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학자 전우용은
해방 시기부터 한국 전쟁기까지 한국인이 겪고 지나온 의료의 역사를 촘촘히 되짚어보고 있다. 그 시기를
얘기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일제 강점기를 얘기할 수 밖에 없고, 그 시기의 의료를 얘기하기 위해서는 또
당연히 그 시기의 정치와 이념 대립을 건드릴 수 밖에 없다. 그렇게 해방 시기의 의료 문제는 역사적
문제가 되고, 정치 사회적 문제로 편입시키고 있다.

전우용이 전하는 그
시기 한국인의 의료 문제는 생각했던 것보다 더 심각했다. 아니 처절했다. 해방은 당연히 두 손 들어 반겨야 하는 사건이었으나(표현이 그렇지, 그런 감격이 또 어디 있었으랴), 그 해방과 더불어 심각한 문제들이
산적할 수 밖에 없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질병, 위생과
관련한 의료 문제였다. 일제가 한국인들에게 수혜를 입혔다고 하는 것 중 하나가 의료에 관한 것이나 그건
이중적인 것이었다. 의과대학(혹은 의학전문학교)이나 병원의 상층부는 모두 일본인들이 차지하고 있었고, 하부 조직으로
한국인 의사들이 존재하고 있을 뿐이었다. 또한 일본 내에서는 서양의학의 우위를 굳건하게 추진한 데 반해, 한반도에서는 전통의학에 대해 애매한 태도를 취하며, 멸시의 대상으로
삼기도 했다. 그런 와중에 일본의 패망으로 일본인이 일본으로 돌아가자 심각한 의료 공백이 생겼다. 더군다나 타국에서 돌아오는 한국인들이 여러 질병들을 갖고 들어오는 경우도 생겼다. 혼란의 상황이었으나 그것을 해결할 주체도 굳건하지 못했다.

더하여 한국 전쟁은
그런 상황을 더욱 비참하게 만들었다. 말할 것도 없다. 전우용이
전하는 당시의 상황에 대한 서술, 그리고 숫자들은 오히려 그런 비참함에 대해 덤덤하게 만들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상황이 우리에게 닥친다면, 하는 상상은 몸서리가 처질
만큼 아득하면서 상상하기도 싫은 것이 되어 버린다. 그런 비참함을 뚫고서 서양의학의 세례를 받으며 가까스로
의학이 성장해왔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기도 하고, 또 어쩌면 기적 같은 것이기도 하다.

이 책은 누구도 쉽게
정리하지 못했던 해방 시기에서 한국 전쟁 시기의 한국 의학사를 촘촘하게 정리했다는 점에서 평가 받을 수 있다. 여기서
이 책의 제목에 대해서 얘기를 해야 하는데, 전우용은 제목을 ‘현대인의
탄생’이라고 했다. 이 제목만 보면, 이 책이 의료에 대한 얘기라고 상상하기가 쉽지 않다. 그렇다면 무엇을
보고 전우용은 ‘현대인’을 얘기하고 있을까? 그 내용은 책을 거의 마칠 즈음에 나온다.

“전쟁은
개개인의 몸과 마음 모두를 포획하는 압도적 상황이다. 불순한 마음과 불결한 몸은 모두 국가의 검열 대상이었다. 사람들은 국가의 검열에 걸리기 전에 스스로 자신의 몸과 마음을 단속하는 훈련을 거듭했고, 그러면서 자기 몸을 의학적 시선으로 살필 줄 아는 ‘현대인’으로 거듭났다.” (294쪽)

그러니까 여기서 ‘현대인’은 긍정적인 면(자신의
몸을 의학적 시선을 바라볼 줄 아는)과 함께 부정적인 면(스스로
검열하는)을 함께 의미하는 것이다. 실은 전우용은 후자를
더 많이 강조하고 있긴 하다. 자신이 어느 땅에 속해 있는지를 판단하고 이념적으로 스스로 검열하는 것과
자신의 몸과 마음을 의학적으로 검열하는 것, 군대에서 명령에 복종하는 것, 국가의 교육에 순순히 ‘국민으로서’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것 등등. 그런 것이 현대 한국인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후 그런 현대 한국인은 놀라울 만한 경제 발전을 이루었고, 또
상당한 수준의 민주주의도 이루었다. 전쟁 당시 혀를 차며, 물도
나눠 마시지 않았던 미군 병사가 지금의 대한민국을 본다면 어리둥절할 정도일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자세히 언급하고 있지 않지만) ‘현대 한국인’은 다시 태어나야 한다. 한국인의 몸과 마음은 달라졌고, 그래서 다른 시각에서 바라보아야 한다. 그게 역사를 읽고 나서, 현재를 바라봤을 때의 의미가 될 것이다.