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을 읽다

ena
- 작성일
- 2018.12.2
아무도 원하지 않은
- 글쓴이
- 이르사 시구르다르도티르 저
황소자리
이르사 시구르다르도티르. 이 쓰기도, 읽기도 힘든 이름(정확히는
性이지만)을 가진 작가는 아이슬란드의 소설가다. 그런데 나는 이 낯선 땅의
힘든 이름의 작가의 소설을 벌써 세 권째 읽는다. 『마지막 의식』과 『부스러기들』에 이어 『아무도 원하지
않은』까지. 이 것 말고도 이르사의 소설로는 『내 영혼을 거두어주소서』가 번역되어 있다. 우리나라에서 꽤 팔리는 작가란 얘기가 된다. 저자 소개에는 ‘현존하는 세계 최고 미스터리 작가로 손꼽힌다.’고 되어 있을 정도다. 물론 이 소개는 과장이 없지 않으나, 그렇게 생각해도 그리 무리가
가지 않을 만큼 그녀의 소설은 흡입력이 대단하다.
『아무도 원하지 않은』은
우리나라에 소개된 이르사의 다른 소설들과는 조금 다르다. 토라라는 여성 변호사가 사건 해결의 주인공으로
나서는 다른 소설들과 달리 『아무도 원하지 않은』은 독립적인 인물들이 등장한다.
현재와 1974년 두 시기의 이야기가 서로 번갈아가며 서술된다. 현재는 룬이라는
딸 하나를 둔 40대 이혼남 오딘의 시점에서, 1974년은
집에서 가출하여 크로쿠르라는 소년보호소에서 허드렛일을 하는 스무살 처녀 알디스의 시점에서 기록된다. 소설이니
당연하겠지만, 이 두 이야기는 서로 연결된다. 40년이라는
시간의 간격을 두고 서로 연결된다는 설정이 그렇게 낯설지는 않다. 문제는 그게 어떻게 연결되느냐이고, 이것으로 어떻게 독자들에게 충격을 주느냐이다.
춥디추운 북구의 겨울이
가지는 그 음울한 분위기가 소설 전면에 흐른다. 무언가 벌어질 것만 분위기를 자아내면서, 두 이야기들은 점점 가까워져 간다. 40년 전의 사고와 현재의 사고(자살)이 결코 사고와 자살이 아닐 것이라는 것은 분명해진다. 그러나 그 사고 아닌 사건과 자살이 아닌 죽음이 누구에 의해 벌어졌는지는 용의자를 두고 확신하지 못한다. 심지어 ‘나’인지도 모른다.
결말은 충격적이다. 두 시점의 두 이야기의 연결은 이미 예상하고 있었던 것이니 절묘하다는 느낌은 들지만, 그렇게 충격적이지 않다. 하지만,
오딘의 전 아내이자 룬의 엄마, 알디스의 딸 라라의 죽음에 둘러싼 비밀이 드러나는 순간, 전율이 일었다. 그런데 이건 기시감(旣視感)이기도
했다. 바로 정유정! 바로 그녀의 소설 『종의 기원』! 바로 박지리! 바로 그녀의 소설 『다윈 영의 악의 기원』!
세상에 악(惡)이 없어지지
않는 이유는 과연 이런 본성의 변이(變異, variation) 때문일까? 소설을 잘
읽고, 세상에 대해 이렇게 고민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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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