식으로 일을 처리하면 대통령 욕 먹일 일이 점점 많아질 것만 같아 제가 공연히 걱정됩니다.


“얼마 전에 김 대통령과 클린턴 대통령과 사이에 핫라인을 개설하였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왜 핫라인을 개설했습니까? 두 사람이 서로 기회 있을 때에, 혹은 밤에 잠안올 때, 심심할 때에, 안부 물으려고 핫라인을 개설했겠습니까? 아닙니다. 함밤중이라고 시급한 일이 있으면, 금세 통화해서 의논하려고 개설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저는 대통령에게 중요한 문제가 발생하거나 그럴 조짐이 보이면, 청와대 사람들은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서, 초를 다툴 정도로 최대한 빨리 건의하는 것이 대통령에게나 나라에나 옳다고 생각합니다.


“청와대의 답변 중에 ‘요 며칠 사이에 그런 내용의 글이 더러 있었다’는 대목을 읽고, ‘청와대 큰마당’에 올려져 있는 글들을 대충 제목만 죽 훑어 보았더니, 이미 김수구라는 분이 사월 십일에 ‘박정희보다 못한 김영삼 대통령’이란 글을 올려 놓았더군요. 이런 차례로 되었더군요.




“제목: 박정희보다 못한 김영삼


1: 오늘 중국간 김 대통령이 사인(서명)해 주는 것 보니


2: 한자로 씁디다.


3: 저 독재자 박정희도 박정희라고 한글로 썼었는데,


4: 저런 사람을 대통령이라고 뽑아 놨으니,


5: 이 나라 앞날이 캄캄하다, 캄캄해.




“글쓴이는 ‘박정희보다 못한 김 대통령’(박정희보다 한심한 김영삼)이라고 했습니다. 저는 김 대통령이 아직은 박정희보다 못하지도, 한심하지도 않다고 봅니다. 글쎄요, 그런데 청와대에서는 어떻게 보시는지요. 청와대에서는 제가 쓴 글 제목을 보고는 ‘같은 말이라도 제목을 좀더 긍정적이고 듣기에 좋은 글로 표현’해야 한다면서, 김수구씨의 글 제목과 내용도 좀 듣기 좋은 말로 고쳐 주시지 그랬어요…. 혹시 김 대통령은 이런 욕먹는 줄 모르시고 계시는 것 아닙니까?


“이분이 하이텔 ‘청와대 큰마당’에 이 글을 올린 날짜는 사월 십일입니다. 그 때에 곧장 김 대통령에게 이렇게 건의하셨더라면 좋았지 싶습니다. 한자로 서명했다고 「박정희보다 못하고, 박정희보다 한심하다」고 하는 글을 청와대 턱 밑에다 올린 간 큰 백성이 있으니, 앞으로는 한글로 서명하시는 것이 옳은 줄 압니다.




그것말고도 수많은 항의 편지


‘박정희보다 한심하다’고 하는 글이 오른 뒤에도, 청와대 말마따나 같은 화제를 다룬 글이 여러 편 올라 있더군요. 혹시, 청와대에서 너무 바쁜 나머지 못 챙겨 보았나. 보았대도 건성으로 보았으면 어쩌나 싶어 몇편을 소개합니다.


“박 용국씨는 유월 팔일자로 ‘대통령이 한자로 서명하면 되겠습니까?’하는 제목으로 다음과 같은 글을 올렸더군요. ‘이번에 김 대통령께서 러시아에 가셨을 때… 방명록에 서명하는 모습을 유심히 지켜 봤습니다만… 모두 한자로 서명하더군요…. 더불어 외국 원수에게 한자로 휘호를 써 주는 일도 지양해야 된다고 봅니다….’


“이 분의 글은 구구절절 옳습니다. 그 중에서 김 대통령이 ‘외국 원수에게 한자로 휘호를 써 주는 일도 지양해야 된다’는 대목은 특히 제 마음에 쏙 듭니다. 저도 전폭적으로 지지합니다…. 대단히 주제넘고 실례되는 말씀일지 몰라도 김영삼 대통령의 붓글씨 솜씨가 그다지 명필축에는 들지 못한다고 봅니다. 아니, 명필이라고 해도 대통령은 제 나라 글자로 서명해야 합니다! 굳이 일필휘지로 휘호를 써 주고 싶다면, 반드시 제나라 글자인 한글로 써 주어야 합니다! 그래야 나라의 체통을 세우는 주체적인 일이 되고, ‘박정희보다 한심하다’는 욕도 안 먹을 것입니다.


“주민우 씨는 ‘국가 원수가 외국에서 한자 서명이라니’라는 제목의 글을 대충 다음과 같이 올렸더군요. ‘가뜩이나 서양에서는 중국 주변의 국가들을 예전의 속국으로 알고 있는 것이 일반적인 인식인데 더구나 한자로 서명까지 했으니 그런 생각이 맞다고 인정한 것밖에 더 됩니까? 한글날이 왜 국가 공휴일에서 탈락했는지 이제야 조금 알 것같습니다.’


“박 동훈 씨는 ‘서명을 한자로 하셨다고요?’하는 제목의 글을 다음과 같이 올렸더군요. ‘정말 서글퍼지는군요. 얼마 전에 일본이 자기네가 김치의 종주국이라고 우기려고 한다는 소리 듣고, …너무 문화 정책에 안이하신 것 아닌가 염려됩니다. 이미 된 일은 어쩔 수 없고 앞으로 서명하실 때에는 반드시 한글로 하세요. 이만 줄입니다.’


“임 성기 씨는 ‘한자 서명과 전쟁기념관’이란 제목의 글을 대충 다음과 같이 올렸더군요. ‘대통령이 생각이 미치지 못했다면 그 주위의 많은 비서들은 무엇을 하는지 모르겠다. 제발 여기 글들을 읽고 다음부터는 한글 서명을 하도록 그리고 한글을 쓰도록 하기 바란다….’


“특히 이분의 글 중에 ‘대통령이 생각이 미치지 못했다면 그 주위의 많은 비서들은 무엇을 하는지 모르겠다’고 하였는데, 저도 그 많은 비서들은 무엇을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고도 “기회있을 때 건의하겠다니!”


“이처럼 여러 사람들이 오래 전부터 김 대통령의 한자 서명에 항의하였습니다. 사실 저는 이런 글들이 ‘청와대 큰마당’에 올려져 있는 줄도 모르고, 유월 십육일에 대통령의 한자 서명에 항의하는 글을 올렸던 것입니다.


“아니, 다시 말하거니와 기회 있을 때 건의하겠다니요! ‘박정희보다 못한 김영삼 대통령’이니, ‘박정희보다 한심한 김영삼’이란 욕을 얻어 먹은 날이 지난 사월 십일 아닙니까? 그때가 벌써 두달 전입니다. 그때에 진작 대통령에게 알아들으시도록 건의하였다면, 러시아에 갔을 때에는 한글로 서명했을 것이 아닙니까? 박정희보다 한심한 김영삼이란 욕을 공개적으로 얻어먹고도 창피한 줄을 모르고 아직도 건의를 하지 않고, ‘기회 있을 때에 건의하겠다니’니 정말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그렇게 ‘세월아, 가거라’ 식으로 일을 처리하면,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이 김 대통령이 욕을 얻어먹을지가 무척 걱정됩니다. 이런 식으로 계속해서 나가면, ‘전두환보다 한심한’ 또는 ‘노태우보다 한심한’하는 소리가 안 나온다고 누가 보장합니까? 앞으로 무슨 불상사가 벌어질지 몰라 제가 다 간이 조마조마합니다.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하다 못해 김 대통령이 중국 방문을 하고 돌아왔을 때에, 그때라도 청와대 사람 중에 누구 한 사람이 대통령에게 ‘중국 방문 때에 한문자로 서명한 것은 큰 실수였습니다. 그러니 다음 기회에는 반드시 한글로 서명하시기 바랍니다.’고 건의했더라면, 그 얼마 뒤에 이어진 러시아 방문 때에는 종전의 잘못을 되풀이 하지는 않았을 것 아닙니까! 도대체 어찌된 일입니까! 청와대 사람들 중에 대통령에게 한자 서명하지 말라고 건의한 사람이 한 사람도 없단 말입니까? 아니면, 건의를 했는데 김 대통령이 받아들이지 않은 것입니까? 건의를 하지 않았다면 그것도 문제이고, 건의를 했는데 건의를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그것은 더 큰 문제입니다!


“그러니, ‘기회 있을 때 건의할’ 것이 아니라, 오늘 당장 건의하시는 것이 김 대통령을 덜 망신시키는 길이고, 또 제대로 모시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저는 주권 국가의 대통령이 이 나라, 저 나라 돌아다니면서 제 나라의 멀쩡한 글자를 팽개치고 엉뚱하게 남의 글자로 서명하는 이가 김 대통령말고 세계 역사에 누가 또 있는지 정말 궁금합니다. 그리고 매우 의심스러운 것은 대통령의 자격으로 외국에 나가서까지도 제 나라의 글자를 두고 남의 글자로 서명하는 김 대통령의 모국어 인식의 정도입니다. 만약 ‘제 나라 말과 글을 사랑하는 것이 나라 사랑의 근본’인 줄 모르는 사람이라면, 대통령의 자격은커녕 국민의 자격도 없는 것이 아닙니까?


“한 가지 덧붙이고 싶은 것은 ‘우리말로 서명하는 것이 나을 것이라고 건의하겠다’는데 이것도 문제 있는 부분입니다. 우리나라 대통령은 한문자로 서명하는 것보다 한글로 서명하는 것이 ‘나은’ 것이 절대 아닙니다. 한글 서명은, 당연히 해야 할 절대적인 당위입니다! 설령 한글이 한문자보다 좀 못한 대목이 있다고 해도 대통령이 서명할 때에는 한글로 해야 합니다.




다시 청와대의 답변을 기다리며


3. 제 글을 어느 주간지에서 실을 수 없다고 거절한 데에 대해서


“제 글을 굳이 하이텔에 올린 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그 하나는 김 대통령이 중국에 가서 한문자로 서명한 것에 항의하겠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문민 정부가 들어섰다고 해서 요란한 데도, 제가 쓴 위의 글을 발표할 수 없는 한심한 언론쪽 사정을 세상에 널리 알리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잡지사에서 제 글을 싣지 않은 이유는 두 가지로 짐작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그런글을 실었다가 혹시 문제가 생기거나 괘씸죄에라도 걸리는 날에는 어쩌나 하고 지레 겁먹었던 것일 수 있고, 다른 하나는 외부의 압력이 있었던 것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이유가 어느 경우에 해당하더라도 이는 심각한 문제라는 것입니다. 아니, 길을 막고 물어 보십시오. 제가 쓴 ‘나라 망신시키는 김대통령’이라는 글을 못 실을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저 무시무시한 박정희도 죽었고, 전두환씨, 노태우시도 다 역사의 전면에서 사라졌는데, 시방이 어느 때라고 그 정도의 글도 싣지 못한단 말입니까!


 그런 내용의 글 정도는 잡지에 마음 놓고 실을 수 있는 세상이 올 때까지 우리는 또 얼마나 많은 피를 흘리면서 목이 터지도록 자유를 외치며 싸워야 하는지요?


“만약, 잡지 편집자가 이 눈치, 저 눈치 보느라고 위축이 되어 싣지 못했다면, 이 땅에 참다운 언론의 자유가 도대체 있는 것입니까, 없는 것입니까? 이 부분을 두고 좀 조사라도 해 볼 의향은 없는지요. 혹시 잡지사가 지레 겁을 먹은 경우라면 그 근본 이유는 무엇일까요? 왜, 그런 글을 실을 수 없는지 정말 궁금합니다. 그런 글도 마음대로 발표할 수 없는 언론 풍토를 개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저처럼 글 팔아 먹고 사는 사람에게는 이런 글도 마음대로 발표하지 못하는 풍토라면, 아무리 문민시대라도 살맛 안 날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다음 번 대통령 선거 때는 제 나라 말과 글을 사랑하는 것이 나라 사랑의 기본임을 모르는 후보에게는 절대로 표를 찍지 않을 것이며, 혹시 그런 사람이 출마를 한다면 그치 낙선 운동에 앞장 서고 싶습니다. 누가 뭐라고 해도 김영삼 대통령은 내가 뜨겁게 사랑하는 내 조국의 현직 대통령입니다. 김 대통령이 한글로 ‘대한민국 대통령 김영삼’이라고 쓰는 것을 내 눈으로 반드시 보아야겠습니다. 청와대의 답변을 기대하겠습니다.


33. 철학과 일상 생활의 관계


우리의 일상생활의 체험 속에는 그 외에 많은 철학적 진리가 단편적이나마 번뜩이면서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다만 우리가 주의를 기울이지 않을 뿐입니다. 또한 철학적 사고를 함으로써 일상생활의 의미나 인식을 좀더 깊이 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철학은 우리의 일상생활과 밀접한 연관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철학이라고 하면 사람들은 보통 어려운 것, 골치아픈 것, 나와는 관계없는 것이라 생각하고 이에 대해서 멀리 생각합니다. 사춘기 때, 즉 인생에 대해 서 고민을 할 때에는 인생이란 무엇인가, 산다는 것은 어떠한 의미가 있는 것인가, 인생을 의미있게 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기도 하고, 친구와 밤을 새워 토론을 하기도하고, 이에 관한 책을 사서 탐독을 하기도 하지만 점차 생활을 해나가면서 생활에 빠져버리고 난 뒤에는 이에 대한 심각한 고민을 그쳐버립니다. 그리고는 인생의 의 미라든지 철학이라든지 하는 것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듯이 생활해 나갑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인생에 대해서 고민을 할 때에는 철학과 가까이 있는 것 이고, 그 후 생활에 빠져 버렸을 때는 철학과 멀리 있는 것일까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철학에 대해서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철학이라고 하면 심각하게 고민하는 것, 철학자 하면 일은 하지 않고 땅도 보지 않고 하늘만 쳐다보며 사는 사람으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철학 중에는 머리로만 생각하고 우리의 실제 생활과는 관계가 없는 것도 있고, 또 철학자 중에는 인간의 구체적인 생활과는 관계없이 하늘만 바라보면서 허공에서 무엇인가를 잡아보려고 허우적대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철학은 이러한 것이 아닙니다. 철학은 우리의 일상생활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고 우리의 생활은 철학과 끊임없이 관계를 맺어나갑니다. 우리들 주변의 일상생활로부터 철학을 떼어 낼 수는 없는 것입니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있는 일을 예로 들어 설명해 봅시다.


사람들은 흔히 “나무는 보고 숲은 보지 못한다”라는 말을 합니다. 이는 부분만을 보아서는 안되며 전체적인 면을 파악해야 한다는 것을 깨우쳐 주는 말입니다. 이 말은 많은 사람들의 일상생활의 체험 속에서 우러나온 말입니 다. 그리하여 눈을 크게 뜨고 보라고 말합니다. 이러한 교훈, 즉 부분만이 아니라 전체적인 면을 파악하라는 말은 체험을 통해 나온 것이어서 우리가 살아가는 데 매우 유용한 나침반 노릇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가 커다란 눈을 가지고 전체적으로 사물을 보는 경우 부분만을 볼 때에는 해결되지 않던 문제가 쉽게 해결되는 경우가 자주 있는 것입니다. 예를 통해 알아 봅시다.


물에 열을 가하여 끓이면 물이 없어집니다. 푸른 하늘에는 구름이 흘러갑니다. 우리는 이러한 두 가지 현상 사이에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 다. 즉, 물을 끓이면 수증기가 되고 숭증기는 또 공중에서 냉각되어 조그마한 물방울이 되며 이것이 모인 것이 바로 구름입니다. 그리하여 구름은 다시 눈이나 비로 되어 지상으로 떨어져서 다시 물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커다란 눈을 가지고 이러한 현상 사이의 연관성을 보는 경우 우리는 쉽게 사물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앞의 두 현상, 즉 물과 구름의 연관성을 생각하지 않고 물과 구름을 분리하여 그 일부분만을 놓고 생각하는 경우 우리는 올바른 인식을 갖기 어렵습니다.


또 다른 예를 들어봅시다. 옛날부터 전해오는 풀기 어려운 문제에 “닭이 먼저냐 알이 먼저냐” 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어찌 보면 닭이 먼저인 것 같고 또 어찌 보면 알이 먼저인 것 같습니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도 아마 한 번쯤은 이 문제를 풀려고 해보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닭이나 알은 모두 영원한 옛날부터, 즉 세상이 있으면서부터 존재한 것은 아닙니다. 닭이나 알은 모두 생물진화의 어떤 단계에서 나타난 것입니다. 그러므로 전(全)생물이라는 커다란 관점에서 보면 답은 간단히 나옵니다. 먼저 알이라고 불리우는 것이 생겨 알을 낳는 여러가지 동물이 나타나고 그 뒤에 닭이 생긴것입 니다. 알을 생각할 때, 닭의 알이라는 식으로 스스로 좁게 한정하여 생각하기 때문에 답이 나오지 않는 것입니다. 파리도 알에서 생겨나고 물고기도 알에서 생겨난다는 사실을 커다란 눈으로 파악한다면 문제가 쉽게 해결됩니다. 알이 먼저라는 것이 올바른 답입니다.


이처럼 “나무는 보고 숲은 보지 못한다”라는 말이 우리에게 일깨워 주는 것은 부분만을 보아서는 안되고 전체를 보아야 한다는 것이며, 이는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나온 말입니다. 우리가 커다란 눈으로 사물을 보아야 하는 것은 그 사물들 사이에 연관이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연관이 없다면 커다란 눈으로 볼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이와 같이 “나무는 보고 숲은 보지 못한 다”라는 말은 그 속에 사물은 연관되어 있다, 즉 물은 구름과 연관이 있고 알은 닭뿐만이 아니라 파리, 물고기와도 연관이 있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물의 연관성은 철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생각입니다. 우리는 앞에서 두 가지 예를 보았습니다만 우리의 일상생활의 체험 속에는 그 외에 많은 철학적 진리가 단편적이나마 번뜩이면서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다만 우리가 주의를 기울이지 않을 뿐입니다. 또한 철학적 사고를 함으로써 일상생활의 의미나 인식을 좀더 깊이 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철학은 우리의 일상생활과 밀접한 연관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앞에서 얘기하기를 철학은 우리의 일상생활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일상생활속에서 갖는 생각이 곧 철학적 생각 일까요? 우리가 일상생활 속에서 느끼는 생각을 감상(感想)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므로 앞의 물음은 이렇게 바꿀 수 있을 겁입니다. 즉, 감상은 곧 철학 적 생각일까요? 이 물음에 답하기 위해서는 감상이 갖는 특징과 철학적 생 각이 갖는 특징을 알아야 합니다. 결론적으로 말한다면, 일상생활의 감상은 혼잡하고 철학적 생각은 체계적입니다.


우리가 생활하고 있는 생활 범위는 한정되어 있습니다. 자기 자신이 아무 리 많은 사람을 만나고 세계의 여러 곳을 돌아다닌다 하더라도 이 지구의 모든 사람과 모든 곳을 항상 접할 수는 없는 것이며,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지구 밖의 우주에 대해서는 그럴 수 없습니다. 우리의 생활범위는 한정되 어 있습니다. 우리는 일정한 범위 내의 사람들과 접촉하고 일정한 범위 내의 지역에서 생활하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느끼는 생각, 즉 감상은 우리의 한정된 경험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서울에 살고 있는 한 어린이와 시골의 두메 산골에 살고 있는 한 어린이가 있다고 합시다. 지금은 그런 곳이 별로 없겠지만 하옇든 여기서 말하는 두메 산골에는 산이 많아 위로는 빼꼼히 하늘만 보일 뿐 외부와의 교통 사정이 나빠 기차도 들어오지 않고 자동차도 다니지 않는다고 해봅시다. 이런 경우 서울의 어린이에게 4킬로미터를 가는 데는 시간이 얼마나 걸리겠느냐고 물어보면 다음과 같이 대답할 것입니다. 즉, 걸어서 가면 약 1시간 걸리고, 버스를 타면 약 10분 걸리고, 택시를 타면 이보다 빠를 것이다. 똑같은 질문을 두메 산골의 어린이에게 했다고 합시다. 그러면 약 1시간 정도 걸릴 것이다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곳에는 차가 없어서 이 어린이의 경우 차를 탄다는 생각은 좀처럼 하기 어렵고 오직 걷는 것만을 생각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경우 누구의 대답이 옳고 누구의 대답이 그르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생활 환경이 다른다는 것이 문제가 될 것입니다. 즉 자기의 생활 환경에 따라 대답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의 생각은 자 기의 생활 환경에 따라 달라집니다. 이것은 우리의 생활 환경이 한정되어 있 기 대문입니다.


앞에서 든 예는 서로의 지역이 다르기 때문에, 즉 지역적 환경이 다르기 때문에 일어난 일입니다. 하지만 동일한 지역에 산다하더라도 이러한 일은 일어날 수 있습니다. 즉, 각자의 사회적 환경이 다름에 따라 동일한 사물에 대한 생각이 달라질 수 있는 것입니다. 똑같이 서울에 사는 두 사람이 있다고 합시다. 한 사람은 서울의 중심가에 있는 고층 빌디에서 일을 하면서 많은 월급을 받는 사람이고, 다른 한 사람을 길거리에서 리어카에 과일을 놓고 파는 사람이라고 합시다. 이 두사람은 겨울에 대해서 어떠한 생각을 가질까요? 고층 빌딩에서 일하는 사람은 사무실에 난방장치가 잘되어 있기 때문에 이번 겨울이 추울 것이라는 기상예보에는 별 신경을 쓰지 않고 이번 겨울에는 눈이 많이 와서 휴가 때 아이들하고 스키장에나 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길거리에서 과일을 파는 사람은 이번 겨울이 춥지 말았으면, 눈이 오지 말았으면 하고 바랄 것입니다. 왜냐하면 날씨가 추워지면 당장 장사하기도 힘들고, 집안에 연탄 걱정도 커지고, 또 눈이 오면 리어카를 끌고 다니기가 힘들게 되는 것은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각자의 사회적 환경, 즉 어떠한 직업을 가지고 어떠한 생활관계 속에서 생활하느냐에 따라 동일한 사물에 대한 각자의 생각이 달라질 수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일상생활 속에서 느끼는 생각, 즉 감상은 각자의 생활범위 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즉, 감상은 일관되지 않고 혼잡한 것입니다.


하지만 철학은 체계적입니다. 모든 사물에 보편적으로 타당한 원리를 찾아 내는 것이 철학입니다. 철학은 자기의 생활범위에서 오는 제약을 뛰어넘어 세상의 모든 사물에 타당한 법칙, 원리를 찾아내고자 합니다.


위에서 철학과 감상의 차이점에 대해 얘기했습니다. 즉, 철학은 체계적 이고 보편적이며 감상은 혼잡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 철학적 생각은 혼잡한 감상과 아무런 관계가 없을까요? 그렇지 않습 니다. 철학은 감상에 의존합니다. 바꾸어 말하면, 감상이 없으면 철학적 생각은 있을 수 없습니다. 여러사람의 혼잡한 감상이 모이고 거기서 일관된, 하나의 체계적인 생각을 끌어낸 것이 철학적 생각입니다.


앞에서 사물의 연관성이 철학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생각이라는 것을 말했 습니다. 이 `연관성’이라는 말의 의미에 대해서는 바로 다음 장에서 얘기하기로 하고, 여기서는 어떻게 해서 이러한 생각이 만들어졌는가에 대해서 이야기해 봅시다. 왜 이러한 생각이 만들어졌을까요? 그것은 많은 사람이 그러한 것을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옛날부터 많은 사람이 주위의 사물이 연관되어 있는 것을 경험해 왔고, 또한 현재 살고 있는 사람들도 그러한 사물의 연관성을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즉, 수많은 사람들의 경험에 의해서 사물은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만약 각각의 사람이 단편적이나마 주위의 사물이 연관되어 있다는 생각(이것은 아직 감상입니다.)을 하지 않았다면 `사물은 연관되어 있다’는 일관된 생각은 만들어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처럼 철학은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느끼는 생각, 즉 감상에 의존하고 있 는 것입니다. 이것을 보더라도 철학이 일상생활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34. 문제 의식이란 무엇인가?


한 완 상


문제 의식은 사건과 문제의 뿌리를 볼 줄 아는 투시력이요, 사건과 현상의 전체 모습과 그 성격을 종합적으로 이해하고 파악하는 능력이다. 이러한 근본적이고 총체적 사고를 약화시키거나 마비시키려는 여러 가지 메커니즘이 있다. 사사화(私事化), 순수화, 그리고 정보 흐름의 통제 등이 바로 그것이다. 이러한 메커니즘의 작용을 제대로 파악하고 이것의 속셈을 폭로시키려는 의식과 용기 또한 문제 의식이라 하겠다. 이러한 문제 의식은 부당한 양극화 상황에서는 항상 약자와 피해자의 편을 들게 된다.




문제 의식이란 무엇인가


문제 의식은 지식인을 지식인답게 해 주는 일종의 조감(鳥瞰) 의식이며 통찰력이다. 그러기에 문제 의식 없는 지식인은 전의를 상실한 군인과 같고, 선교열이 식어버린 선교사같으며, 사업욕 없는 기업인과 같다. 한 시대와 상황에서 살면서 문제 의식 없이 살아가는 자칭 지식인이 있다면 그는 한낱 지식기사에 지나지 않고, 문제 의식 없이 학교에 다니는 젊은 지성이 있다면 그들은 한낱 직장예비군에 불과하다. 문제 의식을 갖추어야만 비로소 그는 한 시대와 한 상황에서 지식인다운 삶을 누릴 수 있고 뜻있는 민중의 삶을 누릴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러면 문제 의식이란 무엇이며, 그 특성은 어떠한 것인가 ?


문제 의식은 어떤 사건의 문제성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이요 의식이다. 현상의 문제성을 예리하게 파악하는 능력이다. 마치 문제가 없는 것처럼 꾸며져 있는 일상적 세계에서 여기저기에 도사리고 있는 여러 사건들의 문제점들을 꿰뚫어 볼 수 있는 능력이 바로 문제 의식이다. 문제되어야 할 사건들이 문제 없는 것으로 받아 들여지고 있는 상황에서 그 사건들의 문제점을 들추어 낼 수 있는 능력이 바로 문제 의식이다. 여기서 우리는 문제 의식의 가장 중요한 성격을 관찰하게 괸다. 일상성의 세계 또는 상식의 세계는 대체로 “물론(勿論)의 세계”다. 어떤 질문을 던졌을 때 그것에 대하여 모든 사람들이 “물론이지요”라고 대답하는 세계가 바로 물론의 세계다. “일부일처제가 옳습니까”라고 물을 때 “물론입지요”라고 대답한다든지 “주권재민의 사상이 옳은 사상입니까?”라고 물으면 “물론 그렇고 말고요”라고 대답할 때 일부일처제와 주권재민은 일상성의 구조의 한 부분을 이루고 있다.




사람들은 일상성의 세계를 의심하지 않는다. 오히려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너무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까닭에 그것에 대해 특별한 관심이나 특별한 의심을 품지 않는다. 때때로 그 일상성의 세계는 신성시될 때도 있다. 마치 종교인이 절대자인 신을 의심하여 상대화시키는 것이 끔찍스러운 일로 받아들여지듯이 물론의 세계와 당연의 세계도 때때로 신비의 베일로 가리워져 있고, 그것 자체가 신성화되어 버린다. 그래서 감히 아무도 그것의 정체에 대해서 묻고자 하지 않는다. 여기에는 모든 것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에 당연하지 않은 것, 이상한 것이 나타나면 대번에 잘못된 것이거나 범죄적인 것으로 규정되고 그것을 약화시키거나 소외시키거나 제거하려고 한다. 이것은 바로 일상성의 횡포다. 이러한 일상성의 세계는 한마디로 문제가 없는 세계다. 문제될 만한 것은 가리워져 있든지 아니면 그것이 드러나면 재깍 없어져 버린다. 그러니까 모두가 일상성에 대해 “지당합니다.”라든지 “물론입죠”하고 합창한다. 여기에서 현상과 사건의 문제성을 꿰뚫어 본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대체로 물론의 세계는 지배 세력이 즐겨하는 세계요, 지배 세력이 직접 간접으로 뒷받침해 주는 세계다. 하기야 그것은 현재의 지배 집단이 등장하기 오래 전부터 있어왔다. 그리고 그것은 오랜 역사를 거쳐 전통 속으로 침전되기도 한다. 그러나 역사와 전통 속에서 영글게 된 일상성의 세계는 그때 그때의 집권세력의 이해 관계에 따라 이렇게 혹은 저렇게 윤색되어진다. 지배 세력은 항상 물론의 세계의 물론성을 그리고 당연의 세계의 당연성을 존중하고 크게 부각시킨다. 때로는 그 물론성과 당연성을 신비한 것으로 추켜 오려서 감히 아무도 그것을 회의하거나 부정하거나 그것에 도전하지 못하게 한다. 그리하여 그 물론의 셰계를 안정된 것으로 튼튼히 구축해 놓고 나서 그 속에 그들이 안주한다. 지배세력은 이렇게 일상성의 세계를 주름잡는다. 그들은 곧 일상성의 세계의 주인 노릇을 하게 된다. 지배세력이 득세하기 전부터 존재해 왔던 일상성의 세계를 그들이 지배집단으로 등장하면서부터 일정한 방향으로 얼마쯤 고쳐 나간다. 그들의 기득권을 보수(保守)하고 강화하는 방향으로 그것을 얼마쯤 손질하여 고친다. 고친 후에 그 세계를 방패삼아 그들의 특권을 계속 누리려고 한다. 이렇게하여 일상성의 세계는 그들을 보호해 주는 요새가 된다.


이렇게 볼 때 문제 의식은 곧 일상성의 세계를 곧 일상성의 세계를 꿰뚫어 보는 의식이다. 문제가 없는 것으로 모두 알고 있는 그 세계의 껍질을 벗기고 그 속에 잠겨 있는 문제성의 정체와 그 실상을 밝혀보려는 호기심과 그것을 밝히는 의식이다. 모두가 “물론입죠”하고 응답할 때 “글쎄요”라고 회의하면서 현상의 표피를 뚫고 그 내용을 살펴보려는 의식이다. 특히 지배세력이 완강하게 받쳐주고 있는 그 물론의 바탕과 내용을 파해쳐 보려는 의식이다. 지배세력이 물론의 세계를 신성한 것이라고 내세우면서 모든 민중이 의심 없이 그것을 받아 들이도록 강요할 때 “불경죄”로 몰릴 망정 그것을 일단 의심해 보려는 의식과 용기가 바로 문제 의식이다.


여기서 우리는 문제 의식이 허위의식을 폭로하는 행위에 연결된다는 점을 대번에 깨닫게 된다. 이것이 문제 의식의 두 번째 성격이기도 하다. 허위의식이란 복잡한 현실태(現實態)를 짐짓 단순화시키고, 더럽고 잘못된 현실태를 짐짓 아름답게 꾸며서 그럴듯하게 정리해 놓은 거짓된 현실인식을 말한다. 허위의식은 대체로 아름다운 수사의 낱말들로 꾸며져 있어서 사람을 홀리거나 속인다. 속이 더럽고 부끄러울수록 허위의식은 깨끗하고 떳떳한 낱말들을 동원한다. 이러한 허위의식은 주로 지배세력이 제조하고 개발하고 응용한다. 자유, 발전, 행복, 정의, 평화 등을 앞세워 자유를 제한하고, 전체적 발전을 늦추며, 행복을 깨뜨리고, 정의를 흐리며, 평화를 파괴한다. 이렇게 속과 같이 다를수록 허위의식은 더욱 기승을 부리게 된다. 결국 권력의 정당성이 약하거나 아예 그 정당성을 상실하고만 지배집단일수록 아름답게 꾸며진, 단순화된 허위의식의 체계를 잘 갖추고 있다.


이러한 때 문제 의식이 요청된다. 문제 의식을 갖춘 사람은 정직이라는 말로 단장된 허위의식의 거짓된 속셈을 꿰뚫어 본다. 문제 의식에 투철한 사람은 자유를 앞세우는 지배세력의 억압행태를 알아차린다. 그는 정의를 큰소리로 외치는 지배세력의 불의를 투시할 줄 안다. 그는 평화를 강조하는 지배세력의 폭력을 누구보다도 날카롭게 관찰하고 있다. 그러니까 문제 의식을 가진 사람은 일상성의 뚜껑을 열어보는 사람이요, 그 일상성의 세계에서 주인노릇하는 사람들의 추한 속셈을 훤하게 꿰뚫어 보는 사람이다. 주인들의 허위의식을 투시하는 사람들이다. 이러한 사람을 두고 나는 지식인이라 부른다. 한마디로 말해서 참다운 지식인이란 문제 의식을 지닌 사람이다.


문제 의식을 갖게 되면 엑스타시를 할 수 있다. 엑스타시는 황홀경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분자 그대로 “밖에 서는 것”을 뜻한다. 밖에 선다는 것은 일상성의 세계를 떠나서 그밖에  일상성의 세계의 전체 모습을 그리고 실제 모습을 파악한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지배세력의 허위의식을 물론의 세계 밖에서 조명해 본다는 뜻이다 이렇게 밖에서 안을 들여다 볼 수 있어야만 황홀한 경지에 들어갈 수 있다. 여태껏 그저 당연한 것으로 믿어왔던 세계가 밖에 섬으로써 비로소 요지경으로 새롭게 이해될 수 있다. 이제까지 너무나 당연하다고 생각한 나머지 진부하기까지 한 세계가 밖에서 안을 조명해 보니까 너무나 문제점이 많고 또한 흥미로워 “황홀경”에 들어간 듯한 느낌을 갖게 된다. 특히 지배세력이 그토록 단단하게 다져온 문제 없는 물론의 세계가 엑스타시의 경험을 가진 후 문제점으로 가득찬 비물론(非勿論)의 세계로 새롭게 인식되기도 한다. 문제 의식은 이렇게 엑스타시의 경험을 갖게 해준다. 한마디로 말해서 문제 의식은 밖에서 사물과 현실을 총체적으로 이해하게 하는 투시능력이다. 특별히 지배세력의 허위의식을 밖에서 똑똑히 보고 그 속의 추한 것을 폭로하는 능력이기도 하다. 그리하여 “황홀경”에 들어가게 해 주는 의식이기도 하다.




셋째로 문제 의식은 문제의 뿌리를 보는 의식이다. 문제의 가지만을 보거나 그 잎사귀만을 보고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의 뿌리까지 샅샅이 살펴보는 능력이다. 사물과 현상 특히 문제의 현상을 진단할 때 부분적인 것의 분석에 그치지 않고 전체의 뿌리나 기반을 파악하는 능력이 또한 문제 의식이기도 하다. 대체로 지배세력은 현실구조의 주인인 까닭에 이 현실구조에서 생겨나는 문제를 국소화시키려 할 것이고, 설령 만천하에 드러난 문제가 있다 하더라도 가능한 한 그것을 지엽말단적인 것으로 간단히 처리해 버리려고 한다. 그러기에 문제 의식을 지닌 사람은 지배세력에 의해 항상 감시를 받게 된다. 지배세력은 문제의 잎사귀만 보도록 강조하는 데 반해서, 문제 의식을 지닌 사람은 문제의 근본부터 캐내려고 한다.


예컨대 이러하다. 오늘의 기독교 교회를 보면 문제가 근본적인 것인데도 불구하고 적지 않은 사람들이 문제의 가지나 잎만 보고 교회 개혁을 부르짖는다. 특히 교회 지배세력이 그렇게 본다. 교회 제도의 일부분을 수리하면 교회가 곧 개혁될 것으로 믿는다. 그러나 오늘의 교회는 뿌리부터 잘못된 것임을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오늘의 교회는 민중의 교회가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중산층 이상의 특권 집단들의 교회로 변질해 버렸기 때문이다. 예수의 유명한 “산 위의 설교”에 따르면, 가장 큰 축복이 하늘나라의 주인이 되는 복이고 이 축복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은 가난한 사람과 박해받는 사람들이다. 오늘의 제도 교회가 하나님 나라를 모형으로 삼아야 한다는 점이 절대적인 요청이라고 한다면, 현실의 제도 교회의 주인은 마땅히 가난한 민중들과 옳은 일을 하다가 박해받는 민중들이 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그러한 민중이 하나님 나라의 주인이라고 예수가 선포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현실의 제도 교회에서는 민중이 주인 노릇하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로 부자들과 강자들과 유식한 자들이 주인 노릇하고 있다. 그러기에 교회개혁은 부분적인 변화에 머물 것이 아니라 전체적인 변화에로 나아가야 하며, 잎사귀의 변화가 아니라 뿌리로부터의 변화라야 한다. 같은 논리를 가지고 우리는 주권재민을 따져 볼 수 있다. 민주국가의 주인은 국민이다. 그런데 정말 국민이 주인일까? 만일 그렇지 못할 때 민주국가와 민주사회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부분적인 손질이나 잎사귀 수준의 개혁만으로는 안된다. 진실로 국민이 나라의 주인이 될 수 있는 근본적 변화가 요청된다. 그런데 이때 비민주적인 지배세력이 자주 활용하는 허위의식은 “위민사상(爲民思想)”이다. “국민”을 위한다는 표현보다 더 중요한 것은 “국민의”라는 표현이다. 참으로 국민을 위한다면 국민이 주인이 되는 나라, 즉 국민에 의한 국민의 나라를 만드는 것이다. 여기서 “국민을 위한다”는 것이 한낱 허위의식으로 사용되어서 실제로는 국민을 종으로 떨어뜨리는 결과를 자아낸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그러니 이러한 상황에서 요청되는 것은 근본적인 개혁이다.


이와 같은 예에서 뚜렷하게 볼 수 있듯이 문제 의식은 문제점을 그 뿌리에서부터 살피려는 자세를 뜻한다. 겉으로 나타난 징후만을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그 뿌리를 도려내려는 자세를 뜻한다. 얼굴이나 피부에 종기가 나오면 그것만을 짜내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종기가 위장 장애에서 온다는 것을 알고 위장을 고치려는 사세와 같다. 그러기에 문제 의식은 문제의 뿌리를 보고 그 뿌리부터 바로 잡아야만 비로소 참으로 바람직한 변화를 불러 일으킬 수 있다는 개혁의지로 이어진다.


넷째, 문제 의식은 전체를 볼 줄 아는 마음이다. 뿌리를 볼 뿐만 아니라 뿌리를 포함한 전체를 볼줄 아는 혜안(慧眼)을 말한다. 그런데 사물과 현상의 전체 모습을 파악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마치 문제의 뿌리를 보는 것이 쉽지 않듯이 문제의 전모를 파악하는 것도 쉽지 않다. 그 이유는 현상이 복잡하고 문제의 성격이 단순하지 않다는 데 있기도 하지만 더 중요한 이유는 지배세력의 의도에서 찾을 수 있다. 그것은 곧 지배세력이 사건의 전모나 문제의 전모를 드러내지 않으려하기 때문이다. 만일 민중이 문제의 전체를 알게 되면 기득이권을 감싸주는 기존질서가 위태로워진다고 믿기 때문이다. 일상성의 이면(裏面)은 사건과 문제의 전모가 드러나면 저절로 따라서 폭로되기 마련이다. 일상성의 이면이 폭로되면 지배자들의 허위의식의 노력은 크게 감소되든지 사라져 버린다. 그만큼 지배자들의 통치능력은 감퇴되게 마련이다. 그러기에 지배세력은 어떻게 하든지 간에 문제와 사건의 전체를 가리려고 애쓴다. 민중으로 하여금 사건의 일부분만 보도록 교묘하게 조종한다. 이러한 지배집단의 의도를 알아차리고 문제의 전체를 보려는 의지와 또 그 전체를 볼 수 있는 통찰력이 곧 문제 의식이다.


이때까지는 사건의 구조적 전체 모습을 파악하는 것에 주목하였다. 사건의 구조적 뿌리나 구조적인 성격을 파악했다고 해서 정말 사건의 전체 성격을 다 이해하는 것은 아니다. 사건의 시간적 맥락과 그 의미도 함께 이해해야 한다.


바로 이런 뜻에서 문제 의식은 역사 의식을 포함한다.


즉, 다섯째로 역사 의식이 문제 의식의 중요한 부분이 된다. 역사 의식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전체로 파악하면서 어떤 역사적 사건을 전체 시간의 맥락에서 살피려는 의식이다. 편리하게 과거의 어떤 사건을 현재에서 분리시켜 강조한다든지 미래의 어떤 부분을 지나치게 미화시키는 것은 역사 의식이 아니다. 역사 의식은 현재 상황의 관심 때문에 과거의 사건들을 재조명해 보려는 의식이기도 하다. 그것은 현재의 사건과 문제를 전체 시간의 맥락에서 파악함으로써 그것의 전체 모습과 특징을 보다 뚜렷하게 이해하려는 의지이기도 하다. 이렇게 시간적 차원에서 사건과 문제의 전체 성격을 제대로 파악하게 되면 우리는 과거의 사건에서 많은 교훈을 배우게 된다. 교훈을 배운다 함은 오늘의 상황에서 우리가 무엇을 바로 잡아야 될 것인가를 깨닫게 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예컨대, 1930년대에 전염병처럼 유럽에 번졌던 파시스트 운동의 부침(浮沈)을 조명해 봄으로써 오늘의 세계 속에서 일어나는 중요한 사건의 의미를 뚜렷하게 깨달을 수 있다. 독일의 히틀러가 어떻게 집권하게 되었으며 어떤 계층이 그의 출현을 도와주었으며, 그이 정치 철학과 구체적인 정책은 무엇이었으며, 어떻게 해서 이윽고 몰락하고 말았는가를 과거의 시각에서 살필 뿐만 아니라, 오늘의 시각에서 다시 살펴보려는 것이 더 중요하며 이것이 곧 문제 의식이기도 하다. 이러한 문제 의식은 과거에서 교훈을 얻고 현재의 당면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필요한 지혜를 얻게 해 준다. 그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다. 시간적인 차원에서 나타나는 문제 의식은 항상 역사 심판을 두려워하고 그것을 존중하는 자세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에 벌어지는 사건이 미래에 어떻게 판정될 것인지를 항 상 겸손하게 질문한다. 현재 사건에 대해 미래에 기록될 판단을 두려워하는 의식이 곧 문제 의식이기도 하다. 오늘의 어떤 특정 지도층의 인물을 그의 과거 행적을 통해 보다 더 잘 파악할 수 있다. 그가 오늘 이 상황에서 무엇을 어떻게 하는지 또 그것의 전체적 의미가 무엇인지를 보다 명백하게 깨닫게 된다.




문제 의식을 흐리게 하는 메커니즘들


여기서 우리는 지배자들이 교묘한 방식으로 사건과 현상의 전모를 가리는 일에 언급할 필요가 있다. 즉, 지배세력이 민중으로 하여금 사건의 일부분과 그 잎사귀만 보도록 조종하는 메커니즘이 어떠한 것인가를 살펴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첫째로 언로(言路)의 통제를 생각할 수 있다. 정보의 흐름을 철저하게 관장해야만 사실과 사건의 전체를 적당히 숨기고 그 중에 일부만을 부각시킬 수 있다. 정보의 독점과 정보의 철저한 관리는 지배세력들이 가장 신경쓰는 문제다. 비민주적 지배집단일수록 정보의 자유로운 흐름에 개입하려 하며 정보의 분배를 장악하려고 한다. 만일 자유로운 언로와 언론을 통해 민중이 현상과 사건의 앞-뒤를 모두 알게 되면, 민중을 마음대로 조종하고 동원하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그러므로 어디서나 비민주적 권력 엘리트가 지배하는 곳에서는 언론의 자유가 제한되기 마련이다. 언론의 자유가 어느 정도 허용되고 있는지에 따라 그 사회의 민주적 성격을 가늠할 수 있다. 언로를 마음대로 막아서 자기들에게 유리하게 정보의 흐름을 조작할 때 민중은 사건의 전체를 파악할 수 없게 된다. 특히 언로를 막고, 언론 자유를 제약할수록 지배집단은 그럴듯한 허위의식을 앞세워서 민중을 속이기 때문에 민중은 그만큼 현상과 사건의 참 내용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리고 문제의 전체 성격을 파악하지 못한다.


둘째로 우리는 사사화(私事化)라고 하는 메커니즘을 지적할 수 있겠다. 사사화는 문제의 공적 성격과 구조적 성격을 못 보게 하는 작용을 한다. 어떤 구조적인 사건이 터졌다고 하면, 그것을 애써 사사로운 개인의 문제로 돌려버리게 하는 메커니즘이 바로 사사화다. 이렇게 사5건의 공적 또는 구조적 성격을 못 보게 되면 그 사건이 문제로 인식되지 않는다. 즉, 사회문제가 되지 않는다. 예컨대 어느 곳에 이혼 현상이 자주 일어난다고 하자. 전체 기혼자 인구의 약 30퍼센트가 이혼을 한다고 가정해 보자. 이것은 분명히 구조적인 문제다. 사회가치관의 혼란에서 오든지, 가족제도의 약화에서 오든지, 아니면 경제적 불황에서 오든지 간에 구조적 원인에서 이혼 현상이 생겨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문제를 마치 이혼하는 사람 곧 당사자들의 개인 문제로 부각시킬 수 있다. 수양이 업고 교양이 부족한 덜된 사람들의 개인짓으로 가볍게 볼 수 있다. 이렇게 사사로운 개인 문제로 보게 되면 그 책임이 어디까지나 당사자 개인에게 있는 것이지 구조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 구조의 주인 노릇하고 있는 집 엘리트의 입장에서 볼 때 사사화의 메커니즘은 그들의 기득권을 적어도 간접으로 보호해 주는 기능을 담당한다.


청소년 범죄 문제도 마찬가지다. 이것을 구조에서 오는 가능성을 배제하고 청소년 개개인의 성격 탓으로 돌리게 되면, 그것이 사회문제가 되지 않고 사사로운 개인의 수신(修身) 문제가 되고 만다. 여러 가지 부정부패도 마찬가지다. 그것을 개인의 사사로운 탐욕의 결과로만 보게 되면 그것도 사회문제로 인식할 수 없게 된다. 부정부패를 저지른 사람만 파면하면 문제를 해결되는 것처럼 꾸며진다. 이런 식으로 모든 사회문제를 사사화시켜 버리고 나면, 기존구조는 조금도 손상을 입지 않고 그대로 유지될 수 있다. 잘못은 개인에 있지 구조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하면, 잘못은 개개인의 부도덕한 성격과 수신의 실패에 있지, 기존 구조를 눌러타고 있는 지배집단에 있는 것이 아니다. 결국 사사화는 현상유지를 시켜 주는 보수적 기능을 담당한다.


이러한 사사화가 활발히 움직이는 사회에서는 민중이 날로 자학적(自虐的) 인간으로 변질되기 쉽다. 모든 잘못은 자기에게 있다고 생각하도록 교화를 받기 때문에 민중은 자학적이 되고 만다. 그러나 지배세력은 그만큼 타학적(他虐的) 존재가 되기 쉽다. 여기서 지배자들은 정신적 가해자와 물리적 가해자가 되기 쉽다. 민중이 자신을 “엽전”이나 “바지저고리”로 보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라고 체념하게 되고 그렇게 되면 자연히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라고 자신하는 지도력에 의해 쉽게 끌려가게 된다. 민중은 자기를 낮게 평가하는 반면에 지배자들은 자기의 우수성을 침이 마르게 치켜 올린다. 그리하여 “우수한” 지배자들이 마땅히 “열등한” 민중을 통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렇게 사사화의 메커니즘이 널리 번지는 사회에서는 지배-복종의 관계가 더욱 굳어지게 된다. 민중은 교묘하게 계속 눌리고 빼앗기게 되나, 지배세력은 안심하고 민중 위에 군림하면서 민중을 다스려 나갈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사사화의 메커니즘이 문제의 전체성을 보지 못하게 한다는 점이다. 자기의 사사로운 잘못 탓으로 문제가 생겼다고 느끼게 함으로써 문제의 뿌리는 말할 것도 없고 문제의 전모를 파악하지 못하게 한다.


셋째로, 문제와 사건의 전체를 못 보게 하는 메커니즘으로 순수화를 들 수 있겠다. 이것은 사사화와 비슷한 기능을 담당한다. 순수한 것과 불순한 것을 일단 갈라 놓고서 모름지기 순수한 것에만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예컨대 문학에는 순수문학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은 참여문학이 있다고 하자. 현실의 비리와 부정, 그리고 부조리에 시달리는 인간들의 외로움과 괴로움을 문학 활동의 소재로 삼을 뿐만 아니라 작품 활동을 통해 그러한 잘못된 현실 구조를 개선하려고 하는 것이 참여문학이라고 하자. 이때 참여 문학은 문학의 순수성을 상실한 반(反)문학적 또는 반(半)문학적 활동으로 낙인 찍히게 된다. 그리고 그러한 참여문학은 “불순한” 문학으로 낙인 찍히기 쉽다. 이렇게 참여문학을 규탄하는 것은 마침내는 현실구조의 주역들을 옹호해 주는 것과 같다. 그리고 문학을 이른바 “순수성”의 수준에 묶어둠으로써 문학인들의 문제 파악 능력을 줄여 버린다. 즉 “순수성”에 사로잡힘으로써 문제의 전체 모습을 알아 볼 수 있는 능력을 잃어버리기 쉽다. 그리고 문제의 뿌리를 포함하여 그 전체를 두루 알려고 하는 사람들을 오히려 나무라고 정죄한다. 이러한 순수화의 메커니즘은 현상유지를 옹호해 주는 메커니즘이요, 현상유지를 간절히 바라는 지배세력을 비호해 주는 메커니즘이다.


종교 신앙에 있어서 순수화의 메커니즘은 더 뚜렷하게 나타난다. 하기야 순수화뿐만 아니라, 사사화도 마찬가지로 종교신앙에서 잘 나타난다. 예컨대, 이렇게 주장하는 지배세력들의 소리를 자주 듣는다. “종교는 모름지기 순수한 인간 개개인의 사랑을 가르쳐야 한다. 그것이 불순하게 계급 투쟁이나 증오를 가르쳐서는 안되다…” 얼핏 듣기로는 이 말은 지극히 당연한 주장으로 들린다. 그러나 곰곰 따져보면, 여기에 그 어떤 “음모”가 있다. 그것은 종교 신앙의 순수성을 순수하게 강조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종교활동의 범위를 일부러 제한시킴으로써 기존 질서를 공고하게 다져나가겠다는 것을 다짐하려는 것이다.


이러한 다짐이 종교의 선교 특히 기독교 선교의 입장에서 볼 때 잘못된 것임을 밝힐 필요가 있다. 불교도 그러하겠으나 기독교에 있어서는 선교 활동이라는 것은 세상에서 억울하게 빼앗기고 처참하게 눌리는 사람들, 헐벗고 병든 사람들, 나그네처럼 차별받고 있는 사람들의 아픔을 들어주고 그 아픔을 갖다주는 원인들에서부터 그들을 해방시켜 주는 활동이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는 가난한 자들, 눌린 자들 그리고 병든 자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그들을 위로하고 축복했으며 그들을 온전케 하였다. 이렇게 볼 때 기독교 선교의 참 순수성은 민중의 아픔에 동참하고 그들을 그 고통의 원인으로부터 벗어나게 해주는 일에서 찾아야 한다. 이것은 곧 사랑의 실천이기도 하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사랑을 “순수한 수준”으로 제한시켜서 추상화해 버리려고 한다. 사랑이 추상화되어 버리면 그것은 이미 사랑이 아니다. 사랑은 구체적인 현실에서 뜨겁게 분출되어야 한다. 그것은 구체적인 것이지 추상적인 것이 아니다. 그리고 사랑은 남들에 대한 것이지 자기의 사사로운 것이 아니다. 남들 가운데서도 억울하게 불행하게 된 사람들을 향한 뜨거운 교감이 바로 사랑이다. 그러니 예수의 사랑은 민중에 대한 사랑이다.


예수의 사랑이 주로 민중에게 겨냥되었다고 해서 예수가 지배계급을 사랑하지 않거나 전적으로 무시한 것은 아니다. 민중을 괴롭히는 지배세력에 대해서도 사랑을 펴나가야 한다. 그러나 이 때는 사랑의 표현 방식이 아주 다르다. 민중을 격려하고 축복하는 방식으로 지배자들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지배세력들의 잘못을 지적하고 비판하며 그들의 회개를 촉구하는 방식으로 그들을 사랑해야 한다. 사랑은 악을 비호하는 것이 아니다. 사랑은 악을 미워하되 악을 저지르는 사람을 미워해서는 안된다. 악한 일을 저지르는 사람을 사랑하기에 그 사람의 악한 짓을 더욱 신랄하게 비판하게 된다. 그러므로 악행을 하는 지배세력의 악한 짓을 비판하는 것은 결코 순수치 못한 신앙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남을 사랑하려는 순수한 신앙 때문이다.


문제는 신앙의 순수성을 강조하는 것이 전체를 못 보게하는 작용을 하게 된다는 데 있다. 신앙은 삶 전체와 연결된다. 기독교의 선교도 삶 전체와 연결된다. 총체적 선교는 구원의 전체성 위에 서 있다. 그러므로 선교는 마땅히 처절한 상황에서 여러 가지로 피해를 받고 있는 민중의 삶에 관심을 가져야 하고 그들의 삶의 한복판에서 선교를 펼쳐 나가야 한다. 그리고 오늘의 문제와 사건의 전체 모습을 반드시 볼 줄 알아야 한다. 예컨대 빈부의 격차가 점차로 더 벌어지는 상황에서 기독교 선교를 담당하는 신앙인들은 근로자의 저임금을 사사로운 개인 문제의 차원에서나 이른바 “순수신앙”의 차원에서 볼 것이 아니다. 그들이 만일 부당하게 저임금을 받고 있다든지, 억울하게 해고된다고 할 때 그 문제를 근로자 한 사람, 한 사람의 신앙 부족에서 혹은 개인의 부덕에서 생긴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 문제의 뿌리와 전체를 보아서 그들의 아픔을 근본적으로 제거할 수 있는 방책을 강구해야 한다. 그런데 종교의 “순수성”을 강조하는 사람들은 그들이 지배세력이든지 아니면 보수적 신앙인이든지 간에 그들 자신이 문제의 심각성이나 전체성을 못 보게 되고 나아가 남들까지도 그것을 못 보도록 한다.




나는 이 글에서 문제 의식의 성격과 그 작용에 대해서 간단히 언급한 셈이다. 그것은 당연의 세계의 뚜껑을 열고 그 속의 비당연성을 살펴보는 의식이요, 문제 없다고 믿어 온 물론의 세계의 껍질을 벗기고 그 속에 있는 비물론성을 꿰뚫어 보는 통찰력이요, 특히 그 일상성의 세계를 관장하고 있는 지배세력의 화려하고 그럴듯한 허위의식의 정체를 폭로하는 혜안이요 용기이다. 그뿐만 아니라 문제 의식은 사건과 문제의 뿌리를 볼 줄 아는 투시력이요, 사건과 현상의 전체 모습과 그 성격을 종합적으로 이해하는 파악 능력이다. 이러한 근본적이고 총체적 사고를 약화시키거나 마비시키려는 여러 가지 메커니즘이 있다. 사사화(私事化), 순수화, 그리고 정보의 흐름의 통제 등이 바로 그것이다. 이러한 메커니즘의 작용을 제대로 파악하고 이것의 속셈을 폭로시키려는 의식과 용기 또한 문제 의식이라 하겠다. 이러한 문제 의식은 부당한 양극화 상황에서는 항상 약자와 피해자의 편을 들게 된다. 이런 뜻에서 문제 의식은 곧 민중을 위한 의식임과 동시에 민중의 의식이다. 특히 대자적(對自的) 민중의 성숙하고 날카로운 의식이다. 우리는 이러한 문제 의식을 가지고 오늘 이 땅의 문제와 이 시대의 문제와 징후를 전체적으로 파악해야 한다. 그 징후의 껍질을 벗기고 그 실지와 그 뿌리를 날카롭게 응시해야 한다.


(한완상 지은 ������민중과 사회������ 종로서적, 1980, 174-192 쪽에서)


35. 지식인의 소상(塑像)


신군부 찬양한 교수들, 지금 무어라 말하나


(한겨레21, 96. 1. 10)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80년 8월28일 경향신문에 ‘새 대통령 당선을 경축하며’라는 시를 쓴 조병화씨는. 기억하기 싫었는지도 모른다. 기억력 ‘회복’을 위해 일간지에 실린 시 아래에 친필사인이 있더라고 말해줬다. 조씨는 “내 사인이 있다면 내가 썼을 것인데 내용은 기억나지 않는다. 압력은 없었고 청탁이 들어와서 썼을 것이다. 안개에 싸인 정국이라 내 시가 어디에 쓰일지 알 수 없던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좀더 정확하게 물었다. 전 대통령의 취임을 축하하는 시를 쓰지 않았느냐고. 그제서야 조씨는 기억력을 회복한 모양이었다. “청탁 내용이 언짢았지만 공포분위기 속에서 살아남으려다 보니까 어쩔 수 없었다. 신문방송을 보라. 기업가들이 어디 내고싶어 돈을 냈겠는가” 변명은 있었지만 반성은 없었다.


민정당 창당작업에 참여했던 명지대 배성동 교수는 “서울대에서 유일하게 정당론을 강의하고 있었던 것이 그들이 나를 찾은 이유였다”고 참여 경위를 밝혔다. 당시 신군부는 그에게 공화당보다 효율적이고 민주적인 정당을 만들어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그 인연으로 5공 때 국회의원을 지냈다. 이에 대해 그는 “창당작업이 끝난 뒤 국회의원을 하 라며 교수직을 그만두라는 요청이 들어왔으나 직업적인 정치가는 맞지 않는 것 같아 거부했다”며 “그 뒤 교수직을 유지하면서 국회의원을 할 수 있는 길이 생겨 그들의 요청을 받아들였다”고 말했다. 그러나 5공 정부 에 대한 평가와 자신의 참여에 대한 가치판단에 대해서는 말을 하지 않았 다.


이화여대 김대환 교수는 입법위원이었던 사실에 대해 “그들이 의사조차 묻지 않고 일방적으로 지목한 것”이라고 말했다. 80년 11월13일 당시 한 국산악회 부회장을 맡고 있던 김 교수는 지리산에서 난 조난사고를 처리 하고 밤 11시 집에 돌아오니 신군부쪽에서 입법위원으로 선정됐으니 다음날 신라호텔로 나오라고 통보해 나갔다는 것이다. 그는 “전공이 농촌사회학이라 새마을 운동의 이론화 작업을 했었지만 유신작업에는 참여하지 않았고 여러 차례 요청이 있었음에도 정신문화연구원 부원장을 지낸 것 외에는 5공화국에 참여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80년 대학가에 어용교 수 논쟁이 불붙었을 때 그 자신은 제외됐다는 사실을 그 근거로 들기도 했다. 극우논객이라는 지적에 대해 “나는 민족주의자”라고 강조하고 5공화국에 대한 평가를 요청하자 “역사적 과정이라고 생각하며 역사는 점이 아닌 선으로 봐야한다”는 말로 답변을 대신했다.


반성하는 사람은 없었다. 나창주 전 건국대 교수의 부인은 “세상에 깨끗 한 사람이 어디 있는가”라며 “전두환 노태우가 감옥에 갔다면 그 때 그들을 찬양했던 언론인도 모두 같이 가야하는 것 아니냐”며 나씨의 연락처를 알려주기를 거부했다. 그는 “힘없는 우리에게 뭘 바라느냐”며 “나씨가 건국대 교수직을 그만둔 것도 본인의사에 따른 것이 아니었다”며 분노했다.


이들에 비해 80년 1월26일 <조선일보>에 실린 이항녕 홍익대 총장의 글은 지금 보아도 신선한 충격이다. “온 세상이 민주화를 위한 정치발전작업에 들떠 있지만 나는 그것보다도 나 자신이라는 인간이 싫어졌고 나의 처세에 구토를 느낍니다. 민주주의를 위해 온갖 어려움을 무릅쓰고 갖은 고난을 겪은 사람들이 이제 내 앞에 있습니다. 그들이 어려움을 참을 때에 그들이 지조를 지킬 때에 그들이 순교하고자 할 때에 나는 도망을 쳤습니 다… 내가 학자랍시고 강단에서 행세했다는 것이 희극입니다… 나는 학원의 영원한 발전보다도 일시적 무사를 택했습니다. 오늘의 우리나라에 진 정한 학문이 없고 진정한 교육이 없는 것은 모두 나와 같은 파렴치한 때문입니다. 나는 이것을 깊이 참회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새 사람이 되기를 결심도 합니다. 그러나 이 결의가 과연 얼마나 오래 갈는지 도무지 자신이 없습니다… 내가 또다시 그 더러운 처세철학을 소생시켜 추한 사람이 되지 않도록 동료들은 나를 꾸짖어 주시고 제자들은 나를 손가락질 해 주기를 바랍니다.”




예술가의 영혼 팔아치운 시인과 소설가들


(한겨레21, 96. 1. 10)




“주여. 지난 여름은 참으로 위대했습니다./ 위대한 여름/ 우리는 지금 역사속의 한 여름에 동참하고 있는 것이다.” 릴케의 저 유명한 기도문이 아니다. 80년 8월23일자 <경향신문>에 작가 강유일이 쓴 전두환 장군 전역식 참관기의 마지막 구절이다. 그 해 5월 빛고을에는 ‘폭도’라는 이름으로, 남파 간첩의 선동이라는 억지와 함께, 피가 뿌려졌다. 꽃잎처럼 붉은 피가 역사의 제단에 흩뿌려졌다. 그 반란의 수괴가 대통령이 되기 위해 군복을 벗던 날을, 문학인이라는 이가 ‘위대한 여름’이라 찬양한 것이다. 한면을 온통 털어 거짓 미학을 동원한 찬양문으로 일관한 그의 참관기는 지금도 읽는 이의 얼굴을 후끈거리게 한다.




사랑의 통치자, 그 힘 막강하여라


“10․26 사태 이후 우리 국민이 겪은 무서운 정치적 환절기… 북괴의 남침 야욕, 정의를 약속한 직업 정치인들의 배신, 노사분열, 성급한 자유방임의 기치… 이 격렬한 모든 물결들이 결국 국가의 존속을 위험수위까지 몰고 갔던 추억 말이다. 더군다나 자신 없는 사람들이 불안을 이기기 위해 전염시킨 유언비어는 또 얼마나 무섭게 범람했는가… 전 위원장은 그 두려운 절망의 늪으로부터 국민들을 구해냈다… 이 어려운 난세에 우리 국민이 청렴한 성품의 강력한 지도자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은 참으로 다행한 일이라 해야 할 것이다.”당시의 상황이 아무리 어려웠다 한들, 강압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쓴 글이라고 ‘위안’하기에는 지나치다. 그로부터 15년이 지나고 ‘청렴한 성품의 강력한 지도자’가 제 민족의 가슴에 총을 쏘아댄 반란수괴, 살인마로 전락한 지금, 그는 무슨 말을 하고 싶을까.


불행한 일이지만, 너무도 서글픈 일이지만 악마에게 예술가의 영혼을 팔아치운 이는 그뿐만이 아니다.


‘새 대통령 당선을 축하하며’라는 이름으로 80년 8월28일자 <경향신문>에 실린 조병화의 전두환 찬양시는 또 어떠한가.


“…온 국민과 더불어 경축하는/ 이 새출발/ 국운이여! 영원하여라// 청렴결백한 통치자/ 참신 과감한 통치자/ 이념 투철한 통치자/ 정의 부동한 통치자/ 두뇌 명석한 통치자/ 인품 온후한 통치자/ 애국 애족, 사랑의 통치자/ / …이 새로운 영토/ 오, 통치자여! 그 힘 막강하여라// …아, 이 새로운 영토/ 이 출발/ 신념이여, 부동 불굴하여라….”


이른바 ‘국민 시인’이라는 그는 ‘하늘이 내린 위대한 지도자’가 감옥에 갇힌 이 ‘말도 안 되는 세상’을 뭐라 할까. 전두환을 두고 “오, 통치자여! 그 힘 막강하여라”라고 토로했던 그는 전․노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한 청산 작업이 한창이던 95년 12월19일 예술원 원장에 올랐다. 그를 존경해야 하는가. 이건 비극인가 희극인가.


‘국화 옆에서’의 서정주가 87년 1월18일에 쓴 ‘전두환 대통령 각하 제 56회 탄신일에 드리는 송시’라는 길고 긴 이름의 시는 차라리 눈을 감고 싶게 한다.




자손에 부끄러움을 남기지 않는 길이란…


‘한강을 넓고 깊고 또 맑게 만드신 이여/ 이 나라 역사의 흐름도 그렇게만 하신이여/ 이 겨레의 영원한 찬양을 두고두고 받으소서// 새 맑은 나라의 새로운 햇빛처럼/ 님은 온갖 불의와 혼란의 어둠을 씻고/ 참된 자유와 평화와 번영을 마련하셨나니/ …이 겨레의 모든 선현들의 찬양과/ 시간과 공간의 영원한 찬양과/ 하늘의 찬양이 두루 님께로 오시나이다.”


1, 2연 과 마지막 연인 10연의 내용이다. 이쯤되면 80년 당시 한 방송에 나와 전두환의 웃음을 두고 ‘5천년 이래 최고의 미소’라 칭송해 입소문에 올랐 던 것은 차라리 웃어넘길 일에 불과하다. 그러나 대통령이 ‘역사 바로 세우기’를 소리 높여 외치는 지금 이 순간에도 대한민국의 감수성 예민한 청소년들은 서정주의 ‘국화 옆에서’와 ‘화사’(花蛇)를 읽고 외우고 감상한다. 그리고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엔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 한다, 서정주의 가르침에 따라. 뛰어난 시라는 이름으로.


한때 이른바 ‘순수 문학’의 첨병이었던, 80년 당시 문인협회 이사장 조 연현은 또 어떠한가. <동아일보> 80년 9월6일자에 실린 ‘전 대통령의 취임사를 보고, 새정부, 기대와 과제와… ‘라는 시리즈의 한 글에서 그는 이렇게 주장했다.


“…전 대통령의 교육과 문화에 대한 전기한 시책방향은 내가 보기에는 일종의 문화적 혁명을 시도해 보려는 보다 고차원적인 정치적 이념과 결부되어진 것이 아닌가… 국민정신의 개조라는 이 중대한 획기적인 발언의 정신은 전 대통령이 제시한 모든 시책의 근원적 흐름으로 느껴졌다.”


한 나라 문인의 어른이라는 이가 ‘국민 정신의 개조’라는 말을 쓴 것이다.


대한민국의 국민은 외과적 수술을 받아야 할 만큼 구제불능의 저능아들이 었는가. 그는 답해야 한다.


지금은 고인이 된 80년 당시 문예진흥원장 송지영이 <조선일보> 80년 8월 13일자에 쓴 시론은 인용하기조차 부끄럽다.


“정도는 어디에 있는가. 바로 엊그제 국보위상위장 전두환 장군이 솔직하게 담백하게 자세하게 밝혀준 그 길이 곧 바른 길이다… 우리 국가의 앞날이 그 길로만 차질 없이 뻗어간다면 민족의 생존과 번영이 어김없이 우리 모두 기대하는 그대로 이뤄질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다시금 솔직히 한마디 털어놔야겠다. 부패와 방종과 무질서가 판을 치던 엊그제의 일들은 생각하면 오늘 우리들 눈 앞에 팽배한 물결로 넘쳐 나고 있는 정화조의 구석구석을 쓸고 닦고 밀어내는 그 엄청난 힘의 작용을 한두달 전까지 어느 누구도 생각지 못했던 것 아닌가… 우리 모두 마음을 가다듬고 의식의 밑바닥을 새롭게 청소하여 우리들 앞에 환히 보이는 그 길로 호흡을 함께하여 멈추거나 머뭇거림 없이 달려가야 하지 않겠는가. 그 길만이 우리가 살길이요, 그 길만이 번영을 가져오는 길이요, 그 길만이 오늘을 사는 우리들로서 자손에게 부끄러움을 남기지 않는 길이다. 머뭇거릴 필요는 없다. 정로대도(正路大道)를 따라 모두 함께 달려가자.”


그는 용감 하게도 “자손에게 부끄러움을 남기지 않는 길”이라는, 최후의 순간에도 절대로 해서는 안 될 말까지 동원했다.


소설가 천금성의 필봉은 극점을 달린다. <황강에서 북악까지>. 그가 쓴 대통령 전두환의 전기 제목이다. 살아서 전기를 낸 자는 태어난 곳 황강에서 북악(청와대)를 거쳐 지금은 ‘안양’(교도소)에 있다. 그리고 예술가의 명예를 더럽힌 그는 아직도 붓을 놓지 않고 글을 써대고 있다.




원로 소설가 김동리의 정치적 행동


‘꽃’과 ‘처용 단장’의 시인 김춘수는 민정당 창당 발기인 15명 중 한명으로 참가해 11대 민정당 전국구 국회의원을 지내는 ‘탁월한’ 정치력을 발휘하기도 했다.


순수문학의 ‘전사’이자 원로 소설가로 추앙받았던, 이미 고인이 된 김동리도 빠지지 않는다. 그는 지난 87년 전두환 당시 대통령이 ‘4․13 호헌’을 선언한 것에 대해, 문협 이사장의 자격으로 “야당의 분당, 데모 등 개헌이 순조롭지 않은 상황에서 원래의 헌법에 따라 새 대통령을 뽑는 방식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고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 또 ‘민족 화합의 대축제’라는 88올림픽을 앞두고 서울에서 열린 제52차 국제 팬대회에서“아직도 반정부을 진보로 착각하는 따위의 시대 착오에 빠진 일부 젊은 문인들 중 자유 체제를 타도하려는 과격한 행동으로 옥창신세를 지고 있는 사람이 적지 않다”며 구속문인 석방운동을 펼치던 나라 안팎의 문인들을 비난하는 ‘정치적 행동’을 한 바 있다.


누구나 행동할 수 있다. 그 길이 대다수 사람이 비난하는 길일지라도. 그러나 그 행동이 지금도 정당한 것이라 주장하지 않는다면, 더군다나 그 행동이 결과적으로 무수히 많은 이들의 삶에 질곡으로 작용했다면, 적어도 공개 반성정도는 해야 하지 않을까. 그러나 아무도 반성하지 않았다.




5, 6공의 고통 속에서도 저항한 교수들


(한겨레21, 96. 1. 10)




적지 않은 교수들이 신군부에 부역한 대가로 안락한 생활을 보장받는 상황에서도 온몸으로 저항하며 양심을 지킨 교수들이 있었다. ‘계엄령 철폐’와 ‘전두환 퇴진’을 요구하는 학생들의 시위가 연일 계속되던 80년 5월15일. 법무부 기자실에서는 이상한 기자회견이 있었다. ‘지식인 104 인 시국 선언’. 백낙청 리영희 성래운 한완상 서남동 김동길 이문영 등 유신독재에 항거하다 해직된 뒤 그 해 2월에야 복직된 스물네명의 교수들을 주축으로 학계 언론계 종교계의 인사들이 망라된 ‘양심의 소리’였다. 그러나 비상계엄 해제와 학원의 자율적 민주화운동 존중, 전두환 보안 사령관의 중앙정보부장 겸직 시정 등 7개항을 요구한 이 시국 선언은 신문에 단 한줄도 보도되지 않았다. 대신 선언에 참여한 교수들은 남산 지하실로, 남영동 대공분실로 끌려갔다.


18일 김동길 리영희 교수 등이 사회 불안 조성과 학생 소요 배후 조종 혐의로 계엄사에 연행되었고 서남동 한완상 이문영 장을병 유인호 교수 등은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으로 엮여 들어갔다. 이들은 60일 동안 소재도 감춰진 채 남산 지하실에서 감금과 폭행을 당했다. 그리고 보안사의 기준에 따라 A급으로 분류된 교수들은 7월 중순 남산 지하실에서 사표를 써야 했고, B급 교수들은 치안본부에서 조사를 받은 뒤 소속대학에 해직대상자로 통보되어 사직서를 강요받았다. 당시 서울대 학생처장이던 이수성 현 총리는 시위를 마치고 돌아오는 학생들에게 버스와 식사를 제공했다는 이유로 보안사로 끌려가 고초를 겪기도 했다. 이렇게 80년 여름을 넘기면서 87명의 교수가 거리로 내몰렸다. 이들은 원고료나 제자들의 도움으로 생계를 꾸렸고 전남대에서 해직된 한 교수는 군고구마 장수를 해 생계를 이어가야 했다.


이들은 83년 8월 처음으로 해직 교수 모임을 열고 ‘원적 대학으로 전원 즉각 복직’을 요구했고 12월6일 문교부는 ‘해직교수의 타대학 임용 허용’으로 답했다. 이 조치로 몇몇 교수가 복직했지만 대다수의 교수들은 ‘원적 대학 일괄 복직’을 요구하며 12월20일 해직교수협의회를 결성한 데 이어 ‘해직교수 아카데미’와 ‘민중대학’을 만들어 치열하게 싸운 끝에 해직 4년 만인 84년 조선대 임영천 교수 등 3명을 제외한 전원이 다시 교단에 서게 되었다. 복직 뒤에도 이들은 85년 학원안정법 제정 반대 투쟁과 87년 박종철고문치사공동위원회를 통한 진상 규명 운동 등 민주화 운동에 앞장섰고 87년 7월23일 ‘민주화 교수협의회’를 만들었다.


6공화국 들어서도 학내 민주화나 사회 민주화 운동을 한 교수들의 해직 사태는 줄을 이었다. 그러나 유신과 5공 시절의 해직이 정권이 바뀌거나 시국사건과 관련한 해직이었지만 6공의 해직은 달랐다. 90년 개정된 사립학 교법에 따라, 교수 재임용 권한을 부여받은 재단이 앞장서서 사회민주화 운동에 적극적이었거나 총․학장 직선, 비리재단 퇴진 등 바른 소리를 하는 교수들을 집중적으로 탈락시켰다. 정권은 뒤로 숨고 재단이 앞장선 것이다. 90년 1월 호남대가 ‘사학의 민주운영’을 요구한 교수 5명을 해직한 것을 시작으로 6공화국 기간 동안 세종대 상지대 등 전국 대학에서 70여명의 교수들이 다시 거리로 내몰렸다.


학자적 양심을 팔아 내란 세력에 협조한 대가로 안락한 삶을 누렸던 교수들이 내란세력이 단죄받는 역사청산의 길목에서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며 변명을 늘어 놓고 있다. 그러나 그들이 기억해야 할 게 있다. 바로 그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도 현실을 냉정히 비판하며 양심을 지키기 위해 온몸으로 고통을 견뎌낸 동료 교수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36. 환경 보호인가, 경제 성장인가?


환경 문제는 기본적으로 경제 개발과 긴밀하게 결합되어 있습니다. 개발을 지속하려면 심각한 환경의 파괴를 감수해야하고, 환경을 위해 개발을 중지하면 인간의 경제 생활이 파괴되는 모순관계가 형성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환경이 우선이 되어야 할 것인지, 아니면 경제가 우선이 되어야 할 것인가에 대해 여러분들이 냉철한 판단을 기대합니다.




산업 혁명 후 세계는 대규모의 공업화를 이루어 내면서 엄청난 양의 화석 연료(석탄, 석유, 천연가스 등)를 소비해 왔습니다. 공장․자동차․열차․비행기, 그리고 사람들의 일상 생활에서 오염 물질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깨끗하고 맑은, 그리고 사람과 동물이 조화를 이루던 지구의 환경은 점점 더 참혹한 모습으로 바뀌어 갔습니다. 사람들은 과거에 비할 수 없을 정도로 풍요로운 물질적 생활을 만끽하고 있었지만, 숨을 헐떡거리는 지구는 대재앙의 서막을 열고 있었습니다.


대기 오염으로 인한 스모그 현상과 산성비, 식수, 오염과 점점 늘어나는 폐수, 미나마타병과 적조 현상, 지구 온난화로 인한 해수면 상승과 이상 기후, 오존층 파괴로 인한 면역 체계의 파괴와 생태계 파괴 등등 사람들이 살고 있는 땅과 공기, 물이 한꺼번에 위기 상태에 처해지게 되는 심각한 ‘공포의 환경’이 조성되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심각한 환경 문제는 잘 알고 있다시피 20세기 들어 특히 가속화된 인구의 폭발적 증가와 과학기술의 산업화, 대규모로 진행되고 있는 도시화, 대량 생산, 대량 소비의 시장 경제 원리에 의해 주도된 엄청난 경제 성장이 근본적 원인으로 자리잡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환경 문제는 기본적으로 경제 개발과 긴밀하게 결합되어 있습니다. 개발을 지속하려면 심각한 환경의 파괴를 감수해야 하고, 환경을 위해 개발을 중지하면, 인간의 경제 생활이 파괴되는 모순 관계가 형성되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과연 지구에서 더 이상 사람들이 살 수 없게 된다면, 과연 사람들은 어디에서 자신의 생활을 영위할 수 있을까요?


1970년 4월 22일, 미국에서는 약 2000여 만 명의 사람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다가오는 재앙’을 경고하고, 하나뿐인 지구를 살리자고 외쳤습니다. 사람들은 집회를 열고, 토론을 하고, 지구를 살리자는 환경 운동가들의 열변을 경청했습니다. 뉴욕 5번 가에는 자동차의 통행이 금지되고, 센트럴 파크( Central Park)에는 60만 명의 군중이 운집했습니다. 최최로 ‘지구를 살리자’는 대규모의 대중 행동이 전개된 것입니다. 세계 각국은 미국 국민들의 이러한 노력을 신선한 충격으로 받아들엿습니다. 그래서 이 날을 ‘지구의 날’로 선포하고 미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에서 이 날을 기념하고, 지구 환경을 살리기 위한 적극적인 노력을 전개하기로 했습니다.


이후 지구 차원의 환경 문제에 대한 관심이 확산되어, 1972년 6월 5일에는 유엔 산하에 ‘유엔 인간 환경 회의’가 ‘하나뿐인 지구(The Only Earth)’라는 주제로 스톡홀름에서 개최되었습니다. 113개 국가와 3개의 국제 기구, 257개 민간 단체에서 1200여 명이 참여하여 환경 위기를 공감하고, 환경 위기로부터 지구를 지키는 방안을 토론했습니다.


이 회의에서는 ‘환경과 개발의 조화’를 제창한 저 유명한 ‘스톡홀름 선언(인간환경선언)’을 발표하였고, 회의가 개최된 6월 5일을 ‘세계 환경의 날’로 제정했습니다. 비록 환경 문제를 인식하고 대처하는데 각 나라별로 경제 발전의 정도, 자원의 유무, 환경 파괴의 심각성 정도에 따라 심각한 입장의 차이가 발생하였지만 이렇게 해서 지구 환경을 살리기 위한 중요한 두 개의 기념일이 제정된 것입니다. 그리고 환경 문제에 대한 국제적인 관심과 대응 노력이 서서히 확대되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국가간의 이해 관계의 차이가 심각함으로 인해, 국제적인 차원에서 본격적으로 환경 위기에 대응하려는 시도는 지구 환경이 훨씬 더 심각해진 뒤에야, 그리고 많은 민간 환경 단체들이 세계 곳곳에서 정열적으로 문제 제기를 한 뒤에야 이루어지게 됩니다. 1992년 6월 5일 유엔 인간 환경 회의 20주년을 기념하는 리우 환경 회의가 바로 그것입니다.


 그렇다면 환경 위기의 실상은 어떻고, 왜 그런 위기가 발생하게 될까요? 환경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들을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도 먼저 환경 위기의 실태를 정확하게 인식해야 합니다.


 현제 나타나고 있는 환경 오염과 파괴는 매우 심각합니다. 세계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워낙 광범위해서 한꺼번에 다루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먹고, 자고, 일하고, 생활하는 사람들의 모든 활동 영역에서 환경 위기가 심각하게 드러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와 같은 처지에서는 경제개발에 박차를 가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급변 하는 세계 무역 전쟁에서 우리의 입지를 확고하게 지켜나가기 위해서는 한시라도 고삐를 멈춰서는 안될 것입니다. 따라서 경제개발에 박차를 가할 수 밖에 없는 입장인데다, 환경 오염의 문제도 날로 심화되어 가고 있기 때문에 무엇에 우선을 두고 일을 행해야 할지 매우 어려운 지경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여러분들의 생각은 어떠할는지 매우 궁금합니다.


37. 환경 문제의 근원




우리의 환경은 우리 공동체의 소유이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공동으로 소유하고 있는 것은 누구에게나 속해 있지 않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즉 이러한 물질을 얻는 데는 비용을 들이지 않고 공짜로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며 나로 인해서 공동체의 다른 사람에게 나쁜 영향을 미치게 되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




환경 문제 발생은 여러 원인 또는 원인의 복합에 의해 나타난 결과이지만, 근원적으로는 주로 다음의 몇가지를 지적 할 수 있다.




1. 환경은 인간을 위해 존재한다는 잘못된 태도


인간은 환경에 속해 있고 환경의 일부분이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볼때, 인간은 이 세상의 모든 것보다 위에 있으며 이들 만물은 모두 인간을 위해서 존재한다고 믿는 경향이 많았다.


이러한 태도는 특히 근대 물질 문명을 이끌고 온 서구 문화에서 많이 볼 수 있었으며, 오늘날은 세계 도처에 이러한 태도가 만연되어있다. 새로운 대륙을 또는 땅을 함부로 개척하여 착취하며, 삼림이나 지하 자원을 필요 이상으로 벌태 또는 파내서 남용해 왔다. 공장에서는 검은 연기와 산업 폐수를, 가정에서는 생활 쓰레기를 아무런 책임감 없이 함부로 쏟아내왔다. 우리의 환경은 인간에게 봉사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태도이다.


그러나 우리의 환경은 한계가 있는 것이다.


토지나 기타 자연 자원이 한계가 있고, 깨끗한 물이나 공기가 무한히 있는 것도 아니다. 환경은 한번 파괴되면 재생이 불가능하거나 재생될 수 있다 하여도 재생되는데 많은 비용이 들고 오랜 시일이 걸린다.




2. 인구 증가 및 경제 발달과 환경 문제


오늘날의 환경 문제의 근원은 급속한 인구증가와 경제 발달 및 이에 따른 물자의 생산량과 소비량의 급증이다. 전 세계적으로 인구가 급속히 증가하기 시작한 것은 불과 과거 100여년 이내의 일이다. 인구 증가는 기하 급수적으로 일어난다. 간단한 예를 들어서, 이 책 한 장의 두께가 0.1㎜ 라고 한다면, 이것을 두 배로 하면 0.2㎜ 에 불과하다. 다시 두 배씩 계속 증가 시키면 0.4, 0.8, 1.6, 3.2㎜ 로, 20번 후에는 100m 두께로, 다시 35번 후에는 거의 에베레스트산 높이에 달하는 두꺼운 책이 된다. 한지역의 인구가 두 배로 되는데 걸리는 시간은 인구 증가율에 달려있다. 우리나라의 현재의 연 인구 증가율(1.3%)로 추정하면 약 52년 후에는 인구가 두 배로 된다. 서부유럽 국가들은 평균 398년의 기간이 필요하다.


경제 발달과 기술 개발은 우리의 생활 수준을 향사시켜 1인당 물자 소비량이 계속 증가해 왔다. 예를 들면, 우리나라 국민 한 사람당 상업적 에너지 소비량은 지난 1965년 238㎏ (석유환산)에서 1987년에는 1,475㎏ (석유환산)으로 증가하였다.


이와같이 우리 생활이 부유해 질수록 소비량이 증가하고 이에 따라 더 많은 물자를 생산해야 된다. 물론 쓰레기와 같은 환경에 해를 끼치는 물질도 그만큼 증가하게 된다.


우리 사회는 지금까지 경제 성장을 가장 우선적인 위치에 두고 경제 성장만을 지향해 왔다. 환경 또는 인간의 건강이나 안녕에 관한 사항 등은 제 2차적인 것으로 생각해 왔다. 국민 초생산량(GNP)을 국가 발전의 정도를 측정하는 대표적인 지표로 삼았다. 그러나 GNP가 보다 나은 국민의 삶을 측정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우리 사회는 경제적 생활 수준의 향상을 위한 경제 발전과 우리의 건강 및 안녕을 도모하기 위해 환경 문제를 줄이려는 두 가지 상반된 목적을 균형있게 이루어 나갈 수 있도록 하는 우리의 지혜를 필요로 한다.




3. 인간의 이기적인 태도


인구가 조밀해지고 또 각자가 경제적으로 부유한 생활을 추구해 가는 과정에서 우리들의 이기적인 행동이 늘어가고 있다. 현재와 미래에 대한 공동체의 한 구성원으로서가 아니라 현재만을 기준으로 행동하거나 의사 결정을 내리는 경우가 늘어가고 있다.


우리의 환경은 우리 공동체의 소유이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공동으로 소유하고 있는 것은 누구에게나 속해 있지 않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즉 이러한 물질을 얻는 데는 비용을 들이지 않고 공짜로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며 나로 인해서 공동체의 다른 사람에게 나쁜 영향을 미치게 되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 이러한 이기적인 생각에서 자원을 사용할 때에 자유 방임적이고 또 남용을 하고 있다.


우리가 항상 얻을 수 있는 공기와 물은 좋은 예로써, 물이나 공기는 다른 자연 자원에 비해서 경제적 가치가 적을 뿐만 아니라 얻는 데 드는 비용이 적게 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깨끗한 공기나 물은 공짜로 얻을 수 없음을 피부로 느끼고 있다.




38. 환경에 대한 주요 개념


1. 환경의 한 부분으로서의 인간


환경이라는 말은 넓은 의미로는 우리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을 의미한다. 동식물이나 토지, 물 또는 공기와 같은 단순한 자연 환경뿐만 아니라 우리의 이웃이나 소리, 음악 등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의 모든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환경 ‘속’에서 살고 있다. 여기서 중요한 개념은 ‘속’에 있다. 즉, 인가나과 환경은 별개의 것이 아니라 인간 역시 환경의 한 부분인 것이다.




2. 수용 한계가 있는 환경


우주선을 타고 달에 가서 지구를 바라보면 하나의 커다란 푸른 구슬처럼 보이는 이 지구 또한 한정된 자원을 갖고 있는 작은 행성으로 보일 것이다. 이 작은 행성인 지구는 무한한 자원을 갖고 있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무한한 인구를 수용할 수도 없고 또한 과잉 소비에서 오는 쓰레기나 폐기물을 무한히 수용할 수도 없다.




3. 균형을 이루고 있는 생태계


생태계란 모든 생물과 그에 관련된 무생물을 포함한 공동체로써 자연의 한 부분을 이루고 있는 체계이다. 생태계는 지구 전체가 될 수도 있고, 바다 가운데 있는 섬, 한 지역의 삼림 또는 작은 정원일 수도 있다.


이렇게 보면 지구는 수많은 다양한 형태의 생태계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이들 모든 생태계는 서로 밀접히 관련되어 균형을 이루고 있다. 이 중 어느 한 부분이 파괴되거나 피해를 받게 되면 다른 생태계에 예측할 수 없는 좋지 못한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4. 물질의 대순환


물이나 에너지 또는 물질은 생태계를 끊임없이 순환하고 있다. 다만 인간이 이를 방해하지 않는 한 순환은 계속된다. 순환의 좋은 예로는 인(燐)을 들수 있다. 모든 생물은 특정형태의 인을 필요로 한다. 토양에서부터 식물의 뿌리에 의해 흡수된 인은 잎에 저장이 되고 낙엽이 지면 인은 다시 토양으로 되돌아간다. 먹이사슬은 대순환의 또 다른 예이다.




39. 환경 위기의 대표적인 유형들


1. 스모그와 산성비


산업 혁명 이후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화석 연료(석탄, 석유, 천연가스 등)의 대량 소비는 심각한 대기오염을 야기시키고 있습니다. 특히 이러한 오염은 특히 좁은 지역에 많은 인구가 밀집되어 있는 도시에서 매우 심각하게 나타납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바로 스모그현상입니다.


스모그(smog)라는 용어는 연기(smoke)와 안개(fog)의 합성어로서 20세기 초부터 영국 런던의 대기 오염 현상을 기술하기 위한 용어로 쓰여지기 시작했으며, 현재는 도시의 오염된 대기를 지시하는 일반 용어로 널리 쓰이고 있습니다. 스모그는 그 발발 원인과 양상에 따라 주로 겨울철에 발생하는 런던형 스모그 현상과 주로 여름철에 많이 발생하는 LA형 스모그 현상(광화학 스모그)으로 나뉘어 집니다.


산업화가 일찍 시작된 영국은 특히 심각한 대기 오염 사고를 경험하였는데, 안개의 도시로 알려진 런던의 스모그 현상으로 인해 1873년 12월에 약 500여 명이, 1880년 2월에 약 2000명이, 그리고 1952년 12월에는 4000명 이상이 호흡기 질환으로 사망하는 대참사가 발생했습니다. 이 사고는 주로 인근 화력 발전소와 공장 등에서 배출한 황산화물이 원인이 된 것인데, 이와 유사한 사고는 1930년 벨기에의 뮤즈(Meuse)계곡과 1948년 미국 펜실베이니아의 도노라(Donora)계곡에서도 발생하여 각각 수십 명의 사망자와 수천 명의 환자를 발생시킨 바 있습니다.


한편 이와는 다른 유형의 도시형 대기 오염으로는 미국 로스엔젤레스 시에서 발생한 소위 광화학적 스모그현상이 있습니다. 이것은 자동차 배기가스로 배출된 질소 화합물과 탄화수소가 원인이 되어 대기가 옅은 갈색을 띠고 눈을 따갑게 하고, 목과 코의 통증, 호흡곤란, 두통 등의 증상을 일으킵니다.


이미 세계 곳곳의 대도시나 공업도시들에서는 이러한 스모그 현상이 빈발하고 있는데, 공업화에 따른 환경 오염의 대표적인 문제로 지적되고 있스비니다.


뿐만 아니라 대기 오염에 따른 산성비의 발생은 삼림의 파괴와 생태계의 파괴로 이어지는 심각한 문제를 낳고 있습니다. 산성비는 석탄의 연소로 배출되는 아황산가스가 대기 중에서 산소 및 수증기와 작용하여 황산으로 변화되어, 이것이 빗물을 산성으로 만들게 되면서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보통 빗물의 수소이온 농도(ph)가 5.6이하인 경우를 산성비라고 하며, 이러한 현상은 이미 19세기 중반에 영국의 공업도시인 맨체스터에서 보고되어졌고, 지금은 거의 모든 공업도시에서 이러한 현상이 발견되고 있기도 합니다.


1950년에는 ph6.0 정도이던 스웨덴의 많은 호수들이 1980년대에는 ph5.0 이하로 떨어졌으며, 스칸디나비아 반도에서는 1980년대 말에 2만 개 이상의 호수가 심하게 산성화되고, 그 중 약 1/4에서 물고기가 서식하지 못하게 된 사례가 있습니다. 이러한 결과는 대부분 영국으로부터 날라 온 대기 오염 물질의 영향인 것으로 판단되고 있습니다. 한편 중국에서는 1949년부터 1982년 사이에 석탄 생산이 20배 이상 증가하였고, 최근 급속한 공업화를 통해 에너지 사용량이 더욱 급격히 증가하고 있는데, 이로 인해 중국과 우리나라 등지에서는 심각한 산성비 피해가 발생하고 있기도 합니다.


산성비는 토양과 하천을 산성화시킴으로써 숲을 황폐화시키고 또 물고기의 대량폐사를 야기합니다. 산성비의 영향을 받는 토양과 하천은 그 영향의 기간이 길어질수록 더욱 더 산성화되며, 결국은 생물이 서식할 수 없는 환경으로 황폐화됩니다. 물의 ph값이 4.5이하에서는 식물들까지도 심각한 영향을 받으며, 또한 산성비로 인해 고대 건축물과 기념물들이 침식되거나, 교량과 같은 금속 구조물들의 부식률도 증가시키게 됩니다.




2. 공장 폐수와 식수 오염


물은 지구상의 생물들이 진화하고, 생존하는데 없어서는 안될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그러나 공업화가 진전되면서 물은 심각한 오염 상태에 처하게 됩니다.


최근 우리 나라에서 발생한 낙동강․영산강 등의 오염 사태는 바로 그것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공장에서 흘러나오는 유독 폐수들이 아무런 대비책 없이 강물로 흘러들게 되면서, 강물의 생태계를 파괴시키고, 물고기들이 더 이상 살 수 없는 ‘죽음의 강물’을 만듭니다. 낙동강 유역의 사람들이 수독물을 마시지 못하고 ‘물난리’를 겪었던 사태는 수질 오염으로 인한 대표적인 피해를 말해 줍니다. 물이 오염되면 사람을 포함해 모든 생물들이 심각하게 위기상황에 처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미 서구에서는 60년대를 전후로 하여 프랑스의 센 강, 독일의 라인 강, 템스 강이 심각한 오염에 처한 적이 있습니다. 선진국에서는 청정 기술의 개발, 국민적인 강물 지키기 운동, 오염 사범에 대한 가혹한 처벌 등으로 지금은 어느 정도 깨끗한 강물 상태를 유지하고 있습니다만, 우리 나라의 예에서 알 수 잇듯이 세계150여 개의 나라들에서는 공장 폐수로 인한 강물과 호수의 오염이 심각하게 제기되고 있습니다. 이로 인한 생태계의 파괴만이 아니라 식수원의 고갈은 물의 오염 문제가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상태에 와 있음을 말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3. 기름 유출과 적조 현상


바다는 인간의 척도에서 보면 거의 무한대에 비견할 만큼 크며 따라서 바다 전체가 인간 활동에 의해 심각하게 오염되는 일은 아직 우려할 바가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대양과는 달리 육지와 접한 연안 해역에서는 오염 현상이 거의 모든 곳에서 심각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연안 해역의 오염은 항만과 공단 건설, 인공 연안 양식장, 관광시설 등 개발 사업으로 인해 이루어지고 있으며, 또한 강이나 대기를 통해 육지에서 발생한 오염 물질들이 바다로 유입됩으로써 발생합니다.


연안 해역을 오염시키는 물질들 중에서 현재 가장 심각한 것은 유기물과 영양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들은 적당량으로 존재할 경우 건강한 생태계의 유지에 필수 불가결한 요소이지만 도시 하수와 농경지의 비료 그리고 축산 폐수 등을 통해 배출되는 영양염은 연안 해역의 부영양화를 야기합니다. 이에 따라 생태계 구조의 변화를 초래하여 쌍편모 조류와 같은 부유 생물이 번성하고 심한 경우에 적조현상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우리 나라 주변 해역에서도 진해만과 같은 부유 생물이 번성하고 심한 경우에 적조현상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우리 나라 주변 해역에서도 진해만과 같이 일부 오염이 심각한 해안에서는 적조가 거의 연례적으로 발생하고 있어 악화된 연안 수질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 밖에 처리되지 않은 하수의 배출은 콜레라나 간염등 전염병 발생이나 해산물 오염으로 건강에 심각한 위협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또한 잘 썩지 않는 플라스틱 물질들은 해안선을 더럽히고 해양 동물에게 위협이 되기도 합니다. 통계에 의하면 세계적으로 매년 약 6백5십만 톤의 고형 폐기물이 바다에 버려지는데 그 중 70-80%가 플라스틱 물질이라고 합니다. 살충제나 PCBS 등 유기합성 물질들은 아직도 공업 지역의 연안 해저 퇴적물이나 물개 등 육식 동물의 지방 속에 높은 농도로 축적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근래 그 사용이 제한됨에 따라 점차 농도가 감소하는 추세에 있습니다.


기름은 특히 눈에 띄는 오염 물질로서 대규모 유출 사고가 일어날 경우 큰 영향을 미칩니다. 우리 나라는 특히 서남해 연안이 조류가 강하고 또 양식장이 밀집해 있는 까닭에 비교적 작은 규모의 유출 사고에도 피해가 크게 나타납니다. 걸프전 당시 페르시아 만의 기름 띠나 영국 유조선이 침몰하면서 나타난 북대서양의 오염사례, 그리고 최근 우리 나라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는 기름 유출 사고는 그것을 잘 보여줍니다. 기름 띠는 광합성 작용을 방해하며, 그 독성으로 물고기를 죽게 하고, 생태계를 심각하게 파괴합니다.




4. 지구 온난화와 이상 기후


대기중 이산화탄소의 증가에 따른 온실 효과로 인한 지구 온난화 현상은 오늘날 세계적으로 가장 관심을 받는 환경 문제입니다. 온실 효과란 지구상에 실재하는 현상입니다. 그것은 지구의 대기가 서로 다른 특성의 복사파에 대해 다르게 작용하는데 기인합니다. 즉 대기는 단파의 특성을 가진 태양 복사열에 대해서는 거의 투명하게 작용하여 모두 통과시키는 반면 지구가 외계로 방출하는 장파의 복사열은 일부를 붙잡아 지구 표면에 가두어 놓기 때문에 온실 효과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지구가 방출하는 복사열을 붙잡는 역할은 주로 대기 중의 수증기, 이산화탄소, 메탄가스, 이산화질소, 오존, 염화불화탄소 등 소위 온실 효과 가스들에 의해 이루어지게 됩니다.


온실 효과는 지구가 생물의 서식에 적합한 온화한 기후를 가질 수 있도록 하는데 필수적인 요소로 작용하지만, 그것이 자연 상태 이상으로 급격히 증가될 경우에는 거꾸로 대기의 교란과 기후의 교란으로 이어집니다. 지금 문제로 되고 있는 것은 바로 이점입니다. 자동차 배기 가스와 공장에서 배출되는 매연 등이 이러한 상황을 유발하게 되는데, 그것은 바로 온실 효과 기체, 특히 이산화탄소의 급속한 증가와 관련 있습니다.


온실 효과에 의한 지구 온난화 경향은 1975년 이후 뚜렷하게 등장하여 20세기 들어 가장 따뜻했던 다섯 해가 모두 1980년 이후에 나타나고 있는 데서도 확인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지구 온난화 현상은 해수면의 상승으로 이어집니다. 온난화에 따른 해수면의 증가는 2030년에는 18㎝, 그리고 2100년까지는 약 66㎝ 정도 상승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으나, 이러한 해수면 상승은 주로 온난화에 따른 해수의 열적 팽창에 기인한 것으로 만일 온난화가 가속되어 그린랜드나 남극의 빙하가 일부 녹기 시작한다면 그 상승폭은 엄청나게 증가하게 될 것입니다.


지구 온난화와 그에 수반한 기후 변화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나타날지에 대해서는 아직 불확실한 점이 많습니다. 온난화의 정도는 극지방이 적도 지방보다, 그리고 대륙이 해양보다 더 크게 나타날 것으로 예상되나, 어느 곳에 비가 더 내리고 어느 곳이 더 건조해질지 등의 구체적인 변화 양상은 현재의 지식과 기술로서는 예측할 수 없습니다. 기후 변화는 또한 농업 생산력과 삼림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이에 대비해서 우리는 에너지 효율의 제고와 대체 에너지의 개발을 통해 화석 연료에 대한 에너지 의존도를 점차 낮추고 한편으로는 훼손된 삼림을 복원하여 자연 생태계의 탄소 저장 능력을 증가시켜야 할 것입니다.




5. 오존층의 파괴


지구의 대기층 위쪽 약 25㎞ 상공에 오존이라는 가스층이 있습니다. 이 오존층은 지구상의 생물들에게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대기를 통과하는 태양 광선 중에서 적외선은 투과시키지만, 자외선을 차단하여 인간이나 동식물들이 성장하는데 알맞은 양만 통과시키게 됩니다.


