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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질주하는 검은 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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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식장은 익숙하면서도 낯설었다.


다연이 입원해 있는 병원이니 더없이 익숙했고, 조화(弔花)로 가득 찬 지하로 내려가는 입구는 한없이 낯설었다. 담임 지시에 따라 학급생들과 다섯 명씩 짝지어 내려가고 있자니 바보가 된 기분이었다. 나는 열을 거슬러 올라 밖으로 나왔다. 속이 메슥거리고 눈이 따가워 견딜 수가 없었다.


장례식장 입구에서 내다보이는 주차장은 넓고 휑했다. 오전이라 그런지 주차된 차도, 진입하는 차도 드물었다. 새까만 옷을 입은 늙은 남자 하나가 모퉁이에서 모퉁이로, 허적허적 걸어 다니는 게 전부였다. 바닥을 향해 늘어진 손이 걸음을 옮길 때마다 허랑하게 흔들렸다. 어느 호실의 상주인 걸까. 어쩌면 그가 정일호의 부친인지도 몰랐다.


모든 곳이 환하거나 어두웠다.


날이 지나치게 맑아 흑백 대조가 더욱 두렷했다. 주차장과 건물 앞이 안개라도 낀 것처럼 눈부시게 새하얬다면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 아래는 늪처럼 검고 깊었다. 장례식장 안으로 들어갈 수도, 햇빛 속을 걸어 학교로 돌아갈 수도 없었다. 햇빛은 발등이 저릴 만큼 따가웠고, 그림자는 이가 시릴 만큼 차가웠다. 나는 끊임없이 흑백 속을 서성였다.


―미안해할 거 없어.


어느 틈에 방은정이 내 옆에 나란히 서 있었다. 조문을 끝내고 나왔는지 희미하게 향냄새가 배어나왔다. 다른 학급생들은 아직 조문 중인지 밥을 먹는 건지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장례식장으로 올 때부터 방은정은 유독 침울해 있었다. 지금 보니 계단 아래 자리 잡은 그림자만큼이나 낯빛이 어두웠다.


―그건 우연이었으니까 네가 미안해할 거 없어.


―우연?


―너랑 만나기로 한 장소에서 내가 정일호와 마주친 거 말야. 그것 때문에 일이 이렇게 된 거잖아. 그러니까 이건, 나 때문이야. 넌 잘못 없어.


내가, 라고 말해놓고 방은정은 입술을 깨물었다. 점점이 피멍 든 입술이 그냥 보기에도 아파 보였다.


―내가, 죽어버리라고 했어. 그랬더니 정말로 죽었어.


―너 때문이 아니야.


―내 책임이야. 나는…… 정일호가 날 좋아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어. 그래서 더 괴로우라고 일부러 그랬어. 그땐 정말 용서할 수가 없었어. 너무 더럽고 치졸한 짓을 했으니까 절대로 용서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


―그럼 지금은?


―지금은…… 모르겠어. 정말 모르겠어. 너무 이상해. 나는 분명 피해자였는데, 왜 지금은 이렇게 파렴치한 가해자가 돼버린 거지? 어째서? 난 솔직히 그 후가 어떨지, 다음 일 같은 건 생각도 안 해봤어. 하지만 정일호가 정말로 죽어버리길 바랐던 건 아니야. 정말이야.


―나는……


―정일호가 괴롭힌 만큼 되돌려주고 싶었던 것뿐이야. 그것뿐인데 왜 이렇게……


방은정이 자리에 쪼그려 앉았다. 무릎 사이에 얼굴을 파묻은 방은정은 아주 작은 공처럼 보였다.


―어쨌든 이건 내가 벌인 일이야. 내가 어떻게든 책임질게. 그러니까 넌, 괜찮아. 네가 그렇게까지 괴로워하지 않아도 돼.


괴로워해? 내가 괴로워하는 것처럼 보였어?


하늘이 갑자기 어두워진다 싶더니 검은 조각들이 후둑후둑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주차장은 금세 새까만 것들로 가득 찼다. 자세히 살펴보니 앙상한 발을 빼고는 온몸이 새까만 까마귀 떼였다. 이렇게 많은 까마귀들을 보는 건 난생처음이었다. 퍼득거리는 소리가 요란한데도 방은정은 고개를 들지 않았다.


나는 목을 기묘하게 비틀어 나를 바라보는 까마귀 떼 앞에 섰다. 눈알 굴러가는 소리가 바로 내 귀 옆에서 들리는 듯했다. 괴로워? 괴로워한다고 내가? 정일호가 죽어버린 것 때문에?


아니, 나는 정일호가 정말로 죽어버리길 바랐다.


심장이 멈춰버리는 것보다 더 지독한 상태가 되길, 심장은 뛰지만 그것이 모세혈관까지 이어지지 않기를, 숨을 쉬지만 그것이 폐포들을 부풀릴 수 없기를, 입을 벌려 소리를 치더라도 아무도 그 소리를 들을 수 없기를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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