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을 읽으며

ena
- 공개여부
- 작성일
- 2011.12.13
<미친 연구 위대한 발견>가 소아마비 백신을 만들어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과학자 중 한 사람이 된 소크 대신에 백신에 대한 가장 중요한 연구를 했지만 대중에게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존 엔더스를 다루고 있듯이, 항생제에 대해서도 플레밍 대신 플로리를 다루고 있다.
내가 항생제에 대한 강의를 하거나 발표를 할 때 거의 항상 첫 슬라이드로 보여주는 것이 바로 플레밍의 사진과 그의 연구에 대한 내용이다. 그러나 또한 함께 그 다음 장으로 그 플레밍과 함께 노벨상을 수상한 플로리와 체인을 함께 보여준다.
사실 첫 항생제로 인정받고 있는 페니실린의 역사를 보면, 약 10년의 역사가 떠 있다. 그림에서도 보듯이 플레밍이 페니실늄이라는 곰팡이가 황색포도상구균의 증식을 억제한다는 것을 발견하고 발표한 것은 1928년의 일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 후 바로 페니실린이라는 항생제가 만들어지고 놀라운 역사를 만들어냈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실은 그렇지가 않다. 플레밍은 거기까지였다. 그 후 1930년대 말 플로리 연구팀이 그의 논문을 찾기 전까지는 페니실린이라는 항생제는 세상에 드러날 수가 없었다.
“체인은 세균 성장을 억제한다고 알려진 물질에 대해 서술한 논문을 200여 편 찾아냈다. 그러던 어느 날, 체인은 1929년에 플레밍이 <영국 실험병리학>지에 실은 짧고 소박한 논문을 한 편 찾아냈다. 논문 제목은 『B형 인플루엔자 검출에 활용하는 사례를 중심으로 한 페니실륨 배지에 항생작용에 대하여』였다.” (468쪽)
그 후 플로리의 연구팀은 페니실린의 정제에 온 힘을 쏟아 1942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약으로 쓸 수 있는 페니실린 개발에 성공하였고, 제2차 세계대전에서 놀라운 승리(?)를 거두게 된다. 그런데 왜 플로리는 대중의 기억에서 거의 지워지고 플레밍의 이름만 기억하게 된 것일까? 바로 개인적 성향과 ‘언론’의 문제였다. 플로리는 옥스퍼드대학으로 몰려온 취재진을 따돌리고 도망가버리고 말았고, 인터뷰도 거절했던 반면, 플레밍은 그런 언론의 관심을 즐겼다.
“언론은 페니실린을 개발하려고 플로리 연구 팀이 10여 년의 세월을 노력했다는 사실 따 따위 무시해버렸다. 기자들은 첫 번째 항생제가 탄생할 때까지 수많은 화학 실험, 기술 혁신, 임상 연구를 거쳐야 한다는 사실을 몰랐다. (중략) 실제로 페니실린 약품을 만들고 몇 년 동안 고생한 옥스퍼드 대학 연구 팀은 유명한 ‘플레밍 신화’라는 대중들의 이야기 속에 가려진 권말 부록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497쪽)
이 이야기는 플레밍의 업적이 하잘 것 없음에도 그렇게 칭송받는다는 뜻이 아니다. 사람들이 알고 있는 과학자의 업적이 어느 한 사람에게만 왜곡되어 집중될 수도 있고, 그런 와중에 정작 존경받고 관심받아야 할 과학자는 그 이름이 잊혀질 수도 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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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