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틈새 휴가, 방콕

쪽빛바다
- 공개여부
- 작성일
- 2007.6.22

방콕의 빠뚜남 시장에서 처음 구해 먹어본 이후 망고스틴은 동남아 어딜 가서도 나의 과일 쇼핑에서 빠지지 않는 품목이 되었다. 가격은 싼 편이 못 되기 때문에 한 번에 대개 1kg을 넘게 사지 않는 것이 보통이다. 이 정도 무게라면 작지 않은 망고스틴 10여 개를 얻을 수 있다. 10여 개라고 해봐야 껍질이 두꺼워 겉보기에 비하면 속살은 작은 편이어서 그저 한 번에 먹을 수 있는 양이다. 한 끼를 과일로 때울 생각이라면 바나나와 망고 그리고 구아바를 푸짐하게 사고 후식으로 망고스틴을 곁들여 사는 것이 좋다.
망고스틴을 일컬어 과일의 여왕으로 칭송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과일의 여왕이니 왕인 두리안과 짝을 이루어 말하는 경우도 많다. 철퇴처럼 험악하게 생긴 두리안과 작고 곱상하게 생긴 망고스틴이 부부관계라? 왕과 왕비가 어떤 연으로 맺어지는지 평민인 내가 알 바는 아니지만 겉모습으로도 맛으로도 이 둘이 무슨 인연이 있다거나 그도 아니면 내연의 관계라도 있다는 심증을 가지기가 쉽지 않다. 시장의 과일가게에서 두리안과 망고스틴을 함께 놓는 일은 다반사이다. 이렇게 왕과 왕비가 나란히 모셔져 있는 것을 흔히 볼 수 있지만 역시 어울린다는 생각은 여간 그로테스크한 상상력을 동원하지 않으면 떠올리기 쉽지 않다.
망고스틴을 과일의 여왕이라 말하는 이유는 무엇보다 이 과일이 다른 평민(?) 과일보다는 흔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망고스틴은 나무에 열리는 과일로 망고스틴 나무가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식재된 후 최소한 7~9년, 대개는 10년 또는 20년을 기다려야 한다. 묘목을 이식한 후 뿌리를 내리는 과정도 까다롭기 짝이 없어서 쉽게 뿌리를 내리지 않아 애를 먹이는 나무 중의 하나가 망고스틴이다. 그러나 수령이 20년 이상에서 45년 사이의 나무에서는 무려 2천에서 3천 개에 달하는 열매를 수확할 수 있다. 그나마 망고스틴이 흔하지는 않지만 드물게 보이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게다가 망고스틴은 배타성이 강한 편이어서 동남아의 태국, 캄보디아, 미얀마, 남부 베트남 등을 제외한 지역에서는 쉽게 뿌리를 내리지 못했다. 예컨대 하와이에서는 무척 오래전에 재배가 시도되었지만 토양에 적응하지 못해서 지금도 귀한 나무 중의 하나이다. 어지간한 열대과일은 모두 재배하고 있는 북미의 플로리다에서도 망고스틴만큼은 쉽게 자라지 못하는 작물이다. 요컨대 망고스틴은 성질이 수더분하거나 어디서나 쉽게쉽게 살아가는 나무가 아니라 따지기 좋아하고 콧대 높은 작물인 것이다. 이쯤 되면 망고스틴에 여왕이라는 칭호가 썩 어울릴 법도 하다.

16세기에 말레이반도를 여행했던 유럽 여행자 린스코트(Linscott)는 두리안의 배필로서 망고스틴에 대해 다소 이견을 보이는 기록을 남겼다. 그는 두리안에 주어진 왕위에 대해서도 약간의 이견을 제시했는데 그것은 이 과일이 맛을 풍족하게 하는 신맛을 전혀 가지고 있지 않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그는 두리안의 독특하고 감미로운 맛에 대해서는 왕의 자격이 있다는 것을 인정했기에 두리안의 왕실을 완벽하게 하려면 왕비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린스코트가 왕비 후보자로 제안했던 것은 오렌지, 포도, 망고, 망고스틴이었다. 나열한 순서는 그대로 후보 서열 순위였으므로 글의 마지막에서 그는 두리안이 오렌지와 결혼한다면 흠잡을 데 없는 왕실이 탄생할 것이라고 적었다.