인공위성에서 보내온 자료에 의하면 이 오존층에 거대한 구멍이 뚫려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남극 대륙 상공에 생긴 그 구멍은 미국 땅덩어리만큼이나 크다고 합니다. 그 이후 계속된 확인 결과 세계 곳곳에서 오존층이 과괴되고 있는 것이 확인되었습니다. 한반도 상공에서도 오존층 파괴 현상이 관측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오존층이 파괴되는 것은 프레온 가스로 알려진 염화불산화탄소로 밝혀졌습니다. 불에 타지도 않고 독성도 없는 이 가스는 주로 냉방 장치나 냉동 장치, 스프레이의 분사제 등에 사용되며, 반도체 생산 공장에서는 쏟아지는 자외선의 양이 2% 늘어났다고 합니다. 그리고 백내장 발병률은 0.3%-0.5%, 피부암은 3% 정도 더 늘어난다고 합니다.


이에 따라 오존층을 보호하고자 하는 국제적 노력이 1985년에 빈 협약을 통해 시작되었으며, 1987년에 채택된 몬트리얼 의정서에서는 오존층 파괴의 주범인 염화불산화탄소의 생산과 사용을 점차 줄여 나가 서기 2000년에는 완전히 금지할 것을 합의했습니다.


40. 환경 문제의 본질


그러나 어떤 형태로든 앞으로의 경제 개발은 생태학적으로 건강하고 지탱 가능한 형태로 진행되어 후손에게 피해를 주지 않도록 하는 방향에서 모색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 속에서 각국의 경쟁적인 노력이 진행될 것이 틀림없습니다. 바야흐로 환경 문제를 둘러 싼 논란과 고민은 20세기 말의 가장 뜨거운 쟁점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환경적으로 건전하고 지탱 가능한 개발


산업 혁명 이후 뿌리내린 산업 자본주의의 발달과 경제 성장에 대한 절대적 믿음, 그리고 자원의 무절제한 남용은 유한한 자원을 고갈시키고, 하나뿐인 지구 환경을 급속히 악화시켰습니다. 더욱이 급격하게 증가하는 인구 문제는 성장과 개발을 촉진하고, 가중시켰고, 자원의 고갈과 환경의 악화를 더욱 심화시켰습니다.


이러한 과정은 전 세계적으로 ‘환경적으로 건전하고 지탱 가능한 개발(Environmentally Sound and Sustainable Development)’의 문제를 제기했으며, 이를 둘러싸고 기업가들과 환경 단체들 간에, 그리고 선진국과 개발 도상국 사이의 대립을 더욱 확대시켰습니다.


20세기 중반에 접어들면서 누적된 환경 오염은 세계 곳곳에서 대형 오염 사고를 발생시켰고, 또 2차 세계 대전 후 핵에 대한 위협이 심각한 사회 문제로 제기됨에 따라 기술 문명과 환경에 대한 일반의 관심이 고조되었으며, 이것은 1960년대 말과 1970년대 초를 기점으로 다양한 환경 운동이 전개되는 계기로 작용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개발과 성장에 대한 믿음에 대해 회의를 제기하고, 환경과 생태계의 파국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산업주의와 산업사회 가치관을 근본적으로 바꾸어야 한다는 급진적인 생태주의에 기초한 환경 운동이 등장했습니다. 급진적 생태주의는 기본적으로 개발보다는 환경의 보존을 중시하는 입장으로, 생태계 파괴, 자원고갈, 오염의 원인, 현대 사회의 붕괴 등 오늘날 우리가 접하는 문제들의 뿌리가 경제 성장에 있다고 경고하면서, 현재의 무분별한 경제 성장과 개발은 환경을 유지, 보호하는 사회 체제와 경제 활동으로 근본적으로 바뀌어져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러한 입장은 과학 기술의 발전을 기반으로 환경 기술을 개발하여 환경 문제를 해결할 수 조화된 사회의 이상적 모습으로 제시하기도 합니다.


반면 지속적인 경제 성장과 개발을 중심적인 것으로 인식하고, 경제 성장의 산물인 환경 오염은 기술적 개선을 통해서 해결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기술 지향적 낙관론자들도 출현했습니다. 이러한 입장을 가진 사람들은 현재의 환경 문제를 근본적인 위기 상황으로 보지 않으며, 제도 개선이나 기술적인 환경 관리 등을 통해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봅니다. 주로 기업주나, 기업가 단체에 관련된 사람들이 이러한 주장의 대변자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환경 운동 단체들은 환경과 개발의 관계를 조화와 균형의 관계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물론 이러한 관점은 환경문제가 근본적인 위기 상태에 처해 있다는 것을 기본적으로 전제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환경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기술적 노력뿐만 아니라, 환경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전사회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다시 말해서 성장과 개발 위주의 환경 문제 인식은 문제의 성격을 편협하게 인식하기 때문에, 사회적 차원의 공동의 노력을 모아냄으로써 성장 지상 주의, 개발 지상 주의를 환경의 유지와 보호라는 방향에서 통제해 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입장은 성장과 개발을 전적으로 부정하지는 않으나, 환경 위기의 극복을 위한 노력이 우선되어야 하며, 그 속에서 성장과 개발이 배치되어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따라서 환경 운동 단체들은 이윤 창출을 우선적으로 생각하는 기업가 집단이나 선거만을 의식하는 정치가들에게 문제를 맡겨 두어서는 안 되다고 봅니다. 다수의 국민들이 환경을 지키고, 환경을 되살리는 운동을 전개하면서, 동시에 환경을 파괴하는 개발 활동을 저지하고, 감시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환경 운동은 정치 운동이나, 기업 활동이 아니라 전 국민이 참여하는 국민 운동, 대중 운동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입장을 잘 대변해 주고 있는 슬로건이 바로 ‘환경적이고 건전하고 지탱 가능한 개발(Environmentally Sound and Sustainable Development)’입니다.




환경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국제적인 노력


민간 환경 운동의 발전과 더불어 환경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국가 간의 국제적인 노력이 전개되고 있습니다. 1972년 스톡홀름에서 개최된 유엔 인간 환경 회의(UNCHE)는 국제적 환경 문제의 인식과 접근에서 획기적인 전환점이 되었으며, 곧이어 유엔환경 계획(UNEP)이 설립되어 국제적인 환경 정책 결정의 구심점역할을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1987년 유엔의 ‘환경과 개발에 관한 세계 위원회(WCED)’는 ‘우리들의 공동 미래(Our Common Future)’라는 보고서를 통해 “지탱 가능한 개발을 경제 성장과 환경 보전을 조화시킬 수 있는 새로운 개념으로 제시하고, 현 세대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개발은 미래의 세대들이 그들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능력에 손상을 주지 않는 범위와 방법 내에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속칭 ‘부른트란드 보고서’로 불리는 그 보고서에는 또한 빈곤과 공평의 문제가 특히 강조되었으며, 빈곤과 환경 문제의 밀접한 관련성, 개발에 대한 긍정적 시각과 미래에 대한 낙관적 견해 등이 제시되었습니다.


그러나 많은 개발 도상국들은 국제적인 환경 규제에 있어 그들이 이제까지의 지구 환경 악화의 원인 제공자인 선진국들과 동일한 적용을 받는 것이 부당하는는 주장을 제기했습니다.


1992년 6월 브라질의 리우에서 개최된 유엔 환경 개발회(UNCED)는 그 행사의 규모에 비해 가시적인 성과는 비록 크지 않았다는 평가를 받았으나, 생물 다양성 협양이나 세계 기후 협약 등 지구 환경 문제에 대한 국제적 공감대를 확인하는 계기로 되었습니다.


또한 이 회의를 통해서 선진국들과 개발 도상국들 사이의 대립과 갈등이 노출되었는데 그것은 대체로 다음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선진국의 경우는 이미 많은 자원과 환경을 이용하여 고도의 산업화와 기술개발을 완료한 상태이기 때문에, 이러한 기술력을 배경으로 환경 보호라는 이름 아래 개발 도상국들에게 선진국의 기술과 상품을 강제하는 국제 무역 질서 재편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냈습니다.


실제로 이산화탄소의 방출량을 제한하려는 ‘기후 변화 협약’이나 프레온 사용량을 규제하는 ‘오존층 파괴 물질에 관한 몬트리올 의정서’가 발효되면, 아직 그러한 기술을 확보하지 못한 많은 개발도상국들의 경우 심각한 타격을 받게 됩니다. 따라서 개도국들은 관련 기술들을 무상이나, 또는 저가로 이전해 줄 것을 요구하지만 선진국들은 그러한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반면 유전자 공학의 발달에 따라 유전자 및 생물의 다양성이 매우 중요한 자원으로 인식되면서(풍부한 삼림과 다양한 생물들을 가지고 있는 개발 도상국들에 상대적으로 많이 남아 있는 자원을 말합니다), 이들 유전 자원들에 대한 배타적 권리를 주장하는 ‘생물 다양성 보호 협약’에는 많은 선진국들이 거부감을 나타냈었고, 미국은 끝내 서명을 거부하는 이중적 태도르 보여 주었습니다.


개발 도상국들은 현재와 같은 환경 파괴는 선진국들에 가장 큰 책임이 있으므로 이에 대해 마땅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선진국들은 자국의 자원과 환경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개발도상국의 자원과 환경을 가장 많이 활용하고 파괴하면서 현재의 경제적 수준을 이루어 냈기 때문에, 지구 환경의 보호와 유지를 위해서는 선진국들이 그에 상응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환경 기술을 무상으로 개발 도상국에 이전해야 하며, 개발 도상국이 직면하고 있는 인구 증가, 빈곤 문제 해결, 개발 문제등을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개발 도상국의 자원을 활용하는 문제에 대한 권리는 전적으로 개발 도상국에 있다는 주장을 폅니다.


아직 선진국과 개발 도상국 사이에 발생하고 있는 이러한 대립들이 완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습니다. 우루과이라운드 타결과 함께 제기되고 있는 그린 라운드(Green Round) 등에서 계속 불씨로 남아 있기도 합니다. 그러나 어떤 형태로든 앞으로의 경제 개발은 생태학적으로 건강하고 지탱 가능한 형태로 진행되어 후손에게 피해를 주지 않도록 하는 방향에서 모색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 속에서 각국의 경쟁적인 노력이 진행될 것이 틀림없습니다. 바야흐로 환경 문제를 둘러 싼 논란과 고민은 20세기 말의 가장 뜨거운 쟁점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기술 개발에 대한 지나친 기대


많은 사람들은 기술개발에 의해 환경 문제를 해결 할 수 있다고 믿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이러한 낙관적인 견해는 위험스러운 일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특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기술개발을 한 결과, 이 새로운 기술이 종래의 문제 해결에는 도움을 주었으나 다른 한편으로 과거보다 더 복잡하고 새로운 환경 문제를 가져오게 되는 역기능을 갖고 있음을 많이 보아왔다. 석탄을 연료로 하는 화력 발전소 대신에 원자력 발전소를 건설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새로운 발전소는 우연의 사고에 대한 위험이 있을 뿐만 아니라 폐기물에서 방사능이 계속 나오기 때문에 폐기물 저장의 어려운 점, 또는 발전소에서 나오는 더운 물이 하천에 나쁜 영향을 주는 등 종전에는 없던 새로운 문제들이 발생하게 되었다.


또 다른 예로서, 우리 생활에 알맞지 않는 기후를 극복하기 위해서 또는 일상생활을 편리하게 하기 위하여 개발된 새로운 기술들은 에너지를 종전보다 더 많이 사용하게 만들고, 개발된 기계에서 방출된 제 2차적 에너지는 결국은 환경계(system)내에서의 에너지 순환질서를 점차 파괴시키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우리가 환경을 극복하려고 하면 할수록 환경계에 더 많은 문제를 가져다 주게 된다.


앞에서 지적한 환경 문제의 원인을 구체적으로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가. 자원의 양에 비해 상대적인 인구수의 과다 또는 자원의 남용과 오염 물질의 배출(개발 도상국)


나. 인구의 불균등한 분포, 특히 도시 집중문제


다. 낭비적인 소비 형태


라. 경제성장 우선 정책으로 환경에 대한 장기적 영향을 고려하지 못한 점


마. 이기적인 행동으로 공동체 전체에 대해서, 또 미래에 일어날 문제에 대한 책임감의 부족


바. 생태계에 영향을 주어 자연에 의한 균형을 이루는 기능을 해치게 된 점


사. 새로운 기술의 현명치못한 이용, 즉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한 점.


41. 환경 - 기술 중심적 시각과 생태 중심적 시각


1. 환경 문제의 특징


오늘날 환경 오염의 심각성을 부인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러나 환경 문제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논쟁들을 살펴보면, 환경문제를 어느 측면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조금씩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여기서는 환경 문제의 특징을 세 가지로 나누어, 각각의 경우에 무엇이 중요한 논점이 되는지 알아보자.


첫째, 오늘날 환경 오염은 일상적인 것이 되었다. 대부분의 공해가 일상의 경제 활동 과정에서 발생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대기 오염의 원인은 공장의 매연이나 자동차 배기 가스 등이 주범인데, 공장이나 자동차가 작동을 멈추지 않는 한 대기 오염은 늘 발생할 수밖에 없다. 한편으로 환경 오염은 그 피해가 매우 심각할 뿐 아니라, 한 번 오염되면 원상 회복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다른 사회 문제들과는 다른 특징을 갖는다. 환경 오염의 정도는 이미 자연이 원래 가지고 있는 자정 능력을 넘어섰기 때문에, 근본적인 대책을 강구하지 않는 한 원상회복이 거의 불가능하다. 따라서 환경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지금까지 우리가 추구해 온 공업화와 경제 성정, 그리고 자연과 과학 기술을 바라 보는 관점을 전면 재검토 해보지 않을 수 없다.


둘째, 환경 오염은 그 피해가 환경 파괴가 발생한 지역에만 국한되지 않고 광범한 지역에 걸쳐 발생한다. 과거 소련의 체르노빌 사건 때만 해도 사건이 발생한 지역에서 반경 2천 킬로미터에 이르는 지역까지 오염되었다. 오존층의 파괴, 지구 온난화에 따른 이상 기후 현상도 전세계적으로 피해를 입힌다. 환경 오염의 이러한 특성으로 인해 국가들 사이에는 그 책임과 대처 방안을 둘러싸고 논란일 벌어지고 있다. 쓰레기나 각종 산업 폐기물 처리장 건설을 둘러싸고 지역 간의 분쟁이 발생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셋째, 환경 오염의 피해는 주로 생물학적 약자와 사회적 약자에게 먼저 나타난다. 대기가 오염되면 벼나 침엽수 등 공해에 약한 식물이 먼저 말라죽고, 수질이 오염되면 어패류나 조류 등이 먼저 폐사한다. 사람의 경우도 환경이 악화되면 저항력이 약한 환자, 노인, 어린이가 먼저 피해를 입는다. 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공장주와 같이 환경 문제의 일차적 책임자들은 경제력이 풍부하기 때문에 공단 주변을 피해 환경이 좋은 곳에 거주지를 마련할 수 있어서 환경 오염의 피해를 덜 받는다. 하지만 가난하고 힘없는 사회적 약자들은 대부분 공단 지역 주변과 같이 환경이 열악한 지역에 살기 때문에 그 피해를 더욱 많이 받게 된다. 따라서 환경 오염으로 인한 피해의 불평등은 경제적 불평등과 더불어 사회적 불평등을 더욱 촉진시킨다. 여기에서 환경 문제 해결을 위한 비용을 누가 부담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가 제기된다.




2. 경제 성장과 환경 문제


과학 기술의 발달에 따른 급격한 산업화와 경제 성장이 생태계의 균형을 파괴하면서 인류에게 치명적인 위협을 가져다 줄 것이라는 우려는 오래전부터 있어왔다. 그러나 그 동안 환경 오염의 직접적인 위험이나 피해가 그다지 드러나지 않았고, 또 경제 성장이라는 우선 과제에 가려져 있었기 때문에 그러한 주장은 별 관심을 끌지 못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환경 오염으로 인한 피해가 직접적으로, 그리고 전면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한 최근에 들어서야 환경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게 된 것이다.


환경 문제를 어떻게 볼 것이며, 그 원인 및 해결책을 제시하는 데서는 사람마다 다양한 주장이 엇갈리고 있지만 크게는 기술 중심적 시각과 생태 중심적 시각으로 나누어진다. 먼저 기술 중심적 시각은 환경 문제의 발생 원인을 전통적 자연관이나 경제 성장 그 자체로 보기보다는 그것의 이용 과정에서 파생된 부차적인 문제라고 보고, 환경 문제는 과학 기술을 더욱 발전시킴으로서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에 생태 중심적 시각은 환경 문제가 물질주의적 가치관과 자연에 대한 잘못된 시각에 원인이 있으며, 따라서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물질주의적 가치관을 버려야 하고, 경제 성장 또한 억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1) 기술 중심적 시각(경제 성장 옹호론)


근대 합리주의와 경험주의 는 인류 사회의 발전은 환경에 대해 인간의 의지대로 능력에 따라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이며, 이를 위한 기술의 진보와 인류의 진보는 조화를 이룰 수 있으리라는 낙관적인 신념을 갖고 있었다.


기술 중심적 시각은 이러한 신념에 바탕을 두고 환경 문제의 해결책을 모색한다. 물론 기술 중심적 시각이라 해서 환경 문제를 무시하거나 환경 오염을 정당화하는 것은 아니다. 기술 중심적 시각 역시 환경이라는 인간의 보금자리를 망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다만 환경 문제는 경제 성장의 과정에서 환경 문제를 적절하게 고려하지 않은 까닭에 이러한 분야의 과학 기술이 상대적으로 미발달한 데 그 원인이 있다고 보는 것이다.


기술 중심적 시각은 우리 인간이 환경 오염을 기술적으로 얼마든지 해결해 나갈 수 있다고 낙관한다. 예를 들어 화석 연료 대신 태양 에너지와 같은 새로운 에너지원을 개발하면 대기 오염을 줄일 수 있다. 방사성 폐기물 등 산업 폐기물의 처리는 우주 산업이 발달하면 지구 밖으로 실어 보냄으로써 해결될 수 있으며, 유전 공학에 의해 미생물을 개발함으로써 화학적 오염 물질의 처리 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다. 결국 환경 오염을 근본적으로 일으키지 않는 과학 기술, 그리고 이미 발생한 오염 물질을 처리할 수 있는 과학 기술을 더욱 발달시키기만 한다면 인간은 자신의 목적에 따라 자연을 적절히 조절해 나갈 수 있으리라는 것이다.


기술 중심적 시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경제 성장이 앞으로도 얼마든지 가능할 뿐아니라, 환경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라도 계속적인 경제 성장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자연 고갈이 문제가 될 경우 인간은 자원을 절약할 수 있는 기술이나 폐자원을 재활용하는 기술을 발달시킴으로써 문제를 해결해 왔다. 마찬가지로 환경 문제 또한 과학 기술의 발달을 통해 해결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자금이 필요하고, 그러한 자금은 결국 경제 성장을 통해 조달할 수밖에 없다는 이유에서이다. 경제 성장이 환경을 오염시킨다는 측면만을 강조하는 것은 일면적이며, 오히려 이러한 경제 성장을 통해 환경을 개선하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그러나 이러한 시각은 과학 기술의 미래를 지나치게 낙관하고 있으며, 오늘날 인류가 직면한 환경 문제의 심각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첫째, 기술 중심적 시각은 과학 기술의 발달일 한 가지 공해를 제거한다고 해도, 그 가학 기술일 예상하지 못했던 문제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예를 들어 오염된 하천을 정화하기 위해 염소(Cl)가 사용되는데, 염소로 소독한 물에는 발암 물질이 유기염소 화합물 THM(트리할로메탄)이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또 오존층 파괴의 주원인인 프레온 가스를 다른 물질로 대체한다고 해서 새로운 물질이 예상치 못한 또 다른 환경의 오염원이 되지 않으리라는 보장도 없다. 이처럼 이미 공해가 발생한 후에 새로운 과학 기술로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면 구 부수 효과를 예측하기 어렵다는 문제점이 있는 것이다.


둘째, 공해 방지 시설이 완벽하다 하더라도 공해 방지 비용은 어느 정도 둘 수밖에 없는데, 이윤을 극대화하려는 기업은 공해 방지 비용의 부담을 회피하려 한다. 많은 기업들은 공해 물질을 배출하여도 처벌보다 이익이 많다면 차라리 처벌을 감수할 것이다. 새로운 기술 개발이 또 다른 환경 오염을 불러일으킬지라도 그것이 법으로 규제되지 않은 상황에서는 얼마든지 환경을 오염시키도록 유혹 받을 것이다. 따라서 기술 중심적 시각에서처럼 경제 성장을 우선에 두는 한 환경 문제는 결코 해결될 수 없다는 비판이 많다.




(2) 생태 중심적 시각(경제 성장 억제론)


생태 중심적 시각은 자연이란 결코 인간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 스스로 존재 의미를 갖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생태 중심적 시각이 강조하는 바는 “인간이 자연에 있어 필수적인 존재는 아니지만 자연은 인간에게 반드시 필요한 존재”라는 말속에 단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인간은 다른 생물체와 마찬가지로 자연 법칙의 지배를 받는 존재에 불과한 것이지, 자연을 결코 정복할 수는 없다. 따라서 중요한 젓은 인간화 자연이 어떻게 조화를 이루어 나갈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생태 중심적 시각은 인간과 자연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기 때문에 인간이 자연 생태계에 미친 영향은 반드시 인간에게로 되돌아온다고 강조한다. 인간은 자연 환경을 파괴시킴으로써 일시적인 경제적 이득을 얻을 수는 있지만, 결국 이 파괴로 인해 경제적 이익보다 더 큰 악영향과 부작용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생태론자들은 오늘날의 환경 문제는 산업화와 과학 기술 그 자체에 원인이 있다고 주장한다. 지금까지 과학 기술의 발전을 바탕으로 이룩한 경제 개발은 환경을 지속적으로 악화시킨 반생태적 성정이었으며, 그것은 물질 만능주의를 조장하면서 환경을 더욱 파괴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환경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경제적 성장보다는 자연 생태계의 보존과 회복에 중점을 두어야 하고, 이를 위해 물질주의적 가치관을 수정해야 한다고 생태론자들은 결론짓는다. 경제 성장은 우리에게 물질적 풍요를 가져다주는 것이 사실이지만, 인간의 삶을 영위하는 데 필요한 기본적인 물질 이외의 대다수는 꼭 필요해서 만든 것이라기 보다는 인위적으로 조장된 쓸데 없는 욕망 때문에 만들어진 것이다. 경제 성장은 이같은 인간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한 것으로서, 엄청난 환경 파괴로 오히려 인간에게 더 큰 고통을 주고 있을 뿐이라고 생태론자들은 주장한다.


생태론적 관점은 오늘날 서구 사회에서 ‘녹색당’과 같은 정당에 의해 강력히 주창되고 있는데, 환경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자본주의 산업 경제 체제를 개혁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성장만을 추구하는 자본주의적 산업 경제 체제는 자연 환경과 인간 노동력의 무한한 착취, 자원과 에너지의 낭비, 제 3 세계에 대한 선진국의 착취로 인해 파국에 이를 것이라고 경고한다.


그러나 생태 중심적 관점은 이미 자연 과학의 눈부신 발달을 이루어 기술 문명의 혜택을 받고 있는 사람들에게 지금까지의 생활 방식을 바꾸도록 요구한다는 점에서 현실성이 희박한 이상적인 대안에 불과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더욱이 경제적으로 뒤쳐져 있는 개발 도상국들로서는 환경의 보존보다는 빈곤의 척결이 더욱 절실한 문제이기 때문에 이들 나라에서는 특히나 생태론적 관점이 그다지 설득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이에 1993년 6월 브라질 리우에서 열린 유엔 환경 개발 회의에서는 “환경적으로 건전하고, 지속가능한 개발”을 추구해야 한다는 결의문이 채택되었다. 환경과 개발은 둘 다 중요한 것으로 어느 하나를 택하는 것이 아니고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것을 선언한 것이다.


▶ 녹색당이란? 환경 운동에 참여하던 사람들이 생태적 균형, 사회 정의. 풀뿌리 민주주의, 비폭력 등을 기본 강령으로 내세우며 세운 독일의 한 정당. 지방과 연방 수준의 각종 선거에 참여, 1993년 연방의회까지 진출하였다.


<한철연 논술 교실에서>


42. ‘춘호’처의 매춘 행위는 정당화될 수 있을까요?


문학 작품은 본질적으로 특정한 사람의 생각을 반영합니다. 특정한 사람의 생각을 반영하는 특징 때문에 문학 작품은 읽는 사람마다 서로 다른 반응을 보이게 됩니다. 똑같은 작품을 읽고 저마다 다른 견해를 나타내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나, 주위를 둘러 보면 이런 사실을 발견하기란 그리 쉽지 않습니다. 우리 시대의 많은 청소년들은 문학 작품에 대한 반응은 얼마든지 다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려 들지 않거나 혹은 인정하더라도 남과 다른 자기 생각 밝히기를 매우 꺼리고 있습니다. 이러한 현실은 단순한 암기 위주의 지식으로 수험생의 실력을 측정했던 지난날의 입시 제도에 그 원인이 있다고 생각됩니다.


김유정의 ‘소나기’에는 극도로 가난하고 참담한 삶을 살았던 한 여인의 모습이 나타나 있습니다. 그녀는 가난과 남편의 발길질을 이기지 못해 다른 남자에게 몸을 허락했습니다. 이러한 그녀의 행동은 많은 사람들에게서 서로 다른 반응을 얻었습니다. 그 반응이란 크게 두 가지로 대별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는 생존을 위한 불가피한 행동이었다는 이해고 나머지 하나는 윤리를 저버린 인간 이하의 행동이라는 비판입니다. 한 인간에 대해 윤리와 현실이라는 서로 다른 기준을 적용한 결과입니다.


오늘 우리는 그녀를 법정의 피고인석에 앉혀 놓았습니다. 여러분들은 검사 혹은 변호사의 자격으로 이 법정에 참여하실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열띤 토론을 기대합니다.




김유정 소개


(문덕수/세계문예대사전 上 성문각, 1975)




김유정(金裕貞) 1908. 1. 11~1937. 3. 29


소설가. 아명 멱설이. 강원도 춘천생. 1916년부터 약 4년간 한문을 수업. 휘문고보를 거쳐(1927) 연희전문 문과를 다니다가 더 배울 것이 없다는 이유로써 중퇴(28). 그 후 전국을 방랑하다가(30) 일확천금을 꿈꾸고 금광에 몰두하기도 했다(31). 이듬해 고향에 자비로 야학을 열고 불우한 아이들을 가르쳤다. 소설 ‘소나기(1935)’가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노다지(1935)’가 중외일보에 각각 당선, 데뷔. 일찍 부모를 여의고 고독과 빈곤 속에서 자라난 데다가 심한 폐결핵 때문에 자신이 고백한 바와 같이 우울이 성격화되었으며, 스무살 때 자기보다 1년 위인 1류 기생을 짝사랑했고, 죽을 때까지 3,4명의 여인을 짝사랑하여, 그의 우울한 성격을 더욱 우울하게 만들었다 한다. 광주(廣州) 누님댁에서 병환으로 30세를 일기로 별세하기까지 불과 2년 동안의 작가 생활에서 근 30편의 단편을 발표하여 문학 정열이 비상함을 보여 주었다. 그의 문학적 특징은 정확한 문장과 유니크한 스타일에 있으며, 작중 인물은 대개는 어리석고 그 문학은 향토적 서정미에 젖어 있다. 관찰이 유머러스한 것은 바로 그의 우울한 성격의 반동이었으며, 그 반작용 속에는 인생을 풍자하고 방관하는 애수가 깃들어 있다. 신춘 문예 당선작 ‘소나기’는 농촌을 무대로 도박, 이농(離農), 야성적인 본능 등을 리얼하게 다룬 것이며, ‘금따는 콩밭’은 금광 광맥을 찾으려고 콩밭을 파헤치나 결국 실패하는 인간의 물욕(物慾)과 그 패배를 다룬 것이고, ‘봄봄’은 머슴으로 일하는 데릴사위와 장인간의 희극적인 갈등을 그린 농촌소설이며, ‘만무방’도 역시 농촌을 무대로, 전과자인 형이 도둑을 맞은 아우의 혐의를 풀기 위해 벼논 도둑을 잡고 보니, 뜻밖에도 아우였다는 이야기고, ‘동백꽃’은 지주의 딸과 소작인의 아들의 정욕을 상징적인 수법으로 그린 것이며, ‘따라지’는 셋방살이하는 서민들과 집주인과의 갈등을 그린 가작이다. 그의 대부분의 소설은 농촌을 무대로 하여, 그들의 정욕, 물욕, 생활 풍속의 단면 등을 현실주의적 수법으로 묘파한 것이다.




김유정론의 반성


(한용환/한국소설론의 반성, 이우출판사)




[전 략]


여기에서 인간다운 삶의 흔적을 찾아낼 수는 없다. 그들의 당면 과제는’인간다웁게’ 사는 일이 아니라, 그냥 ’살아갈 것만’이 문제인 것이다. 경제적 피폐의 극한 상황은 그들의 삶을 ‘인간적’인 것으로부터 다른 어떤 것으로 끌어내린 것이다. 가령 생존 그 자체만이 문제가 되는 생존 형태인 것이다.


 도덕과 윤리가 생명 그 자체보다 우선한다는 논리의 타당한 근거를 제시할 사람이 과연 있을 것인가.


도덕과 윤리란 근본적으로 삶의 양식에 불과하지 목표성은 아니다. 성적 윤리나 성적 도덕도 예외가 될 수는 없다.


유정 소설에서 말하여지는 이른바 ‘윤리의 부재’나 ‘도덕성 이변’이라는 관찰이 절대주의의 소산이라 보는 필자의 견해는 바로 여기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춘호 처의 간음이나 ‘나그네’ 여인의 중혼 행위는 쾌락주의와는 하등 관련되고 있지 않다. ‘솥’의 들병이 ‘가을’의 영득 어머니의 경우 역시 다르지 않다. 그들의 성적 지조의 혼란은 방종의 결과가 아닌 것이다. 그것은 오로지 ‘먹고 사는 일’만이 당장의 과제로 등장된 극도로 궁핍화된 생존이 어쩔 수 없이 벌이게 된 일종의 ‘경제 행위’인 것이다. 그들의 ‘방종’이 경제적 행위이기 때문에 도덕 및 윤리의 판단 대상에서 제외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아니다. 그같은 관찰은 상황과 동기에 대한 충분한 고려가 배제된 도덕관 및 윤리관의 소산일지 모른다는 의문을 필자는 제기한 데 불과한 것이다. 삶의 문제를 됫박에 쌀을 담듯이 잴 수는 없다. 그것은 스스로 삶의 개연성과 다양성을 부인하는 행위에 다름 아니다. 요컨대 유정소설에서 ‘윤리 의식의 부재’ 또는 ‘도덕성의 파탄’을 지적하는 견해는 일종의 도그마에 지나지 않는다.


다른 고유한 작가의 경우에서와 같이 유정의 소설이 우리의 소중한 문학사적 자산에 틀림없다면, 우리는 그에 접근해 가는 데 있어서 부단히 새로운 지평을 개척할 필요가 있다고 믿는다. 이러한 태도야말로 문학사라는 박물관에 박제되어 있는 문학적 자산에 통시적인 생명성을 불어 넣는 일일 것이며, 그의 과거성을 현재와 결합시켜 주는 방법일 것이다. 문학 연구의 주요한 한 가지 소임도 바로 이같은 일에 있지 않나 생각된다.




김유정의 시대 인식과 언어 표현


(김병익/한국근대문학사론, 한길사)




[전 략]


김유정의 소설 어디서나 확인되는 또 하나의 공통점은 남녀간의 관계가 비화해적인 양상으로 나타나며 무기력한 남자에게 순종하는 여성의 현실적 능력이 보다 능동화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런 양상은 목가적인 연애 소설에서나 도시의 여급 소설에서도 마찬가지로 드러난다. 예컨대 ‘봄봄’, ‘산골’은 지주 혹은 양반의 자식과 머슴 혹은 소작인의 자식간의 이루기 힘든 애정을 결말없이 그리고 있는데, 그나마 남자 쪽은 우직하고 수동적 입장이며 여자들이 재빠르고 적극적이며(‘산골’에서의 이쁜이와 석숭이의 관계를 보라) 자전적 소설인 ‘따라지’와 ‘두꺼비’는 생활의 일선에 선 여급 혹은 기생의 능동성. 냉혹성에 비해 소설가인 남자는 무능력, 무기력하다.


이같은 비정상적인, 여성의 능동적 현상은 유정의 농촌소설에 보다 빈번하게 나타난다. ‘소나기’의 주인공은 도박에 요행을 걸고 그 밑천을 아내에게 구해오라고 학대하여 아내는 이 주사에게 돈 이원을 받고 자기 몸을 팔며 ‘산골 나그네’, ‘솥’의 남편이 병 때문에 혹은 달리 무능력하여 아내가 들병이로 나서서 약간의 물건을 얻거나 훔쳐 달아나며 ‘아내’ 역시 생계의 방도가 불가능해지자 아내가 들병이로 나서기 위해 노래를 배우고 ‘가을’에서는 드디어 아내를 소장수에게 팔아 빚을 갚고 미리 언약한 대로 아내와 함께 도주해 버린다.


그러나 여기서 더욱 충격적인 것은 남편을 버젓이 옆에 두고 작부노릇을 하고 혹은 몸을 파는 데에도 불구하고 아내나 남편이 다같이 아무런 윤리적 수치감이나 죄의식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년이 떡국이 농간을 해서 나보담 한결 의뭉스럽다. 이깐 농사를 지어 뭘 하느냐. 우리 들병이로 나가자고, 딴은 내 주변으로 생각도 못 했던 일이지만 참 훌륭한 생각이다. 밑지는 농사보다는 이밥에 고기에 옷 마음대로 입고 좀 호강이냐.


<‘아내’에서>




“영득 어머니! 잘 가게유.”


“아재 잘 가슈.”


이 말 한다디만 남길 뿐 그는 앞장을 서서 사랫길을 살랑살랑 달아난다. 마땅히 저 갈길을 떠나는 듯이 서둘며 조금도 섭섭한 빛이 없다.


그리고 내 등 뒤에 었는 복만이조차 말 한 마디 없는 데는 실로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장승같이 삐적 서서는 눈만 끔벅끔벅하는 것이 아닌가. 개자식. 하루를 살아도 제 계집이련만 근 십년이나 소같이 부려먹던 이 아내다.


사실 말이지 제가 여지껏 굶어죽지 않은 것은 상냥하고도 돌림성있는 이 아내의 덕택이었다. 그런데 인사 한 마디 없다니, 개자식, 하고 연간 밉지가 않았다.


<‘가을’에서>




앞의 것은 스스럼없이 들병이로 나서겠다는 아내의 제의를 남편이 흔쾌히 받아들이는 장면이며 뒤의 것은 소장수에게 팔려가는 아내와 남편의 이별 장면이다. 여기서 보는 윤리적 무감동성이 가난에 지친 끝이면 윤리감이란 거의 무의미하다는 것을 시사하는 것인지, 토속 농민에게는 아내를 파는 일이 죄의식을 유발하지 않았다는 풍속사적인 전통의 영향인지 나로서는 확연히 판단되지 않는다.




1930년대 한국 사회 궁핍 문제 고찰


김유정의 소설 세계는 한마디로 말하면 1930년대 당시 죽은 한국인끼리 주고받던 가장 양심적이고 훌륭한 한국인적인 자기 표현이다. 요즈음 들어 한국 문학의 기저에 흐르는 정서적인 맥락을 한(恨)으로 보려는 작가들이 많이 늘어난 것으로 보고, 조선조 시대의 소설 시계를 상기하면서, 김유정의 문학 세계를 눈여겨보면 그것은 한국 문학 전통의 한 굵은 맥락과 이어지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의 문학 밑에 깔린 한의 형태는 대체로 다음과 같은 내용을 갖추고 있다. 우선 아내를 팔아 보다 나은 상태로 나아가려는 남편이 지닌 가난살이의 한을 보자


이 항목에 해당하는 작품으로는 그의 맨처음 당선작(조선일보 신춘문예)인 ‘소나기’가 있다.




해를 이어 흉작에 농산물은 잘못되고 따라 빚장이들의 위협과 악다구니에 못 이겨 ‘세간살이를 그대로 두고 밤도주하였던’ 춘호가 할 수 있었던 살 방도는 아내의 몸을 파아서라도 마련해 오는 돈이었다. 그것을 밑천으로 하여 뒷산에서 매일 밤마다 벌어지는 큰 노름판에서 횡재를 해 보려던 배포이다. 그리고 서울로 가려는 것이 그의 꿈이었다. 유정의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은 한결같이 그 농촌으로부터 도피하고 싶어한다. 그러면서도 그 속에서 어쩔 수 없이 살 수밖에 없는 그들이다. 그들의 거짓 없는 감정이요, 꿈이 담겨 있는 것이다 1930년대 한국의 농촌을 안다면 바로 그대로 현실인 것이다.


<김상태, 김유정론(현대한국작가연구, 민음사)에서>




1920년대의 ‘표본실의 청개구리’를 보면서 우리는 이미 미칠 수밖에 없는 당대의 현실의 어떤 징후에 대해서 이야기한 바 있다. 그 작품의 ‘나’도 어딘가 끝없는 어느 시계로 가고 싶어 한다. 현실에 대한 도피 의지가 팽배할 때, 그 현실이 별다르게 커다란 수난이 없다면 커니와, 일본인들이 직접 칼을 차고 거리를 활보하던 그 시절의 물안이나 괴로움을 일반적인 인간 속성의 발로 보는 것은 무리이다. 생활 근거인 농상리 자체를 갖지 못한 농민의 삶이란 죽음에 직면한 어떤 상태를 뜻한다. 김상태가 요약해 놓은 ‘소나기’의 이야기 공간은 이미 박영준이 은유법으로 묘사해 놓은 농민들의 해체된 하나의 풍경이다. 소작 생활로부터 그것을 지탱할 숭 벗어 떠밀려 난 한 인물이 지닌 마지막 재산(김유정의 작품에는 팔아먹을 아내가 있는 남자를 부러워하기도 한다)인 아내의 간통을 눈감아 주면서 노름 밑천을 꿈꾸는 사내를 우리는 ‘소나기’에서 만난다.


이렇게 아내를 판 돈으로 직접 노름판에 끼어 결국은 다 털리고 울상 짓는 인물을 우리는 ‘만무방’에서 만난다.




그 옆으로 기호도 앉았다. 이놈은 며칠 전 제 계집을 팔았다. 그 돈으로 영동 가서 장사를 하겠다던 놈이 노름을 왔다. 제깐 주제에 딸 듯 싶은가




아내를 소장수에게 팔았다가 몰래 다시 빼어 내 온 내용을 그린 작품은 ‘가을’이다. 일종의 보증을 서면서 그 아내 판 계약서를 써 준 인물의 시점으로 쓰여진 작품인데 절대적인 궁핍이 그 아내를 밑천 삼는 인물을 낳게 만들고 있다.




이렇게 구찮은 얼굴에 내천자를 그리고 세상이 늘 마땅치 않은 그 놈이다. 오죽하여야 요전에는 지 아내가 우리게 와서 울며불며 하소를 다 하였으랴. 그 망할 건 먹을 게 없으면 변통을 좀 할 생각은 않고 부처님같이 방구석에 우두커니 앉았기만 한다고.




이렇게 매일의 삶에 지친 사내는 다짜고짜 계약서를 좀 써달라고 제자(諸者)에게 찾아온 것이다.




매매계약서




일금 오십 원야라


위 금액을 내 아내의 대금으로 정히 영수합니다.


갑술년 시월 이십 일


조 복 만


황 거 풍 전




매매가 끝나고 나서 어머니와 자식이 헤어지는 장면은 이렇게 되어 있다.




영득이는 자기 아버지 품에 잔뜩 붙들리어 기어 올라서 운다. 멀리 간 어머니를 부르고 두 주먹으로 아버지의 복장을 디리 두드리다간 한번 쥐어 박히고 멍찔한다. 그리고 조금 있으면 다시 시작한다.




이 항목에 넣어 설명할 수 있는 또 다른 작품으로 ‘정분(일명 솥)’이 있는데, 이 작품은 아예 아내를 딴 남자와 자도록 내버려 두면서 술장사를 시키고 거두어들일 수 있는 모든 것(이를테면, 키, 함지박, 숟가락, 솥 따위)을 받게 하는 내용이다. 떠돌이 삶이 목숨을 이어갈 수 있는 방법은 품팔이이거나 사기와 도둑질 그리고 구걸밖에는 있을 수가 없다. 그러므로 이들의 삶은 여차하면 다른 곳으로 내빼는 생활을 계속해야 한다.


농부가 땅으로부터 버림받아 떠돌이가 되어 처절한 호구지책을 아내에게서 찾는 경우로는 ‘산골 나그네’도 행당된다. 이 작품은 병든 남편을 구원하기 우히가서,가난하여 장가조차 들지 못한 총각에게 거짓 시집을 갔다가, 도망쳐 병든 본 남편에게로 돌아오는 내용이다. 산골에서 술장사로 겨우 연명하는 노파와 아들, 그들에게 나타난 떠돌이 여인, 그리하여 여인을 상대로 숲판을 벌이며 입들을 맞추는 마을 총각들, 드디어 노파의 아들과 혼인을 하여 행복한 정착의 모습이 보이는 듯하던 이 가정이 급전하는 사건으로 이 소설은 제 모습을 찾는다. 떠돌이 인생의 정착할 길 없는 아픔(이 아픔은 당시대 떠돌이 농민의 전체적인 아픔이다)이 이 소설이 주고자 하는 이야기의 핵심이다.


정현기 1930년대 한국 사회의 궁핍 문제 고찰(한국 문학의 사회사적 의미, 문예출판사) 54쪽에서 56쪽




43. 서태지 해체 선언의 안팎


그룹 ‘서태지와 아이들’이 돌연 해체를 선언하고 잠적한 뒤 10일만에 나타나 공식 은퇴식을 가졌습니다.


그들이 잠적한 후 PC 통신과 언론사에 “재고하라”, “자살하겠다” 등 호소문과 투고, 전화가 끊이지 않았고, 서태지 집앞은 난장판이 되었습니다.


서태지 해체 파문이 크게 일어나 ‘자살 클럽’, ‘은퇴 저지 성명 운동’, X세대의 집단 히스테리 증상 등 충격을 받은 팬들의 걷잡을 수 없는 집단 행동이 사회 문제로 비화될 가능성은 없지 않습니다.


소위 X세대들은 서태지를 그들의 우상이며 기성세대의 권위 의식에 대항하는 신세대의 ‘문화적 대통령’이라고 찬양하고 있습니다. 또한 어른들이 서태지를 죽였다고 호소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기성세대들은 표절, 혐오감 등 부정적 영향이 많았던 서태지의 은퇴를 계기로 청소년들이 이성을 찾아야 한다고 합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생각해 보아야 할 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서태지 은퇴를 둘러싸고 일어나는 10대 팬들의 집단 행동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2. 서태지에 대한 X세대와 기성세대 사이에는 어떤 시각 차이가 존재하는가.


3. 서태지가 해체 선언 후 출연을 펑크 내고 잠적한 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4. 우리 사회에 건전한 청소년 문화가 정착되기 위해서 우리는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하겠는가?




「서태지와 아이들」 해체 파문


X세대 「집단 히스테리」 증상


(동아일보, 96. 1. 24)




“재고하라”, “자살하겠다” PC통신에 호소문/연희동 집 팬 40~50명씩 배회하며 확인 소동




그룹 해체설 속에 22일 멤버 전원이 잠적한 그룹 「서태지와 아이들」의 팬들이 집단히스테리 증상을 보이고 있다. PC통신 하이텔등 게시판에는 23일 하루 종일 『제발 다시 생각하라』 『은퇴저지 서명운동을 벌이자』는 호소문이 빗발치는가 하면 한 소녀가입자는 『자살도 불사하겠다』는 폭탄선언도 서슴지 않고 있다.


서울 압구정동의 한 여중생(2년)의 어머니는 이날 동아일보에 전화를 걸어 『딸이 「서태지와 아이들」이 해체될 것이라는 기사를 보고 기절했다』며 『해체 여부를 확인할 길이 없느냐』고 하소연했다.


서울 연희동 서태지가 살던 집주변에는 새벽부터 팬들이 40~50명씩 무리를 지어 배회하면서 서태지의 가요계 퇴진 사실확인 등으로 소동을 빚고 있다. 그러나 서태지는 최근에도 수차례 이사한 끝에 21일 새벽 3시경 이 집에서 마지막 짐을 옮겨 다른 곳으로 이사했다고 부근 연세대 수위 조연태씨가 전했다.


「서태지와 아이들」은 『서태지를 읽으면 90년대 신세대 문화가 보인다』는 평을 듣는 세대의 대변자로 꼽혀왔다. 서태지 양현석 이주노 등 그룹 멤버와 매니저 김철씨 등 관계자들은 22일 이후 「비밀 프로젝트」를 실행에 옮긴 듯 동시 잠적한 상태다. 서태지의 초상권을 관리하고 있는 위프로덕션의 채송아씨는 『22일 김철씨와 통화중 「한곳에 모여 있고 곧 사실을 공개할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고 밝혔다.


그룹 해체설의 진위와 명확한 동기는 알려지지 않고 있지만 주위에서는 『서태지가 앞으로 나올 5집앨범에 대한 심리적 부담을 털어놓은 적이 있다』고 말해 음악적 고민이 원인임을 시사했다. 또 「컴백홈」과 관련해 공륜과의 마찰, 표절시비 등이 잇따른데다 서지원등 가수들의 자살도 충격을 주었을 것이라는 풀이도 나오고 있다.22일 밤 텅빈 서태지 집의 문을 두드리던 이모양(18)은 『이처럼 갑작스럽게 사라지면 팬들에게 커다란 상실감만 안겨줄 뿐』이라며 울먹였다. 이같은 팬들의 반응과 관련, 연예계 관계자들은 『「서태지와 아이들」은 공인인 만큼 공식 자리를 통해 진퇴입장을 밝혀 이번 소동이 하루빨리 가라앉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허엽〉




공연 예정 「핸드볼 큰잔치」 “난감”


청소년들의 우상인 인기 그룹 「서태지와 아이들」의 해체 파문이 현재 열리고 있는 필립스배 핸드볼큰잔치를 곤경에 몰아넣고 있다.대한핸드볼협회는 핸드볼큰잔치에 청소년층 관중들을 동원하기 위해 25일 잠실학생체육관에서 열릴 경기에 앞서 「서태지와 아이들」공연을 갖기로 계약했으나 갑작스런 해체소식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 것.


15분 공연에 2천여만원을 지급키로 한 협회는 지난20일 전액을 지불한뒤 대대적인 홍보활동을 해왔었다.




서태지 해체 선언의 안팎


(중앙일보, 96. 1. 24)




인기 정상의 댄스 그룹 「서태지와 아이들」의 돌연한 해체선언은 오늘날 우리 대중예술의 위상과 관련해 여러 측면을 돌아보게 한다.더구나 최근 몇몇 가수들의 잇따른 죽음,그리고 그룹 「룰라」의 표절시비 등 일련의 연예계 사건들이 모두 당사자들의 「인기관리」와 무관하지 않고 보면 「서태지」의 해체 선언이 몰고올 파장은 클 것 같다.


따라서 이제는 최근 몇년간 우리 가요계를 휩쓸고 있는 대중음악의 흐름이 그 뿌리를 어디에 두고 있으며,그 유입과정에 문제는 없는지,또한 그들에 대한 청소년의 대중적 인기양상이 과연 우리네 문화풍토에 걸맞은 것인지 심각하게 따져볼 필요가 있다.


「서태지」를 비롯한 상당수의 가수들이 인기 유지의 수단으로 삼아온 「랩」은 본래 미국 흑인사회에서 싹튼 하급문화의 개념이다.강한 호소력과 흡인력을 무기로 삼는 이 음악은 마치 최면술처럼 젊은층을 사로잡는 특징이 있다.요란한 율동과 알아듣기 힘든 언어,그리고 국적불명의 옷차림과 분장으로 무대를 휘젓는 이 음악이 여과과정을 거치지 않고 유입되면서 우리 청소년들이 쉽게 몰입한 것이다.


90년대 이후 「랩」의 폭발적인 선풍은 「신드롬」현상까지 초래했지만 가수들의 인기유지를 위한 부작용도 만만치 않았다.인기가 시들해지면 또 다른 새 노래를 선보여야 한다는 극심한 심리적 고통에 시달려야 했고,그 중압감이 「본바닥」의 노래를 표절하거나 흉내내게 하는 모험을 감행케 했다.그래서 은퇴와 재등장을 되풀이하는 가수도 많았다.


청소년들을 일쑤 괴성과 광란의 소용돌이 속으로 몰아넣는 오늘날 우리 대중음악의 양상은 기성세대에도 책임이 있다.건전한 청소년문화의 기틀을 다져놓지 못한 것이 1차적 책임이요,그같은 이질적인 문화의 유입을 방관해온 것이 2차적 책임이다.「서태지」의 해체선언이야 그 배경이 무엇이든 이쯤에서 우리 대중음악에 대한 전반적인 검토와 반성이 있어야 할 것이다.




대중가요 표절 시비


(동아일보, 96. 1. 9)




창작과의 한계 모호… 일방적 단정은 무리


대중가요는 속성상 그 시대의 감정, 현상, 희망을 담고 있다. 우리가 대중음악을 들을 때는 음악 자체를 음미한다. 멜로디나 리듬 가사 등을 통해 즐거움이나 슬픔 등 음악 속의 감정에 빠져들고 노래의 내용을 음미하는 것이 보통이다. 굳이 어느 곡과 멜로디가 비슷하다든지 리듬이 같다는 사실을 밝히기 위해 듣지는 않는다.


사실 PC통신상에 대중음악의 표절문제가 심각하게 거론되고 있다.그동안에도 룰라를 비롯해 서태지와아이들 디제이덕 아르이에프 녹색지대 김원준 뱅크 김정민 등 많은 가수들의 표절설이 오르내렸다.


7음계의 조합과 리듬의 이용이라는 대중음악의 속성상 유사한 곡이 생기게 마련이다. 또 최근에는 사운드 샘플링이라는 장치로 미리 만들어져 있는 효과음이나 드럼 등을 손쉽게 이용하기까지 한다.실제로 인터넷에 가보면 사운드 샘플이 수없이 올라 있어 음악의 세계적 동질화를 실감하게 된다.


물론 남이 어렵게 만들어 놓은 곡을 표절하는 행위는 분명히 옳지 않다. 하지만 표절과 창작의 한계가 모호하다는데 문제가 있다.멜로디가 비슷하다고 또 느낌이 유사하다고 표절이라고 단정짓는 것에는 무리가 있다.




모방은 뛰어나도 모방… 진실한 예술혼 아쉽다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고 했다.이 말은 길고도 냉혹한 자기단련을 거쳐야만 예술가로서의 정체성을 가질 수 있다는 뜻을 함축한다.모방은 아무리 뛰어나도 역시 모방에 지나지 않는다.


요즘 3대 PC통신 토론방에는 대중가요의 외국곡 표절문제 토론이 요란하다. 인기그룹 룰라의 새 앨범 타이틀곡인 「천상유애」가 일본 그룹 닌자의 「오마쓰리 닌자」를 표절했다는 글이 엄청나게 많이 게재되고 있다. 도입부의 전주 및 랩과 트로트 멜로디가 일본곡과 너무도 비슷하다는 분석내용까지 올라와 있는 실정이다.룰라의 히트곡「날개잃은 천사」도 미국 가수 새기의 「오 캐롤라이나」를 표절했다는 의혹을 받았었다.


그동안 우리가요중 일부는 정서적으로 유사한 점이 많다는 일본 대중가요를 표절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받아 왔다.이는 우리 대중음악의 자존심 문제에 그치지 않고 민족정서의 문제로까지 확대된다고 하겠다.대중음악 관계자들의 진지한 음악성이 요구되고 삶과 예술에 대한 진정한 열정이 필요한 시점이다.


단순히 음반에 담긴 음악을 팔고 사는게 아니라 그 음악 속에 담긴 음악정신을 사고 팔았으면 한다.




탈색 이용한 머리 염색 유행


(중앙일보, 96. 1. 9)




심한 탈색땐 모발 손상 등 부작용


탈색을 이용한 염색이 다시 유행이다.몇해전 유행했던 탈색법은 흔히「브리지」(원래는 블리치․bleach)라고 잘못 불리는 것으로 앞이나 옆 머리 몇 가닥만을 노랗다 못해 하얗게 색을 빼는 방법.여기에 기호에 따라 다시 원하는 색상을 물들이기도 했다.요즘 많이 쓰는 것은 이같은 부분탈색․염색 뿐아니라 머리카락 전체를 탈색해,다시 염색하는 방법.번거롭기는 하지만 일반 염색으로 잘 안되는 밝고 선명한 색상을 낼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보통 파마값과 맞먹는 비용에도 불구,인기를 누리고 있다.


미용사 박혜리(서울강남구압구정동 지오지아미용실)씨는『「삐삐밴드」의 여자가수 이윤정같은 밝은 빨강이나 파랑,밝은 금색 등 대담한 염색을 원하는 손님이 늘고 있다』며 『우리나라 사람들은 흑갈색 머리가 대부분이라 일반 염색법으로는 이런 밝은 색상이 잘 안나오기 때문에 머리전체를 밝게 탈색해,다시 염색하는 방법을 주로 쓴다』고전한다.


빨강머리 선풍을 일으킨 이윤정외에 밝은 금빛이 도는 갈색머리가 된 탤런트 이승연,최근 빨강․파랑․보라로 각각 머리색을 바꾼 「서태지와 아이들」등이 탈색과 염색을 거듭한 천연색 머리의 유행을 주도하고 있는 연예인들이다.


 미용전문가들에 따르면 탈색의 정도가 심할수록 머리색은 빨강에서 노랑으로,노랑에서 흰색으로 변해간다는 것.문제는 색깔뿐 아니라 머리끝이 갈라지는 등 머릿결의 손상도 심해진다는데 있다.미용사 임수정(서울서대문구창천동 새리미용실)씨는 『일반염색과 달리 탈색은10분 미만의 짧은 시간에 처리를 끝내야 머릿결이 덜 상한다』고 말한다.또 색상의 지속기간도 일반염색보다 긴 6개월~1년까지 가기 때문에 지나치게 잦은 탈색은 삼가는 것이 좋다.


『밝은 금발로 물들인 외국여배우들도 대개 탈색을 해서 다시 염색한 것』이라고 소개하는 미용사 곽형심(모즈헤어 교육부장)씨는 『파마후 1,2주후에 탈색․염색을 하는 식으로 머릿결에 충격을 덜어주고 트리트먼트같은 모발보호제를 꾸준히 사용해야 한다』고 권한다.<이후남기자>




‘가사 변경’ 피소/‘서태지와 아이들’ 판정승


(세계일보, 96. 1. 15)




공론 “심의후 바꿔 불법” 고발/검찰 “고의성 없다” 기소유예


서울지검 형사1부 성영훈검사는 14일 인기그룹 「서태지와 아이들」의 새앨범 「컴 백 홈」을 제작,배포하면서 공연윤리위원회의 심의 규정을 위반한 혐의로 입건된 반도음반(주)과 이 회사 음반제작책임자에 대해 기소유예처분을 했다고 밝혔다.


검찰은 지난달 29일 문제가 된 곡을 작사­작곡한 서태지씨(24․본명 정현철)를 참고인 자격으로 소환,조사한 결과 『정씨가 공윤심의 이후 음반을 제작하는 과정에서 떠오르는 영감에 따라 일부 가사를 변경했을 뿐 심의를 피하기 위해 고의적으로 가사를 바꾸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공윤은 지난 9월 서태지와 아이들 4집 「컴 백 홈」의 수록곡 중 일부 가사 내용이 사전심의때와는 다르다며 검찰에 고발했다. 당시 문제가 된 가사는 타이틀곡인 「컴 백 홈」을 포함,「1996년,그들이 지구를 지배했을 때」 「필승」등 3곡으로 「부모의 제압」 「사람을 죽이고 있어」 「널 죽여버릴거야」 등의 가사가 공윤심의후 삽입되거나 바뀐 것으로 드러났다.


수사가 진행되는 도중 검찰에는 주로 여중­고생을 중심으로 『드라마나 신문지상에도 「살인」 「마약」이라는 단어가 매일 등장하는데 유독 노래가사에 나온다는 이유로 처벌하는 것은 말도 안된다. 오빠를 용서해달라』는 내용의 편지가 쇄도했다.<조진태기자〉




44. 한국에서의 록정신


원 종 우


(하이텔 ID esperlst, 95. 9. 30)


이러한 바탕의 부재하에서 우리나라의 록은 극소수 창조적 아티스트를 제외하면 외국곡을 카피하여 밤무대 등지에서 연주하거나 록의 형태를 빌려 와서 기존의 가요의 뼈대위에 살짝 입혀놓은 엉성한 것이 되고 말았던 것이다. 이는 국내 대중가요 시장의 한계속에서 어쩔수 없는 선택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점은 이러한 관행이 일종의 타성이 되어 지금 이시점에 이르기까지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부분이다.




이 글은 문예마당에서 발간하는 계간지 ‘REVIEW’ 가을호에 기고한 것이다. 주제와 관련된 내용을 심도깊게 다루기 위해서는 많은 준비와 단행본 한권이상의 분량이 필요한지라, 어쩔 수 없이 상당부분을 축약하게 되었다. 따라서 제시된 각종 관점들에는 논란의 여지가 있음을 인정한다. 특히 서구 의 록 정신에 대한 제 2 장 부분은 한국의 실정과 대비하기 위해 도입한 것 으로서 극히 개괄적으로만 언급되었다. 이와 관련되어 미리 밝혀두고 싶은 것은, 이 글에서 이야기되는 ‘록정신’ 은 아직 서구에서도 구체적으로 정립되지는 못한 개념이므로 이를 록 음악의 특수성과 연관지어 명료하게 제시하는 작업은 필자로서는 곤란한 것이었다는 점이다. 따라서 필자는 이를 록이라는 형태를 가진 창조적 대중예술이 가져야 할 기초적인 마인드를 설명하기 위한 개념 정도로 다소간 애매모호하게 사용하고 있다. 정리된 록 정신의 실체 가 없는 상태에서 ‘한국에서의 록 정신’ 에 대해 논하였다는는 점에서 본말이 전도된 뉘앙스가 있음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에는 리뷰의 지면을 통해 이 글을 읽게 될 대중들의 수위와 관점, 그리고 일차적인 당면 과제로서 한국 록이 보여주고 있는 각종 문제점들에 대한 지적을 위해 어쩔수 없는 측면도 있었음을 말씀드리고 싶다. ‘한국에서의’ 록 정신이라는 청탁받 은 주제의 한계와 필자의 부족함으로 인해 록 정신 자체에 대 한 논의는 거의 이루어질수 없었던 점 아쉬우며, 이 부분은 추후 계속적으로 토론되어야 할 것으로 안다.




1.


지난 30년간 록 음악은 나름대로 면면히 생명력을 유지해 왔지만 최근 몇 년과 같이 대중들에게 있어서 일상적으로 주변에 존재하는 쟝르로서 인식된 적은 없었다. 과거와는 달리 근래의 자칭 ‘록커 (rocker)’ 들은 TV 등의 비디오형 전파매체속에서 각광받으며 준수한 외모로 연예잡지나 주간지의 표지 모델이 되고, 때로는 CF 등에도 얼굴을 내밈으로서 대중들을 즐겁게 한다. 이들은 인기가요 차트의 상위권을 차지함으로서 음악성과 대중성의 양면에서 성공한 자의 면모를 과시하기도 한다. 록음악의 득세는 특히 드라마나 영화의 주제가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지난 몇년간 젊은 층을 대상으로 히트한 티비의 드라마나 미니시리즈에는 거의 예외없이 ‘록 음악’ 이 사용되었으며 이 곡들은 드라마의 인기에 편승하여 차트의 정상에 오르는 쾌거를 이루었다. 비단 이러한 대중매체들 속에서 뿐 아니라 우리 생활 주변에서도 이제 록 음악을 하는 사람을 찾아 보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 출퇴근시의 버스나 전철속에서도 긴 머 리와 가죽바지를 입고 일렉트릭 기타를 둘러 맨 청년들을 쉽게 볼수 있으며 기성세대들도 그들을 별달리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젊은 층들이 많이 모이는 대학교 앞, 대학로, 압구정, 신촌, 돈암동 등의 거리에서는 소규모 록 콘서트의 포스터들을 언제든 접할 수 있다. 서울 뿐 아니라 중소 도시에서까지 무명 밴드들이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단지 일렉트릭 기타를 가지고 있다는 이유 만으로 특이하게 비춰지던 10여년전의 상황에 비한다면 이런 근래의 모습은 참으로 괄목할만한 변화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이런 외형적인 발전의 모습들을 한꺼풀만 들여다보면, 열악한 대중음악계 속에서의 우리나라 록 음악이 봉착하고 있는 많은 어려움과 문제점들을 접하게 된다. 한국 록 음악의 주변을 둘러싼채 조악한 유사 록을 양산하고 있는 온갖 구조적 문제점들, 그 난잡함과 혼돈스러움 속에서 잘 드러나지 않지만 가장 중요한 부분이 있다.


그것은 바로 록 정신(Rock Spirit) 의 문제이다.




2. 


미국과 영국을 중심으로 한 서구에 있어서 록 음악의 발전사는 세계에 대한 고정화된 인식과 그 제도및 현실에의 반항의 역사 라고 규정해 볼수 있다.


‘세계에 대한 고정화된 인식’ 은 기존의 인습이나 이데올로기에 의해 굳어진 기성세대의 가치관을 뜻한다. 제도는 그 인식을 실현하는 수단으로서, 현실은 그 결과로서 존재한다.


60년대에서 70년대에 이르는 기간 동안 서구 문명은 그 한계를 여실히 드러내기 시작했다. 전통적인 기독교의 구심점은 두번의 세계대전을 치루는 과정에서 크게 손상되었고, 40년대와 50년대를 통한 재건사업 이후 정신적 지표를 잃어버린 서구인들의 삶은 자연스럽게 물질적인 풍요, 부의 획득이라는 목표를 향하게 되었다. 물질적 풍요가 가져다온 반대급부로서 정신적인 황폐함과 극단적인 개인주의가 득세하였으며, 이데올로기는 냉전이라는 이름으로 전세계의 질서와 개인의 사고를 지배하였고, 이는 또한 베트남전과 같은 비극을 잉태하게 되었던 것이다. 록 음악은 바로 이런 토양을 바탕으로 하여 자생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따라서 록 음악은 기성세대와 그들이 만들어놓은 사회속에서의 인식 및 제도에 대한 반항의 정신을 그 근간으로 하고 있으며, 이를 나타내기 위해서는 자연스럽게 과거에 비해 보다 강렬하고 빠른 리듬과 거친 사운드, 직설적이고 적나라한 가사에 의한 표현 방법이 요구되었다. 대중음악이 가진 확산력을 통해 록 음악은 아주 빠른 속도로 전세계에 전파되었고, 기성세대들은 자신들의 권위와 스스로 만들어낸 사회의 질서를 유지한다는 명목하에 우려와 탄압을 가하기도 했다. 이런 과정속에서 젊은 세대와 기성세대간의 대치구조는 보다 본격화되어, 록 음악은 젊은 세대의 이상과 반항정신을 대변하는 음악으로서의 위치를 보다 확고하게 누리게 되었다.




50년대에 버디 홀리, 엘비스 프레슬리를 중심으로 발원한 록큰롤 (Rock’n’Roll) 의 반항성은 애초에는 단순히 강요된 젊잖음에 대한 젊은이들의 단순한 반발에 가까왔다고 보는 것이 옳다. 그간 대중 음악계를 지배하고 있던 프랭크 시나트라류의 스탠다드한 미국 청 년의 모습 - 이는 또한 당시 기성세대가 요구하고 있던 모습이기도 하다 - 에 대한 염증을 느낀 젊은 세대들에게 강렬한 음악과 노골적인 가사, 섹시한 표정과 몸동작들을 통한 록큰롤의 유혹은 거부 할 수 없는 것이었다. 록큰롤 스타들은 더 이상 ‘감미로운 목소리 를 가진 옆집 청년’이 아니라 다른 세계에서 떨어져 내려온 듯한 신비로운 느낌으로 대중들에게 다가서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강렬한 변화에도 불구하고 대중음악은 아직 여가선용, 스트레스 해소 의 일환으로서의 의미 이상을 가지지는 못했던 시기가 또한 이때이다. 댄스뮤직에 가까왔던 50년대의 록큰롤은 이후 록 음악(Rock Music) 이라는 보다 큰 범주로 발전하게 되었다. 음악적인 변화와 중량감과 함께 가사의 주제나 소재에서도 매우 큰 변화가 나타났다. 50년대의 ‘이유없는 반항’ 류를 탈피하여 자기자신과 주변 세계에 대한 보다 진지한 인식에서 기초한 곡들이 등장한 것이다. 비틀즈 (The Beatles)의 세련된 소박함과 롤링스톤즈 (Rolli ng Stones) 의 부르짖음은 그 스타일은 달라도 동일한 정신적 기저하에 있었다.


산뜻한 음악과 외적 이미지를 가진 비틀즈에 비해 롤링 스톤즈는 전술한 록의 기본적 정신에 더 충실한 밴드였다고 할 수 있다. 그들은 반항적이고 퇴폐적인 외모와 음악을 시종일관 유지해 왔으며, 이러한 스타일은 이후 많은 록 아티스트들의 원형이 되었다.


비틀즈가 귀여운 천재들이라고 한다면 롤링 스톤즈는 타락하고 소외된 젊은이들일 뿐이었지만, 창조적 타락이라고 규정해볼수 있는 록의 성격에 누구보다도 투철했다. 그들의 작품들이 가진 우울함은 주로 블루스에서의 음악적, 정서적 영향이었며 밴드의 주축인 믹 재거와 키쓰 리처드의 만남부터가 미국의 흑인 블루스 기타리스트인 머디 워터스의 레코드를 계기로 했다는 점이 또한 이를 증거하고 있다.


비틀즈의 She’s leaving home 과 롤링 스톤즈의 Paint it black 더후의 My generation 은 비록 음악적 스타일에서 판이할 망정 내면적 정서 자체는 동일시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다. 소박함과 우울함, 선언이라는 표현 형식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자신들과 주변을 둘러싼 세계의 한계성에 대한 인식을 음악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50년대 록큰롤 시대에 이르기까지도 남녀간의 사랑은 곡의 소재로서 언제나 절대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어왔지만, 60년대에 이르러서 그 신화는 크게 손상되었다. 이제 더 이상 대중음악의 소재로서 부적절한 것은 없었다. 당시 크게 지지받은 쟝르인 포크에서 의 영향도 무시할수 없는 것으로서, 정치 사회등 전반에 걸친 문제에 구체적인 관심을 가지고 접근하는 경우도 나타났다. 이 과정 속에서 특히 주목해야 할 점은 록 정신(Rock Spirit) 이 과거의 여가선용및 스트레스 해소용이 아닌 보다 진지한 ‘삶 전체의 가치관’으로서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는 점이다. 50년대 록큰롤시대를 그 백그라운드로 한 60년대의 젊은 세대, 이들은 물질적인 풍요와 매스미디어의 본격적인 융성속에서 록의 반항정신을 자신들의 생활 전반에 까지 투영하려 했던 진정한 이상주의적 신세대였다.


60년대 전체에 걸쳐 미국 서부를 중심으로 커다란 세력을 형성했던 히피는 ‘평화’ 의 기치하에 반문명적 세계관을 생활속에서 실천했다. 이들은 대게 집단으로 모여 살면서 공동소유와 정신적인 교류를 중요시하였으며, 마약류를 통한 환각의 체험으로 보다 높은 정신적 경지를 추구하기도 했다. 히피운동의 중심에는 나름대로의 이론적 토대를 갖춘 학자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히피운동은 60년대 말 우드스탁 페스티발을 계기로 절정을 이루었지만, 결국 이때 나타난 많은 한계들을 통해 스스로 사라지고 말았다. 한 시대를 풍미한 거대한 시행착오인 히피즘은 록 음악의 정신적 토대이자 그 실험적 발현이었고, 자체로서는 성공하지 못했지만 환경에 대한 경각심이나 동양적 사고에 대한 접근 등 간접적으로 사회에 매우 큰 영향을 미쳤다.


 록 음악에서의 ‘반항’은 정치와 사회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이나 풍자를 통한 참여의 성격 (포크의 경우)보다는 무의식적이고 암묵적인, 제 3의 방향을 향한 형태가 많았다. 권태, 섹스, 폭력, 우울함, 모호함 등이 그것이다. 그러한 정서들은 때로는 노골적으로 때로는 역설과 위트, 유우머를 통해 담겨져왔다. 록 음악의 이 러한 모습은 기성세대가 지배하고 있는 불합리한 사회질서와 현실에 대해 대안을 제시해주지는 못했다 하더라도 그 존재 자체로서 견제의 역할을 상당부분 수행해 왔다고 할 수 있다. 젊은이들 중 상당수는 록의 정신으로 대변되는 이상주의적 가치관속에서 이를 생활 속에서 전면 실현하기 위한 실험을 행하기도 했다. 이들을 일컬어 히피 (Hippy) 라고 부른다. 60년대말에 극단적 융성을 이룬 히피운동의 한계는 록 정신과 같은 예술적 이상주의가 현실에 성 급히 적용되었을때 구체적인 대안이나 움직임으로 조직화되지 못 하고 현실도피적 경향으로 나타날 수 밖에 없는 것임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던 점에 있다. 다시 말하면 예술은 세계를 변화시키 는 ‘거름’이 될 수 있을 망정 직접적 도구가 될 수는 없다는 점이 다. 그들은 히피로서의 집단 생활이나 마약을 사용한 환각 실험 등을 통해 스스로의 정신적 영역의 확장을 시도하는 등 노력을 기울였지만 그 근간에는 세계에 대한 염증과 감정적 대안으로서의 도피성향이 자리하고 있었음은 아무도 부인할 수 없다. 동시에 록 뮤지션들과 정신적인 일체감을 가짐으로서 구원받고자 하는 제의적 성격이 본격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예나 지금이나 록 콘서트는 필연적으로 제의적인 분위기를 가지고 있다. 록 콘서트를 통해 가장 중요시되는 것은 거의 언제나 아티스트와 관객의 일체감이다. 관객을 대리한 아티스트가 무대 위에서 록 음악을 주문으로 한 제사 의식을 행하는 셈이다. 이때 제물은 바로 자신들의 젊음(My Generation) 이라고도 말 할수 있다. 이러한 제사의식적 성격은 전술한 바와 같이 종교적 절대권 위의 실추와 현실 사회의 모순점등에서 비롯된 정신적 지표의 부재하에서 자연스럽게 발현한 것으로서 제사를 바치는 대상이 특정하지 않다는 점을 제외하고는 본질상 종교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때로 이런 성격은 보다 본격적으로 그 모습을 드러내기도 했다. Judas Preist 같은 밴드명이나 Ozzy Osbourne, Alice Cooper 등의 무대매너에서 나타난 다소간의 악마성은 그 극단적인 예이다. 일부 록 음악에서의 악마성은 - 악마 ‘주의’ 라고 말할만큼 거창한 것은 결코 아니다 - 서구사회의 오랜 기독교 도그마의 붕괴에 이은 반작용으로 이해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본다. 물론 그러던 것이 언젠가부터는 일종의 상업적 전략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앨리스 쿠퍼의 중기 이후의 모습을 기억해보자) 60년대에 절정을 이룬 이러한 성격은 70년대 중반이 지나면서 점차 타성에 의한 쇼(show)로 전락하게 된다.


이러한 상황들은 오래가지 않아 자체모순속의 한계를 극명하게 드러내게 된다. 구체적 대안이 정립되지 않은 속에서 이상주의의 실현을 추구하던 60년대의 흐름은 존 F 케네디 - 그는 서구 사회 속에서 제도권내의 60년대 정신을 상징한다 - 의 피살과 히피운동의 실패등을 계기로 몰락하게 되며, 이후 록 정신은 보다 은근한 형태로 변하여 록 음악 자체에 녹아내리게 된다.


서구에 있어서의 록 정신 (Rock Spirit)은 이렇듯 불완전한 세계에 대한 반항으로서 개인의 삶과 역사에 큰 영향을 주었고, 많은 시행착오와 반성끝에 창조적 예술정신의 한 측면으로 자리매김하였다.




3.


전술한 바와 같이 자연스럽게 발현된 사회현상으로서의 록 정신은 70년 대에 들어서면서 보다 대중음악 내부의 성격으로서 자리 매김하게 된다. 또 한 그 표현방식도 매우 다변화되어 극단적인 형태로서의 70, 80년대 헤비메틀이나 펑크를 비롯하여 많은 갈래의 분화 발전이 있어왔다. 최근의 얼터 너티브/모던 록에 이르기까지 그 정신은 면면히 계승되어오고 있으며 록 뿐만이 아니라 여타 다른 장르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록 음악이나 록 정신이 서구의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전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지고, 사랑받고, 추종되는 이유는 그것이 역사속에서 보편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 보편성은 바로 언제나 문명의 발전의 원동력이 되어 왔던, 고답적 구질서에 대한 반항과 보다 나은 현실을 위한 이상의 발현이라는 당위속에서 획득된다. 따라서 록 음악이 생명력을 가지기 위해서는 이러한 정신이 내재되어 있어야만 한다. 만약 이를 갖고 있지 못하다면, 그것은 록의 외면적 형태를 빌린 다른 무엇이라고 할 수 밖에 없다.




예술은 그 본질상 정치나 학문, 종교에 비해 실천적 참여의 성격이 상대적으로 낮을 수 밖에 없다. 예술은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기 위한 것이 아니며, 모호하고 추상적이라 하더라도 ‘느낌’을 통해 전달된다는 점에 그 장점이 있다. 상황을 분석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혹은 집행하는 역할은 정치, 종교, 학문등의 영역이다. 물론 예술적 활동을 통해서도 그러한 역할을 수행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예술의 목적을 단지 그런 식으로 규정해 버리는 일부 참 여론자의 견해는 명백한 오류임을 지적하고 싶다. 예술은 당대의 정서를 자연스럽게, 동시에 창조적, 발전적으로 반영함으로서 나름의 역할을 충분히 수행할 수 있다. 바로 그점에 예술만이 가질 수 있는 장점이 있는 것이다. 록 음악에 있어서 그 정신의 발현은 가사의 소재나 주제뿐 아니라 여타의 음악적인 부분들에 있어서도 적용된다. 록 음악도 결국 음을 가장 중요한 표현 수단으로 하는 ‘음악’이기 때문이다.




그럼 우리 나라의 록 음악은 어떤가?


서구와는 달리 우리 나라는 록 음악이 자생적으로 만들어질수 있는 토대가 제공되지 못했다. 일제 강점기, 한국 전쟁과 뒤이은 극심한 빈곤속에서 예술적 창조성이 광범위하게 발현된다는 것은 애시 당초 무리였다. 뿐만 아니라 일제 강점기를 통해 한국 대중들에게 뿌리 박힌 이른바 ‘뽕짝’ 은 일부에서나마 시도된 창조적 음악활동 자체를 봉쇄해온 것이다. 설사 외국의 새로운 형식을 도입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뽕짝과의 타협속에서만 생명을 유지할 수 있었다. 협소한 시장과 대중의 무관심속에서 미군부대에서의 활동으로 시작되고 유지되어 온 것이 한국 록 음악의 초창기이다. 록 음악이 서구에서는 최고의 융성기를 맞았던 60년대의 우리나라는 록 음악 의 불모지에 다름아니었으며, 신중현씨를 위시로 한 몇몇 특정 음악인만이 간간히 대중에게 알려졌을 뿐이다. 그런 속에서 서구 에서와 같은 진지하고 폭 넓은 창조적 록 정신의 발현은 상상할 수조차 없었다. 데뷔 이후로 흔들림없이 입지를 구축하고 있는 록 음악인은 신중현, 김창완, 김수철씨를 필두로 한 몇몇의 소수에 불과하다.




70년대 후반 대학가요제를 계기로 대중적 지지도를 얻은 록 그룹 들의 참신함과 인기의 바탕은 아마추어리즘이었다. 흥행사업화 되어 있던 기존의 뽕짝가요들과는 차별화되는 순수성을 내세운 이들은 한때 젊은 층을 사이로 돌풍을 불러 일으켰으나, 한국적 현실에 따른 정신적 바탕의 부재와 프로의식의 결여속에서 오래지않아 한계를 드러내고 말았다. 이들중 크게 성공한 일부는 전업 뮤지션의 길을 걸었으나 쇼비니지스 구조에 흡수되어 버렸고, 대부분의 캠퍼스 록 밴드들은 아직도 교내에서 활동하고 있지만 음악적인 면에 있어서 별다른 성과를 보이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바탕의 부재하에서 우리나라의 록은 극소수 창조적 아티스트를 제외하면 외국곡을 카피하여 밤무대등지에서 연주하거나 록의 형태를 빌려 와서 기존의 가요의 뼈대위에 살짝 입혀놓은 엉성한 것이 되고 말았던 것이다. 이는 국내 대중가요 시장의 한계속에서 어쩔수 없는 선택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점은 이러한 관행이 일종의 타성이 되어 지금 이 시점에 이르기까지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부분이다. 글 첫머리에서 필자는 한국 록의 현상태를 크게 두 가지의 측면에서 제시한 바 있다.


그중 하나는 한국적 현실속에서의 오버그라운드라고 할 수 있을, 대중매체를 중심으로 한(TV 나 연예잡지등) 기존의 시스템을 최대한 활용하여 대중적 인기를 구가하는 음악의 경우이며, 또 하나는 언더그라운드로 구분해 봄직한 비교적 소규모의 공연장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밴드 중심의 음악의 경우이다. 전자의 경우처럼 대중매체를 통해, 즉 다시 말해서 우리나라 특유의 전형적인 대중음악 산업 구조 - 우리나라는 특히 TV 등 공중파 방송에의 의존도가 높다 - 를 통해 선보여지는 음악속에서도 두 가지 유형을 생각해 볼 수 있다. TV 드라마나 미니 시리즈등을 통해 우리 귀에 익숙해지고 이어 다른 음악 쟝르 (댄스뮤직이나 발 라드등) 에 종사하던 음악인들까지 가세하게 된 - 김원준은 그 좋은 예이다 - 철저한 대중지향의 스타일이 그중 하나이다. 예외 없이 전형적인 록 8 비트의 단순한 리듬속에서 오버드라이브된 기타 사운드와 강렬한 드럼, 강조된 베이스, 그리고 고음역의 보컬을 특징으로 하는 이런 음악들은 일견 외면적으로 록이 가진 음악적 특성를 어설프나마 갖추고 있다. 그러나 이런 곡들의 뼈대 로서의 가사나 멜로디는 오랫동안 대중들에게 익숙해져 있는 이른 바 ‘가요’의 그것과 차별화될 소지가 거의 없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곡에서 흔히 다루어지는 치기어린 승부, 숙명적 사랑따위의 소재는 10대나 20대 초중반의 젊은 대중들을 자극시키기 위한 지극히 상업적인 전략에 기초하고 있음이 명백하다. 이런 곡들을 연주하고 노래하는 자신들도 이 곡들이 말하고자 하는 내용에 대한 어떠한 신념이나 음악적 정열도 가질 수가 없을 것이다.




유사 록 음악이 사용된 드라마들은 주로 10대나 20대 초중반의 젊은 층을 겨냥하여 제작되었다. 주로 미니시리즈의 형식으로 방영되는 이런 드라마들에는 예외없이 당대에 가장 인기가 높은 남녀 스타들이 주연급으로 출연하게 마련이다.


이런 곡들은 흔히 밴드의 모습이 아닌 솔로 싱어의 모습으로 발표되며, 이들 싱어들은 본인 스스로가 별다른 작사나 작곡등의 능력을 갖추고 있지 못한 경우가 많다. 이 경우에 싱어는 단지 흥행사업의 측면에서 ‘고용된 가수’ 일 뿐, 아티스트의 정신을 기대한다는 것은 애시당초 불가능하다.


 일부 경우처럼 자신이 직접 가사와 멜로디를 만드는 경우라 하더라도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가요의 멜로디에 록의 외양만을 살짝 입힌 경우가 대부분이며 - 그나 마 록적인 기타 리프나 리듬등의 요소는 편곡자의 손에 의해 이루어짐 - 본격적인 록 음악을 만들어 발표하기에는 대중음악계의 시장적 여건이 충족되지 않을뿐 아니라 가수 자신들도 록의 정신을 갖추지 못한 만큼 그럴 필요성을 느끼지도 못하는 형편이다.




두번째 경우는 그간 언더그라운드신에서 헤비메틀 밴드의 싱어등으로 활동하던 음악인들이 그 스타일을 변형시켜 가요계로 진출한 경우이다. 부활의 이승철, 시나위의 김종서, 크라티아의 최민수등 유명밴드 출신을 비롯하여 알려지지 않은 신인들까지 포함한다면 이들의 숫자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이들은 과거 록계의 선배 들과 마찬가지로 대중음악 시장의 현실과 타협을 모색한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엄밀한 의미에서 언더그라운드 음악은 음반을 발표하지 않은 상태에서 클럽등 소규모의 공간을 통해 소수정예의 관객들과의 음악적 교류를 주 활동으로 하는 음악을 뜻한다. 구미의 경우에는 오랜 기간에 걸쳐 자생적으로 성장한 대중음악의 풍토에 따라 록 음악뿐 아니라 각 쟝르에 걸쳐 전문적인 라이브 클럽이 무수히 존재하며 이들 클럽을 무대로 활동하는 음악인들과 함께 일종의 신(Scene) 을 형성하고 있다. 이런 언더그라운드 신에는 그 구조상 거대한 쇼비지니스의 자본등이 간여할 여지가 적다. 서구 대중 음악의 저력은 이 언더그라운드 신의 바탕을 기초로 하고 있으며 근래의 얼터너티브/모던 록의 경우가 좋은 예라고 할수 있다. 우리나라에는 이런 서구적 의미에서의 언더그라운드 신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으며, 있다 하더라도 극히 미약한 입지만을 가질 뿐이다.


이 두 경우, 대중들로 하여금 록의 스타일에 친숙해지도록 하여 이후 본격적인 록 음악의 대중화를 위한 척후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는 점이 어찌보면 장점일 수 있으나, 본질상’호도된 록 음악의 전파’ 라는 측면을 결코 떨쳐 버릴 수 없다. 록의 정신(Rock Spirit)이 아예 없거나 현실과 타협하여 성공한 경우라면 그것이 록의 스타일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결코 본류의 것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활동들은 자칫하면 록의 발생과 발전속에서 내재되어 있는 정신적 바탕을 도외시한채 단지 ‘가요장르로서의 록’이라는 이미지를 대중들 속에 구축할 가능성을 지적하지 않을 수없다.


언더그라운드에서 활동하고 있는 밴드를 중신으로 한 록 뮤지션들의 경우는 이러한 세태에 대부분 심정적으로 크게 반발하고 있으며, 쇼비지니스와 영합하지 않은채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하기를 원하고 있다. 음반을 발표하고 매체를 활용하는 경우에도 이들의 활동 양상은 앞서의 경우와는 판이하다. 이들은 자신들이 추구하는 음악에 대해 간섭받기를 거부하며, 그럴 바에는 차라리 그만둔다는 식이다. 그러나 주로 헤비메틀 밴드를 중심으로한 언더그라운드 록 신은 그 활동에 비해 별다른 지지를 받지는 못하고 있다. 필자도 가끔씩 대학로를 중심으로 한 공연장을 찾곤 하지만 몇몇 유명 밴드의 공연을 제외하면 관객의 수나 호응도면에서도 무척 빈약한 실정이다. 단위 공연의 관객 수로 따진다면 10년전이나 지금이나 별다른 양적 팽창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고 보인다. 적정한 관객의 수는 이들 록 음악인들의 음악 활동의 지속및 생존과도 직결된다는 점에서 무척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에 이는 심각한 문제이다. 이런 어려움들이 계속될 경우에는 많은 록 음악인들이 결국은 선배들의 전철을 밟아 록계를 이탈하게 될 것이며, 이는 또 다시 언더그라운드 록 신의 침체를 연장시키는 악순환의 고리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나름대로의 신념을 가지고 활동하고 있는 언더그라운드 록 음악인들에게서도 록 정신(Rock Spirit)의 문제는 여전히 남아있다는 점이다. 치렁치청하게 기른 머리카락, 가죽 바지나 찢어진 청바지, 굽높은 구두와 도전적인 표정따위는 록 정신이 자연스럽게 발현되는 하나의 표현수단 이상의 의미는 없다. 그것이 기성의 유니폼화 되거나 패션의 한 형태로 자리한다면 이는 록 정신의 근간에서는 멀찌감치 떨어져 있는 것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하면 이런 자세는 자칫하면 서구 록 음악이 국내에 전파되어 오는 과정에서 발생한 모방과 타성으로 전락하기 쉽다는 것이다. 음악 자체의 문제에 있어서도, 자작곡의 열악함이 언제나 문제점으로 지적되는 부분이다. 카피 밴드로서 외국의 유명곡들을 무난 하게 소화해내는 밴드들조차 자신들의 자작곡에서는 감각과 실력의 부재를 여실히 드러내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주체적인 노력과 타성을 극복해 나가는 창조자로서의 록 정신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제 아무리 카피를 잘한다 한들 자작곡이 부실하다면 예술가로서의 가치는 전무한 것이다.


 언더그라운드 신에서 활동하는 대부분의 록 밴드들의 경우, 그 음악활동 시작의 배경이 80년대의 헤비메틀 밴드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은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다. 80년대에 10대였던 이들 세대는 당대에 가장 큰 인기를 끌었던 밴드들의 영향하에 놓일 수 밖에 없다. 가죽패션이 크게 유행했던 것도 이 시기이다. 우리나라 언더그라운드 록 음악인들의 과제중 하나는 이 시기에 주입된 타성을 극복하고 보다 본질적인 록 본연의 정신을 찾는 일일 것이다. 그 정신적 바탕이 자연스럽게 체화되어 있는 서구와는 달리 우리의 경우는 타성에 의한 매너리즘의 극복을 위해 언제나 깨어 있는 자세가 요구된다. ‘기성화된 반항’은 기실 반항이 아니라 답습일 뿐이다.




4.


한국 록 음악은 아직 과도기에 있다. 어찌보면 수십년을 지속해온 과도기이다. 어려운 여건하에 나름대로의 록 음악을 추구하려는 수많은 노력이 계속되어 왔다. 그러나 서구의 자생적인 바탕에 비한다면 우리 나라의 록의 그간의 과정은 수입, 모방, 타협과 변질에 의한 기형적 구조속에서 진정한 창조성이 피어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다른 모든 문화, 예술 방면도 그렇지만 특히나 우리나라의 대중음악은 진지함과 창조성이 결여된채 엄청나게 커진 시장의 규모에도 불구하고 - 우리나라의 음반 시장은 물량에서 세계 4 위, 매출액면에서 세계 11위권이다 - 내적으로는 소비문화의 주변을 겉돌고 있다. 우리나라 대중음악의 입지는 아직도 서구의 4-50년대 수준을 넘지 못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단지 흘러나오는 음악, 듣는 그 순간만을 위한 음악, 직접적이던 간접적이던 그 어떤 삶에의 메세지도 전달하지 못하는 그런 것이 대중음악이라는 인식이 무의식중에 대중들 속에 뿌리 박혀 있다. 그러한 인식은 창조적 음악활동을 추구하는 음악인들의 행보를 가로 막는다. 이제라도 이런 잘못된 대중음악에 대한 인식을 극복하고, 보다 창조적인 음악 활동을 위한 터전으로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다각도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하겠다. 그 노력의 성과를 보다 값진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록 음악을 추구하는 사람들의 내면적 개혁이 가장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 그 개혁은 바로 록 음악이 발생기부터 지난 수십년간 가지고 왔던 정신적 바탕으로의 록 정신을 이해하고 이를 주체적으로 수용하는 일이다.


그러한 정신적 무장 만이 자신의 음악을 훌륭하게 만들수 있는 힘이 될 뿐아니라, 불 합리한 현실 구조의 개선 또한 가능케하는 진정한 밑바탕이 될 것으로 필자는 확신하고 있다.


45. 사랑은 기술인가


에리히 프롬


「사랑의 기술」에서


사랑하는 것보다 더 쉬운 일은 없다는 태도는, 그렇지 않음을 나타내는 증거가 산재함에도 불구하고 사랑에 대한 일반적인 관념이 되어왔다. 사랑처럼 엄청난 기대와 희망을 가지고 시작했다가 반드시 실패하고야 마는 활동이나 사업은 없을 것이다. 만약 이것이 다른 활동의 경우라면, 사람들은 실패의 원인을 찾으려고 노력하고 어떻게 하면 더 잘 할 수 있을까를 배우고자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그 활동을 포기해 버릴 것이다. 그러나 사랑에 있어서는 포기하는 것이 불가능하므로, 사랑의 실패를 극복하는 유일한 방법은 그 실패의 원인을 살펴보고 사랑의 의미를 배우기 시작하는 일이다.




사랑은 하나의 기술인가? 사랑이 기술이라면 사랑에는 지식과 노력이 요구된다. 아니면 사랑은 어쩌다가 우연히 경험하게 되는, 즉 운만 좋으면 ‘빠져 들게되는 즐거운 감정인가?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의심할 여지없이 사랑을 즐거운 감정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이 작은 책은 사랑은 기술이라는 가정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그 많은 사람들이 사랑을 그다지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들은 사랑을 갈구하고 있다. 사람들은 행복한 사랑 이야기나 불행한 사랑의 이야기를 펼쳐 놓는 수 많은 영화를 구경하고, 사랑을 노래한 수백 가지의 시시한 노래를 듣는다. 그렇지만 사랑에 대해서 배워야 할 것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러한 특별한 태도는 몇 가지 전제에 기초를 두고 있는데, 이 전제들은 단독으로 혹은 서로 결합해서 그 태도를 뒷받침하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랑의 문제를 ‘사랑하는’, 즉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의 문제로 보기보다는 ‘사랑 받는’ 문제로 보고 있다. 따라서 그들에게 있어서 중요한 문제는 어떻게 하면 사랑 받을 수 있는가, 어떻게 하면 사랑스러워지는가 하는 것이다. 이러한 목적을 추구하기 위해서 그들은 몇 가지 경로를 밟는다. 그중 한 가지는, 특히 남자들이 사용하는 것으로, 성공하는 것이다. 즉 자신의 지위가 지니는 사회적인 한계 내에서 권력을 장악하고 부자가 되는 것이다. 특히 여성들에 의해 사용되는 또 다른 길은 자신의 몸매를 가꾼다거나 옷치장을 함으로써 자기를 매력적인 사람으로 만드는 길이다. 매력 적인 사람이 되기 위해서 남녀 모두 사용하는 또 하나의 방법은 유쾌한 태도, 흥미 있는 대화를 몸에 익히고 유능하고 겸손하며,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태도를 취하는 일이다. 자기를 사랑스럽게 만드는 여러 가지 방법은 성공하기 위해, 즉 ‘친구를 얻고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 사용되는 방법들과 비슷하다. 사실 우리 문화권 내에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있어서 사랑스럽다는 것은 본질적으로 인기와 성적 매력이 뒤섞여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랑에 대해서 배울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태도의 배경에 깔려 있는 두 번째 전제는, 사랑의 문제는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대상’의 문제라는 가정이다. 사람들은 사랑하는 것은 단순한 것이고, 오히려 사랑하거나 사랑 받을 올바른 대상을 찾는 일이 어려운 문제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태도에는 근대 사회의 발전에 근거를 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 번째 이유는 ‘사랑의 대상’의 선택이라는 문제에 대해서 20세기에 일어난 커다란 변화이다. 빅토리아 여왕 시대에는 대부분의 전통 문화에서처럼 사랑이란 곧 결혼으로 나아가게 될 자발적이고 개인적인 경험은 전혀 아니었다.


그와는 반대로 결혼은 관습에 의해서, 즉 양쪽 집안에 의해서, 혹은 중매인에 의해서, 혹은 그러한 중개자의 도움 없이 이루어지는 계약이었다. 결혼은 사회적인 고려를 바탕으로 해서 이루어졌던 것이며, 사랑은 결혼이 성립된 후에 생겨나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서구 사회에서 낭만적인 사랑이라는 개념이 거의 보편적인 것으로 여겨지게 된 것은, 지난 수세대 동안의 일이었다. 미국의 경우, 전통적인 성격을 지닌 배려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상당히 많은 사람들은 ‘낭만적인 사랑’을 곧 결혼으로 이어지는, 사랑의 개인적인 경험을 추구하고 있다. 이렇듯 이 사랑에 있어서의 자유라는 새로운 개념은 ‘기능’의 중요성과는 반대되는 것으로서 ‘대상’의 중요성을 매우 높이지 않을 수 없었다.


현대 문화의 또 다른 특징적 성격이 이러한 요인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우리의 모든 문화는 구매욕, 상호간의 균등한 교환이라는 사고에 바탕을 두고 있다. 현대인의 행복은 상점 진열장을 들여다보는 드릴과 현찰이든 할부이든 자기가 살 수 있는 것은 모두 사 버리는 데 있다. 그는(또는 그녀는) 이와 비슷한 방식으로 사람들을 바라본다. 남자에게 있어서는 매력적인 여자, 여자에게는 매력적인 남자가 그들이 얻고자 하는 상품이다. ‘매력적’이라는 것은 일반적으로 인기 있고, 인격의 시장에서 잘 팔리는 품질 좋은 성격 꾸러미를 의미한다.


특히 사람을 매력적이게 하는 것은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그 시대의 유행에 달려 있다. 1920년대에는 강인하고 성적 매력이 있고, 술 마시고 담배를 필 줄 아는 소녀가 매력적이었다. 오늘날의 유행은 좀더 가정적이고 얌전한 여자를 요구하고 있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엽에는 매력적인 사람이 되기 위해서 남자는 공격적이고 야심만만한 사람이 되어야 했지만, 오늘날에는 사교적이고 참을성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어쨌든 사랑에 빠졌다는 느낌은, 자신의 교환 가능성의 영역 안에 있는 인간상품들과 관련지어서 나타나는 것이 보통이다. 내가 물건을 사러 나갔다고 하자. 상대는 사회적 가치라는 관점에서 보아 바람직해야 하며 동시에 상대가 나의 드러난 혹은 숨겨진 자산과 가능성을 고려하여 나를 쓸 만 하다고 생각한다. 이처럼 두 사람이 자신들의 교환 가치의 한계에 대한 고려를 바탕으로 하여, 시장에서 얻을 수 있는 것 중에서 가장 좋은 것을 찾아냈다는 느낌을 갖게 될 때 서로 사랑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또한 부동산을 매매하는 경우처럼 언젠가는 나타나게 될 숨겨진 가능성도 이러한 거래에서 상당한 역할을 한다. 이와 같이 시장 지향성이 널리 퍼져 있는 문화에서는 그리고 물질적인 성공이 뛰어난 가치로 여겨지는 문화에서는, 사람들간에 서로 사랑하는 관계가 상품 시장이나 노동 시장을 지배하는 교환 양식과 똑같은 형태를 취한다는 사실에 대해서 그다지 놀랄 필요가 없다.


사랑에 대해서 배울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을 자아내게 하는 세 번째 잘못은, 사랑에 ‘빠진다’는 최초의 경험과 사랑하고 ‘있다’ 는 영속적인 상태, 좀더 명확하게 말하자면 사랑에 ‘머물러 있다’는 상태를 혼동하고 있는 데 있다. 우리들 모두와 마찬가지로 서로 전 혀 모르고 지냈던 두 사람이 자기들 사이에 놓여 있던 벽을 허물어 버리고 일정하게 느끼며 하나가 되었다고 생각하게 될 때, 이러한 합일의 순간은 인생에 있어서 가장 유쾌하고 흥미 있는 경험 중 하 나일 것이다.


그것은 특히 고립되어 사랑 없이 지내던 사람들에게는 더욱 멋지고 기적적인 경험이 될 것이다. 갑자기 친밀해지는 이 기적은 특히 성적매력과 성적 결합에 의해 주도되고 이와 결합될 때 더욱 촉진되게 마련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유형의 사랑은 그 성격상 지속적이지 못하다. 두 사람이 점차 친숙해지면 그들의 친밀감이 지녔던 기적적인 성격을 그들은 서서히 잃게 되고, 마침내는 서로에 대한 반감과 실망감 그리고 권태감으로 인해서 최초의 흥분은 흔적조차 사라져 버리게 된다. 그러나 처음에는 이 사실을 알지 못한다.


그들은 심취, 즉 서로에게 ‘미쳐 있다’는 것을 그들의 사랑의 강도를 나타내는 증거로 여기지만, 그것은 단지 그들이 전에 얼마나 고독했었는가를 나타내는 것에 불과할 따름이다.


사랑하는 것보다 더 쉬운 일은 없다는 태도는, 그렇지 않음을 나타내는 증거가 산재함에도 불구하고 사랑에 대한 일반적인 관념이 되어왔다. 사랑처럼 엄청난 기대와 희망을 가지고 시작했다가 반드시 실패하고야 마는 활동이나 사업은 없을 것이다.


만약 이것이 다른 활동의 경우라면, 사람들은 실패의 원인을 찾으려고 노력하고 어떻게 하면 더 잘 할 수 있을까를 배우고자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그 활동을 포기해 버릴 것이다. 그러나 사랑에 있어서는 포기하는 것이 불가능하므로, 사랑의 실패를 극복하는 유일한 방법은 그 실패의 원인을 살펴보고 사랑의 의미를 배우기 시작하는 일이다.


여기서 해야 할 첫 번째 작업은 삶이 하나의 기술인 것처림 사랑도 기술이라는 사실을 인식하는 일이다. 만약 우리가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를 배우고자 한다면 우리는 또 다른 기술, 예를 들자면 음악 이나그림, 건축, 의학이나 공학의 기술을 배우고자 할 때 시작하는 것과동일한 과정을 밟아야만 할 것이다.


어떤 기술을 배우는 데 있어서 거쳐야 할 단계는 무엇인가? 기술을 배우는 과정은 편의상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이론의 습득이고, 둘째는 실천에 익숙해지는 일이다. 만약 내가 의학 기술을 배우려고 한다면, 나는 먼저 인체에 대한 지식과 여러 질병에 대한 사실을 알아야 할 것이다. 내가 이러한 이론적 지식에 통달하게 되었다 하더라도 나는 아직 의학 기술에는 능통하지 못한 상태이다. 내가 가진 이론적 지식의 결과와 실천의 결과가 하나로 어우러질 때, 즉 그 두 가지가 모든 기술 습득의 원천인 직관으로 될 때까지 상당한 정도의 실천을 쌓은 후에라야 비로소 나는 의학에 있어서 대가가 될 것이다.


그러나 이론과 실천을 익히는 것 외에도, 어떤 기술에 있어서 대가가 되는 데는 또 한 가지 요소가 필요하다. 즉 기술의 습득이 궁극적인 관심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그 기술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고 생각해야 한다. 이것은 비단 사랑뿐만 아니라 음악, 의학, 건축에도 해당된다. 우리 문화권 안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분명히 실패하면서도 왜 이러한 기술을 배우려 들지 않는가에 대한 해답도 아마 여기에 있을 것이다. 그들은 사랑을 그렇게 갈망하면서도 사랑보다는 성공, 권위, 돈, 권력 등을 더 중요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고, 사랑의 기술을 배우기 위해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그러한 목표를 성취할 수 있는 방법을 배우기 위해 모든 정력을 사용하고 있다.


