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은 기록

벤투의스케치북
- 공개여부
- 작성일
- 2013.4.26
수학자이자 과학철학자인 존 카슨 레녹스의‘빅뱅인가 창조인가’를 통해 알 수 있듯 스티븐 호킹은 우주를 있게 한 힘을 하나님이 아닌 자연법칙으로 전제(前提)하다가 막다른 길에서 다중우주론에 의거(依據)하는 방향으로 돌아섰다. 다중우주론은 우리 우주 밖의 어딘가에 우리 우주와 동일한 우주가 존재한다는 이론을 말한다. 하지만 다중우주론(평행우주론)은 많은 물리학자들에 의해 너무 남발되고 있다고 지적받고 있다. 그 명칭을 남발하고 있는 사람들도 대부분 물리학자이고 그렇다고 지적하는 사람들도 대부분 물리학자이다.‘실체에 이르는 길’의 저자인 로저 펜로즈(수학박사)는 그런 지적을 하는 대표적 인물이다. 이론물리학자 존 폴킹혼은 다중우주론은 물리학이 아니라 형이상학이라고 적시했다. 호킹과 펜로즈는 이스라엘의 과학/ 예술상인 울프상의 공동 수상자이고‘우주 양자 마음’의 공저자이다.
이 다중우주론과 함께 과학이 아닌 형이상학으로 지적받는 이론이 끈이론이고 M이론이다. 최근 나온 토비아스 휘르터(철학, 수학 전공)와 막스 라우너(물리학자)의‘평행우주라는 미친 생각은 어떻게 상식이 되었는가’는 로저 펜로즈와 존 폴킹혼의 진술을 떠올리게 한다. 다중우주론은 몇년 전 나온 일본의 비평가 아즈마 히로키의 장편 소설인‘퀀텀 패밀리즈’를 통해 더욱 그 의미가 알려졌다. 일본의 물리학자인 미치오 가쿠는‘평행우주’라는 책에서 우리는 우리 우주가 팽창을 거듭하다가 거대 동결(우주는 팽창을 거듭할수록 온도가 낮아진다.)이라는 종말에 이르게 되었을 때 다른 우주(평행우주)로 탈출함으로써 생존할 수 있다는 주장을 했다. 미치오 가쿠는‘불가능은 없다’는 책에서 공간이동, 시간여행, 평행 우주의 발견 등이 모두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그런가 하면 일본의 물리학자 다케우치 가오루는 빅뱅이론은 우주의 기원을 설명하기에는 너무 치졸한 이론이고 초끈이론은 셀 수 없이 많은 예측이 나오고 있지만 그것들 중 어느 하나도 검증도 반증도 할 수 없는 이론이라고 말한다.(‘과학은 if’138, 139 페이지) 가오루는 이 책에서 스티븐 호킹을 대부분의 인간이 공유하는 실재 가설이 아닌 실증론(實證論)의 세계에 입각해 있다고 말함으로써 호킹이 모든 문제 가운데 가장 어려운 기원(紀元)에 대해 애써 도외시(度外視)하고 있음을 내비쳤다. 물론 이 부분에서 중요한 것은 호킹이 신(神) 존재에 대해 모른 체 한다는 점이 아니라 자신의 이론이 잘못되었거나 뒤집힐 수도 있다는 생각을 원천 차단하고 있다는 점이다. 실증론적(實證論的) 세계관이란 수식(數式)과 실험 결과가 일치하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세계관을 말한다.
