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을 읽다

ena
- 작성일
- 2019.3.21
누구에게나 친절한 교회 오빠 강민호
- 글쓴이
- 이기호 저
문학동네
사람들 얘기다. 하기사 소설이라는 게 대체로 다 사람 얘기다. 그런데 그 사람 얘기를 하는 소설 중에서도 사람의 냄새가 나지 않는 소설이 있고, 또 유독 사람 냄새가 짙은 소설이 있다. 이기호의 소설은 단연코
후자다.
제목들부터가 그렇다. 최미진, 나정만, 권순찬, 박창수, 김숙희, 강민호, 한정희. 모두
사람 이름을 제목에 썼다. 그리고 그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그들은
조금은 어수룩하며, 아픔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누구나
다 그런 것이라고 한다면 할 말은 없지만, 그들의 이야기를 전하면서 그냥 다들 그런 것이지 하고 넘어가기에는
조금은 마음이 아린 얘기들이다. 누구나 살인자이고, 누구는
거짓말쟁이고, 또 누구는 아무렇지 않게 친구를 왕따시킨 초등학생이다.
그런데도 그들을 비난할 수만은 없게 만드는 것은 그냥 소설 속 주인공이라서가 아니라, 그들이
어쩌면 나의 모습, 내 옆 사람의 모습일 것 같은, 그런
기시감(旣視感) 같은 것 때문이다.
그런 느낌이 더 더는 이유는 소설 속에 ‘나’를 적극적으로 등장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그 ‘나’는 다름 아닌 소설가 이기호다.
자신의 이름을 또한 등장시키고 있고, 자신의 정체성을 언뜻언뜻 내비치고 있다. 대학 교수이며, 소설을 쓰는 사람이며, 광주에 살고 있으며, 아들 둘에 딸 하나를 키우고 있으며, 아파트 대출금에 허덕허덕대고 있으며, 등등. 그러면서도 『세 살 버릇 여름까지 간다』처럼 다 보여주지는 않으니(이
소설집에 나오는 이기호에 대한 정보가 대체로 사실에 기초한 것이란 건 『세 살 버릇 여름까지 간다』 덕분이다) 분명
이 이야기들은 소설이라는 걸 적절히 상기시켜주는데, 그러면서도 어쩌면 이 이야기들은 모두 사실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하게 하는 것이다.
그건 또 여기의 소설들을 관통하는 ‘사건’들에 대한 기억과도 연관되어 있다. 여기의 소설에는 ‘용산’이 있고, ‘바다’가 있다. 차마 그 사건들을 직접 대면하지 못하고, 그 주변을 맴돌지만, 그건 우리 평범한 시민의 모습이기도 하다. 그래서 더욱 안타깝고, 내가 밉기도 한.
하지만 소설이라면 그냥 익숙한 것만 보여서는 안될 것이다. 뭔가 깨닫게
있어야 하는데(물론 소설가는 소설, 글에서 뭔가를 배우는
것을 부정하고 있지만), 나는 우리는 아무렇지도 않게 살아가지만, 그게
정말 다른 사람에게도 아무렇지도 않은지는 모르고 살아간다는 걸 읽었다. 강민호나 권순찬 같은 이들에게서
말이다. 나의 의도는 그저 나의 의도일 뿐이고, 그게 그대로
남에게 전달된다는 보장이 없다. 나의 말과 행동이 행여 남에게 상처가 될까, 스스로 다잡기도 하지만 그게 늘 그럴 수는 없는 것이다. 나는 내가
무수한 사람들에게 작고 큰 상처를 받아왔듯이, 무수한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면서 살아왔다. 나의 그 상처를 증명하여 그 진단서를 남에게 들이밀 수 없듯이, 남들도
나에게 진단서를 들이밀지는 못하겠지만, 내 상처가 아물었어도 그 상흔이 남아 있듯이 내가 낸 상처도
그럴 것이다. 반성? 그러기도 쉽지 않다. 무엇이 상처가 되었는지 잘 알지도 못하는 바에야. 아마도 그럴 것이라는
총체적인 인식은 도무지 반성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반성하고 사과할 수 있으면 얼마나 다행인가). 알고는 있으나 반성도 할 수 없는, 부끄러우나 무엇 때문에 부끄러운지
콕 집어낼 수 없는, 그렇게 살아간다는 걸 이기호의 소설이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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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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