 돈이나 권력을 얻을 수 있는 방법만이 배울 만한 가치가 있다면, 오직 영혼에만 유익하고 현대적인 의미에서 볼 때 아무런 이익도 없는 사랑은 노력을 기울일 필요조차 없는 사치에 불과한 것일까?


46. 철학이란 무엇인가


‘철학 에세이’에서


이제까지는 철학과 일상생활의 관계에 대해서 얘기했습니다. 이제까지 얘기된 것은 철학과 일상생활이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는 것, 철학적 생각은 체계적, 보편적이며 일상생활의 감상은 혼잡하다는 것, 그러나 철학은 일상생활의 감상에 의존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이번에는 과연 철학이란 무엇인가, 철학은 우리에게 어떠한 의미가 있는가에 대해 얘기해 보기로 합시다.


광물학은 광물에 대해서 연구하는 학문입니다. 생물학은 생물에 대해서 연구하는 학문입니다. 법학은 법에 대해서 연구하고, 경제학은 경제에 대해 서 연구하고, 역사학은 역사에 대해서 연구하는 학문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학문의 이름을 들으면 그 학문이 문제로 삼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대략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철학에서 문제로 삼는 것은 무엇일까요? 철학이라는 말만 들어서 는 철학이 무엇을 다루는 것인가에 대한 생각이 쉽게 떠오르지 않습니다.


그러면 과연 철학이란 무엇을 다루는 학문일까요?


인간 역사에 있어서 가장 위대한 철학자를 여러 명이나 배출한 고대 그리 이스의 사람들은 철학을 `필로소피아 ‘(philosophia)라고 불렀습니다. 이 필로소피아라는 말은 `필로스(philos)와 `소피아’(sophia)라는 말이 합쳐져서 만들어진 말입니다. ‘필로스’ ‘란 사랑이라는 뜻이고 ‘소피아’란 지혜라는 뜻입니다. 즉, `필로소피아’란 지혜를 사랑한다는 말입니다. 고대 그리이스 사람들이 지혜를 사랑한다라고 말했을 때 그 뜻하는 바는 세계에 대한 인식을 탐구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즉, 철학을 한다 하면 세계에 대한 인식을 탐구한다는 뜻이었습니다. 그 이후 지금에 이르기까지 철학하면 세계에 대한 근본인식과 근본태도를 가리키는 말이 되었습니다. 이때 말하는 `세계’ 란 세계지도라고 말할 때의 그것과는 달리 `존재하는 모든 것’을 뜻합니다.


따라서 철학이란 존재하는 모든 것에 대한 근본인식과 근본태도를 가리키 는 것입니다. `존재하는 모든 것’속에는 자연도 포함되고 사회도 포함되고 인간도 포함됩니다. 그러므로 철학이란 자연과 사회, 그리고 인간에 대한 근본인식과 근본태도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세계에 대한 근본인식과 근본태도를 다른 말로 표현하여 세계관이 라고도 합니다. 즉, 철학은 세계관입니다. 세계관은 우리가 세계를 어떻게 보는가, 어떻게 생각하는가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앞에서 우리는 철학을 세계관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세계관은 세계 를 어떻게 보는가, 세계를 어떻게 생각하는가를 가리키는 말이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세계관은 우리에게 어떤한 의미가 있는 것일까요? 과연 어떠한 의미가 있기에 우리들은 이 세계관에 대하여 관심을 갖는 것일까요? 이문제에 대해서 생각해 보기로 합시다.


우리들 주위에 있는 사람들의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여러가지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인생은 즐거운 것이며 이 세상은 즐거움으로 가득차 있은 것 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것은 즐거움을 맛보기 위한 것이며 세상의 골치아픈 일은 덮어두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사람을 향락주의자라고 부릅니다만, 돈이 많고 여유가 있으며 자기 마음대로 시간을 내어 즐길 수 있는 사람중에는 이러한 생각을 가진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인생은 슬픈 것이고 의미없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세 상에 있는 모든 사물은 허무한 것이며 이 세상은 고통으로 가득 차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하여 이러한 고통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죽 음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사람을 염세주의자라고 부릅니다.


자기가 하고자 하는 일이 사회적으로 인정을 받지 못하고 실패만을 거듭할 때 이런 생각을 갖기가 쉽습니다.


한편, 인생이란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인간을 미약하다고 생각하고 전지전능한 절대자만이 우리의 운명과 장래를 결정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절대자의 뜻에 의한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몸과 마음을 절대자에게 맡김으로써만이 행복해 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하여 그는 스스로의 힘으로 무엇을 개척한다든지 해결하려고는 생각하지 않고 절대자가 해주기만을 기원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사람을 숙명론자라고 부릅니다.


우리 주위에는 이러한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종교를 믿는 사람 중에 이러 한 사람이 많으며 또한 점을 쳐서 자기의 장래를 알아보려는 사람, 사업이 잘되라고 고사를 지내는 사람들도 이에 속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현실세계에 사는 많은 사람들은 자기에게 어떠한 문제가 닥쳤을 때 왜 그러한 일이 일어났는가 하는 원인을 생각해 보고 그 원인을 제거함으로써 그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사람들을 현실주의자라고 부를 수 있을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 주위에는 많은 사람들이 서로 다른 여러가지 태도와 생각을 가 지고 생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을 향락주의자, 염세주의자 등으 로 명확하게 부르기는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들은 향락주의자, 염세주 의자, 현실주의자등의 여러 요소를 한 몸에 지니고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여기서는 편의상 전형적인 향락주의자, 염세주의자, 숙명론자, 현실주의자에 대해 이야기하기로 하겠습니다. 그러면 이러한 사람들 에게 하나의 공통적인 문제가 생겼다고 해봅시다. 예를 들어 `실업’이라는 문제가 생겼다고 해봅시다.


향락주의자의 경우 그는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행동할까요? 그는 생활에 여유가 있으며 직업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의 유희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직장에서 해고당한다 하더라도 생활에 전혀 지장이 생기지 않기 때문에 크게 실망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인생을 즐길 수 있는 시간이 더 많아지기 때문에 좋아할 지도 모릅니다. 즉, 이 사람에게 있어서는 실업이라는 것이 전혀 문제가 되지 않기때문에 이에 대해서는 진지하게 생각하지도 않을 뿐더러 이것의 해결을 위한 노력 역시 하지 않습니다.


염세주의자의경우는 어떠할까요? 그는 이 세상 자체가 괴로움 덩어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실업이나 해고라는 문제도 단지 그러한 괴로움 중의 하나 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해고를 당하든 안 당하든 괴로운 것은 마찬가지이 며 빨리 죽은 것이 가장 좋다고 생각합니다. 이 사람의 경우도 실업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숙명론자는 이렇게 생각할 것입니다. “실업이란 아주 큰 문제이다. 실업 때문에 많은 사람들의 생활이 어려워지고 따라서 실업은 해결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 세상의 모든 일은 절대자의 뜻에 따르는 것이므로 우리는 어떠한 일도 할 수 없으며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절대자에게 기원하는 일이다.” 즉, 실업이라는 현실의 문제를 절대자에게 맡기고 자기 자신은 아 무 일도 하지 않은 채 단지 절대자에 빌 뿐인 것입니다.


이에 비해 현실주의자는 실업이라는 문제가 닥쳤을 때 현실적으로 생각하 고 행동할 것입니다. 즉, 실업이란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가를 생각합니다. 두 말할 것 없이 실업이란 우리에게 괴로운 것입니다. 실업을 당하면 당장 생활을 해나갈 수 없으며 가족의 생활은 파탄에 빠집니다. 따라서 현실주의자는 “실업은 해결되어야 한다”라고 전제하고, 왜 실업이라는 문제가 생기는가를 생각해서 그 적당한 해결방법을 찾아 이의 해결을 위해 노력합니다.


지금까지 든 여러가지 경우의 예에서 중요한 것은 다음과 같은 점입니다.


즉, 그 사람이 어떤 생각을 갖느냐에 따라, 다시 말하면 이세상을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그의 행동이 달라진다는 점입니다. 이 말을 우리가 앞에서 든 말로 바꾸면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즉, 세계관에 따라 그의 행동이 달라진다.


이처럼 세계관은 우리의 머리 속 생각으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우리의 행동까지도 결정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습니다. “세계관은 실천적 성격을 갖는다, 철학은 실천적 성격을 갖는다.” 철학의 이러한 실천적 성격 때문에 우리는 철학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우리는 철학의 실천적 성격 때문에 철학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또한 철학의 이러한 실천적 성격 때문에 올바른 철학을 갖는다는 것은 우리에게 있어서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만약에 우리가 잘못된 철학을 가진다면 우리의 행동도 잘못된 행동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올바른 철학이란 어떠한 철학일까요? 이번에는 이 문제에 대해서 생각해보기로 합시다.


철학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 본 사람이나 철학자만이 세계관을 가지는 것은 아닙니다. 보통의 평범한 사람도 자기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자기 나름대로 의 세계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주의에서 흔히 “이 세상에서 돈이 최고다”라는 말을 듣습니다. 이 말이 옳든 그르든 간에 이 말을 하는 사람은 자기가 그 동안 겪은 경험을 통해서 이러한 말을 하는 것입니다. 세계관 중에는 이처럼 자기가 겪은 경험 속에서 우러나온 것도 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세계관을 상식적 세계관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면 상식적 세계관이란 어떠한 성격의 것일까요? 상식적 세계관은 한 개인 혹은 몇 사람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것이기 때문에 체계적이지 못합니 다. 또한 충분히 생각하고 반성된 것이 아닙니다. 그리하여 동일한 사람이 서로 상반된 행동을 하는 경우 조차 있습니다. 예를 들면, 스스로의 힘으로 자수성가하여 재산을 모은 사람이 매년 사업이 잘되라고 고사를 지내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 사람의 경우 돈을 모은 것은 스스로의 힘에 의해서였고, 자기자신도 돈을 모으기 위해서는 스스로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한편으로는 귀신의 힘을 빌기 위해서 고사를 지내는 것입니다. 이는 서로 반대되는 행동입니다. 이처럼 상식적 세계관은 체계적이지 못하고 심지어 어떤 경우에는 반대되는 행동을 하게까지 합니다.


철학은 어떻게 보면 우리에게 나침반과 같은 구실을 합니다. 우리가 잘 아 는 지역을 간다거나 조그만 산에 가는 경우, 또는 조그만 호수에서 배를 타 는 경우에는 나침반이 없어도 됩니다. 하지만 우리가 전혀 모르는 지역, 아주 높고 험한 산, 또는 넓은 바다로 나가는 경우에는 나침반이 반드시 필요 합니다. 그런데 자석의 N극이 어떤 때는 남쪽을 가리키다가 어떤 때는 동쪽 을 가리키고 또 어떤 때는 북쪽을 가리킨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러한 나침반은 있어봤자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자석의 N극은 항상 북쪽을 가리키고 S극은 항상 남쪽을 가리킬 때 비로소 나침반은 그 효력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올바른 삶을 살기 위해서는 상식적 세계관으로는 부족합니 다. 왜냐하면 상식적 세계관은 체계적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자기가 지금 생활하고 있는 생활범위에서 죽을 때까지 산다면 별문제가 없겠지만 새로운 생활을 한다거나 미지의 세계로 나갈 때, 또는 일관된 생활을 하고자 할 때는 상식적 세계관으로는 충분치 못합니다. 그러므로 체계적 세계관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면 체계적 세계관이면 무엇이나 다 좋을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가장 실감있게 이해될 수 있는 것은, 가끔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고 있는 몇 몇 신흥종교의 경우일 것입니다. 이들 신흥종교의 경우 대부분은 교의라는 형태로 체계적인 골격을 가지고 있으며, 이 종교의 세계관은 이러한 교의에 의하여 이루어져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 종교는 초인간적이고 초자연적인 우상에 의존해 있는 것이며, 결국 인간의 이성을 초월해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들 신흥종교 역시 인간의 이성을 초월해 있다는 점에 그 특징이 있는 것입니다. 즉, 신흥종교는 그 교의에 의하여 이루어진 체계적 세계관을 가지고 있지만 인간의 이성을 초월하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신홍 종교의 세계관은 초인간적인 우상을 기초로 한 세계관입니다. 그러나 철학의 경우에는 인간의 이성이 그 유일한 수단입니다. 즉, 철학은 인간의 이성을 기초로 한 것입니다.


우리가 가져야 할 올바른 철학은 체계적이고 이성적인 세계관입니다.




47. 세계를 어떻게 볼 것인가


TV프로그램중에 동물의 생태에 관한 것이 있습니다. 이 프로그램을 보면 아프리카의 밀림에 살고 있는 동물에서부터 시베리아의 추운 지방에 살고있는 동물에 이르기까지 세계 각지에 있는 여러가지 동물이 나옵니다. 그중에는 풀을 뜯어먹고 사는 초식동물도 있고 다른 동물을 잡아먹고 사는 육식 동물도 있습니다. 호랑이나 사자, 늑대같은 것들이 바로 육식동물이지요.


그런데 사나운 육식동물, 이를테면 사자가 순하디 순한 기린같은 동물을 잡아먹는 장면을 보게 되면 언뜻 이런 생각이 듭니다. 만약 사자나 표범, 호랑이 같은 육식동물이 없다면 저 약한 동물들이 평화롭게 살 수 있을텐데 하는 생각입니다. 약한 동물의 팔다리가 뜯겨지는 끔직한 장면을 보게 되면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러한 생각을 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자나 호랑이, 표범 등과 같은 육식동물이 없어졌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러면 어떠한 상황이 벌어질까요? 이 문제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서는 먼저 다음과 같은 경우를 생각해 보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한 농촌지역이 있었습니다. 그 지역에서는 주민들이 주로 밭농사를 지어서 생활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지역의 주위에는 산이 많아 산짐승이 많았습니다. 특히 멧돼지와 늑대가 많이 있었습니다. 그중에서 늑대는 밤이면 마을 주변에 자주 나타났기 때문에 그 지역의 주민들은 어두워지면 외출을 삼가하고 꼭 외출을 해야만 하는 경우에는 여러 사람이 무리지어 다니곤 했습니다. 해만 지면 문을 걸어 잠그고 외출을 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지역 주민들은 서로 협의를 하여 늑대 사냥을 하기로 하였습니다. 마을의 남자들은 총을 구입해서 산으로 올라갔습니다. 보이는 늑대마다 총으로 쏘아 죽였습니다. 몇일간을 이렇게 하니까 많은 늑대들이 잡혔고 또한 살아남은 늑대들도 다른 곳으로 도망갔습니다. 그리하여 지역 주민들은 이제 밤에도 외출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마을 주민들은 매우 기뻐하였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 이상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자기들이 농사를 짓는 밭이 파헤쳐져 있고 농작물이 없어지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누가 장난을 했으려니 생각했지만 하루 이틀도 아니고, 또한 한 집만이 그런 것이 아니라 대부분의 집이 그러했습니다. 곧 지역주민들은 누가 이런 짓을 하는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밭을 파헤치고 농작물을 가져간 것은 다른 사람의 장난이 아니라 산에서 내려온 멧돼지의 짓이었던 것입니다. 마을 사람들이 늑대를 잡고 쫓아버리고 해서 늑대가 없어지자 멧돼지의 숫자는 급격히 늘어났습니다. 왜냐하면 멧돼지를 잡아먹고 살던 늑대가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해서 멧돼지의 숫자가 급격히 늘어나자 멧돼지들은 먹을 것이 부족해졌습니다. 옛날처럼 산에서 나는 것만으로는 먹고 살 수가 없게 된 것이지요. 그리하여 멧돼지들은 인가에 내려와 농작물을 파먹으면서 밭을 파헤쳐 놓았던 것입니다. 사람들은 늑대로부터 받는 불편 때문에 늑대를 잡아죽였지만, 실은 늑대는 멧돼지를 잡아먹음으로써 농가의 농작물을 보호하는 역할도 했던 것입니다. 즉, 마을 사람들은 인가와 늑대와의 관계만을 생각했지 늑대와 멧돼지, 멧좨지와 인간과의 관계는 생각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러면 본래의 얘기로 돌아가서 만약 육식동물이 없어진다면 어떠한 상황이 벌어질까요? 만약 그렇게 된다면 초식동물의 숫자가 급격히 늘어나서 밀림에 있는 대부분의 풀이나 나무는 없어지게 될 것이고, 산림은 황폐해 질 것입니다. 많은 초식동물이 뜯어먹기 때문이죠. 그렇게 해서도 먹을 것이 부족하면 많은 동물들이 굶어 죽을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끔찍한 장면만을 보고 육식동물이 없어졌으면 하고 바라는 것은 어떻게 보면 잘못된 생각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육식동물이 없어짐에 따라 초식동물이 급격히 늘어나고 산림이 황폐해 지기 때문입니다. 산림이 황폐해 지면 나무가 우리들에게 제공해 주는 산소가 부족하게 되므로 인간도 생활할 수 없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TV에서 보는 동물은 이처럼 서로간에 밀접한 관련*을 맺으면서 살아 갑니다. 또한 인간도 이러한 동물들과 밀접한 관련을 맺으면서 생활하고 있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이러한 관련을 무시하고 사물을 바라본다면 우리는 앞에서 예로 든 지역 주민들처럼 큰 재난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 관련: 관련, 연관, 관계라는 말은 모두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관련이라는 말 대신에 연관, 관계라는 말을 써도 그 의미는 같습니다.




육체와 정신의 경우를 생각해 봅시다. 종교는 흔히 육체와 정신을 분리해버립니다. 육체는 탐욕스러운 것으로 죄악만이 가득한 현실세계에 속하며, 정신은 선만이 가득한 천국의 세계로 향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견해에 따르면 육체와 정신은 서로 대립되는 것으로, 서로 분리되어 있는 것이 됩니다. 그러나 만약 우리의 뇌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정신도 존재할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의 뇌는 우리의 신체, 즉 육체의 일부분입니다. 육체가 있음으로 해서 비로소 정신도 존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육체와 정신은 밀접한 연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심리학(인간의 정신활동을 연구하는 학문)을 공부하고자 한다면 생리학(신체 기능을 연구하는 학문)을 도외시할 수 없습니다. 또한 생리학을 공부하는 경우 이는 생물학(생물일반에 관한 과학)과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기 때문에 생물학을 무시할 수 없게 됩니다. 그러나 생명이라는 것은 그 자체가 화학적 과정을 무시하고서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화학과도 관련성을 갖습니다. 화학은 분자*의 결합과 분해라는 문제를 다루는데 분자는 원자로써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원자를 연구하는 물리학과도 관련을 갖습니다. 또 물리학이 연구하는 여러가지 요소의 기원을 탐구하는 경우 그 요소의 생성을 연구하는 지구과학, 또 지구가 그일부분을 이고 있는 태양계의 연구(천문학)등과도 관련을 갖게 됩니다. 이처럼 여러가지 과학은 상호간에 관련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 분자: 분자란 물질의 화학적 성질을 가지는 최소단위를 말합니다. 따라서 물이란 물분자의 모임이고 산소는 산소분자의 모임입니다. 만약 물질을 분자보다 더 작게 나눈다면 그 나뉘어진 것은 그 물질의 화학적 성질을 나타내지 않게 됩니다.




▪ 원자: 물질의 기본적인 구성요소를 말하며 이는 원자핵과 그 둘레를 도는 전자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사회에 대해서 생각해 봅시다. 사회에는 여러가지 일을 하는 사람들이 함께 생활하고 있습니다. 정치가, 노동자, 학생, 농민, 광부, 어부, 기업주 등이 있으며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여러가지 직종의 일을 하면서 사람들은 생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사람들은 각자 외따로 떨어져서 혼자 사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과의 관련속에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정치가는 정치를 함에 있어서 국민의 여론을 반영하여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국민들의 생각이나 생활에 대해 잘 알아야 합니다. 국민들로부터 분리된 정치라는 것은 생각할 수조차 없습니다. 노동자가 만들어낸 생산물은 상품이라는 형태로서 모든 사람에게 제공됩니다. 만약 섬유공장의 노동자가 파업을 일으켜 옷을 만들어내지 않는다면 많은 사람들이 옷을 입을 수 없게 될 것입니다. 또 광부가 산에서 삭탄을 캐내지 않는다면 우리들은 겨울에 추운 방에서 잘 수밖에 없습니다. 농민이 쌀을 생산해내지 않는다면 당장 먹을 것이 떨어지고 많은 사람들이 배고픔을 겪게 될 것입니다.


이처럼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은 서로간에 밀접한 연관을 가지면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돈만 있으면 무엇이든지 살 수 있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사회의 각 부분에서 일하는 많은 사람들의 도움없이는 생활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인간은 다른 사람들과 연관을 맺으면서 그들의 도움을 받고 또 그들에게 도움을 주면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의 예로 알 수 있는 것처럼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은 상호 관련을 맺으면서 존재합니다. 만약 우리가 이러한 관련성을 무시한다면 우리는 자연이나 인간, 사회에 대해서 올바른 인식을 가질 수 없게 됩니다.


또 다른 예로서 과학사에서 유명한 토리첼리의 실험*을 볼 수 있습니다.




▪ 토리첼리의 실험: 토리첼리(1608~47)는 이탈리아의 물리학자이자 수학자였습니다. 그는 한 끝이 막혀 있는 유리관에 수은을 넣고 다른 쪽끝을 수은이 담겨 있는 그릇에 넣으면 그릇의 수은면보다 약간 높은 곳에서 유리관의 수은면이 정지하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이러한 사실로부터 그는 대기의 압력(기압)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아냈습니다. 이 실험을 토리첼리의 실험이라고 부릅니다.




자연 과학의 역사를 살펴보면 이러한 사물의 관련성을 인식함으로써 위대한 발견을 해 낸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수은을 넣은 유리관을 거꾸로 하여 똑같이 수은을 넣은 그릇에 세워 놓으면, 관 속의 수은은 일정한 높이 아래로는 내려가지 않으며 그릇의 수은면보다 조금 높은 곳에서 멈춥니다. 만약 이러한 현상을 주위의 조건과 분리하여 생각하면 이해하는 것이불가능하게 됩니다. 그러나 반대로 관이 세워져 있는 그릇의 수은의 표면은 주위의 조건과 분리되어 고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대기와 접하고 있다는 것에 주목하여, 관 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과 주위 조건과의 관련성을 생각하게 되면 그릇에 있는 수은의 포면에 대기의 압력(기압)이 가해지기 때문에 관 속의 수은은 어느 일정한 높이에 멈추어 그 이하로는 내려가지 않는 현상을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토리텔리라는 사람은 이처럼 주위 조건과 수은관 현상의 관련성을 인식함으로써 대기의 압력이라는 것을 발견하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관련성을 무시하고 이에 대해 반대의 입장을 취하는 견해가 있습니다. 이 견해에 따르면,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은 각각 고립적으로 분리되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늑대는 늑대고 멧돼지는 멧돼지이며 이들은 서로간에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식의 주장이지요. 그리하여 `스포츠는 스포츠, 정치는 정치’라고 주장합니다. 스포츠와 정치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현실적으로 스포츠와 정치는 아무런 관련이 없을까요? 사실 스포츠와 정치는 다른 것입니다. 분명히 서로 차이가 있고 그 성질이 다르기 때문에 `스포츠는 스포츠, 정치는 정치’라고 말하는 것은 어떤 의미에 있어서는 올바른 것입니다. 하지만 스포츠와 정치는 전혀 관계가 없는 것이고 따라서 스포츠와 정치는 완전히 독립된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잘못된 주장입니다.


만약 국가의 재정이 넉넉치 못하여 운동장 시설이나 수영장같은 것을 건설할 수 없다면 스포츠는 발전할 수 없을 것입니다. 또한 인접국과의 외교적 분쟁이 일어난다면 스포츠를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또 최근에 와서는 스포츠를 통한 외교라는 말을 많이 합니다. 아직 정식으로 국교가 수립되어 있지 않은 국가와 곧바로 정치, 경제에 관한 문제를 다루기는 힘들기 때문에 먼저 스포츠를 통해 두 나라의 관계를 가깝게 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몇년 전 미국의 탁구 선수들이 중공에 가서 중공 선수들과 친선 시합을 하고 이것을 계기로 해서 미국과 중공이 국교를 수립한 것은 그 좋은 예입니다.


이처럼 스포츠와 정치는 전혀 관계가 없는 것이 아니라 상호 관련을 맺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스포츠는 스포츠, 정치는 정치’라는 식으로 양자의 관련성을 무시하는 견해는 현실을 무시한 견해이며 따라서 올바른 견해일 수 없습니다.


사물의 관련성을 부정하는 견해는 똑같은 의미에서 `노동자는 노동자, 정치는 정치’라고 주장합니다. 즉, 노동자와 정치의 차이점만을 강조하고 그 관련성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과연 노동자와 정치는 아무런 관련이 없을까?


우리 나라의 인구를 4천만으로 볼 때 노동자의 수는 약 700만에 이릅니다. 이 숫자는 우리나라에 있는 각 사회계층이 차지하는 인구 비율에 있어서 가장 큰 것입니다. 노동자가 이렇게 많다는 것 그 자체가 정치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정치를 함에 있어서는 노동자들의 생각, 생활상태 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만약 노동자들이 일시에 파업을 일으켜 일하던 손을 멈춘다면 경제가 마비될 것이고 이는 정치적으로 커다란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또한 정치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에 따라 노동자들의 생활도 크게 바뀌게 됩니다. 예를 들면, 1960년대 경제개발계획을 시작하면서 우리나라의 가장 중요한 산업의 하나로서 섬유산업이 적극 권장되었기 때문에 오늘날 농촌에서 올라와 도시의 섬유공장에서 일하는 여자 노동자의 수가 급격히 증가했던 것입니다.


이처럼 노동자와 정치는 상호관련을 맺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관련성을 무시하고 노동자와 정치의 차이점만을 강조하는 견해는 `노동자는 노동자, 정치는 정치’라고 말하게 됩니다. 즉, 노동자는 노동자고 정치는 정치다, 노동자와 정치는 별개의 것이다, 노동자가 정치에 관심을 갖는 것은 분수를 모르는 것이다, 노동자가 할 일은 공장에서 열심히 일해 물건을 만들어 내는 것이니 쓸데없이 어려운 정치에 관심을 갖지 말고 일이나 열심히해야 된다는 주장입니다. 그러나 노동자와 정치는 현실적으로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으므로 노동자와 정치가 전혀 별개의 것이라는 주장은 잘못된 것입니다.




다음의 이야기는 우리들에게 가르쳐 주는 바가 많습니다. 이 이야기는 1945년 2차대전 당시 일본의 나가사끼에 떨어진 최초의 원자폭탄 제조에 참가했던 미국의 과학자 존 힐튼의 말입니다.


“나는 나가사끼에 투하된 최초의 원자폭탄을 제조하는 데 스스로 직접 참가한 사람입니다. 지금은 깊은 반성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놀랄 만한 파괴력으로 수많은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 버린 끔찍한 폭탄의 제조에 내 자신이 참가한 것에 대해 부끄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해서 내가 원폭제조라는 일을 맡게 되었는가 하는 문제를 생각해 보면 그것은 내가 `과학을 위한 과학’이라는 잘못된 철학을 믿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철학은 근대 과학의 독소입니다. 과학을 사회생활이나 인간으로부터 분리하여 생각했기 때문에 나는 전쟁중에 원자폭탄의 제조에 참가하였던 것입니다. 우리 과학자는 `순수과학’에 헌신해야만 한다, 그 나머지는 기술자나 정치가의 일이다 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과학은 인류의 이익에 보탬이 될 때에만 의미가 있는 것이다라는 사실을 깨닫기 위해서 나에게는 히로시마와 나가사끼의 수많은 사람의 죽음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원자력이라는 것은 그것을 평화적으로 이용하면 인류에게 커다란 이익을 자져다 줍니다. 원자력 발전소라든가 원자력을 이용한 질병 치료같은 것이 그 좋은 예입니다. 하지만 원자력을 이용해서 폭탄을 만드는 경우 그것은 지구상에 있었던 그 어떤 무기보다도 훨씬 큰 파괴력으로 수많은 사람의 목숨을 앗아갑니다. 오늘날 미국이나 소련이 앞다투어 핵무기를 만드는 것은 인류의 미래를 생각할 때 매우 불행한 일입니다. 만약 이러한 핵폭탄이 일시에 터진다면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물은 없어질 것입니다. 풀 한 포기 살아남지 못할 것입니다.


존 힐튼은 이러한 원자폭탄의 제조에 자신이 참가하게 된 동기가 `순수과학’이라는 미명하에 과학을 사회나 인간으로부터 분리하여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실 과학은 사회나 인간에 대해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이처럼 과학의 의미도 사회나 인간과의 관련성속에서 파악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말한 바와 같이 모든 사물은 상호 관련을 맺고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이러한 관련성을 무시한다면 우리는 올바른 인식을 가질 수 없게될 것이고 나아가 현실에 대하여 잘못된 태도와 행동양식을 갖게 될 것입니다.


48. 단군신화 - 서사 문학 바탕 이룬 웅녀의 극기


(이 자료는 한국일보에 76년 6월 초부터 77년 3월말까지 연재된 내용입니다.)


대담: 이어령, 장덕순




춘향전의 춘향이도 옥에 갇히고 그 시련을 이겼을 때 이도령의 참된 배필이 되지요. 심청이는 임당수에 몸을 던졌을 때 재생하여 심황후가 되지요. 흥부는 놀부의 집에서 떠나 자기 움막에서 고난을 겪고 비로소 부자로 재생하지요. 춘향전의 「옥」, 심청전의 「임당수」, 흥부전의 「움막집」 … 이 모두가 곰의 상태와 같은 원형이 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어요.




이 = 「단군할아버지」 - 이렇게 우리는 아득한 신화의 한 주인공을 아주 가깝고 정다운 말로 부르고 있지요. 마치 우리 곁에 살고 있는 혈육처럼 말입니다. 단군이 실존 인물이냐, 아니냐 하는 사실보다, 어째서 모든 것이 과학화한 오늘날에도 그 신화가 여전히 우리에게 그토록 가깝게 느껴지는가를 밝히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일 것 같습니다.


장 = 그동안 우리는 「단군신화」를 역사적으로 풀이하기도 했고, 종교적인 신앙으로 믿어오기도 했지만 사실 신화 자체의 의미와 문학성으로 풀이해 보려고 한 것은 극히 최근의 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단군신화」의 구조는 우리나라 서사문학의 총본산이고 특히 영웅서사시에 계승되어 있는 원초적인 문학 작품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 그러니까 단군은 역사적으로 볼 때에는 국조(國祖)가 되지만 문학적으로 볼 때에는 한국문학의 원조가 된다고 할 수 있겠지요. 역사책에는 단군을 뺄 수 있을지 몰라도 한국사상사나 문학사에서는 절대로 삭제할 수가 없지요. 왜냐하면 그 신화에는 한국인이 어떤 마음과 어떤 상상력을 가지고 자신의 삶의 원초상이 드러나 있기 때문이죠.


장 = 「단군신화」는 승(僧) 일연이 쓴 고려 때의 「삼국유사」에 나오는 것이지만 그보다 앞서 씌여진 「구삼국사」(13세기 때까지 전해왔지만 현존하지 않음)나 아주 오랜 옛날부터 구전되어 온 흔적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겉보기에는 황당무계한 것 같은 이야기가 수천년을 계속해서 전해 내려왔다는 것은, 분명 그럴만한 가치와 이유가 있었다는 방증이 아니겠습니까?


이 = 비단 우리의 경우만이 아니라 세계적으로 신화는 「우주」나 「나라」나 「인간」이나 그것이 어떻게 만들어졌는가의 창조 모티브에서 발생하고 있지요. 삶의 근원은 탄생이니까! 태어난다는 것, 그것을 해명하려는 것 - 여기에서 인간의 모든 의식도 함께 눈을 뜨는 것이지요.


장 = 「단군신화」는 건국신화이자 탄생신화에 속하는 것으로 둘다 다 탄생에 관계된 이야기로 볼 수 있지요. 단군이라는 한 인간의 탄생과 고조선이라는 한 나라의 탄생 … 그러고 보면 그에 앞서 구약의 창세기와 같은 우주창조의 개벽신화가 있었을 것입니다.


이 = 「우주(자연)창조」 → 「인간창조」 → 「역사(국가)창조」의 세 단계로 볼 때 「단군신화」를 분류해서 본다면 「단군신화」는 세 번째 단계에 속하는 후기적인 신화라고 할 수 있지요. 그러나 그 대상이야 어쨌던 태어난다는 창조의 발상법은 모두 같습니다. 즉 하늘은 아버지고 땅은 어머니인데 하늘과 땅이 결혼하여 만물을 낳는다는 창조신화의 원형 말입니다. 인간은 남녀의 성적 결합에서 아이를 낳습니다. 아버지 어머니에서 아들이 태어나지요. 그런데 이러한 인간적 성경험이 보다 넓은 외계와 접촉하는 자연의 경험과 합쳐질 때 바로 그러한 신화체계가 생겨납니다. 땅에 씨앗이 떨어집니다. 만약 하늘에서 햇빛과 비가 내리지 않으면 싹이 트지 않지요. 식물이 태어나 자란다는 것은 하늘과 땅의 성적 교섭으로 본 것이지요. 어메리컨 인디언들은 흙을 위대한 어머니의 자궁으로 보았고 하늘에서 비가 내리는 것을 성행위로 봅니다. 희랍신화에서는 우라노스(天- 아버지)와 게아(地- 어머니)가 결혼하여 그 사이에서 만물이 태어나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구약 창세기에서도 흙 속에 신의 입김(天)을 불어넣어 인간을 탄생케 합니다.


장 = 「단군신화」는 천상상제(天上上帝)의 서자(庶子) 환웅이 하늘에서 하강하고 웅녀와 결혼하여 단군을 낳습니다. 天과 地(곰)가 합쳐서 고조선의 나라를 만든 왕을 낳은 것이니까, 하늘 = 아버지, 땅 = 어머니의 원형이 그대로 드러난 것이라 할 수 있지요. 비범한 영웅들의 탄생은 모두 부계가 하늘이거나 애매한 것으로 되어 있지요.


이 = 그러므로 「단군신화」는 천·지·인의 삼재(三才) 사상을 원형으로 한 전형적인 신화이고 그 신화 속에는 하늘과 땅의 두 질서를 융합한 조화의 핏줄을 가진 인간이 나라를 다스리는 왕이라는 생각을 낳게 된 것이지요. 왕이라는 글자는 석 삼(三)자를 가로 연결 「│」한 것인데 그것은 천· 지· 인의 세 질서를 통합하는 힘을 나타낸 것이라 합니다. 결국 신화라는 것은 인간이 인간만의 영역에서 갇혀 있지 않고 우주와 결합하여 자신을 완성시키려는 동질성의 추구라 할 수 있습니다.


장 = 환웅이 하늘에서 내려올 때 풍백(風伯), 우사(雨師), 운사(雲師)들을 거느리고 삼천명의 부하와 함께 땅으로 내려왔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늘에 속해 있는 비바람 구름을 나타낸 것이고 환웅은 인간의 생존에 필요한 이 모든 기상을 조종하는 능력을 지닌 신이지요. 환웅이 지상으로 내려온 것은 홍익인간, 즉 인간을 이롭게 하기 위해서였으니까 하늘과 땅의 화합을 의미하는 것이고, 그것은 곧 천과 지를 인간의 부모처럼 본 것이지요.


이 = 그러니까 오늘날 천지를 오염시킨 공해는 불효가 되는 것이지요.(웃음) 그런데 환웅이 내려온 장소가 삼위태백(三危太伯)이라는 산의 신단수 아래로 되어 있는 것도 재미있습니다. 하늘과 땅을 연결시켜 주는 것으로 솟아 하늘과 맞닿은 장소이고 나무 역시 수직적 자세로 하늘을 향해 뻗어올라갑니다. 네발로 기어 다니는 동물들은 수평자세이지만 수목은 뿌리를 땅에 박고 있으면서도 그 가지는 하늘을 향해 수직으로 올라가고 있지요. 그러므로 수목은 하늘과 땅을 이어주는 사다리 구실을 합니다. 그런 점에서 신단수는 하늘과 땅(곰)의 결합에서 생겨난 단군의 예시적 이미지로 볼 수 있어요.


장 = 나무가 토착종교에서 신의 매개체로 숭앙받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지요. 새마을 운동으로 농촌풍경이 많이 변했지만 동리마다 으레 몇백년 묵은 거목이 남아 있는 것은 예나 마찬가지이지요. 신단수 밑에 환웅은 도시를 세웠는데 이 신들의 마을을 상징하는 나무가 오늘날에도 토착종교로 남아 있는데 아마 이것은 전세계에 퍼져 있는 민간신앙일 것입니다.


이 = 그것을 「세계수(world tree)]라고들 부르지요. 유한한 땅에 살면서도 무한한 하늘을 그리워하는 마음, 사람들은 그 인간의 마음을 나무에서 본 것이지요. 그래서 끝없이 하늘을 향해 성장해 가는 나뭇가지는 오늘날의 문학작품에서도 신화의 세계수 같은 그런 상징으로 쓰이고 있어요. 그런데 포르네시아의 신화를 보면 하늘과 땅이 너무 열렬히 사랑해서 서로 떨어지지 않자 지상의 생물들은 어둡고 숨이 막혀 고생을 하죠. 그러자 큰 나무가 자라 하늘과 땅을 떼어놓았다는 것입니다. 나무는 전지의 결합만이 아니라 때로는 기둥 역할로써 분리의 의미고 같습니다.


장 = 우리는 하늘과 그 중간인 나무와 산을 이야기 했는데 땅을 봅시다. 땅에는 호랑이와 곰이 살고 있었고 그것들이 다같이 인간이 되고자 기원을 했다고 되어 있습니다. 신의 아들도 인간세계를 탐하였고 곰도 인간이 되려고 했어요. 「단군신화」는 그런 점에서 인간 중심적인 신화라 할 수 있겠지요. 신이 하늘을 대표하고 곰과 호랑이가 지상의 동물들을 대표한다면 인간은 이 우극(雨極)의 중간자이고 이 인간에 의해서 하늘과 땅은 서로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이 = 신과 동물이 다 부러워하는 존재, 이것이 인간이었지요. 서구인들은 말하자면 파스칼같은 사람들은 인간을 「단군신화」처럼 신과 동물의 중간적 존재로 생각했지만, 결론은 정반대입니다. 한가운데 있기 때문에 인간은 불안하며 비참한 것입니다. 양쪽으로 찢기는 고통, 인간만이 그런 운명에 있지요. 그런데 우리는 양극에 놓인 이 한가운데의 존재를 도리어 화합과 안정으로 보고 있습니다. 더구나 곰과 호랑이 가운데 참을성이 많은 곰만이 성공을 했다는 것은, 호랑이같은 야성(野性)의 힘에 인간의 가치를 두지 않고 인내심이라는 내적인 정신 속에 동물과 다른 인간성품의 기본을 두었다는 뜻이 됩니다. 한국고전작품을 봐도 모두가 생에 성공한 인물들은 호랑이같은 힘센 영웅이 아니라 곰과 같은 극기의 성자들이 아닙니까.


장 = 한국문학작품의 인물원형을 역시 따지고 보면 곰계와 호랑이계로 나뉘어지지요. 악역은 모두가 호랑이처럼 앙칼지고 힘이 있고 민첩합니다. 그러나 사랑받는 주인공은 처용, 영재, 흥부, 사씨부인, 춘향이 모두가 곰처럼 끈기있게 참고 견디어 끝내는 행복하게 됩니다.


이 = 인물형도 그렇지만 「단군신화」는 곰이 웅녀가 되어 시집가서 애를 낳는다는 이야기인데 그 과정은 우리 서사문학의 원형적인 줄거리라 할 수 있지 않습니까?


장 = 곰은 환웅에게 두 가지 소망을 나타내지요. 인간이 되게 해달라는 것과 애를 낳게 해달라고 말입니다.


이 = 웅녀가 환웅에게 애를 낳게 하달라는 장면은 주목할 만한 대목입니다. 여자가 남자에게 노골적으로 유혹을 합니다. 사실 서동요에서도 그렇고 춘향전의 이도령도 그렇고 남자가 여자에게 우애를 하는 것이 옛날의 풍속인데 웅녀만은 그렇지 않았어요. 사랑의 적극성을 보인 아주 맹렬여성이죠.(웃음) 그점으로 「단군신화」는 일본의 「이시나미노미꼬도」의 신화처럼 모계사회 시대의 경험이 반영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장 = 그렇죠. 그 신화에서도 여신이 먼저 남신을 보고 「당신 참 아름답군요」라고 말하면서 접근하지요. 그 때문에 아이를 잉태하지 못하자 남신이 불평을 하죠. 여자가 먼저 나서서 그렇다고요. 이번에는 내가 먼저 하겠다고(웃음) 그래서 일본의 국토를 낳게 되지요.


이 = 그러니까 「단군신화」를 이니시에이션 스토리로 풀이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문화인류학자, 가령 슐츠같은 학자는 인간의 연령계제(年齡階梯)의 원초적인 기본형태를 (A) 미성숙의 아이들 (B) 성숙한 남녀 (C) 기혼 남녀로 구분하고 있지요. 누구나 사람은 이 세 단계를 거쳐야 하는데 (A)에서 (C)로 넘어가는 단계 즉 아이가 어른들의 사회에 들어오기 위해서 겪는 과정을 이니시에이션(入社)이라고 부르지요.


장 = 우리나라의 풍속에도 관례(冠禮)라는 것이 있었지요. 일정한 성년의 나이가 되면 의복, 호칭, 두발 모두가 달라지지요. 이 성년식을 통해서 사회의 한 성원으로 참가합니다. 옛날 사회에서는 성년식이란 게 까다로왔지요. 일정한 시련을 겪어야 하는 의식을 치러야만 했습니다.


이 = 그래서 곰이 동굴 속에 들어가 웅녀가 된다는 것은 그러한 성년식의 체험을 나타낸 이야기를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곰의 상태는 (A) 미숙한 아이에 해당하는 것이고 마늘과 쑥을 먹고 어두운 동굴 속에 갇혀 금기의 시련을 겪는 것은 바로 (B)의 성년식, 그리고 그것을 극복하고 웅녀가 되었다는 것은 결혼 자격을 구비한 신부가 된 상태라 할 수 있습니다.


 장 =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단군신화」는 남자의 결혼식 이야기로 볼 수 있으니까 이니시에이션의 원형을 담고 있다고 할 수 있겠군요. 동굴 속에서 햇볕을 보지 맑고 백일을 금기하라는 것은 신부가 첫날밤을 지내는 신방같은 것이라 할 수 있구요.


이 = 실제로 아프리카의 어느 종족들은 여자가 성년기에 접어들어 결혼을 하려면 「단군신화」의 동굴처럼 돼지울 같은 데다 가두어 둡니다. 수개월 동안…… 그래서 그곳 신부들은 전부 살이 쪄 있는 것이 관례라고 합니다. 아이가 어른이 된다는 것은 결국 새사람으로 태어난다는 뜻이 되지요. 죽어야 재생을 합니다. 태양이 떨어졌다 다시 떠오르고 겨울에 죽었던 식물이 봄에 다시 살아나는 것처럼 이니시에이션은 하나의 죽음을 지나는 것이지요. 그래서 새로운 생명으로 죽 어른이 되어 결혼생활을 하게 되는 거구요.


장 = 그렇게 보면 곰이 동굴의 어둠 속에서 고난을 겪는다는 것은 상징적인 죽음의 세계에 들어가 웅녀로 환생하는 즉 신부가 되는 재생 모티브를 나타낸 것이라고 하겠지요.


이 = 「아버지」는 「남편」으로 「어머니」는 「아내」로 대처(對處)되는 생활이 결혼 생활이니까 결국 아버지 어머니로부터 떠나야만 사람은 어른이 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이니시에이션의 원형은 「격리(隔離)」라든가 구약성서의 탕자 이야기처럼 집을 나가 「여행」을 한다거나 시련이나 일정한 어려운 과업을 치르는 상징적인 사건을 포함하게 되지요. 동굴 속에 갇힌 곰의 이야기는 그러한 고대의 성년식을 반영한 것이고 곰이 웅녀로 바뀌었다는 것은 아이가 어른이 된 상태, 즉 새로운 생명으로 재생되는 과정을 나타냈다고 풀이될 수 있습니다. 사실 「동굴」이라는 것은 정신분석학에서는 여자의 자궁을 상징하는 것이기도 하니까요.


장 = 마늘과 쑥을 먹으라고 한 것도 따지고 보면 이것이 다 일종의 정력강장제로서 고대문헌을 보면 여성생리의 특효약이라 할 수 있지요. 쑥은 여성갱생의 비약(秘藥)으로 성욕을 북돋우니 근육이 새로워지고 그렇게 되어 자식을 낳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 요즈음 TV 같은 데서 한창 선전하고 있는 정력강장제는 「단군신화」와 함께 시작된 것이군요.(웃음)


장 = 아이가 어엿한 어른이 되는 과정이나 짐승의 상태에서 인간의 상태가 되는 과정이나 따지고 보면 같은 것이지요. 고난을 참고 견뎌야만 새 생명을 얻고 재생할 수 있다는 …….


이 = 쑥과 마늘은 달콤한 음식이 아니라 쓴 약이지요. 언뜻 보기에 먹기 역겨운 음식이지만, 이것을 참고 먹으면 도리어 인간에게 새 활력을 주듯이 고난의 의미 역시도 그렇게 해석한 것이지요. 어둠의 동굴을 피하지 않고 그것을 스스로 받아들일 때 곰은 새 생명을 얻게 됩니다. 한국인은 재생의 광명을 도리어 고난의 어둠 속에서 구하려던 것이지요. 그리고 그것이 어른일 되는 길이요, 참된 인간이 되는 길, 무엇인가를 창조(아이를 낳는)하는 힘이라고 말입니다.


장 = 인간이 통과해야만 될 어둠, 고립, 시련 그것을 곰이 웅녀로 바뀌는 그 과정으로 보여주고 있는 「단군신화」는 한국서사문학의 중요한 플로트가 된다고 할 수 있구요.


이 = 춘향전의 춘향이도 옥에 갇히고 그 시련을 이겼을 때 이도령의 참된 배필이 되지요. 심청이는 임당수에 몸을 던졌을 때 재생하여 심황후가 되지요. 흥부는 놀부의 집에서 떠나 자기 움막에서 고난을 겪고 비로소 부자로 재생하지요. 춘향전의 「옥」, 심청전의 「임당수」, 흥부전의 「움막집」 … 이 모두가 곰의 상태와 같은 원형이 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어요.


장 = 물론 종교적으로 보려는 사람도 있지요. 곰을 수신(獸神)으로 보는 ……. 한국의 토템 사상 말이지요. 그리고 곰과 호랑이가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수렵생활을 하던 우리의 조상들 이야기로 볼 수도 있지요.


이 = 신화는 복합적으로 보아야겠지요. 아이누족들은 지금도 「곰」제를 지내는데 아이누 말로 곰은 「가무이」 즉 일본어의 신(가미)과 같은 말입니다. 어쨌든 우리는 「단군신화」를 통해서 천, 지, 인의 융합, 그리고 고난을 극복하므로 재생에 이르는 한국인의 사상이나 문학의 원형을 찾아볼 수 있을 것입니다.


장 = 인간은 그냥 인간이 되는 것이 아리나 고난을 통해 완성해 가는 것이라는 그 굵직한 상징은 오늘날의 우리에게도 귀중한 암시를 주는 이야기지요.


49. 안락사, 허용해야 하나




안락사란?


안락사(安樂死: euthanasia)


죽음이 절박한 병자가 고통이 심할 때에 그 고통을 제거하여 안락하게 죽게 하는 일. 안사술(安死術)이라고도 한다. 안락사에는 자연의 사기(死期)를 앞당기지 않는 경우와 앞당기는 경우가 있다. 특히 후자에 대해서는 고래(古來)로 종교 도덕 법률 등의 입장에서 당부(當否)가 논쟁되어 왔다. 또 문학 작품 중에도 자주 등장하여 T 모어의 <유토피아>와 마르탱 뒤가르의 <티보가의 사람들>에도 나타나 있다.


자연의 사기를 앞당기는 안락사에 대해서는 그것이 살인죄 또는 촉탁살인죄의 범죄를 구성하는지 어떤지가 논쟁되고 있다. ① 사기(死期)가 확실히 절박할 때, ② 심한 육체적 고통 때문에 죽음 이외에는 그 고통을 제거할 방법이 없을 때, ③ 본인의 참뜻에 의한 동기가 있을 때, ④ 방법이 부적당할 때 등을 조건으로 하여 범죄의 성립을 부정하는 입장과, 형은 가볍게 하더라도 범죄는 성립한다는 입장이 대립하고 있다. 법원에서의 판례(判例)의 입장은 아직도 분명하지 않다.


동아세계대백과사전 604쪽




안락사(安樂死: euthanasia)


자비로운 살인(mercy killing)이라고도 함. 고통스러운 불치병이나 신체질환으로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을 고통없이 죽음에 이르게 하는 행위나 처지. 대부분의 법적 체계에는 이에 대한 특별한 조항이 없기 때문에 환자 자신에 의해 행해진 경우는 자살로, 타인에 의한 경우는 타살로 간주된다. 그러나 의사는 고통이 매우 심한 경우에는 생명을 연장시키지 않도록 합법적으로 결정할 수 있다. 즉 환자의 수명을 단축시킬 가능성이 있기는 하지만 환자의 고통을 경감시키는 약제를 투여할 수 있다. 20세기 후반에 여러 유럽 국가들은 안락사로 기소된 경우에 관대한 처벌과 정상을 참작한다는 특별한 조항을 형법에 두고 있다.


안락사가 도덕적으로 허용될 수 있다는 견해는 소크라테스, 플라톤, 스토아 학파로 거슬러 올라간다. 전통적인 크리스트교 신앙에서는 살인을 금지하는 6번째 계명에 위배되기 때문에 이를 반대한다. 안락사를 합법화하기 위한 조직적인 운동은 영국에서 1935년 C. K 밀라드가 후에 안락사협회로 불렸던 <안락사 합법화를 위한 자발적인 모임>을 만들면서 시작되었다.


이 모임의 법안은 1936년 미국 상원에서 부결되었으며, 1950년 같은 논제에 대해 상원에서 재차 제안되었다. 미국에서는 1938년 미국안락사협회가 설립되었다. 현대의학이 점차 기술적 수단을 동원하여 생명을 연장시킬 수 있게 되자, 특히 환자가 선택을 할 수 없는 경우에 극단적인 정신적 신체적 고통을 당하고 있는 환자의 가족과 주치의가 무엇을 결정해야 하는가라는 문제가 제기되었다. 수동적으로 생명을 연장시킬 수 있는 아무런 조치도 하지 않거나 생명을 보조 해주는 기구들을 제거하면 의사들은 범죄행위로 고소를 당했고, 반면에 의식이 없는 분명한 말기 환자의 가족들은 생명 유지를 위한 특별한 기구들의 사용을 중단시키게 만드는 의학제도에 반대하여 법적인 행동을 시작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안락사는 일부 의료계에서 받아들여지고 있으나, 법의 해석 및 윤리, 종교상 견지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를 안고 있는 실정이다.


50. 직접적인 안락사와 간접적인 안락사


T.샤논/J.디지아코모 지음


황경식/김상득 옮김 생의윤리학이란?


서광사, 1988) 79쪽에서 81쪽에서


직접적인 안락사


많은 사람들은 안락사를 용인하게 되면 수많은 사회적 혼란과 비도덕적인 관행이 야기되지 않을까를 두려워하고 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이 논의를 임신중절에 관한 논의의 부산물로 간주하기도 한다. 즉 달갑지 않은 어린 아이를 출생 전에 제거하는 것이 허용된다면, 생산 능력이 없는 달답지 않은 노인이나 환자들을 죽이는 것을 금지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이에 대해 어떤 사람들은 직접적인 안락사는 그 환자의 요청 여부와는 상관없이 항상 나쁘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신이 창조주이므로 신만이 생명과 죽음에 대한 완전한 지배권을 가지며, 인간은 이 세상에서 어는 정도의 책임감을 갖고는 있지만, 어떠한 이유에서라도 인간의 지배가 생명을 죽이는 데까지 확장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간섭에 의해 사람을 죽이는 것에 반대하는 도덕적인 여론은 항상 있어 왔고, 또한 이는 대학살 ― 이는 결코 또다시 허용되어서는 안된다. ― 에 대한 쓰라린 기억에 의해 지지되어 왔다.


또한 어떤 사람들은 직접적인 안락사를 허용하면 남용의 가능성이 너무 크다고 두려워한다. 즉 만약 오늘 소생할 희망이 없는 어떤 고통받는 환자를 구원해 주기 위해 그를 죽인다면, 이는 후에 어떤 사람이 귀찮고 ‘쓸모없는’ 인간을 죽이는 것을 허용하는 선례로 사용되어질 것이다. 게다가 직접적인 안락사에 반대하는 논증의 근거를 생명의 존엄성과 무고한 자의 살인 금지라는 전통에서 찾는 많은 종교적인 증거들도 있다. 또한 어떤 사람들은 환자를 위해 다른 사람에 의해 이루어지는 직접적인 안락사는 살인이므로 윤리적 법적으로 모두 금지되어야 한다고 단순하게 주장하기도 한다. 물론 자비로운 살인자에 대한 그 어떤 고발도 성공한 적이 없다 해도 이들은 모두 옳다.


마지막으로 환자 이외의 다른 사람에 의한 직접적인 안락사가 허용된다면, 이러한 역할의 담당자는 담당 의사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죽이는 것이 아니라 치료하는 것을 의사의 소명으로 여겨온 의료 전문인의 전통에 어긋난다. 만약 이렇게 되면, 환자와 의사의 관계에 있어서 신뢰라는 중요한 요소에 어떤 일이 일어나겠는가? 다시 말해 중병을 알고 있는 환자는 의사가 직접적인 안락사를 도울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면, 의사로부터 치료받기를 거부할 것이다.


다른 한편 직접적인 안락사를 찬성하는 논증들도 몇 가지 있다. 만약 어떤 환자가 불치의 병으로 고통받고 있다며, 그의 죽음은 어차피 불가피한 것인데, 왜 나중에 죽는 것보다 지금 죽는 것을 선택하지 않는단 말인가? 즉 환자의 고통이 심하거나 환자가 회복될 수 없는 혼수 상태에 빠져 있고, 고통을 진정시키는 약을 사용하는 것 이외의 어떤 치료 방법도 없을 때, 왜 그 고통과 비참함을 종식시킬 수 없는가? 이러한 상황에서는 환자의 가족도 고려되어야 한다. 불치의 병과 그 질병의 치료는 개인적으로 엄청난 고통을 야기시키고, 그 가족에게 경제적으로 큰 부담을 가져다 준다. 즉 친척들은 사랑하는 사람의 소생을 희망할 수도 없고, 도 그에게 도움이 되는 그 어떤 것도 할 수 없기 때문에 그들 자신도 죽어가는 사람이 받아 온 만큼의 고통과 괴로움을 느낄 것이다. 또한 의료 행위의 비용이 하늘을 치솟을 만큼 엄청나기 때문에 그 환자의 가정과 재산이 파괴될 수도 있다. 그러나 다른 가족 구성원에 대한 고려는 공정성과 정의의 문제를 야기시키는 때문에 무시되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신체적 삶 그 자체는 최고의 선이 아니라고 진지하게 논의되기도 한다. 오히려 신체적 삶은 사랑, 우정, 사회화 등과 같은 모든 가치를 구현해 주는 선결 조건이 될 때에 한해서만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직접적인 안락사는 그 환자의 상황이 중요한 인간적인 가치의 성취를 불가능하게 만들기 때문에 정당화된다.




간접적인 안락사


치료 행위를 거부하거나 이미 시작된 치료를 중단하면 또 다른 문제들이 생겨난다. 간접적인 혹은 소극적인 안락사로 알려진 이러한 행위를 대부분의 사람들과 종교적인 가르침은 용인하고 있다. 이에 대한 정당화는, 우리는 단지 일상 치료 수단을 사용할 도덕적인 의무가 있으며 또한 특수 치료 수단의 사용을 거부할 수도 있다는 전통적인 원칙에 바탕을 두고 있다. 특수 치료 수단이란, 환자나 그 밖의 관련된 다른 사람에게 지나친 비용이나 고통 혹은 다른 불편함을 야기시키지 않고서는 얻을 수도 사용될 수도 없거나, 아니면 설사 사용된다 해도 합리적으로 기대할 수 있는 효과를 얻을 수 없는 약, 치료, 수술 등을 말한다.


적절한 예를 하나 들어보자. 즉 방광염으로 죽어가고 있는 7살 난 소년을 생각해 보자. 기적이 없는 한, 이 아이는 단지 몇 달밖에 살지 못할 것이라고 담당 의료진들은 말한다. 2주일 전에 이 소년은 심한 호흡 장애를 일으키면서 이 병원을 찾아 왔다. 그리고 지난 6개월 동안 그러한 장애를 다섯 번이나 겪었다. 이 소년은 지난 2년 동안 병원을 드나들었다. 그의 병세는 기관지 감염, 폐농양, 전반적인 염분 고갈증 등의 합병증에 의해 더욱 악화되어서, 그에게 페니실린 요법과 정맥 주사에 의한 염수 보충이라는 처방이 내려졌다. 게다가 기종과 기관지 폐렴이 이 소년의 병세를 급속하게 악화시키고 있다. 이 소년의 담당 의료진은, 비록 어려운 일이지만 때때로 희망을 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 기관지경 검사법을 그 소년의 사람은 어떻게 죽어가는가


51. 미국에서의 안락사 논쟁


“말기 환자에 극약 처방권” 입법


美서 또 안락사 논쟁


(경향신문, 94. 11. 27)




오리건주 「의료법16조」 통과


치료 포기 수단 남용 소지, 연방 법원에 위헌 청구소 제기/반대


암암리에 성행 양성화 바람직, 투약 여부는 환자에 맡겨/찬성




미국에 안락사 논쟁이 또다시 불붙고 있다.


미 오리건주는 지난 8일 주민투표를 통해 치유 가능성이 없는 환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도록 의사가 극약 처방을 해주는것을 허용하는 주 의료법 제16조(Measure 16)를 통과시켰다.


오는 12월8일부터 시행될 예정인 이 법에 대해 오리건주 당국은 말기 환자에 대한 의사의 극약 처방권만 인정하고 실제 투약여부는 환자 스스로에게 맡기도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안락사 허용과는 다르다고 설명하고 있다.


제16조의 시행규칙에는 의사의 극약처방을 위해서는 환자가 6개월 이상 살수없다는 2명이상의 의사 진단서와 환자 자신의 처방요구서를 반드시 첨부하도록 하고있다.


그러나 로마 교황청은 『인간 생명의 존엄성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라고 격렬히 비난하고 있고 미 카톨릭 주교단도 미국내에 있는 1천2백개 카톨릭 병원에 대해 의사의 자살방조 행위를 철저히 규제하라는 성명을 발표하는 등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미국내의 의사와 시민들로 구성된 많은 단체들도 이 조항에 반대하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으며 오리건주의 일부 의사들은 24일 미연방법원에 위헌청구소송을 제기했다.


반대론자들은 위헌심사 청구 이유서에서 『제16조가 의사로 하여금 가족들에게 알리지않고 환자의 자살을 도울수 있도록 허용함으로써 환자에 대한 치료 포기수단으로 남용될 소지를 안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이 조항은 오리건주에 거주하는 주민들에게만 시행하도록 규정돼있으나 고통에 시달리는 시한부 환자들이 합법적인 자살을 위해 미전역에서 오리건주로 몰려들 우려도 있다는 것이다.


미국내 많은 의료인 단체들도 『16조 규정대로 환자의 연명기간이 6개월밖에 남지않았다는 객관적인 판정을 내리기가 어려우며 환자의 투병의지 여하에 따라 이따금씩 일어나는 기적적인 치유현상을 원천적으로 불가능하게 하는것』이라며 반대론에 가세하고 있다.


오리건 주당국과 제16조를 입안한 호스피스 전문의들은 『의사에게 자살을 할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요구하는 말기환자가 전체의 2%정도에 불과하기 때문에 반대론자들이 주장하는 부작용은 나타나지 않을것』이라고 주장한다.




미국내 진보적인 성향의 의사들은 『절망적인 환자들에 대한 의사의 자살방조행위가 법적으로만 금지돼있지 실제로는 암암리에 행해지고 있으므로 차라리 적절한 규제를 통해 양성화하는 것이 합리적』이라며 16조의 시행을 지지하고있다.


위헌심사권을 갖고있는 미대법원 판사들도 이 문제에 대해서는 찬반양론으로 갈려있다.


현재까지의 미대법원 판례는 의사의 안락사 행위는 물론 이에 준하는 환자에 대한 의사의 자살방조행위까지 헌법위반으로 판시하고 있다.


미연방법원은 16조에 대한 위헌여부 판정이전인 다음달 8일까지 보류명령을 통해 법조항의 시행을 일단 연기한뒤 위헌심사에 착수할 것으로 보인다.


주민들의 찬성으로 통과된 오리건주의 의료법 제16조에 대해 연방법원이 어떤 결정을 내릴지 주목된다.<워싱턴=이종연특파원>




무뇌아와 안락사


(세계일보, 92. 4. 16)




의료 윤리면에서 미개척 영역이라고 할 수 있는 안락사문제가 요즘 또다시 격렬한 논의의 대상으로 부각되고 있다.


워싱턴주는 지난해 일반투표에서 아주 근소한 표차로 「무고한 사람을 죽이는」 안락사를 합법화시키지 못했다.또한 데릭 험프리가 쓴「자살하는 법」이라는 소책자는 현재 베스트셀러 대열에 끼여 있다.


점차 많은 수의 미국인이 더 이상 살고 싶어하지 않는 사람들의 자살행위에 대해 관용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실제로 의료윤리학의 선각자들은 불치병 환자들의 경우 환자 자신을 위해서라도 안락사가 더 편하다고 주장해 왔다.하지만 지난주 이보다 더 복잡한 성격을 띤,환자 자신이 아니라 타인을 위해 무고한 한 생명을 고의적으로 단축시키려 했던 사건이 발생했다.


뇌의 주요 사고기능을 관장하고 있는 대뇌피질은 없고 호흡과 같은 기본적인 기능을 수행하는 뇌간만을 갖고 태어난 테레사 아기의 경우였는데 그녀는 출생 당시부터 멀지않아 곧 죽을 운명을 지니고 태어났었다(무뇌아의 경우 95%가 태어난지 일주일 이내에 사망한다).


무뇌는 태아 시기에 감별되므로 대부분의 부모들은 당연히 태중에서 유산시킨다.테레사의 부모는 그러나 자신들의 비극을 선으로 돌리기로 결심했고 따라서 그녀의 어머니는 아기를 마지막달까지 그녀의 뱃속에서 키웠을 뿐만 아니라 심장,간,신장,안구등의 장기를 최적으로 보존하여 이를 필요로 하는 다른 아기들에게 즉각 이식시켜주고자 제왕절개수술도 감수했다.


그러나 여기서 뜻하지 않게 만일 테레사 아기가 자연스레 죽게 되길 기다릴 경우 아기가 죽어가는 과정에서 장기의 기능도 동시에 약화돼 이식에 부적합하게 된다는 문제가 발생했다.따라서 그녀의 부모들은 법원에다 아기의 출생시 사망했다는 선고를 내려주길 요청했다.


이 방법만이 너무 늦기 전에 그녀의 장기를 이용할 수 있는 길이었다.플로리다주의 법정은 이를 거절했다.태어난지 9일만에 테레사 아기는 죽었다.물론 그때는 이미 그녀의 장기는 그녀의 부모들이 우려한대로 기능불가의 상태가 돼 있었다.


그렇더라도 법원의 판단은 옳았다.테레사의 장기를 제거하여 다른 아기들에게 심어줄 수도 있었다.그러나 출생시 그녀는 분명히 살아있었다.물론 그녀는 멀지않아 곧 죽게 될 운명이었다는 주장에 나름대로의 논리는 있다.하지만 이렇게 따지자면 불치병 환자도 곧 죽을 운명이고 사형선고를 받은 사람도 곧 죽게 돼있다.그러나 우리는 당장은 살아있는 사람에 대해 단순히 그들의 장기를 이용하기 위해 임의적으로 사망선고를 내리진 않는다.


엄밀히 말하자면 우선 뇌가 없는 테레사는 인간이라고 볼 수 없을지 모른다.이 때문에 그 아기는 인간을 상대로 마련된 법적 보호혜택을 받을 자격이 없다고 볼 수도 있다.예일대학교 의과대학의 로버트 르바인 박사는 뉴욕 타임스지와의 인터뷰에서 『무뇌아는 인간이라기보다 물고기에 더 가깝다』고 밝혔다.이에 대해 혹자는 르바인박사야말로 윤리학자라기보다는 얼빠진 인간상에 더 가깝다 라고 비난할지 모른다.


UCLA의과대학의 앨런 슈먼박사는 『최근의 신생아 연구를 보면 무뇌아들이 겪는 주관적 경험들은 그들의 외적 행동에서 보는 것처럼 「지속적 식물상태」의 성인보다 정상아들이 겪는 경험과 비슷할 가능성이 더 높다고 볼 수 있다』고 밝혔다.다시 말해서 그의 주장은 테레사의 뇌간은 정상아의 대뇌피질 기능을 하고 있어서 그녀가 기본적인 「경험」을 할 가능성도 있다는 의미다.


뉴욕 타임스지는 지난주 무뇌아들은 통증을 비롯한 그 어떤 것도 경험하지 못한다고 주장함으로써 독자들에게 그릇된 정보를 제공했다.


 슈먼박사는 이에 대해 『무뇌아는 통증을 느끼거나 경험할 수 없다고하는 일부의 주장에는 그 어떤 논리적 심리적 근거도 발견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무뇌를 사망상태로 정의하는데 찬성하고 있는 로버트 트루오그나 존 플레처같은 윤리학자들조차도 무뇌아들이 통증을 감지하고 있는지의 여부는 알 수 없다고 시인하고 있다.


살 가망이 전무한 무뇌아의 장기들이 다른 아기들의 생명을 구하는데 활용되지 못하는 것은 어찌보면 비극이랄 수도 있다.하지만 다른 생명을 구하고자 한사람의 생명을 희생시키는 것은 매우 야만적인 행동이다.특히 타인의 목숨을 연장시키기 위해 죽어가는 생명을 고의로 끊는 것이야말로 이러한 야만적 행위의 시발점이라고 볼수 있다.


경우는 이쯤에서 그치지 않을 것이다.무뇌아문제는 아직 확고하게 규명된 것이 없는 미개척 분야이기 때문에 명백하게 규정된 사항도 아직 없다.따라서 장기이식을 위한 다음 희생 대상에는 회복불능의 의식없는 성인들이 포함될 것이고 그 다음번은 불치의 알츠하이머병 환자들이 될지 모른다.이들 환자의 비극을 담보로 선을 행하려는 사람들이 없다고 아무도 장담하지 못한다.선을 행한다는데 초점을 맞춰보자.실로 테레사 사건에는 그나마 만족스런 점이 있다면 일반인들 사이에서 「선을 행하고자하는 충동」이 5년전의 비슷한 사건에서보다 훨씬 더 희석돼 있다는 점이다.당시 무뇌아의 장기를 낭비하지 않는다는 차원에서 죽음을 정의하는 문제는 이번보다 훨씬 더 많은 세인의 관심과 과학적, 더 나아가 정치적 공감을 불러일으켰었다.


그러면 이같은 일반인들의 수용태도 변화는 무엇에 기인하고 있는가.이유는 이식을 담당하는 일선 전문의들이 이들 힘없는 천사의 편에 섰기 때문이다.그 누구보다 무뇌아의 장기를 이용하고 싶어하는 바로 그 의사들이 살아있는 아기의 기관을 얻는데 따를 정치적 위험을 감지했기 때문이다.그들은 이미 일반인들 사이에 누군가가 자신들의 목숨이 끊어지기 전에 신장이나 폐를 떼내려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팽배해 있음을 알아차렸다.일년에 몇 안되게 태어나는 무뇌아들의 기관을 얻기위해 합법적 장기 이식에 접한 일반인들의 관용적인 태도를 위태롭게 할 이유가 어디있겠는가.


따라서 이제 이같은 종류의 장기기증에 끝까지 남아 지지를 표명하고 있는 사람들은 바로 무뇌아의 부모들이다.테레사의 부모는 필사적으로 자신들의 비극에 의미를 부여하고자 노력했다.테레사 아기는 삶과 죽음의 연장 선상에서 가장 불운하고 가장 인간다운 점이 희박한 존재였지만 인간의 신성 불가침성을 대표하고 있었다.바로 이 점에서 테레사의 부모들은 자신들의 아기가 그런 불가결한 삶의 목적을 지니고 잠시나마 살 수 있었다는 사실로부터 자기 위안을 얻게되길 바란다.<찰스 크라우트 해머 미 컬럼니스트><정리=국제부>




불치환자 자살방조 정당한가


(한겨레신문, 93. 12. 21)




20여명 도움준 미국의사 케보키언 구속논란


의사가 회생불능 상태인 중환자의 자살을 돕는 것이 정당한가.안락사나 낙태시술보다 한발 더 나아간 이런 생명 윤리 논란으로 미국사회가 떠들썩하다.


논쟁의 장본인은 90년 이후 20차례나 환자의 자살을 도운 병리학전문의 잭 케보키언(65) 박사. 그는 10월 22일 루거릭병이란 치명적인 신경질환을 앓아온 72살의 노파가 이산화탄소를 마시고 목숨을 끊도록 도운 혐의로 기소돼 지난달 30일 미시간주 오클랜드 카운티 지방법원에 의해 구속됐다.


케보키언 박사는 수감되자 곧바로 단식투쟁에 들어갔다.고통받는 인간은 위엄있게 죽을 권리를 갖고 있으며,그 과정에서 의학적 지원을 받을 권리가 있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케보키언이 구속되자 의료적 도움을 받는 자살문제에 대한 찬반양론이 들끓었다. 그의 주장에 동조하는 지지자들은 법원이 매긴 5만달러의 보석금을 대신 내겠다고 나섰다. 그러나 그는 이를 단호히 거부했다.그런 식의 보석을 받아들이는 것은 자신의 소신이 잘못되었음을 인정하는 꼴이라며 차라리 굶어죽겠다는 각오를 보였다.


구치소에서 물과 주스,비타민만 섭취하며 18일을 버틴 그는 결국 법원의 보석요건 완화로 17일 풀려났다.상급법원의 위헌판결이 나오기 전까지는 ‘의료자살 방조행위’를 하지 않는다는 조건이었다.


탈진 상태로 풀려난 케보키언은 병원으로 실려갔다.오클랜드 법원이 이런 결정을 내린 것은 그의 건강악화와 이웃 웨인 카운티의 연방순회법원 판사의 판결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순회 판사는 지난 13일 그가 기소된 또다른 사건에 대해 “모든 자살방조를 불법화한 미시건주법은 경우에 따라 연방헌법에 위배될 수 있다”고 그에게 유리한 판결을 내린 뒤 사건의 위법성을 따지기 위한 심리를 내년 1월 6일 열겠다고 밝혔다.


3년전부터 의료지원을 받는 자살 옹호운동을 벌여온 케보키언은 자신이 지켜보았거나 도움을 준 자살현장을 모두 비디오테이프에 담아두었다.환자의 자유의지에 의한 선택임을 증명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지난 2월 발효된 미시건주법은 자살방조와 자살에 도움을 주는 행위를 모두 불법으로 규정해 4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했다.그는 주법의 위헌 심판을 신청해놓고 있는데, 연방헌법과 대법원 판례는 생명의 선택 권리를 상당히 폭넓게 인정하고 있어 앞으로논란이 확산될 전망이다.


 연방 대법원은 90년 의사가 생명연장용 의료처치를 거부할 권리를 인정했으며, 유명한 로­웨이드 사건에서 낙태를 합법화한 바 있다.


<오룡 기자>


52. 일본에서의 안락사 논쟁




일「존엄사」싸고 윤리 논쟁 “불꽃”


(한국일보, 92. 3. 20)




“환자 고통해소”­“생명 경시” 맞서




의사 단체의 존엄사 인정선언이 일본사회에 윤리논쟁을 일으켰다.


회복이 불가능한 말기환자를 고통으로부터 해방시킴으로써 인간다운 자연사의 권리를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의료계나 고통스러운 생명연장 조치를 두려워하는 사람들,환자가족들은 대체로 긍정적이다.


그러나 변호사 작가 종교인 등은 『목숨은 어떤 경우에도 경시할 수 없다』는 이유로 반대론을 펴고 있다. 남용 우려가 있다는 소리,의료의 불신을 촉진시킬뿐이라는 소리도 들린다.


일본 의사회의 생명윤리 간담회는 18일 존엄사를 인정한다는 보고서를 제출,의사회의 승인을 받았다. 보고서는 환자의 뜻이나 「행복의 관점」에서 말기의료라고 판단할 필요가 있다고 전제,환자의 희망에 따라 산소호흡기․심장박동기등 인위적인 생명연장조치를 제거할 수 있다고 선언했다. 환자가 의사표시를 할 수 없을 경우에는 환자가족의 의사에 따를 수도 있고,존엄사협회회원으로서 리빙 윌(생전발효유서)에 존엄사희망 의사가 명기돼 있을 경우에도 이에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약물투여 등에 의한 안락사는 인정할 수 없음을 분명히 했다.


이 선언의 취지는 회복전망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인위적으로 생명을 연장해가는 것이 윤리라고 볼 수 없다면 본인 의사에 따라 편안히 죽을 수 있게 해주는 것이 도리라는 것이다. 보고서를 작성한 간담회가 89년 1천6백명의 의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의하면 『환자가 연명치료를 원하지 않는다면 그 의사를 존중해야 한다』고 응답한 사람이 70.7%였고 『그래도 연명치료를 계속해야 한다』는 응답은 7.3%였다.


존엄사협회 회원수도 급증하고 있다. 일본 존엄사협회에는 현재 3만1천5백62명이 가입해 있는데,이는 1년전에 비해 2배로 늘어난 것이다.


그러나 일부 의사들은 진정으로 죽음을 원하는 환자는 없음을 근거로 존엄사를 허용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한다. 말기환자 전문병원의 한 의사는 빨리 죽도록 버려두어달라는 환자에게 『지금 강도를 만나 칼에 찔려 죽고 싶습니까』하고 물었더니 『살해당하고 싶지 않다』고 대답했다고 했다.


일본 의사회의 이번 보고서는 세계적 흐름의 반영이라고 볼 수도 있다. 81년 세계의사총회가 환자의 존엄사 권리를 수용해야 한다는 선언을 채택한 이래 미국과 유럽에서는 활발한 논의가 계속돼왔다.


 그 결과 미국에서는 50개주 가운데 47개주가 자연사법을 제정,존엄사를 희망하는 환자의 뜻에 따르더라도 의사에게 민․형사상 책임을 묻지 않고 있다.




살인죄 기소 일 의사 안락사 파문


(중앙일보, 92. 7. 4)




생명의 존엄성 싸고 논쟁확산/가족 부탁 받고 말기 암환자 치사/「존엄사」 관련 원칙 확립 계기될 듯




불치의 병에 걸려 가망이 없는 환자의 고통을 덜어 주기 위해 가족의 부탁에 따라 안락사 시킨 의사가 살인죄로 기소돼 일본사회에 큰 파문을 던지고 있다.


일본 요코하마(횡빈)지검은 2일 입원중이던 말기 암환자의 정맥에 염화칼륨을 주사,사망케한 도카이(동해)대 의대부속병원 의사 도쿠나가 마사히토(덕영아인․36)를 살인죄로 불구속 기소했다.


도쿠나가는 지난해 4월13일 환자를 편안하게 죽게하고 싶다는 가족들의 요청을 받아들여 안락사시켰다. 그러나 9월 초순 경찰의 검시로 환자의 사망원인이 밝혀지면서 사회문제화 하기 시작했다.


회복 가능성이 없는 환자가 연명장치를 거부,자기의 의사로 죽음을 선택하게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소리가 높아지는가 하면 생명의 존엄성이라는 측면에서 이에 반대하는 소리가 팽팽히 맞서고 있다.


따라서 이 문제를 검찰이 어떻게 다룰까가 사회적 관심거리가 됐다.


검찰은 『도쿠나가는 환자 본인의 승낙을 받지않았으며 환자가 혼수상태에 있어 고통을 느끼지 않고 있었으므로 안락사에 해당되지 않는다』며 도쿠나가에게 살인죄를 적용했다. 검찰은 또 도쿠나가가 염화칼륨 정맥주사를 놓으면 환자가 죽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주사했으므로 살의가 있었다고 주장한다.


검찰은 그러나 살인교사 혐의로 수사하던 환자 가족에 대해서는 『윤리적으로 허용되는 방법으로 안락사를 요청한 것으로 인정된다』며 형사책임을 불문에 부치기로 했다.


일본에서는 지난 52년 나고야(명고옥) 고등법원에서 안락사의 허용조건으로 ▲병이 불치로 죽음이 목전에 이르렀고 ▲격렬한 통증이 있고 ▲환자에게 죽음의 고통을 덜어주려는 것만이 목적이고 ▲환자가 확실히 안락사를 위탁,승낙해야 하며 ▲원칙적으로 의사의 손으로 하며 ▲방법이 윤리적일 것 등 6개사항을 열거했다. 이중 하나라도 충족되지 않으면 위법이라고 나고야 고법은 판시했다.


지금까지 안락사에 관한 6회 판결은 모두 유죄로 내려졌으나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그러나 이들 사건은 모두 환자 가족들간에 일어난 일이었으며,의사가 개입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또 의사가 업무와 관련,살인혐의로 기소된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


요코하마 지검은 나고야고법의 판례를 참고로 했으나 도쿠나가의 경우 통증․환자의 승낙․윤리적 방법이라는 면에서 이 조건을 충족하지 못했으므로 안락사가 아니라고 판단,기소했다.


검찰은 염화칼륨 주사는 명백한 살인행위로 생명연장장치 제거라든가,치료중단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고 보고 염화칼륨주사 행위에 초점을맞춰 기소했다고 밝혔다.그러나 이 사건에 대해 일본 국내에선 찬반 양론이 비등하고 있다.


일본 존엄사협회(회장 식송정․일교대 명예교수)는 『환자가 혼수상태에 있어 고통을 느끼지 못하고 있으므로 서둘러 안락사시킬 필요가 없지 않았는가』라고 의사를 비판하면서도 『의사의 행위에 동정이 간다. 검찰의 판단은 안락사를 부정하는 것 같다』며 안락사제도 확립을 역설했다.


일반인들 가운데는 환자가족을 처벌않고 의사만 기소하는 것이 형평의 원칙에 어긋난다는 소리도 나오고 있다.이에 대해 일본 의사회 생명윤리위원 간담회는 『환자의 동의가 없는 이상 안락사가 아닌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 사건이 인간으로서 존엄성을 유지하면서 죽음을 선택하는 존엄사에 관해 논의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이번 사건은 일본에서 안락사 문제에 관한 하나의 원칙이 세워지는 계기가 된다는 점에서 재판결과가 주목된다.<동경=이석구특파원>


 “혼수상태 안락사는 有罪”…일본 법원 판결


(동아일보, 95. 3. 28)




안락사의 인정 여부를 둘러싸고 국내외에서 활발한 논의가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일본에서 안락사의 기준을 제시한 판결이 내려져 관심을 모으고 있다.


요코하마(횡빈)지방법원은 지난 91년5월 환자가족의 부탁을 받고 말기암증상으로 혼수상태에 빠져 있는 환자(58)에게 염화칼륨을 주사해 숨지게한 전도카이(동해)대 부속병원 의사 도쿠나가 마사히토(덕영아인.38)에게 징역2년 집행유예2년의 실형을 28일 선고했다. 죄명은 살인죄.


이날 마쓰우라 시게루(송포번)재판장은 “불치의 병으로 죽음을 앞두고 있는 환자라 하더라도 환자의 생명을 단축하는데는 환자자신의 명시적인 의사표시가 필요하다”고 판결했다. 이와관련, 마쓰우라재판장은 <>참기 힘든 육체적 고통을 겪고 있는 환자로 <>죽음을 목전에 두고 있으며 <>환자의 고통을 덜어줄 다른 수단이 없는데다 <>환자의 명시적 승낙이 있을 것등 4가지 요건을 충족해야 안락사를 인정할수 있다고 판시했다.


 따라서 피고인 도쿠나가의 경우는 당시 환자가 혼수상태로 고통을 느낄수 없는 상태였으며 명확한 의사표시가 없었다는 점 때문에 유죄에 해당된다는 것.


이 판결은 두가지 점에서 의미를 부여받고 있다. 첫째는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전제로 안락사를 인정했다는 점. 둘째는 그동안 학계에서만 인정돼온 존엄사(치료행위중단등 소극적인 안락사)도 법적으로 처음 인정했다는 점이다. 이날 마쓰우라재판장은 치료행위를 중단, 자연사를 맞을 수 있는 존엄사의 요건도 판시했는데 그 요건은 <>환자가 치료불가능의 병에 걸려있고 <>치료행위를 중단해 달라는 환자본인의 직접적인 의사표시나 가족을 통한 간접 의사전달이 있으며 <>의사에 의해 정당한 방법으로 치료조치를 제거할 것 등이었다.


(동경 이동관)




 53. 가톨릭의료원 의학 윤리 선언의 의미


(중앙일보, 91. 10. 13)




기존 윤리 강령보다 구체적/미국등 선진국선 이미 시행




의료계가 일부 병원들의 도덕적․윤리적 비리로 국민들에게 비판과 불신을 받고 있는 가운데 최근 가톨릭중앙의료원(원장 김대곤)이 제정한 「의학윤리지침」은 의료계는 물론 국민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지금까지 의료계는 진료비의 부당․과잉청구,응급환자 진료거부,오진으로 인한 의료분쟁 등 고질적인 병폐 등과 더불어 의사들이 혼수감이 적다고 아내를 구타하거나 투기꾼 명단에 빈번히 등장하고 최근에는 연골제거수술,예비군훈련기피 등으로 국민들의 불신이 가중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또 환자들의 의식구조변화와 국민들의 민주화요구에 따라 나약해진 환자앞에서 권위와 불친절로 군림하던 시대도 무너지기 시작하고 있다.


이에 따라 지난 몇년간 의료계 내부에서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면서 이번 가톨릭중앙의료원의 의학윤리지침이란 결실이 나온 것으로 풀이된다.


이번 윤리 지침은 기존의 「병원윤리강경」「의사윤리강령」과는 달리 구체적이고도 현실적인 것이 특징이다.


「환자의 인격존중」「최선의 진료」「최고의 의학수준」 등의 비현실적인 문구 대신 『인체실험은 사전에 대상자들에게 내용 및 예정되는 부작용을 충분히 알리고 동의를 얻는다』는 등의 구체적인 내용으로 돼 있다.


이와 함께 의료원은 지침의 실효성을 위해 의학윤리지침을 제정한 「이념구현위원회(위원장 김중호)」가 자정노력 차원에서 매년 8~10회 모임을 갖고,산하 5천여명 의료인들의 지침수행에 대한 평가를 할 수 있게 했다.


그러나 이번 가톨릭중앙의료원의 의학윤리지침제정도 선진국에서는 이미 실효화되고 있어 뒤늦은 감이 없지않은 것도 사실이다. 미국의 경우 「의사윤리강령」과 더불어 모든 의료행위에 대한 동료감시(Peer Review),의료적정보장위원회(QA) 등을 통해 의사윤리의식을 강력히 고취시키고 있다.


이는 인맥과 학연을 중시해 동료의 과오를 감싸줘 의료의 질과 신뢰성을 떨어뜨리는 국내의료계의 잘못된 의식과도 크게 차이가 난다.


김위원장(강남성모병원 행정부원장)은 『의료는 인간을 대상으로 한 분야이기 때문에 다른 어떤 분야보다 강력한 윤리의식이 필요하다』며 특히 종교적인 교리와 이념이 있는 우리로서는 더욱 중요하다』고 의료인의 윤리의식을 강조했다.


그러면 가톨릭 중앙의료원의 「의학윤리지침」중 종교적인 부분을 제외한 다른 의료기관에서도 적용이 가능한 지침내용을 요약해본다.


◇환자진료 윤리지침=▲영리성추구가 목적이어서는 안된다 ▲의료분쟁을 예상한 방어적 진료는 안된다 ▲차별하거나 과잉․과소진료는 안된다 ▲최선의 진료를 위해 힘쓴다.


◇태아진단 및 성감별 윤리지침=▲성감별 검사는 일절 허용되지 않는다. ▲기형․유전병을 진단․치료하는 경우라도 성별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인체실험 윤리지침=▲사전에 동물실험을 거쳐 인체의 피해정도가 크지 않다는 것이 알려져야 한다 ▲대상자들에게 내용 및 예상되는 부작용 등을 충분히 알리고 동의를 얻는다.


◇안락사 윤리지침=▲물리적․화학적 방법에 의한 적극적 안락사는 물론 의료행위를 지속적으로 시행하지 않는 소극적 안락사도 허용하지 않는다 ▲임종을 앞둔 환자에게도 음식물투입․간호 등 기본적인 생명 유지수단을 포기하지 않는다 ▲환자가 요청하더라도 응하지 않는다.


◇장기이식 윤리지침=▲의학적 지식이나 경험을 얻기 위한 시도가 있어서는 안된다 ▲장기제공은 강압 또는 의무감에서 행해지면 안되며 매매에 의해 이뤄져서도 안된다 ▲수령자의 선택은 장애자,빈부의 차,교육수료 등 사회적 조건으로 차별을 두면 안된다 ▲인간생명의 존엄성을 인식하고 희생적인 사랑을 바탕으로 이뤄져야 한다.   <이원호 기자>


54. 우리 나라에서의 안락사 논쟁




식물 인간 「안락사」 찬반 논쟁


(세계일보, 92. 10. 13)




회생 불가 환자에 생명 연장 장치는 고통: 찬


인간의 생명 의사 판단에 맡기는 건 무리 :반




식물 인간에 대한 안락사가 일반 종합병원 등에서 암암리에 시행되고 있으나 이에 대한 법적인 대책이 없어 뇌사입법과 동시에 「품위있게 죽을 권리」가 논란의 대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염화칼륨이나 모르핀을 환자의 정맥에 주사해 죽음에 이르게 하는「적극적 안락사」는 법조계뿐만 아니라 의료관계 전문가들도 반대하는 입장이지만 인위적으로 생명을 연장하는 장치를 제거하는 「소극적 안락사」는 찬성하는 의견이 있을 뿐만 아니라 현실적으로 일부 시행되고 있어 사회적 쟁점의 소지가 있다.


「소극적 안락사」는 뇌졸중 말기증세암 척추골절로 인한 사지마비,교통사고로 인한 뇌출혈 또는 연탄가스 중독등 심한 약물중독환자가 뇌기능정지나 식물인간 상태에 있을때 의사가 시술을 중단함으로써 사망케 하는 것이다.


부천 세종병원 최운성신경외과 과장(46)은 『환자를 「집으로 모시자」면서 심장박동기 인공호흡장치 등을 제거하는 관행이 「소극적 안락사」의 대표적 케이스』라고 말한다.이는 생명유지장치의 제거가 환자를 죽음에 이르게 하는 직접적 원인이 되기 때문에 의사는 법적인 책임이 있으나 일반화되어 있는 것이 현실이다.병실이 3백40실인 S병원은 1주일에 3~4명의 환자에 대해 「호프리스 디스차지」(Hopeless Discharge)=가망없는 퇴원)판정을 내린다고 알려졌다.


이처럼 「간접적 안락사」를 법률적 보완을 통해 의료계의 뒤안에서 밝은 곳으로 끌어내 명문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높다.또 「안락사」시술의사는 현행법률하에서는 명백하게 살인방조 또는 살인혐의가 씌워질 소지가 있기 때문에 면책을 위해 「회생불가」환자에도 생명의 연장이 아니라 죽음을 연기해 오히려 고통을 주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는 것이다.


즉 사경을 헤매는 환자가 의사의 「치료적 열정」으로 「품위있게 죽을 권리」조차 박탈당한다는 것.6년간이나 인공장치에 의존해 식물 인간으로 생명을 유지했던 전정부각료 Y씨가 대표적인 사례다.


한국법제연구원 전재경책임연구원(38․법학박사)은 『미국에서는 「품위있게 죽을 권리」가 사생활권에 포함되어 인정받고 있으며 항암제 투여로 말기암환자의 죽음을 연장시키는 행위는 오히려 인간의 존엄을 짓밟는 짓』이라고 말한다.즉 죽음이 임박한 불치병의 환자가 본인과 보호자의 희망에 따라 자격을 갖춘 의료인의 시술하에 편하게 눈감을 수 있는 법적인 권한을 주자는 것.


이를 위해서는 안락사의 족쇄가 되는 형법 제252조 「사람을 교사 또는 방조하여 자살하게 한 자는 1년이상 10년이하의 징역에 처한다」는 「자살관여죄」에 대한 보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즉 「자살관여죄」의 적용을 의사들에 대해서만은 한정적 예외로 인정하고 「의료법」에 특례규정을 두어 안락사에 관여한 의사의 책임을 묻지 않는 법제 장치를 말한다.


그러나 안락사의 구체적 법제화 주장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다.법적용때 악용의 소지가 있는 법은 제정하지 않은 것만 못하다는 주장이다.서울대 진교훈교수(55․철학)는 『안락사법을 제정해 놓으면 의사에게 환자를 죽이게 하는 근거를 마련해줄 우려가 크기때문에 안락사입법은 어떤 경우에도 반대한다』는 것이다.더군다나 유수 종합병원 오진율이 매우 높다고 의사들조차 비공식적 내부적으로 인정하는 상황에서는 생명을 중지시키는 일을 의사판단에 맡길수 없다는 것이다.


또 안락사를 인정할 경우 치매증환자등 불가항력에 처한 환자의 장기를 매매 목적으로 악용할 소지도 다분히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안락사 찬반론에 대해 국립중앙의료원 도종웅 신경외과과장(49)은 『뇌사환자의 경우 엄격한 판정아래 안락사는 인정할 수 있지만 회복가능성이 있는 식물인간에 대해서는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역행할 수 없다』고 말한다.즉 뇌사이전 단계에 있는 「식물인간」에 적극적 시술이 베풀어져야 하며 이에 따르는 무한정 치료비 부담을 정부가 일정비율 뒷받침하는 제도적 보완이 시급히 마련돼야 한다는 것이다.<한용걸기자>




뇌사판정 오진염려 절대로 있을수 없어


이인수


대전중앙병원장․신경외과


1968년 「시드니선언」 이래 뇌사를 죽음으로 수용하는 세계 여러나라에서 부단히 장기이식이 개발 시행되어 왔다.근년 우리나라에서도 법적 토론에 앞서 뇌사와 장기이식을 찬성하는 여론이 높아가고 있음을 실감하게 된다.혹자는 의사들이 뇌사를 오진할 것을 우려하고 있으나 대한의학협회의 뇌사판정기준(안)에 명시된 의료시설을 갖춘 병원에서 판정한다면 오진의 염려는 절대 있을 수 없을 것이다.


병원에서 병상기록이나 뇌사판정 과정의 지침서를 엄격하게 기록하고판정의사의 서명을 확실하게 시행하는 것이 필수적이다.뇌사를 죽음으로 수용하는 것이 생명경시라는 인식은 바뀌어야 한다.




정부에 장기 이식­배분 전담 기구 설립을


백형구 변호사


뇌사 입법의 주요 내용으로 첫째 뇌사판정의 의학적 정확성을 반영할 수 있는 기준,둘째 공정성을 담보할 수 있는 뇌사판정 기구,셋째 장기이식에 따른 오진과 환자가족의 명시적 동의 등에 대한 구체화넷째 부정판정행위,장기의 불법적 거래에 대한 처벌 등이 다루어져야 한다.


결국 장기의 이식­매매는 합법화돼야 한다.그러나 막상 법제화되었을 때의 부작용이나 후유증을 최대한 감안하지 않으면 안된다.장기의 수요공급체계가 허술할 경우 장기매매복덕방이 생겨날 우려도 있다.따라서 이러한 제반문제를 주관하는 국가기관으로서 적어도 보사부산하에 전담기구가 구성돼야 할 것이다.




뇌사 인정하면 생명 경시 풍조 확산 우려


김항배


동국대교수․동양철학


인간은 영성­불성을 지닌 소우주적 존재로서 그 무엇보다 귀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이러한 인간의 생명을 단지 현실적 필요성이라는 측면에서 뇌사를 인정,장기이식을 시행한다는 것은 분명 생명경시 풍조를 낳을 수 있는 위험요소가 크다.자칫 인간을 유­무용형으로 구분짓는 세태가 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하지만 새생명을 구해야 된다는 현실은 뇌사인정을 요구하고 있다.현실을 수용해 뇌사인정 법제정을 추진한다고 해도 본인 및 가족의 의사,즉 인간존엄성이 존중되는 법이 마련돼야 하겠다.결코 산목숨을 죽이는 일이 아니라 죽는 목숨을 살리는 생명중시의 철학이 기준돼야 한다.




뇌사 합법화로 장기 기증 활성화 바람직


박진탁


사랑의 장기기증운동 본부장․목사


일부에서는 객관성과 과학적인 판정기준 미비,장기매매현상 등을 이유로 뇌사인정제도에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그러나 뇌사를 인정하는 각국의 기준을 종합하고 객관적인 뇌사판정기준에 따라 전문의와 규정된 시설을 갖춘 병원에서 엄격하게 확인하면 뇌사판정 오류를 방지할수 있다고 본다


 뇌사에 인정되면 인명경시풍조가 만연할 것처럼 우려를 하는데 이는 너무 관념적인 생각이다.오히려 뇌사를 인정하고 장기이식을 함으로써 꺼져가는 타인의 생명을 5~9명까지 구할 수 있다는 생명의 존엄성이 더 크게 인식될 수 있을 것이다.장기기증을 활성화시킬 수 있는 적극적인 뇌사인정제도가 마련돼야 한다.


55. 안팎으로 매맞는 아이들


옥 명 희


가정 부인, 샘이깊은물 96년 2월호


그리하여 나는 엊그제 내 선배의 가슴에 피멍을 들게 한 학교 폭력의 주범 중 하나로 우선 이들을 고발한다. 남자라면 치고 받으며 자란다고 믿고 자질구레한 주먹싸움이며 나날의 실천은 우습게 아는 간 큰 우리 자신을, 성적을 올릴 수 있다면 혹독한 매도 열정으로 간주될 수밖에 없는 이토록 모진 우리의 교육열을.




대통령까지 한 말씀 하자, 학교 정문 앞에 “학교 폭력 추방하자” 커다란 플래카드가 나붙고, 조그만 아이들이 키득대며 “유흥업소 추방하자” 피켓을 흔들고, 언론 매체들은 치명적인 폭력 실태를 깜짝쇼처럼 다루고, 쉽게 잊어 버리던 우리들도 놀란 가슴을 새삼 쓸어내리며 제 새끼 단속에 급급해 하던 그 어느 날,


일요일 오후면 드문드문 국어 과외를 하던 아이들끼리 모여 않아 신문이나 부스러기 책을 읽고는 했는데 그 날도 아들애의 친구들이 모여들었다. 서울의 강남에 살고 공부를 좀 낫게 하고 우리집 빼곤 좀 넉넉하다는 것, 그것말고는 엄마 잔소리 싫고 공부하기 싫은 것까지 어디에서고 흔히 보는 보통 아이들이다.




“생일빵”, “성적빵”, “심심빵”


상 주위에 모여 앉았는데 한 아이가 계속해서 자세가 이상하고 고통스러운 표정이었다. “왜 그러니? 어디 아프니?” 자꾸만 물으면 어른 앞이라고 극구 사양하는 것을 쿠션을 받쳐주고 벽에 기대어 앉게 하자 쑥스럽게 웃다가 “친구들이 생일빵을 했어요” 하는 것이 아닌가. “생일빵? 생일이면 친구들이 빵을 사 주니?” 그러자 이번에는 나머지 세 아이가 배를 잡고 웃었다. 알고 보니 생일빵이란 생일날 친구들이 축하한다고 아이를 가운데 놓고 “빵빵”후려치는 것이란다. 그러다 보면 그렇게 등뼈를 잘못 맞아 제대로 앉을 수도 없다는 것이다.


어이가 없어 쳐다보는 나에게 성적이 너무 잘 나오면 잘한 아이를 돌아가며 때리는 “성적빵”, 그냥 심심해서 가위 바위 보 해서 때리는 “심심빵”…들이 있다고 했다. 친구들끼리 교실에서 싸우면 둘러서서 구경을 하거나 너무 심해서 말린다며 여럿이 발로 차서 떼어놓는다는 중학생들의 이야기도 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만 열살에 처음 한국에 와서 선생님이 학생을 때리는 것을 보고 열여덟살만 되면 미국에 “귀화”하고 말겠다던 아들애도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며 악의에 찬 것은 아니라고 친구들 편을 들었다. 그리고 제 생일은 방학 중이라 정말 다행이라고 하며 그래서 친구들 중에는 생일을 알리지 않는 아이들도 있다고 했다. 그중 유일한 여자애까지도 새 운동화 신고 오면 밟아서 헌 신으로 만들어 주는 자기네들의 풍속과 정도만 지나칠 뿐 흡사하여 대단한 것은 아니라는 반응을 보였다.




아줌마는 좀 과민해


이러한 아이들의 반응에 거의 경악하여 “그래, 그게 신세대냐? 결국 한 아이를 희생삼아 스트레스를 풀겠다는 폭력이 아니니? 정말 무모하구나. 성수 대교 무너졌다고 어른들 비웃던 너희들도 ‘설마’하는 것이나 안전 의식 없는 것은 마찬가지 아니니? 그러다 만에 하나라도 다치면 어떻게 하니?” 따지자 처음에는 “안 다쳐요. 다 하는데요, 뭐” 하며 버티던 아이들도 논리적으로는 그것이 좋지 않다는 것, 학교라는 긴장된 경쟁사회에서 벌어지는 스트레스 해소책이라는 것, 정이 없는 사회의 한 단면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앞으로 자기들은 그것에 가담하지 않겠다고 했다.


하지만 여전히 폭력은 아닌데, 아줌마는 좀 과민하여 흥분한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나는 억울했다. “학교 폭력 추방하자”는 플래카드가 그렇게 을씨년스럽게 펄럭이는데 축하마저 때려서 하는 이이들은, 늘 폭력배는 먼 곳에 있고, 어느 재수없게(?) 너무 잘난 놈이나 못난 놈만 당하는 줄 알고 있다. 나도 홧김에 애들을 때리기는 하지만, 이렇게 아이들이 폭력을 폭력인지 모르게 하는 것이 도대체 무엇일까?




강남의 반장 엄마들이 낸 꾀


학교 폭력이란 학교 안팎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모든 폭력 곧 언어 폭력이며, 따돌림, 강요 같은 심리 폭력까지 포함되는 개념이라고 한다. 크게 살인, 자살에서 각종 범죄로까지 이어지는 그 엄청난 수치를 보고는 모두들 무서워 떨면서 그런 일이 제 아이에게는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 보고도 못 본 체 피하라고 가르친다. 그뿐인가. 아예 만일의 경우에 대비해 빼앗길 돈도 찔러 넣어 준다.