가오루는 호킹의 허수(虛數) 시간론을 비판한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이렇다. 즉 호킹에게 왜 허수 시간 같은 것을 말하는가, 라고 물으면 허수를 사용하면 우주가 시작되었을 때의 계산이 제대로 맞아떨어지고 거기에서 다양한 예측이 나오기 때문이라고 답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그럼 우주가 시작되었을 때는 시간이 실수(實數)가 아닌 허수였군요, 라고 말하면 호킹은“시치미 떼는 얼굴로“ 우주가 시작되었을 때의 시간이 꼭 허수라고 단정지을 수 없다고 말한다. 호킹은 그럼 시간은 허수냐 실수냐 물으면 어느 쪽이든 상관없다고 말하는데 그 이유가 시간은 실수이든 허수이든 의미가 없기 때문이라고 답한다는 것이다. 양자(量子) 물리학 박사 마이클 브룩스는 C. S 루이스의‘나니아 연대기’, 루이스 캐럴의‘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등의 동화(童話)들이 단 하나의 정체성을 가진 채 이곳과 다른 세계를 체험하는 이야기라면 평행우주론은 우주 어딘가에 또 다른‘나’가 존재한다고 전제하는 이론이라고 말한다.(‘물리학을 낳은 위대한 질문들’147 페이지)
마이클 브룩스는 이런 말을 들려준다.‘무한한 우주 속에는 지구와 비슷한 행성이 무한히 많을 것이고 그곳에 거주하는 생명체의 분자 구조도 매우 다양할 것이다. 그 중에는 탄소에 기반을 둔 생명체도 존재할 텐데 개체수가 충분히 많을 것이므로 몸의 분자 구조가 당신과 완전히 동일한 생명체가 존재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물론 저자가 말했듯 ”몸의 분자 구조가 나와 완전히 같다고 해도 그 생명체를 나라고 할 수는 없다“며 위의 논리를 부정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이는 당신이라는 존재를 정의하는 기준은 무엇인가?란 질문은 물론 우주의 수는 무한한가, 유한한가? 등의 질문과도 연관된 문제이다. 그런데 우주의 개수(個數) 문제는 우주의 규모 문제와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다. 물론 지금으로서는 우주가 무한한지 아닌지 다시 말해 먼 우주에 또 다른 내가 존재하는지 여부는 결론을 내릴 수 없다.
아인슈타인의 실수(失手)는 이 문제를 해결해줄 가능성을 지닌 실마리로 여겨지고 있다. 이 가능성은 영구 팽창이론에서 출발한다. 이 이론은 우주가 여러 개의 거품으로 탄생했다가 사라지는 과정을 되풀이하고 있다고 전제한다. 1963년 우주배경복사가 발견된 이후 일부 학자들이 빅뱅 이론에 의심을 갖기 시작했는데 그 의심은 시간과 공간이 질량과 에너지에 의해 휘어진다는 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성 이론에 근거한다. 질량과 에너지의 밀도가 컸다면 시간과 공간이 심하게 휘어지면서 우주는 닫힌 구조를 갖게 되었을 것이고 밀도가 작았다면 빅뱅의 팽창력이 우주를 압도하여 초기 우주의 모양은 거의 사라지고 모든 것이 서로 멀어지면서 별과 은하들은 생성되지 않았을 텐데 우리 우주는 완벽하게 편평하여 지금의 우리가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주는 왜 편평한가? 편평성 문제 뿐 아니라 우주의 정반대 끝으로 가도 온도가 거의 동일한 지평선 문제도 해결해야 할 과제이다. 우주의 정반대 끝으로 가도 온도가 거의 동일하다는 뜻은 열이 전 우주에 걸쳐 균일하게 분포되어 있다는 뜻인데 그렇기에는 우주는 너무 넓다. 열은 복사(輻射) 입자(粒子)인 광자에 의해 전달된다. 문제는 광자(光子)가 빛의 속도로 달린다 해도 전 지역에 고루 퍼지기에 우주의 나이는 너무 젊다. 지금의 계산대로라면 우주에는 뜨거운 지점이 곳곳에 남아 있어야 한다. 이 문제에 답을 제시한 구세주 같은 이론이 급팽창 이론이다. 이 이론은 우리 우주가 빅뱅이 일어난 직후 아주 짧은 시간에 급속도로 팽창했다는 가정에서 출발한다. 어떻든 이 이론은 빅뱅과 관련한 편평성 문제와 지평선 문제를 해결해주는 동시에 또 다른 나의 존재를 암시한다.
