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을 읽으며

ena
- 공개여부
- 작성일
- 2015.5.28
“생물학자는 정의나 본질을 꼬치꼬치 따지지 않는 법을 배운 사람들이다.” (『직관
펌프 생각을 열다』, 304쪽)
- 대니얼 데닛의 이 문장을 이 문장만을 두고 읽는다면 생물학자의 입장에서는 다소 기분이 안 좋을 수 있다. 하지만 이 문장이 왜 나왔는지를 본다면 좀 달라진다. 이 문장은 44번째 생각 도구 <종 분화는 언제 일어날까?>라는 글의 거의 마지막 문장이다(정확히는 뒤에서 두번째 문장).
종 분화(speciation)은 진화의 역사에서 지금과 같이 다양한 생물종들이 나타나게 된 기본적인 사건으로 여겨진다. 그런데, 대니얼 대닛은,
“모든 계통에서의 모든 탄생은 잠재적 종 분화 사건이지만, 종 분화는
거의 절대로 일어나지 않는다.” (301쪽)
잠재적 종 분화
사건이지만, 종 분화는 ‘거의’ ‘절대로’ 일어나지 않는다니. 이
모순형용과도 같은 말은 글을 차분히 읽어보면 진화를 이해하는 중요한 통찰을 얻을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진화에 대한 오해를 바로잡는데도 도움이 된다. 즉, 진화를
딱 어떤 사건처럼 여기는 오해 말이다.
“지금으로부터 50년 뒤에 우리(호모
사피엔스)의 후손이 대부분 바이러스에 이해 전멸하고 운 좋은 소수만 살아남았다고 가정해보자. 생존자는 그린란드 근처의 외딴 섬 콘월리스에 사는 이누이트족 1000명과
인도양 한가운데 섬들에 고립되어 살아가는 안다만족 1000명의 두 집단 뿐이다.”
이런 가정은 충분히
가능한 가정이고, 아마 지구 상의 진화 역사 가운데 무수히 일어났을 사건일 수도 있다. 이런 사건 후 상당한 시간이 흐른다면 이 두 집단이 아주 다른 환경에서 서로 다른 생리적 특징을 발달시켜나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사건을 먼 훗날 종 분화라 불릴 것이다. 이
경우 지리적인 격리에 의한 종 분화이므로 유식하게 말한다면 이소적 종분화(allopatric
speciation)이다 (고등학교 교과서에서도 가르치는 것이므로 그다지 유식한 것은 아닐지
모른다). 그렇다면 종 분화는 언제 일어난 것일까?
이 두 집단이 공통
조상을 공유했던 가장 오래된 시기? 인류 대부분을 멸종시켰던 바이러스가 창궐한 그 시기?
“하지만 그 때 종 분화 사건이 시작되었는지 아닌지는 오늘날에도 확정되지 않았다.”
이런 예는 늑대에서
개로 진화되는 사건에도 적용해볼 수 있다. 언제 늑대가 개로 진화했을까? 누군가는 언제쯤이라고 얘기를 하지만, 그 시기에 정확히 종 분화라는
사건이 일어났는지는 얘기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냥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종 분화가 일어났다는 얘기다.
아마도 물리학자라면
이런 상황을 답답해할 지 모른다. 심지어 그래서 일반화라는 게 결코 쉽지 않은 생물학을 과학이 아니라고
하는 경우도 있는 걸 봤다. 그런데 생물학자는 이런 상황을 결코 우려하지 않는다. 익숙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대니얼 데닛이 그렇게 얘기하는 것이다.
“생물학자는 정의나 본질을 꼬치꼬치 따지지 않는 법을 배운 사람들이다. 생물학에서는
중간 사례를 만들어내는 과정이 잘 알려져 있다.”
물론 생물학자라
해서 항상 두리뭉실 하게 넘어간다는 것은 아니다. 그런 법을 배웠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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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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