더러 현명한(?) 강남의 반장 엄마들은 반장이 되면 반에서 제일 힘이 센 애와 학교에선 부러 짝을 지워 주기도 한다. 운동회 때 반장이 나누어 주면 몇 개씩 질서없이 집어가던 빵도 소위 어깨쯤 되는 아이가 체육부장쯤 되어 나누어 주면 되려 남는데다가 은연중에 보디가드 노릇도 해주니 금상첨화라는 게 그 부인들의 변이다.


너무나 현명하여 참을 수 없이 징그러운 그이들을, 아니 우리들을 비겁하다고 자신있게 비난할 자가 어디 있으랴? 그렇다고 정말 이 여우 같은 꾀도 사자 같은 용맹도 없는 우리들은 단지 힘없다는 사실 하나로 면죄부를 받을 수 있을까? 그러다 심하게 당하여 거의 회복불능인 아이들을 바로 옆에서 볼 때도 우리가 살며 늘상 하듯, “참게! 별수 있나? 운수가 없었다”고 말이나 건네며 제 자식 단속에만 더욱더 급급해할 것인가?




아이 때리고 몸살 하고


다혈질이어서 그런지 나는 내 아이들을 차분히 교육적으로 때리지 못한다. 이즘에는 훨씬 나아졌지만 이태 전까지만 해도 애를 한두대 때리고 나면 너무 긴장한 탓에 몸살이 나고는 했다.


또 아이들도 별로 맞아 보지를 않아서, 지레 겁을 먹고 울면서 아무리 소리를 질러도 이리저리 도망을 다니거나 마치 “덤벼 보세요”하는 듯 쿠션 같은 것으로 방패막이를 하기도 했다. 그러면 권위가 땅에 떨어진 나는 “비겁한 아이들!”엄마 앞에 와 서라고 더 크게 소리를 질렀다. 그런데도 아이들은 울면서 몇대 때릴 것인지, 얼마나 아프게 때릴 것인지 물어 정말 나는 미치게 했다. 그런 상태에서 나도 겁이 나는데 때리니까 잘못 때려 종아리를 때린다는 것이 아킬레스 건을 때려 버리거나 쓰지 않는 빈 손지갑으로 그냥 머리를 툭 때린 것이 동전이 들어 있어 아이가 죽는다고 울어대면 이번에는 내가 겁이 나서 문을 잠그고 울었다.


그렇게 중학교에 가기까지 열두번쯤 맞은 큰애가 중학교 일학년이 되자 심각한 사태가 발생했다. 낙천적이라 적응을 잘하여 우리를 기쁘게 했고 되려 한국에 온 지 이년 만에 수퍼 삼백일조를 계기로 국수주의자가 된 것처럼 보이던 아이가 중학생이 된 지 채 한달이 못된 어느 날 학교에 가고 싶지 않다고 했다. 학교에 가면 목뒤가 괜히 아프니 제발 미국으로 가자고 했다. 대학교에 들어간 뒤 너무 공부를 잘하면 모를까 우리집에는 그런 것 없다고 한 뒤 이유를 물었더니 의외로 단순했다. 적어도 내 생각에는.




폭력에 둔감해지는 이이들


수업 시간에 어떤 애가 늦게 들어왔다고 선생님께서 새 학기니까 소위 군기를 잡는다고 때리신 모양이었다. 뺨을 두 대 힘껏 때렸고 돌아서서 들어가는 그 아이의 뒷 머리께를 한 번 더 치셨다는 것이었다. 그것을 맨 앞줄에 돌아서서 들어가는 아이의 머리를 때렸다는 부분이었다. 선생님이 어떻게 비겁하게 전혀 방어도 할 수 없는 상황의 약자를 그것도 뒤에서, 하필이면 머리를 칠 수 있느냐고 아들애는 흥분했다. 엄마가 말하듯 뺨을 맞는 것은 모욕의 상징이니까 그것으로 충분했다는 것이다. “그럼 네가 그렇게 말씀 드리지 그랬니?” 했더니 “엄마는 선생님 손이 미치지 않는 집에 계시니까 그렇죠. 맞는 것은 우린데… 나도 말 못하는 내가 답답해 죽겠어요. 그래서 그 시간이 되면 뒷머리가 괜히 아프고 미국에 가고 싶어요” 했다.


세월이 약이라던가. 그러던 아이가 중삼이 된 즈음엔 단체 기압인가를 받아 뻘건 몽둥이 자국이 몸에 난 것을 보고 가슴이 아파 “아프지?” 물으면 “괜찮아유…”하는가 하면 그즈음 초등학교 일학년이었던 제 여동생이 노는 시간에 복도에서 떠들었다고 선생님한테 모로 세운 자로 맞아 빨간 금이 간 손을 보여 주면 “야, 임마 그러면서 크는 거야. 괜찮아, 오빠를 봐라” 했다. 그러면서 자기들끼리 “원산 폭격”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으니 괄목할 만한 발전인 셈이었다.


별일 아닌 것에 아이들이 맞는 것보다, 여선생님까지 군사 문화의 잔재인 “원산폭격”을 시키는 것보다, 정말 그렇게 키우지 않았던 아이들이 폭력에 둔감해지는 것이 슬펐다. 그래서 내일 아침에는 학교로 가리라는 결심으로 들떠서 밤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러다가 아침이 되면 험하고 버릇없는 아이들(명예교사를 하러 가 보면 아이들은 끔찍스럽게도 시끄럽고 제멋대로였다.) 키워낸 우리네들 생각하며 더러는 귀찮고 더러는 튀는 것이 싫어서 내 신경의 전등촉을 또 하나 끄곤 했다.




이래도 맞고, 저래도 맞아야 하나?


그러나 더욱 놀라왔던 것은 중삼 때였다. 앞에서 나가 구령을 잘못 불렀다고 어벙한 내 아들은 턱이 휙 돌아가도록 맞고 오는가 하면 옆의 짝이 공책 정리를 안 했는데 그것도 몰랐다고 “오토바이”하기(오토바이 타는 자세로 서면 몽둥이로 때린다). 반 성적이 떨어지면 단체로 맞기 해서 원천적으로 학생으로 존재하는 동안에는 “매도 제 하기 나름”이 아니라 피할 수 없는 것이었다.


또 하나 공부를 않는 아이들을 위해 학급 전체가 “빽빽이”라는 것을 해가는 벌이 있었다. 시험지 십육절지 앞 뒤 두 장에 글자가 보이지 않을 만큼 빽빽하게 꾀 부리지 않고 채워가는 것인데 안 해가면 무조건 한면에 몽둥이로 두 대씩, 아이는 입시 준비는커녕 세계화를 위한 선진 교육의 구호가 온 나라에 메아리 칠 때 매일밤 한시까지 의미없이 종이를 가득 빽빽이 메우고 있었다. 수학은 눈에 보이게 정연하게 풀라던 제 아빠의 가르침도, 거짓말로 치사하게 손놀림만 하지 말고 양심껏 하고 나머지는 맞으라는 나의 강권도 아이에게는 그야말로 배부른 소리처럼 들렸나 보다.


밤마다 “빽빽이”를 해야 하는 내 아들


선생님을 뵙고 은근히 정중하게 말씀드려도 소용이 없었다. 위로와 연대를 꿈꾸며 엄마들에게 전화를 했더니 반응은 세가지였다.


첫 번째 반응, 같이 염려해 주고 요령을 가르쳐 주는 분. 공책의 용수철을 뽑아 다 쓴 옛날 것을 다시 끼워 주든지 아이를 도와서 대신 써 주든지 하라고 일러주었다. 그러나 선생님은 한수 더 위여서 미리 빈 공책에 도장을 찍어 놓으셔서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아무리 내 아들이 사랑스러워도 마흔도 넘은 나이에 단지 낳았다는 죄로 빽빽이를 밤마다 하며 살고 싶지 않았다.


그것도 허영이었을까? 두 번째 반응. “사내애들이 그만한 것은 참고 의지를 길러야지, 여자애라면 몰라도 사내애들은 맞고 때리면서 크는 것이지요. 선생님께서 사람 만드시려고 때리는 것인데요. 누구 어머니는 미국에서 살다 와서 너무 예민하신 것 같아요.” 본의 아니게 미국물 마신 게 유죄라 또 할 말이 없었다.


세 번째 반응. “그나마 베끼니까 공부를 하는데 부반장이라면 그만한 단체 의식은 있어야 하는 것 아니예요?” 이번에는 이기적인 사람으로 몰릴 판이었다. 오히려 모반을 해보자고 권한 것이 탄로 날까 겁이 날 지경이었다. 그렇다고 그 부인들이 나쁘거나 이상한 사람들은 아니었다. 다만 맞고 때리는 것에 어쩔수 없이 순응하거나 도가 튼 것처럼 의연했을 뿐이다.


그리하여 나는 그이들과의 어떠한 연대도 포기했다. 어느 날 아무 영문도 모르는 아들이 싱글벙글 웃으며 돌아와 전했다. 빽빽이가 한 장으로 줄었다고 모두가 눈물겨워하고 한 애가 하느님께 감사 기도까지 드렸다는 말에 나는 혼자 생각했다. “나는 하느님이 아닌데…”라고.


그리하여 나는 엊그제 내 선배의 가슴에 피멍을 들게 한 학교 폭력의 주범 중 하나로 우선 이들을 고발한다. 남자라면 치고 받으며 자란다고 믿고 자질구레한 주먹싸움이며 나날의 실천은 우습게 아는 간 큰 우리 자신을, 성적을 올릴 수 있다면 혹독한 매도 열정으로 간주될 수밖에 없는 이토록 모진 우리의 교육열을.




“열나”, “존나”, “졸라”


이즈음 평화의 사절로 “퇴임후 가장 위대한 역대 미국 대통령”으로 꼽히는 지미 카터도 실패하긴 했지만 한때 이란 주재 미 대사관에 잡혀 있던 인질을 구하기 위해 군사 작전을 개시한 적이 있었다. 그때 빈번하게 오르내리던 이야기에 “스톡홀름 현상”이라는 것이 있었다. 곧, 인질로 오래 잡혀 있다 보면 잡아 둔 사람들의 이념이나 행동 방식에 동화된다는 것이다. 미국의 언론 재벌의 딸로 피납되었던 허스트라는 여자애가 그랬다는 둥하면서, 엊그제 체첸 반군 대장과 총을 만지며 천진하게 웃던 아이들을 보면서도 문득 그 생각이 떠올랐다.


그런데 애들을 학교에 보내고 맞는 것에 점차 둔감해지고 “생일빵”에까지 가담하는 것을 보면 왜 때때로 내겐 그 해묵은 “스톡홀름 현상”이라는 게 생각날까?


사춘기가 늦게 오고 아직 나의 영향권에서 과히 벗어나지는 않았던 중학교 시절은 그래도 나았다. 상대적으로 여선생님도 많았고, 여학생과 같은 반에서 수업을 했기 때문인지, 아들애는 기껏해야 “열나…” 정도 소리나 했고 맹세를 할 때 “엄창”하며 엄지손가락을 이마에 대기는 했으나 엄지손가락 “엄”에 소리지르니 “창”인가 보다 모자가 다 그렇게 알고 있었다. 그러다 아들애 친구들이 놀러 와 그 광경에 깜짝 놀라며 “너 엄마 앞에서 어떻게…”해서 그 뜻이 결국 “내 말이 거짓말이면 엄마가 창녀”라는 것을 듣고 나는 까무라칠 뻔했고 내 아들은 “창녀가 뭔데?”하여 웃음거리가 된 것이 있는 정도였다.


그래도 이쯤 되면 아이들도 맞아 싼 존재로 전락하는 것은 초읽기에 들어갔다는 것이 그때의 내 느낌이라고나 할까? 유치원 아이들까지 마치 형용사처럼, 감탄사처럼 시팔이나 존나(자음 동화까지 일어나)라는 말들을 쓰는데 우리 아이들이라고 어찌 그 대열에 끼지 않겠나.


초등학교 딸애는 졸라(더 심한 자음 동화가 일어나)라는 말이 쓰고 싶어 입이 간지럽다고 하루는 말했는가 하면 그래도 못 쓰게 하니까 머리속에서 소리가 맴맴 돈다고하여 겁이 나 우리 둘만 집에 있던 날 잠시 크게 소리 지르듯 하라고 했더니 그 증세가 없어졌다. 내게 걸려 혼이 났는데 그래도 몇번인가 더하여 그 뜻을 명확하게 가르쳐 주었더니 그 다음에는 삼가는 눈치다.




“조에 지읒 받침 찾아야 한다.”


한 번은 전철을 탔는데 여고생 애들이, 그것도 멀쩡해 보이는데 그 대화가 다음과 같이 이어졌다. “나 어제 서울 대공원 갔는데…존나 재밌었다.” “그래, 롯데도 열나 재밌는데….” “너 그 앞반 수학 선생님 있지, 존나 잘 가르친다.” 그런데도 그 주위에 있던 어른들은 눈살 하나 찌푸리지 않고 있었다.


마침내 나는 그 아이들에게로 다가갔다. “너희들 예쁜 아이들이 말은 이상하게 하는구나.” 아이들은 부끄러워하기는커녕 “왜요. 아줌마? 이 아줌마가 왜 그러시니?” 나도 점점 화가 나서, 그러나 아직 우아하게 참으며 남이 들을까 속삭이듯 “너희 ‘존나’라는 말 왜 쓰니?” 아이들은 큰 소리로 “얘, 존나 때문에 그런데. 왜, 쓰면 안 돼요?” 사람들이 나를 힐끔힐끔 쳐다보기 시작했다. 우리 애들 같으면 벌써 소리를 질렀겠지만, 참으며 “그 뜻을 아니?” 했다. “모르는데요.”


이쯤 되면 나의 판정패는 확실시되는 것이다. 쌍욕을 공유하는 저속한 남녀 평등화의 한 예로 미리 단정하고 접근한 어리석은 아줌마였으니 말이다. “집에 가서 꼭 사전 찾아봐라. 조에 지읒 받침 찾아야 한다. 그리고 쓰지 마.” 이미 나는 내 목적지에서 두 정거장을 지나치고 있었다. 다음날 물어 보았더니 친구 딸애도 내 조카애도 그 말을 속어로만 알뿐 대부분의 아이들은 뜻도 모른 체 최상급 형용사로 쓴다고 했단다. 우리 부모나 선생님들은 그것도 모른 체 쓰지 말라고만 하거나 남의 아이들이야 쓰던 말던 상관도 않은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오리무중한 학교를 생각하면 화가 난다. 공부가 도대체 무엇인가. 생활 속의 소재를 활용하면 더 이해하기 쉽고 사람 만들기도 쉬울 것 아닌가? 더 야한 성적 농담이며 상식들은 아이들 잠 깨운답시고 수업 시간에 잘도 하면서, 왜 국어 시간에 “자음 동화”나 어원 가르칠 때 슬쩍 예 들어 설명하면 안 될까? 그러면 쓰고 싶어 죽겠다는 놈들 아니면 그래도 그 숫자가 좀 줄어들 것 아닌가. 그런데 생활 속에 관련된 것이라고 내 아들이 배워 오는 것은 무엇이던가?




“너는 종좀같이 생겼구나”라니!


고일이 된 둘째주에 아들애는 이마가 빨갛게 되어서 돌아왔다. 왜 그랬느냐고 묻자 자꾸 피하다 마침내 말했다. “우리 반은 두 번째 시간인데 선생님이 첫시간에 한 인사 말씀을 똑 같이 시작하셔서 애들은 다 잘 참았는데 나만 웃음이 새어나왔어요. 그랬더니 선생님께서 앞으로 불러내어 한 대를 때린 뒤 이유를 정직하게 말하면 용서해 주시겠다고 해서 정직하게 말했더니 버릇없다고 자로 다섯대 이마를 때렸어요.”


나도 선생을 해보아서 이해는 간다. 아이들 개구지기야 말할 것도 없다. 때로는 사람 같지도 않을 것이다. 더구나 학기초에는 이 반이 저 반 같고 이 놈이 저 놈 같으니 실수도 하기 쉬운데 첫 시간에 엄숙하게 인사말하는데 웃어서 김빼는 놈이 얼마나 미웠겠나. 또 이유를 말하라고 한다고 반 전체 앞에서 어리석게도 대담하게(?) 말하는 놈이 얼마나 볼썽사나웠을지. 아이에게는 너는 한국 사람이니 한국의 문화를 철두철미 이해해야 한다고 괜히 짜증을 부렸지만 그래도 어이가 없었다. 그렇다면 “설마”하며 “생일빵”하는 애들이나 남의 머리라고 생각 없이 때리는 선생이나 무슨 차이가 있다는 말인가?


이상하게도 번개도 같은 자리는 두 번치지 않는다고 하는데 그에서 그치지 않았다. 또 하루는 아직도 어휘가 짧은 아이가 돌아오더니 “종놈”이라는 말의 속뜻은 무엇이냐고 물었다. 이유를 묻자 “엄마, 내게 노예와 같은 비굴한 모습이 있어요?” 심각하게 되묻는 것이었다. 예의 그 선생님이 “성”들을 묻고 옆의 아이에게는 양반 같이 생겼다고 했고 “너는 종놈같이 생겼구나”하여 반 전체가 웃었다고 했다.


나는 처음으로 아이 앞에서 선생 욕을 통렬하게 했다. 미친 놈이라고 학교 폭력을 없애자는데, 사춘기의 아이에게 첫 시간 밉보였다고 어떻게 그런 심한 언어 폭력을 할 수 있는 것일까. 그리고 마음이 다칠 수도 있을 친구를 두고 아이들은 웃음들이 나왔을까? 평소 말이 없던 제 아빠도 “함안 조씨”를 모르니 그 선생님이 상놈인가 보다고 전근대적인 반상의 이야기까지 하며 애를 위로했다.




아이들을 허무하게 하는 것들


몰론 선생님도 선생님 나름이고 아들애도 또래애들에 비해 천성이나 키운 탓에 어벙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비교적 모범생인 아들애가 물어와 내가 듣는 체험담들은 가슴을 아리게 하는 이야기 축에도 못 들 것이 확실하다. 한동안 소원했던 모자의 의사소통이 “미친 놈”이라는 나의 발언 이후 비교적 정상화된 것이 전화위복이랄까. 그동안 늘 선생님 편만 드는 엄마와는 믿어주지 않으니까 말이 안 통한다고 느낀 게 틀림없었다. 그렇게 많은 선생님들이 자의건 타의건 폭력 지도(?)를 하는 학교, 특히 남자 고등학교에 가 보면 교실은 삭막하기 그지 없고 그 이이들 마음을 내 식으로 옮겨 보면 다음과 같다.


“이렇게 좋은 세상 이팔청춘 금간 교실벽 바라보며 한 번 화끈하게 살지도 못하고 삼풍 짝 날까 겁나. 미지근한 난로는 가축용이야. 덩달아 우리들도 벌벌 떠는 짐승 같아. 찌는 여름 에어콘 돌아가는 교무실에 벌 서기라도 가고 싶어. 그런데 선진국 진입이라 교육 개혁이다 노털들은 야단이야. 책상은 훌쩍 자란 우리에게 맞지 않아 삐뚜름 앉는 게 정상이고. 대학문은 좁아 갈 곳도 없는데 공부 잘하는 놈 공부하게, 자도 좋으니 조용만 하라는 게 심술나니 더 떠들지. 그러니 선생님들 열나 때려 한 번 맞고 두 번 맞아 겁 안 나고, 급기야 살 떨리게 단체 기합. 머피의 법칙이다 우리 인생. 그러니 수틀리면 패기나 좋아하는 선생 패고 학력 파괴 시대다 그깟 학교 걷어치워, 공부공부 잔소리꾼 엄마 피해 집 나와서 머리 염색 오토바이 타고서 짜장면 배달하며 살아보니 우리가 신이나네. 놀부가 신이 나네. 그러다 심심하면 열나 재수없게 엄마 선생 귀염둥이 걔네들 손 좀 봐 줘. 그게 뭐 큰 죄 되리. 지네들은 총으로 죽이고 돌아가며 대통령도 하는 것을.”


그리하여 나는 엊그제 학교 폭력에 휩싸인 아들을 보면 남 앞에 서서 살아갈 자신이 없다는 내 친구의 피멍 든 가슴에 돌을 던진 주범 중 또 하나로 이들을 고발한다. 열정과 희망의 연기자이기를 포기한 선생님, 그이들과 아이들을 허무하게 하는 우리의 이 비인간적인 교육 환경을.


벌써 아들애의 고등학교 일학년이 끝나가는데 아들애는 또 이미 학기 초의 그 아이가 아니다. 세상의 어른들은 저마다 비자금의 악한 순환고리라고 생각하는가 하면 그렇게 매를 맞으면서 사람은 또 강인해진다고 생각한다. 정직은 반드시 미덕이 아니며 아빠 엄마는 아니라고 했지만, 선생님들께 들어서 이 세상이 얼마나 더러운지 안다고 했다. 이렇게 말하면 너무나 성실하고 아름답던 몇몇 선생님들, 그들에게 죄스럽지만 가히 총체적인 허무와 비인격화의 인질이 되어 지낸 일년간 아들애는 순수했던 만큼 더 심한 “스톡홀롬 현상”을 보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 아들애를 보면 애써 자식을 키운다는 것이 허무해진다. 그러나 나는 늘 그러했듯이 좌절 뒤에 꿈꾼다.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어본다. “아, 나는, 우리는 람보가 될 수 있다. 나날이 조금씩, 안 되는 것에 ‘안돼’라고 제 자식, 남의 자식 가리지 않고 말할 잣불만한 사랑과 인내만 있다면. 카다란 구호를 펄럭이는 근육질의 람보 말고, 조그만 조그만 람보 말이다. 조그만 람보들이 병정 인형들처럼 끝없이 끝없이 아이들을 구출하러 달려 갈 것이다. 조그만 람보가 되고 싶지 않으세요?”


56. 청소년 폭력 - 위험 수위 넘어섰다


뉴스피플에서


10대 폭력이 위험수위를 넘어섰다. 폭력의 정도나 폭력배 숫자면에서 모두 그렇다. 경찰이나 일선교사들은 “매스컴이 지나치게 과장해서 떠든다”고 볼멘 표정이다.


지난 15일 하오 9시40분 서울 시청 전철역. 지하도를 걷고 있던 앳된 모습의 소녀 3명에게 금품을 뜯긴 경험이 있는지 물어보았다. 진선여중 1학년이라는 그들 중 두명이 `그렇다’고 대답했다.


“학원수업이 끝나고 나오는데 언니 2명이 돈을 내놓으라고 했어요. 돈을 뺏은 다음 저보고 그 자리에서 꼼짝말고 10초를 세라고 한 뒤 유유히 사라지는 겁니다. 시킨 대로 했지요”


“친구랑 둘이 학교 뒤편에서 놀다가 제 친구는 4천원, 저는 천원 뺏긴 적이 있습니다. 언니들이 10원짜리가 나올 때마다 한 대씩 맞을 줄 알라며 몸수색을 했지만 다행히 가진 돈을 다 털어줘 맞지는 않았어요”


그들은 소소하게 몇천 원씩 뺏기는 것은 예사라고 털어놓았다. 그리고 학원에 가면 거의 날마다 남자애들로부터 돈 뺏긴 경험담을 들을 수 있다고도 했다.


다음날 비슷한 시각. 이번에는 조금 더 커보이는 여학생 4명에게 똑같은 질문을 해보았다. 역시 2명에게서 상황만 약간 다를 뿐 비슷한 내용의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청소년 폭력’을 매스컴의 과장으로만 보기에는 너무 지나친 우연의 일치였다.


서울 강남경찰서는 지난 6일부터 `학교주변 폭력배’ 일제단속에 들어갔다. 자녀들이 금품을 뜯기고 폭행을 당했다는 학부모들의 항의성 제보가 급증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姜모양(15) 등 10대 소녀 4명이 검거됐다. 중학교 동창인 이들은 하교 길목을 지키고 있다가 학교 후배들로부터 90여차례에 걸쳐 200여만원의 돈을 상습적으로 갈취했으며 크리스마스 등 특정한 날에는 선물을 강요, 말을 듣지 않으면 폭행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 중 1명은 영장이 기각되고 3명은 구속돼 현재 유치장에 수감 중이다.


강남경찰서 강폭3반의 한 형사는 “조사해 보니 이들은 모대학교수, 중견건설회사 부사장, 재일동포사업가 등 부유층 딸들이었다”면서 꼭 돈이 없어서 학교주변 폭력배가 되는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잔챙이폭력배’가 늘어나다보니 전체 학교폭력배의 숫자 또한 늘어났고 자연 학교주변 폭력이 빈번해졌다는 분석이다.


그러나 경찰이 가장 경계하고 있는 것은 `잔챙이폭력배’가 아니다. 경찰은 학생폭력서클의 전성기가 다시 오지 않을까 하는 점에 가장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최근 조직폭력배들이 활발한 재건 움직임을 보임에 따라 학교서클들도 덩달아 세를 재규합하는 조짐이 포착되고 있는 때문이다.


`TNT’ `마피스’ `허리케인’ 등 별난 명칭으로 80년대 중반 전성기를 구가했던 학교폭력서클은 6공정부가 `범죄와의 전쟁’을 시작하면서 철퇴를 맞았다. 폭력서클 자체에 대한 당국의 단속도 심했지만 대부분 외부의 조직폭력배와 연계를 맺고 있었던 관계로 `조직’의 와해는 자연스럽게 `서클’의 와해로 이어졌다.


그렇다고 교내 폭력서클이 완전히 와해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역효과도 컸다. ‘범떠난 굴에 여우가 왕’이라고 군소 서클이 난립하기 시작했고 `피라미폭력배’들이 급증한 것이다. 경찰은 91년 학교폭력배에 대한 대대적인 단속에 들어가 1천200여명을 검거했지만 최근 단속이 소홀해진 틈을 타 학교폭력배들이 다시 기승을 부린다.


얼마전 서울 잠실에서는 B고와 J고간의 치열한 세력다툼이 있었다. B고의 모서클 구성원이 오토바이를 타고 가다 사고로 죽은 사건이 있었는데 이 학생의 헬멧을 J고 서클 구성원이 빼앗아간 사실이 밝혀지면서 B고 학생들이 J고로 몰려가 패싸움을 벌인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학교서클은 `조직’과 생리가 흡사하다. 모든 것은 한 다리(계보상의 한 등급 차이를 일컫는 말로, 학교에서는 한 학년 차이가 한 다리가 되는 것이 보통이다) 중심으로 이뤄진다. 아무리 후배의 행동이 눈에 거슬린다 해도 두 다리 선배가 직접 나서 `징계’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대신 바로 밑의 한 다리 후배로 하여금 `손을 보게’ 한다.


자파멤버가 다른 파에게 얻어맞거나 모욕을 당했을 경우 반드시 보복하는 것도 `조직’과 똑같다. 이 때는 단도, 몽둥이 등의 흉기로 단단히 무장한 뒤 `결전’에 나서기 때문에 유혈이 낭자하기 일쑤다.


 이러한 보복전이나 세 싸움의 결과에 따라 `구역’이 결정됨은 물론이다. 싸움에 진 쪽은 이긴 쪽이 지나다니는 길목에는 얼씬거리지 않는 것이 관례다. 무심코 타구역을 침범했을 때는 몰매맞기가 십상이다. 그러나 `조직’과 달리 학교구역은 주도권이 자주 바뀌는 것이 특징이다. 3년 단위로 물갈이가 되므로 서클간의 서열이 그만큼 자주 바뀐다.


앞의 잠실의 두학교의 경우,치열한 주도권 싸움결과 신천지역은 현재 B고 학생들의 손에 완전히 넘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학교서클간의 서열을 결정하는데 있어 중요요인중 하나는 외부 `조직’과의 연계여부다.과거에는 교내서클의 리더 대부분이 `조직’과 연계돼 있었다.그러나 최근에는 일부만이 `조직’과 연결돼 있을 뿐이다. 더러 `조직’이 나서 보복해 주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조직과 연결돼 있는 학교폭력서클들은 경찰도 함부로 건드리지 못한다.


하지만 조직폭력배들은 연계라는 말에 불쾌해 한다. 급이 다르다는 것이다. 아무리 `똑똑한’ 폭력서클 리더라도 조직에서는 `똘마니’정도의 취급밖에 받지 못한다.


그런데 간혹 `조직’의 하부구성원이 학교에 입학하거나 전입해 오는 경우, 기존의 서열을 무시해 버리는 사례가 있다. `조직’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조직’이 학교폭력배를 인정해 주지 않는 것도 이때문이다.


또 요즘의 학교폭력서클들은 과거와는 양상이 조금 다르다. 일선학교 학생주임들은 폭력배들의 성향이 전반적으로 순해졌다고 입을 모았다.단 일부 극소수 폭력배들의 경우 과거보다 훨씬 더 극단적인 성향을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때 광주 금호고의 M서클을 주도했던 安모군은 이런 얘기를 했다.


“옛날에는 선배 무서운 줄도 알고 사람 무서운 줄도 알았다.그런데 지금은 사람 무서운 줄 모른다.욱하면 아무때고 칼부림하는 것이 예사다.과거의 낭만따위는 사라진 지 오래다. 요즘의 학교서클은 `조직’과 마찬가지로 물질에 움직이는 경향이 강하다. 선거때 학교폭력배들이 설치는 것은 그 좋은 예다”


그런가 하면 충암고 李모교사는 또 이렇게 분석했다.”`TNT’ `청죽’ `노터치’는 아직까지도 그 악명이 회자될 정도로 서부지역을 주름잡았던 충암의 대표적 폭력서클들이다. 그러나 7~8년전부터 세력이 급격히 약해져 지금은 완전히 와해됐다.


후배 양성에 실패했기 때문이다.요즘 아이들은 개인주의 성향이 강한데다가 극단적인 폭력보다는 술마시고 담배피우고 춤추는 소위 노는 쪽에 더 관심이 많은 탓이다”.


계보를 갖춘 폭력서클들은 과거에 비해 줄어들었다고 한다. 계보가 있는 폭력서클들은 `조직’과 연결돼 있는 것이 보통이고 또 이들은 `조직’으로부터 용돈을 얻어쓰기 때문에 학교주변에서 `잔돈푼’은 뜯지 않는다. 학교주변에서 `삥’을 뜯거나 교실에 들어와 금품을 뺏는 이들은 주로 끼리끼리 어울려다니는 패거리들이다. 그리고 이중 상당수는 퇴학생들이다.


숙명여고 韓모교사는 학교측이 선도보다는 문제학생을 자퇴시키는 손쉬운 방법을 택하고 있는 것도 학교주변 폭력배들을 양산하는 간접적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요즘에는 학교가 굳이 골치아픈 학생들을 데리고 있으려 하지 않는다. 몇번 말썽을 피우면 각서를 받는 것이 보통이다. 한번 더 말썽을 피우다 적발되면 퇴학도 각오한다는 내용이다. 그래서 다음에 말썽이 생기면 가차없이 퇴학처분을 통고한다.


그러면 학부모들은 자퇴수속을 밟는다. 자퇴는 타학교 전학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 이학교 저학교를 전전하는 자퇴생들이 자기들끼리 서클을 만들기도 하고 학교주변 폭력배로 전락하는 것이다. 지난번 강남경찰서에 잡힌 여학생중 한명도 지방학교를 포함해 5개 학교를 전전하지 않았는가”


일부의 폭력 성향이 극단적으로 치달으면서 `교사폭행’도 빈번해졌다.얼마전 C고에서는 수업시간에 존다고 주의를 받은 학생이 나이든 교사에게 달려들어 발로 짓이긴 사건이 있었다.


의자를 던지거나 칼을 빼들고 달려드는 일은 교직원사회에서 더 이상 충격거리가 아니다. 실제 나이든 교사들은 학생들의 웬만한 잘못은 그냥 못본 척 넘기기 일쑤라고 한다.


학교 폭력은 여학교도 예외는 아니다. 지난 3월 경북 울진군에서는 평해여상 2학년 8명이 신입생 16명을 건방지다는 이유로 학교 뒷산으로 끌고가 옷을 벗긴 채 몽둥이질을 해댄 사건이 있었다.


예나 지금이나 여학교 폭력서클은 남학교의 그것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남의 `애인’에게 접근했다가 학교간 파벌싸움을 초래하는 예도 비일비재하다.


또한 폭력배들은 패션에 민감하다. 값비싼 메이커를 선호하고 첨단유행을 좇는다. 일선경찰서 소년계 형사들은 “과거와 달리 요즘 폭력배들은 외모가 말끔하고 산뜻해서 전혀 폭력배같지 않은 것이 특징”이라고 말했다.


학교 폭력배의 또 한가지 심각성은 하향화추세에 있다. 초등학교에서까지 폭력이 예삿일처럼 돼 있는 것이다. 국교 교실의 폭력은 지난 87년 구룡초등학교 5학년 송민석군이 10대 폭력배들에게 시달리다 못해 농약을 먹고 자살, 그 실상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얼마전에는 울산의 모초등학교 6학년생이 중학생 형들도 아닌 같은 반 급우에게 7개월동안 매일 300원씩을 상납한 사실이 밝혀져 큰 충격을 주었다. 같은 반 친구들은 이 사실을 알고서도 보복당할까봐 담임교사에게 전혀 얘기하지 않았다.


이렇듯 학교 주변의 폭력이 빈번해짐에 따라 남학생들은 아예 `뺏길 돈’을 미리 준비하고 다니는 `자구책’을 세우고 있다. 경찰은 설문조사를 통해 범죄 빈발지역에 대한 순찰선을 강화하는 방법을 쓰고 있다.


최근 경기도 분당경찰서는 관내 8개 중.고교 1천200명을 대상으로 `중고생 폭력피해’ 설문조사를 실시, 설문지에 나타난 주요 피해장소를 순찰선으로 짜 어느 정도의 효과는 거두었다.


그러나 워낙 피라미폭력배들이 많아 경찰인력으로는 역부족이라는 것이 분당경찰서 유모형사의 얘기다. 그는 무슨 사건이 터지면 그제서야 학생선도활동을 강화하는 학교당국에 대해서도 아쉬움을 표시했다. `이지메’는 더 이상 남의 나라 얘기가 아니다.   <安美現기자>


57. 예술가의 사명, 순수냐 참여냐?


황 광 우


2000 논술 교양에서


예술 문화인은 직접적인 정치 활동을 삼가야 합니다. 예술 문화인의 사명은 어디까지나 민족 예술 문화의 진흥과 창달을 위한 활동에 있습니다. 예술 문화인의 전적인 정치 활동에의 개입 내지는 단체적인 참여는 예술 문화의 본질을 모르는 무식의 결과입니다.


― 1965년 7월 10일, 예술문화단체총연합 화장단이 발표한 성명서




‘한 사회의 생산력은 분업의 크기에 비례한다.’는 명제는 일찍이 애덤 스미스가 내 놓은 상식의 하나입니다. 농부는 농사에 충실해야 하고 어부는 고기잡이에 충실해야 하며 선반공은 쇠깎는 일에 봉제공은 옷 만드는 일에 충실해야 하며 그래야 한 나라의 국부가 발전한다는 주장은 지당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 명제가 노동자는 노동만 열심히 해야 하고, 학생은 공부만 해야 하고 문인은 글쓰기에 충실해야 하며 정치는 정치가에게 맡겨놓아야 한다는 주장으로 확대되면 즉각 이의가 제기됩니다. 이에 대해서는 주권재민설이 강력한 논거로 제기됩니다. 정치 권력의 원천은 국민의 주권에 있으며, 국민은 정치가에게 자신의 주권을 위임한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이기에 결코 정치는 소수 정치가의 전유물이 아닐 뿐더러 정치권력이 국민의 뜻을 배반할 시에는 정치권력을 반대하고 무너뜨릴 권리가 국민에게 부여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노동자도 학생도 국민이며 따라서 이들이 정치권력에 대해 반대의 의사를 조직하고 표현하는 것은 국민의 정당한 권리 행사의 일환인 것입니다.


문화 예술인도 예외가 아닙니다. 문화 예술인은 국민의 일원일뿐더러 그 직업의 속성상 ‘국민을 교화해 나갈 의무’를 진 사람들입니다. 앞에서 우리가 살펴 보았듯이 인류는 문자의 탄생이래 문인들에게 사회의 교사로서의 임무를 부여하여 왔던 것입니다.


때는 1965년, 5.16군사 쿠데타를 통해 권력을 잡은 박정희 군사 정권이 조국의 근대화를 위해 일본과 굴욕적인 국교 정상화를 시도하던 시절입니다. 40년 동안 일본의 식민지 통치를 받아 온 우리 민족이 돈 몇 푼 받으려고 일본에게 굽실거린다는 것은 논리 이전에 민족 감정상 용납하기 힘든 것이었습니다. 나라의 운명을 걱정하는 많은 지식인, 학생들은 박정희 정권의 한·일 정상회담에 반대했습니다.


여기에서 예술문화단체총연합의 회장단은 일부 문화 예술인의 정치 참여를 반대한 것입니다. 한편은 정권을 비판하는 유인물을 찍고 돌리고, 거리에서 최루탄을 마시면서 시위를 하고 감옥에 가는 반면, 한편은 정치에 참여하는 문인들을 비난하는, 이런 식의 대립은 우리의 현대사에서 수없이 많이, 사회의 모든 영역에서 반복되어 왔고 그때마다 ‘참여냐, 순수냐’하는 양자 택일의 논쟁이 벌어졌습니다.


참여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문학의 사회적 임무를 중시하는 입장이어서 문인들도 정치적 상황에 책임을 지고 참여해야 하며 문학 작품은 그러한 현실을 반영해야 한다는 주장을 폈습니다. 또 순수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문학의 예술적 기능을 중시하는 입장이어서 문인들의 정치 참여를 반대하였으며 문학은 특정의 사상이나 정치적 입장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는 주장을 폈습니다.


참여를 주장하는 사람은 음식의 영양 공급 기능을 강조한 셈이며, 순수를 주장하는 사람은 음식의 맛을 주장하는 사람이고 보면, 논쟁의 결론은 영양가 좋고 맛있는 음식을 만들자로 될 것입니다. 그런데 음식은 영양가만 충분하면 된다는 주장과 음식은 뭐니뭐니해도 맛이 있고 볼 것이라는 주장은 끝없는 논쟁의 평행선을 달렸습니다. 무려 50년 동안이나 말입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1965년의 문단의 주류를 형성했던 예총이 순수를 주장한 것과는 달리, 1925년의 문단의 주류는 참여를 주장한 ‘카프’였다는 사실입니다. 또 순수는 카프의 참여에 반대하여 제기된 구호였다는 점도 상기해 둘 만합니다.




순수의 고발


다음은 우리가 잘 아는 서정주 씨의 진술입니다.


1931년으로부터 1942년 일제에 의한 우리 어문 말소 때까지 있었던 순수문학이나 순수시의 뜻은 다분히 반사회주의적인 열성에서 생긴 것이다. 1925년으로부터 1934년에 이르는 사회주의 시운동이 빚어낸 무모한 횡포와 조잡안가한 예술품으로서의 가치에 아연한 시인들이 이에 반기를 들고 시의 본연의 자세와 권한을 돌이키는 데서 쓰기 시작한 것이다. 문학은 사회주의 사상뿐 아니라 어떤 한 사상의 단독 통제도 받을 수 없는 것이다. 그와 동시에 문학작품은 무엇보다도 먼저 예술품으로서 성공한 것이어야 한다.




서정주의 ‘한국의 현대시’


여기에서 서정주 씨는 네 가지 사항을 말하고 있습니다. 첫째로 순수시의 출현은 반사회주의적 열성에 기인한다는 것, 둘째, 1925년에서 1934년에 진행된 사회주의 시운동, 흔히 프로문학 계열에서 생산해 낸 작품들이 조잡하였다는 것, 셋째, 문학은 사상의 통제를 받을 수 없다는 것, 넷째, 문학작품은 무엇보다도 예술품으로서 성공한 것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첫째와 둘째는 순수문학의 역사적 배경을 언급한 것이고 셋째와 넷째는 순수문학의 입장을 밝힌 것입니다. 서정주 씨의 견해에 따르면 ‘참여 대 순수’의 대립은 참여 측의 오류에서 시작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면 먼저 사회주의 시운동은 어떠한 것이었는가를 살펴봅시다.


 1919년 3.1운동은 조선의 독립운동이 본격적으로 발전하게 된 민족사적 계기였습니다. 교과서에서는 3.1운동이 미 대통령 윌슨의 민족 자결 선언의 자극을 받아 일어난 것으로 기술하여 왔으나, 3.1운동을 이끈 지식인들에게 결정적인 자극을 주었던 것은 1917년 10월의 러시아 혁명이었습니다. 러시아 혁명을 이끈 지도자 레닌은 권력을 장악한 직후 수세기 동안 차르의 전제적 지배하에 신음하던 소수 민족들에게 즉각적인 독립을 선포했습니다. 지금은 역사의 운동이 바뀌어 사회주의 진영이 자본주의 진영에게 패배한 것으로 귀결되고 있으나, 1917년 당시엔 사회주의 이념과 사회주의 운동은 모든 피압박 계급과 민족들에게 커다란 희망이 되었습니다.


일본의 진보적 지식인들은 대다수 사회주의 진영으로 가담하였고, 일본으로 유학을 간 한국의 젊은이는 그대로 사회주의의 세례를 받게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이후 조선의 독립운동은 민족주의 진영과 사회주의 진영이라고 하는 두 진영에 의해 주도되었는데, 사회주의자들이 독립운동의 대다수를 점하였음은 과장이 아닌 역사적 사실이었습니다. 테러를 투쟁의 무기로 삼았던 김구, 대미 외교를 위해 독립을 청원하였던 이승만, 그리고 실력 양성을 주장한 안창호와 같은 몇몇 유명 인사를 제외하면 민족주의 진영은 취약하기 그지없는 구조를 갖고 있었습니다. 반면 사회주의 진영은 해외에서 공부를 하고 온 젊은 지식인들과 공장과 농촌에서 성장한 노동자 농민들로 구성되었기 때문에, 1920년 이후 조선의 독립운동은 대다수가 사회주의 이념을 옹호하는 자, 혹은 사회주의를 지지하는 자들로 구성되었던 것입니다.


1929년 광주 학생 독립 운동에 관한 한 기록을 봅시다.


1929년 11월 국내에서 일어난 광주 학생 사건은 동경 유학생에게 커다란 충격을 주었다. 당시 일본 유학하는 한국인 학생 연합 회합에는 대개 3파의 대립이 있었다. 민족주의 그룹, 사회주의 그룹, 무정부주의 그룹이 그것이다. 광주 학생 사건을 계기로 한 항일 투쟁에도 이 세 가지 경향이 있었는데 공작과 조직에 있어서는 사회주의 그룹을 따를 수가 없었다. 이 사건만 하더라도 배후 조종은 사회주의 계열이었던 모양이다.


― 헌구 ‘사상계’




채만식의 「치숙」에는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우리 아저씨 말이지요, 아따 저 거시기 한참 당년에 무엇이냐 그놈의 것, 사회주의라더냐, 그걸 하다 징역 살고 나와서 폐병으로 시방 앓고 누워 있는 우리 오촌 고모부 그 양반…




채만식의 치숙 같은 이들이 1925년 조선 프롤레타리아 예술가 동맹을 조직하였는데, 이 단체의 약칭이 카프였습니다. 카프는 그 당시 조선 문단을 이끌었던 이광수와 최남선 류의 소박한 민족주의 문학을 거부하면서 사회주의 문학 이론을 도입, 보급했습니다.


문학은 이데올로기의 한 영역으로서 계급 투쟁으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 역사의 진보의 편에 서고자 하는 이들은 억압 받는 노동자, 농민의 이익을 대변해야 한다는 것, 문학은 이들의 이해와 정서를 객관적으로 묘사하는 데 충실해야 한다는 것 등을 주장했습니다.


카프의 대변자 박영희는 이렇게 주장했습니다.




“문예의 전 목적은 작품을 선전 삐라화하는 데 있다. 선전문이 아닌 문학은 프로 문예가 아니요, 프로 문예 아닌 모든 문예는 문예가 아니다.”




문학의 교시적 기능을 극단적으로 강조한 카프의 입지는 적과 치열한 전투 중인 병사들에겐 절실한 진리일 수 있습니다. 전투 중인 병사에게 필요한 것은 한 알의 총알이요, 적진을 교란시키고 아군을 증강시킬 수 있는 선전문이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모든 문예가 선전문이어야 한다는 데에는 문학이 갖추어야 할 고유의 성질을 간과하는 오류가 들어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카프에 가담한 당시 지식인들의 사상이란 오래된 실천과 연구 위에서 체득한 토착적인 사상이 아니었다는 점, 일본의 동경을 통해 들어온 서구 유럽의 사회주의 사상이 아무런 여과 장치를 거치지 않고 직수입된 것이라는 점, 모든 외래의 문명은 일정한 정정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토착인에겐 매우 생경하게 비춰진다는 점을 참고로 할 필요가 있습니다.


카프의 대표적 평론가 팔봉 김기진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예술이 길다는 말은 새빨간 거짓말이다. 모든 예술은 죽었다. 지금까지의 모든 지배계급의 예술은 무산계급을 타락시킨 죄악이다.”


인류의 전통적인 예술을 깡그리 부정하는 이런 태도는 사실 사회주의 사상의 창시자인 마르크스, 엥겔스와는 무관한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여려 곳에서 노동자 계급은 인류의 예술적 전통을 계승, 발전시키는 주역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김기진은 지금까지의 모든 예술이 지배계급의 전유물이었음에 착안하여 예술의 과거를 전면 부정함으로써 사회주의자의 철저함을 과시하였지만, 이러한 태도야말로 무정부주의자의 것이지 사회주의자의 것은 아니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인간은 역사를 만듭니다. 하지만 역사가 물려준 현실 위에서 역사를 만들어 나가는 것입니다. 따라서 한 인간이 역사가 물려 준 유산을 부정할 수도 없으려니와 굳이 부정하려 하였을 때 그가 설 수 있는 곳은 ‘거친 야만의 문학’입니다.




순수가 추구한 세계


이제 순수문학은 1925년으로부터 1934년에 이르는 사회주의 시 운동이 빚어낸 무모한 횡포와 조잡에 반기를 들고 일어난 문예 운동이었다는 서정주 씨의 언급을 우리는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아마도 걸핏하면 소부르주아적이라 비난을 퍼붓고 계급의 이익이라는 미명하에 문학인의 다양한 개성을 억압하는 사회주의 경향의 문인들에게 심한 적개심을 갖게 되었을지 모릅니다. 동시에 이들이 생산하는 문학의 조잡함, 생경함을 보면서, 문학은 이것이 아닌데, 문학이 해야 할 역할이 이렇게 정치와 사상에 의해 제한되어서는 안 되는데 한탄하면서 문학의 정신을 옹호해야 할 일종의 사명감을 느꼈을 것입니다.


 그들은 거친 현실을 떠나 아름다운 자연에서 시를 발견했습니다. 김영랑은 ‘모란이 피기까지 나는 아즉 기둘리고 있을 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이라고 읊었고 박목월은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술 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놀’을 읊었으며, 서정주는 ‘한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라고 읊었습니다.


일제 시대의 참여 문학이 민족의 독립과 계급의 해방이라는 기치 하에서 활동한 것이라면 순수문학은 그 상황에서 무엇을 추구하였을까요? 순수문학의 이론적 대변자 김동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순수란 문학 정신의 순수이다. 다른 목적에 예속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따라서 본령 정계의 문학이다. 문학 정신의 본령이란 인간성 웅호에 있으며 이 인간성 옹호가 모든 것에 우선하기 때문이다.


-김윤식 「한국 근대 작가 논고」




여기에서 우리는 인간성 옹호라는 아름다운 언어를 만납니다. 인간성이란 옹호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인간성을 억압하는 모든 것은 이 지상에서 사라져야 합니다. 그리하여 모든 인간이 갖는 다양한 개성이 봄날의 꽃처럼 만발하여야 합니다. 그런데 1930년대 일제 강점 하의 조선 땅에서 무엇이 인간성의 자유로운 발현을 억압하고 있었던가? 이 점에 대해 순수론자들은 카다란 착각을 했습니다. 문학의 순수를 추구하고자 하는 그들에게 끊임없이 현실의 참여를 종용하고 자신들을 향해 손가락질을 하는 카프 계열이 문학의 순수를 억압하는 힘으로 다가왔겠으나, 정작 당대의 2천만 대중의 인간성을 억압하는 힘은 분명 일본 제국주의였습니다.


 1931년에는 만주사변이 터지고 1937년에는 중일 전쟁이 터집니다. 지구는 제2차 세계대전을 향해 치닫고 있었습니다. 아시아를 일본의 무력으로 통일하여 대동아 공영권을 만들려 하는 일본의 야심이 본격화되던 그 시절, 조선의 땅에서 살던 대다수 민중들은 풀뿌리로 목숨을 이어가고 있었습니다. 1940년대가 되자 조선은 일본의 전쟁 물자 공급지가 되었습니다. 학생들은 정복 전쟁에 총알받이로 동원되었고, 힘깨나 쓰는 농민과 노동자는 군수물자를 생산하는 탄광과 공장으로 징용되었으며, 조선의 처녀들은 정신대로 끌려갔습니다. 집안의 가마솥, 수저, 제기, 심지어 요강까지도 탄피를 만들기 위해 공출해 갔습니다.


 문학의 순수를 옹호하는 그 자체는 좋았는데, 왜 이처럼 참혹하게 민중의 인간성이 짓밟히고 있던 시절에 제기되었던가? 하는 게 순수 문학론에 제기되는 역사의 물음입니다. 역사는 순수문학 옹호론자의 발걸음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장하도다!


그대는 우리의 오장(일본 육사의 하사) 우리의 자랑


그대는 조선 경기도 개성 사람


인씨(印氏)의 둘째 아들 스물한 살 먹은 사내




장하도다!


그대는 우리의 가미가제 특별 공격 대원(글라이더에 폭탄을 싣고 가 미군의 군함에 부딪혀 자폭하던 비행사)


정성껏 만들어 보낸 비행기 한 채에


그대 몸을 실어 날았다 가 내리는 곳


기쁜 몸짓하며 내리는 곳


조각조각 부서지는 산더미 같은 미국 군함!




우리의 땅과 목숨을 뺏으러 온


원수 영미의 항공모함을


그대 몸뚱이로 내려져서 깨었는가?




장하도다


우리의 육군 항공 오장 마쓰이 히데오여




이 시의 지은이는 서정주 씨입니다. 물론 역사는 이처럼 일본의 침략 전쟁을 옹호한 문인들의 이름을 다수 기억하고 있습니다. 문인들에게마저 순수의 자유를 앗아간 저 일본 제국주의의 가혹과 간계를 우리는 과연 어떻게 탓해야 합니까?


나름대로 문학의 사회적 임무에 치중하려다 패배한 카프가 우리 역사의 한 아픔이라면 문학의 순수성을 옹호하다가 결국엔 ‘친일문학’이라는 가장 치욕스런 딱지를 몸에 새기게 된 순수문학 역시 우리 문학사의 아픔입니다.


김동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본주의적 기구의 결함과 유물 변증법적 세계관의 획일주의적 공식성을 함께 지양하여 새로운 보다 더 고차원적 제3세계관을 지향하는 것이 현대문학 정신의 세계사적 본령이며, 이것을 가장 정력적으로 실천하려는 것이 시방 필자가 말하는 소위 순수문학 혹은 본격문학이라 일컫는 것이다.


― 문학과 인간




일본 제국주의의 물질적 토대인 자본주의도 거부하고 이에 대항하는 사회주의 운동도 거부하는 제3의 세계관, 진정으로 인간성을 옹호하는 문학을 창조하겠다는 야무진 김동리의 야망은 어떻게 되었던가요? 그리하여 까 만든 작품은 ‘무녀도’, ‘바위’, ‘역마’였습니다. 이들 작품 속에서 그가 구현한 것은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를 넘어선 지점의 정신이 아니라 자본주의도 사회주의도 모르는 원초적 세계의 인간성, 샤머니즘적 운명관에 지배되는 인간성이었습니다. 김동리는 이런 귀착을 정당화하기 위해 “아무리 몽환적이고 비과학적이고 초자연적인 현상이더라도 그것은 가장 현실적이고 상식적이고 과학적인 다른 어떤 현상과 꼭 마찬가지로 리얼리즘이 될 수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에게 중대한 현실로 여겨진 몽환적이고 초자연적인 현상이란 객관적인 입장에서 볼 때 현실을 도피한 순수문학의 동굴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이 동굴 속에서는 결코 현실 정치의 불순으로 더럽히지 않은 문학 그 자체의 순수를 보지(保持)할 수 있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 순수는 현실의 불순과 피투성이로 싸우는 순수가 아니었습니다.


‘예술을 위한 예술’, 이 구호는 프랑스의 콩스탕이 1804년 그의 일기에서 최초로 사용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보들레르(프랑스 시인)는 유용성이 예술에는 가장 적대적인 것이며, 예술은 모든 도덕적 제약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고 예술지상주의를 옹호했습니다. “부도덕한 책이라고 하는 것은 없다. 잘 쓰여진 책과 서투르게 쓰여진 책이 있을 뿐이다.”라고 마란 오스카 와일드 역시 예술 지상주의를 편든 사람이었습니다.


서구 유럽 문예에서 예술지상주의를 철학적으로 보장해 준 이는 칸트입니다. 칸트는 미적 대상은 공리적 대상과 전혀 다른 것으로서 무목적이 미의 목적이며 아름다움과 숭고함을 즐기는 것이야말로 다른 어떤 것도 제공하지 못하는 미의 독자적인 가치라고 말함으로써 미의 자율성을 주장한 철학자였습니다. 이렇게 볼 때 ‘예술지상주의’는 하나의 치밀한 이론이라기보다 비슷한 생각들을 한데 묶어 놓은, 문예의 한 경향이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서구 유럽에서 예술지상주의가 등장하게 된 데에는 예술가들의 생존권과 깊은 연관이 있었습니다. 자본주의가 모든 인간의 노동 생산물을 상품화하면서 예술품마저 시장의 논리에 걸려들게 되었습니다. 시장에서는 구매자의 수요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상품은 공급의 중단을 강요받습니다.


그런데 예술품의 구매자들은 모두 기본적으로 부르주아 계급에서 나왔습니다. 부르주아지의 천박한 욕구가 시장을 매개로 예술가들의 창작 행위를 지배하게 되었을 때, 예술가들은 ‘시장을 위한 예술’이 아니라 ‘예술을 위한 예술’을 부르짖으면서 예술 창작 활동의 자유를, 예술가의 생존권을 옹호하였던 것입니다. 미국의 청교도들이 영국의 식민지 지배로부터 ‘독립 선언’을 하였듯이 예술가들은 부르주아지로부터 ‘예술의 독립 선언’을 제기한 것입니다.


19세기의 유럽은 자유와 민주주의를 구가한 사회라고 우리는 알고 있지만, 실제로 그 내막을 들여다 볼 때, 문필 활동에 대한 국가의 감시, 간섭, 억압은 여느 독재 국가와 마찬가지였습니다. 툭하면 문인들은 체포 구속되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예술은 예술 그 자체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어서 그 누구로부터도 간섭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이 예술을 위한 예술의 의도였습니다.


이렇게 볼 때 서구 유럽에서의 예술지상주의와 일제 시대의 순수 문학론은 문예인들의 예술적 생존권의 옹호라는 맥락에서 공통점을 지닙니다. 시대가 예술가들의 창작열을 따뜻하게 감싸주지 않을 때 예술가들은 시대를 버리고 자신들만이 사는 동굴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학은 비단을 짜기 위해 아무도 보지 않는 밀실을 요구했습니다. 밀실은 아름다운 비단을 짜내는 작업 공간이었습니다. 참여를 주장하든 순수를 주장하든 모든 예술가에게는 이 밀실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어느 쪽을 주장하든 그의 노동의 결과 당대의 인류의 절실한 염원을, 예술적으로 형상화해 냈는가는 여전히 문제로 남습니다.


58. 나노의 세계


현대는 매크로, 마이크로 시대를 넘어 나노의 세계에 접어 들었습니다. 원자의 구조까지 파악할 수 있는 나노 과학이 전 세계의 운명을 결정하게 될 것입니다.


서울대 물리학과에 근무하고있는 국양(42) 교수. 그는 우리 나라에 나노 과학의 씨앗을 뿌리고 있는 선구자다. 특히 국교수는 나노의 세계를 직접 관찰할 수 있는 주사형 터널링 현미경(STM: Scanning Tunneling Microscope)의 세계적 권위자다.


나노 과학은 물질을 원자 단위에서 다루는 학문이고 STM은 물질을 나노 단위에서 관찰할 수 있는 실험장치입니다. STM은 반도체, 화학, 유전공학 등 폭넓은 분야에서 활용될 수 있습니다.


STM현미경은 양자역학의 터널링 현상을 이용한 것. 터널링 현상은 진공상태에서 도체의 표면에 원자 크기의 날카로운 침을 1나노미터 이내로 접근했을 때 진공이라는 에너지벽을 전자가 뜰고 지나가는 현상을 말한다. 이 현상을 이용해서 표면의 전자밀도를 컴퓨터로 나타내면 나노의 세계를 육안으로 식별할 수 있다.


전 세계적으로 나노기술 연구에 제일 많이 투자한 곳은 컴퓨터 공룡기업 IBM입니다. STM도 IBM 연구소의 하인리히 로러 박사와 거드 비니히박사가 제일 처음 개발했죠. 국내의 경우 아직 투자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고 기술 축척도 더딘 편입니다.


세계의 나노 과학은 눈부시게 발전하고 있다. 지난 90년 IBM 알마덴 연구소의 연구진들은 STM을 이용, 제논 원자 하나하나를 끄집어내 니켈(Ni)의 표면에 IBM사의 로고를 그렸다. 또한 스탠포드 대학 연구진들은 STM을이용해서 사방 20마이크론(10만분의 2미터)의 금속에 링컨의 게티스버그의 연설전문을 새기기도 할 정도라고 국교수는 전한다.


현재 국내에는 전북대, 한국전자통신연구소, 표준연구원에서 STM을 가지고 있고 서울대에는 국교수가 직접 만든 3대의 STM이 있다. 삼성과 LG에서는 터널링 현상이 아닌 원자의 힘과 물질과의 거리를 이용한 [원자 힘 현미경(Atomic Force Microscope)]으로 나노의 세계를 연구하고 있다.


고대 그리스에서 자연과학이 태어난 지 2천5백년만에 인류는 마침내 나노세계에 도착했다. 기계론적 세계관을 갖고있는 서양과학은 생물이 여러 부품으로 구성돼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서양과학자들은 그 생명체의 [부품]을 찾아 지난 수 세기동안 헤매었다. 그 결과 생명체의 기본단위체로 [세포]가 존재함을 알았고, 각 세포 안에서 생명유지 기능을 관장하는 DNA(deoxyribose nucleic acids)라는 유전정보 물질이 있음을 밝혔다. 더욱이 DNA가 생체분자의 생합성 정보뿐 아니라 생체기구의 구성과 본능적인 생존방법 등이 수록돼 있는 생명정보의 집합체임을 알았다. 다시 말해 DNA는 생명체의 종합설계도였다. 20세기를 마감하는 이 시점에서 인간은 분자수준의 정밀도를 갖고 생명현상을 이해하고 활용하게 되었다. 이제 인류는 분자의 세계를 넘어 원자 세계의 탐험을 시도하고 있다.


원자의 세계는 기본적으로 나노월드다. 고체 원자 사이의 거리는 0.2나노미터, 수소원자에 포함된 전자의 지름은 약 0.1나노미터다. 즉 나노과학은 물질을 원자 단위에서 다루는 학문이다. 유전정보를 가지고 있는 DNA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염기배열로 이루어져있다. 이러한 염기배열의 세계는 본질적으로 나노월드다. 인간의 근원을 탐구하는 학문, 인간자체를 변형시키는 학문인 유전공학도 수백 년의 세월을 거쳐 나노의 세계에 이르렀다.


유전공학은 어떤 경로로 나노의 세계에 이르렀을까.


현미경으로도 잘 보이지 않는 대장균 세포 안을 살펴보자. 대장균은 사람의 대장에 존재하는 단세포 미생물이다. 대장균은 단순한 포도당과 소금과 같은 무기염만 있으면 수천~수만 개의 정교한 생체분자를 합성해가며 살아간다. 현대 과학의 눈으로 보아도 기적과 같은 일이다. 어떻게 그 복잡하고 정밀한 생체분자를 시간에 맞추어 일사불란하게 제조하며 에너지를 생산하고 공급하면서 자기방어와 세포 번식을 하며 살아가는가. 다른 대장균 세포를 만드는데 불과 30분밖에 걸리지 않는다. 엄청난 일이다. 과학자들은 세포 내에는 현대 과학의 수준을 넘어서는 놀라운 일이 벌어짐을 알게됐다.


19세기 중엽부터 과학자들은 생물의 유전현상을 연구하면서 그 유전정보를 수록하고 있는 유전물질을 찾아왔다. 1백년이 지나 유전물질이 DNA라는 것이 규명됐다. 결국 유전현상은 이러한 생체분자의 합성정보들의 종합적인 표현이라는 것이 밝혀진 것이다. 결국 생명 현상을 분자수준으로 이해하게 된 것이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과학자들은 이 유전자의 합성정보를 가공하는 방법을 강구하기 시작했다. 나노의 세계에 첫발자국을 뗀 것이다.


사람의 췌장은 인슐린이라는 호르몬을 만들어 인체 혈당을 조절해준다. 그 호르몬이 없으면 사람은 당뇨병에 걸린다. 그렇다면 인체 인슐린의 유전정보를 대장균에 넣어 이를 통해 인슐린을 생산할 수 없을까하는 의문이 생겼다. 이런 방법으로 대장균이라는 미생물이 사람의 인슐린을생산하게 된 것이다. 마침내 믿기 힘든 새로운 과학기술이 탄생했다. 나노월드의 정수, 유전공학이 등장한 것이다.


인체 인슐린은 최초의 유전공학 상품이 되었다. 과학자들은 이 유전공학도로 발전시켜 나갔다. 세포 내에 있는 수천수만 가지의 정교한 생체분자의 생합성 체계를 활용하려는 시도가 계속됐다. 즉 생체 합성체계를 모방, 수천~수만의 생체분자와 함께 정밀 화학물질을 만들어서 새로운 의약품이나 상용제제를 간단히 제조할 수 있게 됐다. 이를 위해선 더 많은 유전정보와 그 생체기능의 이해가 필요했다. 선진국에서 시작된 인간지놈(Genome) 프로젝트. 이 프로젝트는 사람을 위시한 생물의 총체적인 유전정보를 확보하여 활용하자는 것이다. 유전공학의 활용기술은 현재 화학산업을 대체할 유일한 기술이기 때문이다. 이미 21세기를 대비한 새로운 생물산업이 모습을 나타내기 시작한 것이다.


유전공학의 도래는 생명 현상을 체계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고 그 생체 기능을 이해함으로써 농업과 의술에 일대 전환을 가져왔다. 동식물의 유전형질 전환을 통해 농식물의 생산성을 증가시켰고, 사람의 새로운 생체분자를 탐색하고 꼭 필요한 호르몬 등을 유전공학적으로 생산함으로써 의료 수준을 높일 수 있었다. 심지어 유전자 결함으로 발생하는 유전병을 근원적으로 치유할 수 있는 유전자 치료에까지 개발됐다. 가히 혁명적이라 아니할 수 없다.


이와 함께 생체모방 기술도 등장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생체기능 중에 인간의 두뇌작용, 생체감지장치, 식물의 광합성, 그리고 동물의 동력기관 등 현대과학으로 모방하기 어려운 생명체 수준의 과학현상들이 있다. 이것들은 과학자의 도전 대상이자 이상이다. 생물의 전 유전정보가 밝혀지면 그 과학현상들을 관장하는 구체적인 기구들을 인공적으로 조절할 수 있게되고 결국 그러한 생체현상을 모방할 수 있도록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유전공학은 생물의 구성을 분자수준에서 이해하게 하였고 생물의 유전정보를 대량 확보케 하였다. 그리고 이제 분자의 세계를 뛰어넘어 원자의 세계-나노의 세계-의 탐험을 시도하고있다. 이러한 흐름은 생명과학의 지평을 한차원 넓게 열어줌으로써 생명현상에 대한 이해와 함께 그 응용의 폭을 넓고 깊게 만들어 줬다. 또 유전공학은 우리로 하여금 인간의 범주를 벗어나 자연이라는 위치에서 모든 생물을 생각하게 했다.


인간과 생물이 서로 구별되거나 배타적인 관계가 아니고 서로 보완적인 존재라는 것이다. 결국 [생명]이라는 관점에서 서로 유기적으로 움직이고 더 나아가 자연과도 조화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결국 생명현상의 원리로 하는 새로운 [자연주의]가 문명권에 등장했음을 알리는 것이다. 유전공학은 이제 나노월드와 함께 인류 문화의 새로운 흐름까지 제시하게 된 것이다.


나노는 10억분의 1을 나타내는 접두어. 밀리가 1천분의 1이고 마이크로는 1백만분의 1이다. 사람의 눈으로 볼 수 있는 먼지입자의 길이는 0.1밀리미터. 나노미터라면 그 1억분의 1인 셈이다.


가장 완벽한 나노월드는 인간의 뇌. 컴퓨터 과학자들의 지상목표는 [사람 닮은 컴퓨터]를 만드는 것이다. 인간의 두뇌는 현존하는 어떤 컴퓨터보다 놀라운 기억용량을 가지고 있으며 처리속도도 뛰어나다. 두뇌의 정보처리는 컴퓨터의 그것과 몹시 유사하다. 뜨거운 컵을 잘못 만져 순간적으로 손을 떼는 0.13초짜리 행위 하나만 보더라도 뜨겁다는 정보의 입력, 메모리를 거쳐 CPU에서 손을 떼라는 행동을 운동신경에 전달하여 손을 떼게 만드는 출력 등 정보처리 순서를 모두 거친다. 또한 [저 컵에 손을 대면 뜨겁다]는 정보를 하드디스크에 저장하여 조심하도록 만든다. 이 모든 것이 1백40억개가 넘는 뇌세포의 디지털 작용에 의해 이루어진다.


그러나 컴퓨터와는 달리 인간의 뇌는 아날로그와 디지털을 모두 갖추고 있다. 유전자의 자기복제는 정확한 디지털인 반면, [달다], [아프다] 등의 감각은 아날로그에 가깝다.


1893년. 이 땅에 전화가 처음 들어온 이후 10년 동안 대한제국을 통틀어 단 10대의 전화가 있었다. 서열이 엄격했던 그 당시 윗전에 전화를 걸라치면 법도가 여간 복잡하지 않았다. 의관을 단정히 한 뒤 전화기 앞에 엎드려 큰 절을 세 번씩 올려야 했다. 그것도 모자라 노인들은 전화를 덕진풍(도덕을 닳게 하는 바람)이라 부르며 전화로 문안인사를 하는 당대의 오렌지족 신세대를 나무라곤 했다. 전화의 등장은 우리 민족 고유의 친견문화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사건이었던 것이다.


1백년이 지나 세종로통에 붙어있는 전화회사 광고판은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문안전화, 작은 효의 시작입니다.] 그나마 전화라도 없으면 부모자식간에 생이별 신세를 겪어야 할 만큼 현대 사회는 정신없이 돌아가고 있다.


 그렇지만 나노 테크놀로지 덕분에 조만간 우리는 친견의 미덕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동선에 비해 5만배나 전송능력이 뛰어난 광케이블이 목소리와 글자, 사진, 동화상까지도 빛의 속도로 실어날라 화상전화를 가능케 할 것이기 때문이다.


눈부시게 진보하는 세계의 근저에는 나노 테크놀로지가 있다. 언제나 기술은 사회적 요구의 산물이었다. 남보다 많은 정보를 빠르고 정확하게 처리해야 하는 정보화사회는 나노기술의 혁신을 재촉한다. 나노기술이 가장 맹위를 떨치고 있는 분야도 바로 정보처리 부문이다.


정보를 저장하는 메모리칩의 역사는 같은 면적에 더 많은 데이터를 담기 위한 회로기술 혁신의 역사다. 1983년 IBM이 생산한 1메가비트(1백만비트저장)칩의 회로선폭은 1μ(미크론 1백만분의 1미터). 최근 일본 NEC가 발표한 1기가(10억)비트칩은 1메가비트칩 1천개에 해당하는 용량을 자랑한다. 놀랍게도 이 칩의 회로선 폭은 0.15μ, 즉 150나노미터. 몇 년 후 우리는 나노의 세계에 정보를 저장하게 될 것이다.


컴퓨터의 두뇌 마이크로프로세서도 마찬가지. 인텔의 고든 무어 전 회장은 이미 30년전 [한 개의 다이(die)에 집적할 수 있는 트랜지스터의 수가 3년마다 4배씩 증가하고 회로의 선폭도 10%씩 가늘어진다]고 예언했다. 실제로 인텔이 1979년에 발표한 8088칩은 3천5백개의 트랜지스터를 갖고있었던데 반해 10년뒤 89년에 나온 486DX칩에 내장된 트랜지스터는 1백20만개로 3백배가 넘는 고집적도를 실현했다. 올해 선보인 P6칩은 무려 6백만개의 트랜지스터를 집적했다.


사실 우리는 이미 나노기술이 구현돼 있는 환경에 젖어 살아가고 있다. 근래에 흔해진 휴대전화는 주파수 대역이 900메가㎐, 즉 9억㎐다. 1초에 9억 번의 사이클을 그린다면 결국 한 사이클 당 9억분의 1초가 걸리는 셈이다. 우리는 [10억분의 1]을 전혀 의식하지 않고 나노의 세계를 60만원에 자유로이 들고다니는 것이다.


나노월드의 상징은 광기술. 우리 나라에서도 광케이블을 통해 100메가 bps(초당 전송비트수)의 데이터전송이 가능하다. 빛의 속도로 무한정 발전할 수 있는 광기술은 교환기 등만 받쳐주면 가까운 미래에 1기가bps까지도 실현할 것이다. 즉 1초당 10억비트의 데이터를 쏘아보낼 수 있다는 뜻이다. 바꿔 말하면 비트당 10억분의 1초밖에 안 걸린다. 이만한 전송능력이면 고품질TV 수준의 화질을 갖춘 화상회의가 가능하다.


나노 기술은 디지털 혁명의 산물이다. 사람의 모든 행동양식과 사물의 존재양식을 0과 1의 부호로 해석하는 디지털 혁명은 현실세계를 정확히 모사한 가상의 세계를 창조한다. 20세기가 영상의 시대였다면 21세기는 가상의 세계. 가상현실이 인류의 미래를 바꾸어 놓는다. 사람의 오감에신호를 느끼게 해서 존재하지 않는 시간과 공간을 만들어 내고 그 안에서 마음대로 상황을 변화시킬 수 있다. 이것이 가상현실이다.


가상 현실은 컴퓨터기술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생체공학과 인지과학, 의학 등 인간에 대한 연구와 경험을 종합해야만 한다. 인간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의 속성에 대해서도 완벽한 정보를 갖고 있어야 [현실]을 창조할 수 있다. 말 그대로 인류의 학문과 기술의 총아가 [가상의 세계]를만들어 낸다. 나노 테크놀로지는 이 모든 영역을 포괄한다.


그러나 더 많은 정보를 더 빨리 처리하는 나노 테크놀로지가 항상 쓸모있기만 한 것은 아니다. 앨빈 토플러 SMS [미래의 충격]에서 (선진국이 겪고 있는 인간소외, 가족해체는 고속병 탓)이라고 경고했다. 빠른 기술의 발달이 오히려 인간들 사이에 위화감을 조성하고 사회적으로 가진자와 못 가진 자의 격차를 심화시킨다는 지적이다. 변화가 있다면 [가졌다]의 기준이 돈이 아니라 정보라는데 있다. 가상의 세계에 익숙해진 사람들이 현실사회에 적응할 수 있을 것인지 걱정하는 사람들도 있다. 나노월드의 문화적 아노미 현상이다.


그렇다면 누가 나노 테크놀로지를 필요로 하는가. 이 말은 누가 나노월드에 살고 있느냐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미국 광고계에서 만들어낸 신조어 [테크노 새비]는 말초적 호기심이나 게임 같은 오락에 몰두하는 X세대 [사이버 펑크] 또는 [오다큐]족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전문 직종에 종사하면서 평균 이상의 학력과 개인소득을 가지고 기술의 천문학적인 발달을 실생활에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테크놀로지에 열려있는 사람들]을 일컬음이다. [파란 넥타이 줄무늬 팬티]가 아닌 삐삐, 휴대폰과 컴퓨터가 이들의 상징물이다. 이들은 새로운 멀티미디어 기기가 시장에 나오면 누구보다도 먼저 반응을 보이는 강력한 잠재 구매층이다. 신문이나 잡지보다는 PC통신, 인터넷으로 중요한 정보를 얻기 때문에 네트워크에 만들어진 가상의 공간-사이버스페이스(Cyber Space)에서 이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전문가들이 앞으로 3~5년 내의 상용서비스를 기대하는 500개 채널의 [대화형TV]나 값싸고 실용적인 가상현실 장비의 첫번째 타깃은 이들 [나노 세대](Nano Generation)이다.


지금 인류는 [마이크로-메가] 즉 백만단위의 시대에서 [나노-기가]의 시대로 1천배의 비약을 경험하고 있다. 그렇다면 앞으로 10년 후의 상황은 어떻게 변해 있을까.


풋나기 엔지니어 김경숙씨(25). 그러나 자칭 [삼성그룹을 좌지우지하는 거물급 인사]다. 요즘 반도체 수출로 단군 이래 최대의 수익을 올리고 있는 삼성전자에서 그녀는 반도체 생산의 첫 단계인 마스크 작업을 맡고 있다. 회로 원판을 디자인하는 일이다. (시작이 반이잖아요. 제가 처음에 잘 시작해야 좋은 제품이 나오지요.) [김경숙씨가 없으면 반도체도 없다]고 옆에 앉은 동료들이 거든다.


훤칠한 키에 웃을 땐 살짝 드러나는 덧니가 싱그러운 그녀는 이화여대 물리학과를 졸업하자마자 삼성사람이 됐다. 작년 1월 여성전문인력 공채에 응모한 그녀는 치열한 경쟁을 뚫고 연구기술직 1기로 입사했다.


반도체연구소 포토마스크팀에 배속됐다는 말을 듣고 뛸듯이 기뻤어요. 물리를 전공했고 컴퓨터와 CAD(컴퓨터응용설계)에 관심이 많아서 내심 반도체 일을 해봤으면 하고 바랐거든요.


전자총에서 발사된 전자파로 마스크 원판에 회로를 그리는데 이때 마스크를 전후좌우로 움직이도록 컴퓨터로 조종하는 일이 그녀에게 맡겨진 임무. 최근 개발된 2백56메가 D램의 회로 선폭은 0.248미크론(248 나노미터)이다. 전자현미경으로 봐야 식별이 가능한 미로의 세계를 설계하기 위해 CAD 데이터를 정확히 산출해야 한다.


나노 테크놀로지를 구현하려면 기가(giga:10억) 테크놀로지가 필요하지요. 2백56메가 D램을 디자인하는데 제가 혼자 쓰는 데이터량이 50기가바이트쯤 됩니다.


나노 세대 김경숙씨의 하루는 새벽 4시에 열린다. 오전 5시50분 출근버스에 오르면 30분만에 기흥연구소에 도착한다. 간단히 아침식사를 마치고 7시쯤 컴퓨터 앞에 앉으면 그때부터 하루종일 나노의 세계에 몰입한다. 퇴근 후 강남에 있는 영어학원에서 두시간 동안 TOEIC을 배우고 오후 9시에 용답동 집에 도착한다. 바늘을 찔러넣을 틈도 없이 빡빡한 하루지만 그래도 데이트할 짬은 있단다. 평균 5시간밖에 못 자도 피곤하진 않다. 신세대답게 모든 스트레스는 퇴근버스를 타는 순간 몽땅 잊어버린다. 그리고 일요일은 만사를 제치고 완전히 쉰다.


물론 신세대죠. 저는 [노](No)라고 얘기할 수 있거든요. 또 예측불가능한 행동으로 기성세대를 깜짝 놀라게 한다고 주위에서 그러죠. 할 얘기는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러나 그녀는 자기 일에 책임질 줄 아는 신세대다.


사실은 일하면서 좌절과 고민이 많아요. 내가 잘해야 회사가 잘된다는 생각 때문에 일이 잘 안 풀리면 잔뜩 긴장합니다.




미국 최대의 유통체인 [월마트]의 중역들에겐 [기저귀]에 관해 한동안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가 있었다. 역대의 판매 실적을 분석해보면 기저귀의 판매량과 맥주의 그것 사이에 모종의 연관이 있다는 게 분명했다. 그것도 퇴근 시간 이후, 특히 금요일 저녁에 확연하게 나타났다. 기저귀는 아기엄마가 사는 것이 상례이고 맥주를 마시는 것은 주로 남자들의 몫인데 도무지 이 상반되는 소비층을 잇는 함수관계가 드러나질 않았다.


급기야 시장 조사 기관까지 동원해 실사에 나선 월마트는 전혀 예상치 못한 해답을 얻었다. 기저귀와 맥주를 동시에 사는 소비자는 바로 미국의 공처가 유부남들이었던 것이다. 금요일 저녁 퇴근길에 수퍼마켓에 들러 아기 기저귀와 함께 미식축구를 보며 홀짝거릴 식스팩(맥주6병 묶음)을 사는 이들이 의문의 주인공이었다.


그동안 유통체인들은 품목과 고객, 계절, 가격 등 수천 가지 변수에 따라 일목요연하게 정보를 뽑아내는 이 비장의 데이터베이스로 절묘한 마케팅전략을 수립해왔다. 그러나 [기저귀] 사건은 이런 전통적인 데이터베이스로는 풀 수 없는 문제가 산재하고 있음을 증명했다.


최근 다양한 정보출처로부터 수집된 데이터를 종합하는 [데이터 웨어하우스](정보창고)라는 개념이 새로운 관심거리가 되고있다. 세계적인 유통업체들은 물론 금융, 보험, 정보통신업체들이 눈을 반짝이며 달려들기시작했다.


브리티시 에어라인은 탑승객들이 던지는 천차만별의 데이터를 여러 개의 DB에 분산수용해 가장 수익성 높은 운항로를 선별해내고 있다. 누가 언제, 어디서, 어디로, 어떤 가격을 내고 비행기를 타는지를 입력하고 그들의 요구사항과 각국 또는 각 여행사의 항공상품 가격을 DB에 쓸어담는다. 이 회사가 쓰는 [테라데이터DB]는 이미 2백기가바이트까지 차있다.


[데이터 웨어하우스]의 특징은 데이터량이 엄청나게 크다는 점이다. 월마트의 정보창고에는 5천기가바이트에 달하는 데이터가 쌓여있고 또다른 유통업체 머빈은 7백기가바이트 용량의 데이터를 갈무리하고 있다.


수퍼마켓에서 물건을 사거나 비행기를 탈 때, 은행에 예금을 할 때 내동작과 표현이 곧바로 나노의 시스템에 복제되어 낱낱이 분석된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몇 안 될 것이다. 데이터웨어하우스는 이렇듯 현실세계를 디지탈로 복제한 나노월드의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나노월드는 컴퓨터와 반도체기술이 펼치는 멋진 신세계를 열어주고 있다.


[정보창고]처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도무지 풀 수 없었던 문제가 해결된다. 오늘날 사무실이나 가정에 놓여있는 PC는 10여년전 수퍼컴퓨터 수준이다. 미국 인텔사의 1백MHz 펜티엄 칩을 장착한 PC는 88년 크레이리서 치사가 내놓은 [크레이 Y-MP] 수퍼컴퓨터의 처리능력에 버금간다. 게다가 화려한 영상이 펼쳐지는 CD롬 드라이브에 스테레오 스피커까지 갖추고 있어 [업무용] 뿐만 아니라 [놀이용]으로도 제 몫을 충분히 한다. 88년 [크레이 Y-MP]가 개발됐을 때 단 몇 년 이내에 이를 능가하는 [개인용] 컴퓨터를 책상 위에 들여 놓게 되리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반도체 산업에서 나노 기술은 10억비트의 집적도를 이루는 [기가]의 시대를 예고하고 있다. 85년에 1메가비트 칩이 상용화되면서 [메가]의 시대를 열었고 현재 4메가를 넘어서 16메가의 시대에 살고 있다. 책 30페이지 분량을 담을 수 있는 반도체가 5백페이지를 넣을 수 있게 된 것이다. 2005년에는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2질 분량이 들어가는 4기가 D램이 실용화될 전망이다.


반도체가 더 많은 정보량을 담고, 더 빠른 처리능력을 실현할 수 있다는 것은 곧 컴퓨터가 처리하는 정보의 양과 질의 문제로 연결된다. 과거흑백 모니터에 문자만을 처리했던 PC는 움직이는 영상과 음성 등 다양한 정보를 처리하는 멀티미디어 기기로 탈바꿈하고 있다. 게다가 멀티미디어정보를 광통신망을 통해 세계 곳곳에 전달할 수도 있다. 전세계에 몰아치고 있는 [정보고속도로] 구축 열기는 세계를 하나로 묶어내고 있다.


나노 기술은 사회구조의 변화를 가져온다. 발전하는 기술 속에서 새롭게 등장하는 세계는 이른바 [디지털의 시대]. 세상을 구성하는 물질의 개념이 디지털의 기본 요소인 [비트]로 대체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최근 미국 서점가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과학서 [디지털의 시대(Being Digital]의 저자 니콜라스 네그로폰테교수(MIT대학 미디어연구소장)은 (앞으로 세상은 물질의 단위가 되는 [원소]에 의해서가 아니라 [비트]에 의해 규정될 것)이라고 말한다. 오늘날 우리가 정보를 얻고 있는 책이나 신문, TV 방송 등의 매체는 이미 디지털화를 시작했다. 같은 내용의 정보를 담은 전자신문, 전자책 등이 등장하고 있으며 TV도 고선명(HD) TV가 개발돼 디지털의 시대를 맞고 있다.


59. 음반 및 비디오에 대한 사전심의제 반대 의견


한 언 섭


하이텔 ID hau922, 95. 10. 11


사전심의제에 관한 자료입니다. 이 자료는 정태춘씨가 준비한 자료로 민자당의 “음반 및 비디오물에 관한 법률 개정시안”에 관한 반대 의견과 문화체육부의 “공륜의 직권심의제” 신설 불가피론에 대한 반론 두가지의 자료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자료 1: 민자당의 [’음반 및 비디오물에 관한 법률’개정시안]에 관한 반대 의견


저는 지난 90년도부터 지금까지 현행’음반 및 비디오물에 관한 법률’에 의해 시행되고 있는 가요창작, 발표에 대한 사실상의 검열제이며 발표 허가제인 “가요 사전심의제” 폐지운동을 줄기차게 벌여 왔으며, 그 사이 저 자신의 창작물로 2종의 가요 음반을 제작하여 당국의 검열을 거부하고 발표하였고, 그로 인하여 당국에 의해 고발 조치되어 현재 재판을 받고 있습니다.


이에 관련한 주무 당국인 문화 체육부는 저를 고발 조치하는 한편, 그 법률의 사전심의 관련 부분에 대한 사회의 반대 여론과 새로운 영상물들에 대한 관련 입법의 필요에 의해 그 법률에 대한 개정 작업을 추진하게 되었고, 우여 곡절 끝에 그 결과가 지난 8월 29일자 공청회(주관:민자당 박종웅 의원 제목:[음반 및 비디오물에 관한 법률 개정을 위한 공청회])를 통하여 나왔습니다.


저는 거기서 나온 개정안 시안을 접하고, 그 재정 취지와 방향에 분명한 반대 입장을 표하며, 다음과 같이 제 의견을 주장합니다.




1. 현행 법의 가요에 대한 사전 심의를 공연윤리 위원회로부터 “받아야 한다”에서 “받을 수 있다”로 바뀐 것이 그간의 일률적인 사전 심의제를 폐지하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으나, 사실은 그 다음 항목들에 공륜의 임의적, 선별적인 [직권심의제]를 신설함으로 해서 사전 심의제가 폐지된 것이 절대 아니다.


2. 이 [직권심의제]는 국내 작가의 발표나 외국음반의 반입 이전에 그 내용에 관한 자료를 공륜이 작가, 혹은 제작자, 반입자에게 요구하여 직권으로 심의할 수 있도록 하여 기존의 사전심의의 기능, 발표나 반입 허가제의 기능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을 뿐더러 이미 발표된 음반에 대하여도 사후 심의에 의해 그 내용의 수정, 삭제 등과 그 음반의 판매, 배포의 중지 등을 명령할 수 있도록 하여 법원의 판결 없이도 예술 창작물에 대한 자유로운 발표나 유통을 산하 심의위원회의 차원에서 통제 할 수 있도록 하는 반민주적, 반문화적인 발상의 법안이다.


3. 이는 우리 현행 헌법에서 명시하고 있는 창작, 표현의 자유 원칙과 예술의 창작과 유통에 대한 검열제나 허가제를 금지하는 헌법의 기본정신에도 반하는 발상이며, 예술의 자유와 예술 상품과 관련한 예술가들의 재산권 행사도 사법부의 결정 이전에 행정부의 재량으로 얼마든지 자의적으로 막을 수 있다는, 구시대적인 행정 편의주의, 낙후된 문화의식의 발로이다.


4. 문체부와 민자당은 우리 헌법 정신과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대중 예술 작품에 대한 검열과 발표 허가제 유지 의도를 포기하고, 오히려 이번 법률 개정을 통해 그간의 검열적 성격의 장치들을 확실히 폐기하여 국민의 예술 창작, 표현, 발표의 자유와 민주사회 시민으로서의 폭넓은 문화 향유권을 전면 보장하라.


5. 정부와 민자당은 이번 개정안에 신설된 공륜의 [직권 심의제]를 철회하고, 예술에 관한 평가는 실정법에 의한 사법적 처리에, 건전한 대중문화 풍토 조성은 방송의 양식과 자체 심의 기능, 수용자의 건전한 비판의식과 자정 활동에 맡겨라.


6. 정부와 민자당은 지난 1930년대, 가요의 초창기에서부터 지금까지 60여년간 이 땅에서 실시돼온 검열 장치에 의해 우리 가요의 질적 발전이 이런 정도밖에 이루어 지지 못했다는 사실을 깊이 통찰하고, 보다 다양하고 참신한 보다 풍부하고 건강한 대중문화 풍토 조성을 위해 이번 개정안의 목표와는 정반대의 대중가요 진흥정책을 강구하라.


7. 야당은 근자의 정부 여당의 움직임에 관련한 합리적인 정책을 하루 속히 내놓을 것을 촉구한다.


8. 헌법 재판소는 지난 94년 5월 본인이 제출한 [가요 사전심의에 관한 위헌 제청 신청]의 건에 대한 결정을 조속히 내려줄 것을 촉구한다.


9.나는 이번 개정안 시안 중 공륜의 [직권 심의제] 신설의도가 포기 되지 않고 강행 입법 처리 기도될 경우, 그 개정 작업을 적극 저지하기 위해 또, 이후에도 우리사회에 진정한 예술 창작, 표현, 유통, 향유의 자유를 확보하기 위해 뜻을 함께 하는 양식있는 시민들과 함께 저력을 다해 나갈 것임을 다시 한번 밝힌다.


1995년 9월 1일


대중 음악 작곡가 겸 가수 정태춘


별 첨


95년 8월 29일자 “[음반 및 비디오물에 관한 법률] 개정을 위한 공청회”자료 내용 발췌와 분석 의견




<개정 이유>


▪ 21세기 영상 산업시대의 본격적인 도래와 국내외 경제적 문화적 여건의 급속한 변화추세에 적극 대응하기 위하여


▪ 현행 법률상의 각종 규체 및 절차를 축소 또는,폐지함은 물론 산업 진흥을 위한 제도적 기반을 마련함으로서


▪ 음반, 비디오물 산업의 민간부문의 자율성을 대폭 신장하고 국제 경쟁력을 강화하여 국가적 차원에서의 육성 발전을 도모하고자 함(이상 전문)




문제점: 개정 이유의 거창한 선언에도 불구하고, 법안의 구체적 조문들을 보면, 규제의 축소, 폐지의 실제 내용은 대단한 것이 없고, 폐지된 어떤 것들도 또 다른 강제적 규제의 틀을 신설하고 있으며, 이 법안 자체가 영상산업시대의 본격적인 도래에 맞춰 이의 육성 발전을 도모하기 위한 법률이 아니라 더욱 정교한 규제와 통제를 위한 법률임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개정 시안의 주요 골자>


가> 문화체육부 장관은 음반 및 비디오물의 제작활동의 활성화 및 유통구조의 개선, 그리고 전자게임산업의 육성 발전 등을 위한 진흥시책을 수립, 시행토록하고 행정 관련 기관, 단체 및 개인등은 이에 적극 협조하도록 함.(전문)


나> [비디오물] 정의에 영화,음악, 게임 기타 오락물 등 새 영상물들을 포함




문제점:


1. 현행 법도 순수 음반물인 [음반]과 음향 영상 복합물인 [비디오물]을 유통화정, 수용방식, 정서적 영향력 등이 확연히 다름에도 불구하고 단일법안으로 묶는 무리함이 있었던 바


2. 이제 이에 더하여 카세트,CD 등 음반류와 일반 비디오물을 물론, 컴퓨터 소프트웨어 프로그램물 전자영상 오락물 등 신종 전자 영상물까지도 이 법안에 포함시켜 동일한 기준으로 감시, 감독하겠다는 불합리한 발상)




다> 생략


라> 음반 및 비디오물 산업의 진흥 및 건전 유통환경의 개선을 위한 [유통환경 개선 부담금]제도를 신설, 각 제작업자에게 부과하고 이 부담금의 관리 운용권을 [영화진흥공사]에 준다.




(문제점:


1. 위의 [유통환경개선을 위한 부담금 징수제의 필요성은 사실 불법 복제 음반 단속업무와 심의기구인 공륜의 운영비 등을 말하고 있는 바,


2. 그간 음악 저작권자들이 사전심의 때 공륜에 일률적으로 납부해 왔던 곡당 3,000원의 심의료 수익이 줄어들게 되자 이에 대한 대안으로 나온 발상으로 보이며,


3. 불법 복제 음반들은 거의 모두 [저작권 무단 침해 행위물]로서 행정당국이 저작권 보호 차원에서 행정부의 인원과 예산으로 보다 적극적으로 단속해 주어야 할 일이며, 공륜의 운영비도 정부에서 전액 부담해야 마땅하고,


4. 또한, 관련산업진흥을 위한 명분으로 보더라도 관련 산업종사자들에게 부담을 주어가면서 (또한, 결국은 소비자가 부담할 수 밖에 없는) 진흥기금 징수제 입법을 추진할 이유가 전혀 없고, 이 기금을 음반법, 비디오물 업계와는 전혀 관련이 없는 [영화진흥공사]에서 관리,운용케 한다는 발상도 터무니 없음.


5. 또, 신종영상물에 대한 심의를 공륜에서 굳이 맡겠다는 주장이나 정부의 통상 산업부, 보건 복지부 등 관련 타부처와의 심각한 마찰을 일으키면서까지 문체부가 심의 주체로 나서고 있는 것도 사실은 그 막대한 심의료와 관련이 있을 것임)


마> 외국 음반,비디오물의 수입, 반입시 현행 문체부 장관의 허가제에서 공륜의 추천제로, 복제 허가제는 폐지.


문제점: 외국의 음반물과 비디오물 수입에 있어 과거보다 더욱 원활하게 하겠다는 것인지 또, 그것의 원활을 기하기 위한 것이라면 자국 문화의 보호와 무절제한 외국문화의 범람 등(특히 대중가요에서) 과연 어떤 기대를 가지고 있다는 것인지 의심스럽다.)


바> 음반에 대한 일류적 사전 심의제는 폐지하고 사후 공륜의 강제적 직권심의제와 그 결과에 따른 음반의 내용 수정 삭제, 판매 배포 중지 명령권 등 공륜에 강제적 이행명령 권한 부여




개정안 조문 참조


개정안 제17조 2항


“판매, 배포, 대여등의 목적으로 음반을 가조하거나 수입, 반입 추천을 받고자 하는 자는 당해 음반의 내용에 관하여 미리 공연윤리위원회의 심의를 받을 수 있다(광고물 동일)”




현행법의 “심의를 받아야 한다”에서 “받을 수 있다”로 강제성이 없어지면서 사실상의 일률적 사전심의제는 폐지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다음의 구체적인 조항의 내용들을 보면 그것이 기존 사전심의제의 완전한 철폐가 아니라는 것을 또한 알 수 있다.




제4항 “공연윤리위원회는 제 18조 제 1항 각호의 내용에 해당된다고 인정되는 음반에 대하여는 제 2항의 규정에도 불구하고 심의를 할 수 있으며, 심의 결과에 따라 판매, 배포의 중지 제한 또는 내용의 수정, 삭제 등 필요한 명령을 할 수 있다. 음반에 관한 광고나 선전물의 경우에도 또한 같다.”




제5항 “공연윤리위원회는 음반 또는 비디오물의 효율적인 심의를 위하여 음반 또는 비디오물을 제작하거나 수입 또는 반입을 하고자 하는 자에게 자료제출 등 필요한 요구를 할 수 있다.”




제18조 1항 (심의기준)


1호. 헌법의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되거나 국가의 권위 또는 이익을 손상할 우려가 있는 내용


2호. 미풍양속을 해치거나 사회질서를 문란하게 할 우려가 있는 내용




문제점:


음반에 대한 과거의 사전심의제는 사실상의 검열제, 발표허가제로서 그 심의를 필하지 못하면 누구도 음반을 제작 판매, 배포할 수 없었다.


2. 개정안은 마치 사전심의제가 전면 폐지된 것처럼 말하고 있으나, 제5항과 제4항에 의하면, 음반을 제작하고자 하는 자(이미 제작, 배포한 자가 아니라) 중 기존의 심의 기준과 별로 다름 없는 위의 심의 기준에 어긋난다고 생각되거나 우려되는 자는 공륜의 요구에 의하여 제작 전에 그자료를 공륜에 제출하여 현행과 같은 사전심의를 미리 받아야 하고, 공륜이 이를 심의 통과시키지 않으면 그 음반을 영원히 제작, 배포할 수 없다는 것이며,


3. 이후, 사전심의제 폐지로 이미 제작 배포된 음반에 대하여도 공륜은 직권으로 심의하여 그 내용을 수정, 삭제하도록 지시할 수 있고 또 판매, 배포 금지 조치까지 명할 수 있다는 것은 사법기구도 아닌 일개 심의기구가 대중예술의 발표 허가권과 대


중문화 상품 제작자의 재산권까지도 통제하겠다는 행정만능주의의 위험한 의도를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4. 이러한 개정안의 의도는 사실상 사전심의제의 폐지가 아니라 존치이며, 반합법적인 검열제도, 발표허가제도 유지의 발상이다. 우리 헌법은 창작, 표현의 자유를 명문화하고 있고, 예술에 대한 허가제나 검열제를 용인하지 않는다고 되어있다.


5. 참고로 현재 현행 사전심의제 문제는 정태춘의 검열 거부 사건에 의하여, 법원으로부터 재판중 위헌의 소지가 있다 하여 재판이 중단되고 헌법재판소에 위헌제청신청이 접수되어 있는 상태이다. <헌법재판소 사건번호 94 헌가 6>


6. 위의 제18조 1항 각호의 심의기준은 그 지나친 포괄성과 애매모호성으로 인해 양식있는 이들의 웃음거리로 회자되던 조문인데 개정안에서 다시 튀어나오고 있어 어처구니 없을 뿐이며, 설령 그에 해당하는 내용의 음반이 제작, 배포되어딘자면 현행의 국가보안법에서부터 형법, 풍속사법 단속에 관한 법률이나 청소년 기본법들에 의해 사후에 얼마든지 처벌할 수 있는 갓이다. 필요하다면 그 단속 규정들을 합리적으로 조정, 보완해서 음반물에 의한 사회적 위해들을 다른 예술 장르에서처럼 얼마든지 막아낼 수 있을 것이다.


 7. 특히, 그 1호의 “헌법의 민주적 지본질서.”의 참뜻은 당국의 예술에 대한 검열과 예술작품의 발표, 유통 허가제에 의한 통제의 질서가 아니라 예술인들이 사회의 양식와 실정법을 준수하며 그 안에서 그 검열제와 허가제에 주눅들지 않고 자유로이 예술행위를 하는 것이 진정한 “민주적 기본질서”가 아닌가?


8. 끝으로 문체부 당국자들은 문제의 음반들에 대해 사후 실정법으로만 처리하기에 어려움이 있다는 이유로 ‘판을 다루는 동안 이미 유통이 끝나는 것이 가요이다.’라고 말한다.


물론, 가요의 매체 특성에 그러한 면이 분명히 있다. 또 그런가 하면 가요는 대중에게 반복적으로 방송되어지지 않고서는 전혀 그 영향력을 가지지 못하는 또 다른 면이 있다. 일단 발표된 음반이 문제가 되어 당국이 사법부의 심판을 묻기로 한 시점(고발 등)부터 각 방송사에 방송 자제 요청을 한다면 그 우려는 상당히 덜어질 수 있지 않을까? 어쩌면 그 문제의 음반은 방송사에서 먼저 방송 자제 결정을 내렸을 수도 있을 것이다. 방송사의 자체 판단과 시청자들의 압력에 의해서 말이다. 그 사이에 그 음반이 미칠 수 있는 사회적 악영향이라는 것이 얼마나 대단할 것인가? 또, 그러한 문제의 음반들이 얼마나 많이 나올 것이라고 믿는가?


또, 당국자의 말로는 1만개 중의 두세개 때문이라고 한다. 그들 때문에 이러한 장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는 정말 1만분의 2,3때문에 그렇게 심각하게 위협 당하고 불안해질 만큼 허약한 사회인가?


또 과연 우리 정부나 권력은 정말 모든 국민이나 모든 피지배자들의 모든 행위를 조금도 빠뜨림 없이 통제하고 감독할 수 있으며, 꼭 그래야만 한다고 믿고 있는 것일까? 이건 소름 끼치는 일이다.


사회가 보다 자율적이며 효율적으로 절 조직되어 있다고 하는 선진 외국들의 경우는 어떨까? 그들은 그만한 통제력과 장치들이 없어서 늘 우리보다 국민정서나 사회질서, 국가 기강이 더 문란하고, 불안하고, 부패해 있는 것일까?


당국이나 집권당이 이러한 문화정책에 대한 외국의 입법례를 얼마나 많이 조사해 보았는지 의심스럽다.


우리 가요 작가들은 이제 [사전심의제]든 [직권심의제]든, 그러한 사실상의 정부의 검열제, 허가제를 의식하지 않고 예술적 상상을 하고 창작을 하고 싶은 것이며, 우리 국민은 이제 그러한 [열린 상상력]으로 만들어진 참신하고 새로운 노래를 듣고, 부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자료 2.


문화체육부의 “공륜의 직권심의제”신설 불가피론에 대한반론




문화체육부는 지난 8월 29일, 박종웅 의원에 의해 “음반 및 비디오물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제시된 이후, 그 개정안에 신설된 “공륜의 직권심의제”에 대한 강력한 반대여론에 대해 몇몇 근거로 그 직권심의제의 정당성을 주장해 오고 있습니다.


사실, 이번 개정안은 그간 문체부가 위 법 개정을 위한 토론회를 여는 등 문체부에서 검토, 정리한 안으로서 정부 부처간의 이견 등 우여곡절 끝에 민자당 박종웅의원에 의한 의원 입법 형식으로 이번 국회에서 상정, 통과시키고자 하는 정부 여당의 합의된 개정안입니다.


