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명길이 화친을 주장하자 김상헌은)

 

-화친이라함은 국경을 사이에 두고 논할 수 있는 것이온데, 지금 적들이 대병을 몰아 이처럼 깊이 들어왔으니 화친은 가당치 않사옵니다....화친으로 적ㅇ르 대하는 형식을 삼더라도 지킴으로써 내실을 돋우고 싸움으로써 맞서야만 화친의 길도 열릴 것이며...그러므로 화和, 전戰, 수守는 다르지 않사옵니다. ...

 

최명길이 더욱 낮은 소리로 말한다.

 

-예판의 말은 말로써 옳으나 그 헤아림이 얕사옵니다. 화친을 형식으로 내세우면서 적이 성을 서둘러 취하지 않음은 성ㅇ르 말려서 부리 뽑으려는 뜻이온데, 앉아서 말라죽을 날을 기다릴 수는 없사옵니다. 안이 피폐하면 내실을 도모할 수 없고, 내실이 없으면 어찌 나아가 싸울 수 있겠사옵니까....

김상헌이 최명길의 말을 끊었다.

 

-싸울 수 없는 자리에서 싸우는 것이 전이고, 지킬 수 없는 자리에서 지키는 것이 수이며, 화해를 할 수 없는 때 화해를 하는 것은 화가 아니라 항降이오. 아시겠소?...

 

(최명길은 임금에게)

 

-아직 내실이 남아 았을 때가 화친의 때이옵니다. 성 안이 다 마르고 시들면 어느 적이 스스로 무너질 상대와 화친을 도모하겠나이까.

 

(김상헌이 손바닥으로 마루를 때린다.)

 

-이판의 말은 ...본말이 뒤집힌 것이옵니다. 전이 본本이고 화가 말末이며 수는 실實이옵니다. 그러므로 전이 화를 이끌어내는 것이지 그 반대가 아니옵니다. ...

상헌의 말은 지극히 의로우나 그것은 말일 뿐입니다. 상헌은 말을 중히 여기고 생을 가벼이 여기는 자이옵니다. 갇힌 성 안에서 어찌 말의 길을 따라가오리까.

 

-전하, 죽음이 가볍지 어지 삶이 가볍겠습니까. 명길이 말하는 생이란 곧 죽음입니다. 명길은 삶과 죽음을 구분하지 못하고, 삶을 죽음과 뒤섞어 삶을 욕되게 하는 자이옵니다.

 

-전하, 죽음은 가볍지 않사옵니다. 만백성과 더불어 죽음을 각오하지 마소서. 죽음으로써 삶을 지탱하지는 못할 것이옵니다.

 

-...전하,... 대의를 말하는 목소리는 크고 사세를 살피는 목소리는 조심스러운 것입니다. 사세가 말과 맞지 않으면 산목숨이 어느 쪽을 좇아야 하겠습니까. 상헌은 우뚝하고 신은 비루하며, 상헌은 충직하고 신은 불민한 줄 아오나 상헌을 충렬의 반열에 올리시더라도 신의 뜻을 따라주시옵소서.

 

 

 

 

 

 

김상헌의 말은 가슴에서 옳으나 내 머리는 최명길을 따르고 있다. 이 가슴 아픈 논쟁은 우리의 숙명인가. 구한말의 위정척사, 반봉건반외세의 농민전쟁 대 개화파의 색깔 다른 충직함, 지금 우리가 당면한 자동차 팔자고 농민 죽이는 자유무역협정 조항들...이것들은 시대가 처한 상황마다 평가가 달라지겠지만 끝내 우리를 우울하게 만든다. 나는 오늘도 나라 걱정에 잠이 안 온다. ㅡ.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