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을 읽다

ena
- 작성일
- 2018.9.10
[예스리커버] 모스크바의 신사
- 글쓴이
- 에이모 토울스 저
현대문학
이 소설의 액면 상 공간은 매우 좁다. 모스크바의 메트로폴 호텔을 벗어나지 않는다. 러시아 혁명 이후 외국에서 돌아온 알렉산드르 로스토프 백작은 재판을 받고 자신이 묵고 있던 메트로폴 호텔을 벗어나면 총살형에 처해진다는 처분을 받는다. 스위트룸에서 쫓겨나 좁은 방으로 옮겨지기까지 한다. 그게 1922년, 그의 나이 서른 셋이었다. 그 좁은 공간 안에서 수십 년 동안 벌어지는 일이지만, 그 안에는 세상이 응축되어 있었다(실제로 모스크바에는 메트로폴 호텔이 있다고 한다).
로스토프 백작은 그렇게 나락을 떨어진 자신의 인생을 한탄하거나 후회하지 않는다. “환경을 지배하지 않으면 환경에 지배당할 수 밖에 없다”는 아버지의 가르침 대로, 늘 ‘낙관적으로’ 자신의 인생을 받아들이고, 그 환경 아래에서 환경과 조건을 이용하며 살아간다. 어린 소녀 니나를 만나 친구가 되고, 유명 배우의 연인이 되고, 호텔의 고급 식당의 웨이터가 되고, 공산당 고위 간부의 개인 교수 역할까지 하면서, 나중에는 어른이 되어 돌아왔지만 다시 떠나가는 니나의 어린 딸, 소피야까지 맡아 키우면서 아버지의 역할을 한다. 그게 모두 메트로폴 호텔 내에서만 이뤄지는 일이다. 단 한번 그 호텔을 벗어나는 데 그것도, 소피야가 다쳐서 응급 상황에서 경황 없이 병원으로 달려간 것뿐이었다. 구시대 귀족으로서 고급 취향을 버리지 않으며, 젊었을 적 닦은 풍부한 교양을 바탕으로 태생적인 유머를 잃지 않으며 새 삶을 개척해 나간 것이었다.
이야기는 러시아의 볼셰비키 혁명에서 1920, 30년대 스틀린의 등장과 공포 정치, 2차 세계 대전, 전후의 흐루쇼프의 등장까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말하자면 혹독한 시절인 셈인데, 백작의 친구 미시카가 체홉의 편지를 편집 출간하는 과정에서 삭제 요구에 반항하면서 유형지를 끌려가기까지 했다. 미시카는 로스토프 백작과 달리 혁명의 요구에 충실히 응대하려 했던 인물인데 말이다. 실제로 로스토프 백작이 바로 사형을 당하지 않고, 그나마 연금형에 그칠 수 있었던 것은 미시카의 시를 로스토프의 이름으로 발표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인생은 어떻게 흘러갈 지 알 수 없는 것인 모양이다. 미시카는 로스토프에게 이렇게 이야기한다.
“그 옛날 너에게 평생 메트로폴을 떠날 수 없다는 연금형이 선고되었을 때, 네가 러시아 최고의 행운아가 되리라는 걸 그 누가 상상이나 했겠어.”
이렇게 실제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고, 그 시대의 흐름에 따라 나라의 호텔의 권력 관계도 변하지만, 로스토프 백작은 한결 같다. 마치 주변 배경은 변하고, 사람들은 분주하지만, 주인공은 한 자리에서 서서 앞만 똑바로 쳐다보는 장면처럼. 그러나 그게 화석화되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 대한 관심을 잃어버리거나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그게 그 사람이 살아가는 방식이며, 실제로는 ‘한 시대가 그 시대의 산물에게 새겨놓은 자국’인 셈이다. 그래서 이 소설을 읽으며 줄리언 반스의 『시대의 소음』이 자꾸
생각났다. 작곡가 쇼스타코비치가 시대를 견디어 낸 방식과 로스토프 백작이 시대를 견디어 낸 방식은 아주
다르지만, 결국은 그 시대를 견디어 낸 것만큼은 사실이다.
그러나 결국은 탈출한다. 로스토프 백작도 호텔에서 탈출한다. 한번도 탈출을 생각하지 않았던
그가 탈출을 하게 되는 것은, 딸로 키운 소피야를 서방 세계로 탈출시키면서다. 이제 자신의 세대가 아니라 다음 세대에 대한 응답인 셈이다. 운명은
받아들이기 나름이지만, 그 운명을 바꿀 수 있는 것은 여전히 사람인 셈이다.
소설은 절대 밝은
시대를, 밝은 상황을 다룬 것인 아니지만, 절대 음침하지
않다. 가볍지 않지만, 그렇다고 무겁게 내려 앉아 있지도
않다. 읽으면 읽을수록 메트로폴 호텔의 인물들에 애정이 가고, 그들이
행복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멋진 로스토프 백작! 분명
로스토프 백작은 구시대의 인물이지만, 그가 버리지 않은 것에 대한 가치가 분명히 존재한다.
- 좋아요
- 6
- 댓글
- 2
- 작성일
- 2023.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