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셀수없는별처럼

ne518
- 작성일
- 2019.11.14
삼귀
- 글쓴이
- 미야베 미유키 저
북스피어
에도 한모퉁에 있는 주머니 가게 미시마야에서 주인 조카인 오치카가 흑백방에서 이야기를 들은 지 두해가 흘렀구나. 책은 네권째인가. 오치카가 듣는 이야기는 평범하지 않다. 이상한 이야기다. 신기하기도 무섭기도 슬프기도 하다. 책이 나온 건 두해가 넘은 듯한데 책속 사람은 두해밖에 흐르지 않았다니. 오치카가 몇살인지 잘 모르겠는데 미야베 미유키는 오치카가 나이 드는 모습을 쓰겠다고 했단다. 이 말 전에 본 것 같구나. 오치카한테 일어난 일도 나왔을 텐데, 자세하게 생각나지 않았다. 그래도 이번에 다시 짧게 나왔다. 오치카와 가까운 두 사람이 죽었다. 그저 사고나 병으로 죽었다면 오치카 마음이 덜 슬프고 덜 괴로웠을 텐데, 한사람이 다른 한사람(오치카 약혼자)을 죽였다. 남은 사람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걸까. 예전에 써둔 거 한번 찾아볼걸 그랬다. 그냥 그러지 않았을까 싶은데. 그런 일이 일어나고 오치카는 여관을 하는 집을 떠나 에도에서 주머니 가게를 하는 친척집 미시마야에 오고 흑백방에서 이상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이야기를 듣는 사람과 하는 사람은 그것만으로 마음이 나아질지도.
흑백방에서는 듣고 버리고 말하고 버리는 규칙밖에 없다. 오치카는 흑백방에 온 사람이 하는 이야기를 다른 사람한테 하지 않는다. 오치카는 다른 사람 이야기를 듣고 세상에는 힘들고 슬픈 사람이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이저저런 사람이 흑백방에 와서 이야기 하는 건 소설과 같다는 느낌이 든다. 소설에도 누군가 알기를 바라는 이야기가 담겼으니 말이다. 소설에는 잘된 사람보다 잘되지 않은 사람 이야기가 더 많다. 소설에서 여러 가지 힘든 일을 겪고도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을 보고 사람은 힘을 얻겠다. 미시마야 변조괴담도 다르지 않구나. 오치카와 오카쓰 그리고 이헤에가 이야기를 듣는 걸로 되어 있지만, 그걸 바깥에서 듣는 사람은 많다. 이 책을 보는 사람 말이다. 책을 보는 사람은 말하는 사람보다 이야기를 듣는 오치카 처지일 때가 많겠다. 아니 꼭 그렇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책을 보다가 무언가 말하고 싶은 사람이 있을지도. 사람은 이야기하고 싶어한다니. 듣고 버리고 말하고 버리는 흑백방 괜찮구나.
세상에는 죽은 사람을 되살려 내고 싶어하는 사람이 많을 거다. 그런 이야기도 많지 않은가.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프랑켄슈타인》이다. 만화 <강철의 연금술사>도 생각난다. 어떤 이야기에서든 죽은 사람은 되살릴 수 없다고 한다. 여기 실린 <미망의 여관>에서도 마찬가지다. 영혼이 돌아오기는 해도 살았을 때와는 달랐다. 죽음이 슬프고 마음 아픈 것일지라도 받아들여야 할지도 모르겠다.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죽은 사람을 되살린다 해도 그 사람은 예전과 다른 거다. 그냥 그런 느낌이 든다. 소중한 사람이 죽는다면 되살리기보다 자기 마음에 살게 하는 게 낫다. 그것 또한 살았을 때와는 다르겠지만, 죽었다 되살아난 사람은 자신을 왜 이 세상에 돌아오게 했느냐고 원망하기도 한다. 그것도 산 사람이 지어낸 이야기일지라도 아주 틀리지 않을지도 모른다. 편안하게 잠든 사람을 다시 깨운 것일 테니 말이다. 아니면 저세상에서 나름대로 살았는데 억지로 이 세상에 돌아와야 해서일지도.