혹자는 린스코트의 이 중매를 두고 서구 중심의 발상이라고 비난할지도 모르겠지만 그렇게 볼 필요는 없다. 오렌지는 중국 남부와 후일의 인도차이나 지역이 원산지로 유럽에 본격적으로 전파되었던 것은 17세기에 이르러서였다. 이른바 캘리포니아 오렌지는 더욱 훗날이 돼서야 등장한다. 린스코트가 이 글을 적은 것은 정확하게 1599년이었으니까 오렌지는 명실상부하게 아시아에서만 자라는 토종과일이었던 것이다. 의아한 것은 두리안의 왕비 후보로 망고스틴이 망고보다도 소홀하게 취급되었다는 것인데 아마도 그는 두리안의 맛을 보완하기 위해서는 신맛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그래서 가장 신 축에 속하는 오렌지를 으뜸으로 꼽았던 것으로 보인다. 내 경험으로 이 주장은 설득력이 있다. 나는 신맛을 끔찍이도 싫어하는 족속 중의 하나이지만 동남아를 여행하다보면 마치 애 밴 아낙처럼 신 것이 그리워질 때가 있다. 입맛이란 아마도 완벽하게 편중될 수는 없는 것이다.
망고스틴의 색은 보랏빛으로 말하기도 하지만 진한 자줏빛에 가깝다. 껍질을 으깨어 나오는 즙의 색깔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중국에서는 망고스틴의 껍질을 검은색을 내기 위한 천연 염료로 이용하기도 한다. 열대과일 중에 이처럼 짙은 색을 내는 것은 그리 흔하지 않다. 대체로 이와 비슷한 색을 내는 것으로는 각종 베리(Berry)와 같은 장과류(漿果類)들이 있지만 생김새나 크기에 있어서 망고스틴과 비교할 수는 없다.
망고스틴은 대개 어린아이의 주먹보다 조금 작거나 크다. 짙은 색 때문에 과일 중에서는 쉽게 눈에 띄는 편이다. 게다가 꼭지에 매달린 턱잎이 아주 특이하다. 두툼하고 짧아 머리가 큰 아이에게 억지로 작은 모자를 씌워준 것처럼 보인다. 흥미로운 것은 꼭지의 반대편에 남아 있는 흔적이다. 어설프게 조작을 한 것처럼 보이는 이 자국은 꽃잎의 흔적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신통하게도(사실은 그럴만한 이유가 있겠지만) 그 조각의 수와 과일 안의 알맹이 수가 정확하게 일치한다. 때문에 껍질을 벗기지 않고도 속살의 조각이 몇 개나 들어있는지 귀신(?)처럼 알아맞힐 수 있다. 이 사실을 알지 못하는 사람 앞에서 적당히 눈에 힘을 주는 시늉을 하면서 속살의 조각 수를 알아맞히면 대개는 그 비결을 알고 싶어 여간 안달을 내는 것이 아니다. 물론 사실을 알고 나면 누구나 허무해 하지만.
망고스틴의 껍질은 두꺼운 편이지만 힘은 없다. 칼을 쓰지 않아도 껍질을 두 쪽으로 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지만 껍질에서 배어나오는 자줏빛 액이 손에 묻어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염료로 쓰기도 하는 이 액은 옷에 묻으면 쉽게 지워지지 않기 때문에 손을 옷에 닦을 때에는 열심히 빨래할 각오를 해야 한다.
망고스틴의 속살은 마치 귤처럼 조각으로 나뉘어져 있다. 색은 우유와 같은 흰색이고 속껍질은 없다. 흔히 새콤하면서도 달콘하다는 말을 많이 쓰지만 망고스틴이야말로 이 표현이 가장 어울리는 과일이다. 그 새하얀 속살을 입안에 넣고 지그시 씹으면 새콤하고 달콤한 즙의 기운이 마치 향기처럼 입안에 가득 배어든다. 내가 아는 한 열대과일은 물론이고 다른 어떤 과일도 이와 비슷한 맛을 내는 과일은 없다.

망고스틴은 거의 향기가 없는 과일이다. 그러나 그 맛을 보면 과일의 향기가 후각을 통해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 미각을 통해 느껴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향기란 무엇인가? 그것은 공기 중에 균질하게 퍼져 후각뿐만 아니라 자신의 몸을 에워싸는 듯한 느낌을 주는 것이다. 이런 느낌은 우리가 어지간히 몸을 움직여도 냄새는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기 때문에 주어진다. 후각과 미각이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으면서도 서로를 흉내낼 수 없는 것은 미각이 구조상 후각의 이런 느낌을 흉내낼 수 없기 때문이다. 맛을 느끼는 혀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짠맛과 단맛, 신맛 등을 느끼는 부위가 제각기 다르다. 여간해서는 (향기처럼) 입안에 가득 퍼지는 맛을 느끼기 어려운 것이다. 그러나 망고스틴의 맛은 향기처럼 입안에 가득 퍼지는 느낌을 준다. 아마도 망고스틴에는 신맛과 단맛은 물론 혀가 느낄 수 있는 모든 종류의 맛이 신묘한 균형을 이루고 있어 혀의 모든 부분을 골고루 자극하고 나아가 잇몸과 입천장 등에 배어든다고 하는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신맛과 단맛의 조화는 모든 과일의 미덕이다. 시기만 해서도 부족하고 달기만 해서도 미진하다. 신맛이 강하면 자극적이 되고 단맛이 강하면 느끼하게 된다. 물론 먹는 사람들의 취향에 따라서 상대적이기는 하지만 망고스틴만큼 시고 단 맛을 적절하게 배합해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어내는 과일도 흔하지 않을 것이다.