그러나 그간 당국의 검열(현행 사전심의제)를 의식하지 않는 예술적 상상과 창작을 염원해 오고, 검열 당하지 않고 발표할 수 있는 여건을 학수고대하며 그 사전 심의제의 전면 폐지를 강력히 주장해 왔던 저희 가요작가들로서는 위의 “공륜의 직권심의제”를 절대로 수용할 수 없으며, 다시 한번 심의제의 전면 철폐를 주장하게 되었습니다.


지난 해 저희 가용 창작인들의 단체인 사단법인 “한국가요작가협회”는 가요에 대한 사전심의제 철폐를 골자로 하는 [”음반 및 비디오물에 관한 법률”개정 청원]을 민주당 박계동의원을 통해 국회에 접수시켰으며, 양식있는 대중들의 전폭적인 지지여론에 의해 이번 정기국회에서 개정 통과되기를 기대해 왔습니다.


그러나, 저희 가요 작가들은 이번 문체부의 개정안을 보면서 실망을 금할 수 없으며 다시 한번 직권심의제의 철회를 요구하고, 문체부의 정당론에 대한 반론을 제기합니다.


사실, 문체부의 몇몇 정당론이 공식적인 것은 아니더라도 이번 개정안 실무자들이 음반 관련업계나 언론 등에 설명하고 있는 문체부의 확고한 입장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 바, 그들의 그러한 소아병적 염려와 정책발상에 대한 우리 작가들의 합리적인 반론을 열거합니다.


아무쪼록 차제에 그간의 법에 의한 “가요에 대한 검열제, 발표 허가제”가 전면 폐지되고 가요작가들이 사회일반의 상식과 양식, 실정법의 규범 아래에서 다양하고 참신한 가요, 흥겨우며 품위있고, 수준 높은 가요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될 수 있도록 적극 힘써주시기를 기대합니다.




문체부 정당론의 요지와 반론




1. “직권심의제”는 국내 음악에 대해서는 적용될 가능성이 거의 없으며, 수입 저질 음반을 사전 차단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제도이다. 외국 음반에 대해서만 심의를 한다면 통상 마찰 등 다른 문제가 발생할 수 있어 형평성을 잃지 않기 위해 국내 음반도 이 직권심의 대상에 포함시킨 것이다.”


반론/


1) 국내음반과 수입음반에 대해서 동등한 기준으로 규제법을 적용하는 것이 주권국가의 문화정책으로 정말 옳은 것인가?


2) 산업적으로 경쟁력이 현저히 약한 국내음악분화를 진흥하기 위해 국내문화 우대, 진흥정책을 별도로 만즐지는 못할지언정 또, 물밀듯이 들이닥치는 외국의 상업적 대중문화를 적절히 걸러내고 자국문화의 정체성확보와 자국문화산업의 보호를 위해 적절한 외국문화 유입 통제 장치를 강구하지는 못할지언정 통상산업부도 아닌 문화체육부에서 국제통상문제를 걱정하는 정책이 바람직한가?


3) 프랑스, 독일, 일본 등 외국의 경우 우리처럼 자국문화를 보호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가 전혀 없이 외국 수입문화를 국내의 자생문화와 동일하게 취급하고 있는가?


4) 주권국가인 대한민국이 미국, 일본 등 외국음반의 내용에 대해 심의하는 것이 수입농산물 검역의 경우와 달리 정말 국가간 통상마찰을 일으킬 문제인가? 또 통상마찰문제는 통상산업부의 관할 아닌가?


 5) 외국음반에 대해서든 국내음반에 대해서든 심의에 의해 음반의 판매, 배포 행위를 정부산하 기구(심의기구인 공연윤리위워노히는 국회의 국정감사 대상 기관임)가 임의로 정지, 제한시킬 수 있다는 일은 통상마찰의 대상이 되지는 않는가?


6) 외국의 입법례를 제대로 조사해 본적이 있는가?




2. "문제가 있는 음반을 심의에 의해 미리 걸러내지 않고 사후 실정법에만 의존한다면, 그 음반의 내용에 관한 사법부의 결정이 내려지기 이전까지 방송을 통해 전파되고, 이미 대부분이 유통, 배포되어질 것이다.


여타 예술 쟝르에 대해서는 심의없이 문제가 된 이후 사법적 판단에 따라 처리가 되어도 그 영향력이 음반처럼 심각하지는 않으나 음반의 경우, 청각 매체로서 무작위 대중에게 일시에 급속히 전파되는 특성상 제차상 시간을 많이 요하는 사법적 판단 이전에 심의를 통해 걸러내야 한다.”




반 론/




1) 이번 개정안에 의하면 공륜은 특정한 내용(개정안 제18조 1항:헙법의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되거나 국가의 권위 또는 이익을 손상할 우려가 있는 내용 제2항: 미풍양속을 해치거나 사회질서를 문란하게 할 우려가 있는 내용)에 해당된다고 인정되느 나음반에 대하여 심의를 할 수 있으며 공륜이 그 심의 결과에 따라 특정 음반에 대하여 판매, 배포의 중지 제한 또는 문제된 내용의 수정 삭제등 필요한 명령을 할 수 있다(신설된 제 17조 4항)고 되어있는 바, 이러한 공륜의 권한이 예술창작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고, 예술행위에 대한 검열제나 허가제도를 인정하지 않는다고 되어 있는 우리 헌법의 정신에 위배되지 않는가(위헌소지)?


2) 예술 작품과 대중 예술작품의 창작, 제작, 유통에 관한 중지, 제한, 수정, 삭제 등의 명령을 실정법에 의한 사법부의 판단이 아닌 행정부 산하기관인 심의위원회에서 임의로 내릴 수 있다는 내용은 법리상으로 문제가 있지 않은가?


3) 위와 같은 명령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려면 심의위원을 법률 전문가로 위촉하는 것이 옳지 않은가? 실정법 전문가도 아닌 심의위원들이 국민의 예술작품, 예술상품들에 대해 그러한 강제의 결정을 내릴 자격이 있는가?


4) 현재에도 헌법의 민주적 기본잘서, 국가의 권위 이익 손상 등에 관여한는 “국가보안법” 등으로 음란물 등의 제작, 전시, 배포 등에 관하여는 기존의 “형법” 등으로 기타 청소년 정서에 위해가 될만한 내용을 전시, 배포하는 등의 행위에 대하여는 “청소년 기본법” 등으로 처벌 받도록 되어 있다. 이러한 실정법이 엄연히 시행되고 있음에도 유독 음반업계에서는 심의가 없어지면 그러한 사회에 위해가 될만한 내용의 가요들이 양산될 것이라는 지나친 염려의 근거는 무엇인가?


음반 제작 유통업자들은 특별히 무책임하게 또는 그러한 실정법에 저촉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그러한 위해 음반을 마구 제작, 배포할 것이라는 예단의 근거는 무엇인가?


5) ”청소년 기본법” 시행령 등을 시의에 맞게 손질하여 청소년 정서에 위해가 될 만한 내용의 항목(폭력, 마약, 음주, 흡연, 사행행위 등의 조장과 찬양이나 기타 건전한 청소년 정서에 위해가 될 만한 구체적 내용)과 그 행위자(도서, 도화, 음반, 영상물 등을 제작, 배포, 판매, 열람, 전시, 상영, 방송하는 자 등)의 범위를 보다 구체적으로 폭넓게 명시함으로서 이러한 실정법을 엄격히 적용하는 것으로도 그러한 행위 등을 심의제도 보다 더 합리적으로 예방할 수 있다고 믿지 않는 근거는 무엇인가?


음반 업계는 그 정도의 잘 정비된 사후 실정법으로도 국민정서 위해 행위, 사회질서 파괴행위, 민주적 기존 질서 저해 행위, 국가이익 손상 행위 등을 막을 수 없다는 그 업계는 특별히 준법 정신이 부족할 것이라고 믿는 근거는 무엇인가?


6) 방송은 창소년을 포함한 무작위 대중에게 무차별적으로 음향과 영상을 배포하는 행위자로서 현행 “청소년 기본법”에 의해서도 그뿐 아니라 일반 사회의 실정법들에 의해서도 그 행위의 일정 부분을 사전에 제한(양식 있는 방송의 사회적 책임과 준법정신의 요구)당하도록 되어있다. 게다가 방송은 방송위원회의 윤리규정을 준수하도록 되어있고 또 음반의 경우 각 방송사별로 사별 심의 기준에 의한 사전심의를 실시하고 있다.그러한 방송이 사법부에서 위법성 논란에 있는 음반이나 실정법에 위배되지는 않으나 윤리성이 문제가 되고 있는 음반을 그러한 논란이 법률적으로 다루어지고 있거나 사회적으로 촉발된 이후에도 무책임하게 계속 방송할 것이라고 보는 근거가 무엇인가?


7) 이 법에서 다루고 있는 [음반]이라 함은 그 내용물이 대개 가요가 그 주종이다. 그 가요는 (보다 구체적으로 음반의 내용(영상이 포함되지 않은 순수한 음성과 음향) 즉, 이 법 제정자들이 위험시하고 있는 그 가사의 메시지는)다중을 대상으로 한 방송에 의해서 주로 전파된다. 노래는 방송을 타지 않고는 대중적으로 전파될 수 없다는 것이다. 결국 건전한 대중가요문화의 가장 중요한 주도자, 책임자는 방송이라는 것이다. 물론, 방송아르 타지 않고도 유포되는 노레들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경우의 노래라도 실정법의 테두리를 벗어날 수는 없다. 그러면 그렇게 유통될 수 있는 노래, 방송의 영향력 없이도 유통될 수 있는 노래들의 비중은 얼마나 되며, 그 사회적 영향력은 얼마나 되리라고 보는가?


8)또 실정법에 위배되지 않고 방송윤리규정에도 위배되지는 않지만 특별히 심의를 통해 걸러내고자 하는 음반의 내용들은 도대체 어떤 것들인가? 공륜의 직권심의제도의 진정한 근거는 무엇인가?


9) 과거 60여년간의 사전검열제도를 통해 우리 가요문화의 상상력은 사랑타령의 범주에서 전혀 벗어나지 못했고 대부분의 가요작가들이 그 검열제도의 그즐에서 그 심의장치와 그 기준들에 의해 창작욕을 위축, 왜곡 당해 왔고, 그로 인해 시인등 더욱 능력 있는 작가들의 가요계 진입을 막아 왔다. 그런데 일률적인 사전심의제도는 폐지하겠다고 하면서 직권에 의한 선별적 심의의 근거를 여전히 신설조항을 통해 남겨두는 일이 우리 가요작가들의 자유로운 창작활동에 전혀 부담으로 작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가?


10)외국에도 이런 제도가 있는가? 실정법에 의한 사법부의 판결에 의해서가 아닌, 행정부 산한의 심의위원회가 선별적으로 직권 심의하여 그 결과에 따라 예술작품 혹은, 예술상품의 발표, 배포를 중지, 제한시키고 내용의 삭제 수정을 명령할 수 있는 제도를 두고 있는 나라가 도대체 어디에 있는가?




3. “심의제도를 완전히 폐지한 뒤 문제의 음반이 유통될 경우, 학부모들로부  터의 항의에 시달릴 것”




 반론/




그러한 항의가 문체부로 올 수도 있으리라는 것은 이해되나 그 직접적 책임 주체인 방송사에는 항의가 없을 것인가? 또 방송사들은 그러한 항의 중 합리적인 항의의 취지에도 반하는 방송을 계속할 것이라고 믿는가? 방송위원회는 또 그것을 수수방관할 것인가? 그 정도의 양식과 책임감도 우리 방송사와 관계자들에게 없다고 믿는 것인가?


물론, 방송에 의하지 않고 유포되는 것 중 위법성이 있는 것은 당연히 행정부가 압수, 고발 등의 조치로 막아야 할 것이고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시민들로부터 항의를 받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그 음반이 위법성이 없다면 어떠한 항의에도 문체부의 입장이 곤란해질 이유가 없지 않은가?


반드시 행정부가 아니라도 학부모 등 일반 시민도 모든 위법행위에 대한 고발권이 있고, 그런 것들을 통해 건전한 사회를 만들어 갈 의무가 또한 있는 것이다.


문체부는 문화예술적 견해를 달리하는 다양한 시민의 의견과 자유로운 창작환경을 염원하는 문예 창작인들의 권리를 조정하는 역할도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자유라는 명분으로 일어날 수 있는 지나치게 반사회적인 일탈행위들에 대해서도 감독의 책임이 있을 것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독단적인 문화예술적 견해나 그 강요로부터 다양한 상상력과 표현의지를 가진 독단적인 문화예술적 견해나 그 강요로부터 다양한 상상력과 표현의지를 가진 창작인들을 보호해야 할 의무도 있는 것이다.


민주사회에서 이번과 같은 “심의위원회에 의한 직권심의제도와 준사법적 강제력을 갖는 심의기구적 존치”의 입법의도는 실로 대중 문화예술에 대한 위헌적인 독단의 장치를 정당화하는 것이다.


 문체부는 이제까지처럼 대중예술에 대한 통제를 어떻게 효율적으로 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피해의식의 구시대적 고민에서 벗어나 차제에 우리 대중예술 창작자들이 우리 사회의 법과 규법을 지키며 자유롭게 창작활동을 함으로서 창작자 자신들을 포함하여 모든 시민들이 우리 대중문화의 내용을 얼마나 건강하고 풍부하게 만들어 내고 향유할 수 있도록 도울 것인가를 또 그러한 성숙한 사회의 제도적 여건을 만들기 위해 어떠한 정책이 필요한가를 적극 고민해야할 것이다.


1995년 9월 13일 정태춘




60. 문화 산업의 첨병, 헐리우드


유 지 나


(영화평론가)




대중성을 담보로 한 시장 확보의 선봉


 미래는 영상산업이 주도하는 영상 시대. 영상 산업은 여러 매체로 전이 되면서 세계 시장을 파고드는 고부가가치산업이다. 혹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 봐라 스필버그의 [쥬라기공원] 한편이 올린 수익이 우리나라 자동차 수출액을 능가한다. 이런 담화는 청와대에서 거론되어 매중 매체를 타고 우리에게 강박적으로 매일 쏟아부어지고 있다. 너무 들어서 지겹지만 이 글의 필요성이 그 지겨운 담화가 놓치고 있는 부분에서 시작된 것이기에, 필자 역시 지겨워하면서도 이런 상투구에서 이야기를 도입한 것을 양해해주기 바란다.


 21세기를 목전에 둔 한국에서 영상 산업의 중요성을 모르거나 일가견이 없으면 시대에 낙오되는 것처럼 온 나라가 영화, 영상 산업에 대한 진단과 청사진으로 난리 법석이다. 아니나 다를까, 다른 분야보다 일찌기 세계 시장에 나가 세계가 돌아가는 추세에 누구보다 밝은 대기업들이 앞다투어 영화에의 진출을 선언하고 있지 않은가! 정부의 박자 안 맞는 정책으로 아직까지는 까먹기식 경쟁인 케이블 TV에서도 영화 채널만은 삼성(CATCH1)과 대우(DCN)가 따냈고, 오락 채널인 현대 TV도 수상할 정도로 많은 영화 프로그램을 내보내고 있다. 게다가 갑자기 쏟아져나오는 영화 전문지들. 늦기는 했지만(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최적의 시기란 말을 남긴 이에게 경배를! ), 어쨌든 국가적으로 동원된 우리의 세기말적 영상산업 강박증은 분명 미래의 삶에 대한 비전과 연결된다. 왜냐하면 미래 정보화 사회의 요체는 결국 문자 데이터의 영상 데이타로의 전환이고, 그 노하우를 제공하는 영상 산업은 그 토대가 되는 동시에 21 세기를 대표하는 산업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영상과 연결하라!” 이 말은 아마도 그 시대를 끌어갈 개인, 혹은 집단에게 약속된 비밀의 사원으로 들어갈 문을 여는’열려라, 참깨’일 수 있다. 이제 현실로 돌아가자. 한국에서 헐리우드 영화 점유율 85퍼센트, 영국에선 90퍼센트, 기타 유럽 지역이 80퍼센트 내외. 디즈니 가족 공원이 망할 정도로 미국 문화가 잘 안 먹혀들어간다는 프랑스에서조차 헐리우드 영화가 60퍼센트 이상을 차지한다. 이렇듯 영화를 비롯한 비디오, 방송물 등 미국 영상물의 세계시장 점유율은 70퍼센트를 웃돈다. 미국 내에서도 영상 산업은 자동차 산업을 이미 제쳤고 군사, 항공 우주 산업까지도 제치고 수출 1위 산업이 될 것이란 전망을 낳고 있다.




한 세기간 축적돼온 헐리우드의 저력


스필버그와 루카스가 팀을 이루어 특수 효과 영화로 70년대 칼라텔레비젼의 위세에 주눅들었던 헐리우드를 재기시킨 공헌이 근 20년째 지속되고 보니, 헐리우드 영화제국의 세계 지배를 최근의 사건인 양 떠들지만 사실 그 저력은 한 세기간 축적되어온 것이다. 최초의 영화 발명은 프랑스 뤼미에르 형제가 기록했지만 사실, 같은 시기 에에디슨이라는 발명왕은 이미 비디오 매체적인 영화 장사를 꿈꾸며 키네마 토폰을 발명했다. 영화에 대한 모든 것을 독점하고자 한 에디슨의 지나친, 그리고 너무 앞선 비전이 그를 초라한 영화 장사꾼으로 영화사에 기록했지만 에디슨의 이런 발상은 이미 헐리우드 정신을 대변하고 있다는 점에서 시사적이다. 영화가 탄생(1895년)하자마자 곧(1920년) 대량 생산과 대량 소비 개념으로 산업화시킨 선두 주자는 프랑스와 미국이다. 그러나 규모와 생산성이라는 하드웨어적 측면은 물론, 당시 유럽에서 미국으로 엄청나게 밀려든 이민자들의 다양한 문화와 언어의 차이를 극복하고 평균화 작업을 이룬 소프트웨어 측면에서도 미국 영화는 이미 세계성의 싹을 품게 된다. 영화 산업 초기부터 프랑스는 거대한 샤를르 빠떼사와 고몽사의 독주와 이에 반항하는 영화 예술가들의 투쟁으로 영화의 상업성과 예술성 사이에서 긴장전을 벌이고 있을 때, 미국은 일찌감치 돈과 사회적 모랄을 결혼시킨 영화산업이라는 명확한 결론으로 경쟁 체제의 8대(big 5, little 3) 메이저 스튜디오 시스템을 잡아나간다. 얼마 전 자존심 강한 유럽 영화인이 헐리우드가 어디 미국 것이냐, 헐리우드 영화는 유럽인이 만든 것이다라는 취지의 발언을 했는데 사실 일리가 있는 말이다. 8대 메이저를 설립한 이들 중 20세기 폭스사의 윌리암 폭스는 헝가리에서 이민와 극장을 하다 제작자가 되었고, 워너브라더스의 창립자 워너 형제도 폴란드에서 이민와 영사기를 들고 전국 순회 상영을 하던영화 따라지에서 배급업을 거쳐 제작자로 변신, 성공했다. 이후1,2차 세계 대전을 겪으며 아수라장이 된 유럽에서 경제적 형편이나 이데올로기 문제로 영화 작업이 불가능해진 재능 있는 유럽의 영화인들 이 잇달아미국으로 이민, 망명하면서 헐리우드는 영화 인재의 보고가 되는 행운을 얻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지닌 영화 인재의 결집이라는 점과 영화산업 시스템의 본질이 애초 부터 배급업과 제작업을 직접 연결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다양한 영화를 저렴한 가격으로 배급하는 니켈-오데온 극장 시스템의 극장 체인화가 20년대부터 이루어진 것은 영화의 대량 소비 전략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이것은 즉 영화 배급 수익이 통째로영화 제작에 재투자되어 산업을 확대 재생산시키는 원형 구조를 확보해낸다. 아직도 한국에서 극장 체인화가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지 않은데다, 헐리우드 직배 영화를 제외하고는 정확한 극장통계와 수익 수치가 안나오는 현실을 돌아보면 헐리우드 기준의 영화산업화에서유통 시스템에 관한 한 우리는 적어도 80년을 뒤지고 있는 셈이다.


직배 시스템도 그렇다. 우리가 아무런 대책도 없는 상태에서 어처구니 없이 당한 건 사실이지만 헐리우드는 일찌기 미국 내에서 제작과배급이 일원화된 직배 체인으로 산업의 토대를 닦은 바 있다. 한때 메이저시스템의 제작, 배급 독점이 미국 내에서 독과점금지법에 걸려 위기를 맞긴했지만, 직배 시스템 은 80년대 이후 교묘한 형태로 합법화되어 헐리우드 영화를 해외에 이식하는 강력한 전략으로 힘을 발휘해 온 것 이다. 프랑스처럼 먹는 건 수입해도 보고 듣는 건(시청각 매체) 자유 무역에서 제외시켜야 한다는 정신문화옹호론자들의 나라에는 미국 영화 직배가 불가능했지만, 먹는 걸 주로 중요시하며 정신 문화에는 별로 신경 안 쓰는 한국 같은 나라에는 직배 시스템이 이미 침투한 것도 그 결과이다. 따라서 헐리우드 영화제국의 위력은 산업적 측면에서 제반 분야(제작업, 배급업, 유통업 등)의 효과적인 수직적 통합과 공격적 시장 확대 정책이라는 역사적 배경에서 나온다. 이제 소프트웨어인 영화 자체로 들어가 보자.




첨단 테크놀로지 영상 시대


신대륙에 이민해 온 인종들의 복합체인 미국의 영화에서 오랜 역사나 전통이란 가치는 애초부터 별로 존중할 덕목이 아니었다. 낡은 대륙 유럽에서 전통과 역사를 자랑하는 다른 예술들과 비교하며 영화의 예술성 실험에 골몰하고 있을 때, 헐리우드는 미국적 삶을 반영하는 가장 매혹적인 매체로 영화를 만드는 데 집중해서 ‘화는 우선 엔터테인먼트’ 라는 확실한 개념을 잡아나간다. 그리하여 쉽게 이해하고 즐길 수 있는 영화를 효과적으로 반복해서 대량 생산하는 쟝르 시스템(웨스턴, 뮤지컬, 필름느와르,공포물, 멜로 드라마 하는 식의)이 일찌기 자리잡게 된다. 이런 식의 유형화된 영화 제작은 통조림같이 똑같은 영화를 복제하는 ‘화공장’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쉽고 편한 영화를 원하는 관객에겐 가장 잘 먹혀드는 제작 형태인 것으로 판명났다. 쟝르 시스템에 덧붙여 고정된 이미지를 가진 카리스마적인 매력의 스타들을 스튜디오마다 전략적으로 양성하는 스타 시스템이 구축되어, 대중이 동일시하며 집착하는 스타들이 연이어 탄생함으로써 헐리우드는 통조림 공장이 아닌’꿈의공장’이라는 칭호를 얻게 된다. 5,60년대 들어 타성에 젖은 쟝르 시스템과 스타 시스템이 퇴조하지만 헐리우드는 자신의 대립항인 동부의 저 예산과 고감도 아이디어로 빛나는 인디펜던트 영화의 배급과 제작 참여라는 기민한 전략으로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데 성공한다. 그러나 사실 지금도 헐리우드의 쟝르 시스템과 스타 시스템은 다른 나라 영화 제작의 교과서처럼 받들어지고 있다.


이후 칼라 텔레비전의 도전을 화려한 특수 효과의 스펙터클 영화로 극복한 스필버그 사단의 등장으로 이제는 감독스타 시스템의 구조까지 가세해 보다 정교하고 전문화된 제작 형태로 나아가고 있다. 이제 세기말 헐리우드 영 최근 헐리우드 영화를 보면 극도로 전문화된 시나리오에서부터([아폴로13], [크림슨 타이드] 등) 첨단 테크놀로지의 스펙터클 전시장으로서의 화 면([쥬라기공원], [콩고], [베트맨 포에버] 등)에이르기까지영화 개념 자체가 테크놀로지를 전제로 바뀌고 있음을 보여준다. 바꿔 말해, 고도의 테크놀로지와 특수 효과를 뺀 헐리우드 영화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영화 제작과 영화 보기의 개념이 달라진 것이다. 최초의 영화들이 움직이는 이미지라는데서 장터 구경꾼들에게 신기한 볼 거리였듯이, 이제 헐리우드 영화는 일상의 테크놀로지보다 한걸음 진보한 고도의 테크놀로지로 무장한 또 다른 차원의 신기한 볼거리라는 개념으로 세계 관객을 길들이고 있다. 여기에서 문제는 이런 테크 로지 영화의 다양하고 완성도 높은 노하우를 가진 곳은 오직 헐리우드 뿐이라는 데 있다. 홍콩 영화나 심지어 한국 영화에서도 컴퓨터 합성을 비롯한 여러 가지 특수 효과를 부분적으로사용하거나 실험중이지만 그 결과에 대해서는 헐리우드와 견줄 바가 못 되는 것도 인정할수 밖에 없는 엄연한 사실이다.




헐리우드의 고민과 빈틈




이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헐리우드 영화 산업 내부의 또 다른 문제는 아이디어 고갈로 인한 영화의 질이다. 최근 쏟아져나오는 졸렬한 시나리오의 속편들, 심지어는 상대적으로 저예산과 비스타를 내세운 B급 영화가 성공하면 A급 제작 규모로 둔갑해 어설픈 시나리오를 얼기설기엮어 특수 효과로만 승부를 보려는 뻔뻔한 작태([언더 씨즈 2], [프리윌리 2] 등), 상큼한 아이디어의 프랑스 로맨틱 코미디가 성공하면 즉시 아이디어값을 치르고 미국판으로 리메이크([ 뉴욕 세 남자와 아기], [아빠는 나의 영웅],[나인 먼스] 등)하는 전략들을 보고 있노라면 아이디어 부재의 심각성을 느끼게 된다. 이런 현상은 헐리우드의 신기한 볼거리에만 촛점을 맞춘 전략이, 허구로서의 이야기 창조성 측면에서 빈틈을 보이고 있음을 드러내는 모습이다. 이것이야말로 물량과 시장 테크놀로지 면에서 헐리우드와 비교도 안될 정도로 수세에 몰린 비헐리우드권 영화산업이 세계 영화 시장에 뚫고 들어갈 수 있다는 가능성을 시사해주는 핵심이다.




61. 꽃봉오리는 터지고 있다.


철학에세이 중에서




우리가 화분에 심어진 꽃나무를 보면 어느날 아침 갑자기 꽃이 피어 있는 걸 보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봉오리로 있었던 것이 피어서 꽃이 된 것입니다. 봉오리가 막 터져서 꽃으로 피는 데는 몇 시간이 걸립니다. 봉오리가 터지면서 꽃으로 되는 동안 그 봉오리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다 하더라도 그 움직이는 것을 눈으로 직접 보기는 거의 불가능합니다. 그만큼 천천히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몇 시간이 지나면 봉오리는 터져서 꽃이 됩니다.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그 몇 시간 동안 봉오리는 분명히 조금씩 움직이면서 꽃으로 변한 것입니다. 만약 이러한 것을 확실히 알고 싶다면 카메라로 봉오리를 고속촬영해 보면 됩니다. 그러면 우리가 가끔 텔레비젼이나 영화에서 보는 것처럼 봉오리가 터져 꽃잎이 활짝활짝 펴지는 것을 수초 내에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몇 시간 동안 봉오리에 카메라를 대고 꽃으로 변하는 모습을 담아 그 필름을 아주 빨리 돌리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화면을 보면 눈으로 직접 보기에는 움직이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꽃잎이 사실은 조금씩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시계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시계를 보면 초침은 빨리 돌기 때문에 시간이 가는 것을 초침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시침을 보면 분명히 가기는 가는데 그 움직이는 것을 직접 눈으로 느끼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만약 이것도 고속촬영을 한다면 그 움직이는 모습을 직접 눈으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사물이 사실은 움직여 변화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우리가 그것을 보지 못한다는 이유로 변화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황색의 구두를 한 켤레 샀다고 합시다. 그 구두를 신고서 얼마의 기간이 지나면 구두의 뒷축이나 깔창이 닳아서 이것을 갈아야만 합니다. 이렇게하여 몇 번의 수선을 거치면 그 구두는 처음에 샀던 본래의 구두와는 다른 것이 됩니다. 즉, 수선하지 않은 부분이라 하더라도 구두는 오래 신음으로써 닳는다든지 하여 본래의 모습과는 상당히 다를 뿐더러, 수선한 부분은 새로운 뒷축이나 깔창으로 갈았으므로 더 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구두에 대하여 여전히 “저 황색의 구두를 신어볼까”하는 식으로 말합니다. 즉,처음 샀을 때의 그 구두와 똑같은 구두인양 말을 합니다. 사실은 그 동안 많은 변화를 거쳐 본래의 구두와는 상당히 다른 구두가 되었는데도 말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사실은 변화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변화하지 않는 것처럼 생각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사실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습니다. 우주의 경우를 생각해 보더라도 우주는 먼 옛날 있던 그대로 오늘날까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 동안 어떤 별은 탄생하고 어떤 별은 없어짐으로써 끊임없는 변화를 거쳐 오늘날에 이르고 있는 것입니다. 별이라는 것은 있는 그대로 언제까지나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탄생해서 성장하고 그리고 사멸해갑니다. 그러므로 우주라는 것도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지구에 관해서 보더라도 마찬가지입니다. 현재 지구에는 아시아,유럽,아프리카, 남.북아메리카, 오세아니아 대륙이라는 6대륙이 있고, 태평양, 인도양, 대서양 등의 바다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대륙이나 바다는 본래부터 이렇게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먼 옛날에는 육지와 바다의 모습이 지금과 달라 에리아, 앙가라, 곤드와나 대륙이라는 3대륙으로 되어 있었습니다.이것은 과학적으로 연구하여 증명된 것이고 우리가 세계지도를 자세히 보면 그것을 어렴풋이나마 짐작할 수 있습니다. 즉, 아프리카의 서쪽 해안의 모양과 남아메리카의 동쪽 해안의 모양이 거의 서로 맞물리는 모양으로 되어 있고, 또한 북아메리카 대륙의 동쪽과 유럽의 모양도 거의 서로 맞물리는 모양으로 되어 있어 과거에는 이것들이 붙어 있었다는 것을 짐작케 합니다. 이처럼 지구는 변해 왔으며 지금도 변화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네덜란드같은 나라는 지금도 땅이 바다 속으로 조금씩 가라앉고 있고,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서해안이 조금씩 가라앉고 있으며 동해안은 조금씩 융기(올라옴)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사는 지구도 지금까지 끊임없이 변화해 왔고 지금도 계속 변화하고 있습니다.


생물의 경우에도 현재 지구상에 존재하는 생물이 먼 옛날부터 그대로 존재해 왔던 것이 아니라 현재의 생물과는 다른 과거의 생물이 환경에 따라 변화함으로써 오늘날의 생물로 된 것입니다. 지구상에 처음 나타난 생물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아메바와 같은 단세포 생물이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점차 진화하여 공룡과 같은 커다란 생물로 되었습니다. 공룡과 같은 파충류중에서 어떤 것은 시조새라는 것으로 변화하였는데 이것이 새(조류)의 조상입니다. 이 시조새는 파충류에서 변화한 것이기 때문에 3개의 발가락과 날카로운 발톱, 긴 꼬리, 얄팍한 가슴뼈 등 파충류와 비슷한 점을 많이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후의 변화에 의하여 오늘날과 같은 새가 된 것입니다. 이처럼 오늘날 지구상에 존재하는 생물은 모두 변화(진화)의 산물이며 이러한 변화는 오늘날에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즉, 본래 육식동물이던 고양이가 사람들과 함께 살면서 잡식성으로 변해 밥과 같은 식물성 음식도 먹게 된 것이 그 일례입니다.


그럼 인간의 경우에는 어떠할까요? 인간은 먼 옛날부터 현재의 모습과 같은 인간이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진화론이 가르쳐 주는 바에 의하면 인간의 조상은 원숭이라고 합니다. 고도로 발달한 일종의 원숭이가 인간으로 변화하게 된 가장 결정적인 계기는 직립보행, 즉 네 발이 아니라 두 발로 걷게 된 일입니다. 두 발로 걷게 되었다는 것은 앞발, 즉 두 손을 자유로이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손은 인간이 자연에 대항하는 과정, 즉 노동 속에서 생긴 것입니다. 또 함께 모여 노동하는 과정에서 서로의 의사 소통이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즉, 언어가 발생한 것입니다. 그리고 언어의 발달과 함께 노동을 하는 과정에서 점차 뇌도 발달하게 되고 감각기관도 발달하게 되었습니다. 현재의 인간은 이러한 변화의 산물입니다. 먼 옛날부터 현재의 모습으로 존재한 것이 아니라 원숭이가 점차 진화하여 오늘날에 이르른 것입니다.


사회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먼 옛날에는 산이나 강에서 과일을 따먹고 물고기나 잡아먹는 원시공동체 사회가 있었습니다. 이것이 변화하여 노예소유주와 노예라는 두 계층을 중심으로 하는 노예제 사회가 발생하고, 또 이것은 봉건영주와 농노라는 두 계층을 중심으로 하는 봉건제 사회로 변화하였습니다. 봉건제 사회는 다시 변화하여 오늘날과 같은 자본주의 사회로 된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사회에 대해서도 앞의 경우와 똑같은 말을 할 수 있습니다. 즉, 현재의 사회는 과거의 변화의 산물이며 현재의 사회 역시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다고.


우리가 우주니 지구니 생물이니 사회니 하는 거창한 문제는 접어두고 잠깐만 우리 주위를 둘러보더라도 모든 사물은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밤에 우리가 자고 아침에 일하러 나가는 집도 밤새 어딘가 한 부분은 조금이나마 변화하는 것이고, 아침에 출근하기 위해 타는 버스도 어제보다는 조금 낡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회사에 출근하여 만나는 동료도 어제의 그와는 달라서 조금이나마 변화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변화는 아주 조그만 변화이기에 우리는 이러한 변화를 무시하고 지내지만, 아주 조금씩이나마 변화하고 있다는 것은 엄연한 사실입니다.


앞에서 여러가지 예를 들어 설명한 것처럼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이러한 변화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즉 현재는 과거와 똑같은 것이고 미래도 현재와 똑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새로운 사물이 발생하거나 본래 있던 사물이 변화하여 다른 것으로 되는 현상을 이해할 수 없게 됩니다.




사실 운동이나 변화는 사물의 본질적인 부분입니다. 일단 사물이 있고 거기에 운동이 첨가되는 것이 아니라 사물 그자체가 하나의 운동이고 변화인 것입니다. 이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은 완전히 만들어진, 변화가 없이 정지된 상채로 있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변화속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물의 본질은 운동이고 과정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사물이란 과거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변화해 왔고 현재도 변화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계속 변화해 나가는 하나의 과정인 것입니다.




▲ 운동 변화: 운동은 장소의 이동만이 아니라 모든 형태의 변화를 가리키는 개념입니다. 따라서 `운동’이나 `변화’는 동일한 의미를 갖는 말입니다.




이처럼 “모든 사물은 변화한다”라는 생각, 사물의 본질은 운동이며 과정이라는 생각은 매우 종요한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점을 잘못 생각하여 잘못된 행동을 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국민성’이라는 말을 합니다. 국민성이란 한 국가의 국민이 갖는 성질·성격을 가리키는 것이지요. 그런데 흔히들 “우리나라 사람들은 국민성이 나빠 우리나라가 발전하지 못한다”라는 말을 합니다. 그러면서 국민성은 어쩔 수 없다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모든 것은 변화한다”라고 생각한다면 이러한 생각이 잘못된 것임을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즉, 국민성이라는 것이 물론 존재하기는 하지만 이는 과거로부터 현재에 이르는 사회상황 속에서 끊임없는 변화를 거쳐온 것이며 지금도 변화하고 있습니다.그러므로 설령 국민성이 나쁘다 하더라도 `국민성은 어쩔 수 없다’라고 생각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잘못된 생각입니다.


또한 가난이나 이기심같은 것은 언제까지나 변할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그리하여 어떤 사회에나 가난은 존재하며 인간인 이상 이기심은 누구나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며, 이것은 언제까지나 변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과연 영원한 가난이라든지 영원한 이기심이라는 것이 존재할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가난이라는 것도 인간의 노력에 의하여 변화됨으로써 없어질 수 있는 것이고, 이기심이라는 것도 변화하여 이타심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외국의 소설에 나오는 구두쇠 영감 스크루우지의 이야기는 이것을 잘 말해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가난은 어쩔 수없다. 가난이란 어떤 사회에나 존재하는 것이다”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부자들이 가난한 사람들에게 가난을 합리화시키기 위하여 하는 말에 불과합니다. 영원한 가난이나 영원한 이기심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노동조합과 같은 단체에서 회의를 열어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을 토의하는 경우 의견이 나뉘어져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의견상의 차이가 감정적인 것으로까지 발전하여 서로 파벌을 이루어 반목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리하여 상대편에서 내놓은 의견이면 옳건 그르건 간에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합니다. 이것은 하나의 파벌주의입니다. 파벌주의는 단체를 분열시키고 약화시키는 아주 해로운 것입니다. 파벌 때문에 올바른 의견인데도 채택이 되지 않는다든지 파벌 때문에 여러가지 의견의 장단점에 대한 충분한 토의가 이루어지지 않아 잘못된 의견이 채택된다든지 한다면 그 단체는 결국 약화되고 심한 경우에는 와해되기에 이릅니다. 또한 단체가 파벌로 나뉘어져 있으면 단체의 힘을 충분히 발휘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이러한 파벌주의는 왜 생기는 것일까요? 그것은 “모든 사물은 변화한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설령 상대편의 주장이 옳지 못하다 하더라도 토론이나 대화, 설득을 통해 상대방이 자신의 주장의 잘못된 점을 인식함으로써 올바른 주장을 따를 수 있다는 것을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상대방은 언제나 그렇고 그런 사람이기 때문에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다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는 잘못된 생각입니다. 모든 사물은 변화하기 대문에 현재의 모습만을 보고 앞으로의 변화가능성을 보지 못한다면 결국 우리는 세계에 관한 잘못된 인식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얘기한 것처럼 모든 사물은 변화합니다. 과거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변화해 왔고 지금도 변화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계속 변화할 것입니다. 운동은 사물의 본질이며 따라서 사물은 하나의 과정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사물은 변화한다”라는 것을 올바로 인식해야 합니다.




62. 공후인, 서정시의 본질론 해명에 완벽한 전형


임이여, 물을 건너지 마오.


임은 그예 물을 건너시네.


물에 휩쓸려 돌아가시니


가신 임을 어이할꼬.




‘공후인’은 ‘황조가’, ‘구지가’화 함께 전하는 희귀한 고대 가요 중의 하나로 ‘고금주’에 전한다. 술병을 끼고 강물로 뛰어든 미친 남편의 뒤를 따라 익사한 아내의 정절을 노래한 비가(悲歌)이다. 문학사상 면면히 이어져온 여심을 노래한 가요의 효시로, 근세민요인 ‘아리랑’의 여심과 직결되며 서정시의 본질론 해명에 있어 완벽한 전형이다.




이= 우리는 서사문학의 원형으로 ‘단군신화’를 살펴보았는데 이번엔 서정문학의 원형을 이야기해 봅시다.


장 = 우리나라 서정시의 원류를 현존하는 작품에서 찾아본다면 ‘황조가’와 ‘공후인’을 들 수 있겠지요. 그러나 아쉽게도 이 두 시가 모두 한자로 되어 있고 그 형식도 ‘시경(詩經)’의 경우처럼 사언체(四言體)지요. 더구나 ‘공후인’은 작자나 배경이 과연 우리나라 것인지 논란이 많습니다.


이 = 모든 문화는 거슬러 올라갈수록 미분화상태가 되기 때문에 ‘네 것’이냐 ‘내 것’이냐를 따지기 힘들 때가 많아요. 두만강이나 압록강이나 그 근원을 캐보면 다같은 천지(天池)의 물이 됩니다. 재미난 것은 서구에서 서정시(lyric)를 뜻하는 말이 리라(lyra)라는 하프형의 칠현금(七絃琴)에서 생겨난 것처럼 ‘공후인’의 경우도 공후라는 악기에서 비롯된 시라는 사실입니다.


장 = 문헌에 나타난 것을 보면 공후는 한나라 때부터 널리 보급된 악기인데 줄이 23개이고 영제(靈帝)가 애호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공후인’이란 노래도 이 시기에 지어진 것이라고 추정하는 설이 있지요. 이렇게 서정시는 동서할 것 없이 노래에서 발생된 것이므로 서양사람들은 리라를, 동양 사람은 공후에 맞춰서 가사를 붙여 노래를 불렀고 거기에서 서정시가 생겨난 것이라고 풀이할 수 있겠습니다.


이 = 서정시의 원시적 형태를 보면 의미없는 단순한 외침소리로 된 것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워라쉐크는 ‘고대음악’이라는 저서에서 ‘모든 미개인의 가요 가운데 가장 현저한 특질은 아무런 의미도 없는 말을 자주 되풀이하는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그러고 보면 오하마 인디언들이 ‘백인들은 노래를 부를 때에도 훌륭한 말을 한다.’고 놀라워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죠.(웃음)


고려가요를 봐도 ‘위두어렁성’이니 ‘얄리얄리얄랑성 얄라리얄라’ 같은 무의미한 후렴들이 많이 나오지 않습니까. 그런 노래에 의미를 조금씩 불여가는 과정에서 서정시가 태어나게 되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장 = 좀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면 이 노래는 나루터에서 남편이 물에 빠져 죽는 것을 보고 그 아내가 슬피 공후를 타며 노래를 부른 것이라고 했는데, 사실 그때 무슨 경황이 있었겠습니까! 지금 초상집에 가면 울면서 넋두리를 하듯이 그 경우도 통곡의 외침소리에 간간이 사연을 늘어놓는 것이었겠지요.


이 = 그래서 지금 국문학계에는 과연 이 시의 원작자가 누구냐로 논란이 많은 것 같습니다. 설화 내용대로 원작자를 백수광부의 처라고 해야 된다는 것과 ‘남편이 죽었는데 당사자가 공후를 들고 와서 시를 짓는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그러니까 아무래도 그 광경을 옆에서 지켜보았던 뱃사공 곽리자고가 이야기해준 것을 듣고 그의 처 여옥이가 지은 것이라고 봐야 된다.’는 양설(兩設)이지요.


장 = 더욱이 문제가 되는 것은 당사자가 지은 것이라면 공후인이 ‘한국’ 것이라는 설이 유력해지고, 곽리자고의 처 여옥이라면 한인(漢人)의 작으로 봐야 하므로 이 싸움은 자꾸 커지지요. 물론 중국문헌에 나오는 그 설화의 조선진(朝鮮津)이라는 것이 과연 한사군 때의 조선현을 뜻한 대동강 부근이냐, 그렇지 않으면 한대의 중국 북경 근처에 있었던 지명이냐의 양설이 있지만 전자라 해도 여옥의 작으로 본다면 한인(漢人)의 작으로 기울어지거든요. 그녀의 남편이 곽리자고이므로 그런 성명은 우리나라 사람것으로는 볼수 없으니 말입니다.


이 = 그러나 그런 싸움보다는 이 양설을 합쳐서 생각해 보면 서정시가 무엇인가 하는 그 본질을 해명하는 데 귀중한 도움이 됩니다.


공후인은 다같이 두 부부의 짝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강에 빠져 죽은 백수광부(白首狂夫)와 그 아내, 그리고 한 옆으로는 그 광경을 본 곽리자고와 그 이야기를 들은 아내 여옥, 이렇게 A그룹의 부부와 B그룹의 부부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러니까 A백수광부 = B곽리자고, 또 A1백수광부의 부인 = B1 은 동일한 입장으로 서로 대응됩니다. 서정시가 노래에서 언어로 화하는 것처럼 A는 노래의 상태요 B는 언어의 상태입니다. 즉 베르너의 설대로 ‘외치는 상태’에서 ‘표현의 상태’로 옮겨오는 서정시의 발달과 과정이 그대로 드러날 있는 경우입니다. 베르너는 ‘죽음에 관한 노래의 원초적인 형식은 아마도 단순한 외침소리(통곡)였을 것이다. 이 외침소리는 부분적으로 전연 의미가 없는 음절로 되어 있을 것이지만, 그것이 내부의 감절해방의 표현잉 될 때 이미 최초의 놀리적 단계에 도달한 것이 된다’고 했는데, ‘공후인’은 이러한 이론을 설화와 작품으로 직접 보여주고 있는 훌륭한 예가 될 것입니다. 서정시인의 마음 가운데에는 백수광부의 처와 여옥이는 하나인 것입니다. 그 제작 과정의 두 마음일 뿐이지요.


장 = 그러니까 ‘공후인’은 서정시의 발생 연구에 있어서 완벽한 전형성을 지닌 시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A그룹의 부부가 B그룹의 부부로 옮기는 것, 즉 정서의 객관화에서 노래가 의미가 되고 행동이 언어가 되는 것이고 그것이 서정시의 본질이 된다는 말씀이군요.


이 = 뿐만 아니라 서정시의 주제도 그래요. 서정시는 즐거움보다도 ‘죽음’ 쪽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단군신화’에서도 보았듯이 서사지는 ‘태어나는 것’ ‘만나는 것’ 그리고 영웅들의 찬가라 한다면 서정시는 주로 ‘죽는 것’ ‘이별하는 것’ 그리고 패자(敗者)의 비가(悲歌)라는 데 가장 그 특성이 잘 나타날 있습니다. 물론 서정시는 섹스나 음식을 먹는 즐거움을 표현하는 경우도 많았지만….대부분의 서정시는 울음이었고 한탄이었지요.


그래서 서사시를 낳은 것은 방패와 창이요, 서정시를 낳은 것은 리라요 공후같은 악기입니다.


장 = ‘공후인’도 ‘황조가’도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슬픔을 노래한 것이지요. 이 서정시들은 모두 한국적인 한을 담고 있어요. 이별과 죽음은 같은 차원의 것이 아닙니까? 사람들은 이러한 이별과 죽음을 이기기 위해서 노래를 불렀고, 그 노래를 통해서 슬픔과 어둠에서 해방되려고 했습니다. 이 서정시에서 우리는 한국인이 비극에 대처하는 마음의 바탕을 읽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 = 그것이 강물로 상징되어 있다는 것이 흥미있습니다. 강물을 공간적으로 보면 단절이지요. 이 땅과 저 땅을 갈라놓고 너와 나를 떼어놓는 말하자면 강은 인간이 만난 최초의 좌절이었습니다.


장 = 그래서 옛날 시에서 이별의 장소는 대개가 다 강입니다. 공후인에서의 강은 죽음의 상징이 되겠지요.


이 = ‘요단강 건너가 만나리…’는 기독교의 창송가가 그렇듯이 그리고 현세를 차안(此岸), 내세(來世)를 피안(彼岸)이라고 하는 불교가 그렇듯이…… 그러면서도 강물은 시간적으로 보면 흘러내려가고 흘러오는 생의 지속하는 흐름, 순환하는 흐름이기도 하지요. 죽음이며 동시에 영원한 생을 상징합니다.


장 = 그러니까 강을 넌너간다는 것은 이 좌절과 단절을 뛰어넘는다는 말로 볼 수 있는데 정신분석학자들은 그것은 성(性)의 원망(願望)으로 풀이하기도 하더군요. 강을 건너가려던 백수광부의 심리를 따져본다는 것은 재미있을 것 같아요. 정병욱씨는 이 강을 건너가려고 한 백수광부를 주신(酒神) 디오니소스와 같은 존재로 풀이했던 적이 있어요.


설화에서 그려진 백수광부는 허리에 술병을 차고 있었습니다. 그가 미치광이었든 술꾼이었든 문학적인 상징으로 보면 마찬가지입니다. 도취의 상태는 미친 상태처럼 현실이 아니라 환상의 세계를 추구하는 힘이니까요.


이 = 물고기도 아닌데 배도 타지 않고 강을 건너가려는 무모한 백수광부와 그의 뒤를 쫓아가서 만류하는 아내, 이것은 비단 공후인의 경우만이 아니지요. 강을 건너가려는 것은 현세의 한계와 질서를 초월하려는 마음입니다. 그것이 바로 상상력이 지배하는 원심적(遠心的) 세계입니다. 그러나 한옆으로는 그것을 지상의 현세에 묶어두려는 구심적(求心的)인 이성의 세계가 뒤따르지요. 우리의 마음은 ‘떠나려는 것’과 ‘잡아두려는 것’의 원심 운동과 구심 운동의 모순 속에서 움직입니다. 어느 한쪽만 있어도 인간의 마음은 늪처럼 괴어 썩어버립니다. 서정시는 대립하는 두 마음이 있을 때 꿈틀거리지요.


장 = ‘말은 가자울고…’라는 이별가의 패턴도 마찬가지지요. 떠나려는 힘은 ‘말(馬)’이고 또 잡은 애인의 손은 머물게 하는 힘……


이 = 남자들은 늘 떠나려고 하지요. 백수광부처럼…. 그리고 여자들은 그 소매를 잡습니다. 강을 건너지 말라고…. 그리고 백수광부는 물속에, 현실속에 침몰합니다. 그런데도 제2, 제3의 백수광부들은 술병을 차고 강으로 그 한계 너머로 뛰어듭니다. 단순히 죽는 것이 비극이 될 수는 없지요. 무엇인가 꿈을 꾸는 도취의 술병이 없었더라면, 강을 건너려는 그 내심의 소리가 없었더라면 슬픔도 또한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서정시를 낳은 그 슬픔의 원천은 절대로 수동적이고 부정적인 의미만을 갖는 것이 아니라는 게지요. 끝없이 구하는 생이 있을 때만이 또한 그 죽음은 시가 될 수 있습니다.


장 = 그러기 때문데 언뜻보면 평범한 익사의 이야기인데도 이태백까지 이 ‘공후인’을 제재로 시를 쓰지 않았겠습니까? 미치광이 남편을 잃은 한 여자의 마음이지만, 그 상징성에는 보편적인 모든 인간의 마음을 나타낸 서정의 근원이 배어 있는 시입니다.


이 = 아까 말씀하신 한의 세계가 바로 그렇지 않습니까? 한국인의 서정시는 거의 모두가 이별가입니다. 타의든 자의든 떠난다는 것은 새것을 구하는, 즉 강 저쪽으로 건너간다는 이야기가 되겠습니다. 그러면서도 강을 건너서는 안된다는 차안(此岸)에 머물러 있어야 한다는 마음, 아내의 부름소리가 있지요. 물에 빠져 죽었든 강을 아주 건너가 버렸든 차안(此岸)에서 볼 때, 남게 되는 감정이 바로 그 한입니다. 떠나지 않아도 못떠난 한이 있고 떠난다 해도 머물지 못한 한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한의 자각은 인생을 백수광부와 그 처의 양면성으로 본 것이고 또 이 양면성을 부부가 한몸이듯이 하나로 파악한 것이라 할 수 있지요. 그런데 이 한을 적극적으로 몰고나가지 않고 소극적으로 파악하였기 때문에….


장 = 사실 그래요. 체념의 감정이 너무 짙습니다. 건너가지 말라고 했는데 끝내 임은 물에 빠지고 말았구나. 아! 그대를 잃었으니 내 어찌 하겠느냐는 즉 마지막 ‘내 어찌 하겠느냐’의 체념사(諦念辭)는 국문학시가에서 계속 되풀이되는 한숨입니다. 주저앉아 버리는 감정이지요.


이 = 그것이 집념으로 일관하는 서양문학과 대조되는 감정이라 할 수 있겠어요. 시조의 종장은 대개가 다 ‘해서 무삼하리오’ ‘두어라’ ‘어쩌랴!’ 등으로 되어 있지요. 우리의 서정시는 익사자의 노래인데 희랍의 노래는 ‘아르고스’라는 배에 대한 노래입니다. 인간이 물을 건너가기 위해 최초로 만들었다는 전설적인 배 ‘아르고스’의 선원들에 대한 시가입니다. 참 대조적이지요. 그러나 동양인은 그들보다 인생을 깊이 관조했기 때문에, 삶의 부질없음에 대해 일찍 눈을 뜬 것이라고도 할 수 있어요.


장 = 철모르는 아이들, 물불을 모르는 아이들이 아니라 세상일을 다 겪은 성숙한 노인의 마음이라고 할까요. 그러니까 같은 서정시라도 서양 것은 젊고 앳된데 우리 것은 노숙하고 은은해요.


이 = 강을 건너지 못하게 잡아두려던 백수광부의 아내 쪽이 더 강했지요. 강을 건너봤자 별수없다는 마음입니다. 사실 ‘공후인’은 강을 건너려 한 남편의 심정이 아니라 그를 뒤쫓아가서 만류하던 아내의 심정 쪽에서 만들어진 것이니까요.


장 = 그 남편을 단순히 광부(狂夫), 미치광이로만 그려놓았지요. 좀더 광부 쪽에 의미부여가 되었더라면 한의 세계도 치열했을 것입니다.


이 = 사랑하는 이와 미치광이와 시인은 모두 같은 사람들이라고 한 셰익스피어의 말이 있지 않습니까? 진짜 시인은 그 아내가 아니라 백수광부 자신이에요. 그는 왜 강을 건너려 했을까? 왜 배를 타지도 않고 물속에 그냥 뛰어들었을까? 건너지 못할 강 너머 저쪽에 무엇을 보았기에 그는 그리도 급히 강을 향해 뛰어들었을까? 아내가 부르는 소리보다도 더 강한 유혹의 소리는 무엇이었는가? 허리에 찬 술병이 그를 그렇게 강너머의 세계로 밀어낸 것이지요. 그 술병은 허리가 아니라 마음 속에 있는 꿈의 도취였지요.


장 = 사자(死者)의 노래지요. 그 아내도 결국 백수광부의 뒤를 쫓아 빠져죽고 마니까 결국 생은 죽음으로 끝납니다. 그러나 인간은 그 죽음 이상의 것을 남기는데 그것이 노래요 서정시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공후인은 무엇인가를 쫓다가 죽어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며 그 노래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 그리고 보통 사랑하는 사람과의 사별이 아니라 그들이 부부로 설정되어 있다는 점이 서양의 서정시와는 다르지요. 서양의 러브 서토리는 대개가 다 간통이거나 현실에서는 이룰 수 없는 사랑의 심정을 노래한 것이 아닙니까. 중세의 기사연애문학도 바로 자기 성주(城主)의 부인을 사랑하는 것이었지요. 그런데 우리는 이미 짝을 이룬 부부애에 사랑의 시에 대한 터전을 둡니다. 망부석의 이야기, 도미의 아내, 춘향전, 모두가 짝을 잃지 않으려는 마음에서 생긴 것이지요.


장 = 그러니까 이미 이야기한 대로 짝을 떠나는 백수광부 쪽보다 그것을 놓지 않으려는 아내의 입장에서 서정시가 쓰여진 것이라는 것은 매우 암시적입니다.


이 = 그래서 사랑의 시가 도덕적인 지조, 정절 등의 것으로 흘러 예술적인 긴장감이 희박해지기도 했구요. 단군신화에서는 탄생의 문학을, 그리고 ‘공후인’에서는 이제 죽음의 문학을 보았으니 앞으로 이 생과 사에서 빚어진 한국인의 정서와 사상이 어떻게 전개되어 갔는가를 따져봅시다.


63. 문화재의 정의와 분류


<민족문화대백과사전>


1. 정의


문화재의 정의는 정의를 내리는 목적에 따라 다소 상이한 표현들이 사용된다. 그 중에서 가장 포괄적으로 서술된 정의는 국제연합교육과학문화기구(UNESCO)가 1970년에 채택한 ‘문화재불법반출입 및 소유권양도의 금지와 예방 수단에 관한 국제협약’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이 협약에서 ‘문화재’라 함은 고고학․ 선사학․ 역사학․ 문학․ 예술 또는 과학적으로 중요하며 다음 범주에 속하는 것으로서, 국가가 종교적 또는 세속적인 근거에 따라 특별히 지정한 재산을 의미한다. 구체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①진귀한 수집품 동물군 해부체 및 고고학적인 관심 물체, ②과학 및 공업의 역사와 군사 및 사회의 역사를 포함하는 역사와 관련되는 재산 또는 민족적 지도자 사상가 과학자 예술가들의 생애와 국가적으로 중대한 사건과 관련된 재산, ③정규적 또는 비밀리에 행해진 고고학적 발굴 및 발견의 산물, ④해체된 예술적 또는 역사적 기념물의 일부분 및 고고학적 유적, ⑤비문․ 화폐․ 인장 같은 것으로 100년 이상 된 골동품, ⑥인종학적 관심의 물체, ⑦미술 관계의 재산으로 다음 네 가지에 관한 것, 즉 그 바탕이나 재료를 불문하고 전적으로 손으로 제작된 회화 유화 도화(단,공업의장과 손으로 장식한 공산품은 제외), 재료 여하를 불문한 미술적인 조립품 및 몽타주(합성화) 등 ⑧단일 물체 또는 집합체의 여부에 관계없이 역사 예술 과학 및 문화의 측면에서 특별한 관심사가 되는 귀중한 필사본 고서 인쇄물로서 다음 세 가지에 관한 것, 즉 단일 물체 또는 집합체의 여부에 관계없이 우표나 수입인지 같은 형태의 인지물, 녹음 사진 영화로 된 기록물, 100년 이상 된 가구외 오래된 악기 등. 이 협약에서 특기할 점은 문화재에 포함시킨 점이다. 그리하여 지구의 표피와 자원, 생물학적인 환경, 수자원과 해양, 인간과 도시 등의 문제에까지 고루 취급하고 있다.




2. 분류


1962년 1월 10일에 제정된 우리나라의 <문화재보호법> 에서는 문화재를 다음의 네 가지로 정의, 분류하고 있다. ①유형문화재: 건축물 전적 서적 고문사 회화 조각 공예 등 유형의 문화적 소산으로서 역사상 또는 예술상 가치가 큰 것과 이에 준하는 고고자료, ②무형문화재: 연극 음악 무용 공예기술 등 무형의 문화적 소산으로서 역사상 또는 예술상 가치가 큰 것, ③기념물: 패총 고분 성지 궁지 요지 유물포함층 등의 사적지로서 역사상 학술상 가치가 큰 것과 명승지로서 예술상 관상상 가치가 큰 것, 그리고 동물(서식지․번식지 도래지 포함) 식물( 자생지 포함) 광물 동굴로서 학술상 가치가 큰 것 ④민속자료: 의식주․ 생업․ 신앙․ 연중행사 등에 관한 풍속 습관과 이에 사용되는 의복 기구 가구 등으로 국민생활의 추이를 이해함에 불가결한 것으로 되어 있다.


64. 문화재 관련 신문 기사 모음


경부고속철 경주 노선/국보 무열왕릉옆 통과


(한겨레신문, 94. 10. 12  1면)




보물12점 등 문화재 수백점 훼손우려


이윤수 의원 ‘영남대 박물관 보고서’분석




경부고속철도가 이미 확정 발표된 대로 경주를 거쳐가는 노선으로 건설될 경우 국보인 태종무열왕릉 등 신라유적을 비롯한 수백점의 대구․경북권 주요 문화재가 훼손될 우려가 있는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특히 고속철도 공단 쪽은 지난 8월께 시굴조사 계획을 마무리짓기로 학계와 합의했으나 아직까지 아무런 조처를 취하지 않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국회 교통위 소속 이윤수 의원(민주)이 11일 한 국고속철도건설공단의 의뢰를 받아 영남대학교 박물관이 지난 93년 실시한 ‘경부고속철도 대구․경북권 문화재 지표조사 보고서’를 입수해 분석한 결과 드러났다.


보고서에 따르면 대구․경북을 지나는 경부고속철도 주변에는 국보 25호인 태종무열왕릉, 천연기념물인 오류리 등나무, 보물 62호인 마애석불상 등 문화재 2백6점(국보 1점, 천연기념물 1점, 보물 12점, 사적 20점, 문화재 자료 7점, 유형문화재 3점, 기념 물 6점, 민속자료 1점 등)이 철도 건설의 영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되는 철로 중심 2㎞안에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 가운데 신라유적이 몰려 있는 경주시․군 지역에만 절반이 넘는 1백30점이 분포해 있다. 종류별로는 국보와 천연기념물이 모두 이 지역에 있고, 보물 12점 가운데 9점, 사적 20점 가운데 17점 등이 이 곳에 위치해 있다. 철도 건설과정의 발파 진동 및 소음 등으로 균열․도괴 등 직접적 피해가 우려되는 철로 중심 좌우 5백m 안에만 해도 오봉리 석조석 가여래좌상과 압량리 김유신 장군 훈련장(사적 218호)등 48점이 분포해 있다.


더욱이 영남대 박물관은 문화재 지표조사를 하면서 고속철도 건설로 영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되는 범위를 철로 중심 좌우 2㎞ 범위로 가정하고 조사했으나 지하건설 구간은 문헌조사만 하고 본조사를 하지 않았다. 이는 지하구간 건설 때 발파로 인한 진동이나 소음을 전혀 고려에 넣지 않고 단지 거리로만 영향을 계산한 것으로, 실제로는 유물 피해가 더욱 커질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밖에 알려지지 않은 신라유물이 많이 묻혀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경주시․군 지역을 지하로 건설하는 것에 대해서도 많은 문화재 전문가들이 문화유산 유실을 우려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의원은 “경부고속철도의 경우 경주를 거치지 않고 대구~밀양~ 부산으로 바로 직통할 경우 거리상 37.7㎞, 운행시간상 9분이 단축되고 건설비도 9천8백32억원이 절감되는데, 굳이 문화재의 대량훼손 위험을 감수하면서 관광진흥을 위한 경주노선을 고집하는 이유를 모르겠다”면서 경주노선의 전면 재검토를 촉구했다. 한편 고속철도건설공단 건설본부 배용득 부장은 “영남대 박물관쪽도 문화재 훼손의 우려는 없는 것으로 밝혔다”며 “앞으로 전국을 대상으로 문화재 훼손 우려가 있는지 검토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경주: 고속철도­경마장 건설 찬반 가열


(조선일보, 95. 9. 2 13면)




천년고도의 보존은 국가책임


이란영〈동아대교수․고고미술사학과〉




세계 어디에도 천년의 역사나 천년의 수도가 이어져 내려 온 곳은 없다. 아무리 역사가 길어도 수도가 바뀌거나 왕조가 바뀌었다. 경주만이 천년의 역사와 수도를 이어왔다. 그러자니 하수도 공사를 해도, 집터를 다듬어도, 길을 닦아도 유물이 쏟아져 나왔다. 학자들은 하수도에서 피부병에 시달리며 발굴을 하였고 주민은 발굴현장에 오수를 버리며 불편을 항의했다. 이렇게 해서 신라 최고의 금제품이 발굴되었다.


문화재 관리는 예방의학과 같다지만 사람의 병은 고칠 수도 있고, 또 나으면 멀쩡해지는데 문화재는 한번 병들면 다시는 돌이킬 수 없다. 하물며 깨버린 뒤에랴. 우리는 경주가 경주 시민만의 것이 아니라 온 국민, 아니 온 세계의 것이라고 하면서 그 동안 경주시민에게 너무 큰 희생만을 강요하였다. 이제는 국가가 책임을 져야 한다. 겨우 경마장이나 넘겨주고 책임을 회피하지 말아야 한다.


경주는 관광 도시가 아니다. 경주는 역사도시요 바로 박물관이며 산 교육의 장소이고 세계를 향한 우리의 문화대사이다. 결코 우리만의 것이 아니라 우리 후세에게 물려주어야 할 영광이며 자랑이다. 그 옛날 경주는 즐비한 기와집 처마에서 비를 피하였고 금으로 장식한 ‘금입택’과 궁전이 하늘의 별처럼, 사원의 탑들은 기러기처럼 많았다고 전한다. 당시의 계획도시로 일본의 내량과 중국의 장안을 들지만 유독 경주만은 그 모습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모두가 일제의 악의적인 파괴와 우리의 무지한 개발 탓이었다.


이제 그마저 파괴하겠다는 말인가? 경주 남산은 호국불교의 성지이다. 북쪽의 산성은 3년 안에 허물어지면 벌을 받겠다고 돌에 새겨두고 축성하였다. 이것이 신라의 책임정신이다. 이 성역의 조사는 우리들의 의무이며 어떤 명분으로도 섣부른 시설 설치나 훼손은 피하여야 한다.


그런데 비뚤어진 고속전철로 남산 훼손의 범인이 될 수는 없다. 유적을 부수고 더 무엇을 얻겠다는 것인가? 세계의 사적인 경주에 경마장까지 겹쳐 도박과 술과 싸움으로 지새는 타락한 도시가 되고 말 것이다. 문민정부가 역사의 죄인이 될 수는 없다.


고속 철도로 관광효율 극대화


김정수〈경주 상공회의소 회장〉




경주는 신라 천년의 유서깊은 역사도시이며, 2천년이 넘는 오늘날까지 살아 숨쉬는 생명력 있는 도시이다. 그러나 경주는 도시개발의 면에서 볼때 반쪽의 복원, 반쪽의 개발에 머무른 절름발이 관광도시이기도 하다. 1962년 초 제정된 문화재보호법과 1972년에 지정된 한옥 미관 지구, 고도 제한 지구 등 각종 제한과 규제로 인한 사유 재산권 침해와 개발억제로 시민들은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당했다고 생각하고 있다.


근간에 들어와서 국토의 균형개발과 관광레저시설 확충을 위하여 정부가 다각적이며 종합적이고 합리적인 정밀 연구검토 끝에 경부고속철도 경주 경유와 경주 경마장 건설을 국책사업으로 결정한 것은 매우 적절한 판단이었다. 그러나 고고학계와 사학계에서는 두 가지 국책사업으로 경주가 온통 쑥대밭이 되고 모든 문화재가 파괴되는 양 뒤늦은 반대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학계는 경부고속철도 경주권 통과구간 반경 2㎞ 이내에 소재한 문화재와 경마장 예정지 29만 4천여평 일대의 신라 5~6세기 초 중요 유적이 파괴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경주는 현 중심 시가지에 각종 문화재와 지하 매장유물이 집중적으로 분포되어 있고 외곽으로 갈수록 분포밀도가 현저히 떨어지고 있어서 고속 철도와 경마장으로 인해 경주지역 문화재가 완전히 파괴된다는 식의 논리전개는 설득력이 없다. 고속철도 경주권 구간은 계획노선으로 확정되어 터널, 교량, 토공 구간으로 설계중이다.


현재 설계상의 3.5㎞ 지하 시공 구간을 연장, 심도 지하화하여 지상에서 파내려가는 공법(OPEN CUT)이 아닌 지하에서 횡으로 터널을 굴착하는 NATM공법(신 오스트리아식)을 쓰면 지상의 문화재는 발굴 필요성조차 없어질 것이다. 금년 3월 문화체육부장관이 경주를 방문하여 “경주시가지 통과부분 전체를 지하화하도록 연구검토하겠다”고 밝힌 것처럼 학계에서도 노선변경을 주장할 것이 아니라 경주노선의 지하화를 주장해야할 시점이다. 또한 고속철도 좌우 4㎞ 이내의 유적을 범위로 잡아 문화재 훼손을 문제 삼는 것은 지나친 확대 해석이 아닐 수 없다.


고속 철도가 개통되면 관광객의 경주 접근이 극대화된다. 또한 경주경마장은 레저문화의 범국민적 수요를 확충하여 전천후 국제관광도시로 면모를 일신할 것이다. 정부당국에서도 문화재 훼손과 관련하여 문화재 전문가와 문화재 자문위원회 등의 자문과 정밀 조사를 토대로 피 해를 극소화한다고 누누이 밝혔듯이 지나친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듯하다.


문화재위원회가 최종 결정을


백승길 〈국제박물관협의회(ICOM) 한국위원회 위원장〉




경제 개발과 문화­자연 유산의 보호는 옛날부터 상충 관계에 있었고 또 지금도 그러하다. 정치는 개발과 보존 사이에서 조화로운 해결책을 모색해야 하는데 우리의 경우에는 정치가 보존보다는 개발에 우선순위를 두고 있는 인상이다. 역사상 문화유산의 보호를 정책으로 처음 결정한 것은 1162년에 로마의 원로원이 트라야누스 황제의 기념 원주를 “로마인을 명예롭게 하기 위하여 세상이 끝날 때까지 파괴하거나 훼손해서는 안 된다”는 칙령을 발표한 데서 유래한다.


로마인을 인류라는 말로 바꾸어 놓으면 유산보호의 당위성은 예나 지금이나 동일하다. 유네스코는 1972년에 문화와 자연유산의 보호를 당해 국가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 인류의 문제로 인식하고 ‘세계 문화 및 자연유산 보호에 관한 협(조)약’을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우리나라의 문화유산도 이 조약에 의해서 설치된 ‘세계 문화 및 자연 유산 목록’에 금년에 등재되어 보호를 받고 있다.


많은 나라에서는 이러한 국제법에 상응하게 국내법을 정비했을 뿐 아니라 영국과 이탈리아에서는 문화부를 ‘문화재부’(Department of National Heritage)로 명명하고 있다. 영국이나 프랑스 같은 나라에서는 문화재 보호가 0순위로서 무엇보다도 우선시 된다. 그런데 이러한 결정은 우리나라의 문화재 위원회와 같은 의결권을 갖는 국가기관에서 행한다.


정부는 이번 기회에 문화재 위원회를 자문기관이 아닌 의결권을 갖는 기관으로 회복해서 모든 중대한 사안을 결정하면 문제가 없으리라 생각한다. 총독부건물의 철거 결정 같은 것도 그랬으면 좋았을 것이고, 현재 논란중에 있는 경주의 경마장 설치와 고속전철 노선문제도 마찬가지다. 경마장 건설은 굳이 발굴되지 않은 중요한 매장문화재 지역을 피해서 보다 큰 안목을 가지고 경주와 포항과 울산의 중간지점을 선택한다면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결과가 될 것이다. 고속전철 노선 문제도 이런 방법으로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중대한 문제를 결정하는 마당에 문화재 위원회를 한 번도 소집하지 않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


문화재 관리 묘책 마련 시급


(조선일보, 95. 11. 4  16면)




문화재의 중요성과 가치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높아지면서 그동안 방치되다시피 해온 문화재 도난과 훼손에 대한 대책마련이 시급하다는 여론이 비등하고 있다. ‘문화청문회’는 지난 주 우리나라 문화재 관리의 실태를 지적한 데 이어 전문가들로부터 이에 대한 해결책과 대안을 들어본다.〈편집자주〉


박물관 건립만이 해결책


범하 <성보문화재연구원장, 전통도사 박물관장〉




사찰이 소장하고 있는 문화재를 불교계에서는 성보문화재라고 한다. 성보문화재는 신앙의 대상이 되는 동시에 역사상 또는 예술적 가치가 크다. 성보문화재는 단순히 장인의 손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굳은 신심과 원력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근년에 와서 성보문화재의 도난 사건이 매년 증가하고 있어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성보문화재가 도난의 표적이 되는 이유는 바로 돈이 된다는 점 때문이다.


선진국 대열에 들어선 우리 국민의 의식수준이 고작 이 정도일까. 성보문화재 도난의 책임은 물론 관리를 맡고 있는 그 절의 주지스님에게 있다. 천재지변으로 인한 사고라면 몰라도 도난은 말할 나위도 없이 관리 소홀이 1차적인 이유이다. 더구나 예배의 대상인 성보문화재에 대해 무슨 변명의 여지가 있겠는가. 성보문화재에 대한 관심이 많은 사찰은 도난당하는 일이 거의 없고 혹 도난당하는 경우에도 대부분의 도난품이 곧 회수된다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해 준다. 성보문화재를 보관하고 있는 사찰은 몇 군데를 제외하곤 유물 목록 및 관리대장조차 제대로 비치되어 있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감독 책임을 지고 있는 종단이 더 문제다. 그 흔한 종단의 법령 가운데 성보문화재에 대한 법은 ‘성보보존법’ 하나뿐이다. 그것도 1972년 제정된 이후 시행하거나 개정된 사실이 한번도 없다. 그뿐인가. 최근 몇 년 동안 성보도난 사찰의 주지에게 책임을 물어 면직시킨 일도 없고 본인이 책임을 지고 사직한 곳도 거의 없다. 양자는 모두 관리 소홀이나 감독 소홀의 책임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 문제의 해결책은 우선 각 사찰마다 성보문화재의 현황 파악에서 출발해야 한다. 올해 초 송광사 국사진영 도난사건 이후로 박물관의 건립 필요성이 절감되면서 종단에서는 교구별로 건립 신청을 받고 있으며 정부에서도 지원을 약속했다. 박물관 건립을 위해서는 먼저 기초자료의 조사가 선행되어야 한다. 다음은 만들어진지 오래돼 파손과 훼손의 우려가 있는 성보문화재들은 박물관으로 옮겨 보관하고 법당에는 원형에 가깝도록 새로운 불상이나 불화를 조성하여 모셔야 한다.


율장에도 ‘훼손된 불상에는 례하지 말라’는 말씀과 같이 예배대상으로보다는 문화재 유물로 보존되어야 한다. 새로 조성한 불상이나 탱화라도 점안의식을 행하고 나면 예배대상으로서 아무런 손색이 없다. 그런데도 예배대상의 성스러움만 고집함으로써 도난의 표적이 되어서는 안된다. 각 사찰은 불사 중에서도 성보문화재의 보존 불사에 최우선을 두어야 한다. 종단이나 행정당국에서는 본사급 사찰에는 의무적으로 박물관을 건립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한편 문화재 및 불교유물의 매매를 원천봉쇄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전문가가 관리­책임 맡아야


김병모 <한양대 박물관장〉




나폴레옹 군대가 이집트를 침공했을 때 많은 민간인 학자들이 동행했다. 역사­지리학자뿐 아니라 동물학자 곤충학자 등이 분야별로 이집트를 연구하기 위해서였다. 프랑스 군인들은 훈련받지 않아 제멋대로인 이 학자집단을 ‘당나귀부대’라고 놀렸다. 이때 나폴레옹 휘하의 젊은 장교가 ‘로제타’라는 마을에서 비석 하나를 발견했다. 당나귀 부대원들 중 이 비석에 씌어진 내용이 이집트연구에 매우 중요할 것으로 판단한 사람이 있었다. 후에 이 비석을 판독한 천재소년 상 폴리옹은 이집트 상형문자 읽는 법을 세상에 공표했다.


 미궁에 갇혀 있던 이집트학의 시작 나팔을 울린 사건이었다. 프랑스는 분야별 전문가를 현장에 파견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런 중대한 학문적 개가를 올릴 수 있었다.


전쟁터에 민간인 학자를 파견하는 전통은 이미 옛날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왕이 페르시아와 전투할 때부터 시작됐다. 이처럼 서양은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적재적소에서 일하는 것이 오래된 상식이다. 이런 전통이 작게는 한 국가를 강하게 하는 길이며, 크게는 세계 문화에 공헌하는 계기를 마련한다.


그런데 한국은 월남전에 참가한 전 기간을 통하여 민간인 학자를 조직적으로 파견하지 못했다. 지금 원로급 학자 중에 젊었을 때 정부의 파견으로 일본에 가서 자료를 수집해온 사람이 전혀 없는 현실은 너무도 안타깝다. 우리의 귀중한 문화유산이 제대로 관리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보다 관리자가 전문지식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 나라의 일선 시청이나 군청의 문화재 담당자는 문화재에 대한 전문지식이 없는 사람들이다. 전문연구자가 맡아야 할 일을 임시직원 아니면 행정주사들이 맡고 있는 것이다. 그나마 한 자리에 오래 있으면 경험이라도 쌓이겠지만 문화재 관련부서는 무능하거나 진급대기자들의 대합실같은 부서로 취급되고 있다.


한심한 것은 일선 부서뿐이 아니다. 문화재 관리의 총 책임부서인 문화재관리국의 수백명 직원 중 문화재 전문가는 거의 없다. 대부분 행정직 공무원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겨우 ‘문화재연구소’ 라는 것을 만들어 놓고 문제가 터지면 비로소 뛰어가 자문을 받는 정도이다. 전문가가 책임지고 행정계획을 수립하며 일선에서 이를 집행하는 풍토가 마련되지 않는 한 문화재의 관리는 계속 소잃고 외양간 고치는 일만 반복할 뿐이다. 벌써 반세기쯤 그런 시행착오를 해왔으면 이제는 정신 차릴 때도 됐다.


이제 ‘당나귀들’을 현장으로 보내자. 그 길만이 문화유산의 파괴를 줄이고 귀중한 자료의 진가를 알아보는 길이다.


기구­전문 인력 확보가 급선무


김동현 <문화재연구소 보존과학연구실장〉




최근 문화재에 관한 기사가 언론에 자주 실려 국민들로부터 큰 관심사의 하나가 되고 있다. 문화재 기사가 이렇게 자주 실리는 것은 우리도 문화국민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나타내는 하나의 증거다. 그런데 그 내용을 보면 도난 훼손 관리소홀 무방비같은 것들이 대부분이라 국민들의 얼굴을 찌푸리게 한다. 이는 날로 늘어가는 공해가 주범이 되기도 하지만 인위적인 파손과 훼손도 만만치 않다.


지상의 모든 만물은 시간이 흐를수록 원형을 잃어가는 것이 자연의 현상이다.정상적인 상황에서도 이러하거늘 여기에 공해가 가해지고 인위적 손상을 입혀서야 제대로 자기 수명을 다할 수 없는 것은 명약 관화한 일이다.


 문화재의 관리나 보존정책은 이러한 상황 속에서 어떻게 하면 문화재를 원형 그대로 보존하고 더 나아가 수명을 연장시키느냐를 연구하고 대책을 세우며 시행에 있어 힘차게 밀고 나아가야 한다. 그러나 이렇게 못하는 것은 국가의 문화재 정책이 경제개발이나 사회적인 발전 속도에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30년전만 해도 경주에 가면 웬만한 신라시대의 와당(막대기와)은 한개에 1백~5백원이면 살 수 있던 것이 요즈음에는 10만~50만원은 주어야 하니 1천배 정도가 올랐다. 이만큼 문화재의 가치는 날이 갈수록 천정부지이니 도굴과 도난이 날로 늘어날 수밖에 없다.


또한 주변 환경은 얼마나 열악하게 되었는가. 이렇게 되다 보니 정부의 국단위 기구가 감당하기 어렵게 된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예산 또한 마찬가지 형편이다. 현재 국가지정문화재 및 지방지정문화재의 총수는 6천8백여 건이다. 그밖에 지정문화재 이외의 문화유산은 그 수를 파악할 수조차 없이 많다. 이들을 보다 효과적으로 관리­보존하려면 획기적인 기구개편과 예산편성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안된다. 또한 중앙정부 차원의 관리­보존기구만으로도 어렵다. 전국 방방곡곡에 산재한 문화재를 제대로 관리하려면 지방자치단체에도 문화재 관리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전문기구가 마련되어야 하며 여기에 종사할 수 있는 전문인력의 양성계획을 지금부터라도 마련하지 않으면 안된다.


우선 대학이나 전문대학에 문화재과를 신설하든지 문화재관리 특수 대학이나 전문대학을 설립해서 인력을 키워야 할 것이다. 이처럼 지금까지와는 다른 획기적인 변화가 없는 한 문화재의 능률적인 보존관리는 어려울 것이다. 이와 함께 국민 모두가 문화재에 관심을 갖도록 문화재에 대한 대대적인 홍보와 다양한 문화재보호 켐페인이 일어나야 할 것이다.


노선 변경 논란 - 경주 고속철도 어디로?


(조선일보, 95. 11. 10)




고속전철 경주노선 문제가 계속 진통을 겪고 있다. [문화재보호]와 [개발]의 논리가 정면으로 충돌하는 이 문제는 앞으로 우리나라 문화정책의 시금석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정부는 적극적인 해결노력을 보이지 않아 국민들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 본지는 이미 한차례 문화청문회를 통해 이 문제를 검토한 바 있지만, 사안의 중요성에비추어 또 한번 문화청문회를 열어 현재의 상황을 점검하고 해결방안을 모색해 본다. <편집자주>.




문제제기 “문화재보호” - “추가 비용 부담” 맞서


정부 방관 속 경주 경실련 제 3안 내.




고속 전철 경주 지역 통과 노선과 역사의 위치를 둘러싼 건설교통부와 문체부의 공방은 수평선을 달릴뿐, 타협의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경주 도심통과를 반대하는 국민적목소리가 높은데도 아직 뚜렷한 결론이 내려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지난 8일 국무총리실 행정조정실의 조건호 제2조정관 주재하에 건설교통부 김세찬 수송기획관과 문체부측 김진무 문화재관리국장이 만나[경주문제]에 관해 또 한차례의 토의을 벌였으나 별다른 성과를 보지 못했다.


건교부측은 (일제시대에 건설되어 경주 도심의 문화재를 훼손하고 있는 동해남부선과 중앙선을 이설하는 데는 현재 노선이 더 유리하다)는 주장을 펼쳤고, 문체부측도 (도심 통과노선은 문화재 훼손뿐 아니라 도시를 양분하는 등 경주 전체의 경관을 해친다)는 기존의 입장을 확인했을 뿐이다.


이 조정회의는 지난 9월19일 이홍구 국무총리가 오명 건교부장관, 주돈식문체부장관 등이 참석한 회의에서 [고속철도는 경주를 통과하되 문화재를 최대한 보호하는 방안을 검토한다]는 원칙을 표명한 이후 세번째 이루어진 것. 그러나 회의는 그동안 평행선만을 달릴뿐 별다른 진전을 보이지 않고 있어 정부 스스로 해결시한으로 정해 놓은 12월 말을지킬 수 있을지 의문시되고 있다.


중재 노력이 시작된 후 건교부는 경주 형산강변을 따라 약 15m 높이로 설계될 교량건설 계획을 취소하고 형산강 제방과 같은 높이의 둑을 쌓아 그 위에 선로를 가설하는 한편 경주역사도 경주시내에서 약 10km 떨어진 이조리에 건설한다는 수정안을 내놓았다. 그러나 건교부의 수정안은 여전히 (도심통과는 어쨌든 고도 경주을 망친다)는 문체부의 반대에 부딪쳤다.


올봄 본격적으로 제기된 경부고속철도 경주노선 공방은 이제 [경주통과]라는 전제하에 그 노선을 정하는 새로운 문제틀로 바뀌어 가고 있으며 각계에서 다양한 의견이 개진되고 있다. 그러나 해결의 열쇠를 쥐고있는 정부는 성과없는 회의만을 거듭할 뿐 갈라진 의견을 좁히는데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어 문제의 조기해결 전망을 어둡게 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가 수수방관하고 있는 가운데 경주문제에 관한 공청회를 마련한 것도 경주의 시민단체인 경주경실련이었다. 지난 2일 오후 경주교육문화회관에서 열린 [고속철도 경주통과에 대한 공청회]는 [도심통과노선] [외곽노선] [제3의 노선]으로 나뉘어 열띤 토론을 벌였다.


신종서 한국고속철도건설공단 건설본부장은 (노선변경시 드는 엄청난 추가 경비와 공기 지연)을 지적했고, 김성수 경주시의원(고속철도 경주확정 추진 범시민협의회 공동의장)은 (왜 이미 결정된 노선을 두고 학계에서 뒤늦게 문제를 제기하는지 모르겠다)며 (경주 전체의 문화환경권 못지 않게 경주시민들의 사유 재산권 행사도 고려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반면 이선복 서울대교수(고고미술학)는 (신라시대 주거지역일 것으로 추정되는 형산강 유역에는 수많은 문화재가 묻혀 있을 것이 확실하다)며 (공사 도중 발생할 문화재 발굴을 위한 공기 지연은 노선 변경으로 인한 공기 지연보다 더 오래 걸릴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김성범 문화재관리 국학예연구사는 (경주는 문화재가 몇점 훼손되는 것뿐 아니라 경주 전체의 문화환경권을 보호하는 차원에서 문제에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처럼 [도심통과노선]과 [외곽노선] 주장이 맞선 가운데 경주 경실련은 외곽노선을 수정한 별도의 안을 제시했다. 강태호 동국대교수(경주경실련정책위원)는 경실련안의 핵심을 (건천과 화천지역을 지나 경주 도심과 남산을 동시에 비껴가는 노선)이라고 설명했다. 조명래 단국대교수(지역개발학)는 건천지역에 신도시를 건설, 문화재 보호와 지역경제 발전이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모두 잡자는 논리를 폈다.


[도심통과]를 소리 높여 주장하는 경주 상공회의소와 시의회의 주장은 경주에서는 별 호응을 얻지 못하고 있다. 동국대 불자교수회는 지난 10월11일 성명을 통해 (당초부터 학계의 강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정당한 민의의 수렴절차도 없이 실시 설계를 진행해온 시내통과 노선은 반드시 변경돼야 한다)며 (문화재 보호와 미래 경주의 발전을 위해서는 건천-화천방면 우회노선이 최상)이라고 밝혔다. 경주를 사랑하는 시민의모임(대표 김덕수)은 [경주사랑](10월22일)이란 소식지를 통해 (하루에 4백36대의 고속전철이 경주를 통과하기 때문에 평균 3분에 한대씩 기차가 지나간다)며 소음, 경관 파괴 등 도심통과 노선의 폐해를 지적했다. 지건길 국립경주박물관장은 (불교문화재의 보고인 남산에 올라 시도 때도 없이 경주 도심을 지나가는 고속전철을 보는 것은 상상하기도 싫다)고 말했다.


[도심통과] 노선을 주장하는 경주상공회의소의 손동민 경주지역경제연구센터 책임연구위원도 (경주통과 여부가 빨리 결정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며 (경주 통과가 결정되면 도심 통과 노선뿐 아니라 외곽 노선도 받아들일 수 있다)고 말했다.


“지역 발전 위해 통과 필요” 반대도 거세


(조선일보, 95. 11. 10)




[고속전철 경주 통과 경주 시민 사수하자](경주시의회의원 강봉종), [국책사업 실현으로 신뢰받는 정부행정](경주청년회의소), [고속전철 경주와야 지역발전 앞당긴다](제일주택) [고속전철 확정노선 계획대로 건설하자](황남동 자율 방범대).




경주의 관문인 경주역전, 선거 플래카드같이 거리 곳곳에 걸린 [고속철도 구호]는 강경했다. 구호중에는 [고속철도 경주역은 북녘들이 최적이다](문화상가 번영회) [경주노선 지하화로 고속전철 빨리 하자](경주전문대학 총학생회)등은 노선과 역사문제에 관한 구체적인 내용을 담은 것도 있었다.


하지만 정작 경주 시민들의 생각은 꼭 플래카드의 강경한 구호와 일치하지는 않았다. 택시 기사 남국모씨(40 경주시 동천동)는 (대부분의 손님들은 고속 철도는 당연히 경주를 통과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며 (거리의 플래카드는 [우리(경주 시민)가 가만 있으면 고속철도가 경주에 오지 않을수도 있다]는 불안감의 표현)이라고 말했다. 남씨는 (하지만 고속 철도가 경주에 들어오기만 하면 되지 굳이 도심 통과를 고집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경주 황호동에서 명성 해장국집을 운영하는 김부분씨(63)도 (도심을 거쳐가건 건천쪽으로 우회하건 경주만 거쳐 가면 되지 않겠느냐)라고 말했다.


[고속철도 도심통과 반대-백년문화를 위해 천년문화를 파괴할 수없다]는 구호를 캠퍼스에 내건 동국대 불교문화대학생회의 이정우회장(불교4년)은 (경주가 경주다워질 때 관광도시 경주도 성립할 수 있는 것)이라며 ([고속철도의 도심통과=경주발전]이라는 도식의 경주시 의회나 상공회의소의 논리는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는 처사)라고 말했다.


경주 동부동에서 삼삼약국을 운영하는 이창헌씨(46)는 경주고속철도 문제를 꺼내자 (왜 국책사업을 변경하려 하느냐)고 목소리를 높이며, (주위의 많은 사람들이 고속철도가 경주를 거쳐가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비관적인 생각을 하고 있다)고 경주의 분위기를 전했다. 이씨는 (문화재때문에 재산상 불이익을 당한 경주시민들의 처지를 많은사람들이 모르고 있는 것 같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는 노선문제에 관련, (경주를 완전히 벗어나는 것을 막자는 것이지 도심 통과나 외곽 우회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는 의견을 밝혔다.


경주 경실련의 김창선 간사는 (많은 경주시민들은 [도심 통과 재고]를 마치 [경주통과 반대]로 오해하고 있으며, 경주가 고속철도 문제에서 완전히 소외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사로잡혀 있다)며 (거리에 나붙은 강경한 논조의 구호도 그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부분의 경주시민은 고속철도의 경주 통과를 찬성하지만, 문화재 훼손을 최소한으로 줄이자는 원칙은 버리지 않는다는 뜻이다.


‘고속 전철 울산역 유치’ 1백만명 서명 운동


(조선일보, 95. 10. 21)




울산대 교수가 주축이 된 ‘경부고속전철 울산역 유치준비위원회’가 1백만 울산시민을 대상으로 울산역 유치를 위한 대대적인 서명운동에 나섰다.


울산역 유치준비위는 21일 “향후 환태평양 전진 기지의 역할을 할 울산시에 경부 고속전철의 역사 설치는 반드시 필요하다”며 “경주지역 문화재의 훼손을 막고 경주, 울산, 포항 등 동부 경남 주요 도시가 함께 이용할 수 있는 역을 울산과 경주의 경계인 울주구 두동면 인근에 설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유치준비위는 이날부터 중구 주리원백화점 등 울산 시내 일원에서 1백만 시민을 대상으로 유치 서명 운동을 벌인 뒤 건설교통부 등 관계 기관에 고속전철의 울산역 설치를 촉구할 계획이다.


오건교 장관, “경주 고속 전철 당초 계획대로”


(조선일보, 95. 10. 9)




오명 건설교통부 장관은 9일 “경부고속전철의 경주 노선 건설은 당초의 건설 계획안대로 형산강둑을 따라 건설하되 문화재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일부 구간은 지하화하겠다”고 밝혔다.


이날 경부고속전철 경주시가지 노선을 둘러보기 위해 경주를 방문한 오장관은 “당초 지상으로 건설키로 계획했던 시가지 문화재 산재지역에서는 지하화하고 나머지 구간은 지상화하되 역사 위치는 경주시 내면면 이조리와 탑정동 속칭 북녘들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오장관의 발언은 지난 3일 주돈식 문화체육부 장관이 포항 시내 시그너스호텔에서 “고속전철의 경주구간은 문화재 훼손방지를 위해 시외곽지 노선으로 변경 건설될 것”이라고 발표한 것과는 상치되는 것으로 건교부와 문체부간의 큰 견해차를 표출하고 있어 앞으로 경부고속전철 경주노선 확정을 싸고 상당한 진통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주 문체부 장관 “경부 고속 전철 경주 통과”


(조선일보, 95. 10. 3)




주돈식 문화체육부장관은 3일 최근 논란을 빚고 있는 경부 고속전철 경주 통과문제와 관련, “경주를 거쳐 간다는 것이 정부의 기본방침이며 연말까지 노선이 확정될 것”이라고 밝혔다.


전국체전 참석차 포항을 방문중인 주장관은 이날 오전 시그너스호텔에서 가진 기자회견을 통해 지난달 19일 총리주재로 열린 건교부와 협의회에서 경부 고속전철의 경주통과가 확정됐으며 경주시내에 산재한 지정문화재와 고분군을 최대한 보호하는 측면에서 도심지를 통과할 경우 통과방법에 대한 기술적인 검토와 협의를 하고있다고 말했다.


주장관은 당시 관계부처 협의에서 고속전철은 ▲경주를 통과하되 ▲문화재를 최대한 보호하고 ▲시민 피해를 최소화하며 ▲울산과 포항 지역 주민들은 물론 관광객들이 고속 전철을 최대한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한다는 등에 합의했다고 덧붙였다.


고속 전철 정읍역 정차 위한 시민 서명 운동 전개


(조선일보, 95. 9. 28.)




호남 고속 철도 정읍역 경유와 정차를 관철하기 위한 시민 서명 운동이 사회단체 중심으로 본격 추진되고 있다.


28일 고속 철도 정읍역 정차 추진특위(위원장 양병우.애향 정구회 회장)에 따르면 오는 11월 노선결정을 앞두고 정읍의 낙후성을 효과적으로 극복하기 위해 고속철도의 정읍역 통과가 절실, 익산-정읍-광주노선의 지정을 시민의 이름으로 관계요로에 건의키 위해 서명운동을 전개한다는 것.


추진위는 정읍역이 1시 4개군 40만명의 생활역이고 연간 1백60만명이 이용하는 호남선 철도의 중추역으로 주변의 8개 관광지에 연간 탐방객 8백만명과 1백만평의 공단 조성 등 고속 철도 정차지로 경제적 여건이 충분하는 판단이다.


특히 고속 철도 정차역으로 지정될 경우 서울-정읍간 소요시간이 80분대로 단축되고 정읍-익산간 43.5㎞와 정읍-광주간 68.5㎞로 시속 2백㎞ 기준 역간 최단거리 40㎞를 웃도는가 하면 현 정읍역의 부지가 6천5백평에 달해 신규 역사확보에도 어려움이 없는 등 지리적 기본여건을 완비했다고 주장했다.


추진위는 이에따라 오는 30일과 10월1일.역과 터미널.시장등에서 시민 대상의 서명운동을 전개하고 관련부서에 건의문과 대표단을 파견할 계획이다.


한편 고속철도 정읍역 정차 추진특위는 지난 93년 11월, 고속철도관리 공단을 방문한데 이어 같은 해 12월에는 정읍상공회의소 등 사회단체 임원 1천2백여명이 서명한 정차지정 건의문을 관계요로에 발송했고 94년 2월 건교부로부터 노선 결정 때 참고할 계획’이라는 통보를 받았다.




문체부, 고속 철도 경주 도심 통과 노선 재고 촉구


(조선일보, 95. 9. 1)




문화재 훼손 우려로 논란을 빚어온 경부고속철도 경주 도심통과 문제가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최근 문화체육부는 문화재 훼손 방지를 위해 경주를 우회하는 기술조사 노선(건천통과 외곽노선)을 채택해 줄 것요청하는 공문과 경주통과 구간에 대해 구체적인 매장문화재 발굴허가를 얻은 후 공사를 시행해 달라는 공문을 각각 주무 부처인 건설교통부와 시행기관인 고속철도 공단에 잇따라 보냈다.


문체부는 지난해 10월 21일 고속전철 통과 전구간(430.6㎞)에 대해 매장문화재 발굴 허가를 포괄적으로 허가한 바 있으나 유적 훼손을 우려하는 반대여론이 거세게 일자 이를 수용, 건교부에 노선수정 검토를 재촉구한 것.


외곽 노선을 채택할 경우 경주시내에 역 설치가 어려워 교통연계에 불편이 많고 기존의 철도시설과 통합정비가 불가능하다는 이유를 들어 92년 도심통과노선을 확정했던 건교부는 경주 구간에 대해 12월말까지 실시설계를 마치고 내년중 착공할 예정이었으나 부처간 의견조정과 재검토 과정을 거쳐야 함에 따라 다소 일정이 늦춰질 것으로 보인다.




고속 전철 경주 통과 둘러싸고 학계·시민 마찰


(조선일보, 95. 5. 27)




역사학대회 ‘고도보존’세미나장서 학계·시민 충돌




고속 전철의 경주 통과 및 경주 경마장 건설 계획을 둘러싼 학계와 경주 시민들 사이의 마찰이 심화되고 있다.


제38회 역사학대회의 분과토론회로 한국고고학회(회장 김병모)와 한국미술사학회(회장 강경숙)가 27일 오전 10시 한양대 백남음악관에서 개최한 고도보존세미나는 세미나 개최를 저지하기 위해 상경한 경주시민들과 대회운영요원들 사이의 실랑이 끝에 예정보다 30여분 뒤에나 시작됐다.


경주지역발전협의회 김성수 부회장을 대표로 하는 경주시민 1백20여명은 이날 세미나장 진입을 시도하다 대회운영 요원들에게 저지당하자 세미나장 밖에서 구호를 외치고 전단을 뿌리며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이날 발표한 성명을 통해 “경주고속 전철역과 경주경마장 건설은 경북및 동남권의 사회·문화·경제적 특성을 고려해 합리적으로 결정한 국가의 중요정책”이라고 지적하면서 “지난 3월16일 고고학회, 미술학회 등 이른바 학회들이 당국에 제출한 건의서는 학자적인 양심에 반한, 외적인 요인에 의한 행위로서 뜻있는 사람들의 빈축과 의구심을 자아내고 있다”고 주장했다.


경주 시민들은 또 “고속 전철 역사 건립과 경마장 건설은 문화 유산의 보존과 개발에 하등의 저해 요소가 없으며, 지방화 시대에 걸맞는 재정 자립도에 기여하고 문화 유산에 대한 홍보 효과를 높일 것으로 기대된다”고 주장하면서 “이들 학회의 대정부 건의는 철회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제사학회, 한국고대학회, 동양사학회 등 16개 학회는 지난 3월16일 “고속전철의 경주 통과와 경주 경마장 건설 계획이 경주 지역 유적이나 유물을 훼손할 우려가 있다”면서 이의 철회를 요구하는 건의서를 정부에 공동으로 제출했었다.


경주 시민들의 이같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한국고고학회, 한국미술사학회는 예정된 세미나를 강행하는 한편, 세미나장 앞에서 14개 학회와 공동으로 고속전철 노선의 경주 통과 및 경주 경마장 건설에 반대하는 서명 운동을 벌였다.




고속철 경주 통과 반대 시민 연대 운동 조직화


(한겨레신문, 96. 5. 18)




이달 말로 예정된 경부고속전철 경주노선 결정을 앞두고 경주 도심 통과 반대 운동이 활발하다. 학계와 불교계 중심으로 펼쳐져온 반대운동이 최근 들어선 시민․사회단체로까지 확대되는 추세다. 시민․사회단체들은 최근 잇따라 연대집회를 열고 정부 당국에 `건설교통부의 형산강 노선 채택불가’를 강력히 촉구하기로 하는 등 반대운동에 발벗고 나서고 있다.


정부의 최종 결정에 쐐기를 박으려는 적극적 의사표시인 이런 움직임은 그동안 학계와 불교계를 중심으로 성명서, 서명운동, 학술회의 등 온건한 방법을 통해 전개돼온 고속전철 경주통과 백지화운동에 대한 공감대가 사회 전반에 널리 확산됐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풀이된다.


경실련, 한국고고학회, 한국불교연구원, 대한불교진흥원, 기독교윤리실천운동, 녹색교통, 환경운동연합, 기독교청년회 전국연맹 등 13개 단체 대표들은 지난 17일 경실련 사무실에서 모임을 갖고 고속철도 경주통과 문제에 공동대처키로 합의했다.


참석자들은 천년고도 경주의 도심을 통과하는 건설교통부의 형산강 노선(동국대 경주캠퍼스―북녘뜰―이조리)이 문화체육부의 건천 우회노선(건천읍―화천―내남면)보다 문화유적 훼손의 정도가 훨씬 심할 수밖에 없다는 데 인식을 같이했다.


또 가칭 ‘고속철도 경주통과를 생각하는 시민․사회단체 연대회의’를 결성하기로 한 이들은 이에 동참할 단체를 모아 오는 22일 서울 광화문 정부종합청사 앞, 27일 탑골공원에서 잇따라 집회를 갖기로 결정했다.


