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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
- 작성일
- 2019.7.18
성가신 사랑
- 글쓴이
- 엘레나 페란테 저
한길사
“그렇다. 나는 어떤 실가닥을 뽑느냐에 따라 내 어머니라는 신비한 인간을 더 풍성하게 만들거나 더 비참하게 묘사할 수 있다.”
『성가신 사랑』은 어머니의 알 수 없는 죽음 이후 어머니가 남긴 흔적과 어머니에 대한 기억을 쫓으면서 진행된다.
아마도 ‘성가신’ 사랑은 죽음 후에도 어디에서나 나타나는, 전혀 유쾌하지 않은 어머니의 잔상의 성가심을 뜻하는 것일 수도 있고, 끊임없이 어머니의 사랑을 갈구하며 집착하는 자신의 사랑을 표현한 것일 수도 있다. 혹은 조금 더 추상적으로 어머니에게서부터 나로 이어지는, 가장 성가시면서도 거부할 수 없는 자신의 근본인 여성 정체성에 대한 것일 수도 있다.
소설은 비체로서의 여성의 몸을 계속하여 상기시킨다. 생리혈에 대한 구체적이고 집요한 묘사들이나 옷에 묻은 하얀 얼룩에 대한 상황들은 혐오감을 불러일으킴과 동시에 기존의 문학에서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던, 그러나 너무도 당연한 여성 모두의 일상을 날 것 그대로 보여 준다. 이는 여성의 몸의 일상성과 함께 그것에서 기인한 혐오감이라는 이중적인 면모를 보여주면서 상당히 아이러니한 느낌을 주고, 주인공을 ‘여체로서’ 끊임없이 환기하고 강조한다.
『성가신 사랑』의 가장 중요한 뼈대(어머니에 대한 사랑과 집착과 그것이 만들어낸 어린 시절의 거짓말)는 슐라미스 파이어스톤이 자신의 저작 『성의 변증법』에서 분석한 프로이트주의를 그대로 스토리화한 것 같은 느낌을 준다. 파이어스톤은 이 저작에서 엘렉트라 콤플렉스에 대하여 페미니즘적 재분석을 시도한다.
“페미니스트 용어로 재진술된 이 묘사의 가장 놀라운 특징은 어린 소녀 역시 처음에는 어머니에게 애착을 느낀다는 것이다. …… 소녀는 아버지의 더 커다란 권력을, 어머니에게는 허용되지 않은 흥미로운 더 넓은 세계에 아버지가 접근하는 것을 의식적으로 관찰하기 시작한다. ……. 이제 소녀에게는 두 가지 대인이 있다. (1) 현실적으로 상황을 판단하여 아버지로부터 그의 권력을 뺏으려고 여성의 술책을 사용하기 시작할 수 있다. (그러면 그녀는 권력자의 총애를 받기 위하여 어머니와 경쟁해야만 할 것이다.)…… 그녀는 더 열심히 노력한다. 그녀는 말괄량이가 되고, 그렇게 불리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 그녀는 더 이상 자신의 성을 부정할 수 없다. 그녀의 성이 주위의 호색적인 남성들에 의해 확인되기 때문이다. 이때가 흔히 그녀가 복수심과 함께 여성의 정체성을 발전시키는 때이다.” (슐라미스 파이어스톤, 『성의 변증법』)
『성가신 사랑』의 주인공이 처한 상황과 과거 그녀의 행동들은 파이어스톤의 분석과 맞아떨어지는 면이 많다. 반복적으로 아버지에게 폭행당하는 어머니를 보면서 만들어낸 거짓말, 그 거짓말은 안토니오와 할아버지로 대표되는 주변 남성들이 확인시켜준 자신의 성, 그리고 이로 인한 어머니와의 동일시로부터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파이어스톤이 소녀가 자신의 성을 어머니와 동일시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해서는 부정적이었던 반면, 성가신 사랑에서는 확실히 이러한 동일시를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나는데 이는 아마 어린 주인공의 감정이 이미 성인이 된 주인공에 의해 환기되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흥미로운 점은 작중에서 어머니는 침묵으로 일관하는 모습을 보인다는 것이다. 이러한 어머니의 침묵은 억압 속에서의 무기력으로 보이기도 하고, 이에 대한 저항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이 정확히 어떠한 의미를 가지는지는 어머니 자신의 입이나 행동을 통해 드러나지 않으며 단지 주인공인 딸의 상상 속에서 끊임없이 재구성되며 재탄생될 뿐이다. 이러한 재탄생은 자신을 드러내는 가장 효과적인 방식이 침묵일 수밖에 없었던 기존 여성의 삶에서 의미를 찾아주며 동시에 어머니에서 딸로 이어지는 여성 정체성(identity)의 역사를 이야기하고 있다. 이는 어머니의 이야기일 수도, 딸의 이야기일 수도 혹은 그 모두의 이야기일 수도 있다. 이런 의미에서 자신의 신분증 사진(identification card)에 어머니의 머리를 덧그리며 그 사진 속에서 어머니의 흔적을 찾는 마지막 장면은 상당히 의미심장하며 강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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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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