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을 읽다

ena
- 작성일
- 2019.4.17
술에 취한 세계사
- 글쓴이
- 마크 포사이스 저
미래의창
난잡해 보일 지도 모르는 술에 대한 얘기가 이처럼 매력적이고, 흥겨울
데가…
이 책을 보지 않더라도 인류는 술과 함께 했다는 걸 잘 안다. 술은
발명된 것이 아니고, 발견된 것이라는 걸 『술 취한 원숭이』에서 로버트 더글리가 잘 밝혔다(이 책에서도 로버트 더글리의 ‘술 취한 원숭이’ 가설을 잠깐 설명한다). 그러나 마크 포사이스는 발견한 술이 아니라
인류가 적극적으로 만들어내고, 혹은 금지해 온 술의 역사를 능청스럽게 서술하고 있다. 잘 모르는 것은 잘 모르는 대로,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이해가
잘 되지 않는다면서 말이다.
이 책을 읽으면 인류가 술에 취해 살아왔다는 것은 어쩌면 맞는 말일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인류에겐 맥주가 물보다 안전했던 음료수였던 시기가 훨씬 더 길었다. 그래서 (마크 포사이스가 자주 언급하듯이) 맥주가 있으면 맥주를 먼저 마시고, 맥주가 없으면 어쩔 수 없이 물을 마셔왔다. 고대로부터 술을 마신
상황에서야 진심을 얘기한다고 여기던 때도 많았고, 혹은 그 반대였던 적도 많았다. 술은 노동을 수월하게 해주었고(내지는 그렇게 믿었다), 그래서 술이 주어지지 않으면 폭동까지 일으켰다.
마크 포사이스는 아주 오랜 옛날의 수메르에서부터 시작해서, 이집트, 아테네, 중국, 고대
이스라엘, 로마를 거쳐, 중세의 게르만족, 이슬람, 바이킹 등이 술을 어떻게 생각해왔는지를 보여준다. 그리고 영국의 진 광풍, 럼이 세운 나라인 오스트레일리아, 미국의 서부 개척 역사에서 살룬의 역할, 보트카로 지탱되는 나라인
러시아, 그리고 미국의 금주법이 바꿔 놓은 역사 등 술 자체의 역사이기도 하고, 그 술이 흐름을 바꾼 역사를 다룬다.
술을 마시는 것은 다른 역사적인 행위에 비해 은밀한 일이기에 역사에 제대로 기록되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억측하기도 하고, 과소평가하기도 한다. 비록 이렇게 마크 포사이스가 재미있게 정리를 하고 있기는 하지만, 인류의
역사 속에서 술에 대해서(특정 술이 언제부터 인류의 역사 속으로 들어왔는지, 그 술이 역사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 등등) 정확히는 잘 모르고
있으며, 또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이 높다.
마크 포사이스는 맺음말에 이렇게 쓰고 있다.
“만취는 모순 덩어리다. 만취는 만사를 긍정하게 만든다. 폭력을 일으키는가 하면 평화를 유도한다. 만취하면 노래가 나오고
잠이 온다. 고대 그리스 사람들에게 술은 자제력을 시험하는 도구였다.
바이킹에게는 좋든 나쁘든 시의 원천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통치자의 도락이자 몰락의 원인이다. 가난한 사람에게 위안이 되지만 가난의 원인이기도 하다. 정부 입장에서는
폭동의 원인이자 수입원이다. 남성성의 증거이기도 하지만 남성성을 제거하는 요인도 된다. 유혹의 수단이자 결혼의 원인이다. 만취는 전염병이고 사망 원인이며
신의 선물이다. 수사들의 생필품이며 구세주의 피다. 만취는
신을 체험하는 수단이자 신 그 자체다.” (310~311쪽)
비록 나는 마지막 부분을 긍정하지는 않지만, 술의 이런 이중성이야말로
술에 관해서 가장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술을 마시는 사람은 이런 이중성을 모두 체현하지만, 어느 한쪽으로 가는 것만은 분명하다. 어느 쪽으로 술이 작용하느냐는
바로 술을 마시는 사람에게 달려 있는 것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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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