두 집회를 통해 이달 말까지 경주노선을 확정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청와대에 형산강 노선의 부당성을 알리고, 차선책으로 건천 우회노선을 채택할 것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형산강 노선이 비용과 시간 모든 면에서 건천 우회노선보다 불리하다는 지적은 그동안 고고학계 등이 줄기차게 제기해 왔으며, 지난 15일엔 학계․문화계․종교계 등 각계의 대표적 지식인 77명이 ‘경부고속철도 경주 통과에 대한 지식인선언’을 통해 적극적인 공감을 표시하기도 했다.


지식인 선언은 동국대 부근 왕경지구와 남산까지 8.4㎞ 구간을 지하화하겠다는 형산강 노선에 대해 △지상건설보다 비용이 4~5배 더 들고 △매장 문화재 발굴에 필요한 시간을 염두에 두지 않았으며 △역세권 개발로 인해 천년고도 경주 훼손이 불가피하다는 점 등을 지적했다.


한편 건설교통부와 문체부는 총리실 주관 아래 합동조사반을 구성해 지난달 말 경주 현지조사를 실시했음에도 불구하고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있으며, 경주노선 최종결정은 오는 23일 귀국하는 이수성 국무총리가 여론과 두 부처의 입장을 중재한 결과를 토대로 청와대의 재가를 얻어 이루어질 전망이다.




경주 통과 철회 촉구, 지식인 77명 선언


(한겨레신문, 96. 5. 16)




시인 고은씨와 황수영 전 국립중앙박물관장 등 20여명은 15일 오전 9시 서울 앰배서더호텔에서 ‘경부 고속 철도 경주 통과에 대한 지식인 선언’을 발표하고, 경주 도심을 통과하는 건설교통부의 형산강 노선을 철회할 것을 촉구했다.


이들은 이날 문인, 종교인, 학계 인사 77명이 서명한 지식인선언을 통해 “경주는 이미 한국인만의 것이 아닌 인류 공동의 문화유산”이라며 “경부고속철도의 경주 경유는 문화재 파괴와 경제적 손실을 자초하는 계획이므로 철회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불가피하게 경주를 경유하더라도 형산강과 남산을 잇는 건교부안은 절대 안된다고 지적한 이들은 문화재 훼손이 덜한 문체부의 건천-화천노선을 채택할 것을 요구했다.


이들은 또 시간과 비용 절약을 이유로 건교부가 형산강 노선을 고수하는 것은 “지하철도 건설이 지상보다 4~5배의 비용이 들고, 매장문화재 조사․발굴에 엄청난 시간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지 않은 것”이라고 비난했다.


이날 선언에는 고은, 황수영, 강원룡 크리스챤아카데미 이사장, 김찬국 상지대 총장, 박성래 한국과학사학회장, 서돈각 한국불교재가회의 회장, 서정주 시인, 손봉호 경실련 공동대표, 송월주 조계종 총무원장, 안병무 전 한국신학연구소장, 임효재 한국고고학회장, 소설가 이문열, 진홍섭 전 문화재위원장, 최근덕 성균관장, 최열 환경운동연합 사무총장, 이기영 한국불교연구원장 등이 참여했다.


한편 경실련, 환경운동연합 등 시민단체들은 이달말까지 정부가 경부고속철도 경주노선을 확정키로 한 것과 관련해 다음주초 광화문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집회를 갖고 경주 우회노선 채택을 촉구할 계획이다.




경주 고속철 반대 관광 전철 검토할만


(한겨레신문 국민 기자석, 96. 5. 16)




최근 문화체육부에서는 경주 외곽인 `건천’을, 건설교통부는 경주 도심 통과를 주장하면서 고속전철 노선에 대한 의견을 교환했다고 한다. 그 결과 역사만 짓고 역세권 개발은 하지 않는 것으로 합의를 했다고 한다.


그러나 역사가 들어서면 사람들의 왕래가 잦아지고 그에 따른 상권이 형성되고 자연히 고속철도 주변에는 새로운 주거지가 조성될 것이다.


경주 지역은 지상에 드러난 유적보다 지하에 묻혀 있는 유적이 훨씬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무리 고속철도 건설 기술이 발달했다고 해도 건설과정에서 생기는 갖가지 오류와 진동과 소음으로 파괴는 불가피할 것이다.


지난해 유네스코에서 지정한 석굴암과 인류 유산으로서의 경주지역을 보호하는 차원에서 비용에 관계없이 현재의 노선을 철회하고 대구에서 부산으로 직행하는 노선으로 바꿀 것을 건의한다. 그리고 이의 대안으로 노선을 바꿈과 동시에 대구에서 경주까지 연결하는 관광전용 고속도로 및 전철을 건설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이 도로에 연계해 신시가지를 건설하면 경주시민의 재산권 보호와 유적의 보호라는 두마리 토끼를 잡는 데 무리가 없다고 생각한다.


열차를 타고 가면서 지나치는 관광 자원이 아닌, 직접 현장에서 보고 즐기고 느끼게 하는 경주가 되도록 고속 철도 경주 통과 노선에 대해 지역적 이기주의나 편견을 버리고 심사숙고하길 바란다.


<박계형/서울 마포구 서교동 서교아파트>




임란 전승지 장도 폭파 계획 재고하라


○○○ <국사편찬위원회․사료조사위원>


(동아일보, 95. 12. 21 37면)




경제가 발전함에 따라 문화재의 중요성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최근 불국사 석굴암과 해인사 팔만대장경, 종묘가 유네스코로부터 세계유산으로 지정받았다. 우리의 문화재가 세계적인 문화유산으로 평가받는 것과 마찬가지로 지방의 문화재도 지방자치시대를 맞아 그 관심과 보존의식이 더욱 높아가고 있다.


그런데 최근 전남 여수 앞바다의 중요한 지방문화 유적지가 경제 개발이란 명분 아래 사라질 위험에 처해 있어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이는 바로 현대그룹이 여수 율촌공단을 조성하면서 없애려 하는 장도(일명 유도)라는 섬이다. 이 섬은 넓이가 고작 11만3천 평밖에 안되지만 그 옆에 있는 송도 그리고 검단산성과 더불어 임진왜란 7년을 마지막 승리로 이끈 전승지다.


이 장도와 송도의 전황에 대해서는 난중일기나 선조실록 그리고 임진전란사 등에 너무나 뚜렷하게 기록돼 있다. 정유재란 때 왜군의 퇴각을 막기위해 벌인 싸움이 바로 이 장도 송도 해전으로 전라도 땅에서는 보기드문 큰 전투였다. 그때 1만2천명의 소서행장군이 왜교성(국가 지정문화재 제49호)을 쌓고 석달 동안 머물면서 바다로 빠져나가려 했다. 육지에서는 권율과 유정이 거느린 3만6천명의 조명 연합군이 검단산성에 의지하여 이를 압박했고 바다에서는 이순신과 진린이 이끄는 1만2천명의 우리 수군이 적군의 퇴로를 차단하기 위해 진을 쳤다. 1598년 9월 20일부터 11월17일까지 28일동안 장도 송도해역을 초계하면서 치열한 전투를 벌여 적을 대파한 것이 저 유명한 노량대첩이다. 이 싸움은 임진왜란 7년동안 전라도 땅에서 벌어진 가장 큰 싸움이었고 그 장소가 장도다.


공단 조성으로 없애기에는 그 역사적 의의가 너무나 큰 역사유적지다. 이밖에도 이 근방에 있는 당시의 유적으로는 충무사(도지방 문화재 제48호)가 있다. 이 충무사는 임진왜란이 끝난 10년 뒤 충무공의 영정을 모신 사당이다. 이번에 조성될 율촌공단은 2001년까지 1천50만평의 바다를 막아 연차적으로 시공된다고 하는데 문제는 이 바닷속에 떠있는 장도와 송도의 두섬을 없애려는데 있다.


현대는 당초 이 섬들을 살려 녹지 공간으로 보존하는 방법을 검토했었다고 한다. 그런데 여수시의 계획이 몇 차례 바뀌는 과정에서 딴곳에서 토석을 파오기보다 차라리 바다 가운데 있는 이 섬을 폭파하여 쓰는 편이 경제적이라는 최종안이 확정됐다는 얘기다. 이에 대해 지방민들이 거세게 반발하자 우선 장도의 절반만 폭파하고 송도는 후일로 미뤘다고 한다.


경제 성장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문화재를 아끼고 가꾸는 국민 정신 또한 중요하다는 점이다. 선진국일수록 문화재의 중요성이 높아 아무리 작은 것일지라도 보호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우리의 경우 경제성장을 위해 있는 것마저 없애려는 것은 도저히 용납하기 어렵다. 우리는 그동안 얼마나 많은 유적지를 경제 개발이란 명목아래 없앤 뒤 두고두고 후회했던가. 당국과 기업의 재고를 촉구한다.




건국이래 첫 문화 발전 청사진


(조선일보, 96. 2. 16)




재정분배 계획 수립, 투자 획기적으로 활성화/ ‘문화지수제’ 도입, 우선 순위 기초 자료로




세계화추진위원회가 15일 발표한 ‘삶의 질’ 세계화를 위한 ‘문화복지 기본구상’은 정부가 건국이래 처음으로 장기적이고 종합적인 문화부문 발전계획의 청사진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국민의 문화향수권은 국민소득 1만달러 시대를 맞아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사회복지 정책의 중요한 요체. 하지만 문화부문에 대한 투자는 아직도 ‘정부 예산의 1%선’ 확보가 요원한 숙제일만큼 정책 우선 순위에서 철저하게 소외되어 왔다. 또 문화행정 및 투자도 문화생산 자에 치중, 국민들의 ‘체감문화지수’를 높이기엔 미흡했다. 문화체육부가 입안한 이번 ‘문화복지 기본구상’은 이같은 정책관행과 인식에서 탈피, 경제개발계획에 버금가는 문화부문의 재정분배 계획을 수립하겠다는 게 기본취지.


이와 함께 관련 법률과 제도적 장치들을 재정비, 정부와 민간의 문화 투자를 획기적으로 활성화시키고, 중심추도 문화향수자에 두려는 의지를 담고 있다. 그 주요 내용은 ▲가칭 ‘문화환경 조성에 관한 법률’ 제정 ▲ ‘문화복지기금’ 설치 추진 ▲ ‘문화복지 지수제’ 도입 ▲ ‘문화의 집’ 설치 운영 ▲ ‘가족휴양촌’ 조성 ▲광역 및 기초생활권역별 문화 공간 대폭 확충 ▲청소년 및 장애인을 위한 문화복지시책 강화 ▲ ‘사랑의 문화봉사단’ 지원 등으로 방대하다. ‘문화환경 조성에 관한 법률’은 일정 규모 이상의 주택단지 조성 때 문화시설 설치를 의무화하고, 도시의 미관 및 문화관련 시설 보호­육성과 문화재보호 등을 위해 ‘문화지구’의 개념을 법적으로 규정하는 등의 내용을 담게될 예정. 이를 통해 지역민들의 문화향수 기회를 높이고, 서울시에서 추진하고 있는 문화거리 육성계획 등의 제도적 근거를 마련한다는 방침이다. ‘문화복지기금’은 ‘문화환경 조성에 관한 법률’에 설치를 규정, 기업체와 민간의 기부금에 대해 세제 혜택을 주는 방식으로 모금하고, 필요에 따라서는 ‘문화복지복권’의 발행도 적극 검토할 방침이다. 또 기초생활권 단위인 2백30개 시­군­구의 인구별 문화시설 숫자 등을 지수로 통계화하는 ‘문화지수제’를 시행, 투자 우선순위 결정의 기초자료로 활용할 계획이다. 이와함께 프랑스가 지난 60년대 국가의 문화정책적 차원에서 지역 주민들의 문화활동 거점으로 설립해 큰 효과를 거둔 ‘문화의 집’을 도입, 오는 2001년에 1백개, 2011년엔 3천7백여개를 세우고, 해변과 산간 지역에 비상업적 여가시설 서비스를 제공하는 가족 휴양촌들을 조성하겠다고 밝혔다. 문화관련 시설에서도 역시 현재 한개도 없는 대중예술 전용공연장을 2001년에 9개, 2011년엔 15개로 늘리고, 공공도서관은 올해의 3백29개에서 5년후 5백14개, 그후 10년뒤엔 7백50개로 대폭 확충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같은 핑크빛 청사진은 아직 구체적 세부계획을 갖추지 못한 선언적 단계. 각 사업에 소요될 막대한 재정 확보는 물론 법률 제정을 위한 관련 부처 및 민간부문과의 의견조율 등 국가정책적 차원에서 풀어야 할 숙제가 산적해 있기 때문이다. 이번 ‘문화복지 기본구상’이 과연 국민들을 더욱 살맛 나게 하는 문화복지시대의 개막을 알리는 팡파르가 될지, 아니면 일각의 의혹처럼 총선을 겨냥한 ‘선거용 애드벌룬’로 끝나고 말지는 지켜볼 일이다.<권혁종기자>




65. 백년 철도 천년 문화


장수영


포항공과대학교총장, 조선일보 시론, 95. 9. 13.




지금부터 70여년전에 한 일본인은 총독부청사 건축으로 헐릴 위기에 놓인 우리의 광화문을 놓고 눈물로 글을 썼다. 침략국의 일원이면서도 동족들에 의해 파괴될 우리의 문화재를 위해 진심으로 울었다. 만약 그가 살아 우리 자신의 결정에 의한 고속전철의 경주 도심통과를 보게 된다면 무어라고 쓸까.


물론 고속전철의 도심통과를 계획하고 있는 건설교통부안은 아직 확정된 것도 아니고 또 그대로 결정된다고 해도 당장 경주가 해체되거나 파괴되는 것도 아니다. 거기다가 문화재보존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도 충분해 피해를 최소화 할 여러가지 보완책을 제시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있다.


그렇지만 신라 천년의 고도 경주는 불과 120여년전에 대원군에 의해 세워진 광화문과 비할 바가 아니다. 경주에는 그 하나가 바로 광화문과 맞먹을 문화재가 땅속 땅위에 수없이 흩어져 있다.


고속철도의 도심 통과가 직접적인 훼손이나 파괴를 가져오지는 않는다 해도 그 부정적인 영향의 집계는 광화문 철거에 못지않은 문화적 피해를 줄 수도 있을 것이다.


거기다가 고속전철 역세권의 개발을 생각하면 더욱 끔찍하다. 건설교통부는 문화재보호법 같은 것으로 그 개발을 억제할 수 있다고 하나 그게 가능할지는 실로 의문이다. 수백만의 구매력 풍부한 유동인구가 지나는 목을 어떻게 개발제한지역으로 묶어둘 수 있겠는가. 보나마나 그 해제는 지역주민의 숙원사업이 될 것이고, 선거공약의 단골 메뉴가 될것이고, 그러다가 언제가는 정치력에 의해 풀리고 말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심통과안을 고수하는 건설교통부의 고충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결국은 국민의 혈세로 전가될 엄청난 추가비용과 재설계에 따른 공기의 지연이다. 거기에 대해서도 역시 이치에 닿는 반론들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건설교통부는 고속전철을 건천~화천노선으로 변경하는데 대략 1조8천억의 추가비용이 들 것으로 추산했다. 그러나 도심통과구간을 지하로 바꾼다고 양보한 이상 그 추가비용도 만만찮을 것이다. 따라서 지하화에 필요한 추가비용을 빼면 노선 변경에 따른 추가비용은 훨씬 떨어질 것인데 그 경우 천년고도를 보호한다는 명분이면 국민들을 설득하기는 어렵지 않다고 본다.


또 건설교통부는 고속전철의 노선변경으로 대략 1년6개월 이상 공기가 지연되는 것을 걱정하고 있다. 특히 2002년 월드컵 개최에 맞추어둔 고속전철 준공계획이 노선변경으로 일그러진다는 점을 힘주어 내세운다. 하지만 월드컵 개최가 확정되어 있는 것도 아니거니와 확정된다 해도 그것은 한번 있는 행사이다. 아무리 중요한 국제행사라 해도 그 한번의 행사와 우리의 영구한 문화유산이 훼손될 위험을 맞바꿀 수는 없다.


앞서 말한 일본인 야나기 무네요시는 [아, 광화문이여!]라는 명문의 말미에서 이런 성경구절을 인용하고 있다. (주여,저들은 저들이 하고 있는 바를 알지 못하나이다.) 고속전철의 경주도심통과를 고집하고 있는 당국자들이나 그걸 지지하는 소수의 주민들은 자기들이 하려는 일이 무언지를 진실로 알고 있는지, 관료적 경직성이나 눈앞의 이익에 눈이 멀어 이민족 침략자들이 이땅에서 하던 일을 우리 손으로 하려하고 있음을 알고나 있는지.


하지만 정치적 논리와 경제적 계산으로 고속전철의 경주 도심통과가 강행된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70년전의 그 의로운 일본인처럼 훼손되어 갈 경주를 눈물로 바라보는 수밖에 없다. 아아, 경주여,정녕 너를 위해 눈물을 준비해야 하는가.




66. 여행 문화­유적 답사 이렇게 하자


                                        대담 유 홍 준


영남대 교수, 사회문화 1부장, 조선 일보 94. 7. 9 15면




학교­가정서 두 방향 교육 필요/박물관 가까이하는 생활, 지역 문화 학교 운영 바람직/전문 지식 갖춘 선생님과 함께/수학 여행 학급 단위로 떠나자/일정표 준비 계획적 여행 필수/쉴 때는 휴게소보다 유적지서




본격적인 피서철이 시작됐다. 올해도 수많은 인파가 전국의 유원지와 관광지를 메우겠지만 최근 일기 시작한 ‘우리 것을 알자’는 붐을 타고 문화현장을 둘러보는 경우도 적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저자인 영남대 유홍준교수를 서희건부국장대우 문화1부장이 만나 문화유적답사의 의미와 바람직한 여행문화에 대해 의견을 나누었다.〈편집자주〉




―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는 우리 문화유산에 대한 국민의 관심을 높이는 동시에 여행문화를 바꿔놓는 계기도 됐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답사기를 손에 들고 휴가를 떠나게 된 것만도 상당한 변화라고 해야겠습니다.


“우리 문화 유적을 찾는 사람이 부쩍 늘어난 것은 생활에 여유가 생기면서 잠재했던 문화적 욕구가 분출한데다 외국여행을 하면서 상대적으로 우리 것에 대한 관심이 고조됐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런 배경이 있기에 일반인을 위해 쓴 것도 아닌 제 책이 많이 읽히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 답사기에는 ‘아는 만큼 느낄 뿐이며 느낀 만큼 보인다’는 구절이 있습니다. 문화유산에 대한 이해에는 상당한 노력이 필요함을 지적하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87년 해외여행 자유화를 계기로 조선일보는 ‘일본속의 한민족사 탐방’을 시작해 예상밖의 호응을 얻었습니다. 이 과정에서도 문화유산에 대한 교육의 필요성을 느꼈습니다.


“자연의 아름다움과 달리 문화의 아름다움은 체계적인 학습과 숙련이 없이는 느낄 수가 없습니다. 외국문화를 좀처럼 이해하기 힘든 것도 이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 문화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학교에서 우리의 문화사나 미술사를 제대로 배우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구체적인 설명 없이 ‘우리 문화가 찬란하다’는 말만 되풀이하는 것은 맹목적인 애국을 강요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문화 유산에 대한 교육은 서양처럼 국가적 차원에서 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합니다.”




― 외국에 나가면 ‘당신들의 역사는 무엇이 남과 다른가’ ‘당신들이 자랑하는 문화유산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많이 받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이런 질문에 자신 있게 답변하지 못하는 게 현실입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 문화유산의 특징과 자랑스러운 점을 명쾌하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문화유산을 이해해야 남에게 설명도 할 수 있습니다. 문화유산을 이해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좋은 유물을 좋은 선생님과 함께 보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전시유물을 자세히 설명해 놓은 국립박물관 등 각종 박물관을 먼저 본 뒤 유적지 등의 야외유물을 찾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박물관의 설명 자체가 좋은 선생님이니까요. 볼 것이 많아 시간이 부족할 때는 진열장안 유물부터 감상할 것을 권합니다. 그것들은 고르고 고른 좋은 유물입니다. 야외유물은 평소 관심을 갖고 기회있을 때마다 여행을 통해 확인해야겠지요. 이때도 꼭 ‘선생님’이 있어야 합니다. 다행히 최근에는 좋은 답사안내서들이 많이 나와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 여행은 세 번의 즐거움을 준다고 합니다. 사는 곳을 떠나는 즐거움, 보고싶은 것을 만나는 즐거움, 모르는 것을 알게되는 즐거움이 지요. 그동안 사람들이 먹고 마시는 여행쪽으로만 관심을 보여 뜻있는 사람들이 걱정했는데, 요즘 자연을 즐기면서 동시에 문화를 배우는 답사여행이 새롭게 각광을 받아 다행스럽게 생각합니다. 바람직한 답사여행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요.


“답사 여행의 즐거움과 보람을 만끽하려면 목적지 문화유산에 대한 사전 공부가 꼭 필요합니다. 답사하려는 유물 유적은 말할 것도 없고 그곳에 얽힌 역사와 인물에 대한 지식이 더해지면 금상첨화이겠지요. 아울러 야생초 등 도중에서 만나는 자연도 그냥 지나치지 않고 그 유래와 의미, 특성 등을 익힌다면 여행문화가 한결 풍요로워질 것입니다. 또 한가지 강조하고 싶은 것은 문화유산을 볼 때는 구경꾼이 아니라 ‘주인’ 입장에서 보라는 것입니다. 예컨대 대웅전의 부처님을 바라보기보다는 부처님이 보는 방향을 볼 때 더욱 아름다움을 맛볼 수 있습니다.”




― 초·중·고등학교의 방학이 눈앞에 다가왔습니다. 학생들이 우리 문화유산에 대해 공부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됩니다.


“문화 유산에 대한 교육은 학교 교육과 가정 교육 두 방향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학교 교육의 가장 큰 과제는 수학 여행 방식을 바꾸는 일입니다. 우리는 일제 시대 이래 학년 단위의 수학 여행을 고집하고 있는데 수학 여행의 효과를 극대화하려면 학급 단위로 떠나야 합니다. 또 한번에 모든 것을 다 보는 방식도 바꾸어야 합니다. 서울 강남의 한 중학교는 경주 수학여행에서 가장 좋은 것 하나를 골라 그림이나 사진, 글로 내는 방식을 채택했더니 아연 활기를 띠면서 성과가 컸다고 합니다.”




― 문화 유산에 대한 교육은 동시에 국토에 대한 교육이고, 국토사랑을 통해 통일을 준비하는 것도 됩니다. 우리 주변에 있는 것들은 하나하나가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모두 교육과 관광자료가 될 수 있습니다. 답사여행을 나서는 사람들은 무엇을 준비해야겠습니까.


“일정표를 꼭 준비하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현지에 가서 사정에 따라 변동이 있을 수 있습니다만 계획적인 여행이라야 효과를 높일 수 있습니다. 또 식사도 관광지 식당보다는 현지 사람들이 이용하는 곳에서 본토 사투리를 들으며 함께 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리고 자동차 여행자들에게는 고속도로를 이용할 때 휴게소보다는 인근 유적지에서 휴식을 취할 것을 권하고 싶습니다. 작은 노력으로 큰 성과를 거두는 방법입니다.”




― 여행지에 가면 자기 얼굴을 담은 사진을 찍느라 여념이 없는 사람들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정말 오래 남는 것은 현지의 풍물을 담은 슬라이드 사진일 것입니다. 여행지에 도착해서 유적을 돌아볼 때 특히 유념해야 할 점은 어떤 것이 있겠습니까.


“널리 알려진 곳뿐 아니라 구석구석까지 돌아볼 것을 권하고 싶습 니다. 경주를 가더라도 불국사 석굴암 경주박물관 등만 가지 말고 감은사터나 남산 감실처럼 사람들이 잘 찾지 않는 곳에서 오히려 경주의 매력을 발견할 수도 있습니다. 돌 한 뿌리 풀 한 포기도 그냥 지나치지 않을 때 비로소 참된 안목을 얻게 됩니다. 또 현재 있는 사람들의 삶에 대한 관심도 빼놓아서는 안되겠지요.”




― 일본에 가면 각 지역마다 문화 유산을 잘 보존하고 가꾸고 있는 데 깊은 인상을 받습니다. 우리도 지역의 행정 기관과 문화인이 자기 고장의 문화유산을 관리하는 데 더 신경을 써야 할 것입니다. 예를 들어 여름철이면 많은 사람들이 찾는 해수욕장 주변의 유지나 문화인들, 특히 향토사학자나 교사들이 해안 문화 학교 등을 개설해 자기 지역을 적극 알리려고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얼마전 감사패를 받으러 강진군을 다녀왔는데 ‘이상적인 문화 유산 보존 지역’이란 인상을 받았습니다. 전에 보이지 않던 다산초당과 영랑생가를 소개하는 소책자가 등장하는 등 내고장 문화유산에 대한 군민들의 관심이 부쩍 높아졌는데도 인심과 경관은 그대로였습니다. 지킬 것은 지키고, 알릴 것은 알리고, 보존할 것은 보존하는 이런 자세가 바람직합니다. 내년 지방자치 실시를 계기로 이런 모습이 널리 확산되길 기대합니다.”


정리=이선민 기자〉




67. 미인 대회 무엇이 문제인가


김미경


한겨레신문 생활과학부 기자, 샘이깊은물 96년 5월호에서




미인 대회 = 살코기 시장?




“미인대회”에 여성 단체가 또다시 문제 제기를 하고 나섰다.


한국 여성 민우회는 오는 오월 구일에 “미인대회 중계 중지를 촉구하는 공개 토론회”를 열고 각 방송사 쪽에 중계 금지 요청 공문을 보내는 것 같은 활동을 할 준비를 하고 있다.


그 동안에 미인 대회를 아예 없애 달라는 운동은 있었지만 “중계 방송 중지”라는 새로운 전략을 구사하기는 처음이어서 주목된다.


민우회 쪽이 오월 중순쯤에 열릴 “미인 대회 중의 미인 대회”인 미스 코리아 선발대회를 겨냥해 “중계 방송 중지”라는 새로운 전략을 쓰게 된 데는 그 나름대로 이유가 있을 법하다.


첫째는 현실적인 감각이다. 이젠 혼인한 여자도 “미시족”이라는 이름으로 부추기면서 외모에 신경을 써야 한다는 강박 관념을 가지게 할 정도로 우리 사회에서 여성의 외모에 관심을 자꾸자꾸 쏟아가고 있다. 이런 마당에 “미인 대회 폐지”라는 개념이 좀 촌스러워졌달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미인 대회를 온 가족이 보는 시간대에 중계 방송을 하여 여자의 외모 중심 미의식을 확산시키는 문제를 지적하자는 우회적인 전략을 선택한 것이다.


실제로 텔레비전에서 중계 방송을 하지 않을 바에야 미인 대회의 의미는 당연히 생명력을 잃게 될 것이 뻔하다는 판단에서 그랬을 것이다. 미인 대회를 하고 즐기고 싶은 사람은 즐기더라도 보고 싶지 않은 사람들에게까지 보라고 강요하지 말아 달라고 점잖게 요구하기 시작한 것이다. 미인 대회 거부의 장기 포석이다.


둘째는 방송사에 공식적으로 문제 제기를 하여 “미인 대회 문화”를 확산시키고 있는 주범을 찾자는 것이다. 외모 중심의 문화 풍토가 텔레비전으로 가속화되고 있는 만큼 항의를 통해 주범에게 경종을 울리자는 의미다.


그 동안에 우리 나라에서 여자들이 중심이 되어 일으킨 미인 대회 반대 운동 중에서 성공한 사례는 칠십년대 이화 여대에서 일어났던 “메이퀸 선발 대회” 반대 운동이 유일무이할 듯싶다. 대학 사회였기 때문에 그나마 가능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 밖에는 거개가 실패했다. 이를테면, 팔십년의 오일팔 광주 항쟁의 아픔이 채 끝나기도 전에 열렸던 미스 코리아 선발대회에 대항하여 한국 여성 유권자 연맹이 “미스 코리아 반대 운동”을 벌이고 후원사 태평양 화학 제품 불매 운동에 나섰으나, 그때에 태평양 화학이 여성 단체 앞으로 이 행사에 불참하겠다는 각서까지 보냈지만, 실제로는 행사 후원을 그대로 하고하여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그 뒤로 크고 작은 미인 대회에 문제 제기는 많이들 했지만 미인 대회는 잠잠해지기는커녕 오히려 더 기승을 부리는 형태로 발전해 나갔다. “미스코리아” 선발대회가 고작이었던 데서 요즘에 들어서는 숫자를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예쁜 여자 뽑기 붐이 일어나 버렸다.


미스 코리아를 뽑는다 해서 각 시도별로 벌이는 예선전 말고도 전국 각군 단위별로 특산물 판촉을 한다 해서 해마다 열고 있는 미인 대회, 각 시도별로 벌이는 축제 때에 약방 감초로 꼭 들어가는 미인 대회들만 해도 이백여개가 넘을 정도다. 예를 들면, 경북 군위군의 능금 아가씨, 안동군의 한우 아가씨, 영양군의 고추 아가씨, 청도군의 미스 감, 미스 복숭아, 미스 밤, 영주시의 인삼 아가씨, 충북 보은군의 대추 아가씨, 단양군의 마늘 아가씨, 철쭉 여왕, 충주시의 온천 아가씨, 사과 아가씨, 괴산군의 청결 고추 아가씨 해서 수두룩하다. 서울 축제인 명동 축제, 신촌 축제 때에도 꼭 미스 신촌, 미스 명동 따위를 뽑고야 만다.


문제는 이런 특산물이나 지역 축제 이름을 딴 미인 대회 때의 선발 기준도 미스 코리아 선발 대회와 거의 똑같다는 점이다. 실제도 청결 고추 아가씨 선발 대회를 열고 있는 충북 괴산군 산업과가 밝히는 청결 고추 아가씨 선발 기준을 보면 “외모와 태도”를 사십점으로, “피부와 건강 상태”를 이십점으로, “분위기 조성”을 십점으로, “관중의 반응”을 십점으로 잡았다.


왜 이렇게 예쁜 여자 뽑기 대회를 좋아하는 것일까? 우리만 이러는 것일까? 외국도 그러는 것일까?


미인 뽑기 대회의 원조였던 미국과 영국 등지에서는 미인대회가 한물갔다는 이야기가 심심찮게 흘러나오고 있다. 구십년대 초에 벌써 영국에서는 미스 월드 선발 대회가 인기있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이 되지 못한다는 징조가 보이기 시작했다. 지난 구십년에 미스 월드 대회 중계권을 신청한 텔레비전 방송국이 템스 텔레비전 하나뿐이었다고 외신은 보도했었다.


미국에서도 지난 해 미스 아메리카 선발 대회 때에 수영복 심사를 꼭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가 불거져 나오고 하여 미인 대회의 인기가 시들해져가는 분위기를 약간씩이나마 감지할 수 있다.


민우회의 이번 문제 제기가 성공할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하지만 이런 행사에 넋을 덜 파는 전세계적인 추세와 이런 행사를 여자의 존엄성에 도전하는 활동으로 보는 견해의 득세와 크게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은 가능할 듯싶다.


미인 대회를 즐기고 싶은 사람은 즐기되 미인 대회가 싫은 사람들에게도 똑같이 보도록 강요하는 문화는 바뀌어야 한다는 식의 합리론이 갖는 설득력이 이번 “중계 방송 중지”의 요구를 몰고 왔다. 이젠 미인 대회를 보고 싶은 사람은 특별한 유선 방송을 선택해 보도록 하자는 것이다. 더는 여성의 몸을 살코기 다루듯이 잘라 파는 듯한 시장 같다고도 할 그런 미인 대회를 보고 싶지 않은 많은 사람들에게 그런 것 보기를 강요하지 말아 달라는 요구라고 보아야 할 이번의 문제 제기가 설득력있게 보인다.


미인대회, 카메라 치워!


(한겨레21, 96. 5. 15)




얼굴이 남달리 예쁘고, 몸매가 잘 빠진 여성들이여. 혹시 미인대회에 나가고 싶은 충동을 느껴본 적이 있는가. 수억대의 돈과 출세가 보장되는, 일약 신데렐라의 꿈을 이룰 수 있는 무대. 그곳이 당신들을 유혹하고 있다. 무슨 광고문구가 아니다. 우리의 현실이다.


여성 단체들의 전략 수정


여성으로서의 인격과 지성은 미인을 평가하는 중요한 덕목이 아니다. 그저 잘 생기고, 미로의 비너스상과 같은 아름다운 몸매 조건만 충족시키면 된다. 그렇다고 경쟁자보다 잘 나고, 잘 해서 무조건 되는 것도 아니다.


 줄도 잘 잡아야 한다. 그래도 나가고 싶은 욕망이 생긴다고? 그건 자유다. 하지만 그런 미인대회를 ‘여성 상품화의 도구’라고 비난하는 여성들이 있다는 것을 아는가. 그래도 괜찮은가. 역시 자유다. 미인대회를 부추기고 즐기는 사람들도 많지 않은가.


미인대회의 대명사인 미스코리아 선발대회. 늘씬한 몸매, 아슬아슬한 수영복을 걸친 미모의 여성들이 줄줄이 무대를 걸어나온다. 이를 놓칠세라 방송 카메라의 눈도 여성들의 신체 곳곳을 파고들고, 야하디 야한 장면들이 공중파를 통해 무차별하게 전국 곳곳으로 타고나간다. 사회자의 질문이 이어진다. “각선미가 아름다우면 여러 사람들에게 자랑하고 싶을 텐데 그런 마음은 없습니까”, “아무도 없는 계곡에서 옷을 벗고 목욕을 하던 중 지나가던 남자가 옷을 벗어놓은 옆에서 책을 읽고 있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도대체 뭘 테스트하겠다는 질문인가. 심사위원들도 신체 부위별 기준에 따라 채점에 여념이 없다. 지난해 문화방송을 통해 중계된 미스코리아대회의 한 단면이다.


외모에 관한 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미희들이 벌이는 이른바 ‘미의 제전’. 정녕 ‘여성의 아름다움을 부각시키는 무대’인가. 아니면 ‘여성의 상품화를 조장하는 저질스런 장’인가. 후자의 측면이 강하다면 공익을 위한다는 방송이 그것을 중계를 해도 되는 것인가.


최근 미스코리아대회 등 미인대회를 놓고 다시금 논란이 일고 있다. 방송사가 예전처럼 미스코리아대회의 전야제와 선발전을 공중파를 통해 전국에 중계하려 하자, 여성계가 새로운 차원에서 이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나선 것이다.


한국여성민우회와 한국여성단체연합, 서울지역여대생대표자협의회 등 3개 단체 관계자들은 지난 5월17일 오후 대책위원회를 열었다. 토요일인 오는 5월25일, 그것도 시청률 황금시간대인 저녁 6시20분부터 9시까지 열리는 96미스코리아 선발대회 중계를 저지하기 위한 회의였다. 왜 이들은 방송 중계 저지에 나선 것일까.


여성민우회 시청자사업위원회는 지난 5월9일 서울 종로성당에서 ‘방송의 미인대회 중계, 무엇이 문제인가?’를 주제로 공개토론회를 벌였다. 이 토론회에서는 95미스코리아, 96슈퍼엘리트모델, 96관광홍보사절 선발대회 등 미인대회 관련 중계 프로그램에 대한 모니터 결과가 발표됐다. 학계와 관계, 방송계 인사들도 진지한 토론을 벌였다. 이날 모니터 발표에서는 “미인대회는 여성을 인격이 배제된 육체중심으로 상품화하고 있다”는 주장이 강력히 제기됐다. 아울러 “이러한 미인대회가 공적인 방송매체를 통해 공공연하게 중계되는 것은 성의 상품화 현상을 일반화시키고, 여성들에게 신데렐라 욕구를 확산시키는 등 건강한 여성상 정립에 악영향을 주고 있다”는 분석도 곁들여졌다. 그동안 미인대회 폐지를 줄기차게 요구하던 여성계가 ‘중계방송 중지’쪽으로 무게중심을 이동한 데는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다. “성을 상품화하는 미인대회는 원칙적으로 없어져야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런 주장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 때문에 전략을 수정했다는 여성민우회 조정하 홍보 사업부장의 얘기다.


과연 방송의 공익성에 맞는가


여성민우회는 지난 5월13일올 미스코리아대회 중계를 맡은 문화방송쪽에 이의 중지를 요구하는 공문을 보내는 한편 강성구 문화방송 사장과의 면담도 요청해놓고 있다. 하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을 듯하다. 이에 따라 여성 민우회는 대학생들과 연대해 미스코리아 선발대회 전인 23일과 24일 서울 여의도 문화방송사 앞에서 항의시위를 벌일 예정이다. 여성계의 주장은 미인대회를 열고 즐기고 싶은 사람은 즐기더라도, 보고 싶지 않은 사람들에게 보도록 강요하는 문화는 바뀌어야 한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젠 미인대회를 보고 싶어하는 특별한 사람을 위해 유선방송을 통해 중계하도록 유도하자는 것이다.


그렇다면 미인대회와 그 대회의 중계방송이 만들어내는 문제점은 무엇인가. 이영자 (가톨릭대학교 사회학) 교수의 지적이다. 우선 미인대회는 여성의 존재가치를 외모와 직결시키는 종전의 그릇된 관습을 노골적으로 공 인하고 강화한다. 게다가 여성을 육체의 각 부위로 나누어 기계적인 잣대와 기준에 따라 점수를 매기는 심사대상으로 삼음으로써 여성의 인격 자체를 경시하거나 평가절하한다는 것이다.


외모가 우리 사회의 바람직한 여성상의 기준인 양 가치기준을 왜곡시키는 것도 큰 문제라는 게 여성계의 시각이다. ‘신데렐라 콤플렉스’를 조장하고, 비생산적인 영역으로 여성인력을 낭비시키는 점도 우려되는 측면이다. 미인대회를 통해 여성의 외모에 보내는 찬사와 동경은 타고난 외모와 성형외과를 통해 바뀌어진 미모를 이용해 명예욕을 충족시키려는 여성들의 욕구를 부채질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이것은 또 심각한 인력낭비로 이어지고 있는데, 해마다 미스코리아의 꿈을 안고 참가하는 여성들이 전국적으로 1천여명을 넘어선다는 사실은 이를 증명해주는 것이다. 최근 열린 96슈퍼엘리트모델대회도 수백대 일의 높은 경쟁률을 보였고, 지역특 산물 아가씨다 뭐다 해서 열리는 각종 미인대회에도 수많은 여성들이 지원서를 내고 있다. 미인대회 출전을 위해 얼굴을 뜯어고치는 등 비정상적인 노력에 정열을 쏟고 있는 많은 여성들, 결과적으로 그들 대부분은 생산성없는 영역에서 삶을 허비하고 있는 꼴이다. 이런 미인대회를 공공매체라는 방송사가 중계한다는 것은 방송의 공공성과 공익성에 위배된다는 게 여성계의 주장이다.


유럽에서는 이런 역기능 때문에 최소한 공중파가 아닌 케이블채널을 통해 미인대회를 중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미인대회를 주관하는 언론사나 이를 중계하는 방송사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는다. 왜 그럴까. 막대한 광고수입을 놓칠 수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방송사로서는 미인대회를 통해 탤런트나 MC 등으로 써먹을 수 있는 스타들을 큰돈 들이지 않고도 발굴할 수 있다. 그야말로 ‘꿩먹고 알먹기’식의 이득을 보는 셈이다. 그러니 이런 황금사업을 포기할 리 만무하다. 미스코리아대회 주 최사인 한국일보사와 올해까지 3년 동안 중계권 계약을 맺었던 문화방송은 여성계의 반대 속에서도 계약을 2년이나 더 연장했다.


인격은 없고 육체만 있다


문화방송 한 관계자의 말은 미인대회에 대한 방송사의 시각을 여실히 보여준다. “미스코리아 선발대회는 1~2년 된 것도 아니다. 시각에 따라 나쁘게 볼 수도 있지만 미(아름다움)라는 측면에서 보면 나쁠 게 없다. 이런 대회가 국내에 있는 것만도 아니고 세계적으로도 많다. 성을 상품화한다는 얘기는 편향된 시각이다. 텔레비전에 비치는 모습이 야하다는 등 다소 문제가 있지만 ‘여성미의 부각’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미인대회의 중계는 중요하다. 보수적인 때인 60년대에도 미스코리아대회를 했는데, 2 1세기를 앞둔 시점에서 문제삼는 것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


미인대회의 중계방송과 관련 방송사의 자율적 노력을 강조하는 주장도 있다. 공보처 권영후 방송지원과장의 말이다. “방송사의 편성권에 대해 우리가 관여할 처지는 아니다. 다만 방송사가 자율적으로 미스코리아대회의 중계를 취급하는 데 있어 여성계의 의견을 수렴해야 한다. 선정적인 것보다는 여성들의 인격이나 내면적인 품성에 초점을 맞추어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한다. 사회자의 자질도 중요하다.” 그는 또 지난 93년 7월 시청자들의 텔레비전 끄기운동을 전개한 결과, 방송사들이 상당히 자정노력을 해 방송의 질이 높아졌다면서, 방송사의 자율적인 노력과 함께 시청자운동을 강조한다.


미인대회에 대한 논란은 사실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미 몇년 전부터 여러 가지 문제를 일으켜 폐지론이 거세게 제기됐다. 그러나 최근 들어서는 이런저런 미인대회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겨 더욱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 지고 있다.


도대체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이런 미인대회의 미인에 대한 기준은 무엇인가. 미인의 기준은 동서 고금, 사람들에 따라 각각 다르다고 한다. 지금 세계 곳곳에서 시행되고 있는 미인심사의 기준은 고대 그리스 시대의 미로의 비너스상으로 알려져 있다. 신체와 체중은 알 수 없으나 가슴둘레 37인치, 허리는 27인치, 히프는 38인치라고 한다. 미스코리아대회 심사기준안을 보자. 물론 교양이나 교육정도 등 내적인 아름다움도 기준이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짧은 시간에, 그것도 사회자의 질문에 의해 판단되는데 얼마나 설득력이 있을지 의문이다. 또한 사회자의 저급한 질문 수준 등 그동안의 양태로 볼 때 미인대회서 여성의 교양이나 인격에 대한 올바른 평가를 기대할 수 없다. 올해 미스코리아대회 심사기준도 예년이나 다를 바 었다. 구체적으로 보면 이렇다. 얼굴은 크지 않아야 한다, 목이 짧지 않은가, 눈과 코를 지나치게 정형하지 않았는가, 유방의 크기 위치 선, 히프 사이즈 선 모양, 걸을 때의 자세 등등.


얼굴 전체(매력과 균형), 목, 어깨, 팔, 가슴(선과 균형), 하체(선과 균형), 전체 피부(색) 흠 유무(전신의 매력 균형 교양미) 등 4개의 큰 항목과 세세히 갈라진 26개의 항목 가운데 대부분이 외모와 관련된 것 일색이다.


여성계는 이에 대해 “인격은 완전히 사라지고 몸뚱이만으로 재단당하듯 선발하는 이런 심사기준을 어찌 사람들에게 적용할 수 있는가”라면서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선발 과정 부정 개입 늘 말썽


미인이란 평가하는 사람에 따라 다르기에 선발 기준은 애매해지고, 사심과 검은 커넥션이 개입되게 마련이다. 미스코리아대회는 ‘한국여성의 건강한 아름다움’을 북돋우고 ‘미를 통한 국제사회 참여와 문화류’에 기여한다는 취지로 만들어졌으며, 지난 57년 한국일보사가 1회 대회를 연 뒤 맹맥을 이어오고 있다. 하지만 과연 그 취지가 올바르게 시행되고 있는가. 선발에 부정이 개입되고 지나치게 상업성을 보여 늘 말썽이 됐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더욱이 여성뿐만 아니라 남성조차 상품화되는 사회에서 미인대회 폐지 주장이 받아들여진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일 게다.


 그러나 여성계의 주장대로 많은 문제를 야기시키는 무분별한 미인대회들이 최소한 공공매체를 통해서 무차별하게 대중들에게 다가서는 것을 막는 것은 문제해결의 차선잭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것도 안된다면? 대회 주최사인 신문사나 방송사에서 바람직한 미인선발 기준을 세우고 지나친 상업성과 선정성을 배제해 새로운 차원의 미인대회로 거듭나게 할 수 있다면 그것도 대안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김경무 기자>




“너도 나도 연예인”


(한겨레21, 96. 5. 22)




“방송일을 하고 싶어요.” 미인대회 당선자들의 희망 사항 1호다. ‘방송일’이라는 모호한 말로 얼버무리지만, 사실 그들은 이런 말을 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미모로 밀어붙여 탤런트로 데뷔하고 일단 뜨면 CF모델도 해보고 가능하면 연기력으로 승부할 수 있는 영화에도 진출하고 싶다.”


쇼 프로그램에선 최우선 순위


미인대회가 연예인으로 진출하는 ‘도약대’로 인식되기 시작한 것은 지난 80년대 말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대표적인 미인대회는 미스코리아대회였다. 57년에 첫선을 보인 이 대회는 86년까지 입상자들에 대해 연예활동을 금지시켰다. 입상을 해도 ‘미의 사절’로 외국 미인대회에 나가거나, 국내에서 사회활동을 하는 정도였다. 심하게 말하면 “미인대회 입상하면 시집을 잘 간다더라”는 정도로만 여겼던 셈이다. 그러나 87년부터 미스코리아들의 연예활동에 제한이 사라지고 연예인으로 크게 성공하는  미스코리아들이 잇따르자, 입상자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연예인의 길로 줄 달음쳤다. 또 누구나 그들의 그런 행보를 당연하게 보았다.


실제 87년부터 94년까지의 ‘미스코리아 진’인 장윤정(MC), 김성령(MC), 오현경(탤런트), 서정민(탤런트), 이영현(MC), 유하영(탤런트), 궁선영(M C), 한성주(탤런트) 등이 모두 연예인의 길을 가고 있다. 이들 말고도 인기 연예인이나 방송인으로 통하는 염정아(91년․선), 장은영(92년․선), 이승연(92년․미), 김예분(94년․미) 등도 모두 미스코리아 출신들이다. 요즘엔 모델 선발을 겸한 슈퍼 모델 대회와, 연기 시험을 함께 보는 슈퍼 탤런트 대회까지 생겨나 이런 경로를 통해 연예인으로 데뷔하는 이들이 급속히 늘고 있다.


94년 미스코리아 진이었던 한성주씨는 입상 당시 “전공을 살려 외교관이 되겠다”는 포부를 밝혀 눈길을 끌었지만, 역시 얼마 가지 않아 <종합병원> 등에 출연해 미인대회 출신들의 연예계 지향 분위기가 대세임을 증명했다. 이렇듯 미인대회 출신 여성들이 하나같이 연예인이 되려고 하는 것은 방송국이 시청률을 위해 시청자들의 눈길을 묶어둘 수 있는 미인들을 탤런트나 프로그램 진행자로 키우는 전략을 쓰기 때문이다. 방송국 프로듀서인 박아무개씨는 “시청률이라는 기준으로 보면 드라마와 쇼 프로그램에서 미인대회 출신들은 최우선 순위”라고 말한다. 입상자들도 부와 인기를 일시에 얻을 수 있는 인기연예인이 된다는 현실적 유혹을 쉽게 뿌리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미스코리아 출신으로 연예활동을 하고 있는 김아무개씨는 “대학에서 연기를 전공하지도 못했고 제대로 된 경험을 쌓은 것도 아닌데 단번에 뜰 수 있는 기회를 놓치려는 사람들은 없다. 치열한 공채시험을 보지 않아도 된다는 이점도 크게 작용한다”고 고백했다.


어떻게 해서든지 방송과 인연을 맺어 부와 인기를 누리려는 이들의 요구와 미인들의 외모로 시청률을 높여보겠다는 방송사의 이해관계가 딱 맞아 떨어지는 것이다.


뛰어난 전문 인력인가, 얼굴 마담인가


그러나 이들의 기용에 대해서 방송계 안팎에서는 찬반 양론이 팽팽하다. 미스코리아들은 탤런트나 MC가 될 만한 전문적인 능력이 떨어진다는 ‘자질부족론’은 부정적인 시각을 대표한다. 연기보다는 외모로 승부하는 이른바 ‘얼굴마담’이라는 것이다. 긍정적인 주장은 이들이 재능도 있고 기량도 뛰어나기 때문에 오락적인 기능을 수행해야 하는 텔레비전의 위상에 가장 어울린다는 것이다.


찬반론을 실증적으로 검증할 수는 없지만, 지금 단계에서 미인대회 출신들이 방송인력의 전문화에 도움을 준다고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계획이나 장기적인 전망 없이 마구잡이로 방송으로 몰려드는 대신 그들은 이제 이런 고민을 시작할 일이다. ‘진지한 대중예술인의 조건은 무엇인가.’


<김창석 기자>


68. 해커들을 위한 변명


김 은 영


작가, 한겨레21 시론, 96. 5. 22)




얼마 전 과학기술원(KAIST) 학생 2명이 지난 4월의 포항공대 해킹 사건으로 구속됐다. 검찰은 5월7일 과기원 내의 컴퓨터 동아리인 KUS 회원 노정석씨와 스팍스(SPARCS) 회원 몇명이 포항공대 전산망에 침투해 물리학과 등의 워크스테이션 7대의 데이터를 지웠다고 발표했다.


사건 이후 찾은 과기원의 분위기는 사뭇 뒤숭숭했다. 전날까지 같이 수업을 듣던 친구의 구속을 둘러싸고 사람들은 관심깊게 의견을 주고받았다.


한쪽에서는 이번 사건은 명백히 ‘크래킹’이고 따라서 범인은 마땅히 처벌돼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그러나 그들의 처지를 변호하는 소리도 적지 않았다. 표적 수사라는 것, 검찰과 안기부와 한국전산원의 파워게임의 희생양이라는 것과 함께 그동안의 공헌을 무시한 처사라는 비판이었다.


두시간 만에 일곱대 ? 문제는 보안 체계


사건의 결과는 물론 앞으로 좀더 지켜봐야 알 것 같다. 그런데 이번 사건에는 미처 언론에서 다루어지지 않았지만 꼭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가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나라 전산시스템의 보안능력에 대한 문제이다.


검찰쪽 발표에 따르면 포항공대 물리학과 등의 컴퓨터가 불과 ‘두 시간’ 만에 무려 ‘일곱 대’나 해킹을 당했다. 어찌 이렇게 보안에 소홀한가? 들어간 크래커의 잘못도 크지만 그렇게 부실하게 관리한 사람들 또한 비판받아야 한다. 국가의 존립을 위해서 국방은 필수적이듯이 시스템 관리자는 당연히 자신의 시스템을 보호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런데 그 점에서 보면 국내의 관리자들은 거의 직무 유기를 범하고 있는 셈이다. 만약 망치로 한번 때렸는데 건물이 무너졌다면 망치로 친 사람뿐 아니라 건물 관리인의 책임 또한 큰 것이다.


이번 사건은 국내 전산망이 얼마나 위험한 상태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비단 포항공대만이 아니다. 과기원과 더불어 가장 해킹 방지실력이 뛰어난 포항공대가 그랬으니 다른 곳 같으면 어떠했겠는가? 지금은 미국에서 한국으로 들어오는 전산망이 매우 느려 한국이 외국 해커의 표적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 있지만(그래도 자주 당한다. 당한 것도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멀지않아 전산망이 확충되면 국내 컴퓨터들은 모두 외국 해커들의 노리개가 될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최악의 경우 이런 상황까지 상상이 가능하다. 독도의 영유권을 둘러싸고 통일한국과 일본 사이에 전쟁이 일어난다. 일본은 한국을 향해 핵미사일을 발사하고 한국은 즉각 요격미사일을 쏘아 대한해협에 떨어뜨리려고 한다. 그런데 분명히 명중률 100%를 자랑하던 요격 미사일은 엉뚱한 쪽으로 날아가고 핵미사일은 서울에 떨어진다. 그 순간 일본 자위대에서는 한 해커가 미소를 띠고 있다. 그가 한국의 국방부 전산망에 침투해 숫자 하나를 바꿈으로써 미사일이 빗나간 것이다. 이런 비극적인 상황이 오 지 말라는 법이 없다. 실제로 걸프전 때는 각기 미국이며 이라크를 편드는 사람들이 상대편 전산망에 침투해서 소프트웨어를 망가뜨리려 했다고 한다. 패트리어트 미사일이 스커드 미사일을 제대로 격추하지 못했던 이유도 해킹 때문이라는 것이다. 아마 율곡 이이가 살아 있다면 ‘해커양병론’을 주장했을 법도 하다.


경제 전쟁 시대 기업간 해킹 날로 확산


경제 전쟁의 시대에는 기업간의 해킹 또한 중요하다. 신문에 별로 보도되지 않아서 그렇지 기업들간의 해커 전쟁은 급격히 확전되는 분위기다.


하지만 아직 한국의 정부․기업․학교는 해커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턱없이 부족한 상태이다. 여기서 졸고(拙稿) <사과전쟁>의 한 구절을 인용해 본다(<사과전쟁>은 과기원과 포항공대의 해커들 이야기를 다루었으며 KUS와 스팍스도 등장한다).


“91, 92년도에 절정을 이루었던 과기원의 해커들은 93년도를 기점으로 해서 거의 없어졌다. 그 이유는 엄격한 학사 행정 관리에 있었다. MIT의 해커들이 그랬듯이 과기원의 해커들도 하나씩 사회에 짓눌려 떠났다. 자본주의 구조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이 사회에서는 대학에서 자유롭게 해킹을 하는 것을 놓아두지 않았다. 공대의 목적은 산업체에 좀더 알맞은 사람을 창조하기 위한 것이었고 해커는 거기에 일단은 부합되지 않았다.


실상 그들이야말로 필요한 사람들이었을지 모르는데 아직 기업과 학교와 정부의 인식이 거기에 미치지 못했던 것이었다. 일부 해커들은 학사 경고로 인해 제적되었고 일부 해커들은 별수없이 현실에 타협해 전산감리사나 게임 프로그래머로 변신했다.


그런 이유로 과기원의 해커들은 시대와 역행해서 오히려 줄어들었다. 그런데 이번 사건 때문에 해커에 대한 이미지마저 더욱 악화되는 것 같아 무척 씁쓸하다. 유감스럽게도 이번에도 언론의 ‘선정주의’와 ‘편파 보도’가 있었다. 언론은 구속된 노정석씨가 CERT(전산망보안사고대응팀)에서 보안을 담당했었고, 오는 5월28일 서울과학기술회관에서 열리는 제 2차 한국전산망보안워커숍의 발표자로 내정돼 있었다는 사실을 보도하면서 “고양이에게 생선가게 맡긴 격”이라고 했다. 그 고양이가 지금까지 수없이 많은 쥐를 잡았다는 것은 아무도 얘기하지 않았다. 노정석씨가 소속된 KUS는 그동안 수많은 컴퓨터의 보안을 도왔으며 그 방법까지 일러주곤 했다. 열심히 쥐를 잡다가 생선 한 마리 먹었더니 그냥 ‘도둑고양이’라고 몰아붙이는 격이었다.


사실 일반인들의 해커에 대한 인식은 아직 답답할 정도이다. 요즘 신문이며 잡지 마다 인터넷을 떠들어대면서 그 인터넷을 떠돌아다니는 해커에 대해서는 너무 무지하다.


해커는 과연 어떤 사람들인가. 원래 해커는 컴퓨터광을 의미하는 말이었다. 그런데 그 뒤 뜻이 다양하게 변하기 시작해서 요즘은 주로 남의 시스템에 침투하거나 프로그램의 복제방지 장치를 깨는 사람들을 가리키게 되었다. 사악한 해커는 대커, 파괴를 전문으로 하는 해커는 크래커라고도 부르며 잘 쓰이지는 않지만 우리말로는 ‘셈틀광’이며 ‘헤살꾼’이라고도 한다.


해커들의 내면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해커 윤리 강령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MIT에서 전해 내려오다가 리펠젠스타인이 정리한 해커 윤리 강령은 해커들의 의식을 가장 잘 보여주고 있다.


“컴퓨터에 대한 접근은 그 어느 누구에 의해서도 방해받아서는 안 되며 완전한 자유를 보장받아야 한다. 모든 정보는 개방되고 공유돼야 한다.


권력에 대한 불신․분권화를 촉진하라. 해커들은 그들 자신의 해킹에 의해서만 심판돼야 하며 학년이나 나이 혹은 지위나 재산 같은 사이비적인 판단 기준에 의거해서는 결코 안 된다. 컴퓨터를 통해 예술과 아름다움을 창조할 수 있다. 컴퓨터는 모든 생활을 좀더 나은 방향으로 변화시켜줄 수 있다.”


해커 처벌만이 능사 아니다


어떤 점에서 볼 때 해커는 혁명가의 반열에 오를 소지도 있다. 공업화 시대에서 마르크스가 생산수단의 공유를 통한 인류의 평등을 주장했다면, 해커는 정보의 공유를 통한 평등을 주장하는 것이다. 마르크스는 각 지역을 신속하게 이어주는 철도가 투쟁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할 것이라고 예언했다. 하지만 산업 사회를 지나 정보사회로 바뀐 지금은 철도 대신 컴퓨터 통신이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나는 해커가 지금 당장 사회 체제 자체를 위협하는 세력이 될 것이라고는 보지 않는다. 하지만 해커는 이미 무시할 수 없는 존재로 등장했고 그들의 역할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예전에 과기원 전산동아리 스팍스에 있었던 한 해커는 이번 사건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검찰 발표대로 KUS 회원 노정석씨가 이번 사건의 범인이라면 그는 벌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이번 사건은 남의 아이디를 훔쳐다가 홈뱅킹을 통해 돈을 빼낸 것 따위와는 수법과 목적에서 크게 다르다. 따라서 적법한 처벌 뒤에는 그들이 리처드 그린블러트, 빌 고스퍼, 그리고 애플을 만든 스테판 워즈니악의 뒤를 잇는 세계 최고의 엘리트 해커로 성장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어야 한다.” 나는 그의 말에 전폭적으로 동감하면서 몇자 덧붙인다.


공교롭게도 이번 사건이 내가 쓴 소설 <사과전쟁>과 비슷하다는 말을 수 없이 듣게 되었다. 하지만 사과전쟁의 결말은 서로의 오해를 푼 두 대학 학생들이 공동의 적인 일본을 향해 싸우는 것으로 마무리 된다. 과기원와 포항공대의 해커들이여! 무협 고수들이 칼을 쓰는 법에 앞서 배우는 것이 정신의 수련이란 것을 항상 명심해 주기 바란다. 그리고 이젠 서로의 오해를 풀고 힘을 합쳐라. 굳이 크래킹을 하려거든 독도의 영유권을 주장하는 일본의 전산망들이나 날려버려라.




69. 뛰는 세상의 걷는 아이


옥명희


<가정 부인> 미국에서 십년쯤 살다가 몇해 전에 돌아왔다. 출판일을 하는 한편으로 러시아 대사관에서 한국말을 가르치고 있다.


샘이깊은물, 94년 5월호에서)




아직도 아이는 농구를 하며 뛰놀 동무는 많지만, 같이 현미경을 볼 동무도 선생님도 없다고 불평한다. 미국에서처럼 마음껏 빌려 볼 도서관도 없다고 불평한다. 「과학동아」가 고작인데 그것도 제대로 보는 친구들이 없다고 불평한다. 그리곤 시간이 나면, ‘곽고“갈 아이들은 어려운 과학 문제를 풀고 있을 때에, 제 어린 동생과 거북이 산보를 시키러 나간다. 또는 콩의 새싹을 들여다보고 무슨 색깔이 될까 점쳐 본다. 내 아이는, 제가 좋아하는 생물학적 표현을 빌려 말해, 환경에 부적합한 종일까? 아니면 새로운 종일까?




가을이 되어 낮이 짧아지면 새들이 남쪽으로 이동하는 것은 새들의 몸 속 어딘가에 계절을 헤아리는 시계가 있기 때문이란다. 그 몸 속의 시계가 똑딱똑딱 소릴 내기 시작하면, 그때까지 관심을 기울이지도 않던 푸른 하늘의 별들, 그 중에서 특히 북극성을 찾아 그 별을 나침반으로 삼아 더 따뜻한 데로 떠난다 한다. 도시에 사는 우리의 몸속에도 그러한 시계는 아직 있을까? 프리지아 한 다발 사다 꽂거나, 화사한 봄옷을 사 입거나, 또는 괜히 몸에 바람이 들어 좀쑤셔 하는 그런 것말고, 진짜 몸시계!


그래도 그 중에서 근심없고 순수하다는 아이들도 이즘은 정말 눈 코 뜰새 없이 바빠 하루하루를 어떻게 보내는지 모르겠단다. 학교 가서 공부하고 틈틈이 매 맞고, 학원 가서 또 공부하고, 비교하고 비교받고, 이른바 바늘구멍 “곽고(과학고)” 아이들이나 되어 보자면, 이른 아침 시계의 경적으로 하루가 뜨고 져서 내 한몸 밖의 시계도 지겨운데 어디 몸 속의 시계까지 찾을 여유가 있으랴.


“밭을 갈다 왔어요”


해마다 이맘 때에 봄이 돌아오면 우리 아들의 밭갈이가 시작된다. 가장 땅값이 비싼 서울의 한 모퉁이 조그만 아파트에 사는 우리에게 무슨 밭뙈기라도 한뼘이나 있겠나?


열살이 되던 해에 한국에 돌아온 아이는 일년 뒤 어느 날, 세배 돈 칠만원을 찾고 싶다고 했다. 찾아서 무엇에 쓰겠느냐고 물었더니, 저는 인생을 즐기면서 살고 싶은데 그러려면 땅이 필요하다고 했다. 땅을 사서 동물도 키우고 실험도 하고, 식물이 자라는 것을 보며 사는 것이 즐거운 삶이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네가 커서 돈 벌어서 사라”고 했더니 한국에서는 땅값이 매우 급히 오른다고 들었댄다. 그러니 “지금 사 두어야 한다”며 땅값을 물었다. 사실대로 땅값을 알려 주었더니 제 돈으로는 아주아주 시골에 가서 한평쯤은 살수 있지만 제 차도 없고 운전도 못하니 다닐 수 없다고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리고 우리는 아이의 원대한(?) 꿈을 잊어 버렸다.


이듬해에 아이는 중학교에 들어갔다. 이른 아이들은 사춘기가 시작되기도 한다 해서 우리들 첫아이의 엄마들은 아이의 하교 시간을 잘 지켜 보라는 선배들의 말을 십계명처럼 가슴에 새겨 두었다. 그런데 나날이 몹시 지쳐서 돌아오는 아이를 유심히 살펴보니 하교 시간이 다른 아이들보다 거의 한 시간이 늦을 때도 있었다.


마침내 어느 토요일에 이 순진하다고 믿은 아이는 꼬리를 잡혔다. 영락없이 바람난 애숭이처럼, 샤워를 하고 새옷을 갈아입고 나가더니 세 시간이 거의 다 지나서 비를 쫄딱 맞고 들어서는 것이었다. 불같이 화를 내는 어미 앞에서 자꾸 별일 없었다던 아이가 마침내 “밭을 갈다 왔어요.” 하고 겁에 질린 음성으로 말했다. 돈이 모자라 땅은 살수가 없고, 그래서 개간을 하기로 마음먹었댄다.


“몸시계” 때문에 맞은 뺨


아파트 뒤 탄천 옆의 부지를 파서, 돌멩이를 고르고 물길도 만들어 주고, 누구네 집 어벙한 아들이었는지 도와 줄 친구도 하나 구해 함께 씨도 뿌리고, 더운 날엔 학교나 아파트에서 물을 길어 이십분 거리에 있는 제 밭에 뿌려 주었다고 했다. 그래서 날마다 집에 늦게 왔었고, 엄마가 공부 시간도 없대니까 그 사실을 숨겼다고 했다. 왜 새옷은 입고 갔느냐고 물었더니, 어린 싹들을 보러 가는 길이라 깨끗이 하고 가야만 했다고 말했다.


그날 집에 와 계시던 아이의 할머니는 “그러니까 네가 낮에는 밭을 갈고 밤에는 공부를 하는 사람이구나” 하시며 웃고 또 웃으셨다. 그제서야 소나기가 쏟아지면 창밖의 탄천을 내다보며 한숨을 짓던 아이를 이해할 수 있었다.


이듬해 봄엔 아이의 밭갈이는 양성화하였으니, 마침 끝집이었던 우리 아파트 대문 앞 복도에 대를 놓고 수세미, 상추며 갖가지 식물을 키웠다. 거름이며, 흙이며, 뒷정리는 본인이 하는 조건으로 말이다. 도시에서 자란 우리 내외가 하는 일이라곤 “야, 신기하다. 이렇게 싹이 나는구나” 또는 “너, 저렇게 제 때 물 못 주고, 비인간적일 수 있니?” 하는 코멘트나 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하얗게 보송보송 자라는 아파트촌의 사내아이들은 손결도 쇼팽의 것처럼 얄상하다. 손톱 밑에 때가 어딜 가랴. 올해, 중학교 삼학년이 된 아이는, 그 몸 안에서 봄이 오면 똑딱뚝딱 해대는 “몸시계” 때문에 생애 통산 네 번째의 뺨을 제 어미에게서 맞게 되었다. 그놈의 “곽고” 때문에


신토불이의 교육관에 따라


과학고는 누가 가나? 공부 잘 하는 아이들이. “띵똥땡.” 어떤 집 아이들이 가나? 타고난 극소수 수재와 철두철미 전면돌파형 교육관을 가진 어미의 자녀들. “띵똥땡.” 왜 가나? 훌륭한 과학자가 되려고. “땡! 아깝습니다.” 서울특별대를 가려고. 이것이 이즘의 정답이다.


 그러면 전면돌파형 교육관이란 무엇을 가리키나? 우선 서울대를 나오면 성공적인 인생이 기다린다는 확고한 인생관 위에서 설정한 목표에 회의가 터럭만큼도 없음, 그 자체요, 다음으로, 아이들은 이리저리 돌리면 팽이처럼 계속해서 머리가 돌아간다, 팽이가 어지러워하는 것을 보았느냐, 어지러운 것은 쳐다보는 우리일 뿐이라는 믿음이요, 그 다음으로 세칭 명문 학원을 찾고, 경쟁적 친우 관계를 바탕으로하여 새끼 과외 또는 큰과외를 하나 덧붙이고 독려하고 하는 것이다.


나라고 별다른 어미겠나? 나도 갑자기 인생관을 철두철미하게 바꾸기로 작정했다. 늘 “저래도 될까” 망설이다가 결정적인 순간을 놓치고 뒷북이나 치던, 비현실적인 “소신파”에서 전향하기로 뒤늦게나마 결심한 것이다. 게다가 나랑 비슷하다고 믿었던 “소신파” 친구들까지 이번엔 적극적으로 떠 밀었다. “얘, 별 아이가 가니, 왜 해보지도 않고 미리 피하니? 본인도 가고 싶다는 곳을.”


그러고 보니, “삼년 보고”(특수고 갈만한) 키울 아이가 아닐 성싶던 “육년 보고” 내 아이가 갑자기 “삼년 보고” 감으로, 새 희망에 불타는 내 앞에 떠올랐다. “그래, 적자생존의 원칙에 따라, 아니, 신토불이의 교육관에 따라 일년만 참으면 삼년의 시간과 돈을 벌 것이다. 집값 비싼 강남땅을 벗어날 거주의 자유도 생긴다.”


더구나 우리 아이는 어릴 적부터 꿈이 생물학자가 아니더냐. 똑똑한 여느 아이들이 대통령, 대장의 위대한 꿈을, “생물학과”보다는 의대를 꿈꿀 때에, 이 아이는 구체적으로 생물학자, 또는 의대의 기초 분야 학자 또는 수의사, 아니면 야생 동물원의 경비원이 되겠다고 했었다.


실험용 쥐가 한국말 하나?


중학교에 간 뒤 어느 날 소리를 질러 아이 방에 가보니, 저는 과학은 잘(?)하는데 왜 모든 과목을 다 공부해야 하느냐고, 왜 과학만 공부하는 학교에 다닐 수 없느냐는 것이었다. 그런 고등학교가 있다고 했더니, “야아, 야야야야” 노래에 책상을 두드리며 좋아했다.


그러나 아이에게 방금 어렵다고 집어던진 국어도, 도덕도 모두 잘해야 간다고 일러 주었더니, 이번에는 “순 사기다. 실험용 쥐들이 한국말 하는 것 관찰할 것도 아닌데 왜 국어도 잘해야 해요?” 하며 몹시 실망했다. 국어가 모든 공부의 기본이라는 생각을 지녔던 나 자신도 아이의 말을 듣고 보니 그럴싸하긴 했다. 그러나 논리적 설명을 잘 못하는 나답게 “얘, 제 나라 말도 제대로 못하는 놈이 무엇을 제대로 하겠니? 과학고 가고 싶으면 알아서 공부해”


내가 불안할 때마다 괜히 들먹이며, 공부하라고 더러 채근했지만, 구체적으로 보내겠다고 작정해 보지도 않았던 과학고, 그곳이 갑자기 “멀고도 가까운 이웃”처럼 보였다.


“너만 짐승처럼 사니?”


“육년 보고”가 “삼년 보고” 따라가다 가랑이나 찢어질까 더럭 겁이 나는데, 겨울의 찬 기운이 가신 어느 날 마침내 일이 터졌다. 그러잖아도 올해는 시간이 없으니, 그 짓(?)을 못하게 해야지 싶어, 내가 아무 화분이라도 갖다 놓자고 벼르고 있었는데, 외출했다 돌아오니 삼십분 뒤에 학원 갈 아이가 일을 벌리고 있었다. 신문지를 집앞에 잔뜩 펼쳐 놓고, 새 흙이며 거름을 화분에 담고 있었다. 다른 일에선 쉽사리 배터리가 떨어지는 아이인데, 그 몸시계만은 영구 배터리일까?


나지막한 소리로 집에 들어오라고 일렀다. 그런데 이 아이가 “내가 뭘 잘못 했다고” 소리를 지르며 제 방의 문을 쾅 닫고 들어가 버리는 것이 아니었나. 방에 따라 들어가 숙제는 했느냐고 묻자, “하든 말든 내 맘이죠. 왜 엄마 마음대로 키워요?” 했다. “네가 과학고 가고 싶어 했잖아?” 하자 “누가 이렇게 짐승처럼 살자고 가려 한 줄 아세요?” 했다. “너만 짐승처럼 사니? 다들 그렇게 살지. 짐승처럼 매 안 맞고, 하고 싶은 공부하며 살고 싶은데 그걸 못 참아? 너같이 학원 안가고 어슬렁어슬렁 오가며 노는 놈이 짐승이지. 짐승의 정의가 뭔지 알기나 아니?” 했던 논쟁 끝에 나는 결국 막무가내인 아이의 뺨을 때리고 말았다.


왜 아이는 그렇게 절망적으로 화를 내었을까? 나야 늘 변덕스럽게 화를 잘 내는 어미지만. 다만 사춘기의 한 증후일 뿐일까? 하기야 봄이 와서 아파트 십일층 복도의 화분에나마 씨 뿌리는 것이 뭘 잘못 한 것인지 나도 모르겠다. 돈 들여 배터리를 갈아 주지 않아도 봄이 오면 “때르릉”하고 절로 울리는 것이 아이의 몸시계이니, 아이의 절망적인 고성은 그 자명종이 깨어지는 비명은 아니었을까?


아무튼 아이는 그 이틀 뒤, 사월 일일에, 대단치도 않은 성적에 계속해서 다니면 미리 주눅만 키운다고 생각하여 과학고 목표의 학원을 그만 두었다. 마치 만우절에 거짓말하는 것 같았다. 아이의 친구들은 만우절의 거짓말인가하여 속지 않으려고 자꾸 눈을 껌벅이다, 사실임을 안 뒤엔 걱정스레 아이를 바라보았다. 왜 너는 시작도 제대로 안 해 보고 곽고도 못 간 보통의 “무덤덤”에 속할 작정을 하느냐는 듯이. 달콤하게 또한 씁쓸하게 잠깐 꾸어 본 “삼년 보고”의 꿈에서 깨어났을 뿐인데.


지렁이의 촉감과 도마뱀의 피부


아이가 오학년이 되던 해에 우리는 미국에서 돌아왔다. 미국에서 공부 잘 못하는 한국 아이 없듯이 우리 아이도 공부를 꽤 잘했다. 그러나 우리는 기회가 주어졌을 때에도 재미 한국 부모들이 좋아하는 월반을 시키지도, 천재 프로그램에 보내지도 않았다.


하기야 부부가 살기에 다 바빠서 아이를 실어 나를 수 없는 것도 한 이유였지만 굳이 그 때문은 아니었다. 학교는 거의 사십분을 차로 가야 하는 곳에 보냈고, 바이올린도 먼 곳까지 데리고 다녀 가르쳤다. 이유는 아이란 제 또래 아이들과 뛰놀며 커야 한다는 것이 우리의 믿음이었기 때문이다. 아니, 공부를 잘하는 것은 기본이라는 헛된 자만심 같은 것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방학 때에 천재 프로그램에 가는 대신에 우리 아이는 대학의 여름 캠프에 가서 종아리가 반짝거려 흑인처럼 보이도록 뛰어 놀았다. 보낸 학교도 성적보다 창의적 과정을 중시하는 매릴랜드 주의 실험 학교였다.


그뿐일까? 암기식 수학은 아무 소용이 없다는 제 아빠의 지론에 따라 아이는 초등학교 사학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구구단을 외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이가 좋아하는 “뱀”, “상어”, “귀뚜라미”, “흰쥐”에 관해선 욀 수 있을 만큼 많은 책을 읽었다. 하다 못해 도서관에서 소설을 빌려 와도 「매디슨가의 귀뚜라미」니 「집 나가는 쥐」 같은 것이 되기까지 했다.


대학교의 아파트라 동네 친구도 없었고, 허구한 날 제 어미랑 산보를 하는 것이 낙이었던 어느날, 나는 놀이터의 벤치에 앉아 있었는데 아이가 즐거운 목소리로 불렀다. “엄마, 이것 보세요.” 돌아다 보는 순간에 나는 아주 잠시 정신을 잃었다. 아이가 들고 있던 것은 길다랗고 허연 지렁이였다. 놀란 아이가 “엄마 왜 그러세요, 정신 차리세요. 엄마 보여 주려고 깨끗이 씻었는데, 이렇게 긴 것은 본 적이 없어요” 했다. 정신을 차린 다음 순간에 나는 소리를 정말 꽥 질렀다. “그만 두지 못 해.” 언젠가 아이에게서 지렁이가 촉감이 좋다는 말을 들은 적은 있지만, 이럴 줄은 정말 몰랐다. 그뿐일까? 생일에 받은 도마뱀도 피부가 아름답다는 것을 어찌 말릴 수 있겠나.


아들에게 들은 일장 훈계


그러나 아이는 운이 좋았는지 우리 주변에는 아이의 기괴한(?) 취미를 잘 이해하고 귀여워하는 대학원생들이며 박사가 많았다. 아이는 그이들을 따라서 병원의 실험실에도 가고, 심부름을 잘 해서 때로는 사백원쯤 벌어오기도 하고, 그러다 보니 실험용 쥐도 얻어 키우게 되었다.


흰쥐가 우리 집에 온 첫날, 그때 십팔개월쯤 되었던 딸애가 제 장난감 트럭에 태운다고 꼬리를 잡아 꺼내다 놓쳐 버렸다. 나는 징그러워서 울며, 도망치는 그 쥐를 잡아 겨우 통속에 넣었다. 게다가 아이는 쥐의 몸색깔을 본다고 암놈은 흰쥐, 숫놈은 까만쥐를 골라 함께 키웠는데 여덟살짜리가 연구원들에게 배워 임신 여부를 확인한답시고 쥐를 쳐들어 성기 주변의 테를 찾고 있는 모습, 그것을 보는 내 심사도 편치만은 않았다.


손꼽아 기다리던 이십이일 뒤에 멘델의 법칙대로 흰쥐는 검회색 아홉 마리, 검정색 세 마리를 낳았는데, 아이는 어미쥐가 고생했다고 제가 먹을 치즈를 주었다. 새끼쥐 열두 마리가 꽤 자란 뒤에도 하얀 어미 옆에 붙어 젖을 먹으면 여간 징그럽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아이가 학교 간 뒤에는 나무 젓가락으로 젖을 못 먹게 떼어놓거나 때려 주기도 했는데 어느 날은 아이에게 들켜 일장 훈계를 들었다. 자기가 정말 사랑하니까 키우던 물고기며, 거북이도 자기를 특히 좋아한다고 했다.


그렇게 정들여 키운 쥐며, 물고기들을 나누어 주고 아이는 한국에 왔다. 잠시 여행길에 오른 듯이 즐거워 했던 아이가 칼기의 트랩에 올라, 비행기로 들어가기 직전 갑자기 돌아서더니 울며 소릴 질렀다. “노노, 나는 안가. 나는 못 가.”


냉동실 속의 개구리


누가 그랬던가. 지네 편한 대로 데리고 갔다가 또 지네 편한 대로 데리고 온다고. 갓난아기로 가서 열살이 되어 돌아온 아이는 한국에서 자란 아이들이 암산으로 연필이 춤을 출 때에, 덧셈도, 혀로 더듬듯이 했다. 도덕 시험을 보면 기상천외한 답을 썼다. “한번 잃으면 다시 회복하기 어려운 것은?”의 정답은 “신뢰”인데 아이는 “시력”이라고 쓰는가 하면, 하다못해 “대변검사”도 못 써서 화가 나 “똥, 오줌도 구별 못 하니?” 소릴 질렀더니, “똥”인지는 알았지만 그것이 대변인 줄은 몰랐고 어떻게 점수 하나 더 맞으려고 “똥검사”라고 쓰겠느냐는 것이었다.


정말 답답한 놈이 우리 아이였다. 미국에서는 몰랐는데 한국에 돌아오니 남말고 내가 보아도 지진아의 여러 특성을 다 지닌 양 보였다. 우선 발음이 신통치 않았다. 옷에 유념하지 않았다. 지렁이도 여전히 만지는 게 분명했다.


어느날 일기에서 아이의 거의 첫 거짓말을 발견했다. “나는 오늘 학교 가다 몸에 습기가 없는 지렁이를 발견하고 불쌍해서 집게로 집어 진흙 속에 넣어 주었다. 그래서 학교에 늦을 뻔했다.” “얘, 너 집게를 어디서 구했니?” 하니 “한국 선생님은 분명히 더럽다고 생각하실 것 같아 그랬어요. 손 씻었어요.” 했다. 천성이 낙천적인 아이였지만 둘러싸인 아파트만 보면 답답하다고 했다. 게임팩을 들고 다니며 노는 동무 관계도 답답하다고 했다.


한 번은 서울 대학교 뒷산에 다녀오더니 재수를 백번 해서라도 서울 대학교를 가겠다고 했다. 얘가 이제 철이 들려나 했더니 이유인즉슨 ‘넓고 사람이 적어서“였다. 그래서 다시 좁은 집에 흰쥐가 들어오고, 동네 수족관에서 얻어온 개구리알도 키우게 하고,


새끼 손톱만한 개구리가 부화하여 어느날 아침에 우리를 모두 들뜨게 하고 이유도 모르게 죽어가 슬프게 하기도 했다. 어느 하루는 냉동실을 열었더니, 조그만 용기 안에 죽은 개구리가 언 채로 있었다. 시간이 있을 때에 해부하여 보려고 했댄다. 그래서 나는 또 그 징그러운 것을 참아내기로 했다. 삭막한 땅의 능력없고 게으른 어미가, 보통아이를 남달리 키우자면 참는 것말고 무슨 도리가 있겠나.


“난초 앞에서 서로 비교하지 마세요”


아직도 아이는 농구를 하며 뛰놀 동무는 많지만, 같이 현미경을 볼 동무도 선생님도 없다고 불평한다. 미국에서처럼 마음껏 빌려 볼 도서관도 없다고 불평한다. 「과학동아」가 고작인데 그것도 제대로 보는 친구들이 없다고 불평한다. 그리곤 시간이 나면, ‘곽고“갈 아이들은 어려운 과학 문제를 풀고 있을 때에, 제 어린 동생과 거북이 산보를 시키러 나간다. 또는 콩의 새싹을 들여다보고 무슨 색깔이 될까 점쳐 본다. 내 아이는, 제가 좋아하는 생물학적 표현을 빌려 말해, 환경에 부적합한 종일까? 아니면 새로운 종일까?




우리집에는 난초 분이 두 개가 있다. 하나는 내가 키우다 거의 다 죽인 것을 아이가 되살린 것이고 하나는 최근에 제 아빠가 선물로 받은 것으로 아이가 역시 키워 주고 있다. 일요일 아침, 화초에 물을 준 뒤에 빈둥대던 아이에게 과학자(?)인 제 아빠가 말했다. “역시 새 것이 생생해서 보기 좋구나.” 아이가 제 아빠의 팔을 당겨 방으로 들어갔다. “아빠 그러지 마세요. 황희 정승의 ‘두 마리 소 이야기’ 아시지요? 난초 앞에서 서로 비교하지 마세요.” 나는 문밖에서 그 이야기를 듣고 속으로 외쳤다. “어머님, 제 아들이 어머니의 아들보다 낫지 않습니까? 뭐, ‘곽고’ 아이들만 사람입니까?”






70. “자기 도취” 시대의 노래방


강 준 만


전북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 샘이깊은물 94년 6월호에서)




“나르시시즘은 자기 자신이 관심의 대상이 되는 자기 도취 상태를 말한다. 노래방에서의 자기 도취는 나르시소스의 행태와 어찌 그리 닮았는지 놀랄 지경이다. 노래방의 나르시소스들은 밀폐된 노래방에서 성대의 떨림을 한껏 만끽하고 육성을 기계음으로 전환시키는 고성능 마이크의 진동으로 하여금 귀를 애무케 하고 노래에 맞게 난무하는 화려한 영상 이미지로 하여금 눈을 간지럽히게 하는 자위 행위를 통해 자기 도취에 빠져 든다.”




서울에 사는 사람들은 잘 못 느끼겠지만, 별난 데에 호기심이 제법 있는 지방 사람이 서울에 가면 한가지 기이하게 생각되는 것이 있다. 택시를 타면 운전 기사들은 라디오의 교통 정보를 열심히 청취하는데, 그게 무슨 소용이 있는 것인지 알 길이 없다. 그 순간에 어디가 막혀 있다느니 하는 것 따위의 말만 되풀이하는 교통 정보라고 하는 것을 들어서 무얼 어쩌자는 것일까? 그래서 그 막힌 길을 피해 가면 교통 소통이 잘 되기라도 한단 말일까? 교통으로 말하자면 서울이라는 데가 멀쩡한 사람 흉악하게 만드는 데에 이력이 난 도시인데다, 어디가 잘 뚫려 있고 어디가 막혀 있거나 그 정보를 듣는 사람이 하나둘이 아닐 터인데 말이다.


도대체 교통 방송은 왜 듣나?


운전 기사에게 그런 교통 정보가 도움이 되느냐고 물으면 한결같이 부정한다. 그런데 왜 듣느냐고 물으면 그냥 듣는 것이란다. 그냥 듣는다? 그것이 무슨 뜻일까? “지옥”이라는 끔직한 수식어가 별 주저없이 따라 붙는 서울 교통난의 현장에서 그 “지옥”이 자랑하는 참상의 이모저모를 상세히 반복해서 전달해 주는 중계방송을 청취하면서 자기 앞을 가로막는 자가 누구든지 쏘겠다는 식의 “임전 태세”를 갖추자는 말일까? 아니면 나 혼자만이 뜨거운 불구덩이 속에서 고통받고 있는 건 아님을 확인하여 고통에 대한 체념의 지혜를 기르자는 것일까?


호기심이 있을 뿐만 아니라 감수성이 예민한 지방 사람은 서울의 택시 운전 기사들에게 일종의 경외감을 갖게 된다. 택시 운전 기사들이 불친절해서 큰일이라는 것 따위의 말을 전혀 믿지 않게 된다. 서울로 말하자면 겨우 출-퇴근 길에만 운전하는 자가용 운전자들도 운전대만 잡으면 상스러운 욕을 내뱉기를 밥 먹듯이 하게끔 만드는 도시가 아니냐. 그런데 운전대 하나에 온 식구의 생계를 걸며 그 좁은 운전석이라는 공간에서 하루 일과의 시작과 끝을 다 보내야 하는 택시 운전기사들이 친절해질 수 있을까?


굳이 불가능하다고 말할 필요는 없겠다. 그러나 거의 미치기 일보 직전의 상태에 있다는 듯이. 운전하면서 욕설을 쉬지 않고 내뱉는 운전 기사들을 보느라면 감수성이 예민한 지방 사람은 서울이 “미쳐 돌아가는 도시”임을 절감하게 된다. 성경에 나오는 소돔과 고모라의 사람들이 자기들의 광란을 깨닫지 못했듯이, 서울 사람들은 그 사실을 전혀 깨닫지 못할지도 모른다. 인간은 그 어떤 동물보다 더 환경 적응력이 뛰어난 동물이니까 말이다.


이만 몇 군데, 매출액 몇 조원


노래방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엉뚱하게 서울의 교통 문제를 거론한 데에는 그럴 만한 곡절이 있다. “거리 두기”, 또는 “낯설게 하기”의 자세를 가져 보자는 것이다. 그래야만 노래방이 보인다. 서울 사람은 서울을 잘 알 것같지만 한 달에 한두번 서울에 가는 지방 사람보다 모르는 부분이 있다. 특히 서울의 전체 모습을 잘 모른다. 그건 마치 외국인의 눈에만 우리의 모습,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했던 것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노래방도 그러하다. 지난 구십일년 부산에 처음으로 등장한 뒤로 전국으로 퍼져 나간 노래방은 구십삼년 현재 전국에서 이만몇 군데가 번창하고 있으며, 그 매출액만도 한해 몇조원에 이른다. 이미 구십이년 십일월의 갤럽 조사에선 우리나라 국민의 육십일 퍼센트가 노래방이 “건전하다”는 평가를 내렸고, 구십삼년 구월에 서울 와이더블유시에이에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서울 시내 직장인이면 적어도 주마다 한 번씩 노래방을 찾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과 지방, 남-녀 노소를 가릴 것없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노래방은 삼년도 채 안 돼 우리의 대중 문화이자 생활 문화의 일부인 것으로 굳게 뿌리를 내렸다. 그런 상황에서 노래방의 참 모습을 제대로 보기는 매우 어렵다. 그렇지만 잠시 시치미를 뚝 떼고, 노래방을 처음으로 보듯이 전국적인 노래방 열기를 냉철하게 관찰해 보자.


필사적으로 노래를 부른다.


노래방 이야기만 나오면, 많은 사람들이 우리 한국인은 본디 노래를 좋아하는 민족이라는 말을 한다. 그러나 뽕짝에서 랩에 이르기까지 남-녀, 노소할 것 없이 노래에 빠져드는 한국인의 노래 열기를 오로지 민족성으로만 설명하려 드는 것은 무언가 부족하다. 서울대 서우석 교수에 따르면, “술자리에서 노래 부르는 습관은 개화기에 들어 비로소 생겨났다”고 한다. 개화기로부터 망국의 설움을 은유적으로 해소하는 방안으로 일본 엔카풍의 가요가 유행하기 시작했고 그 풍습이 여태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는 것이다.


돌이켜보건대 우리의 눈부신 경제 성장은 철저히 문화를 희생으로 한 것이었다. 최근에 들어 “놀이 문화”라는 말이 자주 사용되지만 과거엔 “놀이”라고 하는 단어 자체가 흔히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새마을 노래」가 우렁차게 울려퍼지는 경제 건설의 현장에서 문화는 한마디로 사치가 되었다. 정부는 놀이 문화의 건전한 육성에 투자는커녕 관심조차 기울이지 않았다.


그러나 인간이 놀지 않고 살 수 있을까? 그럴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대중이 갈 길은 이미 예정돼 있었던 셈이다. 놀이 공간이 아예 없는 상황에서 최소한의 비용, 아니, 아예 비용이 거의 들지 않는 종류의 놀이로 무엇을 택할 수 있을까? 그것은 노래였다. 대중 가요였던 것이다. 그래서 소풍을 가서도 노래를 불렀고 술 좌석에서도 노래를 불렀다. 하여튼 사람만 몇 모여 오락을 한다하면 빠지지 않는 것이 노래였다. 그야말로 필사적으로 노래를 불렀다.


그런데 노래로만 놀자니 좀 허전한 감이 없지 않았을 것이다. 학생이 교수에게 노래를 강제로 시켜도 아무런 흉이 되지 않는 한국의 풍습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는 서양 사람들이 적지 않은 것을 보더라도. 우리에게 노래는 즐기는 것말고도 일종의 집단주의를 확인하려는 “통과 의례”의 성격이 강하다. 실제로 노래를 부르기 싫어하는 사람, 노래를 잘못 부르는 사람에게 노래를 시켜 놓고 그것을 들으려고 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하기 싫은 걸 억지로 시킴으로써 재미를 느끼는 데에 주된 의미를 둘 뿐이다.




공중 전화 박스 옆에도 노래방


사실 우리는 노래를 즐기기보다는 입과 성대 운동을 즐겨 한다는 것이 더 적합할지도 모른다. 누구에겐가 노래를 시켜 놓고 조용히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무턱대고 같이 따라 부르는 것이 보통 노래하는 술자리의 풍경이다. 일상적 삶에선 입과 성대로 배출해야 할 에너지를 충분히 발산하지 못했기 때문일까? 일제 통치에서부터 군사 독재 정권을 거치면서 침묵을 강요 당해 온 역사가 너무 길었기 때문일까?


그 어떤 이유에서나 확실히 우리들은 입으로 배출해야 할 에너지가 늘 배안에 가득 차 있는 듯하다. 우리 사회에서 침묵이 미덕으로 통하는 문화가 여자보다는 남자에게 더 적용되고 있는 것과 여자보다는 남자들이 노래 부르기에 더 열성인 것은 서로 결코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노래방이 일본에서 건너 온 문화의 소산이고 중국을 위시한 동양권에서 강세를 보이고 있는 것도 그런 사회적 요인에서 비롯된 것인지도 모른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일본인들은 이 지구 위에서 가장 통제된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다. 전체주의적 권위와 규율에 맹종하는 의식이 가장 강한 사람들이다. 자기 해방의 환상을 바라는 욕구가 가장 강한 사람들이라는 말이다. 그래서 그 사람들은 모든 것을 기계적으로 축소시켜 통제하고자 하는 열병을 앓고 있다. 노래방은 바로 그런 열병이 만들어 낸 산물인지도 모른다. 공중 전화 박스 옆에까지 노래방을 설치했다는 일본 사람들의 비상한 꾀도 그런 열병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노래방이 사회적 산물인 만큼 일본이 원조일망정 일본의 노래방 문화와 우리의 노래방 문화가 같을 수는 없다. 우리가 한 수 더 떠 발전시킨 측면도 있고 우리의 실정에 어울리게 개조한 측면도 있다. 우리나라에선 공중전화 박스 옆에 노래방을 설치한다 해도 일본처럼 장사가 잘 되지는 않을 것이다. 무어라 설명할 수 없어도 그만큼 문화가 서로 다른 것이다. 노래방이 중국의 조선족들 사이에선 길거리에 노래판을 벌리는 “노상 노래방”으로 발전된 것도 노래방은 수입되는 나라의 문화와 사회적 실정에 맞게 변형되기 마련임을 잘 말해 주는 사례나 다름 없을 것이다.


무엇이 사람들을 매료시키나?


비료 연구도 좋겠지만, 우리의 노래방 문화에만 이야기를 집중해 보자. 우리나라에서 노래방은 그야말로 “다양화”의 시대를 맞고 있다. 노래도 가요뿐만 아니라 동요와 가곡까지 부를 수 있게 다양화되고 있고, 텔레비전 노래방과 컴퓨터 노래방에서 전화 노래방과 자동차 노래방까지가 생긴 만큼 매체와 공간을 초월해 전방위적 노래방의 시대로 접어 들었다.


노래방의 무엇이 그렇게 사람들을 매료시키는 것일까? 얼른 보자면, 늘 대중 가요의 “수동적 소비자”로만 존재하던 사람들이 노래방을 통해 그 “능동적 생산자”의 위치로 격상될 수 있다고 하는 것은 이만저만한 매력일 수밖에 없을 터이다. 한두평 남짓한 밀폐된 공간에서 서너명 또는 예닐곱 명이 모여 앉아 손장단을 맞추거나 몸을 흔들어 가며 최첨단 영상 반주에 맞춰 “가수”노릇을 하는 것은 쾌락과 더불어 보람을 안겨주는 일일지도 모른다.


또 친절하게도 가사까지, 그것도 박자까지 맞춰서 화면에 내보내 주니 그 치열한 서비스 정신에 매료된 사람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어디 그뿐일까? 자기를 위해 존재하는 것만 같은 모델들이 노래 분위기에 맞춰 포즈를 취해 주는 가운데 자기가 좋아하는 노래 한곡 불러 제끼는 값이 단돈 오백원이니 꽤 싸다고 여겨질 법도 한 일이다.


노래방을 자주 찾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그런다고 말한다. 대중 음악 평론가인 김창남 씨의 조사에 따르면, 노래방의 주요 고객인 아낙들은 노래할 때에 예외없이 몸이나 발을 움직인다고 한다. 김 씨는 이를 두고 “노래방이 억압돼 온 욕구를 육체적으로 표현하는 공간 역할을 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청소년이 노래할 때에 육체적으로 심하게 움직이는 것은 “억압에 대한 저항”이지만, 가정부인의 경우에는 가족 품에 되돌아가려는 의식을 전제하고 있는 점에서 의미가 다르다는 것이다.


대화 단절 세태의 상징물


가정에서 시달리는 아낙들의 경우 노래방이 스트레스 해소의 차원에서 매우 긍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은 분명한 것 같다. 그러나 노래방은 우리 사회에서 사람들 사이의 “만남의 전술”이라고 하는 측면에서도 생각할 필요가 있다. 노래방을 찾는 진정한 동기로 “스트레스 해소”말고도 당사자들도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그 무엇이 있다는 말이다.


우선 요즘 노래방의 주요 고객으로 부상했다는 “가족 손님”의 경우를 보자. 가장으로서 가족을 데리고 놀러 갈만한 곳이 우리 사회에 있나? 특히 서울이나 부산 같은 대도시에서 주말에 가긴 어딜 가나? 길거리에서 시간을 다 허비하고 말 텐데. 모처럼 야외에 나갔다 한들 그것이 고생길임을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그래도 가장 체면에 무언가 실컷 놀았다는 포만감을 주긴 줘야겠는데, 그런 환상을 심어 주기에 가장 적합한 곳이 지리적으로 보거나 경제적으로 보거나 바로 노래방이다.


친구들끼리 술 한잔 먹고 노래방을 찾는 것도 꼭 노래가 좋아서만은 아니다. 주머니 사정이 뻔한 월급쟁이들이 만나서 뭔가 하긴 해야겠는데 노래방처럼 좋은 데가 어디에 있나. 술까지 몰래 갖고 들어가 마실 수 있으니 일석이조다. 게다가 나날이 보는 직장 동료들과도 그렇거니와 오랜만에 만난 학교 동창들끼리 나눌 대화라는 것이 그리 신통치 않다. 무슨 정열을 갖고 민주화를 논하던 때도 지났다. 민주화 열기가 한참이던 몇 년 전에 노래방이 등장했다면 노래방은 결코 성공할 수 없었을 것이다. 요컨대, 노래방은 대화 단절의 세태를 웅변해 주는 바로미터이다.


노래방의 음성 고객이지만, 무시하지 못할 존재의 청소년들은 어떨까? 그 사람들에겐 노래방엘 가는 것 자체가 ‘훈장’이다. 구십삼년 십일월에 “청소년 대화의 광장”에서 서울 시내 남녀 중고생들에게 물어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나는 노는 아이”라고 답한 응답자들이 자주 가는 곳 일 위는 노래방인 것으로 나타났다. 노래방을 못 간다고 어느 여중생이 비관해 자살을 한 거야 극단적인 경우이겠지만, 중고교생들이 인지하는 노래방의 의미는 성인들이 인지하는 것과는 좀 다른 것임이 분명하다.


기계가 사람을 데리고 논다


스트레스 해소라는 것도 그렇다. 그렇게 입버릇처럼 말하는 스트레스라는 것의 정체를 곰곰이 뜯어 보면 알다가도 모를 것이 하나, 둘이 아니다. 노래방에 가서 악을 써 목이 쇠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니 무슨 스트레스 해소가 그렇단 말일까? 입과 성대의 에너지를 발산하는 것도 일종의 스트레스 해소라면 할 말은 없지만, 진정한 의미의 스트레스 해소와 노래방은 아무래도 무관한 것 같다.


노래방이 오히려 적지 않은 사람들에게 새로운 스트레스를 주고 있음에도 주목해야 한다. 노래방에 못 가 자살을 한 여중생은 스트레스가 폭발한 경우이다. 그러나 일행과 같이 노래방을 찾는 사람이 모두 노래방을 즐기는 것은 아니다. 다수의 횡포에 이끌려 가 내키지 않는 노래를 해야 하는 사람도 많다. 누구는 노래방에서 스트레스를 해소한다지만 누구는 무리없이 같이 어울려야 하는 스트레스를 받는 것이다.


점수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들도 많다. 그 점수라는 것이 허무맹랑하기 짝이 없는 것이지만, 그래도 사람들은 점수와 팡파레의 미련을 버리지 못한다. 노래방의 점수는 무작위로 작성된 점수표를 입력시켜 차례대로 나오는 엉터리 방식, 음의 높이에 따라 점수가 나오는 박수계 방식, 기계적인 박자를 잘 맞추는 데에 따른 박자 카운트 방식 해서 크게 세 가지인데, 노래 실력과는 거의 무관한 것이다. 감정이 풍부한 것은 높은 점수를 얻는 데에 절대 금물이다. 직업적인 가수들이 오히려 노래방에서 큰 점수를 얻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 점수에 큰 신경을 쓰면 돈내기까지 하고 있으니 기계가 사람을 데리고 노는 것인지 사람이 기계를 갖고 노는 것인지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높은 점수가 안 나온다며 짜증을 내면서 마이크를 놓지 않고 버티는 사람들도 없지 않으니, 업소 주인들은 손님 기분 맞춰 준다고 웬만하면 팡파레가 나오게끔 기계를 조작해 인심을 쓸 일도 아니겠나.


사실 우리는 스트레스의 대량 생산 시대에 살고 있다. 스트레스가 자기의 일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너는 스트레스를 느껴야 한다.”는 외부의 유혹과 최면에 따라 받는 것일 수도 많다는 것이다. 스트레스란 엄밀히 따지자면 상대적인 것이다. 원래 그러려니 하고 생각하면 스트레스라는 것이 생길 리 만무한데도 원래 그런 것이 아니지 않느냐는 생각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을 때가 많다.


광고는 상대적인 스트레스를 주는 전형적인 “스트레스 산업”이다. 멀쩡한 사람에게 결핍을 느끼게 만들어, 상품을 구입함으로 그 결핍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는 생각을 갖게 만드는 것이 요즘 광고의 주요 기능이다. 광고는 끊임없이 묻는다. “너는 아름다우냐? 너는 건강하냐? 네 인생은 따분하고 무의미하지 않느냐?” 광고는 늘 불만족스럽고 안절부절못하며 불안해하고 지루해하는 소비자를 만들어 낸다. 도대체 무슨 수로 광고 속의 모델처럼 아름답고 건강하고 만족스럽게 살 수 있겠는가 말이다.


