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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꽃
- 작성일
- 2013.11.19
내 아내와 결혼해 주세요
- 글쓴이
- 히구치 타쿠지 저
예담
남은 생이 6개월 밖에 없다면 그 시간동안 무엇을 해야 할까. 드라마나 영화, 책 등에서 시한부 삶을 사는 인물들을 볼 때면 문득 내게 그런 현실이 닥쳐왔을 때 어떻게 삶을 정리해야 좋을지 막막했다. 아마도 보고 싶은 사람을 만나고, 가고 싶던 곳에 가보고... 다음 기회로 미루었던 많은 것들을 서둘러 해치우려 들 것 같다. 그런데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아직 미혼이라 그런지 남은 시간을 내가 아닌 타인을 위해 온전히 쓸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확신이 없다. 특히나 그 일이 혼자 남게 될 배우자의 새로운 배우자를 찾아주는 것이라면 더욱더.
예능 프로그램의 방송작가로 22년차 경력을 가진 미무라 슈지는 췌장암 말기 판정을 받는다. 그에게 남은 시간은 181일. 하지만 하루아침에 다가온 죽음의 그림자보다 그의 마음에 그늘을 드리운 것은 홀로 남을 아내 아야코와 열 살짜리 아들 요이치로였다. 아내와 아들에게 자신의 죽음을 어떻게 알리면 좋을지 걱정하던 미무라는 생에 중대한 결심을 한다. 앞으로 6개월 동안 그의 인생 최고의 프로그램을 만들기로 말이다. 그가 세상을 떠난 후에도 아내와 아들이 즐거움과 행복감을 느낄 수 있는 그런 프로그램, 그것은 아내에게 이상적인 남편을, 아들에게 멋진 아빠를 선물하는 것이었다.
일생일대의 새로운 목표가 생긴 미무라는 자신의 죽음에 넋 놓고 있을 겨를도 없었다. 평범한 사람들 같았으면 죽음의 수용 5단계-부정, 분노, 협상, 우울, 수용-를 힘겹게 지나고 있을 텐데 미무라는 아야코에게 어울릴 남성을 찾기 위해 뛰어다닌다. 아내에게 이상형도 새삼 물어보고 단체 미팅이나 결혼정보회사의 도움도 얻어 신랑감을 직접 고른다. 이 과정에서 분노나 우울 등의 감정 대신 느껴지는 것은 웃음과 사랑이었다. 미무라가 자신의 가족들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자신의 죽음에서조차도 그는 아내와 아들을 지켜주고 싶어 하는 마음이 오롯이 느껴진다.
이 책을 통해 만난 미무라 슈지는 존경할 만한 사람, 배울 점이 참 많은 사람이다. 이 책을 쓴 작가 자신의 가치관을 미무라에게 투영한 것인지 몰라도 그가 동료와 후배들에게 전하는 인생관은 긴 여운을 남긴다. 그리고 모두가 궁금해 하는 미무라가 아내의 결혼 상대를 찾아주려는 이유 역시 감동을 더한다.
“좋은 가족이기 때문에, 내가 없어져도 끝내고 싶지 않아요.
좋은 프로그램은 사회자가 바뀌어도 계속되잖아요.(중략)” (p.190)
그러나 미무라의 독단적인 선택으로 인해 아내와 아들은 그와의 이별을 준비할 시간조차 너무 부족했지 않나 싶다. 그래서 본의 아니게 남편의 달라진 행동이 아내 아야코에게는 어쩌다 한 번 가장(家長)의 기분 내는 행동으로 보여 뾰족한 말로 남편의 마음을 찌르기도 한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갑자기 세상을 떠난다니 얼마나 충격이 클 것인가. 게다가 난데없이 새로운 남편 후보를 찾아뒀으니 만나보라는 제안은 또 얼마나 황당했을까. 가족들이 미리 알았다면 미무라가 계획했던 그 모든 일들은 시도조차 해볼 수 없었을 것이다. 또 미무라가 시한부 선고를 받은 뒤에도 평소처럼 열심히 최선을 다해 생을 살아갈 수 있었던 것은 미무라의 선택 덕분이었다.
남은 가족들에게 끝까지 사랑과 웃음, 좋은 추억만을 안겨주고 떠난 미무라의 죽음은 다분히 드라마틱하다. 현실에서는 있을 것 같지 않은 일이지만 이 책을 읽는 동안만큼은 현실 따위 잠시 접어둬도 좋겠다 싶었다. 이미 책의 시작에서부터 정해져 있던 슬픈 결말이었는데 결말부에서는 마치 수도꼭지라도 틀어 놓은 듯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다. 그러나 그 눈물 속에 슬픔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오랜만에 가슴 따뜻한 온기를 느꼈고, 미무라 슈지가 전파한 삶의 좋은 가치관들은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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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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