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을 읽다

ena
- 작성일
- 2018.3.15
미술관에 간 수학자
- 글쓴이
- 이광연 저
어바웃어북
읽기 전에 수학자가 미술에
대해 무슨 얘기를 할 수 있을까 생각해봤다. 떠오르는 것들이 몇 가지 있었다. 원근법이 있을 것이고, 황금비도 얘기할 것이다. 그리고 원과 삼각형을 그어놓은 구도도 있을 것 같고, 뫼비우스의
띠 등을 그린 에셔 얘기도 할 것 같았다. 프랙탈 얘기도 들어갈 것 같고… 그 정도였다. 그럼 그 정도로 책 한 권을 쓸 수 있을까? 수학자는 정말 그림에서 얼마나 많은 것을 수학적으로 볼 수 있을까 궁금해질 수 밖에 없다.
예상했던 것들은 모두 다루었다. 르세상스 시기를 들면서 발견한 원근법의 원리에 대한 얘기에서 시작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그림 속 저 먼 세상을 그리다>), 인체를 그리거나 추상화를
그리는 데 황금비를 이용한 얘기를 하고 있다(<수학자의 황금비율 감상법>, <예술과 수학은 단순할수록 위대하다?>). 에셔의
그림은 언제나 재미 있다(<수학을 그린 화가 ‘에셔’). 뜻 밖에 재미 있는 것은 착시 현상에 관한 그림 얘기(<당신의
시선을 의심하라>)로 마그리트의 그림들에 대해서 다시 보게 되었다.
그런데 솔직한 얘기로 좀
억지스러운 면이 없지 않았다. ‘수학자’라고 했으니 수학의
관점에서 보고 글을 쓰는 데 강박 관념 같은 것을 가진 느낌이다. 파에톤의 추락에 관한 그림을 보고
달력의 탄생을 연상하고, 헤라클레스가 히드라를 제거하는 그림에서 거듭제곱의 의미를 생각하고, 아담과 이브가 사과를 따먹는 그림을 통해서 사이클로이드를 얘기하는 것들은 괜찮을 수도 있지만, 사실은 거꾸로 시간의 흐름을 인식하였기 때문에 파에톤이라는 신화 속 인물이 탄생할 수 있었고, 거듭제곱이라는 무시무시한 수의 법칙이 히드라의 머리에 적용되는 것이다. 말하자면
수학에서 그림으로 가는 것이지, 그림에서 수학으로 진행되는 것은 아닌 셈이다. 어쩌면 저자는 수학의 얘기를 정해놓고 그림을 찾은 느낌이다. 그래서
좀 억지스런 면이 생기는 게 아닌가 싶다. 고양이를 그린 그림을 보고 슈뢰딩거의 고양이를 연상하고, 그래서 양자역학을 얘기하는 것은 누가 봐도 억지스럽다. 굳이 수학적으로
보지 않더라도 되는 것은 억지로 수학을 끌어온 얘기들이 적지 않다.
어쨌든 그림이 중심이 되어야
하는 책 같은데(내가 읽어본 이 시리즈의 다른 책들 『미술관에 간 화학자』와 『미술관에 간 의학자』는
그랬다), 그림이 오히려 뒤에 서게 된 상황 역시 아쉬운 점이다. 어떻게든
그림에서 수학에 관한 얘기를 찾아내서 들려주는 것은 이해할 만한데, 그렇게 찾아낸 수학의 원리와 이야기가
그림에 어떻게, 얼마나 잘 구현되고 있는지에 대한 게 없으니 그림을 다시 들여다보게 되는 경우가 별로
없다. 이 책이 미술에 관한 책보다는 수학에 관한 책에 가깝다는 느낌이 드는 이유가 아마도 그것 때문인가
싶다. 전문적인 수학 방정식과 계산 등은 최대로 아꼈으면서도 그렇게 된 게 오히려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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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