노래방이 이십만 개가 되면?


광고는 이윤 추구를 절대 사명으로 삼는 자본의 얼굴에 불과하다. 꼭 광고가 아니라 하더라도 자본은 이윤 증식에 도움이 될 만한 것이 나타나면 그걸 절대로 놓치지 않는다. 수요를 인위적으로 만들어 내고야 만다. 자동차만 하더라고 그것이 생활 필수품이기 때문에 급증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큰 오해다. 자동차를 생활 필수품으로 느끼게끔 만든 건 다름 아닌 자동차 회사들이다. 내 자동차를 가졌기 때문에 엄청나게 편리해졌다고 믿을 사람이 적지 않겠지만, 적어도 서울에서 그렇다는 실질적인 증거는 전혀 찾아볼 수 없으며, “편리”라는 건 습관과 가치의 산물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노래방이 이만개가 되는 오늘의 우리 국민은 노래방이 없던 시절에 비해 스트레스 해소를 잘해서 정신이 더욱 건강해진 것일까? 노래방이 이십만개가 되면 더더욱 건강해질까? 알 수 없는 노릇이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것은 전자 업체들이 노래방을 “사막에서의 오아시스”처럼 반겼다고 하는 점이다 구십 이년 한해에만도 전자 업체들의 노래방 기기 매출액이 오조원이나 되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전자 업체들의 직-간접적인 부추김에 따라 노래방 사업에 뛰어 든 사람들 가운데엔 속된 말로 “막차”를 탄 사람들이 많다. 그래도 투자한 거액의 돈이 있어 울며 겨자먹기로 사업은 계속해야 하니 수요를 창출해 내려고 안간힘을 다해야 하지 않겠나.


전자 업체들은 목돈 좀 갖고 있는 사람들이 노래방이 사업에 뛰어들 만큼 뛰어들었다고 본 것인지. 이젠 가정용 노래방 기기를 파는 쪽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사람들이 집에서 갈고 닦은 솜씨를 자랑하려고 노래방 업소를 더 찾을 것인지 아니면 노래방 업소를 찾는 대신에 집에서 대충 해치울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막차”를 탔다는 일부 노래방 업소 주인들의 한숨소리가 적잖이 일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래서 노래방 고객을 모시려는 경쟁은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세계 최초라는 노래방 텔레비전


요즘에 전자 업체들은 일반 텔레비전에 연결하면 바로 노래방을 즐길 수가 있다고 열심히 광고한다. 그것도 거개가 값비싼 전면 광고다. 노래방 기기 생산의 선두 주자라 할 삼성 전자의 전면 광고는 “노래방 텔레비전으로 바꾸세요. 생활을 즐겁게 바꾸세요. 텔레비전을 구입하실 때, 이왕이면 텔레비전 한 대에 천곡이 들어 있는 노래방 텔레비전으로 장만하십시오” 라고 부르짖고 있다. 천곡이 내장된 노래방 텔레비전은 세계 최초라고 하니 우리가 일본을 능가했다고 뿌듯하게 생각해야 할까? 광고에 따르면, 그 밖의 보조 기능도 나주 다양하다. “다섯 곡까지 예약해 놓고 순서대로 편하게 즐길 수 있습니다. 에코, 점수, 팡파르, 박자/음정 등 다양한 기능으로 더욱 실감납니다. 별도의 팩만 삽입하면 최신곡을 추가로 즐길 수 있습니다.”


전자 업체들은 노래방 기기 판매로 호황을 누리고 있는데, 그야말로 춘추전국시대를 방불케 한다. 삼성 전자의 독주 체제가 대우전자, 인켈, 금성사, 해태전자, 태광전자, 태광산업, 롯데전자, 한국샤프, 태진음향, 아남전자 들에 의해 분할되고 있는데, 서로 새로운 기능을 자랑하느라 이만저만 바쁜 것이 아니다. 태태전자의 다음과 같은 광고 문구도 노래방 팬들의 가슴을 설레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노래를 부를 때 무대 기분. 사십팔인조 오케스트라의 시디음을 즐긴다. 기존의 컴퓨터 노래방 시스템은 전자 악기로 구성된 밴드 반주에 불과합니다. 해태 시디지 노래방 시스템은 사십팔인조의 오케스트라 반주를 시디에 담아 생생하게 재생하며, 백코러스까지 갖춰져 마치 무대에서 노래하는 듯한 현장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대우전자는 “노래하는 내 모습까지 보여준다 - 대우 시디지 콤포넌트”라는 구호로 맞서고 있고 또 어느 업체는 “텔레비전 자막과 점수. 팡파레가 휴대용 유, 무선 마이크 하나에”라는 구호를 내걸고 기존 휴대용 노래방과 차별화됨을 선언하고 나섰다. 휴대용 마이크 하나로 일천이백여곡의 노래에 생생한 반주와 영상을 제공한다니 그것도 놀랍지만 보조 마이크로 뚜엣 기능까지 한다니 그 아이디어가 기특하기 짝이 없다.


“나도 가수”, “나도 한 번”


전자 업체들이 그렇게 지성으로 탁월한 서비스를 제공하니 노래꾼들이 그걸 마다할 리 없다. 온 국토의 노래방화가 진행되고 있다. 집에 손님들이 놀러 와서도 이야기는 뒷전으로 미루고 마이크를 잡고 노래하기에 바쁘다. 하긴 컴퓨터 앞에 마주 앉았으면 키보드나 두드릴 일이지 갑자기 웬 노래 타령일까? 기업들마다 사내 노래방을 설치하기에 바쁘다. 노래방은 서울을 거처 지방 텔레비전 방송사의 고정 프로그램으로 뿌리를 내리고 있다. 노래방처럼 싼 값으로 시간 때우기 좋은 것도 없을 것이다.


어디 그뿐일까? 유원지는 말할 것도 없고 호젓한 산속에서까지 노래방 판을 벌리지 않나? 달리는 버스 속에서까지 노래방 반주가 없으면 노래를 할 수 없다니 기가 찰 노릇이다. 하기야 관광 버스만 타면 노래를 부르는 그 지겨운 꼬락서니에서 오십보 백보이긴 마찬가지인데, 예전과는 달리 너무 시끄러워서 창밖을 내다보는 것도 여의치 않으니 문제다.


그렇다고 기죽을 데가 노래방 업소들이 아니다. 들인 돈이 얼마일까! 갈수록 기발한 사업 아이디어가 속출하고 있다. 탬버린과 스탠드 마이크는 기본이고 거의 모든 노래방들이 카메라를 장착해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볼 수 있게끔 배려했다. 녹음도 해 주고, 즉석 사진도 찍어 주고, 할인 카드도 발행한다. 모든 업소들이 녹음을 해주니까 손님을 더 끌려고 더 잘 녹음할 수 있는 별도의 방을 갖춘 업소도 많이 생겨났다. 사진도 즉석 사진이면 이천원을 받지만 일반 사진이면 무료다. 사진을 찾으러 다음에 또 올테니까 말이다. 노래방의 초기 가격 정책도 성공 사례에 속한다. 한 곡에 오백원이라는 처음의 가격 방식이 꽤 산 것처럼 여겨졌지만, 이젠 거의 모든 노래방이 시간제로 운영된다. 단 돈 오백원의 유혹이 한 시간 일만원에서 일만오천으로까지 뛴 것이다.


노래방의 급격한 확산은 사실 전자 업체나 노래방 업소들의 “마케팅의 승리”이다. 심지어 가요 반주의 녹음까지 손님들 기분 맞춰 준다고 아주 단순화시킨다. 그래서 노래방이 가요 문화를 해치고 있다고 생각하는 일부 작곡자들은 자기 노래를 노래방에서 연주하지 못하도록 음악 저작권 협회에 음악 저작권 계약을 불허하도록 요청하고 있으나 불법 복제가 계속해서 성행하고 있다. 그것마저도 노래의 “민주화”로 좋게 보아 넘겨야 할까?


분명히 노래방은 노래를 잘 하는 전문가들에 의해 노래 부르기의 독점을 타파했다고 하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을 부분이 있다. 또 그 누구든 “나도 가수”요 “나도 한 번”을 외칠 수 있는 점에서 민주적이고 자주적인 측면을 갖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의 노래방 문화는 분명히 그 선을 넘어 섰다.


자기 이미지와의 사랑


노래방의 고객이 노래를 노래를 듣는 주체에서 부르는 주체로 돌아섰다는 것은 환상이다. 노래방의 노래는 반주가 중심적인 것이지 육성이 중심적인 것이 아니다. 육성도 마이크를 통해 전자음으로 변질되는 것이고, 사람들이 그 변질된 것에서 쾌락을 느낄 뿐이다. 노래방은 우리 시대가 앓고 있는 “정신 질환”의 일면을 극명하게 드러내 보여주고 있다.


그 “정신 질환”은 “자연적인 것”에 대한 거부감이다. 요즈음 사람들은 “기계적인 것”이 가미될 때에 편안해 한다. 언론은 전기 플러그를 꼽지 않고 하는 이른바 “언더플러그드 음악”이나 반주없이 부르는 “아카펠라 음악”이 유행한다고 호들갑을 떨지만, 그것은 그만큼 진기한 “뉴스 가치”가 있다는 것일 뿐이다.


가정용 노래방이 거의 모든 가구에 다 보급될 때쯤이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그때엔 영상 반주와 고성능 마이크와 화려한 조명의 도움 없이 순수한 육성으로 노래를 부르는 것은 맨발로 길을 걷는 것처럼 매우 이상한 행위로 여겨질 것은 아닐까?


사람들은 스스로 신바람을 내는 법을 잊어버린 것인지도 모른다. 기계가 흥을 돋구어 주어야만 비로소 원시적인 감정의 상태로 몰입하는 것이 가능할 정도로 기술 문명은 이미 인간의 일부로 자리를 잡은 것일까? 노래방은 전자 오락과 너무도 닮아 있다. 그 닮은 점은 기계와 하는 투쟁이다. 모든 것이 다 프로그래밍 되어 있는 기계와 맞붙어 기계의 인정을 받아 보겠다는 싸움이다.


우리 시대의 “고독한 군중”이 처절하게 겪고 있는 소외가 노래방에서 하는 투쟁으로 그 일부나마 극복될 수 있다면 누가 노랫방을 두려워하겠나? 고도 산업 사회에서 거대한 기계의 부속품의 위치로 전락해 가는 대중이 교묘하게 만들어진 기계 장치의 이용으로 자기의 능동성을 회복하고 안정감을 만끽할 수 있다는 환상을 누리고자 하는 역설이 존재함을 지적하고자 할 따름이다.


그 환상은 결국 자기 도취나 다름없다. 노래방은 철저한 자기 도취의 공간이다. 노래방은 노래하는 “내 모습”까지 보여준다. 노래방을 여러 사람이 같이 간다곤 하지만 사람들의 모습을 자세히 관찰해 보라. 그 사람들은 낯선 사람들처럼 서로 격리되어 있다. 남이 노래할 때에도 자기가 노래할 곡의 번호를 찾기에 바쁘다. 흥을 낸다고 소리를 질러대긴 하지만 그건 자기의 노래를 위한 워밍업일 뿐이다. 노래방에서 부른 자기의 노래가 녹음된 테이프를 차속에서 듣고, 스타처럼 무대에서 노래하는 듯한 포즈를 잡은 자기의 사진을 안방에 걸어 놓는다면 그건 이미 단순한 재미를 넘어선 것이다.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최초로 개발했다는 일반인들 대상의 녹음 스튜디오에서 자기의 노래를 시디에 담는 것은 자기 도취의 극치이다.


우리 시대 사람들은 끝없는 자기 복제에서 삶의 의미를 발견하는 “자기 매몰증”에 빠져 있다. 커뮤니케이션 기술의 발달 덕분이라곤 하지만, 사진으로 하는 것이거나 비디오로 하는 것이거나 자기 복제에 대한 집착은 영상 속의 자기가 진짜인지 영상밖에서 움직이는 생명체가 진짜인지를 구별하기 어렵게 만들 정도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이미지와의 사랑에 빠져 있는 것이다.


나르시소스와 에코


아주 옛날 옛적 그리이스에 나르시소스라고 하는 잘 생긴 젊은이가 살고 있었다. 숲 속의 요정 에코는 그 사람을 사랑하였지만 거절당했다. 에코는 크게 상심하다 못해 야위어 가다가 마침내 목소리만 남아 메아리가 되고 말았다. 어느 봄 날에 나르시소스는 사냥을 하다가 지쳐 샘물 곁에 누워 있었다. 그 사람은 목이 말라 목을 축이려고 샘물을 마시다가 샘물에 비친 아름다운 자기의 모습을 발견하고 그 모습을 사랑하게 되었다. 자기 모습에 마음이 홀린 그 사람은 한 발자국도 그 꽃을 떠나지 못한 채로 그 자리에서 탈진해 죽고 말았다. 그 사람이 죽은 자리에서 꽃이 피어 났는데, 그 꽃에 나르시소스의 이름이 붙여졌다.


수선화에 얽힌 이 그리이스 신화에 최초로 정신 분석학의 의미를 부여한 사람은 독일의 정신과 의사 네케다. 네케는 자기 육체를 이성의 육체를 보듯하면서 스스로 애무하여 쾌감을 느끼는 “자기애”를 가리켜 나르시시즘이라고 불렀는데, 나중에 정신 분석학의 대가라 할 프로이트는 이 개념을 더욱 발전시켰다.


나르시시즘은 자기 자신이 관심의 대상이 되는 자기 도취 상태를 말한다. 노래방에서의 자기 도취는 나르시소스의 행태와 어찌 그리 닮았는지 놀랄 지경이다. 노래방의 나르시소스들은 밀폐된 노래방에서 성대의 떨림을 한껏 만끽하고 육성을 기계음으로 전환시키는 고성능 마이크의 진동으로 하여금 귀를 애무케 하고 노래에 맞게 난무하는 화려한 영상 이미지로 하여금 눈을 간지럽히게 하는 자위 행위를 통해 자기 도취에 빠져 든다.


그러나 노래방에서의 자기 도취는 에코의 운명만큼이나 슬프기 짝이 없다. 에코는 노래방의 생명이다. 에코가 들어가야 시원치 않은 노래도 그럴듯하게 들린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의 발성이 끝난 뒤에도 그 남은 소리를 듣는 기분을 즐긴다. 변비에 걸린 사람이 어렵게 배설을 하고 나서 배설물을 보며 대견해 하는 기분이라나? 그리이스 신화에 나오는 에코로 말하자면 헤라의 저주를 받아 다른 사람의 말을 반복만 하고 아무 말도 할 수 없게 된 불쌍한 요정이다.


그런데 노래방의 애호가들이 그렇게 심혈을 기울여 부르는 노래의 가사는 자기들의 말이 아니다. 곧, 감명은커녕 자기가 전혀 공감하지 않는 내용의 노래도 기계의 지시에 따라 붙는 화면은 어떨까? 화면 속의 남-녀가 벌이는 그 진부하고 촌스러운 행태란 육십년대의 한국 영화를 연상케 해 이십세기 말의 첨단 전자 기술과 묘한 불균형을 이룬다. 노래방 속의 사람들은 마치 그 불균형을 바로 잡기라도 하겠다는 듯이, 마이크의 조작에서부터 제스츄어에까지 필사적인 노력을 기울인다.


“가상 현실”이 따로 없다. 세계 최초로 노래 천곡이 내장돼 있는 노래방 텔레비전을 개발해 냈다고 주장하는 한 전자 회사의 전면 광고엔 노래방에 흥겨워 춤추는 온 식구의 그림을 담고 있는데, 사람의 얼굴도 몸통도 없다. 사람의 몸이 빠진 채로 세 개의 옷이 춤을 추고 있을 뿐이다. 노래방의 본질을 꿰뚫어 보는 소름끼치는 상징이 되지 않을 수 없다.




71. 우리는 모두 형제들이다


시애틀 인디언 추장,


한샘 ‘미네르바 문고’에서




시애틀 추장은 미국 서부 지역에 거주하던 두아미쉬·수쿠아미쉬 족의 추장이었다. 1854년 미합중국 대통령 피어스는 백인 대표단을 파견하여 이 인디언 부족이 전통적으로 살아온 땅을 팔 것을 제안했다. 지금의 워싱턴 주에 해당하는 인디언들의 삶터를 차지하는 대신 인디언 보호구역을 주겠다는 것이 백인 정부의 제안이었다. 여기에 대하여 몸집이 우렁찬 목소리를 가졌다고 전해지는 시애틀 추장이 답한 것이 이 연설문이다. 그의 연설은 오늘날 환경과 자연에 대한 분별 없는 파괴의 결과로 인하여 전인류가 심각한 고통에 직면하게 된 시대에 오히려 생생한 호소력을 지니고 있다. <편집자 주>




워싱턴의 대추장이 우리 땅을 사고 싶다는 전갈을 보내 왔다. 대추장은 우정과 선의의 말도 함께 보내 왔다. 그가 답례로 우리의 우의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므로 이는 그로서는 친절한 일이다. 하지만 우리는 당신들의 제안을 진지하게 고려해 볼 것이다. 우리가 땅을 팔지 않으면 백인이 총을 들고 와서 우리 땅을 빼앗을 것임을 알고 있다.


그대들은 어떻게 해서 저 하늘이나 대지의 온기를 사고 팔 수 있는가? 우리로서는 이상한 생각이다. 대기의 신선함과 반짝이는 물을 우리가 소유하고 있지도 않은데 어떻게 그것들을 팔 수 있다는 말인가? 우리에게는 일 대지의 모든 부분이 신성한 것이다. 빛나는 솔잎, 모래 기슭, 어두운 숲속 안개, 맑게 노래하는 온갖 벌레들, 이 모두가 우리의 기억과 경험 속에서 신성한 것이다. 나무 속에 흐르는 수액은 우리 홍인(紅人)의 기억을 실어 나른다. 백인은 죽어서 별들 사이를 거닐 적에 그들이 태어난 곳을 망각해 버리지만, 우리는 죽어서도 이 아름다운 대지를 결코 잊지 못한다. 그 이유는 여기가 바로 우리 홍인의 어머니의 품속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대지의 한 부분이고 대지는 우리의 한 부분이다. 향기로운 꽃은 우리의 자매이다. 사슴, 말, 큰 독수리, 이들은 우리의 형제들이다. 바위산 꼭대기, 풀의 수액, 조랑말과 인간의 체온 모두가 한가족이다.


워싱턴의 대추장이 우리 땅을 사고 싶다는 전갈을 보내 온 것은 곧 우리의 거의 모든 것을 달라는 것과 같다. 대추장은 우리만 따로 편히 살수 있도록 한 장소를 마련해 주겠다고 한다. 그는 우리의 아버지가 되고 우리는 그의 자식이 되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 땅을 사겠다는 그대들의 제안을 잘 고려해 보겠지만, 우리에게 이 땅은 신성한 것이기에 그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개울과 강을 흐르는 이 반짝이는 물은 그저 물이 아니라 우리 조상들의 피다. 만약 우리가 이 땅을 팔 경우에는 이 땅이 신성한 것이라는 걸 기억해 달라. 신성할 뿐만 아니라, 호수의 맑은 물 속에 비추인 신령스러운 모습들 하나하나가 우리네 삶의 일들과 기억들을 이야기해 주고 있음을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한다. 물결의 속삭임은 우리 아버지의 아버지가 내는 목소리이다. 강은 우리의 형제이고 우리의 갈증을 풀어 준다. 카누를 날라 주고 자식들을 길러 준다. 만약 우리가 땅을 팔게 되면 저 강들이 우리와 그대들의 형제임을 잊지 말고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한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형제에게 하듯 강에게도 친절을 베풀어야 할 것이다.


아침 햇살 앞에서 산 안개가 달아나듯이 홍인은 백인 앞에서 언제나 뒤로 물러났었지만 우리 조상들의 유골은 신성한 것이고 그들의 무덤은 거룩한 땅이다. 그러니 이 언덕, 이 나무, 이 땅덩어리는 우리에게도 신성한 것이다. 백인은 땅의 한 부분이 다른 부분과 꼭 같다는 우리 삶의 방식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들은 한밤중에 와서는 필요한 것을 빼앗아 가는 이방인이기 때문이다. 대지는 형제가 아니라 적이며, 그것을 다 정복했을 때 그들은 또 다른 곳으로 나아간다. 백인들은 거리낌없이 아버지의 무덤을 내팽개치는가 하면 아이들에게서 땅을 빼앗고도 개의치 않는다. 아버지의 무덤과 아이들의 타고난 권리는 잊혀지고 만다. 백인들의 어머니인 대지와 형제인 저 하늘을 마치 양이나 목걸이처럼 사고 빼앗고 팔 수 있는 것으로 대한다. 그들의 식욕은 대지를 삼켜 버리고 사막만을 남겨 놓을 것이다.


모를 일이다. 우리의 방식은 당신네와는 다르다. 당신네 도시의 모습은 홍인의 눈에 고통을 준다. 백인의 도시에는 조용한 곳이 없다. 봄 잎새 날리는 소리나 벌레들의 날개 부딪치는 소리를 들을 곳이 없다. 홍인이 미개하고 무지하기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도시의 소음은 귀를 모욕하는 것만 같다. 쏙독새의 외로운 울음 소리나 한밤중 못가에서 들리는 개구리 소리를 들을 수가 없다면 삶에는 무엇이 남겠는가? 나는 홍인이라서 이해할 수가 없다. 인디언은 연못 위를 쏜살같이 달려가는 부드러운 바람 소리와 한낮의 비에 씻긴 바람이 머금은 소나무 내음을 사랑한다. 만물이 숨결을 나누고 있으므로 대기가 홍인에게 소중한 것이다. 짐승들, 나무들, 그리고 인간은 같은 숨결을 나누고 산다. 백인들은 자기가 숨쉬는 대기를 느끼지 못하는 듯하다. 여러 날 동안 죽어가고 있는 것처럼 그들은 악취에 무감각하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당신네에게 땅을 팔게 되더라도 우리에게 공기가 소중하고, 또한 그것은 그것이 키워 주는 온갖 생명과 영혼을 나누어 갖는다는 사실을 당신들은 기억해야만 한다. 우리의 할아버지에게 첫 숨결을 베풀어준 바람은 그의 마지막 한숨도 받아 줄 것이다. 바람은 또한 우리의 아이들에게 생기를 불어넣어 준다. 우리가 우리 땅을 팔게 되더라도 그것을 잘 간수해서 백인들도 들꽃들로 향기로워진 바람을 가서 맛볼 수 있는 신성한 곳으로 만들어야 한다.


우리는 우리 땅을 사겠다는 당신들의 제의를 고려해 보겠다. 그러나 제의를 받아들일 경우 한 가지 조건이 있다. 즉 이 땅의 짐승들을 형제처럼 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미개인이니 달리 생각할 길이 없다. 나는 초원에서 썩어 가고 있는 수많은 물소를 본 일이 있는데 모두 달리는 기차에서 백인들이 총으로 쏘고는 그대로 내버려 둔 것들이었다. 연기를 뿜어 내는 철마가 우리가 생존을 위해서 죽이는 물소보다 어째서 더 중요한지를 모르는 것도 우리가 미개인이기 때문인지 모른다. 짐승들이 없는 세상에서 인간이란 무엇인가? 모든 짐승이 사라져 버린다면 인간은 영혼의 외로움으로 죽에 될 것이다. 짐승들에게 일어난 일은 인간들에게도 일어나게 마련이다. 만물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당신들은 아이들에게 그들이 딛고 선 땅이 우리 조상의 뼈라는 것을 가르쳐야 한다. 그들이 땅을 존경할 수 있도록 그 땅이 우리 종족의 삶들로 충만해 있다고 말해 주라. 우리가 우리 아이들에게 가르친 것을 당신네의 아이들에게도 가르치라. 땅은 우리 어머니라고. 땅 위에 닥친 일은 그 땅의 아들들에게도 닥칠 것이니, 그들이 땅에다 침을 뱉으면 그것은 곧 자신에게 침을 뱉은 것과 같다. 땅이 인간에게 속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땅에 속하는 것임을 우리는 알고 있다. 인간은 생명의 거미줄을 짜는 것이 아니라 다만 그 거미줄의 한 가닥에 불과하다. 그가 그 거미줄에 행한 일은 곧 자신에게 행한 일과 다른 것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 종족을 위해 당신들이 마련해 준 곳으로 가라는 당신들의 제의를 고려해 보겠다. 우리는 따사로이 평화를 누리며 살 것이다. 우리가 여생을 어디서 보낼 것인가는 중요하지 않다. 우리의 아이들은 그들의 아버지가 패배 속에 주저앉아 있는 모습을 보았다. 우리의 전사들은 수치심에 사로잡혔으며 패배한 이후로 헛되이 나날을 보내면서 단 음식과 독한 술로 그들의 육신을 더럽히고 있다. 우리가 어디서 우리의 여생을 보낼 것인가는 중요하지 않다. 그리 많지도 않은 몇 시간, 혹은 몇 번의 겨울이 더 지나가면 언젠가 이 땅에 살았거나 숲속에서 조그맣게 무리를 지어 지금도 살고 있는 위대한 부족의 자식들 중에 그 누구도 살아 남아서 한 때 당신네만큼이나 힘세고 희망에 넘쳤던 종족의 무덤을 슬퍼해 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왜 우리 부족의 멸망을 슬퍼해야 하는가? 부족이란 인간들로 이루어져 있을 뿐 그 이상은 아니다. 인간들은 바다의 파도처럼 왔다가는 간다. 자기네 하느님과 친구처럼 함께 걷고 이야기하는 백인들조차도 이 공통된 운명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결국 우리는 한 형제임을 알게 되리라.


우리가 알고 있고 백인들 또한 언젠가는 알게 되겠지만 우리 모두의 하느님은 하나이다. 당신들은 땅을 소유하고 싶어하듯 하느님을 소유하고 있다고 생각할는지 모르지만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하느님은 인간의 하느님이며 그의 사랑은 홍인에게나 백인에게나 꼭 같은 것이다. 이 땅은 하느님에게 소중한 것이므로 땅을 해치는 것은 그 창조주에 대한 모욕이다. 백인들도 마찬가지로 사라져 갈 것이다. 어쩌면 다른 종족보다 더 빨리 사라질지 모른다. 계속해서 잠자리를 더럽힌다면 어느 날 밤 당신들은 황무지에서 숨이 막혀 죽을 것이다. 그러나 당신들이 사라져 갈 때 당신들을 이 땅에 보내 주고 어떤 특별한 목적으로 당신에게 이 땅과 홍인을 다스릴 권한을 허락해준 하느님에 의해 불태워져 버릴 것이다. 이러한 운명은 우리에게는 불가사의한 일이다. 언제 물소들이 모두 살육되고 야생마가 길들여지고 숲의 오지가 수많은 사람들의 냄새로 가득차고 곡식이 무르익은 언덕이 전화선으로 더럽혀지는지를 우리가 모르기 때문이다. 덤불은 어디에 있는가? 사라지고 말았다. 독수리는 어디에 있는가? 사라지고 말았다. 날랜 조랑말과 사냥에 작별을 고하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삶의 끝이자 생명의 시작이다. 우리 땅을 사겠다는 당신들의 제의를 고려해 보겠다. 우리가 거기에 동의한다면 당신네가 약속한 보호 구역을 가질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아마도 거기에서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짧은 여생을 이어 갈 것이다. 마지막 홍인이 이 땅에서 사라지고 그의 기억이 다만 초원을 가로질러 흐르는 구름의 그림자가 될 때도 이 기슭과 숲들은 여전히 내 종족의 영혼을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새로 태어난 아이가 어머니의 심장의 고동을 사랑하듯이 그들도 이 땅을 사랑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땅을 팔더라도 우리가 사랑했듯이 이 땅을 사랑해 달라. 우리가 돌본 것처럼 이 땅을 돌보아 달라. 당신들이 이 땅을 차지하게 될 때 이 땅의 기억을 지금처럼 마음 속에 간직해 달라. 온 힘을 다해서, 온 마음을 다해서 당신들의 아이를 위해 이 땅을 지키고 사랑해 달라. 하느님이 우리 모두를 사랑하듯이.


한 가지 우리는 알고 있다. 우리 모두의 하느님은 하나라는 것을. 이 땅은 그에게 소중한 것이다. 백인들조차도 이 공통된 운명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결국 우리는 한 형제임을 알게 되리라.



72. 강자에 후하고 약자에 박한 TV


김승수


전북대 교수․신문방송학, 시사저널, 96. 5. 22)




소외 계층, 텔레비전에서도 소외


방송 위력은 삶의 고통 해결에 활용돼야




얼마전 일본에서 70세 노인과 40 먹은 장애인 아들이 ‘먹을 것이 없다’는 유서를 남기고 함께 굶어죽은지 한 달만에 발견된 일이 있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며 일본 열도가 한동안 떠들썩하다가 이내 조용해졌다. 우리나라에서 그런 일이 있었으면 반응이 어떠했을까. 모르기는 해도 큰 차이는 없었을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끄집어 내는 이유는 연말에 불우 이웃 돕기하듯 주변의 소외된 이웃에 관심을 갖자고 주장하는 데 있지 않다. 개인들이 나서서 할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다. 위력이 ‘핵폭탄’에 비유되기도 하는 텔레비전 방송이 발벗고 나서서 우리 주변의 소외된 이웃 이야기를 매일매일 한 시간, 아니 단 5분씩만이라도 전해준다면 어떨까. 적어도 이웃에서 누군가가 잊힌 채 굶어 죽거나 돌보는 이 없이 병들어 신음하는 일은 크게 줄어들 것이다. 그런데 우리 방송은 힘없고 돈없는 사회적 약자의 세계에 대해서는 무관심하기만 하다.


예컨대 요즘 방송 내용을 들여다보면 입지전적으로 성공한 사람이나 미인대회에서 입상한 사람, 명문 대학 수석 합격자, 운동을 제일 잘하는 사람, 선거에서 1등한 사람 등 ‘잘난’사람들로 철철 넘친다. 방송은 그들에게 팡파르를 울려 주거나 그들의 시시콜콜한 무용담까지 친절하게 들려준다. 반면 가난한 사람, 힘없는 사람, 실직한 사람, 장애인, 노인, 억압과 차별로 고통받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최소한의 관심조차 기울이지 않는 듯하다. 어쩌다 다룬다 해도 내용은 ‘붕어빵’이다. 극히 피상적인 박애주의에 치우치거나 문제의 근원을 개인의 잘잘못에 한정하려 든다. 정책적․제도적 대안을 제시하는 뉴스나 프로그램은 눈에 잘 띄지 않는다. 왜 그런 현상이 벌어지고 있을까. 굳이 이유를 들자면, 방송이 힘깨나 쓰는 사람과 밀착되어 있는 데다가 연예․오락․스포츠에 ‘중독’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잘못이 방송에만 있다고 매도할 생각은 없다. 다만 방송에 따스함이 없다는 점만은 지적하고 싶다.


호흡을 길게 하고 방송의 방향을 한번 바꾸어 보자. 지금부터라도 방송은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불균형 문제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제도 차원의 해결책을 시청자들과 함께 찾도록 하자. 사람이 사는 사회, 복지가 충만한 사회로 나갈 수 있도록 분위기를 바꾸자.


하루쯤 대통령 모습이 텔레비전에 안보이면 어떤가, 하루쯤 야당 지도자 모습이 화면에서 사라지면 또 어떤가. 하루쯤 탤런트나 가수없는 텔레비전이면 어떤가. 함께 살아가는 데 우리 사회가 관심을 두어야 할 문제, 사회적 지원에 의지하는 사람들 이야기가 나와야 한다.


고통받는 이들의 모습도 나와야 한다.


어느 광고 문구처럼 이제는 정말 ‘가슴 따뜻한 사람들’이 만드는 텔레비전을 보고 싶다.




73. 수로부인의 길은 미(美)와 시의 길이자 수난의 길


대담: 이어령, 장덕순




자줏빛 바위 가에


잡고 있는 암소 놓게 하시고


나를 아니 부끄러워하시면


꽃을 꺾어 바치오리다.




신라 성덕왕 때의 향가로 <삼국유사>에 전한다. 순정공이 강릉태수로 부임하던 도중 부인 수로(水路)가 절벽 위의 철쭉꽃을 탐내고 있을 때 소를 몰고 가던 한 노인이 그 꽃을 꺾어 바치며 읊은 노래라 한다. 나중에 부인은 홀연히 용에게 납치되었다가 돌아오기도 한다. 이렇듯 수로의 미모엔 인간도 동물도 반한다. 쾌락과 도덕이 조화를 이룬 신라인의 미의식이 유감없이 나타나 있는 작품이다.




이 = 「그 나라의 민족성을 알려면 우선 그 나라의 여성을 보라」는 말이 있지요. 희랍문화라고 하면 누구나 먼저 미의 여신인 아프로디테나 헬렌을 생각하게 됩니다. 오늘날 미스 유니버스의 선발기준이 되어 있는 팔등신이란 바로 이 아프로디테의 희랍 조상(彫像)에서 따온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정신보다도 겉으로 드러난 육체미의 균형을 숭배한 헬레니즘의 사상을 단적으로 드러내 보인 예입니다. 그런데 기독교 문화라고 하면 동정녀 마리아를 연상하게 되지요. 아프로디테와는 달리 성스럽고 정신적인 순결성을 느끼게 됩니다. 육체보다도 영혼을 추구한 헤브라이즘의 상징이지요. 어떨까요. 만약 신라의 문화와 그 사상을 알기 위해서 문학작품 속에 나타난 한 여인상을 찾아본다면….


장 = 문학작품에서 찾아본다면 신라의 향가<노인헌화가>에 나오는 「수로부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삼국유사>를 읽다 보면 멋있고 아름다운 신라의 여인들이 많이 등장하는데, 분명 그 여인들은 고려나 조선조의 여인들과는 다른 개성을 지니고 있어요. 망부석 설화에 나오는 제상(提上)의 부인처럼 말을 타고 달린다든지 여왕이면서도 미천한 지귀(志鬼)의 짝사랑에 대해서 팔찌를 끌러준 선덕여왕이라든지…. 그러나 그 중에서도 신라인의 영원한 애인이 될 수 있는 미녀를 선발한다면 아마 수로부인을 능가할 여자는 없을 것입니다.


이 = 이야기 자체가 그렇습니다. 좁은 안방, 건넌방에서 일어난 이야기가 아니라 수로부인의 미는 동해를 끼고 천리나 뻗쳐 있는 「길」위에서 전개되고 있지요. 남편 순정공이 강릉태수가 되어 수많은 종자(從者)를 데리고 경주를 떠납니다. 집안에만 있던 수로부인이 이들을 따라 밖으로, 그리고 길로 나가는 과정, 그것이 바로 미가 표현되고 시가 출현되는 과정이요, 신라인들은 이렇게 미를 가두어두지 않고 밖으로 만인 앞에 끌어냅니다. 움직이게 합니다. 수로부인이 지나간 길, 그것을 우리는 미의 퍼레이드요, 시의 길이라고 부를 수 있지요.


장 = 수로부인이 방안에만 있었다면 <노인헌화가>는 생겨나지 않았겠지요. 신라 때 경주에서 강릉까지 해안선을 끼고 뻗쳐 있는 그 길은, 정말 시를 낳은 길이라고 할 수 있어요. 전설에도 나오는 삼화랑들이 다니던 길입니다. 비단 이 경우만이 아니고 승려들이 노래를 읊으며 다녔던 길이구요.


이 = 문학과 길은 밀접한 관계가 있어요. 길의 성격을 따져보면 문학의 특성을 이해할 수 있으니까요. 아라비안나이트는 사막의 길에서 생겨난 문학이고 마크트웨인의 문학은 뗏목을 타고 다니는 미시시피강 길의 문학이었지요. 신라의 문학은 수로부인이 지나간 해안의 길입니다. <처용가>를 비롯하여 웬만한 시는 모두 육지와 바다가 만나는 그 경계선인 해안 길의 산물이었지요.


 장 = 그러고 보니 <노인헌화가>가 생겨난 장소와 그 시는 뗄 수 없는 연관성이 있는 것 같군요. 순정공 일행은 잠시 걸음을 멈추고 길가에서 점심자리를 벌입니다. 바닷가 병풍처럼 깎아지른 바위 위에는 철쭉꽃들이 피어 있습니다. 그러한 충동이 생겼기 때문에 소에 풀을 뜯기던 노인이 등장하게 되는 것이지요. 그 시의 무대를 이해해야만 수로부인의 행동에 납득이 갈 것입니다.


이 = 꽃병을 어디에 놓느냐에 따라 꽃의 아름다움이 결정되는 것처럼 수로부인의 미는 강릉으로 가는 동해안 길의 배경에서 참되게 발휘됩니다. 수로부인은 파란 바다와 붉은 바위 사이에 있습니다. 수로부인은 파란 바다와 붉은 바위 사이에 있습니다. 때는 늦은 봄이고 점심을 먹는 환한 대낮입니다. 모든 것이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있지요. 수로부인의 손에 철쭉꽃만 있으면 미는 완성되는 겁니다.


그런데 여기 등장하는 노인이 문제입니다. 학생들에게 <노인헌화가>를 가르치면 예외없이 <노인>이라 맥이 풀린다는 게지요.(웃음) 멋있는 청년이라야 수로부인에게 꽃을 꺾어 바친다는 것이 낭만적이 아니냐는 거예요. 그리고 감히 아무도 오를 수 없어 수로부인의 청을 듣지 못하고 있을 때 용감하게 석벽을 기어오를 사람이라면 힘센 청년이라야 되지 않겠느냐는 것이지요. 그리고 또 「나를 부끄럽게 여기시지 않는다면 꽃을 꺾어 바치겠다」는 시의 내용을 보더라도 상대방이 노인이라면 이치에 안 맞는다는 거구요. 노인이라면 무엇 때문에 부끄러워할 필요가 있겠는가? 라는 의문이 든다는 것입니다.


장 = 여기에서 노인이라 한 것은 생리적인 연령을 뜻한 게 아니라는 설이 지배적입니다. 지자(知者), 현자(賢者)를 노인이라고 표현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지금도 노형(老兄)이라고 하면 반드시 늙었다는 말이 아니라 지적으로 높다는 존칭이 되니까요. 그리고 「내가 잡은 암소를 놓아두고」라는 말을 볼 때 소는 불도(佛道)의 상징이니까, 그 노인은 도자(道者), 즉 불도를 닦고 있는 도승을 뜻한 것이라는 해석이 있습니다. 김종우씨는 그래서 이 노인이 <삼국유사>를 쓴 승(僧) 일연 자신일 거라고 주장했어요(웃음). 그렇게 본다면 잡고 있는 소를 놓는다는 그 시의 의미는 「도를 닦는 것을 그만두고,」 심하게 만하면 「파계(破戒)하고라도」의 뜻이 될 것입니다. 소가 불도의 상징이라는 것은 지금 절간에 가보면 승려들이 공부하는 「심우당(尋牛堂)」이라는 게 있는 것을 봐도 알 수 있어요.


이 = 석가모니를 「고타마(Gotama)」라고도 하는데 그 어원이 「가장 좋은 소」라는 뜻인 것을 봐도 이해가 갑니다. 그러나 반드시 소를 불도라고 보지 않아도 뜻은 마찬가지입니다. 고대사회의 농경민에게 있어 「소」는 물질적, 정신적 양면에서 생활 자체의 상징물이었으니까요. 「曲禮」에 보면 제후라 할지라도 아무 연고 없이 소를 죽이지 못한다고 되어 있고 「천지 사이에 소는 무엇보다도 쓸모가 있고 그 공은 땅의 도(道)에 합(合)한다.」라는 말도 있습니다. 전국시대에는 소를 살찌게 기를 줄 안 백리해(百里奚)가 그 때문에 진무공(秦繆公)의 신망을 얻어 높은 벼슬자리에 올라 국사를 도모했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소를 잘 기를 줄 아는 사람이라면 능히 국사를 맡아 백성을 살찌게 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죠. 목민(牧民)이란 말이 그래서 생겼구요. 그러니까 소에 풀을 뜯기던 노인이 그 소를 버려두고 꽃을 꺾어 바치겠다는 것은 곧 지금까지 중시해 오던 생업이나 혹은 도를 닦던 것보다도 수로부인의 미를 더 존중했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장 = 수로부인이 얼마나 아름다웠으면 그런 현자(賢者), 은자(隱者), 도사의 마음까지 사로잡았을까? 결국 희랍사람처럼 신라인들의 마음에는 육체미 사상, 고려나 조선조 때처럼 관능의 세계를 천시하지 않고 고리어 그것을 숭배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원화(源花)나 화랑을 뽑는 데 있어서도 첫째 조건이 외모의 아름다움이었지요.


이 = 조선조를 상징하는 문학작품의 여인상은 「춘향」입니다마는 수로부인은 아주 다릅니다. 춘향의 미에는 정절(貞節)이라는 윤리적인 면이 강조되어 있습니다마는 수로부인이나 신라의 여인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우선 수로부인의 행실에 덕이 있었다는 말은 한마디도 없고 오히려 자세히 읽어보면 품행이 좀 수상쩍게 되어있습니다(웃음). 남자를 보고 꽃을 꺾어달라는 것부터가….


장 = 그런 일이 있은 후 다시 길을 가다가 수로부인은 바다의 용에게 납치를 당하지요. 다시 살아나오기는 했지만 용에게 정절을 빼앗긴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어요. 조선조 때의 이야기라면 수로부인은 자결을 해야 됩니다. 그런데 유사(遺事)를 보면 바다 세계가 어떻더냐는 남편의 물음에 아주 황홀했다고 대답을 합니다. 용궁의 음식이 달고 부드러우며 향기롭고 깨끗하다고…


(웃음).


이 = 더욱 괴상한 것은 바다속에서 나온 수로부인이 온몸에서 향내를 풍기고 더욱 예뻐진 것으로 그려져 있다는 점이지요. 타의(他意)라 해도 유부녀가 다른 자와 밀통(密通)했다는 이야기가 아닙니까? 그런데도….


 장 = 수로부인이 너무 아름다워 강릉까지 가는 사이에 여러 번 그런 일을 겪습니다. 옛날 설화에 「용」이니 「신물(神物)」이니 하는 것은 다 정체불명의 남자를 그렇게 부른 것이니까 합리적으로 풀이한다면 다른 남성들에게 납치를 당했다는 이야기가 될 것입니다.


이 = 육체미를 존중한 희랍사람들의 경우 아프로디테 역시 다른 신과 간통을 합니다. 워낙 아프로디테의 남편인 헤파이스토스신이 추물이고 불구자이기는 하지만…. 우스운 이야기입니다마는 신화나 문학 작품에서 미녀의 남편은 모두 추물이나 바보로 그려져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마는….


장 = 수로부인의 남편 순정공도 마찬가지입니다. 태수(太守)이기는 하지만 천하의 바보입니다. 용에게 아내가 납치되었을 때에도 허둥지둥 발을 구르며 야단만치고 있어요(웃음). 이때 도와준 것도 노인입니다. 옛사람의 말에 뭇사람의 말은 쇠도 녹인다고 했으니 동네 사람들을 모아 해룡(海龍)을 규탄하면 부인을 돌려줄 것이라는 방안을 가르쳐 준 것이지요.


이 = 신라인들이 세인(世人)의 여론을 중요시했다는 것이 그 설화에 나타나 있지요. 미녀 헬렌 역시 약탈을 당하는데 희랍인들은 무력으로 그녀를 찾아옵니다. 그것이 그 유명한 호메로스의 서사시 <일리어드>에 나오는 트로이전쟁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무력이 아니라 세상 사람들의 여론으로 용의 폭력을 이기고 미녀를 되찾았습니다. 우리 쪽이 박력은 없지만 훨씬 문화적이 아닙니까…


(웃음).


장 = 그때 바다를 향해서 부른 노래가 그 유명한 <구지가>이지요. 「거북아, 거북아 수로를 내놓아라. 남의 부녀 빼어간 죄 얼마나 큰가? 네 만일 거역하고 내놓지 않으면 그물로 사로잡아 구워먹고 말 테다」라고요. 그런데 이 노래는 수로왕의 설화에도나오는 것으로 예부터 불러온 주술가(呪術歌)인 것 같습니다.


이 = 그렇게 해석할 수밖에 없지요. 용이 잡아갔다고 되어 있는데 난데없이 「거북이」 이야기가 나오는 것을 보더라도, 이 <구지가>는 그때 만든 것이 아니라 주문(呪文)처럼 남을 위협할 때 쓰던 노래로 풀이되어야할 것입니다. 그런데 문화인류학에서는 거북이나 용이나 그것을 모두 남성의 성기를 상징한 것으로 보고 있지요.


장 = 특히 이 경우가 그렇지요. 수로부인을 범한 남자, 그것도 성기를 욕하는 직접적인 의미가 잠재되어 있지요.


이 = 고대의 시가는 수수께끼처럼 성상징(性象徵)을 내포한 것이 많습니다. 양수(羊水) 때문에 여자는 물로 상징됩니다. 수로부인이 바다와 연관성이 있는 것처럼 아프로디테도 바다의 물거품에서 생겨납니다. 수로부인이 용궁에 갔다가 다시 나왔듯이 심청이도 바다에 빠졌다가 재생합니다. 물은 재생의 원형을 가지고 신화나 설화, 그리고 고전작품에 되풀이되어 나타납니다.


장 = 어쨌든 <노인헌화가>도 사실적인 시라기보다 신화(설화)의 유형으로 봐야겠지요. 보통 경우라면 바닷물에 들어간 여인이 어떻게 살아 돌아올 수 있겠습니까?


이 = 그러므로 신라의 향가는 시사적(詩史的)인 입장에서 볼 때 주술적 효과와 미적 효과가 서로 섞여 있던 때이고 설화에서 완전히 분리되지 않은 시라는 데 그 특징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어쨌든 수로부인이 걸어간 길은 시의 길이요, 미의 길이었지만 동시에 수난의 길이기도 했습니다.


장 = 그러면 어떻게 정리할 수 있을까요. 헬레니즘의 상징인 아프로디테와 헤브라이즘을 나타내는 마리아의 이미지, 수로부인은 그중 어디에 속한다고 보시는지요.


이 = 미녀를 놓고 분류한다는 것은 멋없는 일이긴 하지만 수로부인은 아프로디테에 가까운 외모(육체)에 미가 있는 여인이지만, 그러면서도 남편을 따라 끝까지 강릉에 간 것으로 보아, 정절이 아주 없는 여인도 아닙니다(웃음).


장 = 신물(神物)까지 반해서 납치를 했고 도를 닦는 성자까지 마음을 뒤엎어놓은 것을 보면 아프로디테와 같은 미의 여신이라 해도 좋지요. 역시 신라인들의 석굴암에서 엿볼 수 있는 그런 심미의식(審美意識)의 결정체로 수로부인을 보아야겠지요.


이 = 그러나 희랍하고는 다릅니다. 아프로디테에는 도덕적인 면이 조금도 없습니다. 그래서 뒤에 이 여신은 창녀의 신으로 전락하고 맙니다. 굳이 그 특성을 찾아본다면 아프로디테와 마리아의 중간적인 여인상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육체와 정신을 다같이 갖춘…. 앞에서 말한 대로 바다와 육지의 경계선에 수로가 있습니다. 아프로디테는 바다의 여인이고 마리아는 땅의 여인이지요. 이 사이에 수로부인이 있습니다. 그것이 신라적인 것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장 = 수로부인은 얼굴만 예뻤던 것이 아니라 마음도 미를 아는 여인이었던 것 같아요.


이 = 우선 철쭉꽃을 보고 그것을 갖고 싶어했으니까요. <오주연문(五洲衍文)>에 「사람이 아름다운 꽃을 사랑하는 것은 풍류의 하나다. 청복(淸福)이 있는 사람이라야 능히 꽃을 사랑할 수 있는 복을 누리는 것이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장 = 노인을 대응시킨 것을 보더라도 그렇구요. 외모만 아름다웠더라면 아마 소치는 노인이 위험을 무릅쓰고 석벽(石壁)의 꽃을 꺾어 바치겠다고 하지 않았겠지요. 미가 높은 경지에 이르면 그것은 도와 같은 세계가 되니까요.


이 = 어느 나라나 미의 여신들의 족보를 캐올라가면 애초에는 죽음의 여신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인간은 죽음의 공포를 미로 승화시키려 합니다. 그래서 공포의 죽음을 나타내는 여신이 미의 여신으로 변하게 되는 것입니다. 프로이트는 아프로디테 역시 그랬다는 것입니다. 수로부인에게 죽음을 무릅쓰고 꽃을 꺾어바치겠다는 노인은 죽음을 미로 승화시킨 익명(匿名)의 시인이요 도인이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노인의 마음은 바로 신라인의 마음이구요.


수로부인이 꽃을 꺾어 달라고 할 때 남편은 물론 그 많은 종자(從者)들은 감히 그 가파른 벼랑을 기어올라 갈 엄두를 내지 못했습니다. 미를 아는 자만이 벼랑의 철쭉을 따기 위해 「소」를 버릴 줄 알지요.


장 = 그리고 신라인들에게 있어 미는 화랑에서도 볼 수 있듯이 외형의 아름다움과 정신의 아름다움이 다같이 조화를 이루는 것이었구요. 그래서 신라인들은 극단적인 영혼의 세계, 도덕적인 세계로만 흐르지 않았고, 또 육체의 세계, 쾌락에만 젖지 않는 이상적인 문화를 만든 것 같습니다.


이 = 그러한 미의 세계가 아름다운 동해를 끼고 굽이굽이 천리로 뻗쳐 있는 수로부인의 길에서 재현된 것이구요. 바다가 있고 꽃이 있고 바위가 있고 미인이 있습니다. 그 미는 비단 인간만이 탐하는 것이 아니라 바다의 용까지도, 온 산천초목까지도 감동하는 우주의 길로 통해 있습니다. 이것이 <노인헌화가>를 읽는 기쁨이지요.


74. 엘리트와 사회


토머스 버튼 보토모아




현대 사회에서 우리는 정치 엘리트를 비롯하여 지식인, 경영자, 관료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엘리트 집단을 볼 수 있다. 이들은 일반적으로 자질과 능력이 뛰어난 소수라고 인식되고 있다. 그러나 학자들마다 엘리트의 개념과 이들의 기능에 대한 견해가 다르며 특히 민주주의 사회에서의 이들의 역할에 대한 평가도 다양하다. 그러면 과연 엘리트란 어떠한 사람이며, 어떻게 형성되는가? 또한 현대 사회 특히 신생국가에서의 엘리트의 기능은 어떠하며, 민주주의의 평등을 확보하기 위한 미래사회에서의 적절한 엘리트의 역할은 무엇이 되어야 할 것인가?


17세기 초 ‘품질이 우수한 상품’을 지칭하던 엘리트라는 용어는 이후 많은 정치사회 이론의 핵심용어가 되었다. 파레토의 ‘통치엘리트’, 모스카의 ‘지배계급론’,미헬스의 ‘과두지배체제’, 밀즈의 ‘권력엘리트’등은 모두 다른 입장에서 엘리트에 대한 논의를 펼치고 있다. 파레토는 통치엘리트와 비통치엘리트를 구분하면서 통치엘리트는 자신의 활동영역에서 최고의 지위를 획득할 수 있는 계급으로 보며, 모스티는 사회를 크게 엘리트와 대중으로 구분하며 이 중 엘리트는 다수에 대하여 조직화된 소수로서 지배하는 정치계급이라고 구분한다. 그런데 이들의 엘리트이론은 개개인간의 자질과 능력이 불평등하다는 전제위에서 유능한 소수에 의한 무능한 다수에 대한 지배를 어느 정도 당연시한다. 이에 대해 민주주의적 관점과 마르크스주의적 관점에서는 엘리트이론이 평등의 문제를 무시하고 계급사회의 존재를 당연시 하는 경향이 있다는 점에서 문제를 제시한다. 물론 엘리트이론에서도 엘리트간의 순환과 유동성 그리고 일반 대중 속에서 엘리트로 진입할 수 있는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기는 하나, 이러한 순환 역시 극히 소수의 지배집단 내에서의 대치과정에 불과하다는 점에서 엘리트체제 내에서의 평등의 문제는 역시 해결되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 사회, 특히 신생국가 내에서의 엘리트의 역할과 존재는 점점 두드러지고 있다. 우선 여러 엘리트 집단 중에서도 20세기에 들어와 역할이 보다 커지고 있는 집단은 지식인,경영자, 관료를 들 수 있다. 지식인은 사회비판의 주요 세력으로 자신의 이익보다는 사회전체의 이익을 위해 각계각층의 이념을 초월하여 비교적 객관적인 사고를 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역할의 중요성이 강조된다. 경영자 집단은 기업소유자에 의해 지배되는 자본주의의 비효율적 측면을 극복하고 생산과정 전반에 대한 지시와 조정을 해낼 수 있는 집단으로서 사회 전체에 영향력을 점점 확대하고 있다. 그리고 현대산업사회에서 행정부 기능이 확대됨에 따라 새로운 지배계급으로 등장하고 있는 관료 역시 현대 사회의 불가결한 엘리트 집단을 구성하고 있다. 한편 신생국가에서도 엘리트의 위치는 매우 중요하다. 대부분 식민지의 상태에서 해방된 신생국가들은 급속히 산업화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정치 불안정, 복지 문제, 전통 문화와 새로운 문화와의 갈등 등 여러 가지 어려움에 부딪히고 있다. 이러한 과정에서 특히 중요한 역할을 하는 신생국의 엘리트 집단은 크게 혁명적인 지식인과 민족주의 지도자, 장교집단 등이다. 혁명적 지식인은 주로 마르크스주의 이념을 수용, 노동자나 빈농과 연대를 맺고 활동하는 집단으로 새로운 사회를 지향하고 있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수가 적고 그들의 이념이 급진적이어서 대중과 자칫 유리되는 경향이 있다. 민족주의는 감정적으로 대중과 동화되기 가장 쉬워, 아시아, 아프리카에서는 민족주의적 성향의 정치지도자가 많이 배출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에 못지않게 신생국의 사회질서에 영향을 주는 집단은 군부장교들이다. 이들은 물리적 폭력을 행사하면서 정치에 빈번히 개입한다. 신생국의 운명은 이와 같은 엘리트들 간의 세력 관계에 큰 영향을 받고 있는데, 이들의 관계가 불안정할 때 권위주의적 지배형태가 나타나기 쉽다.


이와 같이 어떤 사회든간에 엘리트들의 역할이 커져 주요 지배세력으로 부상하는 체제 하에서 진정한 민주주의의 운용과 평등은 가능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한 대답은 간단하고 쉬울 수 없다. 엘리트의 지배와 민주주의 정치가 양립할 수 있다고 보는 입장에서는 다음과 같은 점을 지적할 수 있다. 엘리트들간의 순환이 이루어지며, 엘리트로 진출하는 길도 어느 정도 개방되어 있으며, 일반 대중이 엘리트를 선택할 수 있는 권한을 갖는다는 점에서 엘리트의 존재는 민주주의 원칙과 배치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엘리트 계급의 존재 유무가 아니라 엘리트 선택의 새로운 양식과 엘리트 자신의 새로운 자기 발전 노력, 그리고 엘리트와 대중과의 관계를 실질적으로 좁혀나가는 과정에서 민주주의를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사회 속에서 이러한 노력은 다시금 일부 상류계급에 의한 엘리트의 독점적 충원으로 귀결되고 있다는 점에서 그 전망은 그리 밝지 않다. 실질적인 평등이 보장되지 않는 상황 속에서 엘리트 지배체제의 존재는 다소 불안정하다는 것이다. 미래는 평등한 사회체제의 진정한 확보라는 전제에서 엘리트의 자발적인 노력이 결합되는 사회로 모색되어야 할 것이다.


75. 예술의 비인간화


호세 오르테가 이 가세트




현대 예술의 보편적 특성은 대중을 적으로 만들어 버리는 그 비통속성, 혹은 반통속성이다. 20세기 들어 예술의 변화는 어리둥절할 정도로 극심한 것이어서 예술에 대한 몰이해, 예술에 대한 일반의 무감각이라는 결과를 가져왔다.


오늘날 예술 작품들은 하나같이 관객들을 두 가지 형으로 나누는 기묘한 사회적 효과를 발생시키는데, 한 유형은 그 작품을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호의적으로 받아들이는 소수파요, 다른 한 유형은 그 작품에 적의를 품는 다수파다. 즉 예술작품은 군중이라는 부정형의 인간집단을 두 개의 대립세력으로 가르는 일종의 ‘사회적 힘’으로 작용한다.


따라서 사회학적 관점에서 본 현대 예술의 특징은 새로운 예술을 이해할 수 없는 인간과 이해할 수 있는 인간의 두 계층으로 분리하는 데 있다.


현대 예술은 특별한 재능을 가진 소수자를 대상으로 하는 ‘예술을 위한 예술’이란 점에서 일반 대중에게 굴욕감과 소외감, 분노의 감정을 유발시키기도 한다. 현대 예술이 이런 몰이해의 발길질을 당하게 되는 것은 그것을 이해하기 위한 방법이 총괄적으로 인간적이 아니라는 데 있다. 낭만주의와 자연주의의 작품을 지배하고 있던 인간적 요소들을 되도록 제거하고자 노력하는 최근의 예술계 경향은 과거의 낡은 형식을 부수는 데 몰두함으로써, 새로이 창조될 무수한 형식과 언어를 익히고 이해하는 자만을 위해 있다.


새로운 예술이 지닌 몇가지 성향을 보면 1. 예술의 비인간화, 2. 살아있는 형상의 배제, 3. 예술작품은 예술 작품의 이외의 다른 것이 아니다, 4. 예술은 유희일 뿐이다, 5. 예술의 본질 중 하나는 아이러니다, 6. 예술은 초월적인 어떤 결론을 가지지 않는다 등이다. 20세기 예술은 인간적 포기, 삽화적 포기, 감정적 포기를 통해 대다수 인간들을 따돌리고 특수 전문가들만을 향해 열려 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현대 예술의 인간 기피와 현실도피 현상이다. 현대 예술가들은 그들의 작품에서 ‘살아 있는’ 현실의 모습을 지워버림으로써 우리로 하여금 일상적 세계와 연결되는 끈을 끊고 하나의 가상적 신세계로 날아가도록 권한다. 19세기 예술작품이 서민에게 사랑받았던 것은 예술이 생활의 반영, 작가의 기질을 통해 본 자연, 인간적 운명의 표현 등을 포괄함으로써였다. 그러나 새로운 모든 예술은 생활은 생활이요, 예술은 예술이며, 이 양자를 분리시켜야 한다고 본다. 즉 ‘인간이 끝나는 데서 시인이 탄생한다’는 관점이다. 현실에서 멀어지고, 생명 있는 형체로부터 도피한 현대 예술의 무생명성은 대중의 몰이해와 직결되어 모호성을 가중시킬 뿐이다.


그렇다면 현대 예술은 왜 생명 형식을 그처럼 혐오하고 비인간화하려는 것일까? 쉽게 말해서 그것은 서구 전통의 현실 해석에 대한 일종의 반항으로 보인다. 특히 19세기 사실주의에 대한 뚜렷한 반감이 주원인이다. 한 가지 스타일의 단순반복이 가져온 무디고 지루한 ‘권태’가 반항의 원동력임에 틀림없다.


예술의 본질 중 하나를 아이러니로 본다는 것은 현대 사회의 애매성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모든 것이 불확실한 현대 사회에서 예술은 이제 더 이상 엄숙해질 수 없는 것이다. 예술에 사명과 미덕을 부여하며 신성시하던 과거와 달리 예술을 하나의 笑劇으로 보는 것, 이것이 현대의 특징이다.


또 한가지, ‘주제의 결여’가 현대 예술을 규정짓는다. 결론없는 세계를 그리는 것이다. 19새기 예술은 인간성의 가장 심오한 문제를 다룬 주제와 인류의 존엄성, 정당성을 마련하는 하나의 인간탐구로서의 의의 때문에 중요시되었다. 과거에 예술은 굉장한 구경거리이자 종교를 대신할 만한 일종의 ‘엄숙한 분위기’이기도 했다. 그러나 현대 예술은 단지 운동경기나 유희처럼 취급되고, 늙은 세계 에 젊음을 주입시키려고 하는 하나의 노력 정도로 이해되길 바란다.


현대 예술의 특색은 예술이 그 자체의 중요성을 포기했다고 하는 점으로 초점을 맞출 수도 있다. 그러나 현대 예술가 개개인의 이해받지 못하는 하찮은 진전이, 보는 이 혹은 듣는 이의 경험세계를 확대시켜온 곳도 사실이다. 그런 점에서 현대의 작가들은 다음과 같이 탄식한다. ‘우리가 찾는 것은 부분들이지 전체가 아니다. 우리는 아직도 궁극적인 힘이 결여되어 있다. 왜냐하면 민중이 우리와 같이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76. 자살론


에밀 뒤르켕




자살은 개별적인 현상인가? 자살의 주된 요인은 무엇인가? 일반적으로 자살은 개인의 심리적, 경제적 고통 때문에 발생하는 개별적인 현상으로 이해되어 왔다. 즉 개인의 기질, 성격, 정신질환, 가정불화 또는 가난 등이 자살의 주된 원인으로 인식되어 온 것이다.


그러나 자살은 전체로 보면 그 자체가 하나의 단위로 독자적인 특성, 즉 사회적 특성을 갖는다. 자살률을 국가별 통계로 보면 그 결과가 일반인의 통념과 다르게 나타난다. 예를 들면 정신질환의 발생률이 가장 높은 곳에서 오히려 자살률이 낮고 배고프고 가난하던 이전 시대에 비해 풍요로운 현대로 올수록 자살률이 보다 높게 나타나는 것이다.


19세기 유럽 각국의 자세한 자살요인 통계(정신질환, 기온, 일조시간, 계절, 결혼, 직업, 종교 등과 자살의 관계를 다룬 통계)를 살펴보면 이 모든 요인을 포괄하는 독특한 실체로서의 사회적 요인을 발견할 수 있다. 즉 자살은 개인들로 구성되는 사회집단의 통합과 유대의 정도에 따라 달라진다는 사실이다. 자살의 현상은 개인적으로 설명할 수 없으며, 한 사회의 자살의 경향은 사회적 사실로서 사회통합이라는 사회적 요인에 의해 설명할 수밖에 없다.


사회는 단순한 개인의 집합 이상의 실체로 모든 사회현상은 사회적 사실로서 다루어져야 하며, 사회적 사실이란 개인의 단위를 초월한 행위양식, 사고방식으로서 개인에 대해 일정한 규제력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회와 자살률의 관계는 어떻게 입증할 수 있을까?


우선 종교를 통해 개인이 집단생활에 긴밀히 통합되는 카톨릭 교도들 사이에는 자살률이 낮으며 반대로 개인주의적 경향이 짙은 프로테스탄트 교도를 가운데는 자살률이 높다. 또한 가족간의 친밀도가 높은 경우 자살률이 낮으며, 가족이 와해된 경우 자살률이 높다. 국가와 정치사회의 경우에 있어서도 사회 통합이 강조되고 개인의 사회생활에의 참여가 활발해지는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위기에는 오히려 자살률이 감소되고 있음을 통계자료는 입증한다. 이에 따라 자살은 개별적인 이유로 해명될 수 있는 것은 아니며, 사회적 요인인 사회통합도와 자살률 사이에 일정한 관계가 있고 그 관계는 밝혀져야 할 주요한 과제로 된다.


그러면 자살의 형태는 어떻게 분류할 수 있을까. 기본적 유형으로 이기적 자살, 이타적 자살, 아노미적 자살 등이 있고 이외에 숙명적 자살이 있다.


이 중 이기적 자살은 개인의 사회에의 통합이 약화될 때 나타난다. 집합적인 힘이 개인을 규제하고 있을 때에는 개인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사회의 이익을 배반하지 않으며, 무엇보다도 사회의 공동목표에 일차적인 중요성을 부여하게 된다. 그러나 집단에서의 통합도가 약해지면 개인은 집단 또는 사회에 무관심해지고 사회적 자아를 희생시키면서 개인의 자아를 강력하게 주장하게 된다 .이같은 지나친 개인주의로 인한 자살이 이기적 자살이다.


이와 반대로 이타적 자살은 개인의 사회에의 통합 정도가 지나치게 높을 때 발생한다. 예를 들면 여자는 그의 남편이 죽으면 의례적인 자살을 해야 한다는 인도의 전통종교의 규범적 요구나, 일본 무사들의 할복의 경우처럼 개인이 사회의 요구에 너무나 강하게 밀착되어 있어서 규범이 요구할 경우 기꺼이 자신의 생명을 내놓는 것이다. 이러한 자살은 개인에게는 평온한 의무감, 열정, 용기에 의한 자살이기도 하다. 이 경우, 개인적 욕망은 사회적 요구와 구별되지 않으며 개인은 사회 속에 매몰돼 버린다. 정치적 이유 또는 종교적 이유에 의한 자살이 대부분 여기에 속한다.


자살의 세번째 유형은 아노미적 자살이다. 아노미란 개인에 대한 사회적 교제가 붕괴되어 개인의 욕구가 공동의 규범에 의해 규제되지 못하고, 그리하여 개개인이 목표를 추구함에 있어 도덕적인 지침을 갖지 못하게 된 일종의 무규범 상태를 말한다. 이러한 자살형태의 예는 사업이 망해 갑자기 가난해진 대부호나, 갑자기 부자가 된 졸부의 경우 자신의 생활양식과 가치규범이 혼동되는 상태라든지, 이혼 등에 의한 결혼생활의 아노미로 발생하는 자살 등을 들 수 있다. 또한 아노미 상태는 급격하게 산업화되고 가치관이 전도되는 19세기 유럽의 일반적인 사회적 징후로서 당시 자살의 가장 주된 원인이기도 하다.


자살은 이와 같이 지나친 개인화로 인해 사회통합이 약화된 경우는 물론, 사회통합이 너무 강력하여 개인화의 영역이 축소되어 버리는 경우에 모두 발생한다. 또한 사회적 변화로 인한 집합 의식 및 규범의 상실도 자살 발생의 주요 요소이다.


그렇다면 오늘날의 사회는 자살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할 것인가? 한마디로 자살은 비정상적 상태이다. 그런데 19세기에 들어와 유럽에서 자살이 급격하게 증가한 것은 , 유럽사회가 동류성에 기초한 기계적 유대는 상실한 채 새로운 유기적 연대에 의한 사회통합을 달성하지 못한 과도기적 혼란상태였기 때문이다. 자살의 방지를 위해서는 생의 본래의 목적과 지향성의 회복, 특히 사회집단의 건전한 유대감을 형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같은 기능을 위해 정치, 종교, 가족 등은 개인화와 합리성이 강화된 현대 사회에서는 이미 적절하지 않다. 새로운 유대의 집단 통합은 현대 사회의 경우 직업집단을 통하여, 즉 이해관계에 기초한 자발적 결사를 통하여 달성되는 것이 현실적이며, 올바른 도덕교육을 통한 도덕성의 회복 또한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77. 제 3의 물결


앨빈 토플러




미국의 노예 해방과 남북 전쟁, 그것은 무엇이었던가? 링컨이라는 한 위대한 인물의 결단으로부터 비롯한 인도주의적 투쟁이었던가? 오늘날 그런 감상주의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남북전쟁은 일본의 명치유신이나 러시아 혁명과 더불어 농업 사회에서 산업화 사회로 넘어가는 과정에서의 충돌, 다시 말해서 인류사에 있어 제1의 물결과 제2의 물결 사이의 충돌을 단적으로 드러내 보인 사건이었다.


길게 잡아야 불과 2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이 제2의 물결은 그처럼 짧은 기간에 1만년 이상 지속해 온 첫번째 물결을 여지없이 물리치고 인류의 생존방식에 전혀 새로운 양태를 심어주었던 것이다. 예컨대 오늘의 우리로서는 당연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 학교나 군대와 같은 수용체계도 그 전에는 생소한 것이었으며, 사실 학교라는 조직도 공자의 그것을 본뜬 것에 지나지 않는다. 학교에서 그토록 강조하는 시간엄수의 관념도 제2의 물결과 더불어 생겨난 것으로, 결국 분업화된 공장에서 일하게 될 장래의 직공들을 훈련시키기 위한 규정이었던 것이다. 아직도 제2의 물결에 끼어들기 위해 애쓰는 나라들이 지구상에는 많지만, 한국이나 대만 등 몇몇 나라를 제외하고는 거의 실패하고 있으며, 또 그러한 뒤늦은 몸부림이 권할 만한 것인지도 의문이다. 단적으로 생태계 파괴라는 측면에서 보더라도 산업 문명은 그 정당성을 상실했으며, 이들 후발 국가에서 산업화라는 명분은 예전의 고유한 미덕을 파괴해 버렸던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중세로 돌아가자는 이야기는 결코 아니다. 오늘날 지구상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혼란에 절망한 삶들은 종말을 논하거나 옛날의 세계로 되돌아가자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옛날 전원의 생활은 목가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었으며, 제2의 물결이 가져다준 인간생활의 향상도 인정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미래를 현재의 직선상에서만 보려는 상상력의 결핍을 극복해야 한다는 점이다.


자본주의 국가건 사회주의 국가건 제국주의로 나아가게 마련이던 이 산업 문명은 이제 종언을 고하고 있다. 생산에 있어서는 엄격하게 제어되는 노동자요, 소비에 있어서는 주체할 길 없는 욕구를 충돌질당하는 이 모순된 인간형은 이제 사라질 것이다.


우선적인 그 모티브는 에너지 문제에서 비롯한다. 문명은 곧 에너지요, 제2의 물결은 석탄과 석유라는 재생불능의 에너지원으로부터 시작했던 것이다. 불과 300년 사이에 지구상에 큰 격동을 몰고 왔으며, 또 대량생산을 낳았고 그 시스템에 물든 인간으로 하여금 아우슈비츠와 히로시마의 대량학살까지 부추겼던 이 화석연료들은 이제 고갈되고있는 것이다.


결국 산업사회를 성립시키는 기본요소들이 대체되어야만 하는 것이요, 우리는 이미 그러한 과도기에 들어서 있는 것이다. 기본 요소들이 대체되는 마당에 기존의 산업사회는 그 시스템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인가? 이것은 우문에 불과하다. 나는 오히려 국민국가의 붕괴까지도 예언한다.


제2의 물결이 몰고 온 운명은 이미 그 내부에서도 무너져 가고 있다. 미국에서는 가족제도 자체가 시비거리로 되고 있으며 동경 지하철의 교통지옥이 개선되리라는 전망은 아직 들은 바 없다. 한두 가지 예가 문제가 아니라, 그 모든 요인들이 결합해서 일구어 놓은 현상, 즉 ‘인격의 위기’가 문제이리라.


미래의 산업은 유전자산업, 생물학 산업이다. 컴퓨터, 전자공학, 우주나 바다에서 얻은 새로운 원료 등의 새 테크놀러지를 유전학과 결합시키고, 그것을 새 에너지 체계와 결합시켰을 때 비로소 새로운 변혁의 흐름이 감지될 것이다. 물론 당분간은 엄청난 양의 전구 따위를 매일 공장에서 만들어 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런 공장 자체도 변하고 있다. 이미 사무실의 풍경은 컴퓨터로 말미암아 바뀌고 있었으며, 장차는 출근할 필요없이 자택에서, 그것도 원하는 시간대에 업무수행을 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변화들은 곧 탈집중화, 탈획일화를 의미하여 그것이 가져올 파장은 엄청나다. 예컨대 컴퓨터의 도움으로 구매행위가 집안에서 완수되고 DIY(Do it Yourself) 등으로 생산=소비의 옛 시스템이 어느 정도 회복된다면 결국 대규모의 시장은 사라질 것이요, 그러한 탈시장문명은 속악한 물질주의에서 벗어난 새로운 인간형을 창출할 것이다. 탈시장문명은 시장에 의존하는 문명임에는 틀림없지만, 시장을 건설, 확대하기 위하여 에너지를 소모하는 문명은 아니다.


우리가 제시하는 미래의 청사진은 결코 개개인의 안락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는 않다. 그것은 하나의 새로운 삶의 방식을 겨냥하고 있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유토피아를 그리는 것이 아니다. 질병과 정치적 부패와 악습에서 해방될 수는 없으나 어떻든 현재의 사회와는 혁명적이라 할만큼 다른 문명, 즉 제 3의 물결을 예시하고 있는 것이다.


미래의 테크놀러지는 경제, 군사적으로만 검토되어서는 안된다. 생태계와 사회에 미칠 영향을 전제로 검토되어야 한다. 자본주의 사회와 사회주의 사회를 막론하고 기득권을 지니고 있는 자들은 어떻게 해서든 제2의 물결을 연장하고자 하며, 이들은 생태계가 완전히 파괴되어 회복불가능 상태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손을 쓰려 할 것이다. 그런 문제를 인식하고 있는 우리로서는 ‘현실성’을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는 이들과 투쟁해야 한다. 진정한 모습의 민주주의는 탈산업사회에서만 가능하다.


78. 철학적 인간관


막스 셸러




인간이란 무엇인가. 이 세상에서 인간의 위치는 어디인가.


이는 모든 철학자들의 머리 속에서 떠나지 않는 가장 근본적이고 주요한 물음이다. 나는 이런 물음이 곧 ‘철학적 인간학’을 확립하는 과정이라고 말해왔고 이의 해결은 우리 시대가 떠맡고 있는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다.


철학적 인간학이란 인간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외부세계와 부딪치며 끊임없이 걸어가야 할 기본방향과 법칙, 그리고 새로운 발전의 가능성을 탐구하는 과학을 말한다. 여기에는 인간을 움직이고 또 반대로 인간에 의해 움직여지는 세계의 모습, 인간의 생물학적, 심리적, 정신적, 사회적 발전 등을 깊이 연구하는 과정까지 포함된다. 바로 이런 점에서 최근 생물학자, 의학자, 심리학자들이 인간의 본질에 관해 새로운 모습을 구성하려고 노력하는 풍조는 대단히 만족스러운 것이다.


또 다른 의미에서 철학적 인간학이란 인간이 지금까지 만들어낸 모든 업적들과 산물들, 예를 들면 언어 종교 신화 도구 무기 학문들 또는 국가 통치 예술의 표현기능들이 어떻게 태어났는가를 올바르게 규명해내는 과정이기도 하다.


인간은 생명체 가운데 하나다. 따라서 생명체들이 가지는 일반 속성과 비교해 가면 인간의 독특한 모습이 두드러진다. 우선 생명체의 특성 중 가장 기본적인 것은 ‘감정충동’이다. 이는 움직일 줄 모르는 식물까지도 지니고 있으며 인간심리 밑바탕에 깔린 것이다. 그에 이은 제2단계는 ‘본능’이다. 이는 주로 하등동물의 본질을 이루는 것이며 예외없이 인간도 가지고 있다. 다음 제3단계는 ‘습관적 동작’ 혹은 ‘연상되는 기억’이다. 이는 몇 번인가 반복되는 동작에 의해 서서히 굳어져 한 생명체의 본질을 이루어가는 새로운 행동양식을 말한다. 제4단계는 실천의 단계다. 이는 무의식적으로 반복되는 불특정한 행동과는 분명히 다른 단계인데 여기에는 ‘선택의 순간’이 반드시 따르게 된다. 선택을 하는 능력이란 특정한 형태를 ‘善하다’ 또는 ‘福利를 위한 것이다’라고 판단하는 능력, 생식의 과정에서 동료를 선택하는 능력(에로스의 시작이다)을 말한다. 인간은 이런 지능과 판단력을 가진 유일한 존재라 할 수 있다.


이렇게 생명체의 본질을 근거로 인간의 본질을 규명하려는 노력도 크게 두 갈래로 의견이 나뉜다. 그 하나는 지능과 판단력은 인간에게만 있는 것이고 여타 동물에게는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이들은 인간과 동물 사이에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고 주장한다. 한편 반대로 동물도 지능을 가지고 있다며 인간과 동물 간에는 본질적인 차이란 있을 수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이제 엄밀히 말해 이 두 가지 견해는 모두 배격되어야 한다.


문제의 초점을 처음으로 돌려 인간이란 무엇인지, 인간은 어디에 서 있는지 생각해보자. 이는 지능이라든지, 선택능력이라든지 하는 범주를 훨씬 넘어서는 질문이다. 우리가 지능이나 선택능력을 아무리 멋대로 포장하더라도 인간의 본질과 위치를 찾아낼 수 없다. 인간을 인간이게 만드는 새로운 원리는 생명이라는 범주를 훨씬 벗어나 있다. 오히려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원리는 모든 생명체 일반과는 대립되는 원리이며 우리는 이 원리를 ‘자연적인 진화의 결과’라느니,‘만물의 영장’이라느니 하는 미사여구로 표현할 수 있다.


고대 희랍인들은 그 원리를 ‘이성’이라고 불렀다. 이성은 단순한 지식과는 구별되며 자기존재를 구속하는 모든 외부세계로부터 자유로운 ‘정신’이라 할 수 있다. 인간은 이런 이성을 통해 지신을 둘러싼 환경을 ‘단지 존재할 뿐’이라고 대상화하고 더 나아가 자신의 고유한 생리적 성질, 심리적 체험들을 아무런 편견없이 편견 없이 객관화시키게 된다. 따라서 인간이 가진 인격은 ‘유기체와 환경의 대립’이라는 객관적 상황을 추월하는 세계의 중심이 된다.


그러나 인간의 ‘이성’이 인간의 모든 행복을 통제하는 무한한 힘을 갖추고 있다는 견해 역시 받아들일 수 없다. 이성의 절대성을 믿는 고전적인 인간론에 따르면 인간이 지닌 ‘영혼의 실체’ 혹은 ‘유일한 정신’만이 실존하는 것이고 여타 개별적인 정신들은 여기에서 파생된 부수적인 양태에 불과할 뿐이다. 그러나 진화론적이고 자연주의적인 인간관이 높은 존재를 발생학적으로 낮은 단계에서 발전한 것으로 설명하려는 오류를 범했듯이, 이런 관점은 높은 존재형식들이 낮은 존재형식을 창출하고 지배한다는 아무런 근거도 없는 목적론적 세계관을 견지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이 세계에 존재하는 가장 강력한 힘이란 아무런 법칙의 지배를 받지 않고 다만 ‘우연성의 법칙’에 지배받는 무의식의 힘이다. 생명체의 충동은 개인이나 역사에 작용해 정신에 힘을 빌려줄 수도 있지만 정신은 근원적으로 아무런 자체의 에너지를 갖고 있지 않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정신과 생명의 화해’라는 원칙을 인간의 역사에서, 그리고 인간의 본질에서 발견할 수 있다. 역사에서 전반적으로 이성이 강화돼 가고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런 경향도 역사 속에서 존재하는 거대한 여러 집단의 이해를 조정하고 끊임없이 이념과 가치를 새롭게 창출해 나가는 한도 내에서 그럴 뿐이다. 인간은 정신적 존재이면서 동시에 생명체로서의 특성을 밑바탕에 지니고 있으며 지금까지의 모든 철학자들이 이들 양자를 근원적인 적대 관계나 투쟁관계로 파악해온 전통은 분명한 오류다.


79. 공자의 교육 사상


1. 제자백가와 유가


고대 중국의 전국시대(戰國時代)에 산동성에 위치한 제(齊) 나라의 수도였던 임치(臨淄)라는 도시에 “직하”(稷下)라고 불리는 학술기구가 있었다. 직성(稷城)의 아래에 수도의 서쪽 문이 있는 곳에 위치하였기 때문에 “직하” 혹은 “직하문”이라고 불려졌고, 그 곳은 학자들이 모여서 학문을 함께 논하는 곳이어서 일종의 학술기구이기도 하고 후진을 양성하였기 때문에 일종의 학교이기도 한 곳이었다. 이 기구는 기원 전 318년에 제 나라의 선왕(宣王)에 의해서 세워졌다. 그 곳에 거주하는 학자들은 모두 대부(大夫)의 서열을 받아 임명되고 왕실에서 제공한 높은 대문의 큰 집에서 살면서 특별한 대우를 받았다고 한다. 거기에는 70여명의 대부들과 1천여명의 학사들이 있었다고 전해지는 것으로 보아 그 규모가 대단하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 유래로 말하면, 제 나라가 태공(太公) 때부터 어업과 염전을 개발하고 후에 철의 생산까지 발전시키면서 상공업을 진작시켰고 후에 관중(管仲)은 어업과 염전업에 세금을 부과하여 형성한 재정으로 학술을 장려한 것이 그 출발이었다. 위왕(威王), 선왕(宣王), 양왕(襄王) 등 후대의 왕들도 그 뒤를 이어 임치를 학술의 중심지로 발전시켰다. 맹자(孟子), 추연(  ), 신도(愼到), 윤문(尹文), 순자(荀子), 묵자(墨子) 등을 포함하여 유가, 도가, 명가, 법가, 음양가 등의 학자들이 직하에 모여들었다. 이들은 저작을 통하여 통치술을 논하였고, 평시의 국정을 토론하였으며, 사상과 언론의 자유를 누릴 수 있는 분위기가 주어져 있었다. 그러나 기원전 3 세기 초에 이르러 혼왕(  )은 무력을 숭상한 데다가 학자들의 충고를 거역하는 태도를 보이기도 하여 학자들은 점차로 직하를 떠나버렸다.


물론, 당시의 직하에서 고대의 학문이 처음으로 시작된 것은 아니다. 기원전 500 년 경에 이미 고도의 학술적 체계가 형성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우리는 직하의 규모와 학풍과 역할을 미루어 볼 때 고대 중국의 학술이 어느 수준에 이르렀는가를 짐작해 볼 수 있다. 고대 그리스의 아테네에서 다양한 노선의 사상가들이 형성한 학풍, 그것보다 시대적으로 훨씬 앞서서, 그리고 그것에 못지 않는 수준의 다양한 사상적 체계가 발달해 있었다.


중국사의 최근 연구는 고대 중국에서의 학술의 발달은 주(周)나라의 봉건제도가 붕괴되면서 시작한 것으로 서술하고 있다. (**馮友蘭, 중국철학사, 정인재 역, 서울: 형설출판사, 1990, pp. 56-58) 봉건제도의 붕괴는 어느 시기부터인가를 단정할 수는 없으나, 일반적으로 기원전 7세기 경부터 3세기까지를 사회적, 정치적 변동기로 보며 이 시기에 봉건제도가 붕괴되어 가고 있었던 것으로 본다. 봉건시대에는 왕실의 관리들이 학문분야의 대표들이었으나, 봉건제도의 붕괴와 더불어 관리 혹은 귀족이 사방으로 흩어져 개인적 노력으로 사상을 전하는 직업적 교사가 됨으로써 여러 다양한 학파들이 형성되었다. 이 학파들을 통칭하여 “제자백가”(諸子百家)라고 일컫고 있다. 기원전 6세기에 이르러 고대 중국의 학문적 개화가 시작하였고, 제자백가의 시대는 기원전 500 - 250 년 사이에 절정기를 이루었다. 학파들 가운데 중국사상의 양대 조류가 되는 유가(儒家)와 도가(道家)가 그 대표적인 것이지만 기원전 5-3세기까지만 해도 수많은 학파 중의 둘에 지니지 않는다. 물론 제자백가의 분류는 사마담(司馬談), 유흠(劉歆) 등 후대의 학자들에 의해서 시도된 것이다.


사마담은 사가(史家)들 가운데 제자백가를 6가로 분류한 최초의 사람이다. 그는 기원전 2세기 후반의 사가이다. 그가 분류하여 명명한 6가에는 음양가, 유가, 묵가, 명가, 법가, 도가 등이 포함된다. 다른 한편 유흠(기원전 46 - 기원후 23)은 제자백가를 사마담의 6가에다, 종횡가, 잡가, 농가, 소설가를 더하여 10가로 분류하였다. 그러나 그 중 소설가는 별로 주목할 만큼의 무게를 두지 않았다. 물론 유흠이 제자백가의 배경과 특징을 분석한 것에는 수정되어야 부분들이 있는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분석하였다. (풍우란, 「중국철학사」, 정인재 역, 서울: 형설출판사, 1990, pp. 53 - 56)


(1) 유가(儒家)는 대체적으로 주 나라의 교육을 맡는 관직인 사도(司徒)의 출신이었다. 그들은 음양의 도에 순응하면서 군주를 도와 교화를 밝히는 것을 직책으로 삼았다. 이 학파는 어느 다른 학파보다 그 지위를 확실히 하였고, 6경을 즐겨 연구했으며, 인의 도덕에 뜻을 두었고, 요순(堯舜)의 시대를 동경하였으며, 공자(孔子)를 최고의 스승으로 삼아 학술을 닦았다. (2) 도가(道家)는 대체로 사관(史官)의 출신들이었다. 그들은 성패, 존망, 화복 등 고금의 도를 빠짐없이 널리 기록하였으며 그 요점을 파악하여 근본을 알고자 하였다. 군주의 통치방법으로 청허한 마음, 그리고 욕심을 멀리하고 자신을 낮추며 유연한 태도를 가질 것을 가르쳤다. 그러나 도가는 본래 양주(楊朱)의 사상에서 그 근원을 가진 것이나 주로 노자(老子)와 장자(莊子)의 사상을 말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유흠은 주로 노자를 중심으로 서술하고 장자의 것은 언급하지 않았다. (3) 음양가(陰陽家)는 천지와 사계절의 변화에 대응하는 일을 관장하는 관리였던 희씨(羲氏)와 화씨(和氏)의 출신들이었다. 그들은 하늘을 삼가 존중하고 해와 달과 별들의 운행을 추산하여 천문을 보고 백성들에게 농사철을 일어 주었다. (4) 법가(法家)는 옥사(獄事)를 심리하던 이관(理官)의 출신들이었다. 그들은 상벌을 엄격하게 함으로써 예절의 제도적 관습을 보충하였다. (5) 명가(名家)는 예절을 관장하던 예관(禮官)의 출신들이었다. 옛날에는 명칭과 지위가 다르면 그에 따라서 예의와 범절도 달랐다. 공자는 사물의 질서와 행동의 도리를 바로 나타내어야(이름을 바로 붙여야) 한다고 하였다. 그 도리를 바로 나타내지 못하면 말이 순조로울 수가 없고 말이 순조롭지 못하면 어떤 일도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이다. (6) 묵가(墨家)는 종묘의 관리인 출신들이었다. 그들은 검약을 귀하게 여겼으며 겸애를 주장하였고 현인을 존경하였으며 묘제(廟祭)를 엄숙히 지내고 효도하는 생활을 천하에 보여 주었다. (7) 종횡가(縱橫家)는 나라의 외교를 맡은 관직인 행인(行人)의 출신들이었다. 그들은 일을 처리할 때 실제에 비추어 하는 것을 중시하였다. 국가의 명령을 접수하더라도 그것을 실제의 상황을 보고 처리하여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8) 잡가(雜家)는 간쟁하는 벼슬을 뜻하는 의관(議官)의 출신들이었다. 그들은 유가, 묵가, 명가, 법가의 학설을 한데 통합시켰다. 왕이 나라를 다스리는 도는 제가의 주장과 관행을 모두 구비하여야 한다고 생각하고 여러 다른 주장에 대하여 관용성을 보였다. (9) 농가(農家)는 농업을 관장하던 벼슬인 농직(農稷)의 출신들이었다. 그들은 백성들로 하여금 여러 가지 곡식의 씨를 뿌리고 밭갈며 누에치기를 권장하여 의식을 풍족하게 하는 데 역점을 두었다. (10) 소설가(小說家)는 거리의 풍속을 기록하는 패관(稗官)의 출신들이었다. 그들은 거리에서 들은 것, 길에서 말한 것 등을 채집하여 이야기로 엮고 그것을 백성의 의견으로 수용하였다.


주 나라 말엽의 여러 학파를 일컬어 “제자백가”라고 하지만 유학(儒學)이 학술상의 정통이며 또한 주류였다. 제자백가는 모두 그 지류 혹은 아류이며 마치 해가 가운데 자리잡고 뭇 별들이 그 주위를 둘러 싼 격이라고 할 수 있다.[장기윤, 「中國思想의 根源」, 중국문화연구소 역, 서울: 문조사, 1989, P. 43] “유”(儒)라는 글자는 본래 “학자” 혹은 “문사”를 뜻하는 것이었다. 유에 속하는 사람들은 무엇보다도 옛 경전에 밝은 교사들이었고, 고대적 문화유산의 상속자들이었다. 공자는 이러한 사람들의 지도자였으므로 그의 사상을 따른 학자들이 “유가”(儒家)라고 부른 것이다. 춘추시대의 말엽까지만 하더라도 유가는 다만 직업상의 한 계급일 뿐이지 학파로서의 성격을 띤 것이 아니었다. 유가가 학파로서의 이름을 가지게 된 것은 전국시대의 초엽이었다. [공자가 지었다고 알려져 있는 「춘추」(春秋)의 연대기에 포함된 부분을 “춘추시대”라고 부르나, 그것은 기원전 481년으로 끝난다. 보통은 그보다 훨씬 후인 기원전 5세기의 종말까지 춘추시대에 포함시킨다. 그리고 사마광(司馬光)이 「자치통감」(資治通鑑)을 지어 기원전 403년 당시의 강국인 진(晋)이 한(韓), 위(魏), 조(趙)의 3국으로 분리된 시기부터의 역사를 기록하였고, 그 이후를 “전국시대”(戰國時代)라고 부르는 것이 관례가 되었다.]


공자가 죽은 후에 그 제자들 중에 어떤 이는 스승의 도를 이어 받아 사숙(私塾)을 열어 후진을 양성하고, 어떤 이는 연줄을 찾아 당시 전국시대의 어느 왕가의 조정에서 벼슬을 얻어 관료가 되거나 교육에 종사하거나 했다. 그들은 공자의 도를 전하면서 유학의 기초를 형성하고 하나의 독특한 학파로서의 세력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유가가 하나의 학파로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자 이를 본받아, 그리고 이에 대항하여 새로운 학파를 개척하는 사람들이 나타나기도 하였다. 그 대표적인 것으로 묵작(墨雀)의 사상을 이은 묵가(墨家)와 양주(楊朱)의 사상을 이은 도가(道家)가 그것이다. 장기윤(張其윤)은 유가가 도가와 묵가와 다른 점을 두 가지로 언급하였다.[P. 46] 하나는 자유의 개념에 관련된 것이다. 도가는 방임을 위주로 하고 묵가는 통제를 위주로 하여 극단적인 대립을 이루었으나. 유가는 중용을 숭상하여 예의 개념으로 둘을 절충하였다. 다른 하나는 평등의 개념에 관련된 것이다. 묵가는 겸애(兼愛)를 제창하고 도가는 제물(齊物)을 제창하여 모든 차별을 없앤 절대적 평등을 주장하였으나, 유가는 의(義)의 개념을 내세워 적절한 질서의 필요를 강조하고 차등주의를 표방하였다.


위의 세 학파 가운데 묵가의 사상은 후세의 사람들이 발전시키지 못하였기 때문에 한(漢) 나라 이후에는 더 이상 성행하지 못하였다. 전국시대의 제자백가 중에서 후에 사상의 양대 주류를 형성해 온 학파는 유가와 도가이다. 표면상으로 볼 때 극단적으로 대립되는 것 같이 보이기도 하지만, 풍우란은 둘은 동일한 막대기의 양쪽 긑일 뿐이라고 비유하였다.[풍우란, P. 37] 그들은 모두 농업을 근본적인 생업으로 하는 고대의 사람들이 해와 달의 운행과 사계절의 순환과정에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당시의 사회상을 배경으로 나타난 사상체계이며, 그러한 생활 속에서 자연사와 인간사를 두고 통찰한 결과가 다른 의견으로 나타났을 뿐이라는 것이다. 유가가 「주역」을 해석하여 “추위가 가면 더위가 오고 더위가 가면 추위가 온다”[寒往則署來, 署往則寒來, 「周易」, 繫辭 下]고 하고 자연적 순환의 새로운 출발을 가리키는 복괘[복괘의 해설]에서 천지의 핵심을 파악한다고 한 것과 유사하게, 노자의 「도덕경」에는 “되돌아 가는 것은 도의 움직임이다”[反者道之動, 노자, 「도덕경」(道德經), 제 10장]라고 한 것이 있다. 두 학파는 자연과 우주의 운행에 대한 동일한 관점을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도가는 원시사회의 단순성을 이상화하고 문명을 비판하는 경향을 취한 반면에 유가는 인간의 사회적 삶의 도리를 밝히는 데 관심을 두고 있었다. 도가는 전원적 농촌의 평화를 이상적인 세계로 묘사하였고, 인위적인 것보다 자연적인 것을 동경하면서 자연, 즉 우주와 합일하는 삶을 추구하였다. 그러나 유가는 농경사회의 경제조건에 따른 가족제도를 중심으로 사회제도의 질서을 세우는 도리를 추구하고 이론화하였다.


그러나 이 책에서 우리는 유가적 전통을 중심으로 교육사상사를 다루게 된다. 그것은 한국의 교육사상에 도가의 영향이 직접적으로 혹은 구체적으로 미친 바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교육사상사로 말하면 중국 유학의 영향과는 별도로 삼국시대, 신라시대, 그리고 고려시대의 불교를 비롯한 교육사상이 있었으나, 조선시대의 교육사상의 배경과 그 흐름을 이해하는 데 직접적인 도움을 주지 않는다. 그러므로 오히려 고전유학과 신유학의 전개과정을 중심으로 검토하는 것이 우선 필요한 일이라고 판단된다.


장기윤은 전목(錢穆)을 인용하여 유가사상의 핵심을 “중용(中庸)의 도”에 있다고 하였다.[p. 68) “중용”은 곧 “중화”(中和)로 이해될 수 있는 개념이다. 희노애락(喜怒哀樂)이 나타나기 이전에는 “중”(中)이며 나타나되 모든 것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상태가 “화”(和)이다. [「중용」] 그러므로 중과 화의 두 개념은 희노애락의 전후 상태에 각기 적용되는 것일 뿐, 본질적으로는 같은 것이다. 중은 천하의 근본이고 화는 천하에 통용되는 도이므로, 중과 화가 철저히 발휘되면 만사가 제자리를 지키는 것이 된다. 주자(朱子)는 중의 개념을 해석하여 “넘치지도 않고 모자라지도 않는 것”(중용장구 2)이라고 하였으며, 또한 “평상”(平常)의 의미를 지니고 있어서 “바뀔 수 없는 것임”을 말한다고 하였다. 그러나 공자와 유가의 중용은 인성론적 혹은 행위론적 수준의 개념만이 아니라 우주론적 개념이기도 하다.[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에서 “중용”으로 번역될 수 있는 말(golden mean)이 있다. 이 말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인간의 실천적 이성이 작용하는 원리로서 사용한 것이다. 그는 인간의 이성을 이론적 이성과 실천적 이성으로 구분하고, 전자는 인간의 마음이 사물을 관조할 때 제일원리를 발견하고 종(種)과 유(類)의 개념적 망에 의해서 대상을 파악할 때 작용하고, 후자는 인간의 행위가 극단적인 방향으로 치우치지 않고 중도적 위치를 지키는 것을 의미하였다. 중도를 취한다는 점에서 공자와 아리스토텔레스는 유사한 특징을 지닌다고 말할 수 있으나, 아리스토텔레스의 중용은 공장의 중의 개념과는 무관하지만 화의 개념에 가까운 것이다. 왜냐하면, 아리스토텔레스의 중용은 인간의 기질적 특징이 작용할 때 과다하거나 부족하지 않는 상태, 예컨대 만용을 부리거나 비겁하지 않는 상태의 것을 용기라고 하듯이 실천적 행위가 덕성(virtue)을 가지게 하는 조건이다. 이에 비하여 공자와 유가의 중용은 인성론적, 행위론적 수준만의 개념이 아니라 우주론적 개념이기도 하다.]


유가사상은 치우치지 않으며 지나치지 않고 모든 일에 있어서 전체의 한가운데를 찾고자 한다는 것이다. 사상적으로 무엇의 한가운데라는 말인가? 전목과 장기윤은 유가사상, 특히 공자의 사상은 묵가와 도가 사이의 한가운데를 이룬다고 하였다.(전게서, p. 68) 물론, 공자는 묵자나 양자보다 앞선 시대의 사람이므로 두 사상을 절충하였다는 것은 아니다. 묵가는 묵가대로 도가는 도가대로 발전하였지만, 공자의 사상은 이미 그 중도를 취하여 있었다는 것이다. 전목과 장기윤에 의하면, 중용의 도는 양자의 이기주의와 묵자의 정열을, 양자의 개인편중과 묵자의 사회편중을 조화시키는 사상적 체제로서의 지녔다는 것이다. 공자의 사상은 하늘을 떠받드는 묵자의 정신을 담고 있을 뿐만 아니라, 개인적 자유를 존중하는 양자의 정신을 보존하면서 어느 것으로 치우침이 없다.


2. 君子敎育論


공자는 중국에서 공부자(孔夫子)라고 불려져 왔고 서양에서 공자를 일컬어 Confucius라고 하는 것도 바로 거기에서 온 표현이다. 그의 이름은 구(丘), 자는 중니(仲尼)라고 한다. 그는 기원전 551년에 노(魯) 나라에서 태어났다. 그는 가난한 집안의 출신이었으나 관직에 투신하여 50세 때에는 높은 관직에 등용되었다고 한다. 정치적 모략으로 그 직책에서 물러난 후에 13년 동안 그는 정치적 이상을 실현하기 위하여 각국을 순방하였으나 어느 나라에서도 성공치 못하고 노년에 노 나라에 돌아와 기원전 479년에 세상을 떠났다.


공자의 사상에서 중심되는 개념은 “인”(仁)의 개념이다. 우리는 그 말을 “어질 인”이라고 하듯이 “어질다”라는 말이 가장 적절한 번역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그러나 그 의미만으로 이해하기에는 부족함이 없지 않다. 우리말의 “어질다”라는 말은 마음이 너그럽고 인정이 두터우며 덕행이 높은 인격의 특징을 나타내는 데 사용된다. 그러나 칼날 같이 분명하고 사물을 보는 눈이 명석하고 지혜로우며 엄격하기만 한 인격의 소유자를 우리는 “어진 사람”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그리하여 모든 것을 감싸주고 매사를 따지거나 밝히려고 하지 않으며 아무 것이나 용서해 주는 심성의 소유자도 때때로 “어진 사람”으로 언급되기도 한다. “어질다”는 우리말은 일상적인 용어로서 사용되는 것일 뿐, 그것의 의미가 무엇인가를 체계적으로 밝힐 수 있는 이론적 용어는 아니다. 국어 사전에 그 뜻을 진술하고 있지만 이해를 돕기 위한 설명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므로 유학(儒學)에서, 공자가 말한 “인”의 개념을 “어질다”의 말이 지니는 의미만으로 이해되기는 어렵다. 물론, 공자가 사용한 인의 개념에는 우리 말의 “어질다”의 의미를 포함하고 있고, 또한 그것을 순수한 우리말로 반드시 표현하도록 강요한다면 “어질다”의 말 이외에 또 다른 무슨 표현이 있겠는가?


대부분의 이론적 용어들이 그렇지만 인의 개념도 공자가 그 말을 사용할 당시에는 그 자체로서 일상적 용어에 불과하였고 체계적인 의미를 지닌 이론적 용어는 아니었다. 그러나 공자가 그 말을 자신의 사상과 교육을 가르칠 때 기본적인 개념으로 사용하면서 인간의 행위와 사회의 제도를 설명하는 이론적 용어로서의 힘을 지니게 되었고, 또한 후대의 사람들이 그 개념을 다른 개념들과 관련시켜 해설하고 분석함으로써 그 의미의 함축성이 매우 크게 된 것이다.


