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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usi
- 작성일
- 2015.10.28
안개의 사자 1
- 글쓴이
- 송주희 저
황금가지
태양신의 쌍둥이 누이이지만 아버지 아누에게서 버림받아 신이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추악한 외모를 가지고 죽은자의 공간인 셰올로 추락한 헬. 그녀는 끊임없이 아버지의 사랑을 갈구하나 아누는 침묵하고, 그 반대급부로 헬은 아누의 사랑을 모두 받고서도 오히려 그를 미워하며 제게 사랑을 속삭이는 카옐을 미워하게됩니다. 그러던 중 아누가 사랑을 담아 창조했다는 새로운 종족의 이야기가 들리게되고, 헬은 중간계 에덴에 내려가 아누의 사랑을 받은 또다들 존재 아담을 만나죠. 그러나 아담에게 유한한 생명이 주어졌다는 점, 그에게 저와 같은 또다른 '실패작'이 존재했다는 점, 카옐이 너무나 쉽게 운명을 거론한다는 점(운명을 다루는 세자매는 아버지인 아누보다는 아래지만 아누의 창조물인 신들보다는 윗계급이었거든요.) 등 풀리지 않는 의문이 쌓이게 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운명을 다루는 세 자매, 모이라이를 찾아갑니다.
모이라이는 헬의 과거를 보여주는데, 사실 헬은 주신의 창조물이되 그 근본은 미래를 보는 아트로포스였습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자신의 종말까지 내다보는 아트로포스에게 분노한 아누가 아트로포스를 산산조각내었고, 그 중 가장 큰 조각을 모이라이의 품으로 돌려보내 불완정한 미래의 역할을 하게하고는 남은 작은 파편들 중 하나에다 자신의 의지를 담아 헬을 만들어낸거죠. 그러나 주신이 만든 것 중 가장 사랑하는 피조물인 카옐이 헬에게 마음을 주자 이에 분노한 주신은 헬을 불완전한 상태로 버립니다. 카옐은 버림받은 헬을 품고 모이라이에게 찾아가 그녀에게 운명을 달라 하죠. 그러나 육신을 주려는 순간 아누가 나타나 헬을 데려가고, 카옐이 간신히 헬을 되찾으나 둘은 손쓸 새 없이 셰올로 추락합니다. 더불어 아누와 카옐의 관계도 완전히 파탄나죠.
사실 1권을 읽으면서 가장 의문이 들었던 부분이 카옐이 헬에게 느끼는 감정이 단순히 사랑이라기보다는 그 위의 단계, 즉 절대적인 애정에 가깝다는 거였습니다. 게다가 쌍둥이 오라비면 헬이 먼저 태어날 수가 없는데 카옐은 자신의 자아가 막 형성될 시기에 헬이 다가와 자신의 눈을 뜨게해주었다고 표현을 합니다. 또한 카옐은 헬조차 알지 못하는 (혹은 무의식중에 거부하는) 그녀의 마음을 느낄 수 있죠.
이제부터는 정말 주관적인 해석입니다만, 카옐은 자신 주변을 떠돌던 파편인 헬에게 잘못된 각인을 해버린겁니다. 오리가 처음 보는 존재를 어미로 여기는 것처럼, 본래는 아버지 아누가 카옐이 태어나 처음으로 접하는 존재여야 했습니다. 그러나 아트로포스를 조각낸 공간에 요람을 만드는 바람에 그 파편중 하나인 헬을 가장 처음 접했고, 결국 아누에게 가야 할 절대적 감정이 헬에게 가버린거죠. 그리고 카옐은 헬을 외면하는 아누를 미워하며 그녀의 손으로 아누를 죽이게 해주겠다 맹세합니다.
아누는 이미 제 종말에 대한 예언을 받았죠. 아마 상황이 이렇게 될 것을 알았을겁니다. 때문에 아누는 부러 카옐이 인식한 파편에 손을 대어 제 피조물로 만들고 (카옐처럼 중간에 다른 존재를 창조주로 인식하지 않는 한 피조물은 자신을 만든 아누를 결코 해치지 못합니다.) 카옐에 대한 거부의 감정을 심습니다. 하지만 아누가 헬을 완성시키지 않았기때문에 헬의 나머지 부분은 카옐이 완성시키죠. 결국 헬은 아누의 창조물이기에 아누에게 애정을 갈구하고 카옐을 미워하면서도, 카옐의 창조물이라 아누를 어느정도 미워할 수 있었고 카옐을 사랑할 수 있었으며 카옐이 헬의 감정을 알아차리는 것도 가능했던겁니다.
그러나 카옐은 태초의 맹세, 즉 아누가 헬의 발 아래서 헬의 손으로 죽게하겠다는 말을 실천하길 원했습니다. 그리고 위의 모든 사실을 알고있었죠. 나중에 헬이 모이라이를 만나 진실을 알고나서 아누에게 분노했을때조차도 카옐은 아직 모자라다고 생각합니다.
