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나타운>이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지 않는 악의 세상에 존재하는 인간미를 살짝 보여줬다면, <악의 연대기>는 선악을 구분할 수 없는 시대에, 선 혹은 선한 사람은 존재할 수 있는가에 대한 우문을 한다. 그 답을 명확하게 찾을 수 있다면, 이 영화를 제대로 본 것일까? 그런데도 이 영화가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생각하게 된다. 사회생활을 하며 정의보다 악에 물든 사람이 절대적 악인이 아님을, 선한 사람이라 생각했던 사람이 수십년간 하나만 생각하고 살아왔음을, 그 모든 것의 시작에 약한 존재를 건드리는 사람들이 있었음을.

      최반장(배우 손현주 씨), 오형사(배우 마동석 씨), 차동재(배우 박서준 씨), 김진규(배우 최다니엘 씨). 이 외에 많은 인물들이 등장하지만, 선과 악의 경계는 처음부터 모호하다. 한 인물을 선한 사람으로 봐야 할지 악한 사람으로 봐야할지 결정하기 전에 개개의 인물은 어쩌지 못하는 상황속에서 선택을 한다. 그리고 그 선택은 예상하지 못한 또 다른 상황으로 연결된다. 마치 게임의 난이도를 높여가듯. 이 영화의 반전은 바로 이곳에 있다. 스토리의 반전 외에 점차 게이지를 높여간다고 생각했는데 남자 두 사람이 마주하는 두 장소를 교차하는 순간 이미 모든 단서를 관객이 보고 들었음을 알게 되는 것.

      인생에서 계획대로 되는 것보다 우발적인 상황이 만들어낸 희극과 비극. 그 사이에서 한 순간에 누군가를 감싸거나 드러내려는 순간에 그 인물은 이미 선과 악의 경계를 구분할 수 없다. 그래서, <부당거래>와 <악마를 보았다>에서 본 명확한 선악의 구분은 이 영화에 흐릿하다. 바로 이 영화가 관객을 혼란하게 하는 부분은 이 지점이다. 한 단어로 인물을 규정할 수 없는 시대. 그리고, 자신도 모르는 새 이미 선택한 것에 대한 책임.

      <끝까지 간다>의 이미지가 많이 보이기도 한다. 두 남자가 이야기를 이끄는 동안 선의의 피해자가 생기는데, 이 영화 역시 최반장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다가 다른 인물들이 중첩되면서 역시 선의의 피해자가 발생한다. 그런데, 그 선의의 피해자 중에 일부는 꼭 그렇지만도 않다. 기시감이 생길 수도 있는 이야기의 구성을 다르게 보이게 하는 것은 음악이다. 옳다 그르다, 선하다 악하다라는 단어 대신 상황이 만들어 낸 템포를 인물들의 표정과 카메라 각도를 극대화해주는 음악.

      영화가 말하는 긴장감이 영화 보는 내내 몰입하게 한다면, 영화 뒤에 남는 씁쓸함은 이 시대에 대한 씁쓸함이다. 조금 아쉬운 점이 있다면, 비오는 장면에서 두 사람이 서로를 마주할 때 손현주 씨에 비해 박서준 씨의 임팩트가 약하다는 것. 전체 장면이나 상반신 장면보다 한 눈동자만 확대촬영했거나 이 외에 다른 방법으로 관객을 압도했다면, 그 사람이 '나쁜 사람'이 아니었으나 그럴 수밖에 없었던 상황을 관객에게 조금 더 설득할 수 있었을지도.

      이 영화의 한 컷, 선한 이미지의 배우 손현주 씨가 어느 순간 쫓기는 악의 모습을 보여주는 그 순간. 그리고 앳된 이미지의 선한 배우 박서준 씨가 감정없는 눈빛을 담아 스크린을 응시하는 순간. 이미 선과 악의 명확한 대비는 존재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런데, 세대를 넘어, 사람과 사람 사이를 넘어 악이 악을 낳고, 그 악이 또 다른 악을 낳는 시대. 이 시대에 선의 존재, 선한 인간이 존재할 공간은 찾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