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을 읽다

ena
- 작성일
- 2019.3.25
앵무새 죽이기
- 글쓴이
- 하퍼 리 저
열린책들
한 문학 작품이 위대하다는 얘기를 듣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위대하다는 재미있다, 훌륭하다 등의 수준과는 다르다. 그럼 문학이 위대하다는 건 무얼 의미하는 걸까? 나는 전형성과 보편성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한다. 작품이 다루고 있는 시대와 공간을 대표할 수 있는 전형성이 담겨져 있고, 시대와 장소를 넘어서는 보편적인 가치를 표현할 때 비로소 작품은 위대할 조건을 갖추게 된다고 본다. 바로 하퍼 리의 『앵무새 죽이기』처럼.
스카웃(진 루이스 핀치)의 오빠 젬(제임스 애티커스 핀치)이 열세 살 무렵 왼쪽 팔이 부러졌다. 『앵무새 죽이기』은 스카웃이 오빠의 팔이 부러지기 3년 전부터 팔이 부러질 때까지를 회상하고 있다. 거기에는 변호사이자 주의회 의원인 아빠 애티커스 핀치의 고뇌와 멋이 있고, 오빠와 스카웃의 성장이 있었고, 딜과의 우정이 있었다. 그리고 사건이 있었다. 그 사건은 인간이 다른 인간을 그토록 편협하게 바라볼 수 있고, 파괴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그런 사건은 많았다. 모두 기록되지도 않을 만큼. 남북 전쟁 이후 노예 제도는 없어졌지만, 흑인에 대한 차별(차별이라는 표현은 너무 얌전하다)은 여전했다. 분명해 보이는 진실 앞에서도 흑인이라는 이유로 유죄 판결을 받고, 또 교도소에서 ‘살해’당한다. 이 과정을 어린 스카웃은 지켜보면서 성장한다. 또 다른 숙녀의 모습으로.
『앵무새 죽이기』는 하퍼 리의 데뷔작이자 대표작이다. 최근까지도 유일한 작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파수꾼』을 내기 전까지). 이 한 작품으로 하퍼 리는 위대한 작가가 되었다. 1930년대 앨라배마 주의 작은 마을 메이콤에서 스카우트이라는 애칭으로 불렸던 한 소녀와 그 주변에서 3년 간 일어난 일을 회상하며 쓴 이 소설은 1930년대의 미국 남부의 분위기를 전형적으로 보여준다. 그 시대와 그곳을 겪지는 않았지만, 대공황이 휩쓸고 간 미국 남부의 황량하면서도 인정이 남아 있는 분위기, 그러면서도 날카로운 대립의 현장이 『앵무새 죽이기』를 읽으면서 선연하게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앵무새 죽이기』는 그 시대와 그 장소만을 알 수 있게 하지 않는다. 메이콤이라는 마을 넘어서 앨라배마 주로 대표되는 미국 남부, 그것을 넘어서 미국 전체, 그리고 더 넘어서서 전세계의 보편적인 이야기를 한다. 또한 1930년대만이 아니라 고대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보편적인 가치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이 소설은 분명 한 작가의 어린 시절에 대한 자전적인 회상이지만, 그게 인종과 계급, 나이, 성 등 인류가 보편적으로 대립해온 문제에 대해 다룬다. 그것도 매우 감동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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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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