2권에 헬과 카옐이 길게 대화를 하는 장면에서 이게 가장 단적으로 드러나는데요. 어딘지 모르게 겉도는 느낌이 난다고 느껴졌다면 아마 이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카옐은 자신이 헬의 내면에서 아누를 완전히 밀어낼 수 있을만큼 커지길 바랐지만, 헬은 아예 아누에 대한 맹목적인 사랑은 일단 제껴놓고(이걸 줄일 수 있다는 생각조차 안하죠) 카옐에 대한 마음의 지분을 이야기하거든요. 보다못한 카옐이 아누한테 그런 일을 당해놓고 어떻게 그를 사랑할 수 있냐? 고 묻자 헬은 아버지를 사랑하는게 정신병이야? 라고 되묻죠. 극단적인 단어 선택이지만 정신병이라고 표현을 했다는건 카옐이 그만큼 아누를 증오한다는 것(제정신이라면 아누를 사랑 할 수 없다)과, 헬이 그만큼 아누를 섬기는 것을 절대적으로 생각한다는 것(아누를 사랑하지 않는 카옐의 태도에 지나치게 민감하게 반응)을 둘 다 나타내는걸로 보여요.
도무지 좁혀지지 않는 간극에 열받은 카옐은 결국 헬의 허락이고 뭐고 상관없이 그냥 아누를 죽입니다.
일반적으로 피조물은 창조주를 뛰어넘을 수 없었지만 카옐은 미성숙한 존재로 태어나 끊임없이 성장하고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태초에 아누가 만든 벽을 무너뜨리고 헬을 꺼냈을때부터 이미 아누의 힘을 어느정도 뛰어넘었다고 봅니다. 그리고 이로써 아트로포스가 계획했던 '복수'가 끝이 나죠. 아트로포스는 처음부터 이를 알고 일부러 헬을 아누의 손에 들어가게 한거였어요.
그런데 이제 둘의 사랑이 이루어지는데 가장 큰 장애물이었던 아누가 죽었으니 이제 카옐은 행복해졌느냐, 하면 그것도 아닙니다. 헬은 여전히 아누의 피조물로 얽매여있거든요.
이에 대한 확인사살이 맨 마지막장에 등장합니다.
"있잖아, 카옐. 내가 너를 온전히 받아들이면 아버지... 아니 아누를 죽일 필요가 사라지는 거니?"
정말로 그러기를 바랐다. (2권 275p)
즉, 다른 신들과 세상은 아누가 죽었음을 알고 카옐을 아누의 후계자로 인식해 그에게 절대적인 감정을 느끼는데 반해, 헬이 가지는 감정은 아누가 죽은 후에도 유효했던겁니다. 카옐은 아누를 죽이고 마르두스를 짓밟고 왕좌에 올랐음에도 처음부터 본인이 원하던 것, 헬의 마음 속에서 절대적인 누군가가 되는 것에는 영영 실패한거죠. 이를 모두 알기때문에 카옐은 마지막까지도 헬에게 아누가 죽었다는 말을, 그리고 자신이 죽였다는 말을 결코 하지 않습니다. 언젠가 사실이 밝혀지면 헬이 제게서 등을 돌릴 것을 알기에 그녀가 마음을 주었던 아담을 에덴에 감금하고, 벨리알의 운명의 실을 요구합니다. 마르스에게 했던 것처럼 그를 망가뜨리기 위해서요.
아마 평생 이와 같은 불안에 떨며 살겁니다.
단순히 판타지에 낯선 분들께만 취향을 타는게 아니라, 캐릭터부터 줄거리까지 그냥 전부 다 취향타는, 그러니까 속된말로 마이너한 소재라고 느꼈습니다.
우선적으로 로맨스물에서 독자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여주의 캐릭터부터가 그런데요. 여주가 순하거나 현명했던 기존의 로판과 달리, 미성숙하고 그리 현명하다 볼 수 없는 행동패턴을 지닌 전형적인 악역입니다. 자기밖에 모르고, 수단을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잔혹해지고, 과거 다른 신들과 관계를 맺은 전적도 꽤 있고, 사랑을 갈구하면서도 정작 제게 맹목적 사랑을 주는 카옐은 홀대하죠. 뿐만 아니라 신화 배경이어서인지 상당히 잔인합니다. 잘못을 저질러도 용서를 받는게 아니라 죄가 없어도 운나쁜 결말을 맞는 인물들도 많아요.
그럼에도 별점을 높게 드린건, 자칫 중간에 흐려질 수 있는 분위기를 끝까지 일관성있게 밀고나가 오히려 그걸 독특한 매력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던 점과 전작들에 비해 괜찮아진 떡밥 회수, 그리고 이기적인 주인공 싫어하는 제게도 의외로 괜찮게 다가온 헬 때문입니다. 어설피 클리셰를 따라하지 않아 더 괜찮았달까요. 게다가 소개글에서 남주가 두 명인듯해 많이 망설였는데 아담을 향한 헬의 감정은 호감에서 더이상 발전하지 못하는데다 그마저도 2권에서 아담이 아예 등장을 하지 않아 확 비중이 줄어버리는 바람에 크게 거슬리지 않았어요. (물론 반대의 경우도 있을듯 합니다.)
다만 부록으로 1,2권 모두 같은 내용이 들어있어서 아쉬웠습니다. 배경이 되는 신화나 소설 내의 설정부분을 좀 더 풀어주셨으면 좋았을 듯 합니다. 또한 본편에서 긴장감을 한껏 이끌어낸만큼 에필로그로 카옐과 헬의 이후 모습을 보여주셨으면 더 기분좋은 엔딩이 됐을텐데 지금 상황으로는 그저 남주가 불쌍할 따름이네요. 일방적인 사랑은 소설 내에 충만하지만, 쌍방향의 감정교류를 다루는 로맨스라기엔 달달함이 살짝 부족해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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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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