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외소설

빨간바나나
- 작성일
- 2013.6.26
가벼운 나날
- 글쓴이
- 제임스 설터 저
마음산책
장마라는 예보에 꿉꿉한 날들을 어떻게 견디지, 지레 걱정을 했다. 한 차례 비가 내린 후론 잠잠하기에 장마라더니 시시해, 하고 중얼거렸더니 말이 씨가 되었는지 소나기가 퍼부었다. 아직은 선명하지만 내 몸으로 스며드는 오늘, 그리고 내일의 빛은 어제의 기억을 말끔히 지울 것이다. 뜨거운 햇살이 선사한 땀의 무게에 거친 숨을 내쉬며 더딘 걸음을 걷는 동안 나는 다시 비를 그리워했다. 내 마음은 어찌 이리 간사한지.
결막염은 식탁 위로 날아와 입맛 잃어 그저 끼니나 때우려는 단출한 식사마저 방해하는 파리처럼 가뜩이나 진도가 나가지 않는 독서를 방해했다. 뜨거웠던 여름의 어느 날, 무엇을 해야 했으나 아무것도 할 수 없어 무작정 길을 나선 방랑자처럼 인터넷 서점을 헤맸다. 방황하던 눈은 제임스 설터의 『가벼운 나날』을 포착했다. 혼자 걷는 낯선 길에서 색색의 야생화를 만난 것 같은 반가움이 일었다. 야생화를 보고 그냥 지나치는 것은 길 떠난 이의 자세가 아니다. 이 책이 수시로 출몰하는 우울을 박멸해 줄 거라는 기대 따위는 하지 않았다. 그저 뜨거운 여름의 한차례 소나기처럼 잠깐이나마 갈급함을 해결해주길 바랐을 뿐.
이 책이 내 시선에 들어온 것은 제목 때문이라고 생각했지만 이 글을 쓰는 지금은 잘 모르겠다. 같은 저자의 『어젯밤』은 읽어야지, 하고 마음은 품었지만 인연이 되지 않았던 책이다. 그럼에도 등짝을 드러낸 채 돌아서 뒤를 돌아보는 단발머리 여자의 모습은 머릿속에 각인되어 있었다. 적에겐 등을 보이지 말라고 했던가. 등에는 숨길 수 없는, 나조차 모르는 내 모습이 있다. 등짝은 등보다 원초적인 느낌이다. 그녀는 그가 온전한 자신을 봐주길 원했던 건 아닐까.
『가벼운 나날』의 표지는 단추를 푼 상의를 입은 여자가 하체를 드러낸 채 앞을 응시하고 있는 그림이다. 인기척에 잠이 깬 그녀 서둘러 상의를 입고 립스틱을 바른다. 무표정으로 자리에 앉아 익숙하게 방으로 들어오는 그를 본다. 착각일까. 누군가의 틀 안에서 완벽히 벗어나지 못한 그녀가 보였다.
결혼은 다른 삶을 살았던 두 사람이 함께 삶을 꾸리는 것이다. 누군가와 함께 삶을 꾸린다는 것은 자신의 일부를 없애는 일인지도 모른다. 도려내고 잊었던 일부는 흐르는 세월 속에서 환상지통으로 나타난다. 삶의 균열은 어쩌면 예정되어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들의 삶은 미스터리였다. 숲과 비슷했다. 멀리서 보면 하나의 덩어리로 이해되고 묘사될 수 있었지만, 가까이 갈수록 흩어져 빛과 그림자로 조각났고, 그 빽빽함 때문에 잘 보이지 않았다. 그 안에는 형태가 없었고, 경이로울 정도의 디테일만이 어디나 가득했다. 이국적인 소리와 쏟아지는 햇빛, 무성한 잎사귀, 쓰러진 나무, 나뭇가지 꺾이는 소리에 달아나는 작은 짐승들, 곤충, 고요함, 그리고 꽃.
이 모든 것은 제각각이면서도 밀접하게 엮여 있고, 보이는 것과 달랐다. 실제로 이 세상에 두 종류의 삶이 있다. 비리의 말처럼, 사람들이 생각하는 당신의 삶 그리고 다른 하나의 삶. 문제가 있는 건 이 다른 삶이고 우리가 보고 싶어 하는 것도 바로 이 삶이다.(51쪽)
스무 살 무렵 앞날에 관한 확신에 찼던 나는 흔들리는 타인들이 시시했다. 지금은 그것이 자만이었음을 안다. 스무 살에 멀어지니 모호한 미래보단 고단한 현재를 잘 견디고 싶다. 산다는 건 아이러니하게도 죽음에 한 걸음 더 가까워지고 있다는 뜻이다. 『가벼운 나날』은 타인의 눈에 행복해 보이는 비리와 네드라 부부가 이혼 후 삶(혹은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통해 어떻게 사는 것이 행복한 삶인가, 라는 질문을 던진다.
삶이 있었지만 별 가치가 없는 삶이었다. 끝날 때 끝나더라도 뭔가 이루었던 삶과는 달랐다. 내게 용기가 있었다면, 믿음이 있었다면, 그는 생각했다. 우리는 마치 중요한 일을 수행하듯 우리 자신을 보존한다. 그러기 위해서 항상 다른 사람을 희생시킨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비장해둔다. 남들이 실패하면 우리가 성공한 것이고, 남들이 바보 같으면 우리가 현명한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 사실을 부여잡고 나아간다.(421쪽)
네드라는 다른 사람에게 주목받거나 가족을 위한 삶보단 자유로운 삶을 선택했다. 네드라의 떠남으로 비리에게도 다른 삶의 기회가 주어졌다. 네드라에게 비리, 프랑카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의 시간이 없었다면 삶의 균열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균열을 채울 수 있는 시간을 가지지 못했을 것이다. 재미없는 인생일 순 있어도 시시한 인생을 산 건 아니다.
네드라의 선택은 누구에게나 정답은 아니다. 다만 이런 생각을 해 본다. 삶을 제대로 비행하려면 연료는 충분해야 한다고. 그래야 다른 비행기들을 이끌 수도, 다른 비행기들과 나란히 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사람의 인생을 바꾸는 건 결국 하나의 문단, 하나의 진술이다. 우리의 내부로 파고 들어오는 문장들은 가느다랗다. 수영할 때 민물 가자미가 몸속으로 들어오듯. 그녀는 흥분했다. 힘이 생기는 것 같았다. 다른 것이 그렇듯, 윤이 나게 닦인 문장들이 딱 적당한 때 도착한 기분이었다. 타인의 삶이 비추지 않는 우리의 삶을 어떻게 상상할 수 있겠는가?(238~239쪽)
제임스 설터의 문장들은 ‘수영할 때 민물 가자미가 몸속으로 들어오듯’처럼 직유법 문장이 많다. 비유를 통해 드러난 문장은 경험하지 못한 삶을 상상하게 함으로써 인물들의 상황과 심리를 내 상황과 심리로 만드는 마법을 부렸다. 그 마법은 잊었던 나의 일부를 찾아주었다. 그의 비유 문장은 세상에 대한 예리한 관찰의 결과일 것이다.
삶의 의외성, 관계의 친밀성 앞에 또다시 무너지겠지만 오늘의 나는 누군가의 ‘나’가 아닌 나만의 ‘나’로 살기로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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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