지금까지 알려진 가장 유명한 급팽창 이론은 혼돈 급팽창 이론이다. 이 이론은 빈 공간의 에너지 요동(搖動)이 우주 전체 시공간으로 퍼져나가고 하나의 우주에서 아기 우주가 공기 방울처럼 끝없이 생겨나며 아기 우주가 어느 정도 커지면 모(母) 우주에서 완전히 분리되어 새로운 우주로 독립한다고 가정한다. 이 이론은 양자역학과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 이론을 하나로 통합하기 위해 제안된 끈이론에 의해 취해진 관점이라는 이유로 강한 설득력을 갖게 되었다. 만물의 근원이 끈이라는 가정 하에 유도된 우주는 하나가 아니라 각기 다른 특성을 가진 수천 개의 우주였다. 문제는 팽창을 일으키는 빅뱅의 위력이 감소되었을 시점이 되었음에도 알 수 없는 힘에 의해 더욱 가속되고 있다는 점이다. 암흑 에너지가 그 힘이라 생각되고 있지만 정체는 수수께끼이다.
아인슈타인의 실수란 빅뱅 이론을 전혀 몰랐고 우주는 팽창하지 않고 항상 똑같은 상태를 유지한다고 믿은 아인슈타인에 의해 유도된 방정식은 팽창하는 우주를 예견하고 있기에 아인슈타인 스스로 정적(靜的) 우주를 구현(具顯)하기 위해 우주 상수(宇宙 常數)라는 새로운 항(項)을 포함시켰지만 후일 빅뱅 이론이 정설로 굳어지자 아인슈타인이 그것을 자신의 인생에서 최대의 실수라고 한 데서 비롯된 말이다. 물리학자들은 우주 상수가 가속 팽창의 원인을 설명해줄 것이라 기대했다. 하지만 이론적으로 계산된 우주 상수 값은 관측된 값보다 10의 120 제곱 배나 컸다. 끈이론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제시되었다. 우주가 왜 지금과 같은 모습인지 알려 하지 말고 다양성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자는 것이다. 혼돈 급팽창 이론은 다양한 우주의 존재를 허용하며 이는 끈 이론의 결과와도 일치한다.
이론 물리학의 최근 경향은 우주 상수가 이론 값보다 터무니 없게 작다(10의 120 제곱 분의 1)고 고민하지 말고 그것이 끈이론의 타당성을 입증한다고 생각하자는 쪽으로 흐르고 있다. 마이클 브룩스는 만일 끈이론이 맞다면 이는 다른 우주에 또 다른 내가 존재할 수도 있음을 의미한다고 말한다. 한 우주에서 다른 우주가 거품처럼 자라다가 떨어져 나오고 이 우주는 영원히 팽창하면서 또 다른 우주를 낳는다. 우주 상수는 모든 우주에 거의 무작위로 분포되어 있지만 개중에는 완전히 같은 것도 있다. 이런 우주에서는 생명이 탄생할 수 있고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 존재할 수도 있다. 또 다른 나의 존재 가능성은 하나의 전자(電子)가 시계 방향과 반시계 방향으로 동시에 자전(自轉)할 수 있고 하나의 광자(光子: 빛의 입자)가 이곳과 저곳에 동시에 존재할 수 있으며 원자는 두 개의 서로 다른 에너지를 동시에 가질 수 잇다는 사실에서 비롯된다.(‘물리학을 낳은 위대한 질문들’9장‘나는 유일한 존재인가?‘ 참조)
반면 물리학자 브라이언 그린은 다른 우주에서 우리 우주와 동일한 물리학 법칙이 성립한다는 보장은 없다고 말한다. 그에 의하면 다중우주론과 그 발생 원리는 우주 만물을 우아한 법칙 속에 보기 좋게 담아내는 것이 아니라 엄청나게 다양한 우주의 형태를 한정 없이 허용하고 있다. 그는 다중우주론의 진위를 판별하는 것은 우리 인간의 능력으로는 거의 불가능하며, 가능하다 해도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어려운 문제일 것이라고 말한다. 만일 다른 우주가 정말로 존재한다 해도 우리는 그 세상과 결코 접촉할 수 없을 것이라고 한다.(’앨러건트 유니버스‘ 517, 519 페이지)‘물리학을 낳은 위대한 질문들’이 다중우주론의 배경을 상세히 설명했다면 ’앨러건트 유니버스‘는 간략하게 설명했음을 알 수 있다. 이에 비해 ’평행우주라는 미친 생각은 어떻게 상식이 되었는가’는 양자역학의 난해한 이론을 펼치기보다 평행우주라는 생각이 천문학 역사에 처음 등장한 이후 최근까지 이어져온 논쟁을 역동적으로 묘사했다는 평을 받는다.