“인”이라는 말의 상형적(象形的) 구조로 보아 그것은 두 사람이 공유하고 있는 특징을 나타내고, 확대해서 해석하면 인류의 공통된 속성이며 인간을 다른 모든 동물로부터 구별짓는 특징을 암시하는 것으로 이해되기도 한다. 서양의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는 이성을 인간의 핵심적 본질로 규정하고 그것이 제 기능을 다하도록 하는 것이 바로 인간으로서의 모습을 다하는 것으로 본 것과 비슷한 방식으로, 공자는 모든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인을 소유하고 있으며 그것은 인간성의 핵심적 본질이라고 하였다. 완전히 그것을 꽃피우는 것, 그것은 바로 인간으로서의 삶의 과업을 다하는 것이다. 그러나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이성은 지식과 지혜라는 가치를 획득하는 기관으로 이해하고 그것의 특징을 기능적 능력으로 한정한 데 비하여 공자의 인은 인간을 인간되게 하는 기능적 특징을 암시하기도 하지만 그것보다는 오히려 삶을 통하여 실현시켜야 할 원리(혹은 도)와 같은 것으로 보았다. “이성이 작용한다”는 말은 옳으나 이성을 실현한다는 말은 하기가 어렵다. 그러나 “인이 작용한다”는 말도 가능하고 “인을 실현한다”는 말도 가능하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그 차이는 다소 암시된다.


그러므로 공자의 경우에 인을 추구하고 실현하는 생활은 어떤 다른 보상을 기대하지 않으며, 인을 희생시켜 가면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으며, 오히려 쾌락, 재산, 명성, 권력 따위의 모든 다른 가치들은 인을 실천하기 위해서 때로는 버려야 한다. 그러나 공자는 인을 추상적 능력이나 이념으로 이해하거나 논리적-개념적 분석을 통하여 그 뜻을 가르치고자 하지 않았다. 그것은 인이 관념적인 이해나 관조적 대상이 아니라, 실천을 통하여 체득될 원리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공자는 제자에 따라서 인을 실천하는 과제를 달리 말하였다.


제자들이 인에 관해서 질문했을 때, 공자는 인의 개념을 정의한다든가, 아니면 한 마디로 인을 밝힌 일이 없다. 어떤 구체적인 행동의 실천을 언급하면서 거기에 인이 담겨 있다고 말할 뿐이었다. 번지(樊遲)가 인을 물었을 때 공자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평소에 일이 없이 한가로히 있을 때도 공손한 태도를 가지고, 일에 임하였을 때도 경건하게 하며,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도 충심을 잃지 말아야 한다. 비록 오랑캐의 나라로 갈지언정 이 세 가지는 버리지 말아야 한다.”(논어, 자로 19) 그러나, 사마우(司馬牛)가 인을 물었을 때 “인자는 말함을 어려워 한다”고 하고 “행함이 어렵거늘 어찌 말함이 어렵지 않겠느냐?”(논어, 안연 3)고 덧붙였다. 그러나 자장(子張)에게는 또 이렇게 대답하였다. “다섯 가지를 실행하면 그것이 곧 인이다. 공손하고 너그러우며 믿음성있고 민첩하며 은혜를 베푸는 것이 그것이다. 공손하면 업신여김을 당하지 않으며, 너그러우면 인심을 얻게 되고, 믿음성이 있으면 사람들이 무엇이든 맡길 수 있으며, 민첩하면 공을 이루고, 은혜를 베풀면 사람들의 도움을 저절로 받을 수 있다.”(양화 6) 그런가 하면, 중궁(仲弓)에게는 또한 달리 대답하였다. “문을 나서면 몸가짐을 바르게 하되 귀한 손님을 맞는 듯이 하고, 사람들에게 무엇을 시킬 때 큰 제사를 받들 듯이 하고, 자기가 하고 싶지 아니한 일을 남에게 시키지 말라. 그리하면 온 나라 백성의 원한이 없고 온 집안 가족의 원망이 없다.” (안연 2)


공자가 이와 같이 인을 달리 가르친 것은 제자마다 인에 이르는 실천의 과제가 다르다고 판단하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공자는 실천을 통하여 인을 체득하고, 인을 실천하는 생활에서 가장 초보적인 “효”(孝)를 가르쳤다. 효의 실천은 모든 사람들이 인을 체득하여 인격의 완성적 경지에 이르는 기본적인 조건이라고 생각하였다. 공자가 효도를 가르칠 때도 인을 가르치는 경우와 마찬가지로 구체적인 행동의 실천을 언급하면서 가르쳤다. “부친의 생존시는 그 뜻을 다하고 부친이 세상을 떠나면 그 행적을 살펴 3년 동안 부친의 유습을 고치지 않으면 좋은 효자라고 할 수 있다”(학이 11)고 한 것, “요즈음은 봉양함을 일러 효도라고 하나 개와 말도 사람이 기르는 데 공경치 아니하면 무엇이 다르겠느냐?”(위정 6)라고 한 것, 그리고 “어버이 살아 계시거든 멀리 떠나지 말며 부득이 나다녀야 할 경우는 방향을 정해 두어야 한다”든가가 그러하다.


공자는 인을 인간의 핵심적 본질이라고 가르쳤으나 그 개념만으로 일관한 것은 아니었다. “덕”이라든가 “의”라든가의 다른 규범적 개념들도 사용하였다. 그것은 인의 실천적 내용이나 요소, 그리고 인을 실천하는 사람의 특성을 밝히는 데 필요한 개념들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특성의 개발은 “대인”, 즉 군자와 “소인”을 구별하는 기준이 된다. “군자는 덕을 생각하고 소인은 땅을 생각한다”(이인 11)고 하였다. 그리고 “군자는 무엇이 의로운가를 이해하지만 소인은 무엇이 유익한가를 안다”(이인 16)고 하였다.


공자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인간은 “군자”(君子)라는 말로 표현되었다. “군자”라는 말은 문자 그대로 풀이하면 “임금의 아들”이지만 본래 그 말은 보통 당시의 봉건제후를 가리키는 데 사용되었다. 그러나 공자는 군자라는 말을 도덕이나 학문 혹은 재능을 가진 사람을 통칭하는 말로 사용하였다. 군자는 “가르치는 데 있어서 구별이 없다”(유교무류)고 하여 교육의 평등을 주장한 사람으로 기술되기도 하나 그것은 신분상의 차별을 두지 않는다는 것을 뜻으로 이해될 수는 있으나, “하나를 가르쳐 열을 깨우치지 못하면 가르치지 않는다”고 한 말에서 알 수 있듯이 능력적 차등주의를 나타내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능력은 선천적인 것으로 파악하였다.(양화 3) 중인 이상은 심오한 학리를 이야기할 수 있지만 중인 이하는 그럴 수 없다(계씨 9)고 하였다. ”저절로 도리를 아는 자는 상급에 속하고 배워서 아는 자는 그 다음이며, 곤난을 당한 뒤에 배우는 자는 또 그 다음이고, 모르면서 배우지 아니하면 우민으로서 그 아래에 속한다.“(계씨 9) 그러나, 공자가 학리를 익히고 배움을 통하여 안다는 것은 사물의 지식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도덕적 원리, 즉 인의 도리를 배우고 익힌다는 것을 뜻한다. 인간은 인의 도를 실천하여 성인이 되어야 하지만, 성인의 경지에 도달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므로 범용한 인간이 수양과 공부를 통하여 도달할 수 있는 인간을 “군자”라고 한 것이다. 공자는 “성인은 만나 볼 수 없고, 군자라도 만나 볼 수 있으면 좋겠다”(술이 25)고 말하기도 하였다. 군자의 기본적인 자질은 인을 소유하는 것이다. 그는 “군자가 인을 버리면 어찌 군자라고 하겠는가?”(이인 5)고 하였다.


공자는 군자의 도로서 인을 가르칠 때 비록 구체적인 행동의 실천을 언급하였지만, 거기에는 회통하는 하나의 원리를 암시한 바가 있다. 그것은 공자가 증자(曾子)와의 대화에서 암시된 것이다. 공자는 “삼(參: 증자)아, 나의 도는 하나의 원리로 회통하고 있다”(一以貫之)고 하자, 증자는 “예”라고 답하였다. 공자가 나간 후에 제자들이 증자에게 묻자, 증자는 “선생님의 도는 충서(忠恕)일 따름이다”(이인 15)라고 하였다. 충서에 대하여 주자(朱子)는 해석하기를 자기가 바라는 것을 미루어 타인이 바라는 것을 아는 것을 “충”이라고 하고, 자기가 원치않은 것을 미루어 타인이 원치않는 것을 아는 것을 “서”라고 하였다. 충(忠)은 적극적인 개념으로서 인을 실천할 때 남을 생각하는 것을 뜻한다. “자기가 서고 싶으면 남도 세워주고 자신이 어떤 목적을 이루고자 하면 남도 이루어지도록 해 주는 것”(옹야)을 것이 충이다. 이에 비하여 서(恕)는 소극적인 개념으로서 자기가 하고 싶지 않은 일을 남에게 시키지 말라는 것을 뜻한다.


충서의 적극적인 면을 「중용」(中庸)에서는 이렇게 표현하였다.




자기가 자식들에게 바라는 그 마음으로 어버이를 섬기며, 자기가 신하들에게 바라는 그 마음으로 임금을 섬기며, 자기의 아우에게 바라는 그 마음으로 형을 섬기며, 벗들에게 바라는 그 마음으로 먼저 벗들에게 베풀어 주어라.(중용)




그리고 충서의 소극적인 면을 후대 유가의 학자들이 “혈구(潔矩)의 도”라고 일컬어지기도 하는 귀절이 「대학」(大學)에서 다음과 같이 표현되고 있다.




윗사람으로서 싫어하는 것을 아랫사람이라고 하여 시키지 말 것이며 아랫사람으로서 좋아하는 것이라고 하여 위사람을 섬길 때 하는 법이 아니다. 그리고 앞사람으로서 싫어하는 바를 앞서 있다고 해서 뒷사람에게 그것을 쓰지 말 것이며 뒷사람으로서 싫어하는 바를 앞사람을 쫓는 위치에 있다고 하여 그것을 쓰지 않는 법이다. 그리고 오른쪽 사람으로서 싫어하는 바를 왼쪽 사람에게 주고 받지 말 것이며 왼쪽 사람으로서 싫어하는 바를 오른 쪽 사람에게 주고 받지 않는 법이다. 이것을 혈구의 도라고 한다. (「대학」 10)




공자의 교육 목표는 실천적인 것이었다. “실천적”이라는 말은 좁게 이해될 수도 있고 넓게 이해될 수도 있다. 좁게 이해하면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교육받은 결과 직접적으로 실제의 생활에 반영되어 어떤 유용성이 나타나는 것을 뜻한다. 개인적으로는 지식을 배워 관직을 얻는다든가 기술을 익혀 직업을 얻는다는 것을 의미하고, 사회적으로는 국가나 사회가 필요로 하는 관리나 기술자를 양성하여 충원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넓게 이해하면 고도로 이념적이거나 이론적이지 않다는 것을 뜻한다. 그것은 현실적인 요구와는 무관하게 고답적인 이론이나 사상을 배우고 거기에 전념함으로써 고매한 인격을 갖추어 구체적인 현실에 초연함을 보이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개인적 삶을 영위하고나 사회적 제도를 운영하는 원리에 관심을 둔다는 뜻으로 이해된다. 이 경우에 이론이나 사상은 그 자체에 가치 혹은 목적을 지니는 것이 아니라, 현실적인 삶, 보다 나은 개인적 혹은 사회적 삶을 영위하기 위한 직접적 혹은 간접적 수단이나 방법이 된다는 것으로 수용될 뿐이다. 공자의 교육이 “실천적”이라는 말은 넓은 의미의 것이다.


공자가 교육의 사회적 목적을 좋은 나라를 만드는 데 두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오늘의 “테크노크라트”(technocrat)와 같이 기술적으로 유능한 관료를 만드는 데 관심을 두지는 않았다. 그가 목표로 하는 “교육받은 인간”의 모습, 즉 군자로서의 인간은 도덕적으로 완성된 인간이다. 그러한 인간은 물론 인을 소유한 인간이지만 더욱 완전하게 표현하면 지혜(知)와 인의(仁)와 용기(勇)의 덕을 균형있게 갖춘 사람이다.(헌문 30) 군자가 되기 위해서는 네 가지의 과업, 즉 학문(文)을 닦고 실천(行)을 중시하며 충의(忠)를 다하고 신의(信)를 지키는 일에 힘써야 한다. (술이 24) 그러나 공자가 그러한 덕목과 과업을 교육적으로 중시한 것은 그것들이 개인으로서 성공적인 정치적 생애를 살 수 있게 하는 조건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러한 교육을 받은 군자들이 통치에 종사할 때 좋은 나라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공자는 학자를 양성하고자 한 것이 아니라 도덕적 교양인으로서 정치에 종사할 지도자를 기르는 데 관심을 두었다. 그러므로 그가 일차적으로 가르치고자 한 것은 지식이 아니다. 오히려 그는 이렇게 말하였다. “집안에 들면 효도하고(入則孝), 밖에 나가서는 사람들에게 공손의 정의(情誼)를 다하며(出則弟), 근신하여 신의를 지키고, 넓게 여러 사람을 사랑하며, 어진이를 가까히 하라. 그리고 여력이 있으면 글을 배우라.”(학이 6)


공자가 제자들을 가르치는 방법은 전적으로 비형식적인 것이었다. 물론, 수업이나 시험 같은 것은 없었다. 그는 한 사람 혹은 몇 사람을 상대로 하여 대화하였고 때로는 질문을 하고 생각할 문제를 던져 주는 방식을 취하였다. 그가 가르치는 방법은 대상에 따라서 달랐다. 같은 질문에 대한 대답도 대상에 따라서 다르다. 논어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어느 날 자로(子路)가 “옳은 것을 배웠으면 곧 행하여야 합니까?”고 물은 즉, 공자는 “부모와 형제가 계신데 왜 여쭈어 보지 않고 행할 것인가?”라고 응답하였다. 그러나 염유(苒有)가 같은 질문을 했을 때 공자는 “들은 대로 어서 행하라”고 하였다. 그것은 염유가 무엇을 행하고자 할 때 언제나 주저함이 있고 자로는 오히려 행함에 지나침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공자는 잘못에 벌하거나 무엇을 강제하기보다는 옳게 행동하도록 자극하고 권유하는 방법르로 가르쳤다.


3. 정명사상과 일이관지의 논리


공자가 증자에게 자신의 도에는 하나로써 꿰뚫는 원리(一以貫之)가 있다고 암시한 바 있으며(논어 4), 그 하나의 원리가 중요함을 말하기 위하여 자공(子貢)에게 이렇게 물었다. “너는 내가 많은 것을 배워서 많을 것을 기억하여 모든 도리를 안다고 생각하느냐?” 자공은 그렇지 않느냐고 반문하였다. 그러나 공자는 “그렇지 않다. 나는 하나의 도리로써 모든 것을 꿰뚫는다”고 하였다.(논어 15) 공자가 이와 같이 하나로 회통하는 원리가 있다고 할 때, 거기에는 자신의 우주관을 전제로 한 것이다. 즉, 천지의 만물은 천차만별의 복잡성을 띠고 있지만 그 가운데 전체를 하나의 조리바른 계통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일이관지에 대하여 하안(何晏)은 이렇게 주석하였다. 즉 “만가지 선에는 그 근원되는 것이 있고 만사는 모이는 데가 있다. 천하에 각가지 길이 있지만 돌아가는 데는 결국 같다.”[善有元 事有會 天下殊塗而同歸]


증자가 공자의 일이관지를 충서로 이해한다고 언급한 이래 충서의 개념은 유가의 인을 이해하는 기본적인 개념이 되었다. 그러나 충서의 개념을 도덕론적 개념으로 이해할 것이냐, 아니면 인식론적 개념으로 이해할 것이냐를 두고 다른 의견이 있어 왔다. 도덕론적으로 이해하면 충서는 “자기의 마음을 다하여 자기를 타인에게 미치게 하는 것”[盡己之心推己及人]이나, 인식론적으로 이해하면 그것보다 넓은 의미가 된다. 호적은 대대례 삼조기(大戴禮三朝記)에 있는 다음과 같은 말을 들어 충서의 개념을 인식의 방법으로 해석하는 편에 서고자 하였다.




충(忠)이라는 것을 알면 반드시 중(中)을 알고 중을 알면 반드시 서(恕)를 알고 서를 알면 밖(外)을 안다. . 안으로 생각하는 일이 모두 마음에 합하는 것을 말하여 중을 안다고 한다. 이 중을 실제로 응용한 것을 말하여 서를 안다고 하고, 마음 속으로 서하여 바깥 세계에 견주는 것을 말하여 밖을 안다고 한다. [호적 p. 119]




이러한 의미의 충서는 도덕론적 개념 이상의 것이다. 그리고 호적은 장태염(章太炎)의 「정공하」(訂孔下)에서 밝힌 다음과 같은 충서의 의미는 바로 일이관지 그대로를 말해준다고 지적하고 있다.




마음이 사물을 견주어 볼 수 있는 것을 서라고 하고, 널리 사물을 관찰하는 것을 충이라고 한다. 고로 하나를 듣고 열을 알며 한 모퉁이를 들어서 세 모퉁이를 미루어 아는 것은 서이다. . 널리 사물을 관찰하고 그것을 적절히 증거로 삼아 그 중추의 이치를 가릴 수 있는 것은 충이다. (p. 119)




여기에서 충과 서의 두 개념은 서로 의미상 가깝기 때문에 구별하기 어려우며 오히려 “충서”라는 두 글자의 의미는 “서”자의 의미 그대로라고 해도 좋다. 그리하여 호적은 결론적으로 충서는 공문(孔門)의 인식론적 추론의 방법을 의미하는 것이며, 단지 자기를 미루어 타인에게 미치게 한다고 하는 인생철학적 의미만으로 해석할 수 없다고 하였다. 그는 공자의 “일이관지”와 증자가 말한 “충서”라는 것은 단지 조리 바른 계통을 발견하고 이것으로써 추론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를 듣고 열을 알게 하고 하나를 들어 셋까지 유추하게 하는 것을 기대하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충서가 인식론적 개념이라고 하더라도 도덕적 행위도 어떤 의미의 지식을 필요로 하는 것이라면 거기에도 충서의 개념이 적용되고, 공자가 인의 실현을 인간의 자질이며 과업으로 생각하는 이상 충서의 개념이 거기에 일차적으로 적용된다고 보아야 한다.


그러면 하나로 회통하는 원리는 어떤 내용을 어떻게 포착하는 것일가? 호적은 「역경」(易經)에서 그 뜻을 찾고자 하였다. 그에 의하면 역경의 기본적인 개념을 역(易), 상(象), 사(辭)로 들 수 있고, 역은 만물의 변화과정을 상정하는 개념이라면 그것의 질서를 인식할 수 있게 하는 단서는 상과 사의 개념이며, 상과 사가 나타내어 주는 바에 의해서 우리는 사물과 우주의 복잡한 구조와 과정을 회통하고 있는 원리에 접근할 수 있다.


우주와 만물, 그리고 그 생성과 변화를 포괄적으로 설명하는 원리를 구하려는 노력은 옛부터 동서양의 형이상학적 철학자들의 사유에서 볼 수 있는 일반적인 경향이었다. 체계적인 철학은 삼라만상의 구성과 변화의 원리를 근원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원리가 무엇일가를 두고 출발하였다. 현실적으로 경험하는 사물과 현상의 변화를 지배하는 보편적 질서가 있다는 생각이 바로 그들의 기본적인 가정이다. 서양의 고대 철학자들, 특히 플라톤은 변화하는 것을 지배하는 변하지 않은 실재(實在)가 있다고 생각하는 반면에, 동양의 철학자들은 오히려 변화 그 자체를 본질적이라고 보고 그 변화의 과정에 내축된 원리가 있을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을 취하였다. “역경”은 바로 이러한 전제에서 출발하여 우주의 현상과 인간의 삶을 설명하고 예측하는 기본적인 사고의 틀을 담고 있다.


그 세 개념은 주역에서 전개된 복잡한 것들을 구조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하는 데 설명력을 지닌다. “역”은 만물이 변화 속에 있다는 기본 가정을 나타내는 말이며, “상”은 그 변화의 과정에서 형성되는 사물의 상태 혹은 형상을 나타내는 말이며, “사”는 상을 언어로써 기술하고 설명한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천지만물은 도도하게 흘러가는 냇물과 같이 현재에 이르면 곧장 과거를 이룬다. 만물의 변화과정, 이것이 곧 “역”이라는 글자의 뜻이다. 역은 만물의 생성과 창조적 작용을 하는 원천적인 힘으로써 그것이 작용한 결과는 온갖 형상으로 나타나므로 우리는 상을 통하여 역의 진행과 그 질서를 알 수 있다. “하늘에서 형상을 이루고 땅에서 형태를 이루어 변화를 들어낸다.”(在天成象 在地成形 變化見矣-易繫辭傳)고 하였듯이 상의 도움을 받지 않고는 우리가 역의 질서에 접근하는 일 혹은 역을 설명하는 일이 어렵다. 모든 상의 원본을 “法象”이라고 한다. 이는 플라톤의 이데아와 유사한 것이다. 공자는 인류 역사상에 있는 각종의 문물과 제도는 그 기원이 모두 이 상에 있는 것이라고 했고 모든 것들은 하나하나의 법상을 모방하여 일어난다고 하였다. 즉, 상 혹은 법상은 원본적 모형이며 사물은 이 모형을 모방하여 된 것이다. “사”는 상에 이름을 붙이고 그 뜻을 규정하며 또한 판단의 근거로 삼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름을 붙인다는 것은 사물이 지니고 있는 “물상”(物象)이든지 사람의 마음 속에 지니고 있는 “의상”(意象)이든지 간에 상이 포착되었을 때에야 가능한 것이다.


상의 개념은 우주나 사물, 그리고 인간의 제도와 행위에 접근하는 데 있어서 설명력을 지닌 가장 기본적인 개념이었다. 역은 상에 의하지 않고 이해될 수 없으며 사는 상을 발견하거나 성립시키지 않고 그 뜻을 지닐 수가 없다. 상은 그림으로도 비유될 수 있으나, 그것은 우리의 의식이나 지각의 작용이 사물에 관해서 무엇인가를 깨닫거나 설명하고자 할 때 외형적으로나 내면적으로 지각되는 대상의 구조 혹은 과정의 특징을 의미한다. 사물에 대한 우리의 지각은 사물 자체가 지니고 있거나 우리의 마음이 성립시키거나 간에 그러한 상의 존재가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이러한 상은 사물의 지각 혹은 인식의 대상이 되는 “특질”, 혹은 특질적 구조에 상당하는 것이다.


물상은 자연계의 여러 현상을 나타내는 상이고(계사하 2) 의상은 물상을 관찰하여 마음 속에 일으킨 상이다. 주역에서 팔괘는 각기 물상을 표시한다.[주역의 구조] 팔괘들 중에서 둘씩 배합된 64괘의 각각은 의상을 표시한다. 천하의 복잡한 사물을 관찰하여 그 형용을 본따서 사물의 형상을 포착한다. 그것이 “상”이다. 성인은 바로 천하의 움직임을 보고 거기에 회통하는 것(상)을 파악하여 그 전례(典禮)로 삼고 말을 붙여서 길흉을 판단한다.(계사상 12) 공자는 “성인은 상을 세워서 모든 뜻을 밝히고 괘(卦)를 세워서 모든 판단을 하고 사를 맺아서 모든 것을 알려준다”고 하였으며, 우리가 상을 필요로 하는 글로써 말을 다하지 못하고 말로써 뜻을 모두 나타내지 못하기 때문에 상을 두어 생각한다고 하였다.(계사상 2)


역경에는 64괘(卦)와 384효(爻)가 있다. 각 괘와 각 효에는 하나의 “상”이 있다. 예컨대 --== ㅡ== (겸, 謙)과 같은 괘는 단지 “지중유산”(地中有山), 즉 대지 가운데 산이 있다는 의미를 나타내는 상을 지니지만 그 이상의 길휼과 선악을 말해주지 않는다. 그래서 계사(繫辭), 즉 말을 붙여서 무엇을 고한다. 그 고하는 바가 괘사(卦辭)로서 표현되며, 그것은 --== ㅡ== 겸형(謙亨) 군자유종(君子有終), 즉 “겸손하면 어떤 일에도 형통한다. 이러한 군자는 그 몸의 끝을 온전히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괘사만으로는 길흉을 충분히 알 수 없는 까닭에 각 효에 대한 효사(爻辭)가 또한 따른다.


괘사와 효사의 “사”는 개념 혹은 판단에 해당한다. 그것은 달리 표현해서 상의 “이름”이다. 이름으로서의 사는 의상의 추향(趨向)을 표시하고 행위의 길흉을 밝혀 주는 지침이 된다. 계사하전에 이런 말이 있다.




천지의 큰 덕을 생(生)이라고 하고, 성인의 큰 보배를 위(位)라고 한다. 무엇을 가지고 자리를 지킬 것이냐? 인으로 한다고 말한다. 무엇을 가지고 사람을 모을 것이냐? 재물로써 한다고 말한다. 재물을 다스리고 말을 바르게(正辭)하여 백성의 잘못을 금하는 것을 의(義)라고 한다.(계사하 1)




이 말을 이가원(李家源)은 다음과 같이 해설하였다.(이가원 역해, 「주역」, 서울 평범사, 1976) 천지의 큰 덕은 낳고 그것을 모두 기르는 것이요, 천자(天子)의 위치에 있으면서 만민을 기르는 것이 성인의 큰 보배이다. 성인이 천자의 지위를 보존하는 것은 어진 덕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며, 민중을 모아서 다스릴 수 있는 것은 물질을 풍부하게 해 주기 때문이다. 민중의 생활을 풍족하게 해 주고 민중에게 교육을 시키고 법에 의해서 나쁜 일을 금하는 것, 이것이 곧 의로운 정치이다.


정사(正辭), 즉 말을 바르게 한다는 것은 바른 것을 가르쳐 준다는 뜻으로도 이해될 수 있다. 그것은 이름을 바로 붙인다는 뜻, 즉 상에 이름을 붙여 사물을 바로 설명해 준다는 뜻이 되기도 하고, 명분을 바르게 한다는 뜻이 되기도 한다. “정사”와 “정명”은 같은 것이다. 정사 혹은 정명은 한 편으로 천하의 모든 것을 제대로 보살피고 옳지 못한 것을 금하는 것이다. 이것이 공자의 “정명사상”의 요지이다.


어느 날 자로(子路)가 위(衛) 나라의 임금이 나라의 일을 의논할탠데 무엇을 먼저 해야 한다고 하겠는가고 무었을 때, 공자는 “말할 것도 없이 명분을 바르게 하는 것이다”라고 대답하였다. 공자의 논리는 이러하였다. 즉, 명분이 서지 않으면 말이 순리에 맞지 않으며, 말이 순리에 맞지 않으면 일을 이루지 못하고, 일을 이루지 못하면 예악이 진흥되지 않으며, 예악이 진흥되지 않으면 형벌이 바로 되지 않으며, 형벌이 바로 되지 못하면 백성은 수족을 둘 데가 없어지므로 군자는 명분에 맞는 말을 해야 하고 그것을 실천에 옮겨야 한다는 것이다. (자로 3)


정명사상은 바로 시비와 선악의 표준을 세우는 데 그 목적이 있다. 그것은 사물의 상에 바른 이름을 붙이는 것, 즉 사물을 바르게 이해하고 판단을 바르게 하며 행위의 규범을 바르게 정하는 것을 의미한다. 온갖 복잡한 현상과 이들에 회통하는 상을 포착하여 바른 이름을 붙이는 것이므로, 정명사상과 충서사상과 일이관지는 종국적으로 같은 정신과 윈리를 나타내는 개념들이다. 정명사상은 정치를 논할 때, 충서사상은 도덕을 논할 때, 일이관지는 교육을 논할 때 각기 일차적 의미를 지닌다.


4. 禮와 樂과 詩의 敎育


공자의 시대에 교과목이라고 할 만한 것이 있었다면 육예(六藝)를 들 수가 있다. 서(書), 수(數), 어(御), 사(射), 예(禮), 악(樂) 등이 그것이다. 공자도 군자는 모름지기 도에 뜻을 두고 덕을 지키며 육예(六藝)를 체득해야 한다고 하였다.(술이 6) 글씨쓰고(書) 수리공부(數)를 하는 것은 당시의 귀족의 자녀들이 배워야 하는 것 중에서 가장 초보적인 것이다. 그러나 공자는 활쏘기(射)와 말타기(御)는 제외하였다. 본래 이 두 가지는 전쟁시에 필요한 것이었기는 하지만 단순히 그런 목적으로만 가르친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그 자체로서 오늘의 체육에 해당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그것보다는 그것을 통하여 예의와 절도를 배운다는 데 큰 의의가 있었다. 공자 자신도 활쏘기를 언급하면서 예의를 말한 바 있고(팔일 7) 제자들도 말타기를 했다. 공자가 그 두 가지를 배격했다기보다는 단지 자신이 제자를 교육할 때의 실질적 내용으로 삼지는 않았을 뿐이다. 대신에 공자는 시의 교육적 가치를 매우 높게 평가하였다. 이러한 관심의 상대적 전환은 종래의 세습적 혹은 군사적 귀족주의의 사고에서 문사적 혹은 도덕적 귀족주의의 사고로의 전환을 나타내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그리고 예(禮)와 악(樂)과 시(詩)는 다소 심오한 것으로 고급 수준에서 가르쳐졌다. 이 교과들은 절제와 조화의 도야를 가능하게 하고 인간의 성정(性情)을 균형있게 하는 데 기여하는 것으로서 공자가 교육에서 가장 중시한 부분이다.


“예(禮)”라는 말이 무엇을 뜻하겠는가를 물으면, 우리는 “예의” 혹은 “예절”을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공자 시대에 사용된 “예”라는 말의 의미는 매우 넓기도 하고 좁기도 하다. 넓다는 뜻은 예가 종교적 의식과 사회적 관습의 일체, 그리고 도덕적 규범을 총칭하는 것일 수도 있다는 것이며, 좁다는 뜻은 인간의 행실과 태도 등에 적용되는 행동적 규범을 나타낸다는 것이다. “예”(禮)라는 글자의 상형적 구조는 제사(祭祀)의 기구를 나타내는 것으로 해석되며, 그 본래의 의미는 종교적 의식과 절차인 것으로 말해지고 있다. 그러나 후에 그 의미는 점차로 확대되었다. 예컨대, 여섯 가지의 의례(儀禮), 즉 관례(冠禮), 혼례(婚禮), 상례(喪禮), 제례(祭禮), 향례(鄕禮), 상견례(相見禮) 등의 관습에서 “예”라는 말이 쓰인다. 본래 고대 중국에서는 부모에 대한 제사를 비롯하여 의식이 반드시 성직자에 의해서 집행되지 않았고 가정의 가장도 의식을 주제할 수 있었기 때문에 종교적 의식과 세속적 의식은 확연히 구분되지 않았다. 예의 의미가 반드시 종교적이라고 말하기도 어렵고 아니라고 하기도 어렵다. 그러나 예는 점차로 사회일반의 관습과 풍속으로 지켜지는 의식이나 절차 등을 포괄하는 것으로 되었다. 그런데, 예의 넓은 의미는 그것에 한정되지 않고 사회적-도덕적 규범의 모두를 포괄한다.


공자의 예는 법률과 함께 나라를 다스리는 두 가지의 기율에 속한다고 할 수도 있다. “예는 미연(未然)에 금하는 것이며 법은 기연(旣然)에 금하는 것이다.”(大戴禮記 경해편) 도리에 합치고 행위의 표준이 되고 도덕적 습관을 양성하고 사회의 치안을 증진시킬 수 있는 규범의 모두가 예에 속한다. (호적 151) 공자의 예는 인이 실천되어 나타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이렇게 말하였다. “자기를 극복하여 예를 행함이 곧 예이다. 단 하루라도 자기를 이겨 예를 행하면 천하가 인으로 돌아 올 것이므로 인은 자신에게 달린 것이지 남에게 달린 것이 아니다.”(안연1) 인이란 마음의 자세만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적 생활에서 실천되어야 하고, 그것이 실천된다는 것은 세련된 품행을 통하여 나타내어지는 예의 생활을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은 인격의 내면적 바탕이요 근원이라면 예는 그것이 밖으로 나타내어진 모습이며 군자의 품위 그 자체이다. 그리하여 공자의 예는 자연스럽게 몸에 익어 균형을 이룬 교양인의 세련된 품행을 뜻하기도 한다. 그는 “공손하되 예가 없으면 수고롭기만 하고, 신중하되 예가 없으면 두렵기만 하며, 용감하되 예가 없으면 난폭하기만 하고, 솔직하되 예가 없으면 경직되기만 할 뿐이다.” (태백 2)


그러나 공자의 예는 외양적 갖춤 그 자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예를 지키면서 공경스럽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다.(팔일 26) 본래 당시의 귀족들이 지켜야 하는 행동의 형식적 규범이 얼마나 엄격하였던가는 우리가 「예기(禮記)」에 쓰인 행실의 도리들을 읽으면 알 수 있다. 그 한 가지만을 보면 이런 것이 있다.




무릇 손님을 인도해 들어가는 이는 문마다에서 손님에게 먼저 드시라고 하면서 사양한다. 손님이 침실의 문에 이르면 주인이 손님에게 말하고 들어가 자리를 편 뒤에 나와서 손님을 맞아들인다. 손님이 주인에게 먼저 들어가라고 굳이 사양한다면 주인이 앞에서 손님을 인도하여 들어간다.


주인은 문안에 들어가서 오른 쪽으로 가고, 손님은 문안에 들어가서 왼쪽으로 간다. 주인은 동쪽 계단으로, 손님은 서쪽 계단으로 향한다. 손님이 만약 주인보다 지위가 낮으면 주인이 오르내리는 계단의 동쪽을 향하여 간다. 주인이 굳이 사양하면 손님이 다시 서쪽 계단으로 간다.


주인과 손님이 서로 먼저 올라가기를 사양하다가 주인이 먼저 올라가면 손님이 뒤따라 올라가는 데 한 계단마다 두 발을 모아가면서 걸음을 이어 올라간다. 동쪽 계단으로 올라갈 때에는 오른쪽 발을 먼저 내고 서쪽 계단으로 올라갈 때에는 왼쪽 발을 먼저 낸다.


장막과 주렴 밖에서는 빠른 걸음으로 걷지 않으며, 마루 위에서는 빠른 걸음으로 걷지 않으며, 옥(玉)을 잡고는 빠른 걸음으로 걷지 않으며, 마루 위에서는 발자취를 서로 붙이고, 마루 아래서는 서로 떨어지게 걷는다. 방 안에서는 팔을 벌리고 빨리 걷지 않는다.


남과 나란히 앉을 때에는 팔을 옆으로 벌리지 않으며, 서 있는 이에게 무엇을 줄 때에는 꿇어 앉으며, 앉은 이에게 줄 때에는 서서 주지 않는다. (「예기」 상, 곡예 상 44)




물론 이러한 세련된 행동은 마음 속의 인을 예의 형식으로 나타내는 방식이다. 공자에게서 인과 예는 군자의 양면적 자질이다. 그러나 형식적 규범의 세련성은 겉보기에만 좋을 뿐 실제로 마음은 공허한 것일 수가 있다. 유교의 관습은 후일에 그러한 특징을 보이기도 하였다.


공자의 예는 세련된 균형과 절도를 암시하고 있다. 이러한 균형과 절도는 성정의 개념이 요하는 것이다. 여기에 공자가 음악의 교육적 중요성을 든 이유가 있다. 음악이 여러 가지의 의식에서 연주된다는 것은 예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는 의식이 균형과 절도와 조화의 질서를 이루게 하기 위한 것이다. 당시의 음악은 예악으로서 예(의식)에서 완전히 분리된 것이 아니었다. 그가 음악을 직접 가르쳤다는 기록은 없으나, 남과 함께 노래 부를 때 그가 잘하면 반드시 다시 시킨 후에 이와 함께 불렀고,(술이 31) 예악은 도덕적 정서를 함양하고 군자가 배워야 할 중요한 것으로 언급한 것은 여러 군데 있다. 공자가 노(魯) 나라의 악관에게 한 말이 있다. “음악은 저절로 모든 것을 알아서 한다. 연주를 시작하면 음률은 모여서 화음을 이루고, 음률은 각기 맑고 밝게 이어지며, 점차 가경에 이르러 완성된다.”(팔일 23) 당시에 여러 가지의 악기로써 연주되는 음악이 있었던 것 같다.


공자는 음악이 예와 도덕에 관련이 있음을 말하였다. “무릇 음은 사람의 마음에서 생기는 것이며, 악은 윤리에 통한다. 음을 상세히 살피면 악을 알게 되고 악을 잘 살피면 정치를 알게 된다.” 표문태(表文台)는 이 귀절을 이렇게 해석하였다. 음은 마음의 표현이고 리듬이다. 악은 인간의 도의심과 통한다. 인생의 도가 여기에 표시되어 있으므로 악을 잘 터득하면 정치의 이치를 알게 된다. 그것은 정치도 천리(天理), 즉 인간의 보편성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표문태 주해, 「논어」, 서울: 현암사, 1966, 258)


시(詩)는 육예에 속하는 것이 아니었지만 공자는 그 교육적 가치를 매우 높게 평가하였다. 공자는 이렇게 말하였다. “시는 감흥을 일으키며, 세상을 관조할 수 있게 하고,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게 하며, 그릇됨을 원망할 줄 알게 하고, 가까히는 어버이 섬김을 가르치고, 나아가서는 임금 섬기는 바탕이 되며, 새와 짐승과 초목의 이름을 많이 알게 하기도 한다.”(양화 9) 그는 “시로써 일어나서 예로써 서며 악으로써 완성한다”(태백 8)고 하였다. 이 말은 시에 의해서 정서를 북돋우고 예에 의해서 품위를 세우며 악을 통하여 군자의 에서 도덕을 완성한다는 의미가 될 것이다. 한편으로 시와 예의 관계는 인의 도리에 따른 정조를 일으켜 예로 표현되게 하는 데 있어서 시가 정서를 순화하고 성정을 가다듬고, 희노애락의 감정이 중(中)을 유지하면서 화(和)를 이루는 것, 즉 중용의 덕을 성취하는 마음을 형성시킨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 음악과 예의 관계는 예가 그 의미와 질서를 따라서 조화와 균형을 이루어 실천된 극치의 상황에 있게 한다.


시는 고대의 문학이며 문학은 오직 시 뿐이었다. 공자는 시가 사람의 마음을 맑게 한다고 믿었다. 그는 시경 3백편의 내용을 한 마디로 말하면 “마음에 간사한 생각을 없게 한다”는 것이라고 하였다.(위정 2) 그리고 시경의 “관저”(關雎)에 실린 시는 즐겁되 결코 음탕함에 흐르지 않으며, 슬프되 감상(感傷)에 흐르지 않는다고 하였다.(팔일 20) 이렇듯 시는 인간의 마음을 순화시키고 인의 정조가 순수하게 발휘될 수 있도록 하는 정서를 제공해 준다.


80. 孟子의 敎育思想


1. 儒家와 墨家와 道家




한비자(韓非子)의 기록에 의하면 공자가 죽은 후에 유가는 여덟개의 지파로 나뉘어졌다. 자장(子張), 자사(子思), 안씨(顔氏), 맹씨(孟氏), 칠조씨(漆彫氏), 중량씨(仲良氏), 순경(筍卿), 악정(樂正) 등이 그것이다. 이 8대 유가의 지파는 동시에 생겨난 것이 아니고 공자가 죽은 후 약 200여년에 걸쳐 형성된 것이다. 그러나 공자의 제자인 (曾子), 자하(子夏), 자유(子游), 자공(子貢), 민자(閔子) 등이 이 8대 유가에 들지 않고 있어서 후세의 사람들이 신빙성이 있는 것으로 보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다. 안씨, 자장, 칠조씨의 경우에만 공자의 직접 제자이고, 다른 학파들은 3대 내지 5대의 인물들이다. 그리하여 공자의 유가는 그 이상의 학파를 두고 있을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그러한 유가의 전통이 이어지는 속에서 맹자는 공자의 손자인 자사의 문하생으로부터 배워 공자의 사상을 발전시킨 사상가이다. 공자가 (至聖)이라면 맹자(孟子)는 아성(亞聖)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유가의 전통에서는 공자 다음가는 스승으로 받들어지고 있다. 맹자는 공자의 인의의 도를 발전시켜 성선설과 왕도정치론을 편 사상가로서 당시대의 다른 학파인 묵가와 도가를 물리치고 유가적 정통성을 확립하였다.


전국시대의 사상계에는 유가 이외에 여러 학파가 있었으나, 그 세력으로 보면 묵가(墨家)와 도가(道家)가 그 대표적인 것이었고 후에 법가도 점차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그러나 묵자(墨子)--본명은 묵적(墨翟)--가 어느 시대의 사람이었느냐를 두고 설이 분분하다. 어떤 사람은 공자와 같은 시대의 사람이었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공자보다 훨씬 후의 사람이었다고도 하나, 대체로 기원전 470년대에서 380년대에 살았을 것으로 본다. 묵가의 사상은 전쟁을 반대하고 도가처럼 개인주의에 빠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유가의 사상과 다소 유사성도 있기는 하지만 많은 점에서 공자의 사상에 대하여 비판적 태도를 보였다. 그리고 도가의 근원인 은둔 사상가 양주(楊朱)도 묵자가 활동하던 시기에 생존하였을 것으로 본다. 후에 도가는 노자(老子)와 장자(莊子)에 의해서 크게 발전되어 유가와 묵가와 더불어 3대 사조의 하나로서 영향력을 미쳤다. 노자는 종래에 공자보다 앞섰던 시대의 사람으로 알려졌고 또한 중국 역사상 최초의 사상가로 인정되어 왔으나, 최근에는 노자를 공자보다 휠씬 뒤에 태어난 인물로 추정되고 있다. 장자는 맹자와 동시대의 사람이다.


묵자도 유가의 학업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유가의 예가 번거러움을 비판하였다. 묵자는 특히 장례식을 거창하게 치르는 것은 재산을 없애고 백성을 가난하게 만드는 것이며, 오래토록 상복을 입게 하는 것은 산 사람을 괴롭히고 일을 방해하는 것이라고 하여 유가를 공격하였다. 그는 유가와는 달리 귀신의 존재를 믿는 명귀론자(明鬼論者)로서 종교적 정열을 가진 사람이나, 그러면서도 공리주의적 사고를 하였으며 사회의 개혁에 앞장선 사람이었다. 공자는 초기 주(周) 나라 때의 예악과 문물을 동경하였으나, 묵자는 전통적 제도와 관행에 반대하였다. 묵자는 공자가 주의 문, 무, 주공을 이상적인 성인으로 존숭하여 그 도를 퍼뜨린다고 주장한 것에 대하여 그보다 더욱 옛날의, 따라서 더욱 유덕한 하(夏)의 우왕(禹王)의 가르침에 따라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에 의하면, 우왕은 근검역행하며 민중의 모범이 되고 황하의 대홍수를 수습하여 세상을 구제한 군주이므로 정치가는 모름지기 이를 본받아 절약하고 장례식을 간단히 하며 음악 등 무용한 오락을 폐지하고 타인을 위해서는 몸이 가루가 되도록 봉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묵자는 유가가 주장하는 인(仁)은 자기 주위의 사람을 후대하고 멀어짐에 따라서 박하게 대우하므로 덕이 불충분하다고 하였다. 오히려 자타를 구별치 않고 “겸애하는 것”이 최고의 이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묵자의 사상에서 가장 기본적인 내용은 바로 이 “겸애설”(兼愛說)과 그의 독특한 논리적 방법인 “삼표법”(三表法)이다.


사람들의 관계와 태도를 그는 “겸”(兼)과 “별”(別)의 두 개념을 사용하여 구별하였다. “겸”은 사람을 사랑하고 이롭게 하는 것을 나타내고, “별”은 사람을 구별하여 미워하고 해되게 하는 것을 나타낸다. 묵가 사상의 요지는 겸한 가운데서 별을 교화시켜 서로 사랑하고 서로 이롭게 함으로써 서로 미워하고 빼았으려는 마음을 바꾸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이렇게 말하였다. “사람들이 남의 방을 자기 방처럼 생각하면 누가 엿보겠는가? 사람들이 남의 몸을 자기 몸처럼 여기면 누가 훔치겠으며 사람들이 남의 집을 내집처럼 여기면 누가 혼란하게 하고 사람들이 남의 나라를 내 나라처럼 여기면 누가 공격하겠는가”(겸애편 상2)


삼표법은 시비와 진위를 판단하는 세 가지의 기준을 말한다. 그것은 근본(本)과 근거(原)와 실용(用)을 뜻한다.(비명편 상 1) 이 말은 위로는 옛 성왕의 사적(事蹟)에 근본을 두고, 아래로는 서민들이 보고 들은 바에 근거를 구하며, 그것으로써 나라와 백성의 이익에 합치되는가를 살펴야 한다는 것이다. 제1표(本)와 관련하여 묵자가 유가를 비판한 것을 들면 이런 것이다. “유가들이 말하기를, 군자는 반드시 옛말을 쓰고, 옛옷을 입은 다음에 인을 이룬다고 하였으나, 생각해 보면 소위 옛 말과 옛 옷은 그 당시에는 새것이었는데 그 옛 사람들이 새 말을 하고 새 옷을 입었더라면 군자가 아니겠는가?” (비유편) 묵자는 복고적 사고를 반대하였으나, 옛 성왕의 행적을 논증의 근본으로 삼은 것은 그 본래의 뜻을 알아야 한다는 것을 지적하기 위한 것이었다. 제2표(原)의 의미는 “천하에 귀신이 있느냐 없느냐를 판단하는 길은 반드시 여러 사람들의 이목을 통한 실지에 의하여 있고 없고의 표준으로 삼아야 한다”(명귀)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실증성을 중시하는 경향을 말한다. 그리고 제3표(用)는 그 음악의 실용성을 거부하는 말에서 단적으로 나타난다. 그에 의하면, 음악은 첫째로 돈과 재물을 소비하고, 둘째로 백성의 빈곤을 구할 수 없고, 세째로 나라를 보호할 수 없고, 네째로 사람들에게 사치스러운 습관을 가지게 한다.


묵가의 영향력은 한 때 공자의 유가에 비길 만한 것이었다. 묵가가 유가를 비판하였으나 사상적 노선에 있어서 정반대되는 것은 유가라기보다는 오히려 도가(道家)였다. 도가도 묵가와 마찬가지로 당시의 난세에 대한 대응적 사상이었으나, 묵가는 적극적 대응이었다면 도가는 소극적 대응이었다. 「열자」(列子)의 “양주편”에 이런 기록이 있다. “옛날 사람은 털 오라기 하나를 뽑아 천하를 이롭게 할 수 있다고 해도 결코 하지 않았고, 온 천하를 맡긴다고 해도 받지 않았다. 모든 사람이 털 한 오라기를 뽑지 않고 또 사람마다 천하를 이롭게 하려 하지 않는다면 천하는 안정되리라.”(열자: 양주--풍우란, 91) 이러한 도가적 태도는 공자 시대의 은자(隱者)들에게서 볼 수 있다. 은자란 난세를 피하여 숨어서 지내는 사람을 뜻한다. 은자들은 공자가 난세를 구하려고 쓸데 없이 애쓰는 사람이라고 하여 조소를 하였다.(논어 미자 5,6) 도가는 바로 이러한 은자들에게서 유래하였다고 여겨지고 있다.


노자(老子)에게서도 양주의 개인주의적 은둔사상과 유사한 특징을 발견할 수 있다. 노자는 “제몸을 천하같이 귀중하게 여기는 사람에게 천하를 줄 수 있고, 제몸을 천하같이 아끼는 사람에게 천하를 맡길 수 있다”(노자 13)고 하였다. 그러나 노자의 사상은 개인주의에만 머물었다기보다는 우주 안에 있는 만물의 근원이 되는 도를 밝히는 것이었다. 그에 의하면, 모든 만물은 도에서 생겨났다. 그러나 그의 도는 “무위”(無爲)의 도, 즉 아무 것도 하지 않는 도이다. 그러나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도 하지 않는 것이 없는 것이 도이다.(37장) 그것은, “천지만물은 본래 유(有)에서 생기고 유는 무(無)에서 생긴다”(42장)는 말과 “도는 하나를 낳고 하나는 둘을 낳으며 둘은 셋을 낳고 셋은 만물을 낳는다”(42장)는 말이 시사하듯이 무와 무위의 개념은 일종의 파라독스를 표현하는 개념이다. 노자의 학문은 개인주의의 주장으로서 양주의 계열에 속한다고 할 수 있으나 쾌락주의가는 아니다. 그는 쾌락을 초월해야 한다고 하였다. 그러나 유가가 존중하는 예제(禮制)도 또한 초월해야 할 대상이며 정신의 자유를 획득하는 것을 이상으로 삼았다. 이러한 노자의 사상과 유사하게 장자(莊子)는 “무용”(無用)의 도를 내세워 단순한 현실적 은둔이 아니라, 오히려 무용의 쓰임을 들면서 무용은 결과적으로 크게 쓰임, 즉 대용(大用)을 뜻한다고 하였다. 가지와 잎이 무성한 큰 나무를 언급하면서 나뭇꾼이 그 나무를 베어가지 않는 것은 쓸모가 없기 때문이다. 쓸모가 없기 때문에 그 나무는 크게 자랄 수 있었고 무성할 수 있었다는 것, “무용”은 이런 의미에서 곧 “대용”(大用)이다.


맹자는 도가와 묵가를 이단으로 규정하고 이를 물리치는 일을 유가로서의 사명으로 생각하였다. 맹자는 당시에 양주와 묵적(墨翟)의 사상이 천하에 팽배해 있다는 사실에 긴장을 느꼈고, 천하의 의견이 양주와 묵적으로 기우는 현상을 두고 크게 우려하였다. 공자가 주 나라의 문왕, 무왕, 주공의 사상을 잇는 것에 대하여 묵적은 그 이전인 하(夏) 나라 우왕(禹王)의 사상을 잇는 것으로 대응하였다. 그러나 맹자는 다시 그보다 더 앞서 요(堯)와 순(舜)의 두 임금을 들어 자신의 유교는 요순의 도이며, 요, 순, 우, 탕, 문, 무, 주공, 공자의 법통을 잇는다고 가르쳤다. 맹자는 말하기를 “사악한 설이 떠돌면서 사람들을 속이고 인의의 도를 가로 막고 있다”고 하였다.(등문공하 9) 이 말은 도가와 묵가의 사상이 횡행함을 언급한 것이다. “양주는 자기만을 위하므로 이는 임금이 없음을 뜻하는 것이요, 묵적은 겸애를 주장하므로 이는 아비가 없음을 뜻하는 것이다.”


한편으로 양주의 “위아설”(爲我說)은 자기의 이익을 구하고, 다른 한편으로 묵적의 “겸애설”(兼愛說)은 남의 이익을 구하고 있으므로 서로 대립되는 생각을 하고 있다. 이러한 양극적 사고에 대하여 맹자는 공자가 제창한 충서(忠恕)의 사상에 터하여 중도적이면서도 통합적인 원리를 내세우고자 하였다. 자기 가족에 대한 사랑이 그것으로 끝나면 위아적인 이기주의로 남지만 그 사랑으로 남의 가족에로 넓히면 이타주의적 태도를 포괄하는 것이 된다. 맹자는 인간이 지닌 인(仁)의 단서, 즉 “측은지심”(惻隱之心)이 있으므로 남의 고통을 그대로 넘길 수 없다고 생각하였다. 그리고 그는 자기의 부모와 남의 부모를 동등하게 여기는 것은 바로 자기 부모의 존재를 부인하고 자연의 애정을 손상시키는 결과를 가져온다고 보았다. 본래 인간은 인의(仁義)를 소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동류라고 할 수 있으나, 사물은 모두 똑 같은 것이 아니며 자기 부모를 더 사랑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인간의 정이다. 그러므로 자기 부모를 먼저 생각하고 측은지심의 단서를 계발하면 자연히 남을 사랑하게 된다는 것이다.


맹자는 스스로 말하기를 역사상 여러 성인들이 있지만 자기가 바라는 것은 오직 공자를 배우는 것이라고 하였다.(공손추상 호연 13) 공자는 맹자의 당시에 성인으로 지칭되고 있던 백이(伯夷), 이윤(伊尹), 유하혜(柳下惠) 등의 성품을 전체로서 집대성한 성인이다. 백이는 성인 가운데서도 청념하고 성품이 곧은 성인(聖之淸者)이며, 이윤은 누군들 임금이 아니며 누군들 백성이 아닌가라고 하면서 백성들을 지도할 사명감에 넘치는 성인(聖之使者)이며, 유하혜는 더러운 임금을 섬기는 일도 부끄럽게 여기지 않을 정도로 화해와 조화의 기질을 가진 성인(聖之和者)이다. 이들에 비하면 공자는 시의에 맞게 시종을 조리정연하게 전개하는 성인(聖之時者)이다. 그는 공자의 성품과 능력을 “집대성”으로 표현하고 음악으로 비유해서 설명하였다.




한편으로 종(鐘)의 소리를 내고 또한 편으로 경(磬)의 울려 조화를 이룬다. 종의 소리는 조리있는 시작을 뜻하고 경의 울림은 조리 있는 끝맺음을 나타낸다. 조리있게 시작하는 것은 지혜(智慧)에 속하고 조리있게 끝내는 것은 성덕(聖德)에 속한다. 다시 활쏘는 데에 비유하면, 지혜는 기교이고 성덕은 기력이다. . 공자는 지(知)와 성(聖)을 겸하여 집대성한 것인다.(만장하 백이 5-6)




맹자는 사람들이 세상에 살기 시작한 이래로 공자같은 성인은 없다고 생각하였다. (공손추상 호연 14) 그러나 공자는 인(仁)의 도를 편데 비하여 맹자의 인과 의(義)의 두 개념으로 자신의 사상을 전개하였다. 인과 의의 차이와 관계를 맹자는 인심(人心)과 인로(人路), 혹은 안택(安宅)과 정로(正路)로 표현하였다. (이루상 자폭1) 인을 “인심”이라고 한 것은 그것이 인간의 본연의 마음이라는 뜻이며, (나중에 논하겠지만) 맹자는 인간의 마음은 본래 착한 성(性)을 소유하고 있다고 하였다. 그리고 인을 “안택”이라고 한 것은 “편히 살 수 있는 집”에 비유될 수 있다는 것으로서 인간의 마음이 본래 거하여야 할 본연임을 뜻한다. 그리고 의를 “인로” 혹은 “정로”라고 한 것은 인간이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라는 것을 뜻한다.


도덕성을 논할 때 인간이 추구하는 목적을 일차적으로 중시하여 “행복”, “덕성” 등의 적극적 가치에서 궁극적 기준을 구하려는 목적론적 윤리설과, 인간이 지켜야 할 행위의 격률을 일차적으로 중시하여 “법칙”, “규칙” 등의 소극적 가치에서 궁극적 기준을 구하려는 법칙론적 윤리설이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윤리설은 전자의, 칸트의 윤리설은 후자의 대표적인 것이다. 이러한 구분을 적용하면 공자와 맹자의 “인”은 목적론적 개념이라면 “의”는 법칙론적 개념이라고 할 수 있으며, 공맹(孔孟)은 인을 일차적 개념이라고 본다는 점에서 목적론적 경향을 취하고 있는 셈이다. 장지윤은 “인”은 보편적 원리이며 “의”는 개별적 실천의 원리라고 하였으나(장기윤 118), 보편성과 개별성, 혹은 지행(知行)의 논리를 두 개념의 관계에 적용하지는 어렵다. 오히려 인은 인간의 감정, 의지, 태도 등을 포함하는 마음과 그 성품을 전체적으로 나타내는 개념이라면, 의는 그 마음이 작용하는 질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둘은 분리될 수 없는 것이다. 맹자는 의(義)의 개념과 공자가 중시한 예(禮)의 개념도 그 관계를 말하여 “의는 길이요 예는 문이다”(만장하 불견7)라고 하였다. 사람은 반드시 문을 통하여 길을 따라야 한다. 아무리 임금이 불렀다고 해도 의에 어긋나면 그 예를 지키지 않을 수 있으며, 아무리 세련된 예를 갖추었다고 해도 그것이 의에 어긋나고 인이 실린 것이 아니라면 진정한 의미의 예가 아니다.


2. 성선설적 교육관


사람의 본성이 본래 선한 것인가 아니면 악한 것이가에 대한 대답의 향방은 교육의 목적과 성격을 밝히는 데 중요한 결정요인이 된다. 만약에 인간이 본래 선하다면 그 선성을 보존하거나 회복하는 것이 교육일 것이며, 만약에 악하다면 그 악성을 계속적으로 고쳐서 다시 악성으로 되돌아 가지 않도록 하는 것이 교육일 것이다. 맹자의 시대에 이 문제를 두고 상반된 견해가 있었다. 맹자는 인간의 본성이 선하다고 주장하였고, 같은 유가의 전통 속에 있던 순자(荀子)는 악하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성선설과 성악설의 이원론적 대립과는 달리 고자(告子)는 인간의 본성이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다고 주장하였다.


맹자는 “우산(牛山)의 비유”를 들어 사람의 본래 성품은 착한 것이었으나 혼탁한 세상의 영향으로 인하여 흐려져서 악하게 되기도 한다는 것을 이렇게 설명하였다.




우산의 수목은 본래 울창하게 우거져 아름다웠다. 그러나 그 산림이 큰 나라의 국도에 인접해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도끼로 마구 베어내었다. 그러니 어찌 본래의 아름다움을 그대로 간직할 수 있었겠는가? 그렇지만 잘린 나무의 뿌리는 밤낮으로 쉬면서 다시 자라고 또한 비와 이슬이 내려 적셔 주므로 새싹이 돋아나지 않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소나 양들이 와서 풀을 뜯어 먹었으므로 저렇게 뻔질뻔질한 헐벗은 산이 되고 말았다. 오늘 사람들은 그 뻔질뻔질한 산을 보고 원래부터 나무가 없었으리라고 생각하겠지만, 어찌 저렇게 헐벗은 모습이 산의 본래 모습이겠는가?


사람의 본성에 어찌 인의(仁義)의 마음이 없었겠는가? 사람들이 본래의 양심을 버리는 것은 마치 도끼로 나무를 잘라 버리는 것과 같다. 매일 잘라 버리니 어찌 아름다울 수가 있겠는가? 그러나 사람의 양심도 밤낮으로 자라고자 하며, 새벽의 청명한 기운을 받기도 한다. 그런데도 즐겨 추구하는 바와 싫어서 배척하는 바가 사람답지 못하고 낮에 일어나는 혼잡스런 일들 때문에 다시 교란되어 사라져 버린다. 그러한 일이 반복되면 결국에 가서는 밤의 기운도 없어지고, 밤의 기운이 없어지만 인간이 아닌 금수(禽獸)와 가까운 상태에 빠진다. 사람들은 결과적으로 금수가 된 꼴 만을 보고 본래부터 착한 재성(才性)이 없었던 것과 같이 생각하겠지만 어찌 그런 것이 사람의 본성이겠는가? (고자상 우산장 1-2)




그러나 맹자가 성선설을 견지하려면 적어도 다음과 같은 세 가지의 의문을 해결할 수 있어야 한다. 첫째로, 인간의 마음이나 행동이 선하거나 악하다고 판단하는 기준이 되는 인(仁), 의(義) 등의 도덕적 개념은 원천적으로 인간 혹은 인간의 마음에 외재하는 것이 아니라 내재(內在)하는 것이어야 한다. 과연 그런가? 둘째로, 인과 의가 인간의 성품에 내재하는 것이라고 하더라도 인간은 본래 똑 같은 심성을 소유한다고 할 수 있겠는가? 세째로, 인간은 누구나 그 본성이 선하다면 그것은 그야말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우리는 어떤 근거에 의해서 그렇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이러한 질문과 관련하여 맹자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첫째의 의문은 이것이다. 만약에 인과 의가 인성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관습에서 온 것이라면, 인간의 성품이 본래 선하다거나 악하다거나 하는 판단이 별로 의미가 없다. 왜냐하면, 선악의 판단은 인간의 심성에 관한 것이 아니라, 사회의 관습 혹은 제도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다. 즉, 선악의 문제는 원천적으로 인간의 마음에 적용되는 것이거야 하기 때문이다. 과연 그러한 도덕적 기준은 내재적인 것인가? 맹자와 이 문제를 두고 논쟁을 벌린 고자는 인의 경우에는 내재적이라고 할 수 있으나 의의 경우에는 외재적인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두 가지의 예를 들었다. 첫째, 음식을 먹는 것과 이성을 좋아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으로서 내재적인 것이다. 그러나 연장자를 존경하는 것은 연장자라는 이유 때문에 존경하는 것이므로, 그것은 마치 어떤 물체가 흰색인 경우에 그것을 희다고 하는 것은 마음 속에 희다고 하려는 생각이 있기 때문에가 아니라 그 물체가 희기 때문에 희다고 하는 것과 같다. 따라서 인은 내재적인 것이며 의는 외재적인 것이다. 둘째, 자기 동생은 사랑하지만 먼 나라 사람의 동생을 사랑하지 않는 것은 인이 마음 속에 있기 때문이며, 남의 나라 영장자도 내 나라의 연장자처럼 모시는 것은 연장자라는 객관적인 사실로 인한 것이므로 의는 마음의 밖에 있는 것이다.(고자상 식생장) 이러한 고자의 논변에 대하여 맹자는 이렇게 반문하였다. 흰 말과 흰 사람의 경우에 희다는 사실은 같을 수 있으나, 그것으로 인하여 말과 사람이 같다고 할 수 있겠으며, 연장자를 존경하는 것을 의라고 하지 연장자 그 자체를 의라고 할 수 있겠는가? 흰 것을 희다고 하는 것과 연장자를 존경하는 것은 다른 종류의 일이며, 존경하는 마음이 없이 존경의 대상만을 두고 의를 말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둘째의 의문은 이것이다. 어떤 사람은 선하고 어떤 사람은 악하다고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어떤 사람의 마음은 본래 인과 의의 설정을 가지고 태어난다고 할 수 있지만, 모든 사람들이 그렇다고 하기는 어렵다는 주장이 있을 수 있다. 그래서 본래 성인은 성인으로 태어나고 범인은 범인으로 태어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맹자는 이렇게 생각하였다. 즉, 「시경」(詩經)에서 말하기를 “하늘이 모든 사람들을 낳고 만물에는 법칙이 있게 하였다. 이에 사람들은 그 법칙을 지키고 아름다운 덕을 좋아하게 되었다”고 하였듯이, 사람들은 본래 인간에게 주어진 법칙을 지키고 덕을 행하게 되어 있다.(고자 상 공도장) 만물에 주어진 법칙에 따라서 같은 종류의 사물은 비슷하게 마련인데 어찌 오직 사람만이 그렇지 않다고 할 수 있겠는가? 성인이나 나나 같은 종류의 사람이다.(부세장 3) 성인은 이(理)와 의(義)로 충만하므로 성인의 본성은 선하다. 성인과 나는 동류이므로 나는 동류에 속하므로 나의 성도 선할 수밖에 없다. 맹자는 지극한 마음으로 수양하면 “누구나 요(堯) 임금과 순(舜) 임금이 될 수 있다”(고자하 조교)고 하였다.


세째의 의문은 이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그 본성이 선하다면 그 선성을 나타내어 주는 증거는 무엇인가? 고자는 사람의 본성이란 마치 버드나무의 가지나 물과 같이 이리저리 변화될 수 있는 것이지 선하거나 악하거나로 결정되어 있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하였다.(고자 상 기류장, 湍水章) 그러나 맹자는 어렇게 대응하였다. 즉, 버드나무의 가지를 사용하여 무엇인가를 만든다면 우리는 그 본성을 어기고 억지로 만드는 것이 아니며, 물이 이리저리 좌우로 흐를 수 있으나 항상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법이다. 물로, 이러한 일정한 본성은 선일 수도 있고 악일 수도 있다. 그러나 맹자는 인간의 본성을 선하다고 보았다. 그 근거는 무엇인가? 그 대답이 바로 맹자의 유명한 “사단설”(四端說)이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측은함을 느끼는 마음(惻隱之心)이 있고, 수치스러움을 느끼는 마음(羞惡之心)이 있으며, 공경하는 마음(恭敬之心)이 있고, 시비를 가리는 마음(是非之心)이 있다.(고자상 공도) 측은하게 여기는 마음이 인(仁)의 단서이고, 수치스러움을 느끼는 마음이 바로 의(義)의 단서이며, 공경하는 바음이 바로 예(禮)의 단서이고, 시비를 가리는 마음이 바로 지(知)의 단서이다. 인의예지는 밖으로부터 와서 나를 교화시키는 것이 아니고 나에게 본래 있는 것이나 단지 우리는 마음에 내재하는 바를 평소에 생각하지 않고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스스로 찾아서 닦으면 그것을 얻지만 스스로 버리면 잃을 수밖에 없다. 스스로 찾는 사람과 스스로 버리는 사람의 차이는 성인과 법인의 차이처럼 크게 벌어질 수 있다.(고자상 공도장)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의 차이는 본래의 선성을 확충하는 양성(養性)과 그것을 잃어 버리는 실성(失性)의 차이이다. 이러한 인성관에 의하면, 교육의 목적과 방법은 선단(善端)을 확충하는 것과 잃어버린 선단을 회복하는 것으로 함축될 수 있다. 사단은 인간의 인의예지의 마음을 소유하고 있다는 단서라면, 확충하고 회복하는 것은 무엇에 관한 것인가? 즉, 선한 성품의 실체는 무엇인가? 마음은 본래 인의예지의 덕을 앟고 그것을 실천할 수 있는 재성과 능력을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가정된다. 즉, 그것은 양심(良心)이다. 양심은 양지(良知)와 양능(良能)을 포함한다. 배우지 않고도 할 수 있는 것은 양능이며, 깊이 생각하지 않아도 아는 것은 양지이다.(진심상 양능장) [이러한 “양지양능설”은 오늘의 서양 윤리학들이 양심(conscience)의 개념을 도덕적 판단의 인지적 요소와 도덕적 실천의 동기적 요소로 분석하여 설명하는 것과 매우 유사한 개념적 구조를 지니고 있다.]


사람이 본래의 성정(性情)을 따르면 선할 수 밖에 없다. 물론 사람들이 착하지 못한 일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본래 악해서가 아니라, 본래의 재성를 다하지 못했기 대문이다.(고자 상 공도) 그러면 우리는 무엇이 그 재성의 발휘를 가로 막고 있는가를 물을 수 있다. 맹자는 대체로 세 가지를 들고 있다.


첫째는 환경의 영향이다. 풍년이 들어 넉넉한 해에는 젊은이들이 거의 선량하고 흉년에는 포악한데, 그것은 사람의 재성이 다르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의 마음을 유인케 한 원인이 그렇게 만든 것이다. 마치 같은 땅에 같은 시기에 보리를 심어두면 하지(夏至) 때에 이르러 또 같은 결실을 하지 않는 것은 토질이 다르거나 기후가 다르거나 아니면 사람의 손길이 같지 않아서 그런 것과 마찬가지이다.(고자 상 부세장) 맹자는 인간의 성품의 변화에 미치는 환경의 영향을 여러 곳에서 언급하고 있다.


둘째는 자포자기의 태도이다. 비록 인간에게 환경의 영향이 크다고 하여도, 순 임금과 같이 깊은 산속에서 야인들과 별로 다를 바가 없이 살았으나 착한 말을 듣고 착한 행동을 보면 그대로 실천에 옮기는 노력이 있으며 성인이 되기도 한다.(진심 상 수지장) “우산의 비유”에서 설명하였듯이 낮의 거칠고 문란한 행동과 밤의 안식을 통하여 순화하고 아침의 맑은 기운을 입어 사람은 다시 새롭게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문제는 자포자기하는 데 있다. 맹자는 입만 열면 예의를 비난하는 것을 일컬어 “자포”(自暴)라고 하고 스스로 인에 거하고 의를 지키지 못한다고 여기는 것을 “자기”(自棄)라고 하였다. 이러한 자포하는 사람과는 말을 같이 할 수 없고, 자기하는 사람과는 일을 같이 할 수 없다고 하였다.(이루상 자포장)


세째는 작은 것이 큰 것을 해치는 것이다. 맹자는 이렇게 말하였다. “사람의 몸에는 귀한 부분과 천한 부분, 큰 부분과 작은 부분이 있다. 작은 것으로써 큰 것을 해쳐서도 안되고 천한 것으로써 귀한 것을 해쳐서도 안된다. 작은 것을 키우면 소인이 되고 큰 것을 키우면 대인이 된다.”(고자 상 인지장) 그것을 어떻게 할 수 있는가 맹자는 마음의 관능(官能)을 육체의 관능보다 앞세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였다.(진심상 鈞是장) 마음은 큰 몸(大體)이고 육체는 작은 몸(小體)인데, 마음을 따르면 대인이 되고 육체를 따르면 소인이 된다. 왜냐하면, 육체의 감각기관은 생각할 힘이 없고 물질에 가리지만 마음은 생각하는 힘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맹자의 교육은 바로 선성의 보존, 양육, 회복에 관한 것이다. 맹자는 군자가 사람을 교육하는 방법에는 다섯 가지가 있다고 하였다.(진심상 군자장) 첫째, 제 때에 내리는 비가 초목을 저절로 자라게 하는 것과 같이 하는 방법이다. 이러한 방법은 인간 자체 속에 내재되어 있는 자연적 법칙에 따라서 성장할 수 있도록 적절한 환경을 조성해 주는 것이 교육의 가장 중심되는 원리로 생각하는 루소(Rousseau) 등의 자연주의적 교육관에서 말하는 방법과 유사하다. 둘째, 사람이 본래 지니고 있는 덕성을 실현시킬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이다. 이 방법은 성선설적 인간관에서 일관되게 도출될 수 있는 방법이다. 덕성은 인간의 밖에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안에서부터 계발되는 것이다. 세째, 각자가 지닌 재능과 소질을 충분히 발달시킬 수 있도록 해 주는 방법이다. 이 방법은 잠재력과 가능성을 최대한으로 계발시키는 것을 의미하는 소위 “자아실현”(自我實現)이라고 표현하는 바 그것이다. 네째, 의심나는 것을 묻게 하여 깨닫게 하는 방법이다. 이 방법은 탐구학습의 원리를 말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다섯째, 혼자서 덕을 잘 닦아 나가도록 해 주는 것이다. 이 방법은 인간의 자율적 성장의 원리를 나타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맹자는 이러한 다섯 가지의 방법에 대하여 체계적인 이론적 정당화를 한 것은 아니지만, 오늘날 아동중심교육을 내세우는 진보적 교육이론에서 주장하는 것과 그 정신과 원리를 같이 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다.


자연적 성장을 기한다고 하여 그냥 내버려 두는 것은 마치 논밭에 김매기를 하지 않는 것과 같다. 그러나 빨리 자라게 하기 위하여 어느 송(宋) 나라의 농부가 모자리의 모들을 뽑아 올린 것과 같이 하면 모들은 말라 죽고 만다.(공손추 상, 호연장) 그러므로 교육에 있어서 중요한 사람에게 인위적인 통제나 제재를 가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적절한 환경을 제공하는 것이다. 맹자는 당시의 송 나라 정치를 담당해 온 대불승(戴不勝)이라는 사람이 당대의 선량한 선비인 설거주(薛居州)를 등용하여 왕의 측근에 있게 함으로써 왕의 덕성을 높이고자 한 사실을 두고, 왕의 측근에 우글거리는 악한 무리들이 함께 있을 경우를 언급하면서 이렇게 평하였다. 초(超) 나라의 대부가 그 아들로 하여금 제(齊) 나라의 말을 배우도록 하기 위하여 제 나라의 사람을 시켜서 그를 가르치게 한다고 해서 제대로 가르치겠는가? 제 나라 사람 혼자서 그를 가르치고 주변에 초 나라 사람들이 욱실거린다고 하면, 글 때려서 가르친다고 해도 제 나라 말을 제대로 하겠는가? 차라리 제 나라의 거리에 내버려 두면 매일 같이 그를 때려서 초 나라 말을 하게 하더라도 오히려 제 나라의 말을 할 것이다. 이처럼 맹자는 교육에 있어서 환경의 영향은 절대적이라고 생각하였다. 이러한 그의 생각은 자신이 교육받은 환경, 즉 그의 어머니가 세번이나 자식의 교육을 위하여 환경을 선택하여 옮겨 다닌 것(孟母 三遷之敎)에서 체득된 것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환경 그 자체가 군자를 만든다는 보장은 없다. 군자로서 성장할 수 있도록 하는 데는 적어도 두 가지의 양성(養性)의 원리가 따라야 한다. 하나는 “규구(規矩)의 개념”이고 다른 하나는 “호연지기(浩然之氣)의 개념”이다. 규구는 교육의 방법적 과정에서 적용되어야 할 원리라면 호연지기는 개체 인간을 위한 교육의 목표이다.


맹자의 교육방법은 어떤 점에서 상당히 방임적인 것 같이 보이기도 하지만 인간을 군자로서 성장하게 하기 위해서는 그 성장을 이끌어 가는 규구(規矩), 즉 표준이 있어야 한다. 선성을 보존하고 자라게 하고 그것이 혼탁해졌을 때 회복하는 노력, 그것은 막연한 수양이나 극기를 통해서가 아니라, 마치 훌륭한 목수가 도제를 가르칠 때 규구준승(規矩準繩), 즉 콤퍼스, 곡척, 수준기, 먹줄 등을 사용하면서 가르치듯이 행위의 표준에 따라서 배우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진심상 공손장) 그 표준을 어디에서 구할 것인가? 그것은 옛날 요순(堯舜)의 두 임금, 그리고 삼대의 왕들, 하(夏)의 우왕(禹王), 은(殷)의 탕왕(湯王), 주(周)의 문왕(文王)과 무왕(武王) 등의 성왕(聖王)들, 또한 백대의 스승이라고 할 수 있는 백이(伯夷)와 유하혜(柳下惠) 등의 성현들의 행적과 교훈에서 찾을 수 있다. 맹자는 “임금이나 신하나 모두 요 임금과 순 임금을 본받으면 된다.”(이루상, 규구장)고 하였다. 순이 요 임금을 섬기던 극진한 태도와 도리, 그리고 순과 요의 두 임금이 백성을 위하던 정성과 태도, 그것이 바로 인간 윤리의 표준이다. 군자를 기르는 사람은 배우는 사람에게 깨우쳐 주고 밝혀 주는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이 표준에 따라서 힘있게 나아갈 수 있도록 이끌어 주기만 해야 한다. 그것은 군자교육의 궁극적 목표라고 할 수 있는 호연지기를 기르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호연지기는 인간의 선성이 만개(滿開)한 경지를 의미한다. 이러한 기는 지극히 크고 굳센 것이므로 곧게 가꾸고 기르면 천지의 사이에 가득찬다. 그러므로 의(義)와 도(道)가 합친 상태에서라야 제대로 함양된다.(공손추 상 호연장) 호연지기가 크게 무르익은 경지의 사람을 “대장부”(大丈夫)라고 한다. 대장부는 “천하의 넓은 보금자리인 인에 살고 천하의 올바른 자리인 예를 지키고, 또한 천하의 대도인 의를 행한다. 뜻을 얻어 도를 행할 수 있는 자리에 오르면 백성들과 함께 그 도를 따르게 하고, 뜻을 얻지 못하여 재야에 머물면 홀로 선을 행한다. 부귀에 의해 마음이 타락되는 일이 없고 빈천으로 인해 절조를 굽히지 않으며, 어떤 위세나 무력 앞에서도 굴하지 않는다.”(등문공 하 경춘장) 호연지기는 인간이 자기의 본성을 충분히 계발시킨 것일 뿐이므로 그것은 결코 한갖 이상적인 인간의 모습이 아니라 누구나 실현할 수 것이다.


3. 귀족주의적 왕도 정치


맹자는 “백성이 가장 귀하고 사직(社稷)은 그 다음이며 임금은 가장 가볍다”고 하였다. 그리고 “백성들(丘民)의 민심을 얻어야 천자(天子)가 될 수 있고 천자의 신임을 얻어야 제후(諸侯)가 될 수 있으며 제후의 신임을 얻어야 대부(大夫)가 될 수 있다”고 하였다.(진심 하 귀위장) 이 표현으로 보면 장기윤이 말했듯이 맹자는 민주정치의 가장 중요한 선언을 한 것으로 보인다.(장기윤, 127) 통치권의 행사가 궁극적으로 민중을 위한다는 데 있다고 선언한 것이므로 그야말로 민주주의의 기본적인 조건을 충족시킨 것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국민을 위한 정치” 그 자체만으로 민주정치의 충분한 조건이라고 할 수는 없다. 주권의 근원이 민중에 있지 않으며 주권의 소유가 또한 민중에 있지 않는 한 “백성이 가장 귀하다”고 한 것만으로 완전한 민주정치를 선언한 것이라고 할 수는 결코 없다. 전재정치나 귀족정치의 경우에도 통치권의 도덕적 정당성을 언제나 위민(爲民)의 정신에서 찾고자 한다.


그러나 맹자는 전재적 왕권국가가 이상적인 국가라고 보지는 않았다. 민중은 왕의 절대적 의지를 위하여 살아야 하는 것도 아니고, 자의로 전횡을 행사할 수 있는 지배적 존재도 아니다. 오히려 맹자의 왕은 도덕적 상징으로서, 그리고 도덕적 관리자로서 존재한다. 그리하여 맹자의 이러한 정치를 “왕도정치”(王道政治)라고 하고 “패도정치”(覇道政治)와 구별하였다. 왕도는 인의의 도덕으로써 인정(仁政)을 행하는 것이고 패도는 인정을 가장하여 무력으로써 나라를 다스리는 것이다.(공손추 상 가인장) 패도에 의한 통치는 그 세력을 넓히고 복종을 강요하지만 실제로 민중은 심복(心服)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왕도에 의한 통치는 마치 공자의 70 제자들이 스승에게 진심으로 복종하듯이 덕으로써 복종케 한다. 맹자는 왕도정치의 표본을 옛 성왕들이 천하를 다스리던 것에서 찾고자 하였다.


통치자의 임무는 영토와 인민과 정사(政事)를 지키는 일이라고 하였다.(진심 하 제후장) 이러한 임무는 하늘로부터 받은 것, 즉 천명(天命)이므로 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면 민심(民心)으 배반한 것이 되고 결국 천심(天心)을 잃은 것이 된다. 이러한 상황하에서는 “역성혁명”(易姓革命)도 정당화 된다. 말하자면, 집권자의 정통성이 부정당하고 천명이 바뀐다는 것이다. 은(殷) 나라의 탕왕(湯王)이 하(夏) 나라의 걸왕(桀王)을, 그리고 주(周) 나라의 무왕(武王)이 은 나라의 주왕(紂王)을 토벌한 것도 이러한 역성혁명의 논리에 의해서 정당화된다.


역성 혁명이 정당화되는 경우는 두 가지이다. 하나는 통치자가 천명을 잃었을 때이다. 맹자는 백성을 배반하고 잔적(殘賊)을 일삼는 자는 그가 왕일지라도 이미 왕이라고 할 수 없는 일개 필부(匹夫)에 지나지 않는다. 그는 주 나라의 무왕이 은 나라의 폭군인 주왕을 정벌한 상황을 두고 이렇게 말하였다. 즉, “인도(仁道)를 어기는 자를 적(賊)이라고 하고 의리(義理)를 어기는 자를 잔(殘)이라고 한다. 잔적을 일삼는 자는 일부(一夫)라고 한다. 일부에 불과한 주를 죽였다는 말은 들었어도 임금을 살해했다는 말은 아직 듣지 못하였다.” 다른 하나는 반복해서 간(諫)해도 듣지 않을 경우이다. “나라의 임금에 큰 과오가 있으면 간하고, 그것을 되풀이 하여도 들어주지 않으면 그 지위를 다른 사람으로 바꾸어 버린다.”(만장 하 문경장) 그러나 맹자의 역성혁명론은 국민의 적극적인 권리선언과 같은 것이 아니라 통치자의 도덕성에 대한 긴장을 자극하는 예방적 발언에 불과하다고 보려는 경향이 있다. 은 나라의 건국에 공을 세운 이윤(伊尹)이 왕인 태갑(太甲)을 추방했다기 태갑이 현명함을 되찾자 그를 다시 맞이한 사실이 있다. 이에 대하여 맹자는 이윤과 같은 현명한 판단에 근거한다면 왕을 그렇게 다루는 것을 시인하지만 그렇지 못하면 함부러 허용할 수 없다고 하였다. 그 사실을 두고 맹자도 결국 극악의 상태가 아니라면 역성혁명을 적극적으로 바란 것은 아니라고 해석한다.


천명은 하늘이 준 통치력 혹은 지배력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도덕적 바탕을 의미한다. 다스리는 자와 다스림을 받는 자의 관계는 도덕적 관계이다. 맹자는 이렇게 말하였다. “만약에 임금이 신하를 자기의 손발처럼 여겨서 사람하면 신하도 임금을 자기의 배와 가습처럼 아낄 것이다. 그러나 만약에 임금이 신하를 개와 말 같이 대하고 마구 부리기만 하면 신하도 임금을 평범한 인간으로 대할 것이다. 더욱이 만약 임금이 신하를 초개(草芥)같이 여기고 함부러 짓밟으면 신하도 임금을 도덕이나 원수같이 여기고 증오할 것이다.”(이루하 시신장)


맹자에 있어서 도덕성은 모든 것의 위에 놓인다. 맹자가 언급한 “군자의 삼락”(君子之三樂)에는 왕노릇하는 것이 거기에 들지 못한다. “부모가 모두 생존해 있고 형제들이 모두 무고한 것, 그것이 첫째의 즐거움이다. 우러러 보아 하늘에 부끄러움이 없는 것, 그것이 둘째의 즐거움이다. 천하의 영재들을 얻어서 그들을 교육하는 것, 그것이 세째의 즐거움이다. 군자에게는 이 세 가지 즐거움이 있으나 천하에 왕노릇하는 것만은 거기에 들지 않는다.” (진심 상 삼락장) 군자의 도덕성은 왕위보다도 귀한 것이며, 왕위 그 자체도 민중의 삶의 질과 나라의 정사보다 귀하게 여길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정치란 천명을 실천하는 것이며, 천명은 인간의 마음 속에 하늘이 부여한 성품, 즉 도덕적 성품을 의미하는 것이고, 그것이 실현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왕에 부여된 정치적 임무이기 때문이다. 맹자에게 있어서 하늘은 도덕적인 하늘이다.(풍우란 106) 인간은 하늘을 앎으로써 천민(天民)이 될 수 있다. 하늘을 안다는 것은 “천작”(天爵), 즉 하늘의 벼슬을 얻는 것이다. “인의충신(仁義忠信) 등의 선을 즐겨 실천하고 싫증내지 않는 것은 하늘의 벼슬을 받은 것이오, 공경대부(公卿大夫) 등은 인간이 준 벼슬이다.”(고자 상 천작장) 천작을 얻는 길은 다른 일이 아니라 나에게 본래 갖추어져 있는 만물의 이치를 스스로 통찰해 보고 성실히 행하는 것 이상의 어떤 것도 아니다.(진심상 만물장)


그러면 왕도정치의 실현을 위한 실제적인 정책은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하는가? 맹자는 “항산”(恒産)과 “항심”(恒心)의 원칙을 제시하였다. 일정한 경제적 바탕을 갖추는 것을 “항산”이라고 하고 일정한 정신적 안정을 기하는 것을 “항심”이라고 한다. “항산이 있으면 항심이 있게 마련이지만 항상이 없으면 항심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등문공 상 위국장) 항산을 위해서 필요한 것이 바로 무농(務農), 즉 농사에 전력할 수 있게 하는 것이며, 항심을 위해서 필요한 것이 바로 거학(擧學), 즉 교육을 진흥하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맹자의 “귀족주의”(貴族主義)가 노출된다. 무농이라고 해서 나라의 모든 인민이 농업에 종사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며, 거학이라고 해서 모든 인민이 교육을 받는다는 말이 아이다. 농업에 종사하는 것은 소인(小人) 혹은 야인 (野人)의 일이며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것은 군자 혹은 대인(大人)의 일이다.


“대인”과 “소인”, 혹은 “군자”와 “야인”의 구분은 사회적 계급의 구분을 나타내는 말이지만, 공자는 그 구분을 도덕적 품위의 구분으로 사용하였다. 맹자도 대인과 소인은 큰 몸 즉 마음을 쓰는 사람과 작은 몸 즉 육체를 쓰는 사람으로 구분할 때 그것은 도덕적 품위의 구분이라고 할 수 있다. 누구든지 마음을 쓰서 선성을 계발하면 군자가 될 수 있고 그렇지 못하여 육신의 욕정에만 매이면 소인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맹자는 한 편으로 모든 사람은 선성을 확충하거나 회복하면서 군자가 될 수 있다고 하면서, 동시에 다른 한 편으로 군자가 아닌 소인들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것으로 말하고 있는 셈이다. 마음을 쓰는 사람(勞心者)을 육체적 힘을 쓰는 사람들(勞力者)이 양식을 공급해야 한다는 것은 “천하의 통의(通義)”라고 하였다.(등문공 상 신농장) 이러한 사회적 기능의 분담은 옛 「좌전」(左傳)에 “군자는 마음을 쓰고 소인은 힘을 쓰는 것, 이러한 전통은 옛 임금 때부터 내려 오는 제도이다”라는 말에서 표현되어 있기도 하다. 토지제도상으로도 정전제(井田制) 아래서 노심자 계급을 위한 공전(公田)을 먼저 가꾸고 그것이 끝난 후에야 사전(私田)을 돌보는 것으로 되어 있다.(등문공 상 위국장) 그리고 학교를 세워서 교육을 하는 것도 인륜을 밝히기 위한 것이나 “군자의 삼락”에서 언급되었듯이 천하의 영재를 모아서 가르치는 것이다. 즉, 엘리티즘의 국면을 보여 주고 있다.


이와 같이 노심자가 노력자의 부양을 받을 수 있는 근거는 바로 그의 도덕주의적 논거에 있다. 공손추가 옛 「시경」(詩經)에 “일하지 않고서 먹어서는 아니된다”고 하였는데 군자가 농사를 짓지 않고서도 살 수 있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고 물었을 때 맹자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군자가 나라에 살고 있으므로 임금이 그를 등용하여 안부존영(安富尊榮)을 기할 수 있고, 그 나라의 젊은이들이 군자를 따라서 배우면 효제충신(孝弟忠信)을 지키게 된다. 그러니 군자는 거저 녹을 먹는 것이 결코 아니다.”(진심상 시왈장) 아리스토텔레스가 자유인은 생산에 종사하지 않고 여가를 누리면서 학문에 종사하여 한다고 생각하였던 것과 거의 유사한 사고의 경향이다. 물론 아리스토텔레스의 경우는 귀족계급 자체의 행복한 삶을 위한 것이었고 맹자의 경우는 사회적 기능의 분담을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의 서민은 인간의 이성적 활동을 할 수 없고 맹자늬 소인은 선성을 계발할 수 없다는 점에서 마찬가지이다.


안병주(安炳周)는 맹자의 왕도정치를 다음과 같이 함축적으로 평가하였다.(「맹자」, 128) 맹자에 있어서 왕도정치의 궁극적 목표는 민중의 경제안정을 근거로 하는 도덕적 통치자의 인정(仁政)을 토대로 하여 기존 지배체제에 대한 인민의 도전가능성이 마멸되고 통치자가 피치자 계급의 심복(心服)을 받는 가눙데 상하의 계급질서가 완전하게 확립되는 안전한 사회의 건설에 있는 것이다. 즉, 피치자 계급의 경제안정을 대가로 하여 신분사회의 분쟁없는 계급질서의 확립 그것이 왕도정치의 궁극적 목표이다.


4. 맹자와 순자


공자의 유가사상은 두 갈래로 나뉘어 발전하였다. 그 하나는 증자(曾子)가 이끌어 맹자로 이어지는 학파이고 다른 하나는 자하(子夏)가 이끌어 순자(荀子)로 이어지는 학파이다. 증자와 맹자의 계틍은 주로 인의(仁義)를 중심으로 하여 하나의 일관된 체제를 발전시킨데 비하여 자하와 순자의 계통은 예의(禮義)를 중시하여 실천적 원리의 체제를 발전시켰다. 순자(기원전 322 - 234)는 맹자의 뒤에 태어난 사람으로 직하문(稷下門)에서 활동하던 전국시대(戰國時代)의 학자였다. 순자의 사상은 맹자의 성선설에 대립되는 “성악설”(性惡說)을 주장하여 후대, 특히 송(宋) 나라의 유학자들로부터 비난을 받기도 하였다. 그러나 비록 인간의 본성을 설명하는 데 있어서 맹자와는 성선설과 성악설의 차이를 보이기는 하지만, 교육의 과제는 다같이 선성을 기르는 것이라는 점에서 마찬가이다. 맹자는 선한 성품의 회복을 교육적 과제로 삼았으나, 순자는 악한 성품의 개조를 교육적 과제로 삼았다. 맹자는 도덕성의 선천성을 주장한 셈이지만, 순자는 도덕성의 사회성을 제시하였다. 순자는 착한 인간은 선천적 본성의 회복에 있는 것이 아니라 훌륭한 관습과 제도가 사람을 착하게 만들어 줄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장기윤은 냉자와 순자의 차이를 “주정주의”(主情主義)와 “주지주의”(主知主義)로 대비시켜 설명하였다. (장기윤, 157-158) 맹자는 사람의 특성이 인의(仁義)에 있다고 여긴 반면에, 순자는 사람의 특성이 예의(禮義)에 있다고 여겼다. 맹자는 사람을 교육시키는 데 있어서 인에 거하며 의로 비롯된다는 “거인유의”(居仁由義)를 말했고 그 주장의 중심을 “인의설”(仁義說)이라고 할 수 있다. 순자는 사람을 교육시키는 데 예를 존중하며 의를 귀하게 여겨야 한다는 “융예귀의”(隆禮貴義)를 말했으며 그 주장의 중심을 “예의설”(禮義說)이라고 할 수 있다. 인의설과 예의설에서 “의”(義)는 문자적 의미로 보면 차이가 없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 의미의 차이가 매우 크다. 맹자가 말한 인의는 정(情)에 해당하는 것이며, 순자가 말하는 예의는 지(智)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그러므로 맹자의 인의설은 주정주의적 특징을 지니고 있으며, 순자의 예의설은 주지주의적 특징을 지니고 있다.


맹자는 천도(天道)와 천심(天心)을 중시하였으마, 순자는 인도와 인심을 중시하였다. 순자의 도는 천지의 도(天地之道)가 아니라 사람이 지켜야 할 도(人之所道)이다. “도는 하늘의 도도 아니고 땅의 도도 아니다. 사람이 도로 삼아서 행하는 것이며 군자가 행하는 바 그것이 도다”(儒效篇) 순자의 이론에서는 신비주의적인 요소가 없다. 그는 성인(聖人)이라면 하늘을 알려고 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군자는 자기 자신 안에 있는 것을 공경하는 것이지 하늘에 있는 것을 따르지 않는다. 소인은 자기 자신 안에 있는 것을 놓아 두고 하늘에 있는 것을 따른다. 그러므로 군자는 날마다 진보하나 소인은 날마다 퇴보할 수밖에 없다.”(天論篇)


순자에 의하면, 인간의 본성은 모든 것의 근본이요, 처음이요, 아무 것도 손대지 않은 소박한 그대로를 말한다. 만약 인간에게 본성이라는 것이 없으면 인위적인 노력으로 더 할 것이 없고 또한 인위적인 노력이 없다면 인간의 본성은 아름다워질 수가 없다.(禮論篇) 순자에게 있어서 본성은 악한 것이다. 그는 이렇게 말하였다.




인간의 본성은 악한 것인데 이것을 착한 것이라고 하는 것은 인위적인 것(僞)을 두고 하는 말이다. 이제 사람의 본성을 보면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이익을 좋아하고 그것을 그대로 따르기 때문에 자연히 다른 사람과 싸워서 빼앗으며는 마음이 생기고 사양하는 마음이 없어지는 것이다. 또 사람은 나면서부터 아름다운 소리와 색을 좋아하는 이목(耳目)의 욕망이 있어서 이것을 그대로 따르기 때문에 자연히 음란한 행실이 생기게 되고 동시에 예의와 조리가 없어지는 법이다.(性惡篇)




그러면 인간은 어떻게 도덕적으로 착하게 될 수 있는가? 인간의 본성이 본래 악한 것이므로 그대로는 세상의 혼란을 가져 올 수밖에 없기 때문에 옛 성왕(聖王)은 예(禮)를 제정하여 모두 지키게 하였다. 인간의 악한 본성은 반드시 스승과 법도가 있기 때문에 바로 잡히고 예가 있기 때문에 다스려진다. 예는 바로 인위적으로 본성을 바른 기준에 의해서 바로 잡은 것이며, 그것은 사회적 산물이다. 유가에 있어서 예는, 앞서 공자를 논할 때 이미 언급했듯이, 매우 광범한 뜻을 지니고 있다. 예는 예의(禮儀), 의식(儀式), 제도(制度), 관습(慣習) 등을 포괄하는 것이다. “예라는 것은 한 마디로 말해서 사람의 욕망을 알맞게 길러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먹줄은 직선의 최고 표준이고, 저울은 공평의 최고 표준이며, 그림쇠는 방형(方型)과 원형(圓型)의 최고 표준이며, 예는 인도의 최고 극치이다.” 그리고 “예는 긴 것은 끊어 주고, 짧은 것은 이어 주고, 넘치는 것은 덜어 주고, 모자라는 것은 보태 주는 것이다.”(예론편)


순자는 예의의 수양이 있느냐 없느냐로써 군자와 소인을 구별하였다. 수양은 곧 도(道)를 아는 데 그 목적이 있다. “마음이 어떻게 도를 알 수 있는가? “대청명”(大淸明)의 원리가 있다. 즉, 마음을 비우고 하나로 가다듬어서 고요하게 한다는 것이다. 순자도 맹자와 같이 마음이 육체보다 크고 높은 자리에 있다고 생각하였다. “마음은 육체의 왕이며 신통하고 영묘한 주체로서 명령을 내리되 외부로부터 명령을 받는 일이 없다”고 하였다.(解弊篇) 그러나 수양은 사색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군자가 되는 길은 사색에만 잠기는 것보다 배워서 실천으로 옮겨져야 한다. “군자의 학문은 귀에 들어가 마음에 붙고 몸에 퍼져서 행동으로 나타난다.” “듣지 않음은 들음만 못하고 들음은 보는 것만 못하고 보는 것은 아는 것만 같지 않고 아는 것은 행함만 못하다. . 성인은 인의에 근거하고 시비를 바로 하며 언행을 같게 하여 조금고 어긋남이 없으며 딴 길이 없고 오직 그것을 행할 뿐이다.”(유효편) 마음은 도를 알지만 몸에 의한 실천이 따라야 한다.


마음의 작용으로 생각하고 깨닫는 과정이 있고 환경과의 관계에서 예에 따른 좋은 습관을 길러야 선의 경지에 나아갈 수 있다. 그러므로 수양을 위한 학문은 범인(凡人)으로부터 선비, 군자, 성인의 경지로 나아가는 데 그 목적이 있으며, 이러한 학문은 「詩書」의 경전을 외우는 데서 시작하여 최고 표준이 되는 「예기」(禮記)를 정독하여 몸소 실천하는 데서 완성되는 것이다. 어진 스승의 지도를 받고 예의를 실천하며 마음을 하나로 가다듬어 통일하고 덕성의 조리를 몸에 익히면 자연히 완벽한 경지에 도달하게 된다.


순자는 또한 완전한 예는 마치 훌륭한 음악이 천지와 동화하는 것과 같이 천지와 조화를 이룬다고 하였다. 이런 의미에서 음악은 덕성의 교육을 위하여 매우 중요한 것이다. 그는 음악을 예찬하여 이렇게 말하였다.




음악은 대체로 즐겁다. 인간의 감정으로서는 반드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음악이다. 그러므로 인간에게 음악이 없을 수 없다. 즐거우면 반드시 소리로 나타내고 행동으로 표현된다. 사람으로서 즐거움이 없을 수 없다면 반드시 겉으로 표현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겉으로 표현된 것이 도에 맞지 아니하면 혼란이 생길 수밖에 없다. 그래서 옛 성왕은 그 혼란을 싫어하여 아송(雅頌)의 음악을 제정하여 길잡이로 하고 그리로 하여금 족히 즐겁도록 하되 함부로 이탈하지 않게 하였다. 가사의 뜻은 충분히 또렷하면서도 끊이지 않게 하였다. 그 소리는 굽기도 하고 곧기도 하며, 복잡하기도 하고 단순하기도 하며, 날카롭기도 하고 부드럽기도 하며, 꺾이기도 하고 이어지기도 하여 충분히 사람의 마음이 착하도록 감동을 줄 것이며, 사악하고 더러운 기운이 닫지 못하도록 할 것이다. 그러므로 음악이라는 것은 사람을 다스리는 데 탁월한 방법이 될 수 있다.(樂論篇)




성선설을 주장한 맹자와 성악설을 주장한 순자가 결과적으로 다른 점이 무엇인가? 맹자는 인간의 악한 성품이나 행동은 본연의 것이 아니라 마음의 본성이 흐려지고 양지(良知)와 양능(良能)이 마비된 현상으로 본 데 비하여, 순자는 악한 성품과 행동 그대로가 인간의 본성으로 보고 성인의 경지는 그러한 본성을 다듬어 예(禮)을 실천한 결과라고 보았다. 맹자는 악한 것을 극복할 수 있는 것은 본연으로 되돌아 감을 의미하였고, 순자는 인간이 선을 행하는 것은 관습과 제도로써 인간의 마음을 바로 잡은 것을 의미하였다. 설명의 방식이 다를 뿐이지 수양과 학문의 원리는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인간의 근본적 본성에 대한 차이는 인간으로서의 도덕적 존엄성을 평가 하는데 중요한 차이를 나타낸다. 맹자는 본연의 인간에 대하여 긍정적이고 낙관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는데 비하여 순자는 부정적이고 비관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순자는 관습과 제도가 지닌 도덕적 질서와 의미를 높게 평가함으로써 문화의 가치를 긍정적으로 낙관적으로 수용하려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렇게 생각해 볼 수 있다. 즉 인간이 본래 선을 추구하는 마음이 없다면 어찌 악을 물리치기 위하여 예를 존중하고 실천할 것이며, 인간의 본래 성품이 착하고 선을 추구하는 마음이 있거늘 어찌 악이 세상에서 흉융하게 되었을가? 선을 추구하는 마음이 있다는 것과 인간의 기질적 요소에 악한 것을 지니고 있지 않다는 것은 같은 말이 아니며, 좋은 관습과 제도는 선을 추구하는 마음들의 참여에 의해서 이루어진 업적이라고 볼 수 있다. 우리는 오히려 이렇게 생각해 볼 수 있다. 인간의 기질적 요소에는 선한 것도 있고 악한 것도 있으나, 선을 추구하는 마음은 인간의 사회적 관계에서 자신을 다스리면서 좋은 관습과 제도를 창조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보면 좋은 관습과 제도란 인간의 사회적 업적이며 군자와 성인은 그 업적을 이루고 지키는 데 탁월한 역량을 보여 준 사람들이라고 해석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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