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사진
namakwa
  1. 질주하는 검은 혀

이미지

그러나


 


 


, 이라는 것이 과연 가능했을까? 지금이라면 달리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식의 질주가 결코 끝날 리 없다고.


 


2010 6


 


학급생을 대상으로 한 경찰 조사가 두 차례 있었다.


시작은 인터넷에 유포된 고등학생 구타 동영상 때문이었다. 인터넷 검색 순위에 오른 동영상이 수사망에 오른 건 처음이 아니었다. 여대생 엉덩이에 깔려 압사한 토끼나 코와 귀가 잘린 고양이, 산 채로 화형당한 개 등 이력이 화려했다. 그러니까 정일호는 토끼와 고양이, 개들이 만들어놓은 억울함의 계보를 이은 셈이었다.


학급생들은 구타 동영상 속 피해자가 정일호란 사실을 금세 알아챘다. 턱이나 배에 내리꽂히는 주먹이 누구 것인지는 알지 못했고 그닥 궁금해하지도 않는 눈치였다. 구타 동영상은 호기심과 경악, 수치심과 분노 등등을 급물살로 갈아타며 퍼져나갔다. 경찰은 피곤한 얼굴로 교실에 들어섰다. 학생 몇과 담임선생에게 피해자가 자살했다는 사실을 확인한 뒤에는 난감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수사기관의 협조하에 학교폭력피해실태조사가 대대적으로 시행되었다. 소화기를 뿌려 정일호 사물함을 채웠던 아이1과 목공풀 스프레이를 정일호 뒷머리에 뿌렸던 아이2, 체육복 머리구멍을 꼼꼼히 박음질했던 아이3이 차례로 교장실로 불려갔다. 사복을 입은 형사 두 명이 학교 이곳저곳을 쑤시고 다녔다. 하루는 음악실이, 하루는 과학실이, 하루는 정보화교육실과 교실이 폐쇄되는 식이었다.


출석부는 나날이 두꺼워졌다. 심신피로와 고열감기, 갑상선염과 위염을 증명하는 진단서들이 사이사이 끼어들어간 덕분이었다. 결석과 지각 수가 매일매일 이전의 기록들을 갱신했다. 이렇다 할 증명서를 얻지 못한 아이들이 상담실과 교장실로 불려갔다. 모의장례식을 주관했던 방은정과 여학생들은 물론 김도준과 장기주도 참고인 격으로 자주 불려갔다. 강수찬과 그 무리는 일찌감치 경찰서로 넘어간 모양이었다.


기자들은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학교로 숨어들었다. 진상 규명을 촉구하는 시민단체와 어머니회도 곳곳에서 시위를 벌였다. 선생들은 더 이상 학생들의 교복 개조나 흡연에 관여할 틈이 없었다. 기자들을 솎아내기 위해 교문 출입은 철저히 통제되었고, 모든 사람이 교장 직인이 찍힌 신분증을 목에 걸었다. 학급생들에게는 침묵이 요구되었다. 휴대폰 사진이나 통화 기록을 검열당하기도 했다. 쥐죽은 듯 보름만 버티면 다 끝날 테니까. 담임선생은 주문처럼 그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그리고 그것은 이내,


현실이 됐다.


소란은 오래가지 않았다. 지나치게 역겹고 잔혹한 사건들이 전국 각지에서 터진 탓이었다. 강직하지만 깡마른 손을 가진 남자가 40톤의 물과 몇 점의 혈흔과 함께 감쪽같이 사라졌고, 만삭의 부인이 욕조에 구겨져 죽은 채 나타났다. 세 살짜리 어린아이가 부패한 고깃덩이로 전락해 쓰레기장에 버려졌으며, 자기보다 예순 살이나 많은 여자와 결혼한 이십대 청년이 아내를 살해한 뒤 정신병원으로 걸어 들어갔다. 인터넷 뉴스는 매시간 헤드라인과 검색 순위를 갈아치우느라 바빴다. 허무한 순위 쟁탈전이 이어졌고, 정일호의 기사는 금세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학급생들은 굳은 뺨을 움직여 급식을 먹고 영어회화를 연습했다. 끝났나 봐. 학급생들이 소곤거리며 숨을 쉬듯 가만가만 기지개를 켰다. 곰팡이꽃처럼 번진 웃음이 창틀과 책상 여기저기 피어났다. 정일호 장례식 이후와 똑같은 순서였다.


무슨 이유에선지 정일호 아버지가 모든 고소를 취하하고, 원만한 합의를 제시했다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학교와 부모들은 당연히 반색하며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학급생들은 학교 차원의 체벌에 그쳤다. 각각 사흘에서 일주일간의 유기정학과 벌점 50, 봉사활동 한 달에서 석 달이 전부였다. 학교와 교육청, 구청, 시청을 모두 쑤석거린 사건은 순식간에 바람 빠진 풍선처럼 오므라들었다. 그리고 나는,


더할 나위 없이 평온한 시간들을 보내고 있었다.


학교 경찰 교육청, 어디에서도 나를 부르지 않았다. 나는 그들이 유령처럼 창백한 얼굴로 걸어 다니는 꼴을 멀찌감치 지켜보면 되었다.


 

좋아요
댓글
12
작성일
2023.04.26

댓글 12

  1. 대표사진

    namakwa

    작성일
    2011. 3. 3.

    @바보천사

  2. 대표사진

    아나르코

    작성일
    2011. 2. 28.

  3. 대표사진

    namakwa

    작성일
    2011. 3. 3.

    @아나르코

  4. 대표사진

    매니짱

    작성일
    2011. 3. 1.

  5. 대표사진

    namakwa

    작성일
    2011. 3. 3.

    @매니짱

namakwa님의 최신글

  1. 작성일
    2011.3.5

    좋아요
    댓글
    24
    작성일
    2011.3.5
  2. 작성일
    2011.3.4

    좋아요
    댓글
    27
    작성일
    2011.3.4
  3. 작성일
    2011.3.3

    좋아요
    댓글
    11
    작성일
    2011.3.3

사락 인기글

  1. 별명
    리뷰어클럽공식계정
    작성일
    2025.7.3
    좋아요
    댓글
    192
    작성일
    2025.7.3
    첨부된 사진
    첨부된 사진
    20
  2. 별명
    리뷰어클럽공식계정
    작성일
    2025.7.1
    좋아요
    댓글
    149
    작성일
    2025.7.1
    첨부된 사진
    첨부된 사진
    20
  3. 별명
    리뷰어클럽공식계정
    작성일
    2025.7.1
    좋아요
    댓글
    128
    작성일
    2025.7.1
    첨부된 사진
    첨부된 사진
    20
예스이십사 ㈜
사업자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