’평행우주라는 미친 생각은 어떻게 상식이 되었는가’에 의하면 끈이론을 정립하는 데 기여한 레너드 서스킨드가 이제는‘모든 것의 이론(TOE: theory of everything)’을 버린 대신 다중우주를 믿는다는 점은 시사적이다. 끈이론은 이전의 어떤 이론보다도 명쾌하게 우주를 설명했지만 그러기 위해서 너무 많은 하위 이론이 필요하다. 끈이론은 9개의 차원을 전제하는데 4개의 차원을 설명하는 데만도 10,500개의 하위 이론이 필요하다. 존 카슨 레녹스가 M이론은 추상적인 이론에 불과하다며 그것은 무려 10,500개의 우주를 가정해야 하는 설익은 시나리오에 불과하다고 한 것(‘빅뱅인가 창조인가’95 페이지)은 이런 의미를 지닌 것이다. 존 카슨 레녹스에 의하면 M이론은 다중우주를 설명하는 이론이다.
MIT의 우주학자 맥스 테그마크가 다중우주의 아이디어들을 난이도에 따라 정리한 바에 의하면 다중우주는 네 가지이다. 첫 번째는 어디서나 동일한 물리법칙이 적용되는 무한한 우주, 우리가 인식할 수 있는 지평선 바깥에서 가능한 모든 일이 일어나는 다중우주로 그곳에는 또다른 태양, 또다른 지구, 또다른 내가 존재한다. 두 번째는 관련 물리학 공간 안에서 서로 다른 물리 법칙을 가진 채 거품처럼 생겨났다가 사라지는 우주이다. 세 번째는 계속 가지를 치며 뻗어 나가며 생성될 때 양자역학의 법칙에 따라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나무와 같은 우주이다. 네 번째는 통합적인 물리학 이론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 우주이다. ’평행우주라는 미친 생각은 어떻게 상식이 되었는가’의 저자들은 우리와 다른 우주에 또 다른 우주, 또다른 지구, 또다른 나가 존재한다고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묻는다.
그런데 다중우주론은 미친 이론이 아니라 모든 것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취하게 되어 빠져든, 난해한, 늪과 같고 아포리아 같은 이론이라는 생각이 더 크게 다가온다. 물리학이 형이상학처럼 변해가는 것이 요즘의 대세이고 흐름인 듯 하다. 그러나 그것은 그들이 형이상학적 진리를 추구하기 위한 과정에 빚어진 결과가 아니라 벗어나기 어려운 늪에 빠진 결과 나온 자연스런 결론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실 이런 사정을 보며 신(神), 창조주 등을 떠올리고 그 존재를 기정사실화하는 사람들은 얼마든지 있다. 그러나 물리학은 다중우주론처럼 난해하고 너무나 복잡한 이론들이라도 있는데 신을 찾는 데에는 믿음만이 있다는 사실은 다중우주론의 난해하고 복잡하기 그지없는 다기(多岐)함에 대비되어 오히려 낯설게 느껴진다. 지금으로서는 물리학이 어디로 어떻게 나아갈지 궁금할 뿐이다.
(지난 2012년 8월 20일 게시한‘물리학을 낳은 위대한 질문들’리뷰를 보시고 ”저희 책에 관심 가져 주시고 리뷰까지 써주“셔서 감사하다며 위대한 질문 시리즈의 한 권으로 새로 나온‘수학을 낳은 위대한 질문들’을 보내주신 출판사께 감사드립니다....)
- 좋아요
- 6
- 댓글
- 2
- 작성일
- 2023.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