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일이 탄소 공명에너지 준위를 찾아낸 방식을 두고 약한 인류 원리(weak
anthropic principle)를 과학에 성공적으로 적용한 최초의 사례라고 평가하는 역사가도 있다. 약한 인류 원리란, 우주의 모든 성질과 상태는 인간이 우주에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과 일관성 있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우주의 진화 방식이나 물리적 작동 방식이
인간이 존재한다는 사실과 모순되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중략)

물론 여기에서 말하는 ‘일관성’이
인간 존재의 ‘필연성’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일부 종교인들은 우주가 필연적으로 인간의 존재를 예측하는 방식으로 설계되었다는 강한 인류 원리(strong anthropic principle)를 주장하기도 하지만 이는 과학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주장은
아니다.” (179쪽)

인류 원리에 대해서 처음 읽은 것은 브록스가 엮은 “엣지 시리즈” 중 한 권에서였다. 거기선 ‘약한’과 ‘강한’의 구분이 없었다. 그래서인지 이게 과학자가 할 소리인가 싶었다. 생각해보니 거기서
얘기했던 것은 ‘약한 인류 원리’였던 것이다. 인간이 존재하기 위해서 우주가 어떠어떠했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존재를 설명하기 위해서 우주의 진화에 대한 설명이 어떤 일관성을 가져야 한다는 얘기라는 것은 충분히 생각해볼 수도 있는 문제다.

“약한 인류 원리는 이 우주에 인간이 존재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었지만 적어도 우리의 존재와 우주의 성질과 물리법칙
사이에 모순은 없어야 한다는 당연한 말을 하고 있을 뿐이다.”

우리는 모두 별에서 왔다 윤성철 저 21세기북스 | 2020년 01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