두번째 이야기 <식객 히다루가미> 이야기는 재미있으면서도 쓸쓸하다. 오랫동안 함께 한 요괴 같은 게 자신을 떠나면 쓸쓸하겠지. 난 그렇게 되지 않을까 했다. 히다루가미는 산길 들길에서 쓰러져 죽은 영혼이나 요괴를 말한다. 히다루가미가 산을 넘어가는 사람한테 씌이면 음식을 먹으면 괜찮다고 한다. 도시락집 다루마야는 음식이 맛있는데 여름에는 쉬었다. 장사가 잘된다고 일을 많이 해도 안 좋을 듯하다. 지금 다루마야가 된 건 다루마야 주인인 후사고로가 고향에 다녀오다 히다루가미한테 씌이고 히다루가미를 먹이려고 맛있는 음식을 만들고 도시락 가게를 하게 돼서다. 장사가 잘된 건 히다루가미 덕분이구나. 히다루가미는 후사고로한테 오래 붙어 살았다. 히다루가미를 잘 먹게 해서 살이 쪄서 후사고로는 여름에는 장사를 쉬기로 했다. 믿기 어려운 이야기지만 재미있다. 난 장사가 잘된다고 가게를 늘리고 여기저기에 분점 내는 것보다 쉬기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맛있는 걸 먹고 싶어하는 사람한테는 미안한 일일지도 모르겠지만. 장사하는 사람도 사람이다. 한국에도 아주 없지 않겠지만 일본에는 한정된 시간에만 장사하는 곳도 있다. 그렇게 하면 음식이 남지 않아서 좋겠다.
마지막 이야기 <오쿠라 님>에는 새로운 사람이 나온다. 미시마야 둘째 아들 도미지로가 다치고 집으로 돌아오고, 오카쓰는 세책 장수 효탄코도 아들(작은 나리) 간이치를 보고 오치카와 인연이 있다고 말한다. 이런 걸 복선이라 하겠지. 오치카가 조금 마음에 들어한 선생 아오노 리이치로는 고향으로 돌아간다고 한다.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친구 자리를 물려받고 친구 아내와 아이를 돌보아야 한다. 어쩌면 그게 더 잘된 일일지도 모르겠다. 도미지로는 몸이 아프다면서 자신도 오카쓰와 같은 곳에서 흑백방에서 하는 이야기를 듣겠다고 한다. 이건 앞으로 일을 나타내는 것이기도 할까. 오쿠라 님은 향가게 비센야에서 모시는 신이다. 하지만 지금은 비센야가 없다. 오치카 앞에 나타나 오쿠라 님 이야기를 한 오우메는 실제 있는 사람인지 오치카와 도미지로 그리고 간이치가 찾으려 한다. 오우메를 본 건 오치카뿐이었다. 집안을 지켜준다고 해서 그게 좋은 것만은 아닐지도 모르겠다. 오쿠라 님은 심술을 부린 신일지도. 처음 오쿠라 님이 된 사람은 비센야 주인이 거둬준 오갈 데 없는 여자였다. 그 여자는 비센야 예쁜 딸과 비교 당하고 마음이 좋지 않았다. 사람은 얼굴이 다가 아닌데. 그 뒤로 오쿠라 님은 비센야 딸이 물려받아야 했다. 이건 저주에 가까운 게 아닌가. 일본에는 이런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있다.
오치카는 곳간에 갇힌 오쿠라 님이나 언니가 오쿠라 님이 되고 나이를 먹지 않기로 한 오우메와 다르게 살겠다고 한다. 오우메가 오치카를 만나러 와서 그렇게 생각하게 됐을지도. 사람은 마음 아프고 괴로운 일이 있어도 언제까지고 거기에 붙잡히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야겠지. 자신을 가두지 않고. 오쿠라 님이나 오우메는 자신이 자신을 가둔 것이기도 했다. 오치카는 흑백방을 나갈지도. 그렇다고 흑백방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이야기하고 싶은 사람은 여전히 있으니.
희선
☆―
사람은 이야기한다. 이야기할 수 있다. 좋은 일도 나쁜 일도. 즐거운 일도. 옳은 일도 잘못도. 이야기하고 다른 사람한테 들려준 일은, 한사람 한사람의 덧없는 목숨을 넘어 이 세상에 남는다. (<오쿠라 님>에서, 636쪽~63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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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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