망고스틴의 속살은 즙이 풍부하다. 물론 오렌지나 귤과 같은 감귤류도 즙은 풍부한 편이지만 그 즙은 속껍질 속의 알갱이에 담겨 있어 이빨에 저항감을 남긴다. 씹어서 짜내는 느낌을 주는 것이다. 그러나 망고스틴의 속살은 뭐랄까, 마치 적당한 탄력을 가진 커스터드를 씹는 것처럼 부드럽다. 이빨을 차악 감싸는 것이다. 속살만으로도 풍부한 즙이 배어나기 때문에 미각뿐 아니라 입안의 촉감들도 일조하여 맛이 입안에 퍼진다는 황홀한 느낌을 화음으로 연주할 수 있는 것이다.
망고스틴은 그대로 먹을 뿐이지 요리를 한다거나 음식에 곁들인다거나 하는 경우는 드물다. 두리안이 몸에 열을 내는 것과는 달리 망고스틴은 그런 효과와는 거리가 멀고 오히려 열을 식혀준다고 알려져 있어 두리안과 함께 먹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망고스틴에 열을 내리는 성분이 포함되어 있지는 않다. 다만 망고스티의 속살이 아이스크림처럼 차게 느껴지는 경우가 많아서 심리적으로 도움을 주기는 할 것이다.
전통적으로 중국에서는 망고스틴을 약재로 이용해왔다. 얇게 잘라 말린 후 빻아서 가루를 낸 망고스틴의 껍질은 이질을 낫게 하는데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고, 이 가루로 연고를 만들면 피부병을 치료할 수 있는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껍질을 달여 먹으면 설사나 방광염에 좋고 아스트린젠트 로션을 만들어 화장품으로도 사용하기도 한다.
열대지방의 상온에서 망고스틴은 익은 후 대략 20~25일 정도 보관할 수 있다. 이 기간이 지나면 껍질은 딱딱해지기 시작하고 속살 역시 질겨지기 시작한다. 물론 즙도 조금씩 말라간다. 결국 껍질은 벗기기 힘들 정도로 굳고 속살은 완전히 밀라버린다. 사정이 이렇기 때문에 열매를 거두는 5월쯤에서 6~7월까지가 가장 좋은 망고스틴을 맛볼 수 있는 시기이고 대체로 우기 동안에도 그럭저럭 괜찮은 맛을 볼 수 있다. 이 시기가 아니더라도 연중으로 팔리는 망고스틴을 만날 수는 있다. 가장 훌륭한(?) 최악의 망고스틴은 2~3월쯤에 동남아 어디서나 만날 수 있다. 운 나쁘게도 이때 망고스틴의 맛을 본 사람들은 적잖이 실망하기 마련이다. 이때의 망고스틴은 껍질은 윤기가 없고 거칠며 딱딱하게 굳어 있는 느낌까지 주며 속살에는 노릇하게 무른 흔적까지 남아 있어 마치 상한 과일처럼 보이기도 한다.
좋은 망고스틴을 고르는 법에 대해서 말하자면 잘 익고 싱싱한 망고스틴의 껍질은 부드럽고 살짝 누르면 약간 들어가는 느낌을 준다. 반면에 때가 지난 망고스틴은 껍질이 딱딱하고, 완전히 맛이 간 망고스틴은 껍질이 마치 나무껍질처럼 단단하게 느껴진다. 만지지 않고 껍질의 색깔로도 짐작할 수는 있다. 윤기가 돌고 검은색이 아닌 진한 자줏빛으로 보이면 싱싱한 망고스틴이다. 윤기가 없고 거무끄름하면 역시 맛이 간 망고스틴이다. 하지만 눈에 의존하기보다는 살짝 만져보는 것이 가장 정확하다.
- 발췌 <달콤한 열대(유재현 글/월간 말)> 중에서
- 그림 김주형 화백(http://www.cyworld.com/kocdu)
** 태국에서는 망고스틴을 ‘망쿳(Mangkut)'이라 부르며, 1kg에 20~35B 정도다.(2007년 6월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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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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