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은 기록

벤투의스케치북
- 공개여부
- 작성일
- 2015.5.31
‘소설의 도입부, 최고의 첫 문장 Best 10‘이라는 게시 글을 읽었다. 부작용인지 “첫 문장은 신의 선물”이라는 말의 출처가 알고 싶어진다. 나는 ’글쓰기의 최소원칙‘이란 책을 통해 첫 문장이 신의 선물로 받아들여진다는 사실을 알았다. 헛수고였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이 심우(尋牛) 같은 노력을 통해 한 시인의 관련 시를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심보선 시인의 ’첫 줄‘이란 시이다.
"첫 줄을 기다리고 있다./ 그것이 써진다면/ 첫 눈처럼 기쁠 것이다./ 미래의 열광을 상상 임신한 둥근 침묵으로부터/ 첫 줄은 태어나리라/ 연서의 첫 줄과/ 선언문의 첫 줄/ 어떤 불로도 녹일 수 없는/ 얼음의 첫 줄/ 그것이 써진다면/ 첫아이처럼 기쁠 것이다/ 죽음의 반만 고심하리라./ 나머지 반으로는/ 어떤 얼음으로도 식힐 수 없는/ 불의 화환을 엮으리라"
최윤 작가의 ’회색 눈사람‘을 보면 첫 문장이 어렵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렇게 말하면 실례일까? 내가 가장 좋아하는 중편 소설 중 하나인 이 작품은 “거의 20년 전의 그 시기가 조명 속의 무대처럼 환하게 떠올랐다.”는 평범한 첫 문장과 “아프게 사라진 모든 사람은 그를 알던 이들의 마음에 상처와도 같은 작은 빛을 던진다.”는 인상적인 마지막 문장이 대조적인 작품이다. 내가 이 작품을 기억하는 것은 마지막 문장 때문만은 아니지만 마지막 문장이 한 몫을 했음은 부인할 수 없다.
“나는 심한 부끄러움을 느꼈다”는 ’무진기행‘이나 “그리하여 우리는 조류를 거스르는 배처럼 끊임없이 과거로 떠밀려가면서도 앞으로 앞으로 계속하여 전진하는 것”이라는 ’위대한 개츠비‘ 같은 마지막 문장을 외우는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상투적인 첫 문장이 책을 선택하지 않게 한다면 좋은 마지막 문장은 책을 쉽게 덮지 못하게 하는 매력이 있다고 할 수 있다. 마지막 문장은 이미 다 읽은 것이기에 선택에서 배제되는 것과는 무관하지지만 인상적이어야 책을 쉽게 덮지 못하게 하고 결국 아름답고 바람직한 결말을 지을 수 있다고 할 수 있다.
내가 좋아하는 장편 소설 중 강규의 ’마당에 봄꽃이 서른 번째 피어날 때‘를 빼놓을 수 없다. 첫 문장에 이어지는 다음 문장까지 더해 말하자면 “우리들이 다같이 본과에 진입했을 때, 그러니까 우리들이 양복차림으로 강의에 참석하고 녹색 가운을 입고 해부실습실에 들어가던 그때 우리들은 스물두 살이었다. 그러니까 그때 교정에는 개나리가 천방지축 피어나고 해부학교실에선 이제 막 흉강장기의 절개가 시작되어 심장과 그 주변의 장기들이 드러나질 때, 우리들이 아무렇지 않은 듯 멀쩡한 얼굴을 하던 그때 말이다.”란 문장이 내가 가장 인상적으로 기억하는 첫 두 문장이다.
어쩌면 나는 첫 문장보다 두 번째 문장에 더 끌리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두 번째 문장은 새로운 분위기, 의대생들의 낯선 전경(前景)을 보여주는 첫 문장이 없었다면 인상적이지 못했을 것이다. 덧붙인다면 내가 진입이라는 말을 좋아가는 것도 이 작품, 그리고 그 첫 문장을 좋아하게 하는 데 한 몫을 했다고 할 수 있다. 어떻든 이 작품을 보며 나는 마종기 시인의 ’제3강의실‘의 첫 문장이 인용되었다면 좋았을 것이란 생각을 했다. “본과 3학년, 어느 날 햇볕이 따가운 가을날 오후에, 나는/ 2층의 제3강의실 - 2,30년 낡은 책상에서, 産科 강의를 받/ 고 있었습니다...”
아닌 게 아니라 강규 작가는 “서른 살 그해 9월이 끝나갈 무렵 어느 날 나는 꿈을 꾸었다. 한 남자로부터 편지를 받는 꿈이었다”는 문장으로 시작되는 장편 ’베두윈 찻집‘의 머리에 장석남 시인의 ’風笛 2‘를 인용해 놓았다. “날 개이면 나/ 햇볕을 따라나서리/ 부르튼 걸음걸이를 갈아끼우고 가리/ 추억은 마르고 영혼은 얼마나 가벼울 것인가/ 가슴으로 걸어본 사람은 기억하리// 햇빛은 내 헐거운 손목을 잡고/ 석양까지 가리/ 적막이 내 걸음을 다 가지리” 이 시가 작가에게 영감으로 작용한 것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지만 작용했다 해도 하나의 단서 정도일 것이다.
“낯익고 진부한 이야기를 새롭게 만들어 관객에게 경험시키는 것이 예술”(‘소설을 어떻게 볼 것인가’ 8 페이지)이라는 말을 하며 권택영 교수는 진부한 이야기에 예술성을 불어넣는 방법으로 사건이 일어나는 순서를 바꾸는 것을 제시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상상력이 자극된다고 저자는 말한다. 저자에 의하면 사건의 순서를 흩어놓음으로써 권선징악의 진부한 이야기가 낯선 형식이 되는 이것이 서사(敍事)이고 이 이론의 출발은 러시아 형식주의의 낯설게 하기이다. 낯설게 하기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제시된 상상력 자극 부분이지만 다른 분야에도 적용될 여지는 충분하다.
새로움과 흥미가 전부라고 할 수 없지만 특히 요즘은 무게, 당위, 필연만이 강조된 작품은 읽히지 않는다는 점이 중요하다. 상상력과 흥미에 대해서라면 공자와 ‘논어’에 대한 정의를 인용할 만하다. “‘논어’는 일평생 주변 사람들에게 ‘시경’의 시와 음악을 소재로 한 이야기를 들려주며 관악기 연주의 노래부르기로 세월을 보낸 늙은 스토리텔러의 이야기이다”(이인화 지음 ‘스토리텔링 진화론’ 290 페이지)
새로움과 짝하는 흥미가 화두라 할 수 있다. 물론 의미는 내가 강조하지 않아도 될 만큼 넘치기에 굳이 말하고 싶지 않다. 다만 강개(慷慨: 의롭지 못한 것을 보고 의기가 북받쳐 원통하고 슬픔)나 탄식이 아닌 가볍게 어필하는 무게와 의미를 보고 싶다. 흥미와 의미, 가벼운 가운데 넌지시 필연을 느끼게 하는 수사(修辭)가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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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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