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을 읽으며

e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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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6.29
베토벤 교향곡 3번 <영웅 교향곡>과 관련해서는 잘 알려진 일화가 있다.
나폴레옹을 흠모했던 베토벤이라 자신이 작곡한 교향곡에 <보나파르트라는 제목의 대교향곡>이라는 제목을 붙였는데, 나폴레옹이 스스로 프랑스 황제에 등극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분노하여 “그 역시 다른 이들 위에 군림하는 독재자가 될 것이다!”라고 외치며 악보 타이틀 페이지를 찢어버리고 <신포니아 에로이카>, 즉 <영웅 교향곡>으로 제목을 바꿨다는 얘기다. 베토벤의 제자이자 친구였던 리스가 전한 이야기다.
하지만 에드먼드 모리스는 『인간으로서의 베토벤』에서 조금 다른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일단 베토벤이 이 교향곡을 발표한 1804년에서 1805년의 어느 시점에 나폴레옹에 대한 미몽에서 깨어나 불같이 화를 냈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고 밝히고 있다. 악보를 보면 황제의 이름(즉, 보나파르트)을 적었던 부분이 격렬하게 지운 흔적이 있다(구멍이 뚫려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런데 에드먼드 모리스는 “1804년 여름 라이프치히의 출판사 브라이트코프 운트 헤르텔에 보낸 악보에 여전히 ‘보나파르트라는 제목의’라는 문구가 선명한 상태였”다고 쓰고 있다. 그러니까 베토벤이 자신이 작곡한 교향곡의 제목을 바꾼 시점이 나폴레옹이 황제에 즉위한 소식을 들은 ‘직후’는 아니었다는 얘기다.
그도 그럴 것이 1804년 6월 이 곡을 가지고 오케스트라 단원들을 연습시키고 첫 리허설을 할 당시만 해도 <보나파르트라는 제목의 대교향곡 Sinfonia Grande intitulata Bonaparte>였는데, 그때는 나폴레옹이 황제로 등극한 지 이미 2주가 지난 시점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8월이 되도록 여전히 자신의 교향곡을 “보나파르트 교향곡”이라고 칭하고 다녔다고 한다.
사실 리스가 3번 교향곡의 제목을 바꾼 일화를 증언한 시점은 그 일이 있은 지 30년도 더 지난 1937년이었다. 그러니 기억이 분명하지는 않았을 터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그럴듯한 추론은 사람들은 뭔가 극적인 이야기를 좋아한다는 점이다. 그저 밍숭맹숭하게 슬그머니 교향곡의 제목이 바뀌었다고 하기보다는 ‘즉시’, ‘불같이 화를 내며’, 악보 첫 장을 ‘찢어버리고’, 혹은 제목의 한 부분을 ‘북북 그어대 구멍을 내버리고’ 제목을 바꿨다고 하는 게 훨씬 주목받을 만한 얘기가 아닌가? 그리고 그게 훨씬 기억에도 잘 남고, 실제로 베토벤의 성격에도 맞을 듯하다. 신화는 그런 것이다. 사실이 아니라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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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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