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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a
- 작성일
- 2018.12.29
바우돌리노 (하)
- 글쓴이
- 움베르토 에코 저
열린책들
『바우돌리노』의 (하)권은
주로 요한 사제를 찾아가는 바우돌리노 일행의 모험에 대한 얘기다. 그러니까
악한(惡漢) 소설에서 모험 소설로의 변환이다. 요한 사제란, 중세 시대에 서구에 널리 퍼졌던 신화였다. 동쪽에 요한 사제라는 기독교 왕이 다스리는 나라가 있다는 믿음이었다. 그래서 요한 사제의 왕국과 연락이 닿으면 (종파가 좀 다르지만) 그래도 기독교를 믿으니까 예루살렘을 회복하는 데 힘을 합칠 수 있을 거라 여겼다(그들에게 기독교라는 믿음은 무조건 善이었으니까. 요한 사제의 존재는 희망 같은 것이었고, 또한 그 왕국은 이상향이었다.
그런데 요한 사제를 찾아가는 바우돌리노 일행이 겪는 사건들을 보면 요상하다. 요한
사제의 존재에 대해서도 서로 깊게 공유되지 않았다. 어떤 이는 믿음 때문에, 어떤 이는 명성 때문에, 어떤 이는 재물 때문에, 또 어떤 이는 도망가기 위해 요한 사제를 찾아가는 모험에 동참한다. 요한
사제에게 가져가 믿음의 징표로 삼도록 선물할 성물(聖物)은, 사실 바우돌리노나
다른 사람들에 의해 조작된 것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조작된 성물에 대해서, 그들이 조작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정말 성물처럼 여긴다. 조작된 것이지만
그렇게 인정된 것은 가치가 있었다. 그런 성물은 존재한다는 믿음 자체가 중요한 것이지, 그게 현실에 존재한다면 가치가 사라져 버리는 것이었다. 그건 요한
사제와 그의 왕국도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바우돌리노 일행은 요한 사제의 왕국을 찾아 나섰지만, 결국은 거기까지 닿지 못하고 돌아올 수 밖에 없다. 그건 실패이기도
하지만, 깨달음이기도 하다.
사실 그 와중의 모험은 (픈다페침에서의 기묘한 동물들과의 교류, 히파티아와의 사랑 등을 포함하여) 좀 지겹다. 중세의 우화를 절묘하게 옮겨온 데에 대해서는 인정할 수 밖에 없지만, 그걸
우리말로 읽기에는 너무 지리하다(원저로 읽으면 어떨른지는 모르겠다. 이
소설의 참맛은 말의 쓰임새에 있다고 들었다). 그러다 갑자기 반전이 일어나고 활기를 띤다. 그건 과거의 사건이 들춰지면서다. 그들은 우여곡절 끝에 콘스탄티노플로
돌아왔고, 그들의 여정 도중에 벌어진 프리드리히 대왕의 죽음에 대한 추리와 싸움이 벌어진다. 마치 이 소설이 추리 소설류에 속하는 것처럼 보일 정도다. 결국은
프리드리히 대왕의 죽음은 모두가 책임이 있고, 또 모두가 책임이 없기도 한 것이 되었다. 이야기의 재미가 기묘한 것들의 나열보다는 불꽃 튀는 대결에 더 많이 기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바우돌리노』라는 소설은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 중에서가 가장 환상적이다. 기본적으로
거짓말로 점철된 인생을 살아간 바우돌리노였으니 당연하다. 그런 인물이 존재했다는 것도 믿을 만하지 않으며, 그러니 그가 말한 것들도 당연히 믿을 만하지 않다. 거기에는 그
시대에서부터 지금까지도 이어져 오는 기독교 믿음의 부산물들도 포함한다. 그런 것들이 얼마나 허약한 토대를
갖는지, 혹은 그러면서도 얼마나 유구하고 깊게 사람들의 마음 속을 파고들었는지를 이 소설